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별연: 마지막 담배를 피우며 새해로 들어서면서 나도 담배를 끊었다. 지난해 그믐밤 마지막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이것이 마지막 담배라고 생각하니 쓸쓸한마음이 절로 일어났다. - P15
내가 담배를 피운 지 45년이다. 한생을 같이해온 이 기호품과 결별하자니 깊은 감회가 일어난다. 200여 년 전, 나하고 종씨인 유씨(兪氏)부인이 27년간 써오던 바늘이 부러지자 이를 애도하는 조침문(弔文)」을 썼듯이 나도 고별연(告別煙)이라도 남겨야겠다. - P15
글을 쓰다 펜이 멈출 때 담배 한 대 물고 잠시 사색에 잠기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 - P-1
정희성 시인은 「동년일행(同年一行)」 에서 이렇게 읊었다.
괴로웠던 사나이 순수하다 못해 순진하다고 할 밖에 없던 남주(南柱)는 세상을 뜨고 서울 공기가 숨쉬기 답답하다고 안산으로 나가 살던 김명수(金明秀)는 더 깊이 들어가 채전이나 가꾼다는데 훌쩍 떠나 어디가 절마당이라도 쓸고 싶은 나는 멀리는 못 가고 베란다에 나가 담배나 피운다. - P16
그러다 꿈에도 그리던 백두산 정상에 올라 신령스러운 천지 못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을 때 북측 안내원이 다가와 "교수 선생, 백두산 정상에는 ‘백두산‘ 담배가 제격 아니겠습니까"라며 권하는것이었다. 나는 이 순간에도 한 대 피우지 않는다면 그건 감성의동물인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담배를 건네받아 불을 댕겼다. 핑 돌거나 거부감이 일어나면 바로 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천지가 더욱 황홀해 보였다. 이후 나는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 P17
노무현 대통령은 엄청난 골초이셨다. 식사를 하고나면 담배를 연거푸 두 대를 피우는 것이었다. 가만히 보니 대통령은 타르가1.0mg인 ‘에쎄‘를 피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5.0mg인 클라우드나인을 한번 피워보시라고 권했더니 맛있다며 묻는 것이었다. - P18
"이게 어디 제입니까?" "국산입니다." "클라우드 나인이 무슨 뜻입니까?" "속어로 ‘뿅 갔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 단어를 써도 됩니까?" "외국에도 수출하다 보니 자극적인 이름이 필요했나 봅니다." - P19
아닌 게 아니라 이 담배는 마약쟁이들의 비속어를 이름으로 썼다고 비난받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담배인삼공사(KT&G) 임원을 만났을 때 클라우드 나인은 아홉 개의 구름이라는 뜻이니 이것은 한글소설 『구운몽(九雲夢)』에서 나온 것이라고 둘러대라고 일러주었다. - P19
태초에 이 땅에 주인으로 태어나 잡초라는 이름으로 짓밟히고, 뽑혀도 그 질긴 생명력으로 생채기 난 흙을 품고 보듬어 생명에 터전을 치유하는 위대함을 기리고자 이 비를 세우다. - P27
김정헌과 나는 청옥산 육백마지기의 잡초공적비를 떠나면서이생진 시인의 「풀 되리라」를 큰 소리로 낭송하였다.
물 가까이 살다 물을 만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풀되리라
아버지 날 공부시켜 편한 사람 되어도 나 다시 공부해서 풀 되리라 - P28
"뭔 꽃이 저렇게 난리도 아니게 지랄같이 피어댄데여. 손이 열개라도 모자라는데 우쩌란 말이여." 농사꾼은 이처럼 바쁜 일손을 놓지 못하고 봄을 탄식하고, 고단한 인생살이에 시달리는 분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몸으로 살아가지만 한가한 옛 문인들은 봄을 한없이 만끽하면서 수많은 봄노래를 남겼다. - P34
중국 소주(蘇州, 쑤저우)에는 수많은 명원이 있어 아홉 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그중 하나인 망사원(網師園, 왕스위안)의 입구 담벽에는 ‘향수춘농(香睡春濃)‘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풀이하자면 ‘무르익어가는 봄날, 향기에 취해 졸음이 온다‘는 뜻이니 봄을 즐기는 최고의 경지가 아닌가싶다. - P34
봄꽃은 희망이기도 하다. 송나라 애국 시인인 육방송(陸)은「산서 마을을 노닐며(遊山西村)」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산은 첩첩, 물은 겹겹이라 길이 없는 듯했는데버들잎 짙고, 꽃들이 밝게 피어난 곳에 또 한 마을 있네 山重水複疑無路 柳暗花明又一村 - P34
