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정원 - 전2권 세트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오래된 정원

— 왜 가니, 니가. 잘 가라, 이 바보야.

<책 소개>

* 지은이 : 황석영
* 출판사 : 창비
* 출간일 : 2000년 4월 24일
* 분량 : 상권 332쪽, 하권 320쪽, 총 652쪽(출판사 초판 안내 기준)
* 장르 : 한국 장편소설
* 작품 특징 :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사회주의권의 붕괴 등 격변의 시대를 배경으로, 오랜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남자가 과거의 사랑과 잃어버린 시간을 되짚는 이야기

<영화 소개>

* 제목 : 오래된 정원(The Old Garden)
* 감독 : 임상수
* 각본 : 임상수
* 원작 : 황석영의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 제작사 : MBC 프로덕션
* 제작연도 : 2006년
* 개봉일 : 2007년 1월 4일
* 상영시간 : 112분
* 장르 : 드라마
* 주요 출연 : 지진희(오현우), 염정아(한윤희), 이은성(오은결), 윤여정(오현우의 어머니)
* 작품 특징 :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도피 중인 오현우와 그를 숨겨준 한윤희의 6개월간의 사랑, 17년의 이별과 재회를 이루지 못한 상실을 그린 영화. 시대적 격변과 개인의 사랑을 교차하여 보여주는 황석영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

1.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엇갈린 두 사람의 궤적

오현우는 군부독재에 저항하다 수배되어 도피생활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미술교사 한윤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지낸 시간은 불과 3개월. 현우는 다시 떠나고, 결국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

18년 만에 세상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낯선 세상과 이미 세상을 떠난 연인 한윤희의 흔적뿐이다.

그가 믿었던 이념도, 함께 싸우던 사람들도, 세상도 달라져 있다.

황석영은 두 사람의 사랑을 통해 1980년대 한국사회의 격변과 사회주의권의 붕괴까지 이야기한다. 개인의 삶과 시대의 역사가 함께 흘러가는 소설이다.

현우는 18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청춘을 잃었고, 사랑하는 여자를 잃었으며, 세상이 변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윤희의 18년은 어떠했을까.

현우가 감옥에 있는 동안 윤희의 시간도 흘렀다. 독일로 건너가 미술을 공부하기도 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현우의 딸 은결을 키우며 자신의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현우가 돌아오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현우에게 18년은 빼앗긴 시간이지만 윤희에게는 하루하루 힘겹게 견뎌내야 했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민주화운동을 하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의 희생을 기억한다. 당연히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맞서 싸운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잊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그들이 떠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간 사람들의 세월도 그에 못지않게 무겁다.

윤희를 단순히 남자를 기다리며 살아간 여자로 볼 생각은 없다. 그녀에게도 자신의 신념과 삶이 있었고, 예술가로서의 꿈이 있었다. 현우와 헤어진 뒤에도 세상을 살아가며 사랑하고, 상실을 겪고, 아이를 키웠다.

그녀는 현우의 삶에 딸린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이 함께하지 못한 세월을 현우의 희생만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

그가 감옥에서 잃어버린 18년과 그녀가 홀로 살아낸 18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두 사람의 삶을 바꿔놓았다.

황석영은 현우가 윤희의 기록을 읽으며 자신이 알지 못했던 세월을 알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현우가 몰랐던 것은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만이 아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것이 18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다.

2. 임상수의 오래된 정원, 염정아가 연기한 한윤희; 6개월의 사랑, 17년의 이별

한윤희, 염정아. 이쁘다.

숨겨줘, 재워줘, 먹여줘, 몸줘.

2024년 10월 30일, 영화를 보고 남긴 독서노트다.

도피 중이던 오현우를 숨겨주고, 재워주고, 먹여주고, 사랑까지 내어준 여자다.

그런데 이놈은 떠난단다.

왜 가니, 니가.

그래, 네가 왜 가야 하느냐는 말이다.

염정아가 연기한 한윤희는 당차고 씩씩하다. 현우가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소개하자 씻기나 하라며 농담으로 받아넘긴다.

