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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평론 - P-1

미술은 원초적이고 친숙합니다. 누구나 배우지 않아도 그림을 그리고, 지식이 없어도 미술 작품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미술은우리에게 본능처럼 존재합니다. 하지만 미술의 역사는 그 자체가인류의 역사라고 할 만큼 길고도 복잡한 길을 걸어왔기에 어렵게느껴지기도 합니다. 단순해 보이는 미술에도 역사의 무게가 담겨있고, 새롭다는 미술에도 역사적 맥락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미술을 본다는 것은 그것을 낳은 시대와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말이며,
그 시대의 영광뿐 아니라 고민과 도전까지도 목격한다는 뜻입니다. - P4

미술비평가 존 러스킨은 ‘위대한 국가는 자서전을 세 권으로 나눠쓴다. 한 권은 행동, 한 권은 글, 나머지 한 권은 미술이다. 어느 한권도 나머지 두 권을 먼저 읽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그중 미술이 가장 믿을 만하다"고 했습니다. 지나간 사건은 재현될수 없고, 그것을 기록한 글은 왜곡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술은 과거가 남긴 움직일수 없는 증거입니다.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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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묘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흑묘관의 살인』 독서감상 보고서 ― 관의 트릭에 감탄하고, 살인의 이유에 실망하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흑묘관의 살인』을 다 읽고 나니, 이 작품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살인사건이 아니라 ‘관을 찾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흑묘관을 찾는다. 기억을 잃은 노인 아유타 도마가 남긴 수기를 바탕으로 시시야 가도미와 가와미나미 다카아키는 과거 사건이 벌어진 저택을 찾아 홋카이도 아칸의 깊은 숲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관을 찾아낸다.

그런데 그곳은 흑묘관이 아니다.

백묘관(白兎館, 흰 토끼의 관)이다.

그렇다면 수기에 기록된 살인사건이 실제로 벌어진 흑묘관(黒猫館, 검은 고양이의 관)은 어디에 있는가.

결국 이 소설에서 내가 끝까지 풀지 못했던 가장 큰 수수께끼는 ‘누가 죽였는가’보다 ‘어디에서 죽였는가’였다.


1. 나는 끝까지 홋카이도 아칸에서 헤맸다

아야츠지는 처음부터 독자를 홋카이도 아칸으로 몰고 간다.

아유타의 수기에는 항구도시, 안개, 감옥 터, 늑대, 호수의 거대생물, 토착민, 곰처럼 홋카이도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아모 다츠야 박사가 구시로 부근 출신이라는 사실까지 더해지니 수기 속 사건 역시 당연히 홋카이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 완전히 그렇게 믿었다.

더구나 시시야 일행이 실제로 구시로를 거쳐 아칸의 깊은 숲으로 들어가 관을 찾아내는 과정까지 이어진다. 여기까지 읽고서 수기 속 사건이 다른 나라에서 벌어졌을 가능성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작가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속았다.

특히 내 머릿속에 ‘홋카이도의 여름’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박아버린 장면이 있었다.

아유타가 한 손에는 비닐봉지, 다른 손에는 우산을 들고 해가 진 캄캄한 정원을 지나 소각로로 향하는 장면이다. 날씨는 거센 폭풍이 친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험악해지고, 우산은 거의 쓸모가 없으며, 발을 내디딜 때마다 땅에 푹푹 빠진다.

기노우치가 앞뜰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장면에서도 모두 옷이 흠뻑 젖는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여름철 폭우를 떠올렸다.

사실 그 어디에도 ‘비가 온다’라는 말은 없다. 바람이 거세며 땅이 질척거린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8월이라는 날짜와 홋카이도라는 선입견이 이미 머릿속에 들어와 있었으니 나는 스스로 나머지를 채워버렸다.

여기에 결정타가 하나 더 있었다.

“에어컨 온도 좀 낮춰줘.”

이 말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냉방을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에어컨은 냉방만을 뜻하지 않는다. 난방을 하고 있는 방이 너무 더워 설정온도를 낮추는 것도 가능하다. 작가는 냉방이라고 쓰지 않았다. 독자인 내가 냉방이라고 받아들였을 뿐이다.

나는 여기서 완전히 넘어갔다.

8월, 폭풍, 흠뻑 젖는다, 에어컨.

이 네 가지를 내 머릿속에서 연결해 ‘여름’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8월은 북반구에서는 여름이지만 남반구에서는 겨울이다.

돌이켜보면 오후 5시 반 무렵 이미 어두워지는 것, 난방 때문에 창문에 김이 서리는 것, 정오에 북향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것까지 모두 단서였다.

작가는 계절을 속이지 않았다.

장소를 숨겨놓고 독자가 계절까지 스스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2. 사람의 정체는 알아챘는데, 관의 정체는 몰랐다

반대로 아유타 도마의 정체는 비교적 일찍 의심했다.

수기를 읽으면서 아유타와 아모 다츠야 박사가 동일인일 가능성을 생각했고, 아모 박사의 양녀 리사코의 죽음에도 아유타가 직접 관여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후반부에 밝혀지는 아유타의 정체 자체는 나에게 가장 큰 반전이 아니었다.

진짜 뒤통수를 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장소였다.

시시야 일행이 힘들게 찾아낸 아칸의 관이 수기 속 살인사건이 벌어진 관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그 관은 백묘관이었다.

진짜 흑묘관은 일본에조차 없었다.

오스트레일리아 타스마니아에 있었다.

이 순간 앞서 별다른 의문 없이 지나쳤던 장면들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젊은이들이 도로 표지판과 가게 간판을 큰 소리로 읽었던 이유, ‘이쪽 사투리’라는 표현, 8월의 이른 일몰, 북향 창으로 들어오는 한낮의 햇빛, 긴급전화번호 000, 빨강과 파랑의 경찰차 불빛, 곰이 없는 숲, 유대류에 관한 표현까지 모두 타스마니아라는 한마디로 설명된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들을 읽으면서 거의 문제 삼지 않았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넘어갔다.

나중에 시시야가 하나씩 짚어줄 때도 “아, 그랬던가?” 싶을 정도였다.

결국 작가가 단서를 숨긴 것이 아니라, 단서를 눈앞에 내놓았는데도 내가 그것을 단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셈이다.

감옥 터 역시 홋카이도의 유적이 아니라 포트 아서였다.

아유타가 누구인지는 의심하면서도 아유타가 어디에 있는지는 끝까지 의심하지 못했다.

『흑묘관의 살인』에서 내가 완전히 패배한 지점은 바로 여기였다.


3. 북반구와 남반구, 적도를 거울로 삼은 두 개의 관

그리고 밝혀지는 백묘관과 흑묘관의 관계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아모 다츠야 박사는 나카무라 세이지에게 두 채의 저택을 의뢰했다.

한 채는 자신의 생가가 있던 홋카이도 구시로 부근, 다른 한 채는 젊은 시절 유학했던 오스트레일리아 타스마니아.

