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해 세계와 인류에 대한 자신의 이해의 깊이와 폭을보여주며, 인류의 업적에 대한 존중까지도 담아냅니다. 그들에게미술은 세계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의 원천인 셈입니다. - P5

그간 많은 미술품을 보아왔지만 나의 질문은 언제나 ‘인간에게미술은 무엇일까‘였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제가 찾은 대답이 바로이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미술 이야기가 여러분의 눈과 생각을 열어주는 작은 계기가 된다면 너무나 행복하겠습니다.
책을 만들면서 편집 방향, 원고 구성과 정리에 있어서 사회평론 편집팀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기록해둡니다.

2016년 두물머리에서 양정무 - P5

이 시기는 ‘작가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루벤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카라바조, 베르니니 등 굵직굵직한 작가들이 유럽 곳곳에 등장합니다. 8권에서는 보로미니, 안니발레 카라치, 프란스 할스, 페르메이르, 무리요를더해 개성 넘치는 10명의 작가를 집중 조명하여 바로크 미술이 어떻게펼쳐졌는지 살피고자 합니다. - P6

바로크 시대에 유럽의 지도가 완성되면서 나라마다 미술의 성격도 분명해집니다. 이 책은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의 바로크 미술을 순서대로살펴봅니다. 처음 등장하는 이탈리아 바로크는 거침이 없습니다. 구도와움직임, 색채와 명암 등 모든 조형적인 표현이 극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 P6

네덜란드의 경우 남부 지역은 가톨릭 세계에 묶이면서, 북유럽 특유의 섬세한 표현을 자랑하던 이곳 미술은 이탈리아 바로크와 융합합니다. 루벤스가 이 같은 미술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면 네덜란드 북부 바로크 미술이 이룬 눈부신 성과는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 P6

한편 스페인은 16세기부터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자기 통제 아래 두며미술 역시 두 지역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강력한 가톨릭 신앙에 기반한 엄격하고 절제된 미술, 동시에 화려한 이슬람과 중세 미술의 전통이이어지면서 스페인의 미술가들은 극도로 장식적인 후기 바로크 미술 세계를 이끌어냅니다. - P7

바로크는 르네상스와 함께 유럽 근대 미술의 양대 산맥입니다. 르네상스가 고전적 균형과 안정적 조화를 강조했다면, 바로크는 탈고전적 화려함과 빠른 움직임을 강조합니다. - P7

바로크 미술은 너무나 화려하고 강렬한 세계이기에 도리어 거부감을 줄정도로 표현이 지나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대 시각 문화가 보여주는 스펙터클의 세계를 접하다 보면 시선의 움직임을 극적으로강조하는 바로크가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 P7

결국 바로크 미술로의 여행은 현대 시각 문명의 시원을 찾아가는 흥미진진한 노정입니다. 이제부터 강렬한 바로크 미술에 빠져볼까요. - P7

태양처럼 강렬한 바로크 미술은 혼란스러운 로마의 새벽으로부터 떠올랐다. 바스러진 영광을 되찾으려는 간절함은 끝을 모르는 화려함을 낳았으나, 그 이면에는 미처 물러가지 못한 어둠이 잔재했다. 로마의 중심을굳건히 지키는 성 베드로 광장, 그 찬란하고 위태로운 시대의 흔적 위로뜨거운 햇빛이 선명히 타오른다.
- 성 베드로 광장, 바티칸 시국 - P12

바티칸,
강렬하고 뜨거운바로크 세계의 중심
#바로크 #바티칸 #천사의 다리 #성 베드로 대성당 #베르니니

바티칸은 이탈리아 심장부에 있는 단검이다
ㅡ 토마스 페인 - P15

로마 및 바티칸 시국 
테베레강을 건너면 바로크 미술의 심장 같은 바티칸이 성큼다가온다.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은 순례자와 관광객 모두의 마음을설레게 한다. - P16

산탄젤로성과 천사의 다리, 135~139년, 로마 
산탄젤로 성은 로마 제국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자신과 가족 묘지로 지었다. 성 앞에 놓인 다리의 정식 이름은 폰테 산탄젤로Ponte Sant‘Angelo다. 폰테는 다리, 산탄젤로는 성스러운 천사를 뜻한다. - P17

베르니니, ‘유대인의 왕‘ 십자가 명패를 든 
천사(왼쪽), 가시 면류관을 든 천사(오른쪽), 1667년,천사의 다리 
천사의 휘어질 듯 흔들리는 자세와 일렁이는 옷자락이 인상적이다. 현재 다리에는후대에 다시 제작한 작품이 자리하고, 원작은 로마의 산탄드레아 델레 프라테 성당에 있다. - P20