현우는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이야기하지만, 윤희에게는 우선 눈앞에 있는 현우라는 사람이 중요했던 모양이다.

윤희는 자신이 운동권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도피 중인 현우를 숨겨주고, 함께 생활하며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이 갈뫼에서 지낸 시간은 영화에서 6개월로 그려진다.

그 짧은 시간에 두 사람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하며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독재정권에 쫓기는 남자와 그를 숨겨준 여자라는 사정만 빼면 여느 연인과 다를 것도 없다.

그런데 서울에서 동료들이 모두 붙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현우는 혼자 숨어 있을 수 없다며 갈뫼를 떠나기로 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니 화가 난다.

그렇게 아름답고 자신을 사랑해 주는 여자를 두고 왜 떠난다는 말인가.

솔직히 염정아가 너무 아름다워서 현우의 선택이 더욱 못마땅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미모 때문에 떠나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윤희가 현우에게 내어준 것은 단순히 잠자리나 은신처가 아니다. 자신의 생활 속으로 그를 받아들였고, 함께하는 삶을 시작했다.

현우에게 갈뫼는 잠시 몸을 피하는 장소였을지 모르지만, 윤희에게는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그 안에 현우가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현우는 다시 떠나겠다고 한다.

현우가 떠나는 이유는 이해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 마음은 그와 다르다.

동료들이 붙잡혔다는 사정도 알겠고, 그가 지키려는 신념이 무엇인지도 알겠다.

그래도 윤희를 두고 떠나는 현우가 야속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지고, 영화 속 현우는 17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다.

윤희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이제 현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윤희가 남긴 기록을 읽고, 자신이 없었던 세월을 더듬는 것뿐이다.

오현우, 지진희. 바보, 지진아.

3. 그때는 자기만 행복하면 나쁜 놈이 되는 시대였거든

독서노트에는 현우의 말도 적어놓았다.

˝그때는 자기만 행복하면 왠지 나쁜 놈이 되는 시대였거든.˝

그 시절은 그랬다.

독재정권이 국민을 억압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던 사람들이 잡혀가고, 고문당하고, 죽어가던 시대였다.

그런 세상에서 자기 혼자 편안하게 살겠다는 것이 부끄러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거리로 나섰고, 누군가는 감옥에 갔으며,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지키려 했던 가치와 그 과정에서 감당한 희생을 가볍게 평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자기만 행복하면 나쁜 놈이 되는 시대였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해지는 것까지 죄스러운 일이었을까.

현우에게는 동료들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함께 싸우던 사람들이 잡혀갔는데 자기 혼자 안전한 곳에 숨어 있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윤희와 함께하는 삶이 동료들을 배신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우가 갈뫼에 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동료들을 외면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 언젠가 다시 붙잡혔을 수도 있고, 윤희와 함께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떠나는 것만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현우가 지키려던 신념은 소중하다. 윤희와 함께할 수 있었던 삶도 소중하다.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반드시 우선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옳은 일을 했다는 이유로 그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고통까지 정당화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목적이 정당하다는 사실과 그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겪은 상실은 구분해야 한다.

현우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가 감옥에 갇힌 것은 독재정권의 억압 때문이지, 사랑하는 여자를 떠났기 때문에 받아야 할 대가가 아니었다.

현우를 비난하다가도 결국 그 시대를 돌아보게 되는 이유다.

두 사람이 평범하게 사랑하며 살 수 없도록 만들었던 시대가 있었다.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 민주화운동의 목적 중 하나 아니었을까.

그런데 정작 그 세상을 만들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죄스럽게 여겨야 했다.

참 고약한 시대였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난 현우의 선택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해하는 것과 동의하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4. 글로 읽는 시대와 영상으로 보는 사랑; 원망스러운 시대, 야속한 오현우

황석영의 소설과 임상수의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다루지만, 읽고 보는 과정에서 내가 바라보는 곳은 달라진다.

소설은 현우와 윤희가 헤어진 뒤에도 각자의 삶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폭넓게 보여준다. 민주화운동과 사회주의권의 붕괴,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생각과 삶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 함께 담겨 있다.

