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과 부동명왕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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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 신간
청과부동명왕, 제목이 참으로 어렵고 어렵다. 책 내용을 짐작조차 할수 없는 저 제목 어려워.

靑瓜 不動明王
https://naver.me/GiUSA01a (출처, 나무위키)
청과: 푸른오이,참외
부동명왕: 일본 불교에서 신앙의 대상

뭔가 읽어봐야 알수 있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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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호메이니 그리고 이란 혁명 - P80

국왕이 이란을 뜨고 몇 주 뒤 1979년 2월 호메이니는 백만명이 넘는 인파의 환영을 받으며 드디어 테헤란에 입성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왕관이 <터번>으로만 바뀌었다는 사실을. - P82

하지만 호메이니가 "이슬람은 정치적이다. 그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천명했던 것은 무슬림형제단 (Muslim Brotherhood,  1928년 이집트에서 창설된  단체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이슬람 운동 단체)의 쿠틉 추종자들이 10년 이상을 전파해온 바로 그 말이었다. - P83

테헤란에 입성한 그날, 호메이니는 국민들 앞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지금부터 내가 정부의 이름을 짓겠다."라고. "누가 당신에게 투표했는데요?"라고 채 묻기도 전에 공포가 시작되었다. - P83

악명 높은 파트와(fatwa, 이슬람법에 따른 결정이나  명령)는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가 쓴『악마의 시』 라는 작품을 문제 삼기도 했다. - P85

종교를 빙자한 억압과 그에 분노한 시민들 - P86

최고지도자 호메이니는 이듬해인 1989년에 사망했고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 P87

수니파 국가들에 둘러싸인 시아파 국가 - P92

"이스라엘은 도려내야 할 암 덩어리다." 
이렇게까지 비난이 이어지는 것은 종교에 뿌리박은 병적인 증오심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 P95

미국과의 정략결혼은 계속 이어질까? - P96

1979년 11월 한 무리의 무장세력이 미대사관을 습격해서 50여 명의 미국인을 인질로붙잡았다. 이후 444일에 걸친 위기는 지미 카터대통령의 재선 가도를 막았고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일조했다. - P97

자국의 혁명가들을 비웃는 국민들 - P100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이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고 대중은 이란의 대외정책을 소리 높여 비난했다. "가자도, 레바논도 아닌, 이란에서의 내 삶을." 그리고
"시리아로부터 손을 떼라."라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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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10월 12일]라파르트 Rr
최근엔 사생화를 아주 많이 그렸다네. 기꺼이 모델이 되어주겠다는 사람들을 몇명 구할 수 있었거든. 덕분에 삽질이나 바느질 등 다양한 포즈를 취한 남녀들의모습을 습작했지. 요즈음은 주로 목탄과 콩테 연필로 작업하는데 세피아 물감과수채화 물감도 시도하고 있어. 내가그린 데생에서 자네가 어떤 발전을 간파하게될지는 모르지만 분명 변화를 확인할 수는 있을 거야. - P44

아, 저 들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돈을 더 많이 벌어서 모델료로 좀 더 많은비용을 들인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럴 거라고 장담할수 있어! - P44

사실 난 최근에 데생을 많이 했단다. 특히 인물 습작을 많이 했지. 이것들을 보면 내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알게 될 거다. - P45

요즈음엔 아이들도 그렸는데 아주 즐거웠단다. - P45

1881년 겨울, 반 고흐는 그 해 봄부터 함께 살던 부모와 불화를 겪는다. 남편을 잃은지 얼마 안 되는 사촌에게일방적인 관심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1882년 1월에 헤이그로 거처를 옮긴다. 그리고 이곳에서 아틀리에를 빌려 데생과 스케치 연구에 몰두하면서 미술계에서 알고 지내던 여러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 P47

행복한 가정에 대한 고흐의 꿈은 한낱 환영에 불과했다. - P47

정말이지 난 풍경화 화가는 아니야. 풍경화를 그리고 보면 그 안엔 늘 비유적인 무언가가 존재하니 말이다. - P52

[1882년 3월 24일]
요즈음 난 무척 고된 작업을 했단다. 지금도 아침부터 밤까지 일에 매여 있어.
이처럼 작은 마을의 풍경을 거의 매일 그린단다. 이제야 요령을 터득해가고있지. - P55

