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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라
가레스 에드워즈 감독, 브라이언 크랜스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4년 9월
평점 :
무토는 무슨 죄가 있는가
— 영화 《고질라》(2014)를 보고, 인간의 호기심과 이기심, 자만심이 불러온 재앙
영화 소개
* 제목 : 고질라(Godzilla)
* 감독 : 개러스 에드워즈
* 개봉 : 2014년 5월 15일
* 장르 : SF, 액션, 재난
* 상영시간 : 123분
* 주요 출연 : 애런 테일러존슨(포드 브로디), 브라이언 크랜스턴(조 브로디), 엘리자베스 올슨(엘 브로디), 와타나베 켄(이시로 세리자와), 줄리엣 비노슈(산드라 브로디), 샐리 호킨스(비비안 그레이엄), 데이비드 스트라탄(윌리엄 스텐츠 제독)
* 제작 특징 : 몬스터버스 세계관의 첫 번째 영화로, 일본의 고질라를 현대적인 할리우드 괴수영화로 재해석한 작품
* 특이사항 : 1954년 비키니 환초 핵실험을 고질라 제거 작전과 연결하고, 일본 잔지라 원전 사고와 무토의 출현을 통해 인간과 거대 생명체의 충돌을 그린 작품
1. 아내의 사진을 찾아서?
《콩: 스컬 아일랜드》(2017)와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2019)를 본 뒤, 시간을 거슬러 《고질라》(2014)를 봤다.
영화는 1999년 일본 잔지라 원자력발전소의 사고로 시작한다.
원전에서 근무하는 조 브로디는 이상한 진동을 감지한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리지만, 점검을 위해 들어간 아내 산드라는 사고 현장에 갇히고 만다.
조는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해 방호문을 닫아야 한다. 문 너머에는 아내가 있다.
결국 아내를 남겨둔 채 문을 닫는다.
산드라는 죽고, 원전은 무너진다.
정부는 자연재난에 따른 원전 사고라고 발표하고 주변 지역을 방사능 오염구역으로 통제한다.
15년이 흐른 뒤에도 조는 사고의 진상을 추적한다. 아들 포드는 이제 그만 과거를 잊으라고 하지만, 조는 그럴 수 없다.
“네 엄마가 거기 있다, 포드. 엄마가 아직 거기 있다고. 급하게 피하느라 엄마 사진이 한 장도 없어.”
“내가 엄마를 거기로 보냈어. 그저 원자로가 용해된 게 아니야.”
이 두 대사가 참으로 슬프다.
조가 사고의 원인을 밝히려는 것은 단순히 과학적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아내를 위험한 곳으로 보냈다는 죄책감, 그리고 아내가 왜 죽어야 했는지 알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더구나 아내의 사진 한 장조차 남아 있지 않다.
그는 아들과 함께 폐쇄된 잔지라 격리구역에 몰래 들어간다.
그런데 방사능 때문에 출입을 통제했다는 곳에서 개들이 뛰어다니고, 방사선 측정기에는 방사선이 검출되지 않는다.
조의 의심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가 사고 당시 자료가 담긴 디스크를 챙긴다. 그리고 집을 나서려던 순간, 깨진 액자 속에서 아내의 사진을 발견한다.
15년 동안 아내를 잊지 못한 남자가 사고 자료를 찾으러 폐쇄구역에 들어갔다가, 뜻밖에 아내의 사진 한 장까지 되찾은 것이다.
괴수는 아직 제대로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이 장면에서 벌써 마음이 아프다.
2. 무토 부부를 생이별시킨 인간들
사건의 시작은 필리핀이다.
1999년 광산에서 거대한 고대 생명체의 뼈와 두 개의 포자가 발견된다. 하나는 이미 부화해 일본 잔지라 원전으로 이동했고, 다른 하나는 인간들에 의해 미국 네바다주의 핵폐기물 저장시설로 옮겨진다.
일본으로 간 놈은 수컷 무토, 미국으로 옮겨진 포자에서는 암컷 무토가 깨어난다.