두 저택은 적도 위에 거대한 거울을 세운 것처럼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서로 마주 보도록 만들어졌다.

백묘관과 흑묘관.

흰 토끼와 검은 고양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

북반구와 남반구.

여름과 겨울.

실체와 거울에 비친 그림자.

이건 정말 끝내주는 설정이다.

단순히 마지막에 “사실은 외국이었습니다”라고 장소만 뒤집는 트릭이 아니다. 처음부터 두 개의 관을 지구 규모의 거울상으로 만들어놓고, 그 차이에서 생기는 계절과 태양, 동물, 언어, 생활문화까지 수기 속에 단서로 흩뿌려놓았다.

살인범의 알리바이를 깨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서 있는 세계 자체를 뒤집는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에서 살인사건보다 관을 찾는 과정이 훨씬 재미있었다.

진짜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4. 그런데 살인의 이유가 밝혀지자 맥이 빠졌다

문제는 이렇게 훌륭한 관 안에 집어넣은 살인사건이다.

관의 비밀이 밝혀질 때까지는 감탄했는데, 사람들이 왜 죽었는지가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맥이 빠졌다.

특히 아모 다츠야에게 붙여놓은 설정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모는 자신의 조카이자 양녀인 리사코에게 집착한다. 그것도 아이가 성장해 여성이 되어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롤리타 콤플렉스와 소아성애를 연상시키는 뒤틀린 욕망이다. 결국 그는 성장해가는 리사코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흑묘관 지하에 시신을 숨긴다.

대학교수까지 지낸 인물의 어두운 과거를 결국 이런 성적 집착으로 끌고 가야 했을까 싶었다.

레나는 이 사건과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녀는 여행 중이던 여성으로, 젊은이들이 여행 중 만나 흑묘관으로 데려온 사람이다. 그날 밤 술과 약물이 뒤섞인 난잡한 시간을 보낸 뒤 다음 날 아침 죽은 채 발견된다.

그런데 레나는 누군가에게 살해된 것이 아니었다.

심장마비로 죽은 것이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아유타는 레나가 살해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경찰에 신고할 경우 자신의 과거와 흑묘관의 비밀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그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그 결과 젊은이들은 자신들 가운데 누군가가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 레나를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불안이 다시 진짜 살인으로 이어진다.

히카와는 자신을 이성적인 인간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약물에 취해 이성을 잃었던 자신이 혹시 레나를 죽인 것은 아닐까 하는 가능성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아사오 겐지로에게 레나를 죽인 범인이라는 누명을 씌우기 위해 그를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한다.

이 대목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못해, 이성적으로 생각한 끝에 실제 살인을 저지른다?

그게 과연 이성적인 해결인가.

아모의 리사코 살해와 히카와의 아사오 겐지로 살해 모두 동기는 어줍잖지만 설명은 된다.

하지만 설명된다는 것과 납득된다는 것은 다르다.

북반구와 남반구를 뒤집고 태양의 방향과 계절까지 계산한 작가가 살인의 이유에 와서는 왜 이렇게 억지스러워지는지 모르겠다.

관의 트릭에 쏟은 정교함과 살인사건을 만드는 데 들인 정교함 사이의 격차가 너무 크다.


5. 죽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죄인가

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피해자들이다.

죽는 사람들이 살인자에게 죽을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

복수를 당할 만큼 살인자에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죽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건에 휘말리고, 범인의 계획에 걸려들고, 하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는다.

말 그대로 재수 옴붙어서 죽는 사람이 생긴다.

그런데 이런 불편함은 『흑묘관의 살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관 시리즈를 계속 읽으면서 반복해서 느꼈다.

『십각관의 살인』에서는 그나마 범인의 원한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이해할 만한 과거가 있다. 그렇다고 그 살인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최소한 복수의 인과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인형관의 살인』의 히류 역시 살인을 저지르는 쪽이지만, 그가 가진 사정이 다른 사람을 죽여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수차관의 살인』과 『시계관의 살인』에서도 피해자들이 범인의 목적과 사정에 휘말려 목숨을 잃는다.

특히 『미로관의 살인』은 읽고 나면 이런 생각까지 든다.

도대체 그 사람들이 왜 죽어야 하는가.

내가 보기에는 거의 ‘미로관에 초대받은 죄로 사형에 처한다’는 수준이다.

살인자에게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피해자가 죽어야 할 이유는 아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문제다.


6. 그리고 또, 살인자에게는 왜 이렇게 관대한가?

그리고 또,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야츠지가 살인자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관 시리즈에서는 사람을 죽인 범인이 그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지는 모습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죽거나, 사라지거나, 스스로 자신의 마지막을 결정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살인자에게도 묘하게 선택권을 남겨준다.

특히 시시야가 그렇다.

『미로관의 살인』에서도, 『시계관의 살인』에서도, 이번 『흑묘관의 살인』에서도 시시야는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고 누가 사람을 죽였는지까지 알아낸다.

그런데 그 다음이 희한하다.

자수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살인자에게 맡긴다.

한 번이면 그런가 보다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반복된다.

범인을 밝혀내는 데에는 그렇게 집요한 사람이 정작 범인을 밝혀낸 뒤에는 “자수할지는 당신이 결정하시오”라는 식으로 물러난다.

도대체 시시야에게 살인사건의 해결이란 무엇인가.

누가 죽였는지만 알아맞히면 끝나는 것인가.

법적으로 일반인이 살인범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범인은닉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불편한 것은 법조문보다 시시야의 태도다.

피해자에게는 아무런 선택권도 없었다.

그런데 정작 살인자에게는 자신의 범죄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선택할 기회까지 주어진다.

나는 바로 이 불균형이 불편하다.


7. 아야츠지는 왜 살인자의 사정에 더 가까이 서는가

처음에는 그저 아야츠지가 살인자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것 아닌가 하는 불만이었다.

그러나 관 시리즈를 여러 작품 읽고 비슷한 결말을 반복해서 만나고 나니, 작가가 왜 이런 방식을 선택하는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아야츠지의 관은 대개 일상적인 사회에서 떨어져 있다.

섬, 외딴 저택, 폐쇄된 건축물처럼 바깥 세계와 단절된 공간 안에서 오래된 기억과 원한, 욕망과 죄책감이 뒤엉키고 살인이 벌어진다.

그곳에서는 경찰이나 법원 등 사법권력이 사건을 중심에서 해결하기보다 개인이 개인에게 죄를 묻고, 복수하고, 진실을 밝히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이것이 아야츠지가 관이라는 폐쇄공간에서 살인사건을 만드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사회의 법과 제도보다 한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원한과 죄의식, 욕망과 광기를 더 가까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왜 살인자의 사정이 그렇게 자세히 설명되는지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아야츠지는 ‘살인의 사회적 책임’보다 ‘살인의 개인적 사정’에 방점을 찍는 작가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범인의 내면은 선명해지지만, 피해자의 억울함과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은 상대적으로 흐릿해진다.

