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가꾸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이다
- 조지 버나드 쇼

타샤 튜더 홈페이지
https://tashatudorandfamily.com/

출생 1915년 8월 28일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턴
사망 2008년 6월 18일 (향년 92세), 미국 버몬트 말보로
국적 미국
데부 1938년 《Pumpkin Moonshine》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26-08-12 08:19   좋아요 1 | URL
사실 많은 도시인들이 정원을 가꾸며 사는 전원생활을 꿈꾸는데 실제 정원을 가꾸는 것은 매우 빡세게 힘들어서 열의 이홉은 굳 포기한다고 하더군요.

대장정 2026-08-12 19:12   좋아요 0 | URL
아 네 그렇죠, 저도 시골출신이라 잘압니다. 이분이 가꿨던 정원이 30만평이라나요 😢
 
장날 - 사라져 가는 순간의 기억들
이흥재 사진, 김용택.안도현 글 / 시공아트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 사라지는 것은 장터만이 아니었다

갈담장이든 웅천장이든 장터가 쇠퇴한 이유는 시장의 경쟁력이 약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장터를 찾던 사람들이 먼저 고향을 떠났고,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서 장터의 활기도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 집만 보더라도 형제들은 대전과 서울, 대천으로 흩어졌고, 사촌들 역시 모두 학업과 직장을 따라 도회지로 떠났다. 부모 세대도 이제 고향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아버지 형제분들 가운데 셋째아버지 내외분은 모두 세상을 떠나셨고, 넷째아버지 내외분과 어머니는 대천으로 옮겨 사신다. 지금 웅천 성동리에 남아 계신 분은 둘째아버지 내외분뿐이다. 자녀 세대가 떠난 뒤에도 고향을 지키던 부모 세대마저 하나둘 사라지거나 생활이 편리한 도시로 옮겨가면서, 마을은 두 세대에 걸쳐 비어 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 집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대부분 농촌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성동리는 1리, 2리, 3리로 나뉘어 있었고, 우리가 살던 성동1리는 그중에서도 가장 작은 마을이었다. 그러나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같은 동네 동갑내기 친구가 나를 포함해 여덟 명이나 있었다. 그중 다섯 명은 어려서부터 함께 뛰놀던 불알친구였고, 나머지 세 명은 안불알 친구들이었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아이들 웃음소리만큼은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아이들은 모두 고향을 떠났다. 둘째집 사촌여동생은 성동1리의 마지막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 아이가 졸업한 뒤에는 마을에서 더 이상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볼 수 없게 되었다. 한 아이의 졸업은 학생 한 명이 줄어든 일이 아니라, 마을의 다음 세대가 거기서 멈추었다는 뜻이었다.

인구가 줄어들면 학교가 사라지고, 학교가 사라지면 아이들이 떠난다. 아이들이 떠나면 장터도, 가게도, 마을도 조금씩 활기를 잃는다. 빈집이 늘어나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오르지 않으며, 저녁 무렵 골목을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어느새 기억 속으로만 남게 된다. 농촌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와 발자국, 집집마다 밝혀지던 불빛을 하나씩 잃어가며 아주 천천히 비어 간다.

과거의 인구와 장터의 활기를 다시 그대로 되돌리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길을 걸어 장을 보러 다녔는지, 어떤 풍경 속에서 서로의 삶을 나누었는지는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기록은 사라짐을 막지는 못하지만, 사라진 삶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잊히는 일은 막아준다.

이번 비교를 통해 확인한 것은 갈담장이 크냐, 웅천장이 크냐가 아니었다. 숫자로는 장세를 비교할 수 있었지만, 숫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삶과 기억이 장터 안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갈담장과 웅천장을 돌아보는 일은 결국 장터의 크기를 따지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장터를 중심으로 살아온 사람들과, 그들이 떠난 뒤 조용해진 마을을 함께 돌아보는 일이다.

