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스컬 아일랜드 (1disc)
조던 보트 로버츠 감독, 존 굿맨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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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컬 아일랜드 탐사사업 사전 행정절차 및 안전관리 실태 검토보고

— 영화 《콩: 스컬 아일랜드》(2017)를 통해 본 무분별한 사업 추진의 폐해와 사전 행정절차의 중요성

※ 본 보고서는 1973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 사건을 오늘날의 행정제도에 비추어 재구성한 풍자적 검토보고서임. 아래 행정절차 누락 지적은 가상의 감사 관점에서 작성한 것으로, 실제 법령 적용 및 위법 여부를 판단한 것은 아님.

1. 검토 배경 및 목적

가. 검토 배경

ㅇ (대규모 인명 피해 발생) 1973년 모나크 소속 빌 랜다가 주도한 스컬 아일랜드 탐사 과정에서 무분별한 폭발물 투하와 거대 생명체의 공격으로 다수의 군인과 탐사대원이 사망하는 참사 발생

나. 검토 목적

ㅇ (사업관리상 문제점 규명) 탐사 대상 지역에 대한 사전조사와 위험성 검토, 현장 안전관리 및 정보 공유 실태를 분석하고, 오늘날 각종 영향평가와 사전 행정절차의 필요성 고찰

2. 주요 문제점 및 사전 행정절차 검토

가. 산림 훼손 및 원주 생태계 침해

ㅇ (생태계 보전대책 부재) 원시림과 독자적인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는 미지의 섬에 사전조사 없이 진입하여 폭발물을 투하함으로써 기존 생명체의 서식환경을 침해

ㅇ (검토의견) 스컬 크롤러와의 싸움으로 부모를 잃고 섬의 생태계를 지켜온 콩의 영역까지 침범한 것으로, 오늘날 산지관리 및 자연환경 보전 관점에서는 개발행위에 앞서 생태계 현황과 보전 필요성에 대한 검토가 요구되는 사안임

ㅇ (주요 지적사항) 산지전용허가 및 산지전용타당성조사 등 관련 절차 검토 누락

나. 환경영향평가 및 재해영향평가 사전검토 부실

ㅇ (환경 및 재해 위험 간과) 지진파 탐지를 명분으로 폭발물을 대량 투하하면서 소음, 진동에 따른 생태계 교란과 거대 생명체의 반응 등 잠재적 위험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헬기 추락 등 대규모 인명 피해 초래

ㅇ (검토의견) 오늘날 환경영향평가 및 재해영향평가의 취지는 사업 시행 전에 위험요소를 예측하고 피해를 예방하는 데 있으므로, 사업별 적용 요건에 따른 평가와 필요한 안전대책을 우선 검토했어야 할 사안임

ㅇ (주요 지적사항) 전략환경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및 재해영향평가등의 협의 대상 여부 검토 누락

다. 지하안전 검토 부재 및 지하 생태계 교란

ㅇ (지하 생태계 교란) 섬의 지하 구조와 생명체의 서식환경을 충분히 파악하지 않은 채 지진파 탐지용 폭발물을 투하하여 지하 생명체를 자극하고 생태계 교란 위험 초래

ㅇ (검토의견) 현행 지하안전평가가 모든 탐사행위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나, 지반 진동과 지하 공동 등에 대한 위험성 검토 없이 폭발물을 사용하는 것은 사전 예방 원칙에 부합하지 않음

ㅇ (주요 지적사항) 지하안전평가 대상 여부 및 지하 공동에 대한 사전 안전성 검토 누락

라. 국가유산 영향진단 및 매장유산 조사 부실

ㅇ (문화유산 조사 부족) 원주민의 독자적인 생활문화와 거대 생명체의 유골 등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있는 흔적이 존재함에도 관련 현황을 파악하기 전에 무장 진입과 폭발물 투하 강행

ㅇ (검토의견) 오늘날 국가유산 보호 관점에서는 국가유산 영향진단과 매장유산 지표조사 등 관련 절차를 검토하고, 조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시굴조사, 발굴조사 및 보존대책을 마련해야 할 사안임

ㅇ (주요 지적사항) 국가유산 영향진단 및 매장유산 지표조사, 필요시 시굴조사 등 관련 절차 검토 누락

마. 해상 접근 및 탐사 안전대책 부재

ㅇ (위험한 기상조건에서 탐사 강행) 거대한 폭풍우로 둘러싸인 섬에 헬기를 이용해 진입하면서 기상 위험과 비상 상황에 대한 대응체계 미흡

ㅇ (검토의견) 해상 및 항공 안전관리 관점에서 접근 경로의 위험성, 기상 악화 시 중단 기준, 통신체계 및 비상 철수계획 등을 사전에 확보할 필요가 있었음

ㅇ (주요 지적사항) 해상교통안전진단 대상 여부 검토 및 해상, 항공 접근에 관한 사전 안전대책 수립 누락

바. 발주기관의 정보 은폐 및 현장 책임

ㅇ (탐사 목적 및 위험정보 공유 부족) 빌 랜다는 일반적인 지질조사와 지도 제작을 명분으로 탐사대를 조직했으나, 실제 목적이었던 거대 생명체의 존재 확인과 관련 위험을 군 지휘부 및 현장 참여자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음

ㅇ (검토의견) 탐사 목적과 핵심 위험정보를 보유한 모나크 및 랜다의 책임과 명령에 따라 현장에 투입된 군인들의 책임은 구분되어야 하며, 정보 부족 상태에서 위험을 감당한 현장 인력의 희생을 불가항력적 사고로만 볼 수 없음

ㅇ (주요 지적사항) 탐사 목적 및 위험정보 공유 절차 부실, 지질조사용 굴착행위를 수반하는 경우 관할 지자체 굴착행위 신고 여부 검토 누락

3. 결론 및 정책적 시사점

가. 종합 판단

ㅇ (참사의 본질) 스컬 아일랜드 참사는 미지의 생태계에 대한 충분한 조사 없이 탐사를 강행하고, 위험정보를 현장에 제대로 알리지 않은 사업 추진 주체의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 인재임

나. 정책적 시사점

ㅇ (사전 예방의 중요성) 오늘날의 각종 영향평가와 안전관리 절차는 이러한 위험을 사업 시행 전에 발견하고 예방하기 위한 제도로, 사업별 적용 요건에 따라 필요한 절차를 이행하고 그 결과를 실제 사업 추진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함

다. 결론

ㅇ 결국 문제는 콩이 아니라 랜다였음. 콩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 했지만, 랜다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애먼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음

원칙은 지키면서도 일을 되게 만드는 것.