나는 아야츠지가 왜 그런 서사를 선택하는지는 이해해보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불균형까지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8. 그렇다면 어떻게 썼어야 했을까

그렇다고 모든 추리소설의 마지막에 경찰이 나타나 범인에게 수갑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범인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떤 고통과 원한을 가지고 있었는지 충분히 보여주는 것도 문학의 역할이다.

살인자를 인간으로 이해하려는 시선 자체가 잘못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살인자의 사정을 이해하는 것과 그가 저지른 살인의 책임을 묻는 것은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다.

특히 시시야의 태도는 조금 달랐어도 좋았을 것이다.

사건의 진상을 모두 밝힌 뒤 범인을 이해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자수할 것인지 말 것인지까지 살인자에게 맡길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제부터는 당신이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선 정도는 그을 수 있지 않았을까.

반드시 경찰에 넘기는 장면이나 재판 결과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다.

살인에는 개인적인 원한과 고통만으로 끝낼 수 없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만 분명히 남겼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살인자의 내면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작품이 살인의 책임을 회피한다는 인상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9. 관의 트릭에 감탄하고, 살인의 이유에 실망하다

그래서 『흑묘관의 살인』에 대한 내 평가는 분명하게 갈린다.

관의 트릭은 일류다.

나는 완전히 속았다.

홋카이도 아칸이라는 장소를 믿었고, 8월이라는 날짜를 여름이라고 믿었고, 폭풍이 몰아치는 장면을 여름 폭풍우라고 생각했으며, “에어컨 온도 좀 낮춰줘”라는 말을 냉방이라고 받아들였다.

작가는 여름이라고 하지 않았다.

냉방이라고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백묘관과 흑묘관이라는 두 개의 관을 적도를 사이에 놓인 거울상으로 보여주면서 그동안의 단서들을 한꺼번에 뒤집는다.

이 트릭에는 감탄했다.

반면 살인사건은 실망스럽다.

성장하는 양녀를 받아들이지 못해 죽였다는 아모의 뒤틀린 욕망과, 자신이 레나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아사오 겐지로를 실제로 죽여버리는 히카와의 논리는 관의 트릭만큼 정교하게 설득되지 않았다.

트릭은 일류인데, 사건은 삼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흑묘관의 살인』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관이다.

나는 흑묘관을 찾고 있다고 생각하며 홋카이도 아칸의 숲속까지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찾아낸 것은 백묘관이었다.

진짜 흑묘관을 찾으려면 일본을 떠나 적도를 넘어 타스마니아까지 가야 했다.

살인사건의 동기에는 실망했지만, 독자를 지구 반대편까지 끌고 가는 관의 트릭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야츠지는 살인사건보다 관을 더 잘 지었다.


10. 흑묘관… 아니 백묘관을 찾아 다시 홋카이도로

이렇게 『흑묘관의 살인』을 덮고 나니 또 하나의 여행지가 생겼다.

구시로다.

나는 2018년 12월 30일부터 2019년 1월 3일까지 닷새 동안 삿포로에 머물며 홋카이도의 겨울에 푹 빠진 적이 있다.

오타루, 노보리베츠, 비에이를 돌아다녔다.

오타루에서는 영화 『러브레터』를 떠올리며 눈 덮인 거리를 걸었다.

삿포로에서는 아이누와 홋카이도 개척시대의 흔적을 생각하며 도시를 거닐었다.

비에이에서는 하늘이 열린 듯 눈이 펑펑 쏟아졌다. 살아오면서 그렇게 많은 눈을 한꺼번에 본 것은 처음이었다. 금세 어깨와 머리 위에 눈이 내려앉았고, 눈앞의 들판과 길과 집들은 순식간에 흰빛 속으로 묻혀갔다. 눈을 피하기보다 그대로 맞으며 걷고 싶었다. 그때 비로소 ‘홋카이도의 겨울’이라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했던 것 같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홋카이도는 내가 이전까지 알던 일본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 여행을 다녀온 지도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다.

그리고 내년에는 다시 홋카이도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유빙을 보러 아바시리로 갈 계획이다.

그런데 『흑묘관의 살인』을 읽고 나니 홋카이도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 하나 더 늘었다.

구시로와 아칸이다.

처음에는 흑묘관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알고 있다.

홋카이도에 있는 것은 흑묘관이 아니다.

백묘관이다.

물론 백묘관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저택이다. 실제 구시로와 아칸의 숲속을 아무리 뒤져도 나카무라 세이지가 지은 흰 토끼의 관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가보고 싶다.

구시로에서 출발해 아칸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가 보고, 국도에서 벗어나 깊은 숲으로 이어지는 풍경도 직접 보고 싶다.

시시야와 가와미나미가 아유타의 수기를 들고 관의 흔적을 찾아 헤맸던 그 공간을 현실의 풍경으로 불러내오고 싶다.

2018년 겨울에는 『러브레터』를 떠올리며 오타루를 걸었다.

내년에는 유빙을 보러 아바시리로 갈 계획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흑묘관의 살인』을 들고 구시로와 아칸으로 가야겠다.

흑묘관을 찾아 홋카이도로.

아니,

백묘관을 찾아 홋카이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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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묘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작품 배경 추적] 『흑묘관의 살인』의 무대를 찾아서
― 홋카이도 아칸의 백묘관에서 타스마니아의 흑묘관까지


『흑묘관의 살인』은 첫 장부터 “1990년 7월 8일(일), 홋카이도·아칸”이라고 무대를 밝힌다.

가와미나미 다카아키와 추리작가 시시야 가도미, 그리고 기억을 잃은 노인 아유타 도마는 구시로에서 자동차를 타고 아칸의 깊은 숲속에 있는 저택을 찾아간다. 대문 뒤에는 가문비나무 숲이 펼쳐지고, 자동차 한 대가 길을 반쯤 막을 정도로 좁은 진입로가 이어진다.

처음에는 이곳이 당연히 수기 속 사건의 무대인 흑묘관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 작품에 나온 구시로·아칸·국도 240호선·마리모 국도·서쪽 샛길이라는 단서를 따라 실제 지도를 뒤졌고, 아칸 본정과 아칸코 사이의 산림까지 범위를 좁혀갔다.

그러나 1990년 시시야 일행이 찾아간 저택은 흑묘관이 아니라 백묘관(白兎館, 흰 토끼의 관)이었다. 1989년 아유타의 수기에 기록된 진짜 사건의 무대는 흑묘관(黒猫館, 검은 고양이의 관)으로, 일본이 아니라 남반구 오스트레일리아 타스마니아섬에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찾아낸 홋카이도 아칸의 백묘관을 기준점으로 삼아, 적도 반대편에 세워진 흑묘관도 현실 지도 위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1. 홋카이도 아칸의 백묘관

1990년 7월 8일 아침, 시시야 일행은 짙은 안개가 낀 구시로 시내를 출발해 국도 240호선을 타고 아칸으로 향한다.