현우는 감옥에 있었지만 윤희는 그 밖에서 세상의 변화를 직접 겪었다. 그녀의 기록에는 현우가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역사가 들어 있다.

따라서 소설에서는 현우가 어떤 시대를 살았고, 무엇을 지키려 했으며, 그 선택 이후 두 사람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반면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갈뫼에서 함께했던 생활이 눈앞에 펼쳐진다.

윤희의 표정과 목소리, 두 사람이 나누는 농담과 사랑, 그리고 갈뫼를 떠나는 현우의 모습까지 직접 보게 된다.

소설에서 3개월이었던 두 사람의 동거 기간도 영화에서는 6개월로 늘어났다.

단순히 함께 지낸 기간이 길어졌다는 사실보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 영화는 두 사람이 함께하는 일상을 관객에게 직접 보여주고, 그 모습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받아들이게 한다.

물론 이것이 감독이 의도한 효과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두 작품을 받아들인 방식은 그렇다.

소설에서는 윤희가 살아온 삶을 읽으며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갔다면, 영화에서는 윤희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를 먼저 좋아하게 된 셈이다.

글로 읽을 때와 영상으로 볼 때의 감정이 다르다.

소설에서는 두 사람을 갈라놓은 시대가 원망스럽고, 영화에서는 윤희를 두고 떠나는 현우가 야속하다.

5. 다시 찾은 오래된 정원, 그곳에 없는 사람; 돌아갈 수 없는 과거, 남아 있는 삶

오현우가 다시 갈뫼를 찾았을 때 그곳에는 윤희가 남긴 기록과 그림이 있다.

그러나 정작 윤희는 없다.

두 사람이 함께했던 장소는 다시 찾을 수 있지만, 그때의 시간까지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현우에게 갈뫼는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장소다.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했던 시간은 감옥에서도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희에게 갈뫼는 현우와 함께했던 장소인 동시에 그가 떠난 뒤에도 자신의 삶이 계속된 현실의 한 부분이었다.

같은 장소를 기억하더라도 두 사람이 기억하는 시간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목이 오래된 정원인가 보다.

현우가 돌아온 것은 정원이지만, 정작 그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그곳에 없다.

대신 딸 은결이 있다.

현우가 기억하는 윤희는 과거의 연인이지만, 은결에게 윤희는 자신을 낳고 키운 어머니다. 같은 사람을 기억하지만 서로 알고 있는 삶이 다르다.

현우에게는 딸에게 설명할 이야기가 많겠지만, 은결에게도 아버지가 없는 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려줄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지나간 세월은 되돌릴 수 없다. 이제 현우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과거를 설명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알지 못했던 딸의 삶을 알아가는 일일 것이다.

오래된 정원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는 없지만, 앞으로 살아갈 시간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니까.

6. 잘 가라. 이 바보야.

황석영의 소설과 임상수의 영화를 함께 읽고 보면서 결국 현우의 선택을 다시 생각한다.

나는 현우의 신념을 존중한다. 그가 무엇을 위해 싸웠고,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도 안다. 그러나 그의 선택까지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사랑도 때가 있는 법이다.

떠나야 할 때 떠나는 것이 용기라면, 남아야 할 때 남는 것도 용기일 것이다. 어느 쪽이 옳았는지는 당사자조차 평생 알지 못할 수 있다.

현우가 윤희 곁에 남았다면 두 사람은 행복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아깝다고 생각한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이다.

그러니 그에게 한마디는 해야겠다.

한윤희, 염정아. 이쁘다.

오현우, 지진희. 바보, 지진아.

왜 가니, 니가.

잘 가라. 이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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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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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든 산티아고, 길을 걷는 산티아고

—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고, 한 이름에 담긴 역사의 아이러니

책 소개

* 지은이 :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 브라질의 소설가
* 옮긴이 : 최정수
* 출판사 : 문학동네
* 출간일 : 2001년 12월 1일(한국어판)
* 분량 : 278쪽
* 장르 : 브라질 현대소설, 철학적 우화
* 작품 특징 : 스페인의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가 꿈에서 본 보물을 찾아 이집트 피라미드로 향하는 여정을 통해 꿈과 운명, 사랑과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소설
* 특이사항 : 1988년 포르투갈어로 원작 출간. 원제는 『O Alquimista』.