일을 되게 하겠다고 원칙부터 무너뜨려서는 안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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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 블루레이] 나는 전설이다 : 슬립케이스 증정 (1disc: 4K UHD Only)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 윌 스미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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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

— 영화 《나는 전설이다》(2007)를 보고, 문명 붕괴 속 고독한 생존과 인류를 위한 마지막 희생

영화 소개

* 제목 :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
* 감독 : 프랜시스 로런스
* 주연 : 윌 스미스(로버트 네빌), 앨리스 브라가(안나), 샐리 리처드슨(조이 네빌)
* 제작국가 : 미국
* 개봉연도 : 2007년
* 장르 : SF, 재난, 스릴러, 좀비
* 작품 특징 : 바이러스 감염으로 문명이 붕괴한 뉴욕을 배경으로, 홀로 살아남은 한 인간의 고독과 상실, 인류를 위한 마지막 희생을 그린 영화

1. 사람이 사라진 뉴욕

암을 정복하기 위해 개발한 신약이 인류를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는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한 KV 바이러스가 치명적인 변이를 일으키면서 인류는 사실상 붕괴한다. 영화 속 설정에 따르면 바이러스의 치사율은 90%에 이르고, 약 5억 8,800만 명은 변종 인간으로 바뀌었으며, 면역을 가진 사람은 1,200만 명도 남지 않았다.

인류를 구하려던 의학의 성과가 도리어 인류를 멸망 직전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뉴욕은 봉쇄되고, 사람들은 죽거나 변종 인간으로 바뀌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번화했던 도시에는 더 이상 사람도 자동차도 보이지 않는다. 거리는 텅 비었고, 야생동물들이 도심을 돌아다닌다.

그곳에 홀로 살아남은 사람이 로버트 네빌이다.

네빌은 군의관이자 과학자다. 낮에는 식량과 필요한 물자를 구하고, 밤에는 집 안에 숨어 지낸다.

변종 인간들은 햇빛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따라서 낮에는 네빌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지만, 밤이 되면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다.

낮의 뉴욕은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밤의 뉴욕은 변종 인간들이 지배하는 공포의 공간이다.

결국 그 넓은 뉴욕이 네빌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생존의 감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변종 인간들의 모습이 아니다.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먹을 것도 있고, 살 집도 있고, 필요한 물건도 구할 수 있다. 사람들의 간섭을 받을 일도 없다.

하지만 아무리 넓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살아간들,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어떨까.

사람이 가장 많이 모여 살던 뉴욕이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 역설이 이 영화의 첫 번째 공포다.

2. 샘, 마지막으로 남은 가족

네빌에게는 반려견 샘이 있다.

샘은 단순히 주인을 따라다니는 개가 아니다.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가는 네빌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동반자이자 가족이다.

네빌은 샘과 함께 매일 정해진 일상을 이어간다.

낮에는 먹을 것을 구하고, 필요한 물자를 확보하고, 연구실에서 치료제를 개발한다. 허드슨강 쪽에 정박한 배에서 샘과 함께 골프를 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또한 살아남은 사람이 있기를 바라며 방송을 송출하고, 누군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이러한 일상이 인상적이었다.

이미 세상은 무너졌는데도 네빌은 정해진 시간에 움직이고, 운동하고, 연구하며 자신의 생활을 유지한다.

그에게 일상의 규칙은 단순한 습관이 아닐 것이다.

완전히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붙잡고 있는 삶의 질서다.

그런 네빌의 곁에는 언제나 샘이 있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 하나 없는 세상에서 샘은 네빌의 말을 들어주는 유일한 존재다.

그런데 샘마저 잃는다.

변종 개들과 싸우던 샘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네빌은 샘을 살리려 하지만 결국 감염이 진행되고, 자신의 손으로 샘의 마지막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참으로 가슴 아픈 장면이다.

이미 아내와 딸을 잃은 사람이다.

인간관계가 모두 사라진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 샘이었는데, 그 샘마저 자신의 손으로 떠나보내야 한다.

그동안 네빌이 견뎌왔던 외로움과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만 같다.

샘의 죽음 이후 네빌은 이전과 달라진다.

규칙적으로 유지하던 일상이 무너지고,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가까스로 버티게 해주던 마지막 정서적 버팀목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먹을 것과 잠잘 곳만 있다고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의지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관계가 모두 끊어진다면 살아남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샘의 죽음은 단순히 반려견 한 마리의 죽음이 아니다.

네빌이 끝까지 붙잡고 있던 삶의 마지막 끈이 끊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을 하나 고르라면 나는 샘의 죽음을 꼽겠다.

3. 인류를 구하려던 과학이 재앙이 되다

영화의 출발점에는 과학기술에 대한 인간의 믿음이 있다.

암을 정복하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훌륭한 목표인가.

수많은 사람이 암으로 고통받고 목숨을 잃는 현실에서,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이 개발된다면 인류에게는 엄청난 축복일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바로 그 신약이 인류를 멸망 직전으로 몰아넣는다.

인류를 살리기 위해 만들어낸 기술이 오히려 인류를 파괴한 것이다.

여기에는 과학의 양면성이 드러난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지만,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는 사실이 그 기술의 모든 결과를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할 때 그 결과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과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재앙을 해결할 마지막 희망 역시 과학에 있다.

홀로 살아남은 네빌은 인류가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도 치료제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다.

실험을 반복하고 실패를 겪으면서도 계속 연구한다.

어쩌면 그에게 치료제 개발은 살아남은 과학자로서의 책임이자, 자신의 삶을 끝까지 지탱해 주는 또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다.

과학이 인류를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었지만, 과학을 통해 다시 인류를 구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이 흥미롭다.

문제는 과학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판단과 책임에 있을 것이다.

4. 뜻밖의 생존자들과 마지막 희생

샘을 잃은 네빌은 절망에 빠진다.

결국 변종 인간들에게 무모하게 맞서며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린다.