성동리 골목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에 한때 여덟 명의 동갑내기가 함께 뛰놀았고, 여러 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고, 수많은 사람들이 장날을 기다리며 살아갔다는 사실만은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날 - 사라져 가는 순간의 기억들
이흥재 사진, 김용택.안도현 글 / 시공아트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 농촌 인구감소의 원인과 지역사회의 변화

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ㅇ(인구유출) 갈담장과 웅천장 생활권의 인구감소는 단순한 출생아 감소가 아니라 학업, 취업, 결혼, 주거 등의 이유로 젊은 세대가 도시로 이동한 결과

ㅇ(가족사례) 웅천 성동리에서 함께 살던 가족들도 성장한 뒤 대전, 서울, 대천 등으로 이동하였으며, 고향에 남은 사람은 일부 부모 세대뿐인 상황

* 본인은 대전, 형은 서울, 여동생은 서울, 어머니와 막내는 대천으로 이동

* 셋째아버지 내외분은 모두 별세하였고, 그 집 사촌 세 명도 모두 도회지로 이동

* 둘째아버지 내외분만 웅천 성동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 집 사촌 네 자매는 모두 도회지로 이동

* 넷째아버지 내외분은 대천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 집 사촌 두 명도 대천에서 생활

ㅇ(세대이동) 사촌들을 포함한 자녀 세대 대부분이 학업과 직장을 따라 고향을 떠나면서 성동리에 남은 사람은 부모 세대와 일부 고령층으로 축소

ㅇ(반복구조) 한 집안의 자녀들이 모두 도시로 이동하는 현상이 농촌의 여러 가정에서 반복되면서 마을 전체의 인구감소로 연결되는 구조


나. 농촌 인구감소의 주요 원인

ㅇ(교육) 상급학교 진학과 다양한 교육기회를 위해 청소년과 젊은 세대가 도시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여건

ㅇ(일자리) 농업 이외에 안정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부족하여 취업과 생계를 위해 도시로 이동하는 구조

ㅇ(생활여건) 의료, 문화, 쇼핑, 교통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설이 도시보다 부족하여 젊은 세대의 정착이 어려운 환경

ㅇ(고령화) 젊은 세대의 유출 이후 노년층만 남고 출생보다 사망이 많아지면서 자연감소가 더욱 빨라지는 악순환

ㅇ(중심지집중) 웅천에서 대천으로 이동한 사례처럼 농촌 내부에서도 더 큰 읍이나 도시로 인구가 이동하면서 작은 읍·면과 마을의 공동화 심화


다. 농촌 인구감소가 장터와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

ㅇ(장터쇠퇴) 장을 보러 오는 주민과 농산물을 내다 파는 농민이 함께 줄어들면서 오일장의 규모와 거래 품목 축소

ㅇ(상권축소) 인구감소로 읍내 점포, 음식점, 다방, 양복점, 전파사 등 과거 장터를 둘러싸고 형성되었던 생활상권의 소멸

ㅇ(학교감소) 아동 인구 감소로 마을의 초등학생이 사라지고 학교의 통폐합과 폐교로 이어지는 현상

ㅇ(공동체약화) 마을 주민과 친척들이 도시로 흩어지면서 서로의 농사일과 집안일을 돕던 공동체 관계의 약화

ㅇ(빈집증가) 부모 세대가 사망하거나 도시로 이동한 뒤 돌아와 살 사람이 없어 빈집과 폐가가 늘어나는 현상

ㅇ(기억단절) 장터와 학교, 마을길을 함께 기억하는 세대가 줄어들면서 지역의 생활사와 공동체 기억까지 사라질 우려


라. 해결 가능성에 대한 판단

ㅇ(한계) 이미 도시로 이동한 자녀 세대가 일자리와 교육 기반이 부족한 고향으로 모두 돌아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

ㅇ(방향) 과거 인구를 완전히 회복하는 목표보다 현재 남아 있는 주민이 불편 없이 생활하고 지역이 지나치게 빠르게 소멸하지 않도록 하는 정책 필요

ㅇ(생활기반) 의료, 교통, 돌봄, 장보기, 문화생활 등 고령 주민에게 필요한 기본생활 서비스 유지가 우선과제

ㅇ(일자리) 농업, 관광, 지역특산물, 소규모 제조업, 원격근무 등을 연계하여 젊은 세대가 일부라도 정착할 수 있는 생계기반 마련 필요

ㅇ(거점유지) 모든 마을에 동일한 시설을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여 웅천과 강진 같은 읍·면 소재지의 의료, 상업, 교통 기능을 지역생활 거점으로 유지할 필요