아칸 본정에서는 주민들에게 저택의 위치를 묻지만 성과가 없다. 그러다 오래된 전파상 주인이 과거 깊은 숲속의 저택으로 전기제품을 수리하러 간 일을 기억해내고 약도를 그려준다.

작품에 나온 동선은 다음과 같다.

구시로 시내 → 국도 240호선 → 아칸 본정 → 주민 탐문 → 오래된 전파상 → 마리모 국도 북상 → 표지판에서 서쪽 샛길 진입 → 여러 차례 우회전·좌회전 → 비포장도로 → 깊은 가문비나무 숲 → 백묘관

따라서 백묘관은 아칸 본정과 아칸코 사이에서 국도 240호선 서쪽으로 들어간 깊은 산림에 있어야 한다.

현재 지형도와 산림도로를 대조하면 가장 유력한 곳은 아쿠베쓰·시라미즈 산림대다. 아쿠베쓰 시라미즈 임도와 후레베쓰 시라미즈 임도 주변은 국도 서쪽 진입, 여러 갈림길, 장거리 산림도로라는 조건이 작품의 묘사와 잘 맞는다.

다만 현재 확인되는 상세 임도자료는 작품 시점인 1990년 이후의 것이므로, 현재의 도로 선형과 포장상태를 당시와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백묘관의 현실 대응지역은 ‘아칸 본정과 아칸코 사이, 국도 240호선 서쪽의 아쿠베쓰·시라미즈 산림대’로 비정한다.


2. 홋카이도라고 믿게 만든 수기와 그 안의 위화감

아유타의 수기에는 홋카이도를 연상시키는 장치가 곳곳에 깔려 있다.

항구도시, 감옥 터, 늑대, 호수의 거대생물, 토착민, 곰 등이 등장하고, 아모 박사가 구시로 부근 출신이라는 사실까지 확인된다. 히카와가 저택에 오기 전날 다녀온 ‘이곳의 명물이라는 감옥 터’도 처음에는 도로코 호숫가의 집치감 관련 유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수기를 다시 읽으면 홋카이도라는 전제와 맞지 않는 단서들이 나타난다.

· 구시로라면 흔한 여름 안개를 ‘보기 드물게’라고 표현함
· 젊은이들이 도로 표지판과 가게 간판을 큰 소리로 읽음
· ‘여기에는 처음 왔다’는 히카와가 과거 아바시리에는 가본 적이 있다고 말함
· 8월 1일 오후 5시 반 무렵 이미 어두워짐
· 새끼 양 요리가 자연스럽게 식탁에 오름
· 텔레비전 방송이 젊은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음
· 여름인데 실내 창문에 김이 서림
· 깊은 숲인데도 곰은 나오지 않는다고 함
· 정오 무렵 북향 창으로 강한 햇빛이 들어옴
· 경찰에 신고하려는 사람이 전화 다이얼의 0부터 돌리려 함
· 경찰차를 연상시키는 빛이 빨강과 파랑임
· 숲속 짐승들에게 ‘뇌들보가 없다’고 표현함

장소를 남반구 오스트레일리아로 바꾸면 이 모순들이 한꺼번에 풀린다.

타스마니아의 8월은 겨울이고, 남반구에서는 정오 무렵 태양이 북쪽 하늘에 있다. 낯선 간판과 ‘이쪽 사투리’는 영어와 오스트레일리아 영어, 전화기의 0은 긴급전화번호 000, ‘뇌들보가 없는 짐승’은 유대류와 연결된다.

수기 속 위화감은 결국 진짜 무대를 감춰놓은 지리적 암호였다.


3. 적도 위의 거울 ― 백묘관과 흑묘관

아모 다츠야는 20년 전 나카무라 세이지에게 두 채의 저택을 의뢰했다.

한 채는 자신의 생가가 있던 구시로 부근, 다른 한 채는 젊은 시절 유학했던 타스마니아였다. 두 부지는 적도 위에 거대한 거울을 세운 것처럼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서로 마주 보도록 선택되었으며,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지구 규모에서 위도와 경도가 상당히 가까웠다.

나카무라 세이지는 여기에 루이스 캐럴의 두 ‘앨리스’를 겹쳐 넣었다.

홋카이도의 백묘관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흰 토끼, 타스마니아의 흑묘관은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검은 고양이에 대응한다.

흰색과 검은색, 북반구와 남반구, 여름과 겨울, 실체와 거울에 비친 그림자.

따라서 백묘관의 현실 위치를 먼저 좁혀놓으면 그 ‘거울 반대편’을 찾는 것이 흑묘관 비정의 출발점이 된다.


4. ‘시내’는 호바트, 감옥 터는 포트 아서

작품은 수기에 나오는 ‘시내’가 타스마니아주의 주도 호바트(Hobart)라고 직접 밝힌다. 아모 박사가 젊은 시절 유학했다는 타스마니아대학교 역시 호바트에 있다.

아유타는 1989년 8월 1일 오후 3시 반쯤 호바트의 호텔에서 젊은이들을 태우고 출발해 오후 5시 반이 넘어서 흑묘관에 도착한다.

따라서 작품에서 직접 확보되는 거리조건은 ‘호바트에서 자동차로 약 두 시간 전후’다.

히카와가 전날 방문한 ‘감옥 터’는 포트 아서(Port Arthur) 형무소 유적이다.

다만 포트 아서는 흑묘관의 인접 지명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히카와가 전날 별도로 다녀온 관광지다. 따라서 포트 아서는 수기의 무대가 타스마니아임을 확인하는 강력한 단서이지만, 그것만으로 흑묘관을 타스만반도에 놓을 근거는 되지 않는다.


5. 가장 강한 단서 ― 북위 43도와 남위 43도

아모 박사가 두 부지를 고를 때 ‘위도와 경도가 상당히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는 설명은 흑묘관의 위치를 좁히는 가장 중요한 단서다.

일본 환경성 자료에 따르면 아칸코의 중심부는 북위 43°27′, 동경 144°06′이다.①

타스마니아 남부 사우스포트(Southport)는 약 남위 43°25′, 동경 146°58′에 위치한다.②

아칸코 북위 43°27′ / 동경 144°06′
사우스포트 남위 43°25′ / 동경 146°58′

위도는 적도를 기준으로 거의 정확하게 마주 보고, 경도 차이는 약 3도다.

반면 포트 아서는 약 남위 43°09′, 동경 147°51′이다.③

따라서 작품에서 말한 ‘적도 위의 거울’이라는 조건을 적용하면 포트 아서보다 사우스포트와 그 북쪽 헤이스팅스 일대가 백묘관의 반대편에 더 가깝다.


6. 후보지 비교 ― 헤이스팅스·사우스포트가 왜 1순위인가

가. 1순위 ― 헤이스팅스·사우스포트 산림대

가장 강한 근거는 아칸과 거의 정확하게 대응하는 남위 43도 20분대의 위도다.

여기에 호바트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접근할 수 있고, 사우스포트 북쪽과 북서쪽 헤이스팅스 방면에는 넓은 산림이 이어진다는 조건이 겹친다.