결국 두 마리는 서로를 찾아가 짝짓기하고 번식하려 한다.
무토 입장에서 보면 인간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부부를 생이별시켜 놓은 꼴이다.
물론 발견 당시부터 두 마리가 부부였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서로를 찾아 번식하려는 생명체였다는 것은 영화에서 드러난다.
인간은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발견하자 연구하기 시작했다.
호기심이다.
모나크와 일본 정부는 잔지라 원전 사고가 단순한 자연재난이 아니라 거대 생명체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주민들에게 진상을 감췄다.
모나크는 괴수를 제거하면 더 큰 방사능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격리하고 연구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을 숨긴 이유까지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왜 15년 동안 비밀을 지켰을까.
괴수에 관한 정보를 독점하고, 연구를 통해 무언가 이득을 얻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영화에서 그런 의도가 직접 확인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조 브로디가 아내를 잃은 상황에서도 진상을 감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방사능 오염을 이유로 15년 동안 출입을 통제했지만, 조가 들어가 확인한 구역에서는 방사선이 검출되지 않았다.
자신들의 연구와 조직의 이해관계를 주민들의 알 권리보다 앞세운 것은 아닌지 의심할 만하다.
그렇다면 이기심이라 할 만하다.
잔지라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고, 조는 아내를 잃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주어진 공식 설명은 자연재난이었다.
이쯤 되니 영화 《컨스피러시》가 떠오른다.
정부가 무언가를 숨긴다는 의심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진상을 감추는 일이 벌어지면 음모론이 자라날 토양이 만들어지는 법이다.
조의 의심은 결국 사실로 밝혀진다.
하지만 아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던 조마저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미국으로 옮겨진 포자도 문제다.
모나크 연구진은 수년간 시험한 끝에 그 포자가 휴면 상태라고 판단했다. 이후 미국 측은 방사성이 높다는 이유로 포자를 인수해 핵폐기물 저장시설에 처분했다.
휴면 상태라 깨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방사선을 먹고 사는 생명체를 방사성 폐기물 곁에 가져다 놓은 셈이다.
결국 그곳에서 암컷 무토가 깨어났으니, 자신들의 판단이 옳을 것이라는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자만심이다.
3. 애먼 관광객들과 내가 다녀온 도시들
무토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거대한 발톱이 아니라 EMP, 전자기 펄스다.
이놈이 EMP를 발생시키면 전기가 끊기고 전투기와 통신장비 등 첨단 전자장비들이 작동하지 않는다.
미국이 자랑하는 군사력도 속수무책이다.
예전에 즐겨 하던 《스타크래프트》가 떠오른다. 테란의 사이언스 베슬이 사용하는 EMP 쇼크웨이브 말이다. 프로토스의 보호막과 에너지를 날려버리던 그 기술이 이번에는 미군을 상대로 등장한 셈이다.
인간은 수많은 돈과 기술을 들여 첨단 무기체계를 만들었는데, 무토는 자기 몸에서 EMP 한 번 발생시키면 그만이다.
전자무기와 생체무기의 대결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애먼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하와이 해변에는 평생에 한 번 가볼까 말까 한 여행을 온 관광객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질라가 바다에서 나타나자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온다.
호놀룰루 공항에서는 무토가 난입하고, 비행기들이 연쇄 폭발한다.
관광객들은 무슨 죄가 있는가.
그런데 쓰나미 장면에서 우스운 광경도 하나 있다.
나무에 묶여 있던 개가 위험을 감지하고 짖어대더니, 갑자기 목줄이 스르륵 풀린다. 그리고는 죽어라 달아난다.
어처구니가 없어 영상을 되돌려 다시 봤다.
정말 줄이 스르륵 풀린다.
괴수의 등장은 인정하겠는데, 개 목줄이 저절로 풀리는 모습은 참으로 웃기다.
그 개가 쓰나미에서 살아남았는지는 모르겠다.
한편 네바다에서 깨어난 암컷 무토는 라스베이거스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라스베이거스라니. 얼마 전 내가 직접 여행했던 도시다. 파리스 호텔에 묵고 스피어도 관람했던 곳인데, 이번에는 괴수가 그 도시를 박살 내고 있다.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는 샌프란시스코 역시 내가 다녀온 곳이다.