[1882년 4월 초]
날씨가 얼마나 화창한지 몰라. 사방에서 봄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인물화는 내게 가장 중요한 작업인 만큼 멈출 수 없지만 간혹밖으로 나가고 싶어 견딜 수 없을 때도 있단다. 하지만 지금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만큼 이대로 팽개쳐둬서는 안 되겠지. - P58

테르스테이흐가 말하더군. "예전에 자네는 운이 나빴지. 그래서 실패한 거야.
그런데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어" 라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지금은 전과는 아주 다른 상황이니까. 그의 생각이 완전히 틀린 거지. - P60

나의 ‘처신‘ 에 관한 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었으면해. 내가 품위 있는 옷을 입는다면 모델로 쓰고 싶은 일꾼들이 겁을 먹거나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바라볼 테지. 아니면 내게 많은 돈을 요구하거나. - P60

그렇다면 나는 어느 면에서 거칠고 교양 없고 세련되지도 않은 그런 사람일까? - P61

그런데 말이지, 내 생각에 정말로 예의바른 태도는 전적으로 모든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거야. 마음씨 고운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필요성에서 비롯된 것이지. 그러니까 자신이 무언가 쓸모 있는 존재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거지. - P61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함께살아야 한다는 궁극적인 필요성을 깨닫기 때문이야. 그러기 위해 나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있단다.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려고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야. 오히려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또 누구나 알지는 못하나 주목할 필요가있는 문제들에 그들이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거란다. - P62

내가 그리는 사람들과 함께지낸다고 해서 스스로를 천박하게 만드는 걸까? 일꾼이나 가난한 사람의 집에 들어간다고 해서, 또 그들을 내 아틀리에에 들여놓는다 해서, 나 자신이 싸구려가 되는 걸까? - P62

이것들은 내 직업의 일부라 생각해. 그러니까 그림이나 데생에 대해 아무것도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비난이지. - P62

[1882년 5월 1일]
목수의 연필에 관한 한 내 생각은 이렇단다. 옛 대가들은 무엇으로 그림을 그렸지? 분명 파버 B, BB, BBB 따위가 아니라 거친 석묵으로 그렸을 거야. 미켈란젤로와 뒤러가 사용한 도구도 아마 목수의 연필과 아주 흡사하겠지. 그 시대에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한가지 사실만은 알고 있단다. 이런섬세한 파버 제품들도 목수의 연필만큼 강력한 효과를 낼 수는 없다는 것을. - P62

나는 정교하게 다듬은 비싼 파버보다 가공하지 않은 석묵이 더 좋아. - P62

그건 그렇고 성 제롬처럼 근사한 노인이 이곳에 한 명 있어. 키가 크고 마른,
강인한 주름투성이 갈색 몸의 남자야. 관절 하나하나가 놀랄 만큼 뚜렷하고표정이 풍부해서 이런 남자를 모델로 쓰지 못해 마음이 우울할 지경이란다. - P63

그래도 할 수 없지. 이대로 노력하면서 계속 싸워갈 수밖에. - P63

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인물화 풍경화, 감상적인작품이 아니라 진지한 슬픔을 담은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단다. - P64

이것이 내 야심이야. 어떤 상황에서도 분노보다는 사랑에 열정보다는 평화로움에 근거한 야심이지. 때로 성가신 일을 겪더라도 마음속에는 고요하고 순수한 조화와 음악이 자리하고 있단다. 더없이 누추한 헛간이나 지저분한 구석에서도 난 그림이나 데생의 소재를 찾을 수 있어. 뿐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충동의 부추김을 당한 듯 내 영혼은 이 방향을 지향한단다. - P64

