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8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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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의 완성형은 부모다. 선배는 잠깐이고, 직장 상사도 (요즈음은 근속연수가 예전처럼 길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잠깐이다. 라떼는 말이야,의 완성형은 부모다.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마음은 성경에 쓰여있지 않다 하더라도 진리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한다. 한편으로는 자식이 자신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렇게 삼종세트가 완성되는 것이다. 공부 열심히 해라, 공부는 때가 있는 법이야,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듣는 입장에서는 참 곤욕스러운 일일 테지만, 실제로 그 말을 하는 입장에서는 진심을 다한 말이다. 문제는 태도. 형식과 내용이 모두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잔소리가 되기도 하고, 훈계가 되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 꾸지람이 되기도 한다. 진심은 종종 전해지지 못 하고, 서운한 말들만 기억에 남는다. 최선은, 말하지 않는 것. 진심이 담겨있다 할지라도 받아들인 만하지 않다면, 말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여성학자이며 이적의 어머니로 유명한 박혜란님의 조언을 되새긴다. 아이를 손님으로 대해라. 그렇다. 손님에게는 잔소리하지 않는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존재를 알았던 중학교 2학년 때로부터 어언 시간이참 많이도 흘렀다. 이렇게 야무지게 찰지고, 스펙터클하고, 영화로 옮겨도 손색없을 만한 완벽하고 훌륭하고 결정적으로 너무 재미있는 소설을, 여태 읽지 않았다는데 스스로에게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자꾸만 말하고 싶어지고, 자꾸만 권하고 싶어진다. 아가야, 딸아, 아들아. 이 책을 읽어 보렴. 보아라, 엄마가 이 책을, 세 권 모두, 개정판으로, 문학동네판으로, 근사한 번역으로 구입하지 않았더냐. 나는 몰라서 못 읽었다. 나는 없어서 못 읽었다(이건 뻥!). 아가야, 읽어보렴. 딸롱아. 아롱아.



디오니소스의 주연을 방불케 하는 떠들썩한 술판(308)에 경찰서장, 검사 그리고 예심판사가 들이닥친다. (140년 된 소설이니 스포일러 걱정 없이 써본다.) 무죄를 주장하는 미챠와 그를 의심하는 검사 간의 대화가 한참이나 이어지는데, 도스토예프스키를 저평가해서가 아니라, 140년 전에 이런 대화를 상상했다는 게 너무나 놀랍고 신기하다. 현대적,이라는 말의 정의를 누구의 것을 빌려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등장 인물간의 대화, 상황 묘사는 너무나 현대적이다.     



부패의 징후가 드러나기 시작하자마자, 고인의 방에 들어오는 수도사들의 표정만 봐도 그들이 왜 왔는지 대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들은 들어와서 잠깐 서 있다가는, 밖에서 무리 지어 기다리는 다른 동료들에게 소문이 사실임을 한시바삐 확인해주기 위해 얼른 나가곤 했다. 기다리던 사람들 가운데는 슬픔에 젖어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악의에 찬 눈길 속에 노골적으로 번쩍이는 기쁨을 아예 감추려 들지도 않았다. (108)



그의 대단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은 조시마 장로의 죽음 이후의 풍경을 그려낸 부분이다. 질투는 인간이 가지는 가장 흔한 감정이다. 조시마 장로의 인격, 그의 위대함, 그리고 사랑을 아주 가까이에서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선한 노력을 폄훼하고자 하는 무리가 있었다. 장로의 죽음 이후 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자, 그들은 위대한장로에게 어찌 초자연적인일이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자연적인시간보다 더 빨리 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났는가 의심을 품는다. 이를 종교적 언어를 이용해 그를 음해하는데 사용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 한다. 질투하며 존경했던 자의 몰락을 바라되 그가 죽은 이후에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치졸한 범인들의 행태가 너무나 생생하다. 가장 추한 인간의 내면. 가장 비겁하고 치졸한 모습들.




