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오래된 정원 - 전2권 세트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오래된 정원

— 왜 가니, 니가. 잘 가라, 이 바보야.

책 소개

* 지은이 : 황석영
* 출판사 : 창비
* 출간일 : 2000년 4월 24일
* 분량 : 상권 332쪽, 하권 320쪽, 총 652쪽(출판사 초판 안내 기준)
* 장르 : 한국 장편소설
* 작품 특징 :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사회주의권의 붕괴 등 격변의 시대를 배경으로, 오랜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남자가 과거의 사랑과 잃어버린 시간을 되짚는 이야기
* 영화 : 《오래된 정원》(2007), 임상수 감독, 지진희, 염정아 주연, 112분

1.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엇갈린 두 사람의 궤적

오현우는 군부독재에 저항하다 수배되어 도피생활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미술교사 한윤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지낸 시간은 불과 3개월. 현우는 다시 떠나고, 결국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

18년 만에 세상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낯선 세상과 이미 세상을 떠난 연인 한윤희의 흔적뿐이다.

그가 믿었던 이념도, 함께 싸우던 사람들도, 세상도 달라져 있다.

황석영은 두 사람의 사랑을 통해 1980년대 한국사회의 격변과 사회주의권의 붕괴까지 이야기한다. 개인의 삶과 시대의 역사가 함께 흘러가는 소설이다.

현우는 18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청춘을 잃었고, 사랑하는 여자를 잃었으며, 세상이 변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윤희의 18년은 어떠했을까.

현우가 감옥에 있는 동안 윤희의 시간도 흘렀다. 독일로 건너가 미술을 공부하기도 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현우의 딸 은결을 키우며 자신의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현우가 돌아오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현우에게 18년은 빼앗긴 시간이지만 윤희에게는 하루하루 힘겹게 견뎌내야 했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민주화운동을 하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의 희생을 기억한다. 당연히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맞서 싸운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잊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그들이 떠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간 사람들의 세월도 그에 못지않게 무겁다.

윤희를 단순히 남자를 기다리며 살아간 여자로 볼 생각은 없다. 그녀에게도 자신의 신념과 삶이 있었고, 예술가로서의 꿈이 있었다. 현우와 헤어진 뒤에도 세상을 살아가며 사랑하고, 상실을 겪고, 아이를 키웠다.

그녀는 현우의 삶에 딸린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이 함께하지 못한 세월을 현우의 희생만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

그가 감옥에서 잃어버린 18년과 그녀가 홀로 살아낸 18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두 사람의 삶을 바꿔놓았다.

황석영은 현우가 윤희의 기록을 읽으며 자신이 알지 못했던 세월을 알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현우가 몰랐던 것은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만이 아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것이 18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다.

2. 임상수의 오래된 정원, 염정아가 연기한 한윤희; 6개월의 사랑, 17년의 이별

한윤희, 염정아. 이쁘다.

숨겨줘, 재워줘, 먹여줘, 몸줘.

2024년 10월 30일, 영화를 보고 남긴 독서노트다.

도피 중이던 오현우를 숨겨주고, 재워주고, 먹여주고, 사랑까지 내어준 여자다.

그런데 이놈은 떠난단다.

왜 가니, 니가.

그래, 네가 왜 가야 하느냐는 말이다.

염정아가 연기한 한윤희는 당차고 씩씩하다. 현우가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소개하자 씻기나 하라며 농담으로 받아넘긴다.

현우는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이야기하지만, 윤희에게는 우선 눈앞에 있는 현우라는 사람이 중요했던 모양이다.

윤희는 자신이 운동권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도피 중인 현우를 숨겨주고, 함께 생활하며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이 갈뫼에서 지낸 시간은 영화에서 6개월로 그려진다.

그 짧은 시간에 두 사람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하며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독재정권에 쫓기는 남자와 그를 숨겨준 여자라는 사정만 빼면 여느 연인과 다를 것도 없다.

그런데 서울에서 동료들이 모두 붙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현우는 혼자 숨어 있을 수 없다며 갈뫼를 떠나기로 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니 화가 난다.

그렇게 아름답고 자신을 사랑해 주는 여자를 두고 왜 떠난다는 말인가.

솔직히 염정아가 너무 아름다워서 현우의 선택이 더욱 못마땅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미모 때문에 떠나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윤희가 현우에게 내어준 것은 단순히 잠자리나 은신처가 아니다. 자신의 생활 속으로 그를 받아들였고, 함께하는 삶을 시작했다.

현우에게 갈뫼는 잠시 몸을 피하는 장소였을지 모르지만, 윤희에게는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그 안에 현우가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현우는 다시 떠나겠다고 한다.

현우가 떠나는 이유는 이해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 마음은 그와 다르다.

동료들이 붙잡혔다는 사정도 알겠고, 그가 지키려는 신념이 무엇인지도 알겠다.

그래도 윤희를 두고 떠나는 현우가 야속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지고, 영화 속 현우는 17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다.

윤희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이제 현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윤희가 남긴 기록을 읽고, 자신이 없었던 세월을 더듬는 것뿐이다.

오현우, 지진희. 바보, 지진아.

3. 그때는 자기만 행복하면 나쁜 놈이 되는 시대였거든

독서노트에는 현우의 말도 적어놓았다.

˝그때는 자기만 행복하면 왠지 나쁜 놈이 되는 시대였거든.˝

그 시절은 그랬다.

독재정권이 국민을 억압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던 사람들이 잡혀가고, 고문당하고, 죽어가던 시대였다.

그런 세상에서 자기 혼자 편안하게 살겠다는 것이 부끄러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거리로 나섰고, 누군가는 감옥에 갔으며,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지키려 했던 가치와 그 과정에서 감당한 희생을 가볍게 평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자기만 행복하면 나쁜 놈이 되는 시대였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해지는 것까지 죄스러운 일이었을까.

현우에게는 동료들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함께 싸우던 사람들이 잡혀갔는데 자기 혼자 안전한 곳에 숨어 있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윤희와 함께하는 삶이 동료들을 배신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우가 갈뫼에 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동료들을 외면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 언젠가 다시 붙잡혔을 수도 있고, 윤희와 함께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떠나는 것만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현우가 지키려던 신념은 소중하다. 윤희와 함께할 수 있었던 삶도 소중하다.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반드시 우선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옳은 일을 했다는 이유로 그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고통까지 정당화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목적이 정당하다는 사실과 그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겪은 상실은 구분해야 한다.

현우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가 감옥에 갇힌 것은 독재정권의 억압 때문이지, 사랑하는 여자를 떠났기 때문에 받아야 할 대가가 아니었다.

현우를 비난하다가도 결국 그 시대를 돌아보게 되는 이유다.

두 사람이 평범하게 사랑하며 살 수 없도록 만들었던 시대가 있었다.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 민주화운동의 목적 중 하나 아니었을까.

그런데 정작 그 세상을 만들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죄스럽게 여겨야 했다.

참 고약한 시대였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난 현우의 선택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해하는 것과 동의하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4. 글로 읽는 시대와 영상으로 보는 사랑; 원망스러운 시대, 야속한 오현우

황석영의 소설과 임상수의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다루지만, 읽고 보는 과정에서 내가 바라보는 곳은 달라진다.

소설은 현우와 윤희가 헤어진 뒤에도 각자의 삶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폭넓게 보여준다. 민주화운동과 사회주의권의 붕괴,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생각과 삶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 함께 담겨 있다.

현우는 감옥에 있었지만 윤희는 그 밖에서 세상의 변화를 직접 겪었다. 그녀의 기록에는 현우가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역사가 들어 있다.

따라서 소설에서는 현우가 어떤 시대를 살았고, 무엇을 지키려 했으며, 그 선택 이후 두 사람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반면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갈뫼에서 함께했던 생활이 눈앞에 펼쳐진다.

윤희의 표정과 목소리, 두 사람이 나누는 농담과 사랑, 그리고 갈뫼를 떠나는 현우의 모습까지 직접 보게 된다.

소설에서 3개월이었던 두 사람의 동거 기간도 영화에서는 6개월로 늘어났다.