파울로 코엘료는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연금술사』 주인공의 이름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가져왔다고 밝혔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따온 이름이 아니냐는 질문에도 헤밍웨이 때문이라고 분명히 답했다.

그런데 이 이름에는 또 다른 역사가 있다.

산티아고(Santiago).

스페인의 수호성인 성 야고보의 이름이자, 이베리아반도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이 충돌했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

나는 이 이름에 담긴 역사를 생각하며 『연금술사』를 다시 읽었다. 작가가 이름을 가져온 계기는 분명하지만, 소설 속 산티아고가 걸어가는 길에는 그보다 오래된 역사의 아이러니가 숨어 있었다.

1. 무어인을 죽이는 성인

스페인 역사에서 산티아고는 특별한 이름이다.

예수의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인 성 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숭배되었다. 그리고 이베리아반도에서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 세력과 싸우던 레콩키스타 시대에는 전쟁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성 야고보의 모습을 일컫는 별칭이 있다.

산티아고 마타모로스(Santiago Matamoros).

말 그대로 ‘무어인을 죽이는 성 야고보’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844년 클라비호 전투에서 기독교 군대가 이슬람 군대에 밀리고 있을 때, 백마를 탄 성 야고보가 나타나 기독교군의 승리를 이끌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는 클라비호 전투 자체가 실제로 벌어지지 않은 것으로 본다. 백마를 탄 성 야고보의 출현 역시 후대에 만들어진 전설이다. 당시 이베리아반도에서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의 관계도 전쟁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서로 동맹을 맺기도 했고, 교역도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이 전설은 오랫동안 스페인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백마를 타고 칼을 휘두르며 무어인들을 짓밟는 성 야고보의 모습은 그림과 조각으로 남았고, 그의 이름은 전쟁터에서 외치는 구호가 되었다.

레콩키스타 역시 기독교 세력의 입장에서는 잃어버린 땅을 되찾는 국토회복운동이었지만, 그 땅에서 살아가던 이슬람 세력에게는 자신들의 지배와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기독교 세력에게 성 야고보는 자신들을 지켜주는 성인이었다. 그러나 그 칼끝의 반대편에 서 있던 이슬람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

누군가에게는 수호성인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들을 죽이는 자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한쪽의 영웅이 다른 쪽에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같은 인물을 두고도 역사의 기억은 이처럼 다르다.

2. 칼끝의 반대편에 선 산티아고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 양을 치던 소년이다. 그는 꿈에서 본 보물을 찾아 지브롤터해협을 건너 북아프리카의 탕헤르로 향한다.

과거에는 무어인을 몰아내는 전쟁의 상징이었던 이름을 가진 소년이, 이제는 그들이 살아가는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코엘료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소설 속에 직접 등장시킨다.

탕헤르의 술집에 들어간 산티아고는 사람들이 커다란 담뱃대를 돌려 피우는 모습을 본다. 낯선 풍습을 ‘이교도들의 풍습’이라고 생각하던 소년은 어린 시절 교회에서 보았던 산티아고 마타모로스의 형상을 떠올린다.

백마를 탄 성인이 칼을 빼 들고 있고, 그 발아래에는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다. 소년은 속이 불편하고 몹시 외롭다고 느낀다.

이 장면은 뒤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장면과 연결된다.

사막을 건너 알파이윰 오아시스에 도착한 산티아고는 매의 움직임을 보고 오아시스에 닥칠 공격을 예감한다.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린 뒤, 어느 날 밤 백마를 탄 낯선 기마인과 마주친다.

검은 옷을 입은 기마인은 커다란 칼을 빼 들고 소년을 위협한다.

그 순간 산티아고는 다시 산티아고 마타모로스를 떠올린다.

백마를 타고 칼을 든 모습은 어린 시절 교회에서 보았던 성인의 형상과 닮았다. 다만 이번에는 입장이 뒤바뀌었다.