내게 밝은 미래가 있을지 여부는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에 달렸다고 믿어. 기력이 다하는 날까지 다른 어떤 길도 아닌 이 길로 묵묵히 투쟁을 계속해나갈거야. 내 작은 창을 통해 자연의 면모들을 즐겁게 관찰하며 애정을 다해 성실히 그것들을 그럴 생각이지. 누군가로부터 방해를 받으면 그저 방어하는 걸로만족할 테다. 이 정도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니 그 무엇도 나를 이 길에서 돌려세울 수 없을 거야. 원근법의 독특한 효과는 복잡한 인간사보다 더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단다. - P65

자연과 예술을 향한 진지한 사랑 덕분에 열정과 지혜를 가지고 일한다면 사람들의 견해에 맞서 일종의 갑옷으로 무장하는 셈이지. 자연은 엄격하고 가혹하기조차 하지만 절대로 우리를 속이지 않으며 늘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준단다. - P67

이 모두가 내 기분을 더욱 북돋워주지. 싱싱한 녹색이나 부드러운 청색, 그리고 수없이 다양한 톤의 회색, 이것들에 내가 겁먹지 않는다는 걸 너도 알게 될거야. 붉은 회색, 노란 회색, 초록 회색, 푸른 회색 등 회색을 띠지 않는 색은거의 없단다. 모든 색을 섞으면 이런 회색이 되는 거야. - P67

지금 네게 보여주려는 데생들에 대해서는 한 가지 생각뿐이란다. 내가 같은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제대로 발전하고 있음을 네가 이 그림들을 보면서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야. 상업적 가치에 대해서는 한 가지 사실만 말할 수 있을뿐이지. 그것을 다른 그림들처럼 정해진 경로대로 팔 수 없다면 몹시 의아해할 거라고. 당장 팔릴지 더 기다려야 할지는 네게 맡기겠다. 성실하고 끈질긴작업만이 이 모두가 헛되지 않기 위한 확실한 방법이겠지. - P68

자연에 대한 느낌과 사랑은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에겐 조만간 반향을 불러일으키고야 말 거야. 자연에 완전히 몰입해서 자신의 모든 지성을 동원해 그 느낌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작품 속에 표현하는 것이 화가의 의무겠지. - P68

상업적인 판매를 목적으로 일하는 건 그리 올바른 방법이 아닐 뿐더러 예술을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롱하는 짓이 될 거야. - P68

그럼 잘 지내거라. 내게서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순과 온갖 악의를 들추어내며 의심하는 사람들을 향해 언젠가 웃어줄 날이 있을 거야(나라는 사람은 자연과 학문, 일의 친구며, 무엇보다 그저 사람들의 친구이니 말이다). - P68

우리가 스헤베닝언에서 함께 본 모래, 바다, 하늘을 살아 있는 동안 언젠가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단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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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는 어떻게 나라의 운명을, 세계의 분쟁을 우리의 선택을 좌우하는가 - P1

지리의힘 2
모든 나라의 이야기는 그 <위치>에서 시작된다.
21세기에도 계속되는 지정학적 갈등,
세상은 변했지만 지리는 변하지 않았다. - P1

이념은 스쳐 지나가도
지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 P1

"매는 매부리(사냥에 쓰는 매를 기르고 부리는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사물이 무너지고 중심이 지탱할 수 없다."
- W. B. 예이츠, 재림」 중에서 - P1

중동 지역에서는 광활한 요새인 이란과 그 숙적인 사우디아라비아가 페르시아만을 마주한 채맞서고 있다. 태평양 남쪽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우리 시대 최강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자리매김하려고 애쓰고 있다. 지중해에서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스와 터키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당장 내일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보인다. - P1

이제 우리는 양극 시대에서 벗어나 인류 역사 대부분에서 규범과도 같았던, 여러열강들이 경쟁하는 <다극화  시대>로 회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 P1

나는 프리슈티나에 있었다. 당시 클린턴 미 대통령은  내가 작성한 기사를 통해 나토군에 앞서 러시아군이 코소보로 밀고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나는 "러시아인들이 도심으로 밀고 들어옴으로써 세계 무대에 복귀했다."라고 썼다. - P7