ㅇ(관계인구) 완전한 귀향만을 요구하기보다 명절과 주말 방문, 빈집 관리, 지역행사 참여, 고향 농산물 구매 등 도시로 떠난 사람들이 고향과 계속 관계를 맺는 방식의 확대 필요


마. 종합 판단

ㅇ(개인과 구조) 가족과 친척들이 웅천을 떠난 것은 고향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학업과 직장, 자녀교육과 생활을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동

ㅇ(농촌현실) 이러한 개인의 선택이 수십 년 동안 집집마다 반복되면서 웅천과 강진을 비롯한 농촌 전체의 인구감소와 장터 쇠퇴로 이어진 결과

ㅇ(해결과제) 농촌 인구감소를 완전히 되돌릴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지만, 남은 사람들의 삶을 지키고 떠난 사람들이 고향과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은 여전히 필요한 상황

ㅇ(최종의미) 갈담장과 웅천장의 쇠퇴는 단순히 장터 하나가 작아지는 문제가 아니라 그 장터를 중심으로 살아왔던 가족과 마을, 생활문화와 공동체의 기억이 함께 사라져 가는 문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날 - 사라져 가는 순간의 기억들
이흥재 사진, 김용택.안도현 글 / 시공아트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 2000년 이후 인구감소와 생활권 변화

가. 갈담장 생활권

ㅇ(인구변화) 2000년 약 10,171명에서 2026년 약 6,433명으로 감소

* 감소인원 약 3,738명, 감소율 약 36.8%

ㅇ(지역별 감소) 강진면의 감소율이 가장 높고 운암면의 감소율이 가장 낮은 것으로 분석

* 강진면 2,457명 → 1,375명, 1,082명 감소, 감소율 44.0%
* 운암면 2,141명 → 1,532명, 609명 감소, 감소율 28.4%
* 청웅면 약 1,908명 → 1,211명, 약 697명 감소, 감소율 약 36.5%
* 덕치면 약 1,785명 → 1,111명, 약 674명 감소, 감소율 약 37.8%
* 산내면 약 1,880명 → 1,204명, 약 676명 감소, 감소율 약 36.0%

ㅇ(중심지역) 강진면은 면 소재지와 갈담장, 국도 교통망을 갖추고 있음에도 생활권 내에서 가장 높은 인구감소율 기록

ㅇ(운암면) 운암면은 옥정호 주변의 관광 및 주거 여건 등의 영향으로 생활권 내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인구감소율 기록

ㅇ(생활권변화) 갈담장 생활권 전체 인구는 2000년 대비 약 36.8% 감소하였으나, 운암면의 상대적으로 낮은 감소율로 생활권 전체 감소폭은 제한된 수준


나. 웅천장 생활권

ㅇ(인구변화) 2000년 27,086명에서 2026년 6월 15,618명으로 감소

* 감소인원 11,468명, 감소율 42.3%

ㅇ(지역별 감소) 성주면의 감소율이 가장 높고 남포면의 감소율이 가장 낮은 것으로 분석

* 웅천읍 9,579명 → 5,366명, 4,213명 감소, 감소율 44.0%
* 남포면 7,051명 → 4,661명, 2,390명 감소, 감소율 33.9%
* 주산면 4,009명 → 2,132명, 1,877명 감소, 감소율 46.8%
* 성주면 3,846명 → 1,858명, 1,988명 감소, 감소율 51.7%
* 미산면 2,601명 → 1,601명, 1,000명 감소, 감소율 38.4%

ㅇ(중심지역) 웅천읍은 2000년 대비 4,213명이 감소하였으나 2026년 6월에도 생활권 내에서 가장 많은 인구 유지

ㅇ(성주면) 성주면은 2000년 대비 인구가 절반 이상 감소하여 웅천장 생활권에서 가장 높은 감소율 기록

ㅇ(주산면) 주산면은 46.8% 감소하여 중심지역인 웅천읍보다 높은 인구감소율 기록

ㅇ(미산면) 미산면은 38.4% 감소하여 웅천읍, 주산면, 성주면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감소율 기록