금문교 위를 직접 걸었고, 다리 위를 자동차로 건너보기도 했다. 구불구불한 길로 유명한 롬바드 스트리트도 가봤다.
공교롭게 영화에서 재앙을 겪는 하와이, 라스베이거스, 샌프란시스코 세 곳 가운데 두 곳을 직접 다녀온 셈이다.
내가 걸었던 금문교가 영화 속에서는 괴수의 등장으로 위험에 처하고, 내가 돌아다녔던 도시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그저 화면 속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과는 느낌이 다르다.
괴수들이야 서로를 찾아 움직이는 것이겠지만, 사람들에게는 여행지이고 일터이고 삶의 터전이다.
4. 핵폭탄과 PP마대, 인간의 자만심
1954년 비키니 환초.
영화에서는 당시 핵실험이 사실은 고질라를 제거하려는 작전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고질라는 살아남았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나 괴수들이 다시 등장하자 미군은 또 핵폭탄을 사용하려 한다.
군 지휘부는 핵탄두의 방사선으로 무토를 유인한 뒤 핵폭발의 충격으로 괴수들을 한꺼번에 제거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핵폭발의 충격과 방사선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능력이 다르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과거에도 핵폭탄으로 고질라를 죽이지 못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번에는 훨씬 강력한 폭탄이니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참으로 대단한 확신이다.
그런데 수컷 무토는 인간이 준비한 핵탄두를 암컷에게 가져다준다. 암컷은 샌프란시스코에 둥지를 만들고 핵탄두의 방사성 에너지를 이용해 알을 키운다.
인간에게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데, 무토에게는 새끼를 키울 에너지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괴수를 죽이겠다고 준비한 폭탄이 괴수의 먹이가 되다니.
이쯤 되면 인간이 우스워진다.
샌프란시스코 방어작전도 마찬가지다.
핵폭탄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괴수를 상대하겠다며 해안가에 PP마대를 쌓아놓고 기관총을 설치한다.
괴수는 방사능을 먹고 사는데, 인간은 모래주머니 뒤에 숨어 총알을 퍼부을 준비를 하고 있다.
참으로 눈물겨운 방어태세다.
물론 군인들이 우스운 것은 아니다. 위험을 알면서도 명령에 따라 작전에 투입되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도망갈 수도 없다.
웃기는 것은 그들에게 그런 무기를 들고 괴수와 맞서게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세리자와 박사는 이 모든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한다.
“인간은 자기들이 자연을 통제한다 여기지만, 사실은 그 반대지요.”
맞는 말이다.
자신이 만든 무기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자만심을 지적하는 말이다.
세리자와가 지니고 다니는 회중시계도 인상적이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시간에 멈춘 아버지의 시계다.
핵무기의 비극을 기억하는 사람이 핵폭탄으로 괴수를 제거하려는 계획에 반대한다.
그런데 나중에 나온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에서는 바로 그 세리자와가 고질라를 살리기 위해 핵폭탄을 직접 작동시키고 죽는다.
핵무기가 인간에게는 파괴의 수단이지만 고질라에게는 에너지원이 된다는 역설이 두 영화를 관통한다.
5. 새끼를 잃은 무토의 울부짖음
그런데 마지막 전투를 보면서 나는 무토가 불쌍해졌다.
수컷과 암컷 무토는 서로를 찾아 만나고, 마침내 알까지 낳는다.
무토가 인간을 미워해서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자기 종족을 이어가려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무토를 제거하려 한다.
물론 인간으로서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괴수를 막아야 한다. 하지만 무토가 인간적인 의미의 악의를 품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더구나 두 마리가 협공하자 고질라도 상당히 고전한다.
그런데 포드 브로디가 무토의 둥지를 불태워 버린다.
알들이 불타는 모습을 본 암컷 무토는 울부짖는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자기 새끼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울부짖는 것은 인간이나 괴수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새끼들을 잃은 일이 전투의 흐름을 바꾼다. 수컷은 고질라의 꼬리에 맞아 죽고, 암컷도 결국 죽음을 맞는다.