바로크라는 용어는 일그러진 진주를 의미하는 포르투갈어 바로코Barroco에서 유래했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17세기 미술 경향에반감을 품은 후대 사람들이 ‘기괴하다‘ ‘이상하다‘ ‘터무니없다‘는 의미를 담아 바로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P24

이제 이해돼요. 로마를 찾아오는 이에게 좀 더 화려하고 멋지게 보이려고한 결과가 바로크 미술이었다는 거네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천사의 다리는 고된 여정을 거쳐 바티칸을 찾은 순례객이나 여행객을 환영하는 적극적인 시각 장치였습니다. 베르니니는 환상적인 천사 조각상으로 바티칸에 막 들어선 이들에게 당신은 이제 천국의 세계에 들어왔음을 축복하려던 겁니다. 그러면 이제 발길을 성 베드로광장으로 옮겨볼까요? - P25

베르니니, 성 베드로 광장, 1656~1667년, 바티칸 시국 
산 피에트로 광장Piazza San Pietro이라고도 한다. 베르니니가 1656년 설계해 11년 후 1667년에 완공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중 하나이며, 베르니니의 대표적인 걸작이다. - P26

성 베드로 광장 콜로네이드, 1660~1667년, 바티칸 시국

맨 위에는 140명의 성인 조각상이 올라가 있다. 이 조각상들은 1662~1673년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완성했다. - P28

다시 보니 콜로네이드가 양팔로 보이기도 하고, 열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초대 교황이었던 베드로성인 이후 교황의 상징은 천국의 열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교회를 맡기면서 천국의 열쇠를 내려줍니다.
그리고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했습니다. 이때부터 열쇠는 교황을 상징하는데, 베르니니가 광장을 설계할 때 중요하게 고려한겁니다. - P30

사실 베르니니를 잘 몰랐는데 위대한 미술가였네요.

미켈란젤로가 16세기를 대표하는 로마의 작가라면, 베르니니는 17세기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17세기 로마를 ‘베르니니의 세계‘라고 부를 정도로 베르니니는 건축, 조각, 회화에서 압도적인 재능을 발휘했지요. 이제 본격적으로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다음 페이지 같은 장면이 펼쳐집니다. - P31

지금은 이어폰만 꽂으면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는성 베드로 대성당 옆에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비밀스럽게 연주된 곡이었습니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천사의 음악‘처럼 아름다운 이 곡을 독점하기 위해 복사를 금하고 악보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에 1770년대까지는 바티칸을 찾아야만 겨우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1770년14살의 모차르트가 시스티나 예배당을 방문해 이 곡을 딱 한 번 듣고 외워서 악보로 적어낸 다음부터 널리 연주됐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 P33

성 베드로 대성당이 처음부터 호화롭게 꾸며진 건 아니었습니다. 준공 당시에는 텅 비어 있었다고 해요. 혹시 ‘장엄하다‘라는 표현을 아세요? 우리에겐 씩씩하고 웅장하다라는 형용사로 익숙하지만, 성스럽고 종교적인 건축물을 꾸밀 때 장식하다 대신 ‘장엄하다‘라는 동사로도 표현합니다. 교황 우르바노 8세는 텅 빈 성 베드로 대성당을 장엄한 주인공입니다. - P34

베르니니, 다키노, 1624~1635년, 성 베드로 대성당 

천개‘라는 뜻의 발다키노는 제대나 설교단 주위에 세워진 네 개의 기둥과 윗부분에 장치되는 덮개를 말한다. - P36

베드로 성인의 무덤, 성 베드로 대성당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천국의 열쇠를 받고 초대 교황이된 베드로 성인의 무덤 위에는 중앙 제대가 있고, 그 위에 발다키노가 설치되어 있다. - P38

판테온도 역사적인 건축물인데 함부로 뜯어도 되나요?

그럴 리가요. 판테온의 청동을 끌어다 쓴 걸 보고 "바바리안(야만인)이 못한 일을 바르베리니가 했다!"라며 조롱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바르베리니는 교황 우르바노 8세의 가문을 말합니다. 우르바노 8세의 본명은마페오 바르베리니입니다. 우르바노 8세가 야만인만도 못한 문화재 파괴범이라고 비꼰거죠. 말이 나온 김에 다음 페이지에 우르바노 8세 가문의 문장 coat of arms이 담긴 대리석 받침대를 볼까요? - P38

화려한 바로크의 천재 기획자 
베르니니가 교황의 무덤까지 만들었나요?
‘베드로의 의자‘에서 놓쳐서는 안 될 부분입니다. 의자 바로 왼쪽에는 바오로 3세의 무덤 기념물이, 그리고 오른쪽에는 우르바노 8세의 무덤 기념물이 자리합니다. 16세기에 제작된 바오로 3세의 무덤은 르네상스와바로크 사이 매너리즘이라고 부르는 다소 기교적인 양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반면 베르니니가 만든 우르바노 8세의 무덤은 바로크 미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교황의 자세만 보아도 차이가 느껴지지 않나요? - P50

크고 화려하면 멋있지만, 그것이 정작 전달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있죠.