과거에는 무어인들이 그 칼 아래 있었지만, 지금은 스페인에서 온 산티아고 자신이 칼끝 앞에 서 있다.

칼을 든 자와 칼을 맞는 자.

그 위치가 바뀌자 같은 광경도 전혀 다르게 보인다.

나는 이 장면이 인상 깊었다. 역사 속에서 칼을 휘두르던 성인의 이름을 가진 소년이, 이제는 그 칼을 맞을지도 모르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마인은 소년을 죽이지 않는다. 그는 바로 연금술사였고, 소년의 용기를 시험한 뒤 사막을 건너는 길을 이끄는 스승이 된다.

이것이 단순히 이름이 같아서 생긴 우연일까.

코엘료가 처음에 헤밍웨이에게서 이름을 가져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마타모로스의 형상을 두 차례나 등장시키고, 칼을 든 자와 칼을 맞는 자의 위치까지 뒤바꿔 놓은 것을 보면 그 역사적 의미를 모르고 쓴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작가가 역사적 화해를 의도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이 장면에서 오래된 적대의 역사를 다른 자리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문학적 반전을 읽었다.

3. 같은 바람, 다른 이야기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에는 레반터(Levanter)라는 바람이 등장한다.

지중해를 거쳐 안달루시아로 불어오는 이 바람은 과거 무어인들이 이베리아반도로 건너왔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산티아고에게는 사막의 냄새와 낯선 세계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바람이기도 하다.

소년은 그 바람을 맞으며 자신도 자유롭게 세상을 여행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사막을 지나 이집트의 피라미드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정작 보물은 그가 처음 꿈을 꾸었던 스페인의 낡은 교회에 묻혀 있었다.

소년이 찾아낸 금화와 보석, 황금 가면 등은 오래전에 잊힌 정복의 전리품이었다.

보물을 찾아 떠난 여행의 끝에서 다시 과거 정복의 흔적을 만난 셈이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고향으로 돌아온 산티아고에게 레반터가 다시 불어온다. 그런데 이번에 바람이 전하는 것은 정복의 소문도, 무어인의 침공에 대한 위협도 아니다.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파티마의 향기와 입맞춤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산티아고 마타모로스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과거 무어인들이 바다를 건너오던 일은 전쟁과 정복의 기억이었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에 같은 바다를 건너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소식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바람이 전하는 이야기는 달라졌다.

어쩌면 코엘료가 말하는 연금술은 이런 것이 아닐까. 납을 금으로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오랫동안 적대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을 이해와 사랑의 대상으로 바꾸는 일 말이다.

물론 이것은 작가가 직접 밝힌 의도가 아니라, 산티아고라는 이름의 역사를 통해 내가 읽어낸 소설의 또 다른 의미다.

그 역사의 한가운데에는 칼을 든 산티아고가 있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년이 그 땅으로 건너가 사람을 만나고, 지혜를 배우고, 사랑을 얻는다.

나는 『연금술사』를 단순히 꿈을 이루기 위한 자기계발의 이야기로만 읽고 싶지 않다.

칼을 든 산티아고와 길을 걷는 산티아고.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존재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전쟁의 기억을 품은 바람이 사랑하는 사람의 입맞춤을 전한다는 역설.

그것이 내가 이 소설에서 찾아낸 또 하나의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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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미국 서부 5대 캐니언 - 셀프투어 그랜드캐니언 여행
이루다 / 인사이트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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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준비하려고 샀더니, 여행을 준비하란다

— 이루다, 『미국 서부 5대 캐니언』을 읽고

1. 여행 정보를 얻으려고 구입한 책

지난 9월 미국 서부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책을 구입했다. 그랜드캐니언을 비롯한 미국 서부의 장대한 자연을 직접 눈으로 보기 전에, 어디를 어떻게 돌아봐야 할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고 싶었다. 인터넷에도 여행 정보는 넘쳐나지만, 책이라면 그 많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으리라 기대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전히 헛짚었다.

책 어디에도 여행 안내서라고 명시돼 있지는 않다. 제목과 ‘셀프투어 그랜드캐니언 여행‘이라는 부제, 그리고 여행 준비와 각종 팁을 다룬 목차를 보고 내가 실용적인 여행서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 기대가 터무니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실망을 넘어 화가 났다.