현재의 내비게이션 주행시간을 1989년에 그대로 적용하지는 않았다. 타스마니아 정부가 제공하는 1981~1990년 항공사진과 1980년대 TASMAP 지형도를 확인한 결과, 호바트 남쪽에서 헤이스팅스 방면으로 이어지는 접근축은 당시에도 존재했다. 헤이스팅스 동굴로 들어가는 도로 역시 작품 시점보다 훨씬 이전인 1930년대부터 개발되었다.④⑤⑥

따라서 현재 가장 유력한 위치는 사우스포트 시가지 자체가 아니라 그 북쪽·북서쪽 헤이스팅스 방면의 깊은 산림이다.


나. 2순위 ― 포트 아서·타스만반도

포트 아서는 작품에 직접 등장하는 실제 장소라는 강점이 있고 남위 43도대에 위치한다.

그러나 작품에서 포트 아서는 히카와가 전날 방문한 관광지일 뿐 흑묘관으로 가는 동선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아칸과의 위도·경도 대응도 사우스포트보다 떨어진다.

따라서 2순위로 본다.


다. 3순위 ― 사우스포트 남쪽·콕클크리크 방면

사우스포트에서 루ーン리버·아이다베이·콕클크리크 방면으로 내려가면 인가가 줄어들고 깊은 산림이 이어진다.

환경조건은 흑묘관과 잘 맞지만 남쪽으로 갈수록 아칸과의 거울 위도에서 멀어지고 호바트와의 거리도 늘어난다.

따라서 3순위로 본다.


7. 최종 비정

지금까지 확인한 작품 내부 단서와 실제 지리를 종합하면 두 저택의 현실 대응지역은 다음과 같이 비정할 수 있다.

백묘관(白兎館)
― 홋카이도 아칸의 아칸 본정과 아칸코 사이, 국도 240호선 서쪽 아쿠베쓰·시라미즈 산림대

흑묘관(黒猫館)
― 오스트레일리아 타스마니아 남부의 헤이스팅스·사우스포트 산림대

흑묘관의 2순위 후보는 포트 아서·타스만반도, 3순위는 사우스포트 남쪽·콕클크리크 방면이다.

이 가운데 헤이스팅스·사우스포트를 1순위로 보는 가장 강한 근거는 사우스포트의 남위 43°25′가 아칸코의 북위 43°27′과 거의 정확하게 남북 대칭을 이룬다는 점이다.

호바트에서의 이동조건, 1989년 당시에도 존재했던 남부 접근도로, 깊은 산림이라는 조건까지 함께 놓으면 헤이스팅스·사우스포트 권역이 다른 후보보다 한 단계 앞선다.


8. 홋카이도 아칸에서 타스마니아까지

처음에는 홋카이도 아칸에서 흑묘관을 찾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좁혀간 곳은 아쿠베쓰·시라미즈의 숲이었다. 추적이 틀린 것이 아니라 찾아낸 관이 달랐다. 그곳은 백묘관이었다.

그리고 그 백묘관을 기준점으로 적도 반대편을 살펴보자 북위 43도대의 아칸과 남위 43도대의 타스마니아 남부가 마주 선다. 그 결과 진짜 흑묘관의 가장 유력한 현실 후보는 헤이스팅스·사우스포트의 숲으로 좁혀졌다.

결국 『흑묘관의 살인』의 무대 추적은 홋카이도 아칸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적도라는 거울을 넘어 타스마니아까지 가야 완성되는 추적이었다.


[주]

① 일본 환경성, 아칸코 람사르 습지 자료
― 아칸코 중심부 북위 43°27′, 동경 144°06′.

② 호주 기상청(Bureau of Meteorology), Southport 관측소 자료
― 남위 43.42°, 동경 146.97°. 1882~1994년 운영.

③ Marine and Safety Tasmania, Port Arthur 자료
― 약 남위 43°09′, 동경 147°51′.

④ TASMAP, Geeveston 1:25,000 지형도
― 1985년 제작. 작품 시점과 가까운 타스마니아 남부의 도로·취락 검토자료.

⑤ LISTmap, Aerial Photo 1981–1990 Historic / Aerial Photo Frames 1980–1989
― 타스마니아 정부의 1980년대 항공사진 자료.

⑥ Tasmania Parks and Wildlife Service, Hastings Caves State Reserve
― 헤이스팅스 접근도로와 관광기반시설은 1930년대부터 개발됨.

⑦ 강담사 공식 ‘관 시리즈’ 페이지와 아야츠지 유키토·아리스가와 아리스 대담도 확인하였으나, 현재 공개된 자료에서는 타스마니아의 특정 장소를 흑묘관의 실제 모델로 지목한 작가의 직접 발언은 확인하지 못함.

※ 헤이스팅스·사우스포트 비정은 작품 내부 단서와 실제 지리 및 1980년대 자료를 대조한 결과임.


자료 조사·정리: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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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묘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레나는 목이 졸려 죽은 것이 아니었다. 죽은 후에 약에 취한 누군가가 레나가 죽은 줄 모르고 스카프를 감아 목을 졸랐다. 이것이그 사건의 진상이다.

실제로 그 판단은 옳았다. 해가 진 후에도 눈은 쉴 새 없이 내려서 점점 더 쌓여갔다. 레나의 짐을 비닐봉지에 담아서 뒤뜰 소각로로 옮겼을 때에는 완전히 눈보라였다. 우산은 거의 쓸모가 없었고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땅을 파고드는 발이 무거워서 목적지까지도착하는 데 평소의 배가 넘는 거리를 걸은 듯했다.

물론 그날 밤 주방의 냉장고는 이미 고장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이스박스에 옮겨 담은 약간의 얼음은 가자마 유키가 다 써버렸고, 제빙실의 서리도 다 녹았다. 적어도 저택 안에서는 얼음을 새로 만들기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단 한 가지다.
범인은 건물 밖에 쌓인 눈을 아이스박스에 담아서 가져온 것이다.

진상을 알면서도 나는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오히려 히카와가 다가왔을 때 시체의 얼굴에 옷을 덮어 그들의 눈에서 진실을 감추려 했다. 물론 살인으로 꾸며 젊은이들을 유도하면 경찰 신고를 막을 수 있다는 계산 아래 한 일이다. 설령 진상이 병사였든, 약물 남용으로 인한 중독사였든 변사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경찰관이 떼거지로 저택에 드나드는 것은 내게 결코 바람직한 일이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눈을 가져올 수 있었던 사람은 한 명으로 한정된다.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 사람은 바로 그 청년, 히카와 하야토다.