그렇습니다. 이 때문에 후대 비평가들은 바로크 미술을 난잡하고 일그러진 양식이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16세기 가톨릭 세계가 겪은 위기를떠올리면 17세기 바로크 미술이 왜 그렇게 과장된 표현에 집착했는지 이해됩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화려함의 배경에는 위기와 도전의 시간이 있었던 거죠. 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가 바로크 미술이 연출한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어지는 다음 장에서 본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P54

예술은 혼돈에 대한 승리다.
-존 치버 - P56

16세기 초반부터 로마는 엄청난 사건을 두 번이나 겪었습니다. 첫 번째는 1517년, 마르틴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라는 독일의 작은 도시에서 활동하던 수도사였습니다. 그는 로마 교황청에 일종의 공개서한인 『95개조 반박문을 보내 교회의 타락을 낱낱이비판합니다. 때마침 금속활자가 발명되면서 반박문이 유럽 전역에 퍼지자교회의 권위는 크게 흔들립니다. 영원히 하나일 것만 같던 가톨릭 세계는루터를 지지하는 쪽과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갈라섰습니다. - P57

트리엔트 공의회에 모인 학자들은 논의 끝에 종교 미술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세부 지침을 내립니다. 바로크 미술을 당시 사람들의 시선으로감상하는 데 매우 중요한 대목이니 눈여겨봐주세요.
첫째, 종교 미술은 명쾌하고 명확하며 이성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둘째, 사실적인 해석을 나타내야 한다.
셋째, 종교 미술은 신앙을 감성적으로 고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 P64

언어로 된 지침을 적절하게 해석해서 그림으로 나타내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미술가들이 종교 미술의 새로운 조건에 적응한 이시기는 매너리즘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매너리즘은 미술사에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에 있는 미술을 뜻합니다. 이 용어는 양식 style,
manner을 뜻하는 마니에라maniera에서 온 말입니다. 이탈리아어로는 마니에리스모manierismo라고도 하죠. - P64

이 적응기가 없었더라면 바로크도 탄생하지 못했겠네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매너리즘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창조력을 잃고 과거의 미술을 따라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르네상스의 슈퍼스타보다 이 시기작가들의 역량이 부족해서 매너리즘 양식이 생겼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 P65

1571년에는 책을 검열하는 기관까지 만들었습니다. 이후금서목록은 계속 늘어나 수천 권에 이르렀는데요. 여기에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존 밀턴의 『실낙원』은 물론 마키아벨리, 갈릴레이, 코페르니쿠스 등 뛰어난 학자들의 책이 올랐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시작된 가톨릭의 금서 지정은 1966년까지 계속됩니다. - P74

교회에서 진리라고 굳게 믿었던 지식을 다시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군요.

맞습니다. 더는 과학을 부정할 수 없는 시대가펼쳐진 거죠. 개신교와 가톨릭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혼돈의 와중에도 인간은 진리에 한 발짝 다가섰습니다. 이처럼 빛과 어둠이 강렬하게 교차한시대가 바로 17세기입니다.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화가는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요? 여기에 첫 번째 답을 내놓은 작가가 있습니다. - P88

인생의 모든 다양성, 모든 매력, 모든 아름다움은빛과 그림자로 구성된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 - P90

빛과 어둠으로
현실을 겨눈 카라바조
#바로크 #카라바조 #콘타렐리 예배당 벽화 #테네브리즘#카라바지즘 - P91

바로크 시대의 미켈란젤로
로마의 뒷골목을 그린 화가라고요?
바로 카라바조입니다. 카라바조는 어둠의 화가로 불립니다. 그의 그림 속에 로마의 어두운 뒷골목 사람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카라바조는 로마의 깊은 그림자로부터 영감을 얻어 미술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시선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 P96

카라바조는 어떤 표현도 부족할 정도로 굴곡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양식을 일구었습니다. 그는 비록 일찍 생을 마감했지만 동시대 화가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끼쳤고 결국미술의 역사를 바꿨습니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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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 P-1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 P-1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 P-1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 P-1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 P-1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 P-1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 P-1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 - P-1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 P-1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 P-1

엄마의 헌신과 사랑을 알려 주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가까이 있어서 잊고 지냈던 엄마,
곁에 있으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엄마.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온 엄마의 헌신과 사랑을
뒤늦게 그 무게로 깨닫게 됩니다.
시그림책으로 다시 탄생한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이에게는 눈물 어린 위로가 되고,
엄마와 함께 있는 이에게는
감사와 사랑의 깊이를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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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렘브란트, 루벤스, 페르메이르, 벨라스케스17세기 거장들의 빛과 어둠의 축제
30만 독자가사랑한양정무 교수가 안내하는 바로크 세계 
사회평론 - P-1