그날 내가 깨달은 것은,
"이것은 얼핏 종교 의식처럼 보이지만 정치적이기도 하다. 열정에서 비롯된 이 파도는 지중해 지역에까지 그 파문을 일으킬 것"이라는 거였다. - P8

미국은 오바마 정부 8년 동안 국제 무대에서 조금씩 퇴장하기 시작하는데 이 기조는 트럼프 정부 4년 동안에도 이어졌다. 반면 인도, 중국, 브라질 같은 나라들은 빠른 경제성장을 등에 업고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세계 속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해 가기 시작했다. - P9

석유가 아니라 물이 혼란을 빚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아프리카의 급수탑인 에티오피아는 물에 관해서라면  이웃 나라들에 비해 결정적인 이점을 안고 있다.  특히 이집트에 비해 그렇다. 이 때문에 이번 세기에 벌어질지도 모를 물 전쟁에서 핵심 지역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 게다가 에티오피아는 향후 국운을 바꿀 수 있는 수력 발전 기술의 위력도 보여주고 있다. - P12

즉 <신 오스만 neo-Ottoman> 건국이라는 터키의 의제는 그 제국의 역사는 물론 동서양의 교차로라는 위치에서유래한다. 따라서 이 의제가 추구하는 것은 주요패권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터키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 P13

우리 시대에 가장 경이로운 발전을 꼽는다면그것은바로 지정학상의 권력 투쟁이 지구라는한계를 넘어 우주로 투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 P14

오스트레일리아,
지리적 위치와 면적이 강점이자 약점이 된다 - P16

"혼신의 힘을 다해 거칠게 경기하라. 아예 상대를 갈아서 먼지로 만들어 버려라."
돈 브래드먼(오스트레일리아 크리켓 선수) - P17

세계에서 6번째로 큰 나라,
그러나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3분의 1도 안 되는 - P20

미지의 남쪽 땅을 노린 낯선 이방인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들의 땅을 빼앗기는 사람들 - P25

흔히 잘못 알려진 사실은 1770년에 영국의 쿡 선장이 이 대륙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발견이라는 문제 많은 단어를 제쳐두면, 기록으로 남겨진최초의 상륙은 1606년 네덜란드인 빌럼 얀스존과 그의 선원들이 두이프겐호를 타고 이 대륙의북쪽 해안에 발을 디딘 것이다. 당시 얀스존은 그곳이 뉴기니섬이려니 했다. 이후 그는 토착민들의 적대적인 반응에 곧장 그곳을 떠났는데 그 뒤로 몇몇 유럽 탐험대들이 왔다 갔지만 내륙을 탐험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 P25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필립스 총독은 시드니 주변에 살던 에오라족, 다루그족과 협상을 벌였다. 최초의 접촉 이후 교역에 바탕을 둔 초기 대화가  이뤄졌는데 에오라족이나 다루그족은 낯선 이방인들의 의중이 단지 교역이 아니라 그들의 <땅>에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 P28

특히 원주민들은 대량 학살을 당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아무런 권리도 없는 존재로 보는 것은 안타까운일이다. 실제로 원주민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은 식민지 주민들이 많았다. - P28

20년도 채 못 돼 우리는 지구상에서 그들을 거의 쓸어내 버렸다. 우리는 개들에게 하듯 그들에게 총질을퍼부었으며전체 부족들을 극심한 죽음의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우리는 그들을 술독에 빠뜨리고, 질병을 퍼뜨려서 성인들의 뼈를 썩게 하고, 그들의 아이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슬픔과 고통을 겪게 했다. 우리는 그들을 그들 땅에서 쫓아냈으며 머지않아 전멸될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 P28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이라면 키우는 개나 고양이를 등록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원주민들의 수가 얼마인지는 모르고 있다." - P29

유색 인종은 거부하는 백호주의 정책 - P32

이듬해인 1900년 7월5일 영국 의회는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헌법을 통과시켰고 나흘 뒤에 빅토리아 여왕이 서명했다.
그리하여 1901년 1월 1일, 6개의 영국령 식민지들이 연합하여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을 구성했다.
당시 50만 명의 시민들이 시드니 거리로 쏟아져나와 이것을 환영했다. - P34