단순히 함께 지낸 기간이 길어졌다는 사실보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 영화는 두 사람이 함께하는 일상을 관객에게 직접 보여주고, 그 모습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받아들이게 한다.

물론 이것이 감독이 의도한 효과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두 작품을 받아들인 방식은 그렇다.

소설에서는 윤희가 살아온 삶을 읽으며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갔다면, 영화에서는 윤희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를 먼저 좋아하게 된 셈이다.

글로 읽을 때와 영상으로 볼 때의 감정이 다르다.

소설에서는 두 사람을 갈라놓은 시대가 원망스럽고, 영화에서는 윤희를 두고 떠나는 현우가 야속하다.

5. 다시 찾은 오래된 정원, 그곳에 없는 사람; 돌아갈 수 없는 과거, 남아 있는 삶

오현우가 다시 갈뫼를 찾았을 때 그곳에는 윤희가 남긴 기록과 그림이 있다.

그러나 정작 윤희는 없다.

두 사람이 함께했던 장소는 다시 찾을 수 있지만, 그때의 시간까지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현우에게 갈뫼는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장소다.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했던 시간은 감옥에서도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희에게 갈뫼는 현우와 함께했던 장소인 동시에 그가 떠난 뒤에도 자신의 삶이 계속된 현실의 한 부분이었다.

같은 장소를 기억하더라도 두 사람이 기억하는 시간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목이 오래된 정원인가 보다.

현우가 돌아온 것은 정원이지만, 정작 그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그곳에 없다.

대신 딸 은결이 있다.

현우가 기억하는 윤희는 과거의 연인이지만, 은결에게 윤희는 자신을 낳고 키운 어머니다. 같은 사람을 기억하지만 서로 알고 있는 삶이 다르다.

현우에게는 딸에게 설명할 이야기가 많겠지만, 은결에게도 아버지가 없는 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려줄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지나간 세월은 되돌릴 수 없다. 이제 현우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과거를 설명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알지 못했던 딸의 삶을 알아가는 일일 것이다.

오래된 정원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는 없지만, 앞으로 살아갈 시간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니까.

6. 잘 가라. 이 바보야.

황석영의 소설과 임상수의 영화를 함께 읽고 보면서 결국 현우의 선택을 다시 생각한다.

나는 현우의 신념을 존중한다. 그가 무엇을 위해 싸웠고,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도 안다. 그러나 그의 선택까지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사랑도 때가 있는 법이다.

떠나야 할 때 떠나는 것이 용기라면, 남아야 할 때 남는 것도 용기일 것이다. 어느 쪽이 옳았는지는 당사자조차 평생 알지 못할 수 있다.

현우가 윤희 곁에 남았다면 두 사람은 행복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아깝다고 생각한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이다.

그러니 그에게 한마디는 해야겠다.

한윤희, 염정아. 이쁘다.

오현우, 지진희. 바보, 지진아.

왜 가니, 니가.

잘 가라. 이 바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콩: 스컬 아일랜드 (1disc)
조던 보트 로버츠 감독, 존 굿맨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콩보다 더 큰 괴물

— 영화 《콩: 스컬 아일랜드》(2017)를 보고, 애먼 사람들만 죽어 나가는 세상

영화 소개

* 제목 : 콩: 스컬 아일랜드(Kong: Skull Island)
* 감독 : 조던 보트로버츠
* 개봉 : 2017년
* 장르 : 액션, 모험, 판타지
* 상영시간 : 118분
* 주요 출연 : 톰 히들스턴(제임스 콘래드), 브리 라슨(메이슨 위버), 사무엘 L. 잭슨(프레스턴 패커드), 존 굿맨(빌 랜다), 존 C. 라일리(행크 말로)
* 제작 특징 : 몬스터버스 세계관의 두 번째 영화, 1973년을 배경으로 한 킹콩 이야기
* 특이사항 : 쿠키 영상에서 고질라, 모스라, 로단, 킹 기도라의 존재를 암시

1. 누가 이 일을 벌였는가

괴수영화 한 편을 봤다. 《콩: 스컬 아일랜드》. 거대한 고릴라가 등장하고, 헬기가 추락하고, 괴물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볼거리는 충분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콩보다 더 화가 나는 인간이 하나 있었다.

존 굿맨이 연기한 빌 랜다. 비밀 연구기관 모나크의 책임자다.

이 인간이야말로 영화에 등장하는 가장 큰 괴물이다.

1973년,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이 철수하던 무렵이다.

랜다는 위성으로 발견된 미지의 섬, 스컬 아일랜드에 탐사대를 보내려고 한다. 그곳에 거대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목숨까지 위험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랜다는 상원의원을 찾아가 탐사에 대한 정치적 지원을 얻어내고 군대의 지원까지 요청한다. 소련이 먼저 섬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논리도 동원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어이가 없다. 상원의원 한 사람의 정치적 지원으로 탐사가 추진되고, 군 병력까지 동원되는 과정이 너무도 손쉽게 그려진다. 물론 실제로 군대에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별도의 장군이다. 그렇다고 해도 영화 속 의사결정 과정은 참으로 허술하다.

더 큰 문제는 탐사의 진짜 목적이다.

겉으로는 지질조사다. 폭발물을 투하해 지하 구조를 파악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조사 목적도 있지만, 랜다가 그토록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거대 생명체의 존재였다.

그는 위험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함께 가는 사람들이 그 위험을 충분히 알고 판단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고 싶은 욕심, 남들이 믿지 않는 것을 자신이 밝혀내겠다는 집착. 그 목적을 위해 군인들과 조사원들이 동원된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정작 다른 사람들이다.

2. 집에 가고 싶었던 군인들

사무엘 L. 잭슨이 연기한 패커드 중령.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이 철수한다. 전쟁터에서 오랫동안 싸웠던 군인들이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패커드는 철수를 마냥 반기는 지휘관은 아니다. 전쟁이 이런 식으로 끝난다는 사실에 불만도 있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 임무가 주어진다.

미지의 섬에 과학자들을 데려다주라는 것이다.

패커드는 기꺼이 임무를 받아들인다. 전쟁이 끝나가는 마당에 마지막으로 부하들과 함께 비행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부하들의 사정은 다르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전쟁이 끝났으니 가족을 만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군인에게 상부의 명령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결국 패커드는 부하들을 데리고 섬으로 향한다.

그들이 맞닥뜨린 것은 평범한 지질조사 따위가 아니었다.

폭발물이 투하되자 거대한 콩이 나타난다. 헬기들이 추락하고 군인들이 죽어 나간다. 조금 전까지 살아 있던 전우들이 눈앞에서 사라진다.

콩의 입장에서는 자기 영역에 난데없이 침입한 인간들이 폭탄을 터뜨린 것이다. 그러니 침입자들을 공격하는 것이 잘못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죽어 나간 군인들은 무슨 죄인가.

그들에게 이 섬에 오고 싶으냐고 물어보기나 했던가.

3. 패커드의 복수는 비난받아야 하는가

패커드는 분노한다.

자신이 지휘하던 부하들이 죽었다. 함께 전쟁터를 누볐던 전우들이다. 마지막 임무만 마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거대한 괴물에게 죽임을 당했다.

패커드가 콩을 죽이겠다고 나서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나중에는 콩이 섬을 지키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도 복수를 포기하지 않는다. 살아남은 부하들까지 위험에 빠뜨리며 끝까지 싸우려 한다. 이 대목은 지휘관으로서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다.

그렇다고 해서 패커드를 그저 복수에 눈먼 미치광이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는 애초에 자신들이 어떤 위험에 들어가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과학자들을 수송하는 임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누군가의 거대 생명체 탐사에 동원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패커드가 느꼈을 분노와 배신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패커드가 처음부터 아무런 판단 없이 명령만 수행한 것은 아니다.

섬에 접근하던 중 거대한 폭풍을 마주하자, 랜드샛의 현장 책임자 니에베스는 위험을 이유로 탐사 중단을 주장한다. 하지만 랜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패커드에게 결정을 넘긴다. 결국 패커드는 헬기대를 이끌고 폭풍 속으로 들어간다.

패커드는 섬에 거대한 괴물이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러나 눈앞에 닥친 위험을 감수하고 작전을 강행하는 결정에는 직접 참여했다.