미술은 원초적이고 친숙합니다. 누구나 배우지 않아도 그림을 그리고, 지식이 없어도 미술 작품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미술은우리에게 본능처럼 존재합니다. 하지만 미술의 역사는 그 자체가인류의 역사라고 할 만큼 길고도 복잡한 길을 걸어왔기에 어렵게느껴지기도 합니다. 단순해 보이는 미술에도 역사의 무게가 담겨있고, 새롭다는 미술에도 역사적 맥락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미술을 본다는 것은 그것을 낳은 시대와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말이며,
그 시대의 영광뿐 아니라 고민과 도전까지도 목격한다는 뜻입니다. - P4

미술비평가 존 러스킨은 ‘위대한 국가는 자서전을 세 권으로 나눠쓴다. 한 권은 행동, 한 권은 글, 나머지 한 권은 미술이다. 어느 한권도 나머지 두 권을 먼저 읽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그중 미술이 가장 믿을 만하다"고 했습니다. 지나간 사건은 재현될수 없고, 그것을 기록한 글은 왜곡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술은 과거가 남긴 움직일수 없는 증거입니다.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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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묘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레나는 목이 졸려 죽은 것이 아니었다. 죽은 후에 약에 취한 누군가가 레나가 죽은 줄 모르고 스카프를 감아 목을 졸랐다. 이것이그 사건의 진상이다.

실제로 그 판단은 옳았다. 해가 진 후에도 눈은 쉴 새 없이 내려서 점점 더 쌓여갔다. 레나의 짐을 비닐봉지에 담아서 뒤뜰 소각로로 옮겼을 때에는 완전히 눈보라였다. 우산은 거의 쓸모가 없었고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땅을 파고드는 발이 무거워서 목적지까지도착하는 데 평소의 배가 넘는 거리를 걸은 듯했다.

물론 그날 밤 주방의 냉장고는 이미 고장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이스박스에 옮겨 담은 약간의 얼음은 가자마 유키가 다 써버렸고, 제빙실의 서리도 다 녹았다. 적어도 저택 안에서는 얼음을 새로 만들기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단 한 가지다.
범인은 건물 밖에 쌓인 눈을 아이스박스에 담아서 가져온 것이다.

진상을 알면서도 나는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오히려 히카와가 다가왔을 때 시체의 얼굴에 옷을 덮어 그들의 눈에서 진실을 감추려 했다. 물론 살인으로 꾸며 젊은이들을 유도하면 경찰 신고를 막을 수 있다는 계산 아래 한 일이다. 설령 진상이 병사였든, 약물 남용으로 인한 중독사였든 변사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경찰관이 떼거지로 저택에 드나드는 것은 내게 결코 바람직한 일이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눈을 가져올 수 있었던 사람은 한 명으로 한정된다.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 사람은 바로 그 청년, 히카와 하야토다.

장서실 바닥에 지하로 통하는 비밀 구멍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조금이나마 고뇌가 사그라졌을 것이다. 현장이 밀폐되어있지 않았다면 ‘네 사람 중 하나‘라는 빠듯한 확률이 다소나마 낮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의 비밀 구멍이 장서실 쪽에서만 열린다는 것을 알고 그의 고뇌는 다시 같은 수준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나보다 먼저 일어나 살롱에 온 기노우치 신이 탁자의 아이스박스를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박스 속에는 물이 들어 있었다. 전날 밤 가자마가 아이스박스를 거꾸로 들고 속을 비웠는데 말이다. 이것이 바로 밤중에 누가 그 박스에 눈을 채웠다는 증거아니겠는가.

자신의 명확한 의지 아래 살인을 저질러서 자신을 살인의 심리적인 속박에서 해방시키려 한 것이다. 희생자로 아사오를 선택한 것은 글씨체를 흉내 내기 쉽고, 몸집이 작으며, 레나 사건과는 관계없이 자살할 동기가 있다는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임이틀림없다.
이상이 아사오 겐지로의 죽음에 관해 내가 내린 결론이다.

핵심은 바로 ‘이성‘이다.
둘째 날 오후, 장서실 회랑에서 히카와는 대담하게 딱 잘라 말했다. 자신에게 ‘신‘은 자기 자신의 이성이라고.
같은 범죄 행위를 저지른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이성의 지배 아래에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마치 이렇게 말하듯 ‘이성‘에 대한 강한의지를 드러냈다.