"뭐긴다 뭐여, 인생이란 맥주병 위에 떠 있는 빈 배란 말이시." 천연덕스러운 이 할아버지의 해설 앞에 나는 미술평론가로서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이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고단했던 삶과 그 삶 속에 함께했던 술과, 그 술기운에 실어왔던 꿈과 그 꿈의 허망을 모두 읽어냈던 것이다. - P49
백남준의 말을 빌리든, 한 중년 신사의 고함을 인용하든, 현대미술을 일컬어 사기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사기란정치꾼이나 장사꾼의 그것과는 달리 아주 애교 있고 악의 없는, 그래서 우리의 정서 함양에 매우 유익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예술은 사기이되 이유가 있는 사기인 것이다. - P49
일주일이면 한 번, 못 돼도 한 달에 한 번은 뵙던 얼굴인데, 이 봄이 다 가도록 만날 수 없었으니, 저술에 전념함이 깊으신 것인지 영남의 꽃이 좋아 아니 올라오심인지. 다름 아니오라 책을 정리하다가우리 회화사 연구에 도움이 될 듯한 자료가 나와 한부 복사하여동봉하오니 잘 엮어서 좋은 작품을 만드심이 어떠하실지. 부처님얼굴 살찌고 아니고는 석수장이 손에 달렸다고 합니다. 하하하, 이만 총총. - P53
선생은 스스로 책방 주인이라고 낮추었지만 누구 못지않은 애서가였다. 통문관에는 ‘적서승금(積書勝金)‘이라는 편액이 걸려있었다. 책을 쌓아두는 것이 금보다 낫다는 뜻이다. 그리고 선생은 훌륭한 서지학자, 국학자이셨다. - P55
이겸로 선생은 2006년 10월 15일, 향년 97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유언으로 수목장을 해달라고 하셨다. 선생은 진실로 인생을 잘 사신 인사동의 큰어른이셨다. 지금 통문관은 손자인 이종운 씨가 가업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끊겨 사실상문을 닫은 셈이어서 쓸쓸하다. - P55
모든 물건에는 주인이 있는 법인데, 이제 이 소책자가 주인에게로 돌아갑니다. 이 또한 선친의 뜻입니다. 청컨대 웃으면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物各有主今此小冊子 歸於主此亦先考之意也請笑納之 - P57
본래 세계적으로 자동차와 기차는 우측으로 달리는 것이 대세다. 유독 영국과 일본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몇 나라만이 좌측으로 달린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때부터 영국을 선망하여 자기네 나라를 동양의 영국으로 만들고 싶다는 열망으로 기차와 자동차를도입할 때 영국식으로 좌측통행을 택했다. 바로 그 이유로 지금우리는 영국과 일본을 가게 되면 자동차 오는 방향을 헷갈려 길을건널 때 습관적으로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을 살피곤 한다. 영국과일본은 명확히 기차, 자동차, 사람 모두 좌측통행이다. - P77
그러나 미국, 프랑스, 독일 등 그 이외 국가들은 기차, 자동차, 사람 모두 우측통행이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런데왜 우리나라만 "사람들은 왼쪽 길, 차나 짐은 오른 길"이라는 보행규칙을 갖게 되었는가?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근대화과정에 일제강점기가 겹치면서 보행 문제를 혼잡하게 만들고 만것이다. - P77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대가 달항아리 형태로 만들어질정도로 달항아리는 한국미의 상징이 되었다.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이 어제의 미학이 아니라 한국미의 영원한 아이콘으로 오늘날우리들의 미의식에 살아 있다는 것은 여간 큰 행복이자 자랑이 아닐 수 없다. - P87
남한의 3대 정자로는 진주 남강변의 촉석루, 밀양 낙동강변의영남루, 제천 청풍 남한강변의 한벽루를 꼽고 있다. 북한에선 평양 대동강의 부벽루와 연광정, 안주 청천강의 백상루, 의주 압록강의 통군정 등이 예부터 이름 높다. - P89
세종 때 하륜崙)이 보물 제528호인 한벽루(寒碧樓)에 쓴 중수기문은 가히 교과서에 실릴 만하다.
생각하건대, 정자를 수리하는 것은 한 고을의 수령 된 자의 일로서는 아주 작은 말사(末事)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것이 잘되고 못됨은 실상 고을의 다스림과 깊이 관계된다. 다스림에는 오르내림이 있어 민생이 즐겁고 불안함이 늘 같지 않듯이 정자의 흥폐도 이에 따른다. 하나의 정자가 흥하고 폐한 것을 보면 그 고장 사람들이 즐거운가 불안한가를 알 수 있고, 그것으로써 한 고을 다스림의실태를 엿볼 수 있을지니, 어찌 그것이 하찮은 말사라고 할 수 있겠는가. - P89
성종 때 서거정(徐居正)이 공주 금강변 정지산 산마루의 취원루(聚遠樓)에 붙인 기문 또한 천하의 명문으로 그 경륜의 시각은 참으로 원대하다.
