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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 전2권 세트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오래된 정원
— 왜 가니, 니가. 잘 가라, 이 바보야.
책 소개
지은이 : 황석영
출판사 : 창비
출간일 : 2000년 4월 24일
분량 : 상권 332쪽, 하권 320쪽, 총 652쪽(출판사 초판 안내 기준)
장르 : 한국 장편소설
작품 특징 :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사회주의권의 붕괴 등 격변의 시대를 배경으로, 오랜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남자가 과거의 사랑과 잃어버린 시간을 되짚는 이야기
영화 : 《오래된 정원》(2007), 임상수 감독, 지진희, 염정아 주연, 112분
1.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엇갈린 두 사람의 궤적
오현우는 군부독재에 저항하다 수배되어 도피생활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미술교사 한윤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지낸 시간은 불과 3개월. 현우는 다시 떠나고, 결국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
18년 만에 세상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낯선 세상과 이미 세상을 떠난 연인 한윤희의 흔적뿐이다.
그가 믿었던 이념도, 함께 싸우던 사람들도, 세상도 달라져 있다.
황석영은 두 사람의 사랑을 통해 1980년대 한국사회의 격변과 사회주의권의 붕괴까지 이야기한다. 개인의 삶과 시대의 역사가 함께 흘러가는 소설이다.
현우는 18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청춘을 잃었고, 사랑하는 여자를 잃었으며, 세상이 변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윤희의 18년은 어떠했을까.
현우가 감옥에 있는 동안 윤희의 시간도 흘렀다. 독일로 건너가 미술을 공부하기도 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현우의 딸 은결을 키우며 자신의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현우가 돌아오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현우에게 18년은 빼앗긴 시간이지만 윤희에게는 하루하루 살아내야 했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민주화운동을 하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의 희생을 기억한다. 당연히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맞서 싸운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잊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그들이 떠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간 사람들의 세월도 그에 못지않게 무겁다.
윤희를 단순히 남자를 기다리며 살아간 여자로 볼 생각은 없다. 그녀에게도 자신의 신념과 삶이 있었고, 예술가로서의 꿈이 있었다. 현우와 헤어진 뒤에도 세상을 살아가며 사랑하고, 상실을 겪고, 아이를 키웠다.
그녀는 현우의 삶에 딸린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이 함께하지 못한 세월을 현우의 희생만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
그가 감옥에서 잃어버린 18년과 그녀가 홀로 살아낸 18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두 사람의 삶을 바꿔놓았다.
황석영은 현우가 윤희의 기록을 읽으며 자신이 알지 못했던 세월을 알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현우가 몰랐던 것은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만이 아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것이 18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다.
2. 임상수의 오래된 정원, 염정아가 연기한 한윤희; 6개월의 사랑, 17년의 이별
한윤희, 염정아. 이쁘다.
숨겨줘, 재워줘, 먹여줘, 몸줘.
2024년 10월 30일, 영화를 보고 남긴 독서노트다.
도피 중이던 오현우를 숨겨주고, 재워주고, 먹여주고, 사랑까지 내어준 여자다.
그런데 이놈은 떠난단다.
왜 가니, 니가.
그래, 네가 왜 가야 하느냐는 말이다.
염정아가 연기한 한윤희는 당차고 씩씩하다. 현우가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소개하자 씻기나 하라며 농담으로 받아넘긴다.
현우는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이야기하지만, 윤희에게는 우선 눈앞에 있는 현우라는 사람이 중요했던 모양이다.
윤희는 자신이 운동권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도피 중인 현우를 숨겨주고, 함께 생활하며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이 갈뫼에서 지낸 시간은 영화에서 6개월로 그려진다.
그 짧은 시간에 두 사람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하며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독재정권에 쫓기는 남자와 그를 숨겨준 여자라는 사정만 빼면 여느 연인과 다를 것도 없다.
그런데 서울에서 동료들이 모두 붙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현우는 혼자 숨어 있을 수 없다며 갈뫼를 떠나기로 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니 화가 난다.
그렇게 아름답고 자신을 사랑해 주는 여자를 두고 왜 떠난다는 말인가.
솔직히 염정아가 너무 아름다워서 현우의 선택이 더욱 못마땅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미모 때문에 떠나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윤희가 현우에게 내어준 것은 단순히 잠자리나 은신처가 아니다. 자신의 생활 속으로 그를 받아들였고, 함께하는 삶을 시작했다.
현우에게 갈뫼는 잠시 몸을 피하는 장소였을지 모르지만, 윤희에게는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그 안에 현우가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현우는 다시 떠나겠다고 한다.
현우가 떠나는 이유는 이해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 마음은 그와 다르다.
동료들이 붙잡혔다는 사정도 알겠고, 그가 지키려는 신념이 무엇인지도 알겠다.
그래도 윤희를 두고 떠나는 현우가 야속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지고, 영화 속 현우는 17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다.
윤희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이제 현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윤희가 남긴 기록을 읽고, 자신이 없었던 세월을 더듬는 것뿐이다.
오현우, 지진희. 바보, 지진아.
3. 그때는 자기만 행복하면 나쁜 놈이 되는 시대였거든
독서노트에는 현우의 말도 적어놓았다.
˝그때는 자기만 행복하면 왠지 나쁜 놈이 되는 시대였거든.˝
그 시절은 그랬다.
독재정권이 국민을 억압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던 사람들이 잡혀가고, 고문당하고, 죽어가던 시대였다.