따라서 범인이 눈을 입수하려면 현관이나 뒷문, 둘 중 하나로 밖에 나가야 한다. 그날 밤 이 문들은 둘 다 잠겨 있어서 열쇠 없이는안에서도 열지 못하는 상태였다. 다음 날 아침에 문을 억지로 비틀어 연 흔적도 없었다. 그리고 문을 열기 위한 열쇠는 둘 다 하룻밤 내내 히카와가 보관하고 있었다.

‘진상‘은 바뀌어야 한다. 쓰바키모토 레나를 죽인 것은 네 사람 중 하나가 아니다. 자신을 제외한 특정 인물 한 명이었다는 식으로바뀌어야 한다.

이성을 잃은 상태로 자신이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진상‘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 그 진상을 여러 사람이 인정하는 ‘현실‘로서 이대로 방치하다니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절대로.......그리하여 그는 이런 결의를 굳히기에 이르렀다.

벌써 10년도 더 전일까. 이 저택의 이 방에서 이성을 잃고 그 아이의 목을 조른 내 모습이 환상이 되어 피어오른다. 거울 반대편에세운 또 하나의 저택에서 직접 그린 그 아이의 초상화를 지하 통로로 가져가서 미친 듯이 난도질하던 내 모습이 그 환영에 겹쳐서흔들린다........

지난달 초순, 멜버른에 사는 그의 형 아다치 모토하루足立基春 씨(재미있게도 그는 내가 학창시절 때 친하게 지낸 구마시로 노스케라는 남자의 지인인 모양이다)에게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날아들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런 결의를 굳히기에 이르렀다.

벌써 10년도 더 전일까. 이 저택의 이 방에서 이성을 잃고 그 아이의 목을 조른 내 모습이 환상이 되어 피어오른다. 거울 반대편에세운 또 하나의 저택에서 직접 그린 그 아이의 초상화를 지하 통로로 가져가서 미친 듯이 난도질하던 내 모습이 그 환영에 겹쳐서흔들린다........

지난달 초순, 멜버른에 사는 그의 형 아다치 모토하루足立基春 씨(재미있게도 그는 내가 학창시절 때 친하게 지낸 구마시로 노스케라는 남자의 지인인 모양이다)에게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날아들었다는 것이다.

흑묘관과 시계관, 같은 건축가가 만들어낸 두 건물에서 똑같은 시기에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기묘한 현실을 나는 도대체 어떤기분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받아들이려 하고 있는가. 여기에는 굳이 쓰지 않도록 하겠다.
슬슬 석양이 질 시간이다. 어제와 오늘 공교롭게도 바깥 날씨는 나빴지만, 기분 때문인지 쏟아지는 빗소리는 온기를 띠고 있는 것같았다.

1989년 9월 5일.
이곳 타스마니아 섬의 겨울은 천천히 봄을 향하고 있다.

이성이라는 ‘신‘ 때문에 친구를 살해한 그 청년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역시 욕망과 격정을 이성으로 억누르지 못했던 과거의 나와 그를 비교해보고 어두운 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

모토하루 씨의 아내 데루미는 원래 성이 ‘고가‘로, 고가 정계사의 회장이었던 고가 미치노리 씨의 친동생이라는데, 고가 씨가 세상을 떠난 후 데루미가 후견인을 맡아온 후계자 아들이 올해 8월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듣건대 그 아들은 가마쿠라의 ‘시계관’이라 불리는 저택에 살았는데, 그곳을 찾아온 사람 몇 명을 살해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시계관이라는 그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가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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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쯤 더 나아가자 통로는 수기의 내용과는 달리 막혀 있지 않고 들어왔을 때와 똑같은 회색 문이 나타났다. 시시야가 문을 열자땅 위로 올라가는 비탈진 계단이 있었다.

덧붙여 이상한 부분이 하나 더 있었다. 소녀의 얼굴에서 가슴, 배 사이에 사방팔방으로 검은 균열이 수도 없이 많이 생긴 것이다.
누가 날붙이로 캔버스를 난도질한 듯했다.

"이야. 안개가 싹 걷혔네."
푸른 하늘에서 내리쬐는 오후 햇살이 눈부신 듯이 손차양을 치고 시시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와미나미는 청바지 호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2시가 넘었다. 이 저택에 도착한 지 아직 두 시간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쩐지 두배도 넘는 시간을 지하의 어둠 속에서 헤맨 것 같았다.

가와미나미는 놀라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지금 그는 분명히 ‘리사코’라고 말했다. 리사코理沙子라고.

캔버스에는 등나무 의자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소녀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하늘색 블라우스에 멜빵바지. 가슴께에 늘어뜨린 갈색 머리카락. 머리에 얹은 베레모....... 수기에 나온 장서실의 유화와 똑같은 구도다. 하지만.
다른 곳이 딱 한군데 있었다. 소녀의 무릎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는 검은 고양이가 그려져 있지 않았다.