그런데 그 순간 안나와 어린아이가 나타나 네빌을 구한다.

네빌이 계속 송출해 온 방송을 듣고 찾아온 생존자들이다.

다른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은 반갑지만, 솔직히 이 장면은 개연성이 조금 아쉽다.

네빌조차 밤이면 철저하게 집 안에 숨어 지내야 하는 상황이다.

변종 인간들이 우글거리는 밤의 뉴욕에서 안나와 어린아이가 어떻게 네빌을 찾아와 구할 수 있었을까.

영화의 전개를 위해 필요한 장면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안나와 아이의 등장은 중요한 전환점이다.

네빌이 끝까지 찾아 헤매던 다른 생존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세상 어딘가에는 아직 사람이 살아 있고, 인류가 다시 살아갈 가능성도 남아 있다.

네빌이 포기하지 않았던 치료제 연구도 마침내 성과를 거두기 시작한다.

하지만 변종 인간들이 네빌의 집을 습격하면서 마지막 위기가 찾아온다.

네빌은 안나와 아이를 보호하고, 자신이 개발한 치료제가 담긴 혈액을 안나에게 넘긴다.

그리고 수류탄을 터뜨려 변종 인간들과 함께 죽음을 맞는다.

자신은 죽더라도 치료제가 다른 생존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마지막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게 안나와 아이는 살아남고, 치료제는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전달된다.

네빌은 끝내 살아남지 못했다.

그러나 인류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겼다.

이 장면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네빌은 오랫동안 혼자 살아남기 위해 애썼다. 매일 먹을 것을 구하고, 밤의 위험을 피하고, 끊임없이 살아남을 방법을 찾았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의 생존보다 다른 사람들의 생존을 선택한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던 삶에서,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마지막 목적이 된 것이다.

그것이 네빌의 희생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5. 그는 왜 전설이 되었는가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나는 전설이다》라는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네빌이 전설이 된 것은 단지 멸망한 세상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는 외로움과 두려움에 흔들렸고, 때로는 삶의 의지마저 잃었다. 결코 완벽한 영웅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자신이 살아서 누리지 못할 미래를 다른 사람들에게 남겼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 말하는 전설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아남았느냐가 아니라, 끝까지 무엇을 지키려 했느냐일 것이다.

《나는 전설이다》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문명이 붕괴한 세상을 그린 SF 재난영화이자 좀비영화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뒤 더 오래 남는 것은 변종 인간들의 공포보다 한 인간의 고독과 상실, 그리고 마지막 희생이다.

괴물보다 더 무서운 고독 속에서도 인류를 위한 희망 하나를 남기고 사라진 사람.

로버트 네빌.

그는 그렇게 전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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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희생시키면서 세상을 구하겠다는 사람보다,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을 구하려는 사람이 더 위대하다.

괴수들은 본능 때문에 싸웠지만, 인간들은 신념 때문에 재앙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신념의 대가를 치른 것은 대개 다른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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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라
가레스 에드워즈 감독, 브라이언 크랜스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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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토는 무슨 죄가 있는가

— 영화 《고질라》(2014)를 보고, 인간의 호기심과 이기심, 자만심이 불러온 재앙

영화 소개

* 제목 : 고질라(Godzilla)
* 감독 : 개러스 에드워즈
* 개봉 : 2014년 5월 15일
* 장르 : SF, 액션, 재난
* 상영시간 : 123분
* 주요 출연 : 애런 테일러존슨(포드 브로디), 브라이언 크랜스턴(조 브로디), 엘리자베스 올슨(엘 브로디), 와타나베 켄(이시로 세리자와), 줄리엣 비노슈(산드라 브로디), 샐리 호킨스(비비안 그레이엄), 데이비드 스트라탄(윌리엄 스텐츠 제독)
* 제작 특징 : 몬스터버스 세계관의 첫 번째 영화로, 일본의 고질라를 현대적인 할리우드 괴수영화로 재해석한 작품
* 특이사항 : 1954년 비키니 환초 핵실험을 고질라 제거 작전과 연결하고, 일본 잔지라 원전 사고와 무토의 출현을 통해 인간과 거대 생명체의 충돌을 그린 작품

1. 아내의 사진을 찾아서?

《콩: 스컬 아일랜드》(2017)와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2019)를 본 뒤, 시간을 거슬러 《고질라》(2014)를 봤다.

영화는 1999년 일본 잔지라 원자력발전소의 사고로 시작한다.

원전에서 근무하는 조 브로디는 이상한 진동을 감지한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리지만, 점검을 위해 들어간 아내 산드라는 사고 현장에 갇히고 만다.

조는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해 방호문을 닫아야 한다. 문 너머에는 아내가 있다.

결국 아내를 남겨둔 채 문을 닫는다.

산드라는 죽고, 원전은 무너진다.

정부는 자연재난에 따른 원전 사고라고 발표하고 주변 지역을 방사능 오염구역으로 통제한다.

15년이 흐른 뒤에도 조는 사고의 진상을 추적한다. 아들 포드는 이제 그만 과거를 잊으라고 하지만, 조는 그럴 수 없다.

“네 엄마가 거기 있다, 포드. 엄마가 아직 거기 있다고. 급하게 피하느라 엄마 사진이 한 장도 없어.”

“내가 엄마를 거기로 보냈어. 그저 원자로가 용해된 게 아니야.”

이 두 대사가 참으로 슬프다.

조가 사고의 원인을 밝히려는 것은 단순히 과학적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아내를 위험한 곳으로 보냈다는 죄책감, 그리고 아내가 왜 죽어야 했는지 알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더구나 아내의 사진 한 장조차 남아 있지 않다.

그는 아들과 함께 폐쇄된 잔지라 격리구역에 몰래 들어간다.

그런데 방사능 때문에 출입을 통제했다는 곳에서 개들이 뛰어다니고, 방사선 측정기에는 방사선이 검출되지 않는다.

조의 의심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가 사고 당시 자료가 담긴 디스크를 챙긴다. 그리고 집을 나서려던 순간, 깨진 액자 속에서 아내의 사진을 발견한다.

15년 동안 아내를 잊지 못한 남자가 사고 자료를 찾으러 폐쇄구역에 들어갔다가, 뜻밖에 아내의 사진 한 장까지 되찾은 것이다.