장서실 바닥에 지하로 통하는 비밀 구멍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조금이나마 고뇌가 사그라졌을 것이다. 현장이 밀폐되어있지 않았다면 ‘네 사람 중 하나‘라는 빠듯한 확률이 다소나마 낮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의 비밀 구멍이 장서실 쪽에서만 열린다는 것을 알고 그의 고뇌는 다시 같은 수준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나보다 먼저 일어나 살롱에 온 기노우치 신이 탁자의 아이스박스를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박스 속에는 물이 들어 있었다. 전날 밤 가자마가 아이스박스를 거꾸로 들고 속을 비웠는데 말이다. 이것이 바로 밤중에 누가 그 박스에 눈을 채웠다는 증거아니겠는가.

자신의 명확한 의지 아래 살인을 저질러서 자신을 살인의 심리적인 속박에서 해방시키려 한 것이다. 희생자로 아사오를 선택한 것은 글씨체를 흉내 내기 쉽고, 몸집이 작으며, 레나 사건과는 관계없이 자살할 동기가 있다는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임이틀림없다.
이상이 아사오 겐지로의 죽음에 관해 내가 내린 결론이다.

핵심은 바로 ‘이성‘이다.
둘째 날 오후, 장서실 회랑에서 히카와는 대담하게 딱 잘라 말했다. 자신에게 ‘신‘은 자기 자신의 이성이라고.
같은 범죄 행위를 저지른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이성의 지배 아래에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마치 이렇게 말하듯 ‘이성‘에 대한 강한의지를 드러냈다.

따라서 범인이 눈을 입수하려면 현관이나 뒷문, 둘 중 하나로 밖에 나가야 한다. 그날 밤 이 문들은 둘 다 잠겨 있어서 열쇠 없이는안에서도 열지 못하는 상태였다. 다음 날 아침에 문을 억지로 비틀어 연 흔적도 없었다. 그리고 문을 열기 위한 열쇠는 둘 다 하룻밤 내내 히카와가 보관하고 있었다.

‘진상‘은 바뀌어야 한다. 쓰바키모토 레나를 죽인 것은 네 사람 중 하나가 아니다. 자신을 제외한 특정 인물 한 명이었다는 식으로바뀌어야 한다.

이성을 잃은 상태로 자신이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진상‘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 그 진상을 여러 사람이 인정하는 ‘현실‘로서 이대로 방치하다니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절대로.......그리하여 그는 이런 결의를 굳히기에 이르렀다.

벌써 10년도 더 전일까. 이 저택의 이 방에서 이성을 잃고 그 아이의 목을 조른 내 모습이 환상이 되어 피어오른다. 거울 반대편에세운 또 하나의 저택에서 직접 그린 그 아이의 초상화를 지하 통로로 가져가서 미친 듯이 난도질하던 내 모습이 그 환영에 겹쳐서흔들린다........

지난달 초순, 멜버른에 사는 그의 형 아다치 모토하루足立基春 씨(재미있게도 그는 내가 학창시절 때 친하게 지낸 구마시로 노스케라는 남자의 지인인 모양이다)에게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날아들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런 결의를 굳히기에 이르렀다.

벌써 10년도 더 전일까. 이 저택의 이 방에서 이성을 잃고 그 아이의 목을 조른 내 모습이 환상이 되어 피어오른다. 거울 반대편에세운 또 하나의 저택에서 직접 그린 그 아이의 초상화를 지하 통로로 가져가서 미친 듯이 난도질하던 내 모습이 그 환영에 겹쳐서흔들린다........

지난달 초순, 멜버른에 사는 그의 형 아다치 모토하루足立基春 씨(재미있게도 그는 내가 학창시절 때 친하게 지낸 구마시로 노스케라는 남자의 지인인 모양이다)에게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날아들었다는 것이다.

흑묘관과 시계관, 같은 건축가가 만들어낸 두 건물에서 똑같은 시기에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기묘한 현실을 나는 도대체 어떤기분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받아들이려 하고 있는가. 여기에는 굳이 쓰지 않도록 하겠다.
슬슬 석양이 질 시간이다. 어제와 오늘 공교롭게도 바깥 날씨는 나빴지만, 기분 때문인지 쏟아지는 빗소리는 온기를 띠고 있는 것같았다.

1989년 9월 5일.
이곳 타스마니아 섬의 겨울은 천천히 봄을 향하고 있다.

이성이라는 ‘신‘ 때문에 친구를 살해한 그 청년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역시 욕망과 격정을 이성으로 억누르지 못했던 과거의 나와 그를 비교해보고 어두운 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

모토하루 씨의 아내 데루미는 원래 성이 ‘고가‘로, 고가 정계사의 회장이었던 고가 미치노리 씨의 친동생이라는데, 고가 씨가 세상을 떠난 후 데루미가 후견인을 맡아온 후계자 아들이 올해 8월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듣건대 그 아들은 가마쿠라의 ‘시계관’이라 불리는 저택에 살았는데, 그곳을 찾아온 사람 몇 명을 살해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시계관이라는 그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가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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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쯤 더 나아가자 통로는 수기의 내용과는 달리 막혀 있지 않고 들어왔을 때와 똑같은 회색 문이 나타났다. 시시야가 문을 열자땅 위로 올라가는 비탈진 계단이 있었다.

덧붙여 이상한 부분이 하나 더 있었다. 소녀의 얼굴에서 가슴, 배 사이에 사방팔방으로 검은 균열이 수도 없이 많이 생긴 것이다.
누가 날붙이로 캔버스를 난도질한 듯했다.

"이야. 안개가 싹 걷혔네."
푸른 하늘에서 내리쬐는 오후 햇살이 눈부신 듯이 손차양을 치고 시시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와미나미는 청바지 호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2시가 넘었다. 이 저택에 도착한 지 아직 두 시간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쩐지 두배도 넘는 시간을 지하의 어둠 속에서 헤맨 것 같았다.

가와미나미는 놀라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지금 그는 분명히 ‘리사코’라고 말했다. 리사코理沙子라고.

캔버스에는 등나무 의자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소녀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하늘색 블라우스에 멜빵바지. 가슴께에 늘어뜨린 갈색 머리카락. 머리에 얹은 베레모....... 수기에 나온 장서실의 유화와 똑같은 구도다. 하지만.
다른 곳이 딱 한군데 있었다. 소녀의 무릎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는 검은 고양이가 그려져 있지 않았다.

시시야가 손을 뻗어 천을 걷었다. 그러자 세 사람 앞에 은색 액자에 담긴 캔버스 한 장이 나타났다.
"과연!"

"20년 전, 일을 의뢰하러 온 아모 박사의 본성을 꿰뚫어본 나카무라 세이지는 개구쟁이 기질이 발동했는지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를 맛깔나게 살려서 저택을 설계한 거라고."

아유타 도마와 아모 다츠야는 동일인물이다.
가와미나미는 어제 그 사실을 알았다. 시시야의 방을 찾아간 바로 그때였다.

"어쩐지 이상하네요."
가와미나미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분명 수기에는 건물이 새카맣다고 적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야 생각났어? 자네도 참 어지간하군."

"아니야. 그 수기는 첫머리에 필자가 선언한 대로 ‘허위 사실을 일체 배제하고 쓴 거야. 나는 그렇게 확신해."