시시야가 손을 뻗어 천을 걷었다. 그러자 세 사람 앞에 은색 액자에 담긴 캔버스 한 장이 나타났다.
"과연!"

"20년 전, 일을 의뢰하러 온 아모 박사의 본성을 꿰뚫어본 나카무라 세이지는 개구쟁이 기질이 발동했는지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를 맛깔나게 살려서 저택을 설계한 거라고."

아유타 도마와 아모 다츠야는 동일인물이다.
가와미나미는 어제 그 사실을 알았다. 시시야의 방을 찾아간 바로 그때였다.

"어쩐지 이상하네요."
가와미나미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분명 수기에는 건물이 새카맣다고 적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야 생각났어? 자네도 참 어지간하군."

"아니야. 그 수기는 첫머리에 필자가 선언한 대로 ‘허위 사실을 일체 배제하고 쓴 거야. 나는 그렇게 확신해."

"저건 고양이가 아니라 토끼야. 흰 토끼지."
"하지만 그게......."
"앨리스야, 코난 군. 앨리스라고. 이 집은 ‘거울‘이 아니라 ‘이상한‘ 쪽이었어."
"앨리스?"
"어제 이야기했잖아. 도지슨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 즉 루이스 캐럴의 본명이라고."

"풍향고양이가...... 앗, 저것도 색이 다르네. 검은색이 아니라 연한 회색이야. 원래는 흰색이나 상아색이었겠죠."

"검게 칠한 벽에 창틀과 문도 전부 검은색이었어. 2층의 욕조도 검은색. 바닥은 빨간색과 흰색의 바둑판 무늬 곳곳에 검은색으로악센트를 준 타일. 그 수기에는 그렇게 묘사되어 있었지. 그런데 지금 자네가 보고 있는 저 집은 어땠지?"

"벽은 상아색이죠. 문도 똑같은 색이었고요. 욕조는 흰색, 어쩐지 그때 좀 묘하다 싶기는 했었는데. 바닥은...... 아아, 빨간색과 검은색의 바둑판 무늬예요. 거기에 흰색으로 악센트를 줬죠. 그러고 보니 장서실의 비밀 구멍을 여는 ‘열쇠‘ 타일도 색이 달랐던가."
"수기에서는 검은색, 아까 내가 빼낸 건 흰색이었어."

"아까 전 그림이 방아쇠가 되어 기억이 제법 많이 되살아나지 않았습니까? 자신이 누구인지, 이제 아시겠죠? 아유타 씨...... 아니,
아모 다츠야 박사님."

"이 집은 ‘흑묘관‘이 아니야. 굳이 이름을 짓자면 저 ‘풍향토끼‘에 빗대어 ‘백묘관‘이라고 해야겠지. 진짜 흑묘관은 다른 곳에, 거울반대편에 세워져 있어."

그는 가자마에게 따끔하게 못을 박았어. ‘아버님이 이 집을 남에게 넘기거나 철거하지 않도록 앞으로 도련님이 신경을 잘 써주셔야한다는 말씀입니다‘라고. 이리하여 주인은 저택을 팔거나 관리인인 그를 해고하지도 못해.

"이것 역시 그가 아모 다츠야라는 걸 알고 나면 그리 신기한 이야기도 아니야. 아사오 겐지로의 시체를 관찰한 것도 그렇고. 문외한의 짧은 소견이지만, 아모 박사는 생물학, 그것도 동물학과 연관된 연구실에 오래 있었잖아. 어쩌면 의학부의 해부학 교실과 관계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실제로 내 옛날 친구 중에 그런 녀석이 있어. 이학부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뒤에 의학부에서 해부학 조수로 일했지. 지금은 휴스턴 대학에 있어서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지만. 그러니 아유타 도마 즉 아모 다츠야가 초보적인 법의학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야. 구마시로 선생님의 말씀대로 일찍이 란포와 세이시의 소설을 좋아했다면 더 말할나위가 없지."

"보험?"
"자신이 앞으로도 계속 흑묘관에 살기 위한 보험이지."

그 백골시체는 행방불명된 아모 박사의 양녀, 리사코였다. 리사코를 죽이고 시체를 지하 통로에 숨긴 것은 당시 저택의 소유주였던박사 자신이었다고 추정된다. 아유타 도마가 아모 박사와 동일인물이라면 당연히 그는 지하 통로의 존재와 거기에 숨겨진 시체에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래서 그는 경찰에 신고하기를 꺼렸다. 섣불리 경찰을 불러들였다가 만에 하나 지하 통로의 시체가 발견되는 사태가 벌어지면 큰일이라고 두려워한 것이다.......

"젊은이들이 마약을 즐겼다는 것을 묵인했으니까.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지. 하지만 그는 그 이상으로 변사 사건을 수사하러 온 경찰들이 저택 안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닐까 봐 불안했어."