2. 다섯 캐니언, 남는 것은 감탄사뿐

전체 166쪽 가운데 다섯 캐니언을 소개하는 내용은 약 50쪽이다. 그마저도 사진과 함께 어디에 갔고, 무엇을 보았고,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이야기하는 수준이다.

여행의 감동을 전하는 글도 좋다. 여행기가 반드시 관광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곳에서 무엇을 경험했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무엇이 그렇게 감동적이었는지를 자신만의 언어로 들려줘야 하지 않을까.

브라이스캐니언을 소개하는 부분을 보자. 48쪽부터 55쪽까지 여덟 쪽에 걸쳐 사진과 감상이 이어진다. 셔틀버스를 탔다고 하지만 어디서 타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브라이스 포인트, 인스퍼레이션 포인트, 선셋 포인트를 방문했다고 하면서도 각 전망대의 특징이나 이동 동선은 알려주지 않는다. 하이킹 코스가 다양하다고 하지만 어느 코스를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

여행자가 알고 싶은 것은 아름답다는 감탄사만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어디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3. 알맹이 없는 여행 정보와 추천 없는 추천 코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여행 준비와 각종 팁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여행경비를 절약하는 방법이라며 일찍 예약하라, 성수기를 피해라, 현지 식당을 이용하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한다. 이 정도 상식이라면 굳이 책을 사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식당과 카페의 위치, 메뉴, 운영 시간을 알려준다면서 정작 식당 이름 하나 제시하지 않는다. 공원 입구나 방문자센터 근처에 식당이 있고, 운영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확인하라는 식이다.

압권은 추천 하이킹 코스다.

초보자는 2∼5km, 중급자는 5∼15km, 상급자는 15km 이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실제 하이킹 코스의 이름은 하나도 없다. 어느 국립공원의 어디서 출발하는지, 얼마나 걸리는지, 무엇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추천 하이킹 코스를 소개한다면서 정작 추천하는 코스가 없다는 사실이 황당할 따름이다.

가이드 투어 예약 방법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공식 홈페이지를 확인하고, 궁금하면 업체에 문의한 다음 예약하라고 한다. 이런 내용을 네 쪽에 걸쳐 설명한다.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책의 곳곳에는 편안한 신발을 신고, 충분한 물을 준비하고, 날씨를 확인하고, 안전수칙을 지키라는 조언도 등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 서부 캐니언에 관한 특별한 정보라기보다 어느 여행지에나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주의사항이다.

틀린 말이 없다고 해서 유용한 정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4. 내가 직접 걸었던 그랜드캐니언 1.3km

나는 이번 여행에서 그랜드캐니언의 매더 포인트에서 야바파이 포인트까지 협곡 가장자리를 따라 1.3km를 걸었다. 실제 이동 시간과 관람 시간을 기록했고, 걸으면서 마주한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 짧은 경험만 정리해도 두 전망대의 위치와 이동 경로, 소요 시간, 중간에 만날 수 있는 풍경을 다른 여행자에게 알려줄 수 있다.

내가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이 바로 그런 정보였다. 어디가 좋다는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곳을 찾아가는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경험과 지식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그런 구체성이 보이지 않는다. ‘셀프투어‘라는 부제가 무색할 정도다.

여행 정보가 부족하다면 여행기로서의 매력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마저도 아쉽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자연과 교감하고, 마음의 평화와 치유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정작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킨 특별한 경험이나 저자만의 시선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5. 별 하나조차 아까운 책

인터넷서점에는 이 책을 극찬하는 독자평도 몇 건 올라와 있다. 나와는 전혀 다른 평가지만, 누가 어떤 감상을 남기든 그것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실제로 책을 구입하고 읽은 내 판단은 분명하다.

나는 웬만하면 책에 별 네 개 아래의 평점을 주지 않는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책이라도 한 권을 쓰기 위해 들였을 저자의 시간과 노고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만큼은 별 하나조차 아깝다.