여기서 패커드의 책임도 시작된다. 상부의 명령을 수행하는 군인이라는 사실과 현장에서 부하들의 안전을 판단해야 하는 지휘관이라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분노가 향한 대상은 잘못되었다.

부하들을 그 섬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랜다였지만, 패커드는 눈앞에서 부하들을 죽인 콩을 적으로 삼았다.

최초의 원인을 제공한 인간과 직접적인 죽음을 가져온 괴물 사이에서, 패커드는 결국 괴물에게 복수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도 죽는다.

생각해 보면 랜다와 패커드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랜다는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고, 패커드는 부하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살아남은 부하들까지 위험에 빠뜨렸다. 물론 두 사람의 동기와 책임은 다르다. 패커드는 랜다가 벌인 일에 끌려 들어간 피해자이면서도, 현장에서는 부하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지휘관이었다. 부하들을 잃은 피해자라는 사실이 남은 부하들의 생명까지 걸고 복수할 권리를 주지는 않는다. 결국 패커드도 자신이 그토록 증오했던 랜다와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참으로 비극적인 인물이다.

4. 가고 싶었던 사람과 가기 싫었던 사람

이 영화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것은 사람들의 운명이다.

톰 히들스턴이 연기한 콘래드는 돈을 받고 탐사에 참가한다. 위험을 예상하고 보수를 다섯 배나 더 요구하고, 살아 돌아왔을 때 보너스까지 추가로 달라는 조건을 내건다. 브리 라슨이 연기한 사진기자 위버도 자신의 취재 목적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섬에 들어간다.

반면 현장 책임자 니에베스는 폭풍을 보고 탐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나 탐사는 강행된다.

결국 니에베스는 섬을 탈출하기 위해 강을 따라 이동하던 중, 날개 달린 괴생명체 무리에게 붙잡혀 공중에서 목숨을 잃는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군인들도 죽는다. 위험하다고 반대했던 사람도 죽는다.

반면 스스로 탐사를 선택한 콘래드와 위버는 살아남는다.

물론 위험을 감수하고 참가한 사람이 살아남았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들도 목숨을 걸고 살아남기 위해 싸웠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른 데 있다.

선택할 수 있었던 사람과 선택할 수 없었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돈을 받고 위험을 감수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섬에 들어갔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저 상부의 명령에 따라야 했다.

정작 목숨을 잃은 사람들 가운데는 애초에 그 섬에 가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대목이었다.

5.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랜다도 결국 섬에서 죽는다. 그러니 그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위험을 알고 있었는가. 누가 탐사를 추진했는가. 누가 군대의 지원을 요청했는가. 그리고 그 위험을 함께 감수해야 할 사람들에게 무엇을 알려주었는가.

영화는 이런 질문에 충분히 답하지 않는다.

오히려 패커드는 콩에게 복수하려는 집착적인 군인으로, 콘래드와 위버는 콩을 이해하고 보호하려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는 사이 정작 모든 사건의 출발점이었던 랜다와 모나크의 책임은 괴수들의 싸움 속에 묻혀버린다.

콩은 자기 영역을 지키려고 싸웠다. 인간들이 먼저 폭발물을 터뜨렸고, 그 소란으로 섬의 위험한 생명체들까지 깨어났다.

반면 랜다는 자신이 믿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험 속으로 데려갔다.

누가 더 괴물다운 행동을 했는가.

나는 콩보다 랜다가 훨씬 무서웠다.

영화 마지막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섬에 불시착해 오랫동안 고립되었던 말로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간다. 아내를 만나고, 그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아들도 만난다.

그 장면은 반갑고 따뜻하다.

그런데 문득 생각한다.

말로는 수십 년 만에 집으로 돌아갔지만, 이제 막 전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패커드의 부하들 가운데 일부는 영영 돌아가지 못했다.

전쟁터에서도 살아남았던 사람들이, 전쟁이 끝나가는 마당에 누군가의 탐사 욕심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괴수영화에서 이런 것까지 따져야 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애먼 군인들이 죽어 나갔는데, 누가 그들을 그 섬으로 보냈는지는 따져봐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에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벌이는 사람이 있고, 그 일을 수습하느라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무 잘못도 없이 희생되는 사람도 있다.

《콩: 스컬 아일랜드》도 결국 그런 이야기로 보였다.

6. 사람은 죽어도 조직은 살아남는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쿠키 영상에서 살아남은 콘래드와 위버는 모나크 관계자들을 만난다. 그들은 다른 거대 생명체들의 존재를 보여준다. 고질라, 모스라, 로단, 킹 기도라. 스컬 아일랜드의 콩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괴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랜다는 죽었다. 패커드도 죽었다. 수많은 군인과 조사원들도 죽었다. 그런데 모나크는 여전히 건재하다.

섬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모나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오히려 새로운 거대 생명체들을 보여주며 다음 이야기를 준비한다.

모나크라는 조직 전체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는 영화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조직의 인물이 위험한 탐사를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된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조직은 다음 일을 준비한다.

하긴, 모나크까지 책임을 물어 해체해 버리면 다음 영화는 누가 만들겠는가.

영화 제작진 입장에서는 후속작을 위한 장치겠지만, 앞서 희생된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참으로 씁쓸한 결말이다.

사람은 죽고 조직은 살아남는다. 일을 벌인 사람은 사라져도 그 조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 사업을 준비한다.

어디 영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겠는가.

결국 이 영화에는 두 종류의 괴물이 등장한다.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괴물과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남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는 인간.

영화의 제목은 《콩: 스컬 아일랜드》지만, 내가 본 가장 큰 괴물은 콩이 아니었다.

빌 랜다. 바로 그 인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13번째 전사
마이클 크라이튼 외 감독, 안토니오 반데라스 외 출연 / 키노필름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감상보고서] 『13번째 전사』
― 야만인의 땅에서 전우를 만나다

“내 이름은 아메드 이븐 파할란, 이븐 알라바스, 이븐 라시드 이븐 하마드.”

1999년 존 맥티어난 감독의 『13번째 전사』는 오래전에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거칠고 묵직한 바이킹 액션영화였다. 안개 속에서 나타나는 벤돌, 곰가죽을 뒤집어쓴 전사들, 산등성이를 거대한 불의 용처럼 내려오는 횃불의 행렬,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발할라를 이야기하는 불바이와 북구 전사들의 모습이 강하게 남았다.

그런데 다시 들여다보니 이 영화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실제 10세기 아랍 여행가 아흐마드 이븐 파들란의 기록을 출발점으로 삼고, 그 위에 고대 영웅서사시 『베오울프』의 이야기를 얹었다. 실존 인물을 전설 속으로 밀어 넣고, 신화 속 괴물을 인간으로 바꾸고, 서로 말조차 통하지 않던 아랍인과 북구인들을 열세 명의 전사로 묶는다.

한쪽에는 세계 최고의 도시라고 자부하는 바그다드에서 온 시인 아메드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그가 처음에는 야만인이라고 여겼던 북구의 전사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사람인지 괴물인지조차 알 수 없는 벤돌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영화는 단순하지만 꽤 묵직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서로 말도 통하지 않고, 믿는 신도 다르고, 살아온 방식도 전혀 다른 사람들이 과연 서로를 이해하고 목숨까지 맡길 수 있는가.

『13번째 전사』는 그 답을 열세 명의 전사들에게 맡긴다.


1. 바그다드의 시인, 사실상의 유배길에 오르다

아메드 이븐 파들란에게 세상의 중심은 바그다드다. 글을 읽고 시를 쓰며, 예법과 문명을 알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권력자의 아내와 불륜 관계를 맺은 것이 문제가 되면서 머나먼 북쪽으로 사절 임무를 받아 떠나게 된다. 명목은 외교사절이지만 영화 속 아메드의 처지에서 보면 사실상 추방이고 유배다.

그렇게 문명의 중심에서 살던 시인이 자신이 ‘야만인의 땅’이라고 여기는 곳으로 밀려난다.