엽서의 글씨체가 아유타 도마가 쓴 수기의 글씨체와 아주 흡사했기 때문이다.
엽서와 수기, 둘 다 같은 사람이 쓴 것이다. 둘을 나란히 놓고 글씨체를 비교해보기도 했지만, 전문가에게 감정을 부탁할 필요도없을 만큼 그 사실은 명백했다.

예를 들어 지하에서 백골사체를 발견했을 때는 이래. ‘나는 왼손을 가슴에 꼭 갖다 대어 두근거림을 가라앉히며 공황상태에 빠진젊은이들을 어떻게든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욕실에서 아사오의 시체 앞에 섰을 때는 이랬고. ‘왼손을 가슴에 대고 필사적으로 동요를 억누르며 나는 눈앞에 매달린 시체의 상태를 관찰했다.‘

나는 무심코 왼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심장 고동이 빨라졌다.‘ 코난군, 심장을 누를 때 자넨 어느 쪽 손을 쓰지?"
"그러니까...... 오른손이죠. 오른손으로 이렇게."

"아모 다츠야는 전내장 역위증이었다. 이게 결정적인 단서였어."
"어째서요?"
"이 수기에 아유타 씨 역시 전내장 역위증이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 몇 군데 있거든."

"루이스 캐럴은 알지?"
"예, 그건 알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사람이잖아요."
"그럼 그의 본명은?"
가와미나미는 "글쎄요"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시시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씩 웃었다.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 이게 캐럴의 본명이야."

보통 속이 트릿할 때에는 오른쪽을 아래로 하고 자면 좋다고들 하잖아. 위의 위치상 그래야 소화가 잘 되거든. 그런데 그는 반대로왼쪽을 아래로 하고 누웠어. 왜냐? 위의 위치가 보통 사람과는 반대라서 그래.

세이지는 의뢰는 받아들여 아칸의 숲속에 흑묘관을 세우게 됐는데, 나중에 그는 건축주 아모 다츠야에 대해 ‘그 사람은 도지슨‘이라는 평을 남겼어.

하지만 그 후의 행로는 비참했어. 역시 리사코를 잃은 충격이 컸겠지. 술독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문제를 일으켜서 대학에서쫓겨났고, 결국은 파산해서 삿포로에도 머물지 못하게 됐어.

"일을 협의하느라 아모 박사와 몇 번 만나 이야기하는 사이에 나카무라 세이지는 그의 그런 본성을 꿰뚫어본 거지. 아모는 ‘여자‘가 되기 이전의 ‘소녀‘밖에 사랑하지 못하는 남자다. 그리고 현재 그는 양녀 리사코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 마을에서떨어진 숲속에 별장을 세운 것도 분명 자신과 리사코 둘만 머물 수 있는 곳이 필요해서였겠지.
아칸의 별장 흑묘관이 완성되자 아모는 기회 있을 때마다 거기로 리사코를 데려가서 둘만의 시간을 보냈어. 가끔은 친구를 초대하기도 했겠지만. 그리고 세월이 흐르자 리사코는 당연히 쑥쑥 성장했어. 아모는 딸을 사랑했지. 하지만 리사코가 이제 곧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그는 분명 발작적인 격정에 사로잡혀 자기 손으로 그 애를 죽였을 거야......."

"사랑했지. 단 어디까지나 ‘소녀‘ 리사코를. 그래서 그는 리사코를 죽였어. ‘소녀‘에서 더러운 ‘여자‘로 성장해가는 리사코를 용서할수 없었던 거야. 열두 살쯤이라 가슴이 커지고 초경을 하는 등 어떤 의미에서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변해가는 시기였지."

아모 박사는 리사코를 죽였어.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기르던 검은 고양이도 같이 죽였을 거야. 둘의 사체를 저택지하의 비밀 통로로 옮기고 통로 입구를 벽으로 막은 후, 표면상 딸이 행방불명된 것으로 꾸며 자신의 범죄를 잘 은폐하는 데는 성공했지.

"아주 미남이라 관심을 보이는 여자도 적지 않았다고 구마시로 선생님도 그러셨지. 하지만 그는 내내 독신으로 지냈어. 다치바나교수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셨지. 아모 선생님은 여자에 그다지 흥미가 없으셨을 거예요, 라고."

"이건 유명한 이야기인데, 캐럴은 성적으로 약간 이상한 취향을 지니고 있었어. 성숙한 보통 여성에게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 그의 흥미는 오로지 열세 살 이하의 소녀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는 거야."
"소녀...... 아하. 롤리타 콤플렉스였나요?"

뭐, 어쨌거나 대결이 가상 중요한 단계다.
한숨을 크게 내쉰 시시야가 스스로를 달래듯이 말했다.
"아무튼 흑묘관이다. 실제로 저택에 가보면 아유타 씨의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르지. 내 위화감 역시 해소될지도 모르고."