괴수는 아직 제대로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이 장면에서 벌써 마음이 아프다.

2. 무토 부부를 생이별시킨 인간들

사건의 시작은 필리핀이다.

1999년 광산에서 거대한 고대 생명체의 뼈와 두 개의 포자가 발견된다. 하나는 이미 부화해 일본 잔지라 원전으로 이동했고, 다른 하나는 인간들에 의해 미국 네바다주의 핵폐기물 저장시설로 옮겨진다.

일본으로 간 놈은 수컷 무토, 미국으로 옮겨진 포자에서는 암컷 무토가 깨어난다.

결국 두 마리는 서로를 찾아가 짝짓기하고 번식하려 한다.

무토 입장에서 보면 인간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부부를 생이별시켜 놓은 꼴이다.

물론 발견 당시부터 두 마리가 부부였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서로를 찾아 번식하려는 생명체였다는 것은 영화에서 드러난다.

인간은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발견하자 연구하기 시작했다.

호기심이다.

모나크와 일본 정부는 잔지라 원전 사고가 단순한 자연재난이 아니라 거대 생명체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주민들에게 진상을 감췄다.

모나크는 괴수를 제거하면 더 큰 방사능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격리하고 연구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을 숨긴 이유까지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왜 15년 동안 비밀을 지켰을까.

괴수에 관한 정보를 독점하고, 연구를 통해 무언가 이득을 얻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영화에서 그런 의도가 직접 확인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조 브로디가 아내를 잃은 상황에서도 진상을 감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방사능 오염을 이유로 15년 동안 출입을 통제했지만, 조가 들어가 확인한 구역에서는 방사선이 검출되지 않았다.

자신들의 연구와 조직의 이해관계를 주민들의 알 권리보다 앞세운 것은 아닌지 의심할 만하다.

그렇다면 이기심이라 할 만하다.

잔지라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고, 조는 아내를 잃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주어진 공식 설명은 자연재난이었다.

이쯤 되니 영화 《컨스피러시》가 떠오른다.

정부가 무언가를 숨긴다는 의심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진상을 감추는 일이 벌어지면 음모론이 자라날 토양이 만들어지는 법이다.

조의 의심은 결국 사실로 밝혀진다.

하지만 아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던 조마저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미국으로 옮겨진 포자도 문제다.

모나크 연구진은 수년간 시험한 끝에 그 포자가 휴면 상태라고 판단했다. 이후 미국 측은 방사성이 높다는 이유로 포자를 인수해 핵폐기물 저장시설에 처분했다.

휴면 상태라 깨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방사선을 먹고 사는 생명체를 방사성 폐기물 곁에 가져다 놓은 셈이다.

결국 그곳에서 암컷 무토가 깨어났으니, 자신들의 판단이 옳을 것이라는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자만심이다.

3. 애먼 관광객들과 내가 다녀온 도시들

무토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거대한 발톱이 아니라 EMP, 전자기 펄스다.

이놈이 EMP를 발생시키면 전기가 끊기고 전투기와 통신장비 등 첨단 전자장비들이 작동하지 않는다.

미국이 자랑하는 군사력도 속수무책이다.

예전에 즐겨 하던 《스타크래프트》가 떠오른다. 테란의 사이언스 베슬이 사용하는 EMP 쇼크웨이브 말이다. 프로토스의 보호막과 에너지를 날려버리던 그 기술이 이번에는 미군을 상대로 등장한 셈이다.

인간은 수많은 돈과 기술을 들여 첨단 무기체계를 만들었는데, 무토는 자기 몸에서 EMP 한 번 발생시키면 그만이다.

전자무기와 생체무기의 대결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애먼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하와이 해변에는 평생에 한 번 가볼까 말까 한 여행을 온 관광객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질라가 바다에서 나타나자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온다.

호놀룰루 공항에서는 무토가 난입하고, 비행기들이 연쇄 폭발한다.

관광객들은 무슨 죄가 있는가.

그런데 쓰나미 장면에서 우스운 광경도 하나 있다.

나무에 묶여 있던 개가 위험을 감지하고 짖어대더니, 갑자기 목줄이 스르륵 풀린다. 그리고는 죽어라 달아난다.

어처구니가 없어 영상을 되돌려 다시 봤다.

정말 줄이 스르륵 풀린다.

괴수의 등장은 인정하겠는데, 개 목줄이 저절로 풀리는 모습은 참으로 웃기다.

그 개가 쓰나미에서 살아남았는지는 모르겠다.

한편 네바다에서 깨어난 암컷 무토는 라스베이거스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라스베이거스라니. 얼마 전 내가 직접 여행했던 도시다. 파리스 호텔에 묵고 스피어도 관람했던 곳인데, 이번에는 괴수가 그 도시를 박살 내고 있다.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는 샌프란시스코 역시 내가 다녀온 곳이다.

금문교 위를 직접 걸었고, 다리 위를 자동차로 건너보기도 했다. 구불구불한 길로 유명한 롬바드 스트리트도 가봤다.

공교롭게 영화에서 재앙을 겪는 하와이, 라스베이거스, 샌프란시스코 세 곳 가운데 두 곳을 직접 다녀온 셈이다.

내가 걸었던 금문교가 영화 속에서는 괴수의 등장으로 위험에 처하고, 내가 돌아다녔던 도시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그저 화면 속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과는 느낌이 다르다.

괴수들이야 서로를 찾아 움직이는 것이겠지만, 사람들에게는 여행지이고 일터이고 삶의 터전이다.

4. 핵폭탄과 PP마대, 인간의 자만심

1954년 비키니 환초.

영화에서는 당시 핵실험이 사실은 고질라를 제거하려는 작전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고질라는 살아남았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나 괴수들이 다시 등장하자 미군은 또 핵폭탄을 사용하려 한다.

군 지휘부는 핵탄두의 방사선으로 무토를 유인한 뒤 핵폭발의 충격으로 괴수들을 한꺼번에 제거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핵폭발의 충격과 방사선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능력이 다르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과거에도 핵폭탄으로 고질라를 죽이지 못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번에는 훨씬 강력한 폭탄이니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참으로 대단한 확신이다.

그런데 수컷 무토는 인간이 준비한 핵탄두를 암컷에게 가져다준다. 암컷은 샌프란시스코에 둥지를 만들고 핵탄두의 방사성 에너지를 이용해 알을 키운다.