"저건 고양이가 아니라 토끼야. 흰 토끼지."
"하지만 그게......."
"앨리스야, 코난 군. 앨리스라고. 이 집은 ‘거울‘이 아니라 ‘이상한‘ 쪽이었어."
"앨리스?"
"어제 이야기했잖아. 도지슨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 즉 루이스 캐럴의 본명이라고."

"풍향고양이가...... 앗, 저것도 색이 다르네. 검은색이 아니라 연한 회색이야. 원래는 흰색이나 상아색이었겠죠."

"검게 칠한 벽에 창틀과 문도 전부 검은색이었어. 2층의 욕조도 검은색. 바닥은 빨간색과 흰색의 바둑판 무늬 곳곳에 검은색으로악센트를 준 타일. 그 수기에는 그렇게 묘사되어 있었지. 그런데 지금 자네가 보고 있는 저 집은 어땠지?"

"벽은 상아색이죠. 문도 똑같은 색이었고요. 욕조는 흰색, 어쩐지 그때 좀 묘하다 싶기는 했었는데. 바닥은...... 아아, 빨간색과 검은색의 바둑판 무늬예요. 거기에 흰색으로 악센트를 줬죠. 그러고 보니 장서실의 비밀 구멍을 여는 ‘열쇠‘ 타일도 색이 달랐던가."
"수기에서는 검은색, 아까 내가 빼낸 건 흰색이었어."

"아까 전 그림이 방아쇠가 되어 기억이 제법 많이 되살아나지 않았습니까? 자신이 누구인지, 이제 아시겠죠? 아유타 씨...... 아니,
아모 다츠야 박사님."

"이 집은 ‘흑묘관‘이 아니야. 굳이 이름을 짓자면 저 ‘풍향토끼‘에 빗대어 ‘백묘관‘이라고 해야겠지. 진짜 흑묘관은 다른 곳에, 거울반대편에 세워져 있어."

그는 가자마에게 따끔하게 못을 박았어. ‘아버님이 이 집을 남에게 넘기거나 철거하지 않도록 앞으로 도련님이 신경을 잘 써주셔야한다는 말씀입니다‘라고. 이리하여 주인은 저택을 팔거나 관리인인 그를 해고하지도 못해.

"이것 역시 그가 아모 다츠야라는 걸 알고 나면 그리 신기한 이야기도 아니야. 아사오 겐지로의 시체를 관찰한 것도 그렇고. 문외한의 짧은 소견이지만, 아모 박사는 생물학, 그것도 동물학과 연관된 연구실에 오래 있었잖아. 어쩌면 의학부의 해부학 교실과 관계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실제로 내 옛날 친구 중에 그런 녀석이 있어. 이학부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뒤에 의학부에서 해부학 조수로 일했지. 지금은 휴스턴 대학에 있어서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지만. 그러니 아유타 도마 즉 아모 다츠야가 초보적인 법의학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야. 구마시로 선생님의 말씀대로 일찍이 란포와 세이시의 소설을 좋아했다면 더 말할나위가 없지."

"보험?"
"자신이 앞으로도 계속 흑묘관에 살기 위한 보험이지."

그 백골시체는 행방불명된 아모 박사의 양녀, 리사코였다. 리사코를 죽이고 시체를 지하 통로에 숨긴 것은 당시 저택의 소유주였던박사 자신이었다고 추정된다. 아유타 도마가 아모 박사와 동일인물이라면 당연히 그는 지하 통로의 존재와 거기에 숨겨진 시체에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래서 그는 경찰에 신고하기를 꺼렸다. 섣불리 경찰을 불러들였다가 만에 하나 지하 통로의 시체가 발견되는 사태가 벌어지면 큰일이라고 두려워한 것이다.......

"젊은이들이 마약을 즐겼다는 것을 묵인했으니까.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지. 하지만 그는 그 이상으로 변사 사건을 수사하러 온 경찰들이 저택 안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닐까 봐 불안했어."

엽서의 글씨체가 아유타 도마가 쓴 수기의 글씨체와 아주 흡사했기 때문이다.
엽서와 수기, 둘 다 같은 사람이 쓴 것이다. 둘을 나란히 놓고 글씨체를 비교해보기도 했지만, 전문가에게 감정을 부탁할 필요도없을 만큼 그 사실은 명백했다.

예를 들어 지하에서 백골사체를 발견했을 때는 이래. ‘나는 왼손을 가슴에 꼭 갖다 대어 두근거림을 가라앉히며 공황상태에 빠진젊은이들을 어떻게든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욕실에서 아사오의 시체 앞에 섰을 때는 이랬고. ‘왼손을 가슴에 대고 필사적으로 동요를 억누르며 나는 눈앞에 매달린 시체의 상태를 관찰했다.‘

나는 무심코 왼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심장 고동이 빨라졌다.‘ 코난군, 심장을 누를 때 자넨 어느 쪽 손을 쓰지?"
"그러니까...... 오른손이죠. 오른손으로 이렇게."

"아모 다츠야는 전내장 역위증이었다. 이게 결정적인 단서였어."
"어째서요?"
"이 수기에 아유타 씨 역시 전내장 역위증이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 몇 군데 있거든."

"루이스 캐럴은 알지?"
"예, 그건 알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사람이잖아요."
"그럼 그의 본명은?"
가와미나미는 "글쎄요"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시시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씩 웃었다.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 이게 캐럴의 본명이야."

보통 속이 트릿할 때에는 오른쪽을 아래로 하고 자면 좋다고들 하잖아. 위의 위치상 그래야 소화가 잘 되거든. 그런데 그는 반대로왼쪽을 아래로 하고 누웠어. 왜냐? 위의 위치가 보통 사람과는 반대라서 그래.

세이지는 의뢰는 받아들여 아칸의 숲속에 흑묘관을 세우게 됐는데, 나중에 그는 건축주 아모 다츠야에 대해 ‘그 사람은 도지슨‘이라는 평을 남겼어.

하지만 그 후의 행로는 비참했어. 역시 리사코를 잃은 충격이 컸겠지. 술독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문제를 일으켜서 대학에서쫓겨났고, 결국은 파산해서 삿포로에도 머물지 못하게 됐어.

"일을 협의하느라 아모 박사와 몇 번 만나 이야기하는 사이에 나카무라 세이지는 그의 그런 본성을 꿰뚫어본 거지. 아모는 ‘여자‘가 되기 이전의 ‘소녀‘밖에 사랑하지 못하는 남자다. 그리고 현재 그는 양녀 리사코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 마을에서떨어진 숲속에 별장을 세운 것도 분명 자신과 리사코 둘만 머물 수 있는 곳이 필요해서였겠지.
아칸의 별장 흑묘관이 완성되자 아모는 기회 있을 때마다 거기로 리사코를 데려가서 둘만의 시간을 보냈어. 가끔은 친구를 초대하기도 했겠지만. 그리고 세월이 흐르자 리사코는 당연히 쑥쑥 성장했어. 아모는 딸을 사랑했지. 하지만 리사코가 이제 곧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그는 분명 발작적인 격정에 사로잡혀 자기 손으로 그 애를 죽였을 거야......."