2권을 읽었고 이제 한 권이 남았다. 중학교 2학년 때 그 존재를 알았음에도 나는 이제야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고 있는데, 마야 안젤루는 열 다섯에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었나 보다. 어제 읽은 그녀의 책에 도스토예프스키가 나온다. 다음 이야기는 다음 페이퍼에서.






그럼 가서 쟁취해라.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주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음식값은 내가 주마. 비서들이 출근하기 전에 사무실로 가. 비서들이 출근하면 따라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네가 읽는 그 두툼한 러시아 책 한 권 들고 가고.” 나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있었다. (72)

 








그가 말하더군요. "천국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숨어 있고 지금 내 마음속에도 숨어 있으니, 내가 원하기만 하면 내일이라도 천국은 나에게 정말로 나타나 평생토록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 P50

인간이여, 동물들 앞에서 우쭐대지 말지어다. 그들은 죄 없는 창조물들이지만, 그대는 이 땅에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그 위대함과 더불어 대지를 부패시키고 거기에 자신의 썩은 자취를 남기고 가니 - 오오, 슬픈지고, 우리 거의 모두가 그러하도다! 특히 아이들을 사랑하라, 그들 또한 천사처럼 죄가 없으며, 우리를 감동시키고 우리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일종의 지표로서 살고 있기 때문이니라. - P84

여기서 그대에게 구원의 길은 단 하나이니, 그대 자신을 사람들의 모든 죄에 대해 책임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바로 그렇게 만들도록 하라.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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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6-23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야 안젤루의 책에 저런 대목이 나오는군요. 보관함에 있던 것이 장바구니로 넘어가려 합니다..
전 도선생님을 무지하게 좋아하는데, 저 두꺼운 분량에 차마 재독하는 게 엄두가 안 나는 상황이나..
코로나 시국에 한번 시도해볼까 싶기도 해요 .ㅎㅎㅎ

단발머리 2020-06-25 11:37   좋아요 0 | URL
장바구니로 잘 넘어가셨지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마야 안젤루는 사랑입니다.
도선생님은 말 그대로 미리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인데, 전 반강제 진행중이라 헉헉대면서 간신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moonnight 2020-06-2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ㅠㅠ 이제라도 읽어야 하는데 카.조.형ㅠㅠ;;;;;; 민음사와 열린책들 갖고 있는데 문학동네도 갖고 싶어요(읽기 전 모아놓기-_-) 올해 안에 꼭 읽기(시작이라도 하기;;)로 결심합니다^^

단발머리 2020-06-25 11:38   좋아요 0 | URL
전 열린책들 읽다가 도중 하차 기억으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에 문학동네로 읽는데 새책이라 그럴까요?
가독성이 엄청 좋습니다. 추천드려요!

수이 2020-06-23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루고 미루었던 이 두껍디 두꺼운 책을 이번 기회에 실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진심 고민중입니다.

단발머리 2020-06-25 11:40   좋아요 0 | URL
수연님은 또 현대소설도 신경쓰시느라... 또 에코페도 읽으셔야 하고. 많이 바쁘신줄 제가 잘 알지요^^

북극곰 2020-07-02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니, 아, 갑자기 저도 까라마조프를 읽고 싶어져가지고,
(요즘 도서관이 문을 안 여니 언젠간 읽어려구 사준 책들에 손을 댑니다.)
집에 있는 건 열린책들에서 나온 건데...... 도중에 하차하셨다고요?..... ㅠ.ㅠ
어쩌지....

단발머리 2020-07-04 12:24   좋아요 0 | URL
제가 이번에 도스토옙스키 챌린지 하면서 여러분들이 댓글 주셨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열린책들 책으로 성공하신 분을 3분 보았고, 실패하신 분을 저까지 4명 보았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래요.
만듦새 같은 경우는 문학동네가 이번에 새로 나온 책들이 너무 예쁘구요. 번역도 전 술술 읽히더라구요.
저도 큰 맘 먹고 온 가족 다 읽어라!의 심정으로 구매했어요. 일단 1인이 성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