인간에게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데, 무토에게는 새끼를 키울 에너지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괴수를 죽이겠다고 준비한 폭탄이 괴수의 먹이가 되다니.

이쯤 되면 인간이 우스워진다.

샌프란시스코 방어작전도 마찬가지다.

핵폭탄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괴수를 상대하겠다며 해안가에 PP마대를 쌓아놓고 기관총을 설치한다.

괴수는 방사능을 먹고 사는데, 인간은 모래주머니 뒤에 숨어 총알을 퍼부을 준비를 하고 있다.

참으로 눈물겨운 방어태세다.

물론 군인들이 우스운 것은 아니다. 위험을 알면서도 명령에 따라 작전에 투입되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도망갈 수도 없다.

웃기는 것은 그들에게 그런 무기를 들고 괴수와 맞서게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세리자와 박사는 이 모든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한다.

“인간은 자기들이 자연을 통제한다 여기지만, 사실은 그 반대지요.”

맞는 말이다.

자신이 만든 무기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자만심을 지적하는 말이다.

세리자와가 지니고 다니는 회중시계도 인상적이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시간에 멈춘 아버지의 시계다.

핵무기의 비극을 기억하는 사람이 핵폭탄으로 괴수를 제거하려는 계획에 반대한다.

그런데 나중에 나온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에서는 바로 그 세리자와가 고질라를 살리기 위해 핵폭탄을 직접 작동시키고 죽는다.

핵무기가 인간에게는 파괴의 수단이지만 고질라에게는 에너지원이 된다는 역설이 두 영화를 관통한다.

5. 새끼를 잃은 무토의 울부짖음

그런데 마지막 전투를 보면서 나는 무토가 불쌍해졌다.

수컷과 암컷 무토는 서로를 찾아 만나고, 마침내 알까지 낳는다.

무토가 인간을 미워해서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자기 종족을 이어가려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무토를 제거하려 한다.

물론 인간으로서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괴수를 막아야 한다. 하지만 무토가 인간적인 의미의 악의를 품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더구나 두 마리가 협공하자 고질라도 상당히 고전한다.

그런데 포드 브로디가 무토의 둥지를 불태워 버린다.

알들이 불타는 모습을 본 암컷 무토는 울부짖는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자기 새끼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울부짖는 것은 인간이나 괴수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새끼들을 잃은 일이 전투의 흐름을 바꾼다. 수컷은 고질라의 꼬리에 맞아 죽고, 암컷도 결국 죽음을 맞는다.

만약 새끼들이 죽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두 마리의 협공으로 고질라가 상당히 밀리고 있었으니 무토 부부가 이겼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물론 결과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무토들이 죽는 방식도 참으로 제멋대로다.

미군의 총탄과 미사일에도 끄떡없던 수컷 무토가 고질라의 꼬리에 맞아 건물 구조물에 꿰뚫려 죽는다.

암컷은 방사성 에너지를 먹고 사는 괴수인데, 고질라가 입안에 푸른 원자열선을 쏟아붓자 죽는다.

물론 고질라의 원자열선은 단순한 방사선이 아니라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공격이다. 미사일의 폭발과 구조물의 관통도 작용 방식이 다르다.

그러나 영화는 무토가 어떤 공격에는 강하고 어떤 공격에는 약한지 충분히 납득시키지 않는다.

차라리 고질라가 사무라이처럼 칼을 뽑아 무토의 목을 댕강 쳤다면 이해하겠다.

아무리 방사능을 먹고 사는 괴수라도 목이 잘리면 죽는다는 것은 납득할 수 있으니까.

물론 칼을 든 고질라부터 우습기는 하겠다.

괴수영화라고 현실의 과학을 그대로 적용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세계의 논리는 지켜야 한다.

괴수가 등장하는 것은 인정하겠다. 그러나 괴수라고 해서 논리까지 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스운 설정과 별개로 새끼를 잃고 울부짖는 암컷 무토의 모습은 오래 생각하게 된다.

영화 초반에는 아내를 잃은 조 브로디가 슬펐는데, 마지막에는 새끼를 잃은 무토가 슬프다.

인간에게 가족이 소중하듯 무토에게도 지켜야 할 존재가 있었던 것이다.

6. 고질라가 도시를 구했다고? 염병이다

고질라는 결국 무토 두 마리를 죽인다.

그러나 자신도 기진맥진해 쓰러져 한동안 일어나지 못한다. 다음 날에야 다시 일어나 바다로 돌아간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고질라가 도시의 구원자인지를 묻는다.

고질라가 도시를 구했다고?

염병이다.

하와이에서는 고질라의 등장으로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했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괴수들의 싸움으로 도시가 쑥대밭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과 군인이 희생되었다.

고질라가 인간을 구하기 위해 싸웠다는 근거는 없다. 세리자와 박사도 고질라가 자연의 균형을 회복하러 왔다고 믿었지, 인간을 구하러 왔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고질라는 무토와 싸워 이겼을 뿐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왔다고 고질라를 영웅으로 만들려 한다.

생각해 보면 이 재앙의 중심에는 괴수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발견하고 연구하려 했던 인간의 호기심.

잔지라 원전 사고의 진상을 감추고 주민들에게 실제 위험을 알리지 않았던 인간의 이기심.

그리고 무토의 포자를 휴면 상태라고 믿고 핵폐기물 저장시설에 처분한 데 이어, 괴수들을 핵폭탄으로 제거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인간의 자만심.

그 결과 관광객들이 죽고, 군인들은 위험한 작전에 내몰렸으며,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무토 가족도 모두 죽었다.

영화 초반에는 아내를 잃은 남자가 울고, 마지막에는 새끼를 잃은 괴수가 울부짖는다.

인간과 괴수라는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소중한 존재를 잃었다.

그런데 영화는 고질라가 이겼다는 이유로 그를 도시의 구원자로 부르려 한다.

나는 오히려 무토가 불쌍하다.

인간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옮겨놓은 포자에서 깨어나, 짝을 찾아 만나고, 새끼를 키우려 했던 두 마리의 생명체.

그들에게는 세상을 구하겠다는 명분도, 인간을 지배하겠다는 야망도 없었다.

