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가 아닌 교대에서 내려 걸어가자는 Y의 생각은 옳았다. 서초에서 내린 사람들은 꼼짝도 못 하고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교대에서 내려 서초쪽으로 걸어가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시작은 조국이다. 장관 후보자에 대한 정치적 공세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야당은 장관 후보자에 대해 검증할 수 있다. 장관 후보자가 부적격했음을 지적하면서, 정권의 부족함을 비판할 수 있다. 정치 세력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언론이 합세한다. 당연하다. 언론은 국민을 대신해 각종 의혹에 대해 장관 후보자의 답을 요구할 수 있다. 모두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야당이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합의해 주지 않는다는데 있었다. 의혹을 제기했는데, 해명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질문을 해놓고 대답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갔다. 언론은 매일 새로운 의문을 제기했고, 그 의혹이 잘못된 사실에 근거했음이 밝혀졌는데도 이를 ‘밝혀주지’ 않았다. 매일 새로운 의혹이 ‘새롭게’ 나타났다. 그렇게 한 달을 끌었다. 기자 간담회와 청문회를 마치자마자 여론이 반등한다. 언론이 한 달 동안 죽어라 팼는데도, 조국 후보자에 대한 지지가 반대만큼 높아졌다. 언론은 모른 척 했다.
검찰이 등장한다. 검찰은 조국이 법무부 장관으로 부적합하다고 판단하고, 대통령에게 조국 불가를 건의했다고 전해진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청문회 마치기 30분 전, 장관 후보자의 아내를 기소한다.
시작은 조국이다. 실망에 대해서라면 이해한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도대체 어디, 어디가 그런지 난 도대체 모르겠지만, 친구 조국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진중권에게 어느 지점이냐 진심 묻고 싶지만, 아무튼 난 그 점만은 이해한다. 조국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전설처럼 들려오는 이야기, 이를테면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미치도록 찾고 찾아낸 문대통령의 위법 사항이 시골집 처마 연장이라는 말이 진짜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조국은 그에 미치지 못하니, ‘네 과거가 의심스럽다’, ‘너도 별 수 없다’는 욕을 조국에게 꼭 해야한다면, 하면 되겠다. 부적격이라 생각할 수 있다. 조국, 바로 너가 현재 정부에 부담이 된다 욕할 수 있다. 친구라는 진중권도 하는데 누구라도 못 할까.
다만, 사태는 이미 거기에서 일정 정도 벗어난 데 있다. 조국은 안 된다는,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모실 수 없다는 무소불위 검찰이 미친 폭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조국 사태를 통해 국민들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눈 앞에서 확인하게 되었다. 검찰은 속내를 드러냈다. 개혁을 추진할 만한 소신과 능력이 있는 인물을 장관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저희 검찰은 ‘국민과 함께하는 검찰’이 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오로지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행사하겠습니다. 실체 진실과 국민의 기본권 사이에서 비례와 균형을 찾아가는, 헌법을 실천하는 검찰이 되겠습니다.
윤석열의 총장 인사말이다. 인사말과 정확히 반대로 가고 있는 검찰 총장. 아, 윤석열이여!
최근에 읽었던 댓글 중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엄정하게 수사하고 있는데도,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성찰해 주기 바란다”며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문재인 대통령 기사에 달린 댓글이었다. 이 양반아, 삼권분립도 모르냐.
검찰은 행정부 산하의 조직이다.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역시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을 통해 개별수사를 지휘할 수 있다. 그게 원칙이고 권한의 범위이다. 공권력은 국가의 이름으로 공식화된 폭력이다. 다수를 위해 폭력을 용인한다. 하지만, 검찰 인사말에도 나와있듯이, 이는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행사되어야 한다. 실체 진실과 국민의 기본권 사이에서 비례와 균형을 찾아야 한다. 장관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장관 딸의 중2일기장을 가져가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 장관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장관집에 압수수색하러 들어간 상태에서 새로 영장을 청구해 장관 딸이 중학생 때 사용했던 폴더폰을 압수해 가면 안 된다. 국정농단 때보다 많은 검사들이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에 의논을 거듭한 끝에, 장관 아들이 지원했던 대학원 전체를 압수수색하기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서초의 서울지검 앞에 도착했을 때는 5시 20분 쯤이었다. 등뒤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끝없이 쏟아졌다.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됐다. 이 사람들, 참 신기하구나 하는 생각.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 이 사람들, 그러니까 자한당 전희경 의원의 말대로 ‘정신 나간 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하는 생각.
저 높은 곳의 고매한 검사들은 촛불도 없어서 핸드폰 들고 시위하는 일반 시민들이 얼마나 우습게 보일까. 200만에 가까운 국민들을 ‘정신 나간 이들’이라 부르는 자한당에게 시민들은 얼마나 작게 보일까. 내내 검찰 받아쓰기하다가 생방송 중에 “진실보도!” 팩트 체크당한 언론에게 시민들은 얼마나 초라하게 보일까.
검찰은 속내를 드러냈고 국민들은 촛불을 들었다. 이제 내 관심은 고매한 검사들도, 멘탈 붕괴 정치권도, 얄미운 언론도 아니다. 내 관심은, 자기 돈 내고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서초동에 와서는, 박자에 연연해 하지 않고 “정치검찰 물러가라!”, “공수처를 설치하라!”, “검찰개혁! 조국수호!”를 외치는 내 옆의 한 사람, 또 한 사람이다. 촛불 시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