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던 때였다. 나는 진짜 전화를 돌렸는데, 수화기 너머로 놀란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아니, 그러니까, 네가…. , 그래, 그래.  


이번에는 전화를 돌리지 않았다. 엄마와 이모에게 길이가 다른 투표용지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정당에 대해, 그 정당의 정확한 이름과 번호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이어갔는데, 나의 편중된 애정이 느껴졌는지 아이들이 자꾸 부정선거라며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모는 어제 사전투표를 마치고 오셨다고 카톡을 보내셨고, 친구 역시 사전투표를 하고 왔다고 카톡을 보내온다. 사전투표를 마치고 내게 카톡을 보내는 이 사람들은, 내가 사전투표를 좋아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보낸다. 여기 있다, 사전투표. 니가 좋아하는 사전투표, 여기 있다.



어제 오후에 갑자기 외출을 해야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투표를 하고 왔다. 토요일 아침, 8시 조금 넘은 시간인데 사람들이 많았다. 줄을 섰고 체온을 쟀고 손소독을 했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꼈다. 주민등록증을 내밀었는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기계로 스캔을 하며 모니터로 본인 확인을 하는 것 같았다. IT 강국 맞나 보다. 투표를 하고 돌아섰다. 나오는 길에 들어오는 사람들. 투표하기 위해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이사온 지 한 달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아직도 지리가 익숙하지 않은데 상가 내 커피숍 문이 열어 있어 들어가 보았다. 직접 원두를 볶아서 판매한다고 하는 동네 커피숍. 바이러스가 사라질 때까지 테이크 아웃은 500원 할인. 3,500원짜리 라떼를 3,000원에 얻게 되니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말. 개이득. 집으로 간다. 크고 하얗고 아름다운 북극곰의 모습이지만 북극곰답지 않게 겨울잠을 자고 있는 곰 두 마리가 있는 집으로.  



오전 9시 현재 누적투표율 14.04%. 가장 쉽고 가장 명확한 방법. 우리보다 어리석은 자들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는 결심. 주권의 행사 또는 산책. 선택 그리고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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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4-11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날짜에 할 예정인데 이번에 고민 없이 뽑을 정당이 생겨서 너무 좋아요! 투표 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단발머리 2020-04-11 10:42   좋아요 0 | URL
저는 그냥 주민등록증 하나 냈을 뿐인데 코로나 땜에 다른 절차가 있어 전체 동선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고민 없이 뽑을 정당이 있으시다니 투표소 가는 발걸음이 더 가벼우시겠네요🤗

2020-04-11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0-04-11 12:39   좋아요 0 | URL
네, 길긴 길더라구요. 저는 비닐장갑이 미끄러워서 작은 칸에 야무지게 찍느라 집중도를 200% 올렸습니다.
행복한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움하하하핫!!!

레삭매냐 2020-04-1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제 아침에 좀 일찍 출근해서
투표하고 출근했답니다.

동료들에게 사전투표하라고 독려
했더니만, 사전투표 믿을 수가 없다
고 하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세상에
아직도 그런 가짜뉴스에 휘둘리다니...

단발머리 2020-04-11 15:29   좋아요 1 | URL
그럼 레삭매냐님은 사전투표율 견인의 당사자시군요. 오늘은 토요일이라 더 많은 분들이 투표장으로 가시는 거 같아요.
사전투표 믿을 수 없다 보수 유투버들이 뿌리는 이야기라 하던데. 아, 어쩌나요.

겨울호랑이 2020-04-11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녁에 가족들과 사전투표 후에 장을 보고 왔어요. 가족 단위로 오신 분들이 많더군요. 높은 사전투표율이 막판 정치 공작을 막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단발머리 2020-04-11 15:31   좋아요 1 | URL
저희 동네도 가족끼리 오신 분들이 많았어요. 참 아름다운 장면이죠. 높은 사전투표율은 국민의 입장이 어떠하든가에 상관없이 민의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ㅎㅎㅎㅎ

책읽는나무 2020-04-12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요일에 남편이 휴무일이라 저흰 둘이서 사전투표를 했었는데 줄이 길어서 좀 놀랐어요.평일 낮인데??하면서요~~
저는 늘 당일 오전에 투표를 해왔던지라 사전투표 상황을 첨 봤거든요~~근데 올 해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대라고 하는 소릴 듣고 아~그래서 줄이 길었구나?생각했죠^^
비닐장갑을 끼고 있어 정말 손이 미끄러워 실수할까봐 신중을 기했습니다ㅋㅋㅋ
좋은 결과가 나와야 할텐데요^^

단발머리 2020-04-13 10:45   좋아요 1 | URL
전 토요일에 오전 일찍 나서서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거든요. 근데 오후에 주민센터 앞 지나다가 정말 깜놀했어요.
사람들이 줄을~~ 와~~~ 열기가 느껴지더라구요. 정말 코로나를 넘어서는 뜨거운 투표 열기에 저도 감동받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좋은 결과를 예상하며 수요일에는 치킨 예약 분위기입니다, 저희집은요^^

블랙겟타 2020-04-12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금요일날 했었는데요.. 토요일이 주말이라 그런지 줄이 더 길더라구요. 다행히 편하게 금요일날 사전투표 완료했습니당 ^^
아 맞다 단발머리님 이사하셨다했죠? 동네도 잠시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셨겠네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단발머리 2020-04-13 10:46   좋아요 1 | URL
금요일에 하신 분들도 많은 거 같아요. 이젠 사전투표가 완전히 자리잡은 것 같고요. 아직도 골목길 여기저기 모르는 곳이 많아서요, 전 아는 길로만 다니는 사람인데 그 날은 좀 멀리 돌아서 걸어봤네요. 투표를 마치고 오는 길이라 기분도 상쾌했구요.
블랙겟타님도 좋은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