"관리자가 지정한 유럽 언어로 50단어를 넣어 문장을 말하고 그가 말한 내용을 받아쓰지 못한 사람은 이민이 허용되지 않는다." - P34

우리는 경계 없는 벌판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용기를 갖고 우리 모두 함께합시다.
공정한 오스트레일리아가 전진할 수 있도록. - P35

다문화 국가 현대 오스트레일리아의 탄생 - P35

이는 결과적으로 본래 브리티시 또는 앵글로-켈틱 사회가 다문화 국가로 변모되는 뚜렷한 문화적 변화를 불러왔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보고있는 190개 국가의 유산을 지닌 국민들이 만든현대 오스트레일리아로의 급속한 변화였다. - P36

풍부한 천연자원, 하지만 부족한 물과 기후변화 - P38

에너지에 대한 접근은 오스트레일리아에게는중대한 사안이다. 이 나라의 위치와 지리를 감안할 때 이는 곧 안보 이슈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 P41

해상 봉쇄에 속수무책이 되는 나라 - P41

가장 중요한 동맹국은 영국, 미국, 아니면 중국?
위의 시나리오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현실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는 해군력에막대한 비용을 쏟아붓는 것 못지않게 동맹을 신중하게 고르는 등 외교력에도 힘을 모으고 있다. - P43

"따라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태평양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을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가 민주주의를 위한투쟁 계획이라는 방향으로 모든 힘을 모아야 하는 최우선 과제로 보고 있다. 어떠한 방해도 없다면, 나는 우리가 미국을 바라봐야 한다고 분명히밝힌다. 영국과의 전통적인 관계 또는 연대에 급격한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 P44

"오스트레일리아는 나아갈 수 있고, 영국은머물 것이라는 것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 P44

그러나 이 지역에 대한 중국의보다 큰 관심사는기기기기영유권 주장과 영향력 확장이어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이해와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 P49

중국과의 관계, 관리 자체가 쉽지만은 않은 - P49

어쨌거나 힘겨운 줄타기를 해야 하는 - P55

이란,
세계와 기싸움을 벌이며
신의 과업을 수행 중이다 - P60

"이슬람은 정치적이다. 그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1900~1989년, 이란 전 최고지도자) - P61

이란은 두 가지 지리적 특징에 의해 정의된다.
하나는 국경지대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딱딱한빵의 가장자리 같은 형태의 산맥이고, 다른 하나는 평행하듯 달리는 저지대 언덕을 따라 이어지는 내륙의 평평한 소금사막이다. 산맥은 이란을 일종의 요새로 만들어준다.  어느 각도로든 이 나라로 접근하려고 하면 느닷없이 떡하니 가로막는고지대와 맞닥뜨리게 된다. - P61

어떤 곳에서는 지표면에 있는 소금층이 물에 잠길 만큼 깊은 진흙층을 숨기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곳을 만나면 발이 푹푹 빠질 정도다. 사막에서 익사하는 것보다 더 어이없게 죽는 방법이 있을까 싶다. - P62

미국이든 다른 어느 나라든 선뜻 파병을 결행하고 싶어 하지 않는 나라. - P63

전 합동참모본부 의장이었던 미 국무부 장관 콜린 파월은 이란과의 전쟁은 공군력만 가지고는 승산이 제한적이며 전쟁이길어지면 결국 지상군 투입이 필요할 것이라고보았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그는 "사막은 가능하지만 산은 가능하지 않다."라는 오래된 격언을 들춰냈다. 미국과 이란은 저마다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무엇보다 이란의 역사는 이 나라 산악지대에서 죽어간 숱한 외국인 병사들의 죽음으로 점철돼 있다. - P63

적이 침공하기도 힘들지만
국민을 통합시키기도 어려운 지형 - P63

이 모든 것은 결국, 누군가가 이란을 침공해서 정복하고 싶다면 산을 넘고 사막을 건너 습지대에가서 싸우든가, 아니면 수륙양용작전을 펼친 뒤에 다시 똑같이 산을  넘고 사막을 건너 습지대에가서 싸워야 한다는 뜻이다. - P64