그저 살아남아 종족을 이어가려 했을 뿐이다.

무토는 무슨 죄가 있는가.

차라리 괴수보다 인간의 호기심과 이기심, 자만심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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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
마이클 도허티 감독, 밀리 바비 브라운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지구를 구하겠다며 사람을 죽이는 인간들

— 영화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2019)를 보고, 괴물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신념과 희생

영화 소개

* 제목 :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Godzilla: King of the Monsters)
* 감독 : 마이클 도허티
* 개봉 : 2019년 5월 29일
* 장르 : SF, 액션, 모험
* 상영시간 : 132분
* 주요 출연 : 카일 챈들러(마크 러셀), 베라 파미가(엠마 러셀), 밀리 바비 브라운(매디슨 러셀), 와타나베 켄(이시로 세리자와), 찰스 댄스(앨런 조나), 장쯔이(일린 첸), 샐리 호킨스(비비안 그레이엄)
* 제작 특징 : 몬스터버스 세계관의 세 번째 영화이자 《고질라》(2014)의 후속작으로, 고질라와 모스라, 로단, 킹 기도라의 대결을 다룬 작품
* 특이사항 : 엔딩 크레딧에서 고질라와 콩이 대결하는 모습을 그린 고대 벽화가 등장하며, 쿠키 영상에서는 환경 테러리스트 앨런 조나가 킹 기도라의 잘린 머리를 매입해 후속작과의 연결을 암시

1.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다른 사람의 아들들을 죽인다

《콩: 스컬 아일랜드》를 보고 난 뒤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를 봤다.

전편에서는 빌 랜다라는 인간이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겠다고 미지의 섬에 군인들을 끌고 들어가 죽게 만들더니, 이번에는 아예 인류를 희생시켜 지구를 구하겠다는 여자가 등장한다.

베라 파미가가 연기한 엠마 러셀 박사다.

201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고질라와 무토라는 괴수들이 싸우면서 대재앙이 발생한다. 엠마와 남편 마크는 그 과정에서 아들 앤드루를 잃는다. 고질라가 직접 아들을 죽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부부에게는 괴수들의 등장으로 아들을 잃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그런데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두 사람의 태도가 전혀 다르다.

마크는 고질라를 증오한다. 괴수들을 연구하던 모나크에서도 떠난다. 반면 엠마는 괴수들을 계속 연구하면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인간이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며, 타이탄이라 불리는 거대 생명체들은 자연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을 깨워 인간과 괴수가 공존하던 자연의 질서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화 속 설정에서 이 주장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타이탄들이 자연환경을 회복시키는 능력을 지녔다는 설명이 나오고,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실제로 생태계가 복원되는 모습도 소개된다.

문제는 그 주장을 실행하는 방법이다.

엠마는 타이탄들을 깨우는 과정에서 일부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보면서도, 오르카를 이용하면 그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희생을 감수하겠다고 결정한 사람은 엠마 자신이었고, 실제로 희생될 사람들은 그런 결정에 동의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이론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엠마는 환경 테러리스트 앨런 조나와 손잡고, 괴수들과 소통하는 장치인 오르카를 이용해 잠들어 있던 타이탄들을 깨우는 계획에 참여한다. 처음에는 납치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테러리스트들과 협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더구나 딸 매디슨까지 자신의 계획에 끌어들인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문제가 있다.

엠마는 타이탄들을 깨우기 시작할 때 딸을 자기 곁에 두고 있었다. 아들을 잃은 뒤 딸에게 살아남는 법을 가르쳤다는 대사도 나온다.

적어도 자기 딸은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이는 영화 속 행동을 바탕으로 한 해석이지만, 엠마가 나중에 보여주는 태도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인류 전체가 위험해지는 것은 감수하면서도 자기 자식만큼은 그 위험에서 지키려 했다는 것이다.

아들 하나를 잃은 슬픔이 그렇게 컸던 여자가, 지구를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부모들에게 똑같은 고통을 안겨주려 한다.

그런데 그 희생의 범위는 자신이 정한다.

나는 《스컬 아일랜드》의 랜다가 가장 큰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엠마를 보니 랜다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랜다는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려고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반면 엠마는 대규모 인명 피해의 가능성을 알면서도 그 희생을 지구 회복의 수단으로 삼았다.

콩보다 랜다가 더 무서웠는데, 이번에는 랜다보다 엠마가 훨씬 더 무섭다.

2. 베라 파미가가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

엠마 역을 맡은 배우는 베라 파미가다.

《베이츠 모텔》의 노마 베이츠, 《오펀: 천사의 비밀》의 케이트 콜먼, 《컨저링》의 로레인 워런 등을 연기했던 배우다.

그녀가 맡았던 인물들이 모두 같은 성격은 아니다.

《베이츠 모텔》의 노마 베이츠는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집착과 통제로 이어지는 인물이다. 《오펀: 천사의 비밀》에서는 불안과 의심 속에서 가족을 지키려는 어머니를 연기했고, 《컨저링》에서는 초자연적인 위험에 맞서는 로레인 워런을 연기했다.

선한 인물도 있고, 불안정한 인물도 있다. 그러나 모성애와 불안, 신념과 집착이 복잡하게 얽힌 인물을 연기할 때 보여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엠마 러셀도 그렇다.

그녀가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는 장면을 보면, 인류가 대규모로 희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도 태도는 확신에 차 있다. 과학적 근거를 내세우며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세리자와가 수십억 명의 목숨을 걸고 도박하는 일이라고 경고해도 엠마는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계획이 인류를 구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사람이 더 무섭다.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과, 자신이 옳다고 굳게 믿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사람 가운데 누가 더 위험할까.

나는 후자가 더 두렵다.

베라 파미가는 이런 인물을 연기하는 데 참으로 잘 어울린다. 다른 배우가 맡았다면 엠마의 지적인 모습과 그 안에 숨어 있는 무서운 집착이 이만큼 설득력 있게 표현되었을까 싶다.

그런데 결국 딸 매디슨이 엄마의 모순을 알아차린다.

엠마는 타이탄들을 하나씩 깨워 자연의 균형을 회복하려 했다. 그러나 기도라가 새로운 우두머리로 나서 다른 타이탄들을 일제히 불러내면서 계획은 통제를 벗어난다.