그런 세상에서 자기 혼자 편안하게 살겠다는 것이 부끄러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거리로 나섰고, 누군가는 감옥에 갔으며,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지키려 했던 가치와 그 과정에서 감당한 희생을 가볍게 평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자기만 행복하면 나쁜 놈이 되는 시대였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해지는 것까지 죄스러운 일이었을까.
현우에게는 동료들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함께 싸우던 사람들이 잡혀갔는데 자기 혼자 안전한 곳에 숨어 있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윤희와 함께하는 삶이 동료들을 배신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우가 갈뫼에 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동료들을 외면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 언젠가 다시 붙잡혔을 수도 있고, 윤희와 함께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떠나는 것만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현우가 지키려던 신념은 소중하다. 윤희와 함께할 수 있었던 삶도 소중하다.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반드시 우선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옳은 일을 했다는 이유로 그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고통까지 정당화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목적이 정당하다는 사실과 그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겪은 상실은 구분해야 한다.
현우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가 감옥에 갇힌 것은 독재정권의 억압 때문이지, 사랑하는 여자를 떠났기 때문에 받아야 할 대가가 아니었다.
현우를 비난하다가도 결국 그 시대를 돌아보게 되는 이유다.
두 사람이 평범하게 사랑하며 살 수 없도록 만들었던 시대가 있었다.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 민주화운동의 목적 중 하나 아니었을까.
그런데 정작 그 세상을 만들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죄스럽게 여겨야 했다.
참 고약한 시대였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난 현우의 선택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해하는 것과 동의하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4. 글로 읽는 시대와 영상으로 보는 사랑; 원망스러운 시대, 야속한 오현우
황석영의 소설과 임상수의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다루지만, 읽고 보는 과정에서 내가 바라보는 곳은 달라진다.
소설은 현우와 윤희가 헤어진 뒤에도 각자의 삶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폭넓게 보여준다. 민주화운동과 사회주의권의 붕괴,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생각과 삶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 함께 담겨 있다.
현우는 감옥에 있었지만 윤희는 그 밖에서 세상의 변화를 직접 겪었다. 그녀의 기록에는 현우가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역사가 들어 있다.
따라서 소설에서는 현우가 어떤 시대를 살았고, 무엇을 지키려 했으며, 그 선택 이후 두 사람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반면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갈뫼에서 함께했던 생활이 눈앞에 펼쳐진다.
윤희의 표정과 목소리, 두 사람이 나누는 농담과 사랑, 그리고 갈뫼를 떠나는 현우의 모습까지 직접 보게 된다.
소설에서 3개월이었던 두 사람의 동거 기간도 영화에서는 6개월로 늘어났다.
단순히 함께 지낸 기간이 길어졌다는 사실보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 영화는 두 사람이 함께하는 일상을 관객에게 직접 보여주고, 그 모습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받아들이게 한다.
물론 이것이 감독이 의도한 효과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두 작품을 받아들인 방식은 그렇다.
소설에서는 윤희가 살아온 삶을 읽으며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갔다면, 영화에서는 윤희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를 먼저 좋아하게 된 셈이다.
글로 읽을 때와 영상으로 볼 때의 감정이 다르다.
소설에서는 두 사람을 갈라놓은 시대가 원망스럽고, 영화에서는 윤희를 두고 떠나는 현우가 야속하다.
5. 다시 찾은 오래된 정원, 그곳에 없는 사람; 돌아갈 수 없는 과거, 남아 있는 삶
오현우가 다시 갈뫼를 찾았을 때 그곳에는 윤희가 남긴 기록과 그림이 있다.
그러나 정작 윤희는 없다.
두 사람이 함께했던 장소는 다시 찾을 수 있지만, 그때의 시간까지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현우에게 갈뫼는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장소다.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했던 시간은 감옥에서도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희에게 갈뫼는 현우와 함께했던 장소인 동시에 그가 떠난 뒤에도 자신의 삶이 계속된 현실의 한 부분이었다.
같은 장소를 기억하더라도 두 사람이 기억하는 시간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목이 오래된 정원인가 보다.
현우가 돌아온 것은 정원이지만, 정작 그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그곳에 없다.
대신 딸 은결이 있다.
현우가 기억하는 윤희는 과거의 연인이지만, 은결에게 윤희는 자신을 낳고 키운 어머니다. 같은 사람을 기억하지만 서로 알고 있는 삶이 다르다.
현우에게는 딸에게 설명할 이야기가 많겠지만, 은결에게도 아버지가 없는 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려줄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지나간 세월은 되돌릴 수 없다. 이제 현우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과거를 설명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알지 못했던 딸의 삶을 알아가는 일일 것이다.
오래된 정원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는 없지만, 앞으로 살아갈 시간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니까.
6. 잘 가라. 이 바보야.
황석영의 소설과 임상수의 영화를 함께 읽고 보면서 결국 현우의 선택을 다시 생각한다.
나는 현우의 신념을 존중한다. 그가 무엇을 위해 싸웠고,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도 안다. 그러나 그의 선택까지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사랑도 때가 있는 법이다.
떠나야 할 때 떠나는 것이 용기라면, 남아야 할 때 남는 것도 용기일 것이다. 어느 쪽이 옳았는지는 당사자조차 평생 알지 못할 수 있다.
현우가 윤희 곁에 남았다면 두 사람은 행복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아깝다고 생각한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이다.
그러니 그에게 한마디는 해야겠다.
한윤희, 염정아. 이쁘다.
오현우, 지진희. 바보, 지진아.
왜 가니, 니가.
잘 가라. 이 바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