아메드가 처음 만난 북구인들은 자신이 살아온 세계와 너무 다르다. 술을 마시고, 큰소리로 웃고, 싸우고, 죽은 왕을 불태우며 죽음을 삶의 일부처럼 받아들인다. 식사와 위생에 관한 습관조차 아메드의 눈에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당연히 그에게 북구인들은 야만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북구인들에게도 아메드는 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자기들보다 작은 몸집에, 그들이 보기에는 개만 한 아라비아 말을 타고 나타난 남쪽 사람이다. 커다란 북구식 검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우습게 본다.

영화는 바로 그 거리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마지막에 아메드가 북구인들을 바라보는 모습을 생각하면 처음의 이 거리감이 더욱 중요하다.

처음에는 문명인과 야만인이었다.

마지막에는 전우가 된다.


2. 열세 번째 전사는 북구인이 아니어야 한다

불바이가 등장하면서 아메드의 개인적인 유배 이야기는 갑자기 영웅서사로 넘어간다.

불바이는 북구 전사들 가운데에서도 특별한 존재다. 그가 말이 많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자신이 얼마나 용감한지 떠벌리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끊임없이 명령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판단을 기다리고, 싸움이 시작되면 그가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다.

그런 불바이에게 흐로스가르의 나라에서 전령이 찾아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이 마을을 습격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있으며,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더 이상 막아낼 수 없으니 도와달라는 것이다.

무녀가 뼈를 던져 점을 친다.

그곳으로 갈 전사는 열세 명이어야 한다.

전사들이 하나씩 정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열세 번째.

열세 번째 전사는 북구인이 아니어야 한다.

그 한마디 때문에 아무 상관도 없던 아메드가 갑자기 전쟁에 끌려 들어간다. 아메드는 전사가 아니다. 불바이나 다른 북구인들처럼 전투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죽음을 명예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도 아니다.

그런 사람이 열세 번째 전사가 된다.

그래서 『13번째 전사』는 처음부터 강했던 영웅들이 괴물을 무찌르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히려 전사가 아니었던 아메드가 어떻게 그들 사이의 한 사람이 되고, 마침내 서로 목숨을 맡기는 전우가 되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3. 벤돌, 괴물의 얼굴을 한 인간

흐로스가르의 사람들에게 벤돌은 평범한 적이 아니다.

안개와 함께 나타난다. 사람을 죽이고 머리를 잘라 가져간다. 시체를 먹는다. 곰가죽을 뒤집어쓰고 공격한다. 산등성이를 따라 수많은 횃불을 들고 내려오는 모습은 거대한 불의 용처럼 보인다.

더 무서운 것은 싸움이 끝난 다음이다.

분명히 죽였는데 벤돌의 시체가 남아 있지 않는다. 자기편의 시체를 모두 가져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살아남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벤돌은 점점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된다.

칼에 맞아도 죽지 않는 놈들.
안개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놈들.
죽은 사람을 먹는 놈들.
곰인지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는 놈들.

공포는 실제보다 더 큰 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불바이와 전사들이 벤돌을 상대하면서 그 공포의 껍질이 하나씩 벗겨진다. 그리고 결국 확인하게 되는 사실은 너무나 단순하다.

벤돌은 인간이다.

곰가죽을 벗기면 사람의 얼굴이 나온다. 칼에 맞으면 피를 흘리고 죽는다.

나는 이 순간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괴물이라고 믿는 동안에는 싸울 방법이 없다. 인간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싸울 수 있다.

『베오울프』에 등장하는 초자연적 괴물 그렌델을 영화는 이런 식으로 다시 만들었다. 진짜 괴물을 등장시키는 대신 사람들이 두려움 때문에 괴물이라고 믿게 된 인간 집단을 등장시켰다.

괴물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은 곧 공포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이다.


4. 아메드는 귀로 배우고, 불바이는 눈으로 배운다

이 영화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처음에는 북구인들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던 아메드가 모닥불 주변에 앉아 그들의 말을 계속 듣는다.

처음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소음이다. 하지만 아메드는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행동을 보고, 반복되는 말을 듣고, 같은 상황에서 사용되는 단어를 연결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단어가 들린다.

조금 뒤에는 문장이 들린다.

마침내 자신과 자기 어머니를 두고 농담하는 북구인의 말을 알아듣고 그들의 언어로 받아친다. 놀란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말을 배웠느냐고 묻자 아메드는 간단하게 대답한다.

들었다고.

실제로 그렇게 짧은 시간에 외국어를 완벽하게 습득한다는 것은 영화적 과장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현실적인 어학학습을 보여주려는 장면이 아니다.

아메드가 북구인들의 세계 바깥에서 구경하던 사람에서 그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영화가 아메드만 배우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메드가 자기들의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불바이가 아메드의 글에 관심을 가진다.

불바이는 아메드에게 소리를 글자로 그릴 수 있느냐는 식으로 묻는다. 말을 소리로만 기억하는 사람의 눈에 문자는 ‘소리를 그려놓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메드가 땅에 글을 쓴다.

불바이는 그것을 유심히 본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도 그 모양을 기억해 바닥에 써본다. 아랍어를 유창하게 익힌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메드가 사용하는 문자를 보고 그것을 스스로 따라 써본 것이다.

이 장면이 참 좋다.

아메드는 귀로 북구인의 세계에 들어갔고, 불바이는 눈으로 아메드의 세계에 들어가려 한다.

한쪽만 배우는 관계가 아니다.

아메드가 북구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불바이가 아랍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서로의 문화를 완전히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다만 상대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조금씩 들여다본다.

나중에 두 사람이 서로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사이가 되는 출발점은 어쩌면 칼을 함께 휘두른 순간보다 이런 작은 장면들이었을지도 모른다.


5. 벤돌보다 먼저 무너져 있던 나라

그러나 벤돌이 강한 이유를 벤돌에게서만 찾으면 안 된다.

흐로스가르의 나라는 이미 내부에서 약해져 있다.

마을은 제대로 된 방어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다. 더 답답한 것은 밖에서 벤돌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는데도 안에서는 권력과 후계를 둘러싼 의심과 다툼이 계속된다는 점이다.

자기 힘으로 해결하지 못해 불바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정작 불바이가 도착해 백성들의 신뢰를 얻자 이번에는 불바이를 경계한다.

저 사람이 우리를 구하러 온 것인가.
아니면 왕국을 차지하려는 것인가.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왕자리 걱정부터 한다.

나는 이 대목이 단순한 곁가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벤돌은 단결해 있다.

흐로스가르 쪽은 갈라져 있다.

벤돌은 자신들의 지도자와 신앙을 믿는다.

흐로스가르 쪽은 서로를 믿지 못한다.

그 상태에서 벤돌의 정체조차 인간인지 괴물인지 모르니 공포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불바이가 상대해야 했던 것은 벤돌의 칼만이 아니었다.

괴물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 서로를 믿지 못하는 내부의 불신까지 함께 상대해야 했다.

외부의 적 앞에서도 버리지 못하는 권력욕과 의심.

어쩌면 벤돌보다 먼저 이 나라를 약하게 만든 진짜 적은 그쪽이었는지도 모른다.


6. 모두 죽일 수 없다면 뿌리를 친다

불바이는 벤돌을 한 명씩 모두 죽여 전쟁을 끝내려 하지 않는다.

애초에 불가능하다.

열세 명의 전사가 아무리 강해도 수적으로 압도적인 벤돌족 전체를 칼로 베어 없앨 수는 없다. 첫 전투부터 동료들이 하나씩 죽어간다.

그러자 방향이 달라진다.

벤돌을 움직이는 뿌리를 찾아야 한다.

정신적 중심인 ‘어머니’, 그리고 뿔을 쓴 군사적 우두머리.

그 둘을 없애야 한다.

불바이 일행은 벤돌이 숨어 사는 동굴까지 들어간다. 폭포 뒤에 감춰진 동굴 안에는 그동안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서 상상했던 벤돌의 세계가 실제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뼈와 시체, 식인의 흔적, 그리고 그 집단의 중심에 있는 벤돌의 어머니.

불바이는 마침내 그녀를 죽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독에 당한다.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불바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그런데 벤돌의 어머니를 죽였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벤돌을 전투로 이끄는 우두머리다.

그리고 마지막 공격에서 불바이는 죽어가는 몸으로 다시 일어나 그 우두머리와 맞선다.