세상이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되자 매디슨은 엄마에게 괴물이라고 말한다.

엄마는 지구를 구하겠다고 했는데, 정작 엄마가 시작한 일 때문에 사람들이 죽고 세상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딸의 눈에도 엄마가 괴물로 보인 것이다.

3. 괴수들의 왕은 누구인가

괴수들의 싸움도 참으로 요란하다.

고질라, 모스라, 로단, 그리고 머리가 세 개 달린 킹 기도라까지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해 보이는 놈은 역시 기도라다.

고질라는 기도라에 상대도 않고, 잘린 머리까지 재생한다. 알고 보니 지구에서 태어난 생명체도 아니다. 우주에서 온 침입자로, 지구의 타이탄들을 지배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으로 지구를 바꾸려는 존재다.

힘으로만 보면 고질라가 상대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기도라는 힘은 세지만 편이 별로 없다.

로단은 처음에는 기도라에게 덤비다가 패하자 곧바로 기도라의 꼬붕으로 들어간다. 나중에는 모스라와 싸우다가 가슴을 찔린다. 죽은 줄 알았더니 살아남았고, 기도라가 죽자 이번에는 고질라밑으로 첫빠따로 기어들어간다.

이놈은 누가 이기는지 보고 대장을 바꾸는 모양이다.

모스라는 고질라와 각별한 관계다. 영화에서는 둘의 관계를 두고 연인 사이냐는 농담까지 등장하지만, 실제 설정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공생 관계에 가깝다.

그런데 영화에서 가장 황당한 것은 인간의 무기가 괴수들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군이 산소 파괴자라는 신무기를 발사하자 고질라는 치명상을 입고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반면 기도라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는다.

이후 고질라가 회복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자, 세리자와 박사는 핵폭탄을 이용해 고질라를 되살릴 계획을 세운다.

핵폭탄을 맞으면 인간은 죽지만, 고질라는 방사선 에너지를 흡수해 오히려 강해진다는 것이다.

참으로 편리한 설정이다.

나중에는 모스라가 기도라의 공격을 대신 받아 희생되면서 자신의 에너지까지 고질라에게 전달한다.

고질라는 마침내 온몸에서 엄청난 열을 내뿜는 불덩어리 같은 존재가 된다. 그리고 기도라를 압도해 불태워 없애버린다.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인 핵폭탄이 괴수에게는 영양제가 되고, 다른 괴수의 희생까지 더해지자 거의 무적이 된다.

괴수영화니까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이렇게 해결하고 나니 마지막 승부가 다소 허무하다.

그런데 그 핵폭탄을 직접 터뜨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사람이 있다.

4. 새 시계를 살 시간이야

와타나베 켄이 연기한 이시로 세리자와 박사.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카츠모토를 연기했던 그 배우다.

그 영화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싸웠던 카츠모토가 떠오른다. 이번에도 와타나베 켄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인물을 연기한다.

하지만 세리자와의 신념은 엠마와 다르다.

그는 괴수들을 무조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해서 반드시 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인간과 괴수가 공존할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질라를 증오하는 마크에게도 그런 생각을 전한다.

고질라를 찾아 잠수함으로 이동하던 중 마크가 세리자와에게 시간을 묻는다.

세리자와가 대답한다.

“새 시계를 살 시간이야.”

마크는 그 말을 듣고 죽은 아들 앤드루가 좋아하던 농담을 떠올린다. 앤드루는 세리자와가 회중시계를 꺼낼 때마다 시간을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시계에는 또 다른 사연이 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시간이다. 세리자와가 가지고 다니는 것은 그때 멈춘 아버지의 회중시계다. 전편 《고질라》에서 이미 소개된 물건이다.

원자폭탄이 남긴 비극을 기억하는 사람이 이제는 고질라를 살리기 위해 핵폭탄을 사용하려 한다.

참으로 역설적인 상황이다.

마크는 자신이 아들을 잃게 만든 존재를 구하러 가고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런 그에게 세리자와가 말한다.

“상처를 준 악마와 화해하는 게 아픔을 잊는 유일한 길이지.”

이 말은 단순히 고질라를 구해야 한다는 설명이 아니다.

세리자와는 마크가 아들의 죽음에 대한 분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망하는 대상을 없애는 것만으로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마크가 그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고질라를 증오하는 마음만으로는 남아 있는 가족을 지킬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한다.

그리고 세리자와는 자신의 신념을 말로만 주장하지 않는다.

고질라가 회복하고 있는 해저의 은신처에 핵폭탄을 설치해야 하는데, 잠수함의 무기 발사 장치가 고장 나 직접 폭탄을 설치하고 작동시켜야 한다.

그곳의 열기와 방사선량을 생각하면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임무다.

세리자와는 자신이 가겠다고 나선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 알고 직접 선택한다.

핵폭탄을 작동시킨 세리자와는 마지막으로 고질라에게 다가간다.

거대한 몸에 손을 얹고 조용히 작별을 고한다.

“굳바이, 나의 오랜 친구.”

그리고 핵폭탄이 폭발한다.

세리자와는 죽고 고질라는 살아난다.

이 장면만큼은 그저 황당한 괴수영화라고 웃어넘길 수 없었다.

5. 괴수를 깨운 사람과 막아야 하는 사람

이번 영화에서도 군인들이 수없이 죽어 나간다.

하지만 《콩: 스컬 아일랜드》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편의 군인들은 지질조사를 지원한다는 명령을 받고 위험의 실체도 모른 채 섬에 들어갔다. 이번 영화의 군인들은 이미 발생한 재난에 대응하고, 시민들을 대피시키며, 괴수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출동한다.

임무의 성격부터 다르다.

따라서 단순히 군인들이 희생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을 출동시킨 결정까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따져봐야 할 것은 무엇인가.

실제로 어떤 판단이 내려졌고, 그 판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산소 파괴자다.

미군 지휘부는 고질라와 기도라를 제거하기 위해 새로운 무기의 사용을 결정한다. 세리자와는 고질라를 믿어야 한다며 반대하지만, 군 지휘부는 이미 미사일이 발사되었다고 통보한다.

결과는 실패다.

기도라는 살아남고, 오히려 기도라와 맞서던 고질라만 치명상을 입는다.

