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전적 이야기 『문맹』을 읽었다. 알라딘서재 이웃님들이 인용해 주신 구절에서도, 미리보기에서도 이 두 페이지에 계속 눈이 갔다.
“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매일 읽기만 해.”
“쟤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할 줄을 몰라.”
“저건 소일거리 중에서도 가장 나태한 소일거리야.”
“저건 게으른 거지.”
그리고 특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쟤는 ……을 하는 대신에 읽기만 해.”
무엇을 하는 대신에?
“더 실용적인 것은 아주 많잖아. 그렇지 않아?”
여전히 지금도, 매일 아침, 집이 비고, 모든 이웃들이 일하러 나가면 나는 다른 것을, 그러니까 청소를 하거나 어제 저녁 식사의 설거지를 하거나, 장을 보거나, 빨래를 하고 세탁물을 다리거나, 쨈이나 케이크를 만드는 대신 식탁에 앉아 몇 시간 신문을 읽는 것에 가책을 조금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쓰는 대신에. (13-4쪽)
다른 것을 할 줄 모르며, 나태하며, 게으른 내가, 이 글을 읽는다. 즐거움만을 위해 읽을 때, 모든 이들이 일을 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아침, 어제 밤 읽던 책을 펼칠 때, 가책을 조금 느낀다.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집안일을 미뤄두고 책에 밑줄을 긋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 가책을 조금 느낀다. 아침에 읽을 때, 가책을 조금 느낀다.
요즘 제일 큰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움베르트 에코 밤에 소설을 읽는 거예요. 가톨릭 배교자로서 제 머릿속에는 아직도 낮에 소설을 읽는 것은 지나치게 쾌락을 좇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있지 않나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낮은 주로 에세이나 어려운 작업을 위한 시간이랍니다. (45쪽)
독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다. 어떤 면에서는 충분히 이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독서의 의미, 읽기의 의미에 대한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이런 말에 동감한다. 그래야 한다. 그래야만 계속 읽을 수 있다.
즉각적이고 가시적으로 결과가 드러나는 활동은 그렇지 않은 활동보다 언제나 만족스럽습니다. 누구도 눈에 보이는 성과물을 즐기기 마련이죠. 아침 일찍 일어나 부엌을 청소하고 영수증을 처리하고 서류 작업을 끝내는 일이, 30분 책을 읽는 것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성취가 크죠. 집안일이 독서보다 즐겁지는 않지만, 끝내면 깔끔해진 부엌과 말끔히 비워진 영수증 함과 정리된 서류들이 성취의 증거로 남으니까요. (중략)
하지만 우리는 일로만 평가받기를 거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유, 즉 성찰, 계몽, 이해가 똑같이 가치 있다고 고집해야 합니다. 고전을 스스로의 힘으로 읽어 나가는 프로젝트, 즉 하루에 일정 시간 동안 앉아서 책 한 권을 읽는 행위는 생산물과 축적물로만 우리의 가치를 재는 세상에 맞서는 저항의 행위입니다. 뭔가 ‘생산적’인 다른 일 대신에 아침에 혼자서 책을 읽는 행위는, 가치 있는 존재가 되려면 구체적인 뭔가를 생산해야 한다는 명령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자, 저항하십시오. 앉아서 성찰하는 기쁨을 느끼십시오. 인간이란 생산력만이 아니라 이해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고집하십시오. 아침에 눈을 떠서 부엌을 청소하고 서류를 정돈하기 전에, 무엇보다 고전을 한 권 집어 들고 읽는 시간을 가지기 바랍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5-6쪽)
그럼에도.
효용과 효율이 지배하는 시대, 국가에서 공식인정하는 비경제활동인으로서 국가공인 ‘노는 사람’인 나는, 접근이 쉽고, 적은 비용으로 시작할 수 있으며, 친구가 없어도 가능하며, 친구와 함께 하면 더 즐거운 이 ‘취미활동’을 계속하는 것에 가책을 느낀다. 읽는 것에, 아침에 읽는 것에 가책을 조금 느낀다. 일하지 않고 읽는 것에, 돈 벌지 않고 읽는 것에 가책을 조금 느낀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사사키 아타루는 말한다. 우주의 일부인 나, 그 자체로 ‘의미’가 되는 ‘내’가, 말을 얻어, 그것을 자아내 가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말이다. “읽고, 다시 읽는 것, 쓰는 것, 다시 쓰는 것”을 통해 ‘나’는 변해갈 것이고, 그 ‘과정’만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295쪽)
그래서 오늘. 2018년 6월 20일 수요일.
『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 Chap. 13. 14
『힐러리 클린턴』 30쪽
가책을 느낀다.
가책을 조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