우두머리가 죽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벤돌의 전사들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런데 싸움을 멈춘다.

그리고 물러난다.

열세 명의 전사가 벤돌족을 몰살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싸움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들었던 정신적 중심과 군사적 중심을 무너뜨렸다.

그래서 이 전쟁의 승리는 숫자의 승리가 아니다.

적의 뿌리를 찾아 끊어낸 승리다.


7. 두 개의 기도, 그리고 불바이의 마지막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아메드는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한다.

예전에 이 영화를 보고 적어두었던 기도문이 지금 다시 보아도 마음에 남는다.

우리가 생각했던 모든 것과
생각하지 못한 모든 것,

우리가 말했던 모든 것과
말하지 않았던 모든 것,

우리가 행했던 모든 것과
행하지 않았던 모든 것을,

신이시여, 부디 용서하소서!

아메드의 기도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바로 곁에서는 전혀 다른 신을 믿는 북구 전사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한다.

보라, 저기 나의 아버지가 보인다.
보라, 저기 나의 어머니와 자매들, 형제들이 보인다.
보라, 태초까지 이어지는 내 민족의 혈통이 보인다.
보라, 그들이 나를 부른다.
그들은 내게 그들 가운데 자리를 잡으라 한다.
발할라의 전당에서,
용감한 자들이 영원히 살아가는 그곳에서.

나는 이 기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살려달라는 말이 없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살아 돌아오게 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적을 모두 죽이게 해달라고 빌지도 않는다.

죽음을 이미 받아들인다.

대신 죽은 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를 말한다.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와 형제자매가 있고, 태초부터 이어져 온 조상들이 기다리는 곳.

발할라의 전당.

죽음을 피하려는 기도가 아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기도다.

이슬람교도인 아메드는 발할라를 믿지 않는다.

북구인들은 아메드가 믿는 알라를 믿지 않는다.

그런데 마지막 전투를 앞둔 순간 두 기도는 이상할 정도로 닮아 있다.

자기 앞에 놓인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믿는 신과 죽은 자들에게 마음을 맡긴다.

같은 신을 믿어서 전우가 된 것이 아니다.

믿는 신이 다른 상태 그대로 서로를 위해 싸운다.

그리고 불바이는 이미 죽어가고 있다.

벤돌의 어머니에게 당한 독이 몸에 퍼져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워서 죽음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자 불바이는 다시 몸을 일으킨다.

나는 이 장면 때문에 불바이를 단순히 힘센 바이킹 전사로만 볼 수가 없다.

그에게 지도자는 뒤에서 사람들에게 싸우라고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가장 마지막까지 앞에 서는 사람이다.

불바이는 벤돌의 우두머리를 쓰러뜨린다.

그 순간 벤돌들은 싸움을 멈추고 물러난다.

나라를 구한 뒤 불바이도 조용히 죽는다.

왕좌처럼 보이는 자리에 앉아 숨을 거두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조금 전 전사들이 읊었던 기도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발할라의 전당에서,
용감한 자들이 영원히 살아가는 곳.

실제 바이킹들이 저 기도문을 그대로 읊었는가 하는 역사적 문제와는 별개다.

영화 속 불바이에게만큼은 그 기도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

처음에는 북구인들을 야만인이라고 바라보던 아메드도 이제 그들을 다른 눈으로 본다.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자신을 위해 피를 흘리고, 결국 목숨까지 내놓은 사람들이다.

종교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살아온 세계도 달랐지만, 이제 그 차이보다 함께 흘린 피가 더 중요해졌다.

바그다드의 시인은 그렇게 열세 번째 전사가 되었다.


8. 볼가강의 롱십, 그래도 이것만은 못 넘어가겠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다가도 지도를 한번 펼치면 도저히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문제가 하나 있다.

불바이의 배다.

실제 이븐 파들란이 10세기 볼가강 유역에서 루스인들을 만났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스칸디나비아계 사람들이 발트해에서 동유럽의 강과 호수를 이용해 러시아 내륙으로 들어왔고, 볼가강 유역까지 교역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영화 화면에 실제로 등장하는 배다.

불바이가 타는 것은 몇 사람이 어깨에 둘러메고 옮길 수 있는 작은 카누나 하천용 조각배가 아니다.

분명 롱십 계열이다.

긴 선체에 여러 개의 노가 있고 돛대가 서 있다.

그리고 불바이 주변의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볼가강은 스칸디나비아반도까지 흐르는 강이 아니다.

발트해와 볼가강을 오가려면 여러 강과 호수를 이어가야 하고 수계가 끊기는 곳에서는 육상을 넘어야 한다.

흔히 바이킹의 동방교역로를 설명하면서 “배를 육지로 끌어 옮겼다”고 간단하게 말한다.

말은 쉽다.

배를 끌었다.

하지만 실제로 배를 물에서 육지로 꺼내는 순간부터 일이 시작된다.

짐을 내려야 하고, 선체를 물 밖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통나무나 썰매 같은 운반수단도 마련해야 한다. 사람이나 가축의 힘으로 배를 끌어 분수령을 넘어야 하고, 다른 수계에 도착하면 다시 배를 물에 내려 띄워야 한다.

아무리 바이킹 배가 흘수가 얕고 다른 대형 선박보다 가볍다고 해도 영화에 나온 것은 분명 롱십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공략 당시 메흐메드 2세가 함선을 육지로 넘겨 골든혼에 집어넣었던 일을 떠올린다.

오스만 제국은 국가였다.

군대가 있었다.

많은 인력과 물자, 가축과 장비를 동원할 수 있었다.

그런 국가가 비교적 짧은 육상구간을 넘기는 것조차 대규모 작전이었다.

그런데 불바이는 제국의 황제가 아니다.

동인도회사처럼 곳곳에 지점과 인력과 물류망을 갖춘 거대한 상단의 주인도 아니다.

영화 화면에서 그 주변을 따라다니는 전사도 많지 않다.

그 인원으로 저 롱십을 몰고 볼가강과 발트해 사이의 수계를 오간다?

나는 이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물론 바이킹이 볼가강까지 왔다는 역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올 수 있다.

물건도 올 수 있다.

실제로 교역망도 존재했다.

구간마다 배를 갈아탈 수도 있었을 것이고, 화물을 내려 육로로 옮긴 뒤 다른 강에서 다른 배에 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현지의 인력과 현지 운송수단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

그런 복합적인 장거리 물류망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과 물자가 이동했다는 사실과 영화에 보이는 저 롱십 한 척을 소수의 불바이 일행이 그대로 끌고 다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길이 있다는 것과 저 배로 그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내게 이것은 단순한 옥의 티가 아니다.

실제 이븐 파들란이라는 인물을 끌어오고, 그가 실제로 볼가강에서 루스인들을 만났던 역사적 사실까지 이용한 영화라면 정작 그곳에서 다시 북유럽으로 이동하는 과정도 조금은 생각했어야 한다.

이 부분만큼은 지리와 수송에 관한 고증을 제대로 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커다란 허점을 알고 난 뒤에도 『13번째 전사』가 싫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왜일까.

아마 이 영화가 결국 배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여행가 이븐 파들란을 『베오울프』의 세계로 데려간 발상은 여전히 재미있다. 신화 속 괴물을 벤돌이라는 인간 집단으로 바꾼 것도 흥미롭다. 괴물의 공포를 벗겨내고 인간임을 확인한 뒤 그들의 정신적·군사적 중심을 무너뜨리는 과정도 좋다.

무엇보다 서로를 야만인과 이방인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이 함께 싸우면서 전우가 되는 과정이 좋다.

아메드는 북구인들의 말을 귀로 듣고 배운다.

불바이는 아메드가 쓰는 글자를 눈으로 보고 배운다.

아메드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하고, 불바이는 마지막까지 발할라를 향한다.

어느 누구도 상대에게 자기 신을 버리라고 하지 않는다.

같은 신을 믿어서 친구가 된 것이 아니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음식을 나누고, 같은 적과 싸우고, 서로를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에 전우가 된다.

그래서 『13번째 전사』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도를 펼치면 롱십 앞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지만, 불바이가 죽어가는 몸을 일으키는 순간 다시 영화를 보게 만드는 이야기.


발할라의 전당.