"우리는 호르무즈 해협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거나, 아니면 아예 아무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을적들이 깨닫도록 할 것이다." - P71

페르시아 제국에서 시아파 이슬람 국가가 되기까지 오늘날의 이란은 문제가 많은 나라이긴 하지만한편으로는 장구하고 위대한 역사를 지닌 나라이기도 하다. 페르시아 제국은 고대 문명을 이끈 나라였다. - P72

세계 최초로 말들을 갈아타며 전하는우편 배달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수천 마일에 달하는 포장도로를 포함한 대형 건설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 P73

이슬람 세계에서 수니파와 시아파 분열의 기원은 서기 632년 선지자 무함마드가 세상을 뜬 뒤 누가 그의  후계자가 될것인가를 두고 싸운 서기 680 년의 카르발라 전투로 거슬러 올라간다. - P75

그들은 종교가 종교를 통제할수는 있지만 과세와 입법 권한은 정치가들에게있다고 주장했다. 세속적 기관과 종교적 기관 사이의 이러한 권력의 분리는 현대 이란 사회에서도 여전히 주요한 이슈로 남아 있다. 이슬람 성직자들이 또다시 정치 영역에서 지나치게 큰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 P77

외부 세력에게는 먹잇감이 되고,
내부에서는 쿠데타와 시위가 만연하고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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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광기 들린 천재라고 여긴다. 한순간에 자신의 귀를 자르도록 몰고간 그의 정신적 불안정은 이미 전설이 되어버렸다. 끔찍한 악마에 흘리고 원초적인 충동에 휩싸여 사막에서 외쳐댄 고독한 목소리. 이것이야말로 그를 둘러싼 오늘날의 공통된 견해이다. - P8

실제로 반 고흐는 힘겨운 삶을 살았다. 관습에 대한 반감은 (비록 많은 모방자들을 낳긴 했지만) 그가 비길 데 없는 예술 언어를 발전시켜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던 반면, 동시에 친구와 친지들로부터 그를 갈라놓았다. 그런가 하면 말년에 그는 여러 번 좌절을 경험하는데, 물론 여기에는 정서적인 요인들이 작용했겠지만 젊은 시절에 걸린 성병의 후유증으로 악화된 간질 발작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몇 차례 낭만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황당하리만큼 서툰 판단으로 매번 불행한 결과에 이르렀고 결국 독신생활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오랫동안 성공 가도를 벗어나 있던 고흐는 서른일곱에 마침내 평단의 인정을 받는가 싶었는데, 권총자살로 갑작스럽게 삶을 마감해버린다. - P8

생존 당시에는 완전히 외면당했던 그의 그림들이  오늘날에는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큰 가치를 지니게 되었는데, 이런 예술가의 진면목을 우리는 7백 통이 넘는 편지들을 읽으며 가늠해볼 수 있다. - P8

고흐가 그림을 그리기위해 물감과 캔버스를 살 수 있었던 것도 테오의 재정 지원 덕택이었다. 실제로 고흐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마다 더 많은 돈을 요청하거나 돈을 송금해줘서고맙다는 내용의 글을 적고 있다. 테오의 지칠 줄 모르는 격려 또한 불행한 형에게는 구명의 밧줄이었다. 그렇다고 고흐가 동생에게 수동적으로 의존했던것만은 아니다. 그는 동생에게 활기찬 대화 상대였으며, 사적이며 정신적인문제들을 두 사람이 함께 나누었음이 편지에서 드러난다. - P8

이 특징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자연과 풍경에서 위로와 감흥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런던이나 헤이그, 혹은 그 밖의 북유럽 전역에서 그가 보낸 편지들에는 주변 환경에 대한 매우 서정적인 묘사가 담겨 있다. 이처럼 삶의 초기에는 그의 사고에 깃든 목가적인 요소들이 깊은 신앙심과 일체를 이룬다(그의 아버지는 목사였다). 나중에 고흐는 신앙을 버리게되지만 자연에 대한 사랑만은 그 후로도 오래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 P11