만약 새끼들이 죽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두 마리의 협공으로 고질라가 상당히 밀리고 있었으니 무토 부부가 이겼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물론 결과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무토들이 죽는 방식도 참으로 제멋대로다.
미군의 총탄과 미사일에도 끄떡없던 수컷 무토가 고질라의 꼬리에 맞아 건물 구조물에 꿰뚫려 죽는다.
암컷은 방사성 에너지를 먹고 사는 괴수인데, 고질라가 입안에 푸른 원자열선을 쏟아붓자 죽는다.
물론 고질라의 원자열선은 단순한 방사선이 아니라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공격이다. 미사일의 폭발과 구조물의 관통도 작용 방식이 다르다.
그러나 영화는 무토가 어떤 공격에는 강하고 어떤 공격에는 약한지 충분히 납득시키지 않는다.
차라리 고질라가 사무라이처럼 칼을 뽑아 무토의 목을 댕강 쳤다면 이해하겠다.
아무리 방사능을 먹고 사는 괴수라도 목이 잘리면 죽는다는 것은 납득할 수 있으니까.
물론 칼을 든 고질라부터 우습기는 하겠다.
괴수영화라고 현실의 과학을 그대로 적용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세계의 논리는 지켜야 한다.
괴수가 등장하는 것은 인정하겠다. 그러나 괴수라고 해서 논리까지 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스운 설정과 별개로 새끼를 잃고 울부짖는 암컷 무토의 모습은 오래 생각하게 된다.
영화 초반에는 아내를 잃은 조 브로디가 슬펐는데, 마지막에는 새끼를 잃은 무토가 슬프다.
인간에게 가족이 소중하듯 무토에게도 지켜야 할 존재가 있었던 것이다.
6. 고질라가 도시를 구했다고? 염병이다
고질라는 결국 무토 두 마리를 죽인다.
그러나 자신도 기진맥진해 쓰러져 한동안 일어나지 못한다. 다음 날에야 다시 일어나 바다로 돌아간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고질라가 도시의 구원자인지를 묻는다.
고질라가 도시를 구했다고?
염병이다.
하와이에서는 고질라의 등장으로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했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괴수들의 싸움으로 도시가 쑥대밭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과 군인이 희생되었다.
고질라가 인간을 구하기 위해 싸웠다는 근거는 없다. 세리자와 박사도 고질라가 자연의 균형을 회복하러 왔다고 믿었지, 인간을 구하러 왔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고질라는 무토와 싸워 이겼을 뿐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왔다고 고질라를 영웅으로 만들려 한다.
생각해 보면 이 재앙의 중심에는 괴수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발견하고 연구하려 했던 인간의 호기심.
잔지라 원전 사고의 진상을 감추고 주민들에게 실제 위험을 알리지 않았던 인간의 이기심.
그리고 무토의 포자를 휴면 상태라고 믿고 핵폐기물 저장시설에 처분한 데 이어, 괴수들을 핵폭탄으로 제거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인간의 자만심.
그 결과 관광객들이 죽고, 군인들은 위험한 작전에 내몰렸으며,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무토 가족도 모두 죽었다.
영화 초반에는 아내를 잃은 남자가 울고, 마지막에는 새끼를 잃은 괴수가 울부짖는다.
인간과 괴수라는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소중한 존재를 잃었다.
그런데 영화는 고질라가 이겼다는 이유로 그를 도시의 구원자로 부르려 한다.
나는 오히려 무토가 불쌍하다.
인간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옮겨놓은 포자에서 깨어나, 짝을 찾아 만나고, 새끼를 키우려 했던 두 마리의 생명체.
그들에게는 세상을 구하겠다는 명분도, 인간을 지배하겠다는 야망도 없었다.
그저 살아남아 종족을 이어가려 했을 뿐이다.
무토는 무슨 죄가 있는가.
차라리 괴수보다 인간의 호기심과 이기심, 자만심이 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