용감한 자들이 영원히 살아가는 곳.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블루레이] 플래툰 - 아웃케이스 없음
올리버 스톤 감독, 윌렘 데포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플래툰』 등장인물의 서사적 기능과 역할


1. 사건의 중심인물

가. 크리스 테일러(찰리 신, 이병)

ㅇ(주요 시점 인물) 대학을 중퇴하고 스스로 베트남전에 자원한 신병으로, 영화 전체를 그의 시점과 내레이션을 통해 따라가게 되는 주인공이자 관객의 대리자

ㅇ(이상주의적 출발) 전쟁과 군 복무에 일정한 명분과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원하지만, 실제 전장에서 죽음과 폭력·민간인 학대·내부 갈등을 경험하며 전쟁의 실체를 깨닫게 됨

ㅇ(일라이어스 파 합류) 부상에서 복귀한 뒤 킹을 통해 일라이어스 파 병사들과 가까워지고, 점차 일라이어스의 인간성과 전쟁관에 동조

ㅇ(두 리더 사이의 성장) 일라이어스와 반스라는 뛰어난 실무능력을 갖췄으면서도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두 고참병을 경험하며 인간성과 폭력이라는 전쟁의 두 얼굴을 학습

ㅇ(폭력의 직접 행사) 일라이어스가 반스에게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지막 전투 후 부상당한 반스를 직접 사살함으로써 자신 역시 전쟁의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변화

ㅇ(최종 자기자각) 일라이어스와 반스를 자신의 영혼을 놓고 싸운 두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며, 전쟁의 진짜 적이 외부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 조직 내부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영화의 중심인물


2. 일라이어스 파 ― 인간성과 동료애

가. 일라이어스 그로딘(윌렘 데포, 하사)

ㅇ(일라이어스 파의 중심) 반스와 함께 소대 내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가진 베테랑 하사관으로, 일라이어스 파 병사들의 실질적인 리더

ㅇ(실무능력과 인간성) 풍부한 전투경험과 뛰어난 판단력을 갖췄으면서도 민간인과 부하를 인간으로 대하며 전쟁 속에서도 최소한의 윤리와 원칙을 유지

ㅇ(반스와의 가치관 대립) 생존과 임무를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반스와 달리 민간인 보호와 군의 기본원칙을 중시하여 소대 내부의 상반된 가치관을 대표

ㅇ(마을 사건의 제동자) 반스가 촌장의 아내를 살해하고 주민들을 위협하자 이를 강하게 제지하고 상부에 보고하려 하면서 반스와의 갈등이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발전

ㅇ(반스에 의한 제거) 전투 중 북베트남군의 측면 공격을 막기 위해 움직이다 반스의 총격을 받고 버려진 뒤 적군의 추격 속에서 전사

ㅇ(크리스의 정신적 스승) 크리스에게 전쟁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신적 아버지이자 도덕적 기준점


나. 킹(키스 데이비드, 병사)

ㅇ(신병의 안내자) 부상에서 복귀한 크리스를 일라이어스 파 병사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데려가 소대 내 인간관계와 생활방식을 알려주는 고참병

ㅇ(현실적 전쟁관) 전쟁을 명예나 승리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문제로 바라보는 현실적인 태도를 지님

ㅇ(크리스의 조직 적응) 크리스가 일라이어스·라·빅 해럴드 등과 가까워지고 일라이어스 파에 자연스럽게 편입되는 데 중요한 역할

ㅇ(생환의 상징) 복무기간을 채우고 마지막 대규모 전투 직전에 전장을 떠나면서 병사들이 꿈꾸는 가장 현실적인 목표인 ‘살아서 귀국하기’를 보여줌


다. 라(Rhah)(프란체스코 퀸, 병사)

ㅇ(자유분방한 고참병) 두건을 쓰고 독특한 말투와 행동을 보이며 일라이어스 파 특유의 자유롭고 비권위적인 분위기를 대표

ㅇ(일라이어스의 측근) 일라이어스와 가까운 고참병으로 정찰과 전투에서 함께 행동하며 일라이어스 파의 핵심 구성원 역할

ㅇ(정신적 해설자) 전쟁과 죽음을 다소 철학적이고 운명론적으로 바라보며, 일라이어스가 죽은 뒤에도 그의 죽음을 복수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라고 크리스에게 조언

ㅇ(마지막 생존자) 일라이어스가 죽은 뒤에도 크리스와 함께 전투를 이어가며 마지막 대규모 전투에서도 살아남아 크리스를 배웅


라. 빅 해럴드(포레스트 휘태커, 병사)

ㅇ(인간적인 고참병) 큰 체격과 달리 비교적 온화하고 동료를 잘 챙기는 성격으로 일라이어스 파의 인간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인물

ㅇ(강한 전우애) 첫 전투에서 부상당한 크리스와 동료들을 돕는 등 신병에게도 거리낌 없이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여줌

ㅇ(폭력에 대한 양심) 마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대와 소대 내부의 폭력적인 분위기에 불편함을 느끼며 전쟁 속에서도 양심을 유지하는 병사의 모습을 보여줌

ㅇ(전쟁의 현실적 희생) 이후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후송되어 최종 전투에서는 제외되며 살아남는 과정 역시 부상과 상실을 동반한다는 현실을 보여줌


마. 프랜시스(코리 글로버, 병사)

ㅇ(크리스의 전우) 일라이어스 파 병사들과 어울리며 크리스와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고 마지막 전투까지 함께함

ㅇ(최종 전투의 생존자) 북베트남군의 대규모 공격에서 크리스와 같은 진지에서 싸우며 극심한 전투 끝에 살아남음

ㅇ(극단적 생존본능) 전투가 끝난 뒤 스스로 허벅지를 찔러 부상을 만들어 후송 대상이 되면서 명예나 전공보다 전장에서 벗어나 살아남는 것을 우선하는 병사의 현실을 보여줌

ㅇ(크리스의 귀환 확인) 크리스 역시 두 번째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귀국할 수 있음을 알려주어 두 사람이 베트남을 떠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역할


바. 게이터 러너(조니 뎁, 이병)

ㅇ(베트남어 통역) 베트남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여 마을 수색 과정에서 주민과 미군 사이의 통역을 담당

ㅇ(민간인과 미군의 연결) 촌장이 설명하는 마을의 상황과 북베트남군의 강압을 미군에게 전달하면서 양측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함

ㅇ(통역의 한계) 주민의 설명이 정확하게 전달되더라도 이미 분노와 의심에 사로잡힌 반스의 폭력을 막지는 못해 전쟁에서 언어와 합리적 설명이 무력화되는 모습을 보여줌

ㅇ(기능적 조연) 출연 분량은 많지 않지만 마을 사건의 전개와 미군·베트남 민간인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역할을 담당


사. 크로퍼드(크리스 페더슨, 병사)

ㅇ(일라이어스 파 구성원) 일라이어스 파 병사들이 함께 모이는 공간에서 생활하며 크리스가 이 집단에 들어가는 초기부터 함께하는 인물

ㅇ(전투 동료) 일라이어스와 함께 정찰과 전투에 참여하여 일라이어스 파가 단순한 친목집단이 아니라 실제 전투에서도 함께 행동하는 전우집단임을 보여줌

ㅇ(부상 후 후송) 이후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후송되어 마지막 대규모 전투에는 참여하지 못함


아. 닥 고메즈(폴 산체스, 의무병)

ㅇ(소대 의무병) 전투 중 발생하는 부상병을 응급처치하고 후송을 지원하는 소대의 의료담당 병사

ㅇ(생명을 살리는 역할) 공격과 살상이 중심이 되는 전장에서 부상병을 살리는 임무를 수행하여 다른 전투병들과 대비되는 기능을 담당

ㅇ(전쟁의 피해 목격자) 전투의 승패보다는 죽고 다치는 병사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면서 전쟁이 인간의 육체에 남기는 피해를 직접 보여주는 인물


자. 매니(코키 포드, 병사)

ㅇ(일라이어스 파 병사) 일라이어스 파 병사들과 함께 어울리며 소대 생활을 하던 병사

ㅇ(참혹한 희생) 정찰 중 실종된 뒤 적에게 살해된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되어 소대원들의 충격과 분노를 불러일으킴