그가 젊은 시절부터 끊임없이 관심을 보였던 또 다른 영역은 전원생활과 육체노동이었다. 벨기에의 탄광지역인 보리나주에서 선교사로 일할 당시 이 짧은 체류 동안 제약된 조건 속에서도 그는 광부들의 일상을 스케치했는데, 이것은 광부들의 비참한 운명에 대한 그의 통렬한 묘사와 맞물린다. 실제로 이 시기에 그는 성직 대신 화가가 되겠다는 새로운 야심-품는다. - P11

반 고흐는 평생 동일한 화풍의 영향을 받으며 이 화풍에 절대적으로 헌신한다. 그의 작품 경향이 변화를 거듭할 때에이런 헌신은 계속되었다. 특히 프랑스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에 대한 숭배의 감정은 말년의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들물론 초기의 편지나 스케치에서도 나타난다. 밀레가 애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고귀하게 묘사한 농민의 삶은 고흐에게감동을 불러일으켰다. - P11

특히, 해질 무렵 가로등이 켜지고 젖은 도로 위에 그 불빛이 반사되는 모습을 말이야. - P14

아침에 턴햄그린으로 가는 길은 몹시 아름다웠어. 밤나무와 맑고 파란 하늘, 템스 강물에 반사되는 아침 햇살..…그리고 풀들이 놀랄 만큼 푸르렀단다. 사방에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졌지. - P19

네 생각을 자주 한단다. 아주 잘 지내고 있다니 반갑다. 네 기분을 돋워주고 진정한 삶을 위한 건전한 양식이 될 만한 것들을 찾을 수 있다니 기쁘구나. 그런 것들이야말로 진짜 예술이며 자신의 마음과 영혼, 생각을 바쳐 일하는 사람들의 작품일거야. 어쩌면 넌 그런 사람들을 적잖이 알 뿐 아니라 직접 만나보기도 했을 거야. 말과 일이 생명이자 영혼인 그런 사람들을말이다. - P19

살면서 우연히 마주치는 다양한 모습들을 대충 스케치해두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러다 보면 내가 정말로 하고 싶어 하는 작업에 방해가 될 수도있으니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누가복음 13장 6절~9절의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에 관한 설교를 쓰기 시작했단다. - P21

난 종종 늦은 밤까지 그림을 그린단다. 어떤 사물들을 볼 때면 절로 떠오르는생각들에 분명한 형태를 부여하고 이런저런 기억들을 붙잡아두기 위해서야. - P22

1880년 7월
털갈이 시기란 새들이 깃털을 바꾸는 시기로, 사람의 경우로 말한다면 역경과불행 같은 일이 닥치는 어려운 시기를 뜻하지. 우린 이런 털갈이 시기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거기서 벗어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런 일들은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것도 웃어넘길 일도 아니어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숨을 필요가 있단다. 사정이 그렇다면 받아들여야겠지. - P22

요즈음에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이런 상태가 이미 상당 기간 지속되었는데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지 몰라. - P22

"결국 그런 거였어! 그러니까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던 거야"라고 - P22

내게서 게으름뱅이 같은 모습 외에 네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게으름뱅이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 말이다. 나태하거나 비굴한 성격이거나천성이 야비해서 게으름뱅이로 간주되는 사람이 있지. 너 역시 나를 그런 사람으로 여긴다 해도 할 수 없겠지. - P22

"난 새장 안에 있다. 새장 안에 있어. 그러니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 이 바보들아! 난 필요한 모든 걸 가졌어! 아, 제발 내게 자유를 다오. 다른 새들처럼 말이야." - P23

때로 자연과의 싸움은 셰익스피어가 ‘말괄량이 길들이기‘ 라고 부른 것과 비슷해 (즉 인내심을 발휘해 어떻게 해서든 저항하는 쪽을 정복하는 거야). 많은 영역에서 그렇듯이 특별히 그림에서는 꽉 움켜잡는 편이 포기하는 편보다 낫단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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