정자를 세우는 것은 다만 놀고 구경하자는 뜻만이 아니다. 이 정자에 오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들판을 바라보면서 농사의 어려움을생각해보게 하고, 민가를 바라보면서는 민생의 고통을 알게 하고, 나루터와 다리를 보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내를 잘 건너갈 수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 곤궁한 백성들의 생업이 한두 가지가아님을 여기서 보면서 죽은 자를 애도하고 추운 자를 따스하게 해줄 것을 생각하게 한다. (…) 이는 멀리 있는 사물에서 얻어낸 것을정자에 모으고, 정자에서 모은 바를 다시 마음에 모아서, 내 마음이항상 주인이 되게 한다면 이 정자를 취원루라고 이름 지은 참뜻에가까울 것이다. - P90
지는 달은 희미하게 먼 마을로 넘어가는데 까마귀 다 날아가고 가을 강만 푸르네 누각에 머무는 나그네는 잠 못 이루고 밤서리 바람에 낙엽 소리만 들리네
과연 『징비록(懲毖錄)』의 저자다운 시다. 그러나 누구나가 다 서애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 P92
국토의 어디로 떠나든 차창 밖으로는 문득 저 멀리 정자가 나타날지니 그러면 고려시대 박윤문(朴文)이 단양을 지나다가 취운루(翠雲樓)라는 정자를 바라보면서 읊은 시에 공감을 보내게 될 것이다.
관동으로 가는 길목, 저 멀리 보이는 정자 하나 십리 소나무 그늘은 참으로 그윽하구나 - P92
우리나라는 기록유산의 나라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나라 기록유산은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 『조선왕조실록』 『훈민정음』 『동학농민혁명기록물』 등 18건이나 된다. 그중 『조선왕조실록』은 총 1,894권 888책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기록물이다. - P94
1. 『조선왕조실록』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천재지변 등 다방면의 자료를 수록한 종합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 2.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실록이 있는 나라 중 편찬된 실록은 후손왕이 보지 못한다는 원칙을 지킨 나라는 조선왕조뿐이다. 3. 위 원칙의 고수로 『조선왕조실록』은 기록에 대한 왜곡이나고의적인 탈락이 없어 세계 어느 나라 실록보다 내용 면에서 충실하다. 책 권수로 치면 중국 명나라 실록이 2,900권으로 더 많으나 실제 지면 글자 수는 1,600만자 정도로, 4,965만자인 『조선왕조실록』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4.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의 다른 나라 실록들은 대부분 원본이 소실되었고 근현대에 만들어진 사본들만 남아 있으나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왕조 시기의 원본이 그대로 남아 있다. - P95
국보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은『태조실록』부터 철종실록』까지의 25대 472년의 기록만을 말한다.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일제강점기에 종래의 엄격한 방식이 아니라 소략하게 의례적으로 편찬하였고, 또 일제가 정략적 의도로 왜곡한 부분이 있어 별도로 취급한다. - P95
『조선왕조실록』은 여러 판본이 있는데 일찍이 1973년에 정족산사고본(1,187책)이 국보 제151-1호로 지정된 바 있고, 오대산사고본, 적상산사고본, 봉모당본, 낙질 및 산엽본 등이 국보 제151-6호까지 추가로 지정되었다. 이는 그간의 험난했던 이동과 망실의 역사와 피눈물 나는 보존의 의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것이다. - P96
전쟁에 정신없는 관리들은 땅에 묻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때 태조 이성계를 모신 사당인 경기전의 참봉 오희길(吳希吉)은 내장산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는데 888책을 모두 담으려면 60여 궤짝에 말 20여 필이 필요하였다. 이에 오 참봉은 태인에 살고 있는 선비인 안의(安義)와 손홍록(弘祿)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그러자 이들은 집안사람과 하인등 30여 명을 인솔하고 와서 실록을 내장산 산속 암자로 피란시켰다. 조정에서 실록을 행재소가 있는 해주로 옮기라는 명이 내려온 것은 이듬해 (1593) 7월이었다. 그때까지 두 사람은 물경 1년 하고도 닷새 동안 내장산에 기거하며 실록을 지켰던 것이다. 그때 안의는 65세, 손홍록은 57세였다. 벼슬도 없는 무명의 선비가 사재를 털어가며 끝내 실록을 지켜낸 것이다. 훗날 이들에게는 별제(6품) 벼슬이 내려졌다. 안의와 손홍록은 의병(義兵) 못지 않은 의인(義人)이자 애국자이고 문화유산지킴이의 상징이다. - P97
부동산 파동의 근본 요인 중 하나는 아파트가 현찰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택에는 그런 환금성이 없다. 그렇다면규제를 풀어 주택건설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아파트값 파동을 막는 첩경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 진정 국토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인지 원점에서 생각하고 과감하게 바꿀 때가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집의 본원적 기능을 회복하는 길이며, 무엇보다도 우리네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 P105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를 가르치고, 중고등학교에서는 한문을 가르치고, 대학에서도 한문을 교양필수 과목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외워서 익힐 것은 어려서부터 해야 한다. 26세가 넘으면 외우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그러지 않으면 나처럼 ‘그놈의‘ 한문 공부 때문에 평생을 학생으로 살게 된다. 한자교육은 요즘 말하는 인문학의 기초 체력을 기르는 필수과목인 것이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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