ㅇ(마을 사건의 촉발) 그의 죽음을 계기로 소대원들의 복수심과 적개심이 높아지고 이후 베트남 마을 수색에서 폭력이 폭발하는 심리적 배경을 형성

ㅇ(피해자에서 가해자로의 전환) 미군 병사들이 전우를 잃은 피해자의 위치에서 민간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의 위치로 넘어가는 서사의 전환점을 제공


3. 반스 파 ― 폭력과 생존의 논리

가. 밥 반스(톰 베린저, 중사)

ㅇ(반스 파의 중심) 소대의 최고참급 부사관으로 정식 소대장인 울프 소위보다 강한 현장 영향력과 전투경험을 가진 실질적인 리더

ㅇ(탁월한 전투능력) 수많은 전투에서 살아남은 경험과 강한 판단력·결단력을 바탕으로 위기상황에서 소대원들이 의지하는 강력한 현장 지휘력을 발휘

ㅇ(생존 우선의 가치관) 전쟁에서는 살아남고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모든 판단보다 중요하다고 믿으며 이를 위해 폭력과 불법행위까지 허용

ㅇ(민간인 폭력) 마을 수색에서 주민을 적과 협력한다고 의심하고 촌장의 아내를 살해하며 딸까지 위협하여 군인의 윤리와 민간인 보호원칙을 무너뜨림

ㅇ(일라이어스 제거) 자신의 행위를 상부에 보고하려는 일라이어스를 위협으로 판단하고 전투 중 직접 총격을 가한 뒤 적군에게 죽은 것처럼 위장

ㅇ(유능하기 때문에 위험한 리더) 단순한 폭력배가 아니라 실제로 뛰어난 실무능력과 생존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부하들이 그의 판단을 신뢰하고 따르며, 그만큼 잘못된 가치관이 조직에 미치는 영향도 큼

ㅇ(전쟁 그 자체의 상징) 생존과 폭력의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 인간적·도덕적 기준을 잃고 스스로가 전쟁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변화

ㅇ(크리스에 의한 최후) 마지막 전투 후 부상당한 상태에서 크리스와 마주치고 크리스의 총격으로 사망하여 일라이어스와의 갈등이 크리스에 의해 최종적으로 결산


나. 레드 오닐(존 C. 맥긴리, 하사)

ㅇ(명확한 반스 파) 반스를 따르는 고참 하사관으로 반스와 술을 마시고 카드놀이를 하는 ‘Juicers’ 집단의 핵심 구성원

ㅇ(권력 편승형 인물) 반스처럼 강한 신념이나 폭력성을 갖기보다 자신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 조직에서 가장 강한 인물인 반스에게 의존하는 기회주의적 성향을 보임

ㅇ(반스의 권위 의존) 소대 내부의 갈등과 조사 가능성이 생길 때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반스의 판단과 영향력에 기대는 모습을 반복

ㅇ(비공식 권력의 추종자) 일라이어스와 반스의 충돌에서 사실상 반스 편에 서면서 강한 비공식 권력에 편승하는 조직 구성원의 전형을 보여줌

ㅇ(역설적인 생존) 마지막 전투에서 시체 아래에 숨어 살아남아 전투력이나 용맹보다 자기보존에 충실한 성격을 다시 드러냄

ㅇ(원치 않은 지휘책임) 전투가 끝난 뒤 해리스 대위로부터 남은 소대를 맡으라는 명령을 받아 자신이 가장 피하고 싶어 했던 책임을 떠맡는 아이러니한 결말을 맞음


다. 버니(케빈 딜런, 병사)

ㅇ(폭력적 추종자) 반스 파의 대표적인 젊은 병사로 반스의 폭력적인 전쟁관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인물

ㅇ(강한 적개심) 베트남인 전체를 적과 동일시하는 공격적 태도를 보이며 전쟁 속에서 적과 민간인을 구별하는 기준을 잃어감

ㅇ(민간인 살해) 마을 수색 과정에서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는 장애가 있는 베트남 청년을 살해하여 전쟁이 병사를 가해자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줌

ㅇ(반스 적극 옹호) 일라이어스가 반스의 행위를 문제 삼자 일라이어스를 배신자로 여기며 반스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정당화

ㅇ(폭력의 귀결) 마지막 전투에서 북베트남군에게 사살되어 자신이 받아들였던 폭력과 죽음의 세계 속에서 결국 자신도 희생됨


라. 주니어(레지 존슨, 병사)

ㅇ(반스 파의 주변인물) 반스 파 병사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행동하지만 버니처럼 반스의 폭력성을 적극적으로 추종하는 인물은 아님

ㅇ(신병과의 갈등) 초반 야간 매복에서 경계근무 문제로 크리스와 충돌하면서 신병과 고참병 사이의 불신과 긴장을 보여줌

ㅇ(불안과 자기보존) 힘든 임무와 전투를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위험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여 영웅적 군인상과 대비되는 평범한 병사의 모습을 나타냄

ㅇ(반스 파 내부의 차이) 마을에서 벌어진 일부 폭력에 불편한 반응을 보이는 등 반스 쪽에 속해 있더라도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가치관을 가진 것은 아님을 보여줌

ㅇ(공포 속의 최후) 마지막 전투에서 극심한 공포 속에 진지를 벗어나려다 살해되어 전쟁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줌


마. 워런(토니 토드, 하사)

ㅇ(반스 쪽 고참 하사관) 소대를 이끄는 고참 하사관 가운데 한 명으로 일라이어스와 반스의 대립에서는 상대적으로 반스의 입장에 가까운 모습을 보임

ㅇ(반스의 실무능력 인정) 반스가 지금까지 자신들을 살아남게 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의 경험과 전투능력을 높이 평가

ㅇ(현실적 생존논리) 오닐처럼 권력에 기생하거나 버니처럼 폭력을 적극적으로 즐기기보다는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스의 실무능력을 인정하는 현실적인 태도

ㅇ(반스 영향력의 근거) 반스의 권력이 단순히 공포와 폭력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전투능력과 생존경험에 대한 병사들의 신뢰에도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인물


4. 공식 지휘부

가. 울프(마크 모지스, 소위)

ㅇ(공식 소대장) 계급상 소대 전체를 지휘하는 정식 지휘관으로 반스와 일라이어스보다 공식적인 권한은 위에 있는 인물

ㅇ(현장경험 부족) 실전경험과 위기대응 능력이 부족하여 실제 전투에서는 반스·일라이어스 같은 고참 하사관들의 판단과 경험에 크게 의존

ㅇ(실질적 통제력 약화) 공식적인 명령권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강한 카리스마와 전투경험을 가진 반스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서 공식권력과 실질권력이 분리

ㅇ(마을 사건 통제 실패) 반스의 민간인 학대와 일라이어스와의 충돌을 효과적으로 제지하지 못하여 소대 내부의 가치관 대립과 파벌화를 방치

ㅇ(포격 좌표 실수) 전투 중 잘못된 포격좌표를 전달하여 아군 진지에 포격이 떨어지는 피해를 발생시키면서 현장 지휘능력의 한계를 드러냄

ㅇ(무능한 공식권력의 상징) 계급과 직위만으로는 실질적인 리더십을 확보할 수 없으며 현장능력과 구성원의 신뢰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인물

ㅇ(마지막 전투 전사) 북베트남군의 대규모 공격에서 진지를 지키다 전사하여 소대의 공식 지휘체계도 사실상 붕괴


나. 해리스(데일 다이, 대위)

ㅇ(중대 지휘관) 크리스와 반스·일라이어스가 속한 중대의 지휘관으로 소대보다 상위에서 작전과 군기를 통제

ㅇ(군 기강 유지) 마을에서 발생한 민간인 살해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군법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보여 반스의 행동이 군 조직 전체의 공식규범과는 충돌하고 있음을 분명히 함

ㅇ(일라이어스 제거의 배경) 일라이어스의 증언이 실제 조사를 촉발할 가능성이 생기면서 반스가 일라이어스를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하게 되는 배경을 형성