"사랑했지. 단 어디까지나 ‘소녀‘ 리사코를. 그래서 그는 리사코를 죽였어. ‘소녀‘에서 더러운 ‘여자‘로 성장해가는 리사코를 용서할수 없었던 거야. 열두 살쯤이라 가슴이 커지고 초경을 하는 등 어떤 의미에서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변해가는 시기였지."

아모 박사는 리사코를 죽였어.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기르던 검은 고양이도 같이 죽였을 거야. 둘의 사체를 저택지하의 비밀 통로로 옮기고 통로 입구를 벽으로 막은 후, 표면상 딸이 행방불명된 것으로 꾸며 자신의 범죄를 잘 은폐하는 데는 성공했지.

"아주 미남이라 관심을 보이는 여자도 적지 않았다고 구마시로 선생님도 그러셨지. 하지만 그는 내내 독신으로 지냈어. 다치바나교수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셨지. 아모 선생님은 여자에 그다지 흥미가 없으셨을 거예요, 라고."

"이건 유명한 이야기인데, 캐럴은 성적으로 약간 이상한 취향을 지니고 있었어. 성숙한 보통 여성에게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 그의 흥미는 오로지 열세 살 이하의 소녀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는 거야."
"소녀...... 아하. 롤리타 콤플렉스였나요?"

뭐, 어쨌거나 대결이 가상 중요한 단계다.
한숨을 크게 내쉰 시시야가 스스로를 달래듯이 말했다.
"아무튼 흑묘관이다. 실제로 저택에 가보면 아유타 씨의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르지. 내 위화감 역시 해소될지도 모르고."

"히카와의 어머니는 청각 장애 때문에 전화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거로군요."

동쪽이 왼쪽이라면 흑묘관은 현관을 북쪽으로 두고 서 있다는 말이다. 가와미나미는 수기 속의 묘사를 떠올리려 기를 썼지만, 그런세세한 점까지는 역시 기억나지 않았다. 하다못해 그 노트에 건물 평면도라도 딸려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짜증과 함께 솟구쳤다.

"전부 반대야......."
계단은 왼편 안쪽에 있다. 장서실은 왼쪽 옆. 복도는 오른쪽으로 뻗어 있다. 위치관계가 전부 들고 있는 평면도와 좌우 반대인 것이다. 그렇다, 마치 거울에 비친 것처럼.

"여기 와서 이 저택이 수기의 무대인 흑묘관과는 다른 집이란 걸 알았습니다. 20년 전 아모 박사는 다른 곳에 별장을 한 채 더 세운 걸로 짐작됩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의 수기를 읽고 처음으로 설정한 문제로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즉, 흑묘관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문제죠."

"정말 애먹었습니다, 아유타 씨. 이런저런 위화감은 들었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흑묘관이 이곳 아칸의 숲속에 있다고 굳게 믿었거든요. 검은 고양이와 체스가 나오기에 거울 나라의 앨리스』와 저택을 잘 버무렸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와보니이렇습니다. 건물의 색이 달라요. 좌우는 반대고요. 게다가 모티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정말 속 썩였습니다. 20년 전 아모 박사의 의뢰로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별장은 사실 두 채였다. 그런 건 생각지도 못했어요."

"아까 밖에서 말했다시피 이건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 어젯밤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읽었다고 그랬지? 그럼 그 책의 내용은 기억나겠네. 앨리스는 흰 토끼를 쫓아 구멍에 뛰어들었어. 도착한 곳은 ‘하트의 여왕‘이 맹위를 떨치는 트럼프 왕국이지."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앨리스가 새끼 검은 고양이를 안고 거울을 들여다보는 장면으로 시작돼. 그리고 거기서 앨리스가 모험을펼치는 곳은 체스의 왕국이지."

"당신은 흑묘관을 거울 반대편에 세웠어요. 그 거울은 적도 위에 서 있었습니다. 적도를 사이에 두고 아칸과 지구 반대편에 위치하는 곳, 즉 당신이 관리인으로 일하던 흑묘관은 오스트레일리아 타스마니아 섬에 있습니다."

"시시야 씨, 당신은......."
노인은 가벼운 놀라움의 빛을 띤 얼굴로 상대의 눈을 쳐다보았다.
"저보고 어떻게 하라고?"
"별달리 드릴 말씀 없는데요."
대답하고 나서 시시야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바인더를 가방에 넣고 남쪽 창문을 향해 후리후리한 몸을 쭉 펴며 기지개를 켰다.
"이 집에는 범죄의 흔적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인간의 시체는커녕 고양이 사체 한 구도 없었습니다."

"혹시 이 수기에는 다음 편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미래의 나를 위해 쓰는 탐정소설‘의 ‘해결편‘에 해당하는 두 번째 노트가."
자조를 얼굴에 머금은 채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짧지만 확실히 있었습니다. 불이 났을 때 타버렸겠죠. 아무래도 불이 났을 때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을 모양입니다."
"거기에는 마지막 밀실사건의 진상이 적혀 있었겠군요. 범인의 이름, 그리고 동기......."
"벌써 다 알고 계실 텐데요? 이제 와서 제가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리사코를 잃고 대학에서 쫓겨나 삿포로에도 살 수 없게 된 당신이 도망친 곳은 아칸이 아니라 타스마니아였습니다. 수기에 당신자신이 ‘세상의 끝 같은 이런 곳‘이라고 평한 장소의 숲속에 세운, 일찍이 자신의 소유물이었던 별장. 당신은 이 지방의 대리인‘으로서 예전부터 알고 지낸 호버트 시의 일본인 아다치 히데아키 씨의 배려로 아유타 도마로 이름을 바꾸고 저택 관리인이라는 명목으로 저택에 살게 된다."

"하필이면 당신 같은 사람에게 ‘사건을 의뢰하다니........"
"후회하십니까?"
시시야의 질문에 아유타 도마, 즉 아모 다츠야는 "아니요" 하고 고개를 살짝 저었다.
"저는 평생 운명론자를 바보 취급해왔지만 슬슬 생각을 바꿀 때가 온 것 같군요."

"갑시다. 아모, 아니 아유타 씨. 흑묘관이라는 저택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수기는 전부 당신이 ‘악몽‘을 동경해서 쓴소설이었어요. 저와 코난 군에게는 그게 ‘현실‘이라고 해두죠."

그 ‘유서‘에서 아사오는 자신이 쓰바키모토 레나를 죽였다고 고백했다. 자신이 죽였음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썼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녀는, 쓰바키모토 레나는 아사오에게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레나는 아사오에게 살해당하지 않았다. 아니, 살해가 다 뭔가. 레나는 아무에게도 살해당하지 않았다.

장서실에서 레나의 시체를 관찰했을 때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레나는 교살당한 것이 아니라 심장마비 따위의 다른 원인으로 죽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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