책을 쓴 사람의 노고를 존중하는 것과 그 결과물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적어도 내가 읽은 이 책은 그동안 지켜온 관대한 평가 기준마저 무너뜨렸다.

여행기는 저자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 여행 정보를 다루는 책이라면 독자가 어디를 어떻게 여행할 수 있는지도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해낸다면 책으로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여행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하고, 여행기로서도 상투적인 감상과 표현을 반복하는 데 그친다.

아름다운 자연을 다룬 책이라고 해서 그 책까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장대한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고 해서 그 자체로 훌륭한 여행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책을 덮고 나서 남은 것은 여행 정보도, 여행에 대한 감동도 아니었다. 왜 이 책을 구입했을까 하는 후회와 허탈함뿐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려고 책을 샀는데, 책은 그저 여행을 잘 준비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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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병기™ 2026-10-28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평가 감사해요
 
삼국지 세트 - 전10권 ㅣ 삼국지 (민음사)
나관중 지음, 이문열 엮음 / 민음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기타 군웅 및 후한 말 인물】

본초(本初) 원소(袁紹)
공로(公路) 원술(袁術)
봉선(奉先) 여포(呂布)
중영(仲穎) 동탁(董卓)
공대(公臺) 진궁(陳宮)

백규(伯珪) 공손찬(公孫瓚)
경승(景升) 유표(劉表)
계옥(季玉) 유장(劉璋)
수성(壽成) 마등(馬騰)
문약(文約) 한수(韓遂)

공조(恭祖) 도겸(陶謙)
문거(文舉) 공융(孔融)
원호(元皓) 전풍(田豐)
공칙(公則) 곽도(郭圖)
정남(正南) 심배(審配)
원도(元圖) 봉기(逢紀)

덕조(德操) 사마휘(司馬徽)
공기(公祺) 장로(張魯)
백안(伯安) 유우(劉虞)
군랑(君郎) 유언(劉焉)
맹탁(孟卓) 장막(張邈)
중견(仲簡) 순우경(淳于瓊)

원화(元化) 화타(華佗)
원방(元放) 좌자(左慈)
정평(正平) 예형(禰衡)
건양(建陽) 정원(丁原)
치연(稚然) 이각(李傕)
정례(正禮) 유요(劉繇)

현사(顯思) 원담(袁譚)
현보(顯甫) 원상(袁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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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세트 - 전10권 ㅣ 삼국지 (민음사)
나관중 지음, 이문열 엮음 / 민음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나라(吳)】

문대(文臺) 손견(孫堅)
백부(伯符) 손책(孫策)
중모(仲謀) 손권(孫權)
자명(子明) 손량(孫亮)
자열(子烈) 손휴(孫休)
원종(元宗) 손호(孫皓)

공근(公瑾) 주유(周瑜)
자경(子敬) 노숙(魯肅)
자명(子明) 여몽(呂蒙)
백언(伯言) 육손(陸遜)
유절(幼節) 육항(陸抗)

흥패(興霸) 감녕(甘寧)
자의(子義) 태사자(太史慈)
공복(公覆) 황개(黃蓋)
덕모(德謀) 정보(程普)
의공(義公) 한당(韓當)
유평(幼平) 주태(周泰)
공혁(公奕) 장흠(蔣欽)
공적(公績) 능통(凌統)
문향(文嚮) 서성(徐盛)
승연(承淵) 정봉(丁奉)

자포(子布) 장소(張昭)
자강(子綱) 장굉(張紘)
자유(子瑜) 제갈근(諸葛瑾)
원손(元遜) 제갈각(諸葛恪)
원탄(元歎) 고옹(顧雍)
자형(子衡) 여범(呂範)
덕윤(德潤) 감택(闞澤)

문규(文珪) 반장(潘璋)
의봉(義封) 주연(朱然)
휴목(休穆) 주환(朱桓)
자황(子璜) 전종(全琮)
자산(子山) 보즐(步騭)
중상(仲翔) 우번(虞翻)
공묘(公苗) 하제(賀齊)
공서(公緒) 낙통(駱統)
원대(元代) 동습(董襲)
정공(定公) 여대(呂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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