ㅇ(극단적 전투지휘) 마지막 대규모 공격에서 진지가 붕괴되자 아군 진지 위로 공중폭격을 요청하는 결단을 내려 전장의 절박한 상황을 보여줌

ㅇ(전쟁의 지속성) 전투 후 살아남은 오닐 하사에게 남은 소대를 맡기면서 수많은 희생이 발생해도 군 조직과 전쟁은 다시 계속된다는 현실을 보여줌


5. 그 밖의 소대원과 전쟁의 희생자

가. 가드너(밥 오윅, 이병)

ㅇ(크리스와 함께 온 신병) 크리스와 비슷한 시기에 소대에 배치되어 처음 베트남전에 들어온 신병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는 인물

ㅇ(초기 희생자) 첫 야간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고 사망하여 신병이 전쟁터에서 얼마나 쉽게 희생될 수 있는지를 보여줌

ㅇ(크리스의 현실 인식) 가드너의 죽음은 크리스가 전쟁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상주의적 기대가 처음으로 깨지는 계기를 제공


나. 텍스(데이비드 나이도프, 병사)

ㅇ(초기 전투의 부상자) 첫 야간 전투에서 크게 부상을 입어 전투 초기에 크리스가 목격하는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줌

ㅇ(야간전의 혼란) 적과 아군의 위치가 불분명한 정글 야간전에서 병사들이 얼마나 쉽게 부상하고 죽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물


다. 살(리처드 에드슨, 병사)

ㅇ(부비트랩 희생자) 정찰 중 적이 남겨둔 진지를 조사하다 설치된 부비트랩에 의해 희생

ㅇ(정글전의 공포) 적군이 직접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함정과 부비트랩으로 언제든 죽을 수 있는 베트남전의 특성을 보여줌

ㅇ(복수심의 증폭) 매니 등의 죽음과 함께 소대원들의 공포와 분노를 증폭시켜 이후 마을에서 집단적인 폭력이 발생하는 심리적 배경을 형성


라. 샌더슨(제이 애덤 글로버, 병사)

ㅇ(부비트랩 피해) 살과 함께 적 진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부비트랩에 희생되는 병사

ㅇ(반복되는 죽음) 소대원들이 연속적으로 희생되는 모습을 통해 살아남은 병사들의 심리와 판단이 점차 거칠어지는 과정을 보여줌

ㅇ(전쟁의 비인간화) 반복되는 동료의 죽음이 구성원의 인간성과 윤리적 판단을 약화시키는 배경을 형성


6. 베트남 마을 주민

가. 마을 촌장(베르나르도 마날릴리)

ㅇ(마을의 대표자) 미군이 수색한 마을을 대표하여 주민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인물

ㅇ(강압에 대한 설명) 마을에 있던 식량과 물자가 주민들의 자발적인 적군 지원 때문이 아니라 북베트남군의 강압 때문이라고 설명

ㅇ(합리적 설명의 무력화) 이미 전우의 죽음과 분노에 사로잡힌 반스가 그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정상적인 심문과 판단이 무너짐

ㅇ(민간인과 적의 경계) 전쟁에서 민간인과 적을 구별해야 한다는 원칙이 공포와 복수심 속에서 얼마나 쉽게 붕괴되는지를 보여주는 인물


나. 촌장의 아내(탄 로저스)

ㅇ(민간인 희생자) 반스가 촌장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항의하다 반스의 총격으로 살해되는 비무장 민간인

ㅇ(폭력의 분기점) 아무런 군사적 위협이 없는 민간인이 살해되면서 마을 수색이 정상적인 군사작전에서 명백한 민간인 학대로 넘어가는 결정적 순간을 형성

ㅇ(일라이어스와 반스의 충돌) 그녀의 죽음이 일라이어스가 반스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소대 내부의 도덕적 대립을 폭발시킴


다. 촌장의 딸(리 티 반)

ㅇ(위협의 대상) 반스가 촌장에게 정보를 말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총을 겨누며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젊은 여성

ㅇ(두 가치관의 대립) 반스에게는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이지만 일라이어스에게는 보호해야 할 민간인으로 두 사람의 전쟁관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냄

ㅇ(인간의 수단화 문제) 목적 달성을 위해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영화의 윤리적 질문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


7. 소대 내부의 두 세력

가. 일라이어스 파

ㅇ(중심인물) 일라이어스 하사를 중심으로 크리스·킹·라·빅 해럴드·프랜시스·러너·크로퍼드·닥·매니 등이 형성한 소대 내부의 하위 그룹

ㅇ(인간성과 동료애) 강압적 군기보다 개인적인 신뢰와 전우애를 중심으로 결속하며 전쟁 중에도 최소한의 인간성을 유지하려는 성향

ㅇ(자유로운 병사문화) 대마초를 피우고 음악을 들으며 어울리는 ‘Heads’ 집단으로 반스 파의 술·카드 중심 문화와 대비

ㅇ(최소한의 직업윤리) 적군과 민간인을 구별하고 불필요한 폭력을 경계하며 군인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을 공유

ㅇ(크리스의 가치관 형성) 크리스가 이들과 생활하면서 일라이어스의 가치관에 영향을 받고 소대 내부에서 사실상 일라이어스 파에 속하게 됨


나. 반스 파

ㅇ(중심인물) 반스 중사를 중심으로 오닐 하사·버니·주니어·워런 하사 등이 형성한 소대 내부의 또 다른 하위 그룹

ㅇ(생존과 전투력 중심) 인간적 가치보다 강한 전투능력과 생존경험을 중시하며 반스의 실무능력과 권위에 의존

ㅇ(권력 편승형 추종) 오닐은 자신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 강한 권력을 가진 반스에게 붙는 기회주의적 구성원의 모습을 대표

ㅇ(폭력적 가치관 수용) 버니는 반스의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전쟁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민간인에게까지 폭력을 행사

ㅇ(다양한 추종 동기) 주니어와 워런은 오닐·버니처럼 적극적인 추종자는 아니며 공포·생존·전투경험 등 서로 다른 이유로 반스 쪽에 위치

ㅇ(비공식 권력집단) 정식 지휘관인 울프 소위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반스의 실무능력과 권위를 중심으로 사실상의 비공식 권력집단을 형성


8. 세 중심인물의 서사적 관계

가. 일라이어스 ― 인간성과 양심

ㅇ(인간성의 상징) 전쟁을 충분히 경험하고도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과 법이 존재한다고 믿는 인물

ㅇ(유능하고 윤리적인 리더) 풍부한 실무경험과 전투능력을 갖추면서도 민간인 보호와 동료에 대한 인간적인 태도를 포기하지 않음

ㅇ(정신적 아버지) 크리스에게 전쟁 속에서도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신적 스승이자 아버지 역할


나. 반스 ― 폭력과 생존

ㅇ(전쟁의 폭력성) 살아남고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고 믿으며 전쟁의 논리를 극단적으로 체화

ㅇ(유능하지만 위험한 리더) 뛰어난 실무능력과 현장 장악력을 갖췄지만 윤리와 절차가 결여되어 조직과 구성원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

ㅇ(또 하나의 정신적 아버지) 크리스에게 전쟁이 인간을 어디까지 변화시키고 폭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아버지 역할


다. 크리스 ― 두 세계 사이의 인간

ㅇ(두 가치관의 경험) 일라이어스의 인간성과 반스의 폭력성을 동시에 목격하면서 전쟁과 조직이 가진 선과 악을 함께 학습

ㅇ(일라이어스 선택) 가치관으로는 일라이어스의 인간성과 원칙에 동조하지만 실제 전장에서 반스가 가진 힘과 생존논리 역시 피할 수 없이 경험

ㅇ(폭력의 역설) 반스를 거부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자신의 손으로 반스를 사살하여 결국 반스가 상징하던 폭력을 자신 역시 행사

ㅇ(두 아버지의 내재화) 일라이어스와 반스 가운데 한 사람만을 완전히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가 자신의 일부가 되었음을 깨달음

ㅇ(영화의 핵심구도) 『플래툰』의 중심 갈등은 미군과 북베트남군의 전투뿐 아니라 크리스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인간성과 폭력의 충돌로 귀결

※ 핵심 관계 : 일라이어스(인간성·양심) ← 크리스 테일러 → 반스(폭력·생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