그 때문에 세리자와가 나중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고질라를 회복시켜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물론 당시 군 지휘부가 기도라의 정체와 무기의 효과를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괴수들의 공격으로 도시가 파괴되는 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결과적으로 실패한 판단에 대한 검토까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군인들이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다 희생되는 것과, 지휘부의 판단이 적절했는지는 구분해서 따져야 한다.

보스턴의 마지막 전투에서도 마찬가지다.

딸 매디슨은 엄마의 계획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르카를 가지고 탈출한다. 그리고 야구장에 설치된 음향시설을 이용해 타이탄들을 진정시키려 하지만, 기도라까지 그곳으로 끌어들이고 만다.

그러자 아버지 마크와 모나크 관계자들, 군인들이 매디슨을 구하기 위해 움직인다.

물론 군인들의 임무는 매디슨 한 사람의 구조만이 아니었다. 괴수들의 공격을 막고, 시민들을 대피시키며, 재난을 수습하는 임무도 수행했다.

그러나 이 모든 사태의 출발점에는 엠마와 테러리스트들의 결정이 있었다.

엠마가 벌인 일을 수습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위험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스컬 아일랜드》에서 랜다의 탐사 때문에 군인들이 죽었듯, 이번에는 엠마가 불러온 재난을 막는 과정에서 군인들이 희생된다.

상황은 다르지만 한 가지는 같다.

위험을 만들어낸 사람과 그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괴수영화에서 군인들이 걸핏하면 죽어 나가는 것은 익숙한 장면이다. 그야말로 군인이 동네북이다.

하지만 군인들의 희생을 그저 전투 장면의 일부로 넘기기보다, 그들이 왜 그 위험 속에 들어가야 했는지를 따져볼 필요는 있다.

6. 생태계는 회복되고, 모나크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영화가 끝나갈 무렵, 고질라는 세리자와의 희생과 모스라의 도움으로 기도라를 물리친다.

살아남은 로단을 비롯한 여러 타이탄들이 고질라에게 복종한다.

이제 고질라가 진정한 괴수들의 왕이 된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타이탄들이 깨어난 뒤의 세상을 뜻밖의 모습으로 설명한다.

괴수들이 활동한 지역에서 생태계가 회복되고 자연환경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기사들을 통해 그런 변화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엠마의 주장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는 말인가.

적어도 영화 속 세계관에서는 타이탄들이 지구 생태계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엠마의 행동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이 회복된다는 사실과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도 된다는 판단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엠마는 일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오르카로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기도라가 다른 타이탄들을 지배하면서 그 계산은 무너졌다.

자신이 충분히 통제하지 못하는 기술을 이용해 인류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 것이다.

여기서 모나크라는 조직의 역할도 생각하게 된다.

오르카는 괴수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술이다. 마크와 엠마가 개발에 참여한 이 장치는 괴수들을 진정시키는 데도 사용되지만,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들어가자 거대한 재난을 일으키는 도구가 된다.

그렇다면 이런 위험한 기술은 누가 관리해야 하는가. 개발자가 조직의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사용하려 할 때, 이를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가.

물론 영화에서 모나크가 어떤 보안조치를 취했고, 실제로 어떤 관리상 잘못이 있었는지는 충분히 확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오르카를 둘러싼 사건은 위험한 기술을 가진 조직이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스컬 아일랜드》에서는 랜다가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려고 탐사를 추진했다. 이번에는 엠마가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려고 오르카를 이용했다.

모두 모나크와 관계된 인물들이다.

물론 모나크의 모든 구성원을 이들과 같은 부류로 볼 수는 없다. 세리자와처럼 인류를 구하기 위해 희생한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들을 지키려고 싸우다 죽은 사람들도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행동과 조직의 책임을 구분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인의 잘못을 따지는 것과 별개로, 그러한 일이 가능했던 과정과 기술의 관리체계를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자 이번에도 다음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엔딩 크레딧에서는 스컬 아일랜드와 콩에 관한 기록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고질라와 콩이 서로 맞서는 모습을 그린 고대 벽화가 나타난다. 두 거대한 괴수 아래에는 두 팔을 들어 올린 작은 인간들의 모습도 보인다.

《스컬 아일랜드》에서는 콩이 아직 성장 중인 존재였고, 이번 영화에서는 고질라가 기도라를 물리치고 괴수들의 왕이 되었다. 그런데 그 둘이 맞서는 그림이라니.

이번에는 괴수들의 왕과 스컬 아일랜드의 왕이 맞붙을 모양이다.

고대 벽화는 과거에도 고질라와 콩의 종족 사이에 대결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앞으로 벌어질 고질라와 콩의 대결 또한 암시한다.

그리고 크레딧이 모두 끝난 뒤의 쿠키 영상에서는 환경 테러리스트 앨런 조나가 멕시코에서 기도라의 잘린 머리를 사들인다.

죽은 줄 알았던 기도라의 머리가 또 다른 사건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이 머리는 후속작 《고질라 VS. 콩》에서 메카고질라와 연결된다.

괴수들의 싸움은 끝났지만, 인간들이 괴수를 이용하려는 시도는 끝나지 않은 셈이다.

7. 결자해지와 대의를 위한 희생

엠마도 마지막에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오르카를 이용해 기도라를 유인하고 가족과 다른 사람들이 탈출할 시간을 벌어준다.

자신이 벌인 일을 자신이 수습하려 한 것이다. 결자해지다.

딸을 구하려는 마음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겠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마지막에는 행동을 바꾸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미 희생된 사람들의 죽음까지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리자와의 희생은 성격이 다르다. 모나크의 핵심 인물이었지만 엠마의 계획에 가담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일으키지 않은 재난을 막기 위해,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스스로 해저로 향했다.

대의를 위한 희생이다.

여기서 《라스트 사무라이》의 카츠모토가 떠오른다. 와타나베 켄이 연기한 두 인물은 서로 다른 시대와 상황에서 죽음을 맞았지만, 자신의 신념에 따라 위험을 감수하고 마지막까지 그 선택을 책임졌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에서 괴수들의 왕은 고질라였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진정한 영웅은 핵폭탄을 맞고 더욱 강해진 고질라가 아니다.

그 폭탄을 직접 작동시키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던 사람.

《라스트 사무라이》의 카츠모토, 와타나베 켄이 연기한 이시로 세리자와 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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