ㅇ(남포면) 남포면은 보령시의 중심인 옛 대천시 지역과 바로 인접하여 주거와 생활권을 공유하는 입지적 영향으로 생활권 내에서 가장 낮은 33.9%의 감소율 기록

ㅇ(생활권변화) 웅천장 생활권 전체 인구는 2000년 대비 42.3% 감소하였으며, 특히 성주면과 주산면의 높은 감소율이 생활권 축소에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


다. 생활권별 비교

ㅇ(감소인원) 웅천장 생활권은 11,468명이 감소하여 갈담장 생활권 약 3,738명보다 약 3.1배 많은 인구 감소

ㅇ(감소율) 웅천장 생활권의 감소율은 42.3%로 갈담장 생활권 약 36.8%보다 약 5.5%포인트 높은 수준

ㅇ(격차변화) 웅천장 생활권은 2000년 갈담장 생활권의 약 2.7배였으나 2026년에는 약 2.4배 수준으로 격차 축소

ㅇ(중심지역) 웅천읍과 강진면의 감소율은 모두 44.0%로 동일한 수준

ㅇ(주변지역) 중심지역의 감소율은 동일하지만 주변 면 지역에서는 성주면과 주산면의 감소율이 높고, 운암면과 남포면의 감소율이 상대적으로 낮아 두 생활권의 전체 감소율에 차이 발생

ㅇ(입지영향) 남포면은 대천 도심과 인접한 반면 성주면, 주산면, 미산면은 농촌지역의 성격이 상대적으로 강하여 지역별 인구감소 양상에도 차이 발생

ㅇ(현재규모) 2026년 기준 웅천장 생활권 인구는 갈담장 생활권보다 약 9,185명이 많고 약 2.4배 규모

ㅇ(종합판단) 웅천장 생활권은 2000년 이후 갈담장 생활권보다 큰 인구감소를 겪었으나, 2000년 당시 배후인구가 워낙 컸기 때문에 2026년에도 갈담장 생활권보다 두 배 이상 큰 시장 기반 유지


※ 갈담장 생활권의 청웅면, 덕치면, 산내면의 2000년 인구는 강진면과 운암면의 인구감소 비율을 적용한 추정값이며, 해당 지역 통계연보 원자료 확보 시 보정 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날 - 사라져 가는 순간의 기억들
이흥재 사진, 김용택.안도현 글 / 시공아트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갈담장의 실제 규모를 생각하면 다소 크게 묘사된 부분도 있고, 객관적인 장세와는 차이가 있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점과는 별개로 충분한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임실 강진장뿐만 아니라 임실장, 관촌장, 오수장, 운암장, 순창장, 쌍치장, 복흥장, 장수 장계장, 남원장, 인월장, 전주 남부시장, 전주 중앙시장, 정읍 샘고을시장, 김제 원평장, 고창장, 무장장, 해리장, 완주 삼례장, 무주 안성장, 부안 줄포장, 진안 마령장, 구례장, 화순장, 곡성장, 영광장, 영암장, 금산장, 부여장 등 충청과 호남의 수많은 장터들이 담겨 있다. 특히 대부분의 사진이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촬영되어 우리 시골 장터가 가장 활기를 띠던 마지막 시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진 속에는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과 좌판, 장꾼들의 모습은 물론 당시의 거리 풍경과 시장 주변 건물까지 자연스럽게 기록되어 있다. 덕분에 단순한 수필집을 넘어, 지금은 대부분 사라져 버린 우리 시골 장터의 생활상과 지역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낸 생활사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많은 오일장이 명맥만 유지하거나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김용택의 추억을 담은 책이 아니라, 충청과 호남 곳곳의 장터가 가장 활기찼던 시절을 사진과 글로 남겨 놓은 귀중한 기록물이다. 앞으로 세월이 흐를수록 그 가치는 더욱 커질 것이며, 오래도록 간직할 만한 충분한 소장가치를 지닌 책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