"히카와의 어머니는 청각 장애 때문에 전화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거로군요."

동쪽이 왼쪽이라면 흑묘관은 현관을 북쪽으로 두고 서 있다는 말이다. 가와미나미는 수기 속의 묘사를 떠올리려 기를 썼지만, 그런세세한 점까지는 역시 기억나지 않았다. 하다못해 그 노트에 건물 평면도라도 딸려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짜증과 함께 솟구쳤다.

"전부 반대야......."
계단은 왼편 안쪽에 있다. 장서실은 왼쪽 옆. 복도는 오른쪽으로 뻗어 있다. 위치관계가 전부 들고 있는 평면도와 좌우 반대인 것이다. 그렇다, 마치 거울에 비친 것처럼.

"여기 와서 이 저택이 수기의 무대인 흑묘관과는 다른 집이란 걸 알았습니다. 20년 전 아모 박사는 다른 곳에 별장을 한 채 더 세운 걸로 짐작됩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의 수기를 읽고 처음으로 설정한 문제로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즉, 흑묘관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문제죠."

"정말 애먹었습니다, 아유타 씨. 이런저런 위화감은 들었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흑묘관이 이곳 아칸의 숲속에 있다고 굳게 믿었거든요. 검은 고양이와 체스가 나오기에 거울 나라의 앨리스』와 저택을 잘 버무렸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와보니이렇습니다. 건물의 색이 달라요. 좌우는 반대고요. 게다가 모티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정말 속 썩였습니다. 20년 전 아모 박사의 의뢰로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별장은 사실 두 채였다. 그런 건 생각지도 못했어요."

"아까 밖에서 말했다시피 이건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 어젯밤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읽었다고 그랬지? 그럼 그 책의 내용은 기억나겠네. 앨리스는 흰 토끼를 쫓아 구멍에 뛰어들었어. 도착한 곳은 ‘하트의 여왕‘이 맹위를 떨치는 트럼프 왕국이지."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앨리스가 새끼 검은 고양이를 안고 거울을 들여다보는 장면으로 시작돼. 그리고 거기서 앨리스가 모험을펼치는 곳은 체스의 왕국이지."

"당신은 흑묘관을 거울 반대편에 세웠어요. 그 거울은 적도 위에 서 있었습니다. 적도를 사이에 두고 아칸과 지구 반대편에 위치하는 곳, 즉 당신이 관리인으로 일하던 흑묘관은 오스트레일리아 타스마니아 섬에 있습니다."

"시시야 씨, 당신은......."
노인은 가벼운 놀라움의 빛을 띤 얼굴로 상대의 눈을 쳐다보았다.
"저보고 어떻게 하라고?"
"별달리 드릴 말씀 없는데요."
대답하고 나서 시시야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바인더를 가방에 넣고 남쪽 창문을 향해 후리후리한 몸을 쭉 펴며 기지개를 켰다.
"이 집에는 범죄의 흔적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인간의 시체는커녕 고양이 사체 한 구도 없었습니다."

"혹시 이 수기에는 다음 편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미래의 나를 위해 쓰는 탐정소설‘의 ‘해결편‘에 해당하는 두 번째 노트가."
자조를 얼굴에 머금은 채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짧지만 확실히 있었습니다. 불이 났을 때 타버렸겠죠. 아무래도 불이 났을 때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을 모양입니다."
"거기에는 마지막 밀실사건의 진상이 적혀 있었겠군요. 범인의 이름, 그리고 동기......."
"벌써 다 알고 계실 텐데요? 이제 와서 제가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리사코를 잃고 대학에서 쫓겨나 삿포로에도 살 수 없게 된 당신이 도망친 곳은 아칸이 아니라 타스마니아였습니다. 수기에 당신자신이 ‘세상의 끝 같은 이런 곳‘이라고 평한 장소의 숲속에 세운, 일찍이 자신의 소유물이었던 별장. 당신은 이 지방의 대리인‘으로서 예전부터 알고 지낸 호버트 시의 일본인 아다치 히데아키 씨의 배려로 아유타 도마로 이름을 바꾸고 저택 관리인이라는 명목으로 저택에 살게 된다."

"하필이면 당신 같은 사람에게 ‘사건을 의뢰하다니........"
"후회하십니까?"
시시야의 질문에 아유타 도마, 즉 아모 다츠야는 "아니요" 하고 고개를 살짝 저었다.
"저는 평생 운명론자를 바보 취급해왔지만 슬슬 생각을 바꿀 때가 온 것 같군요."

"갑시다. 아모, 아니 아유타 씨. 흑묘관이라는 저택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수기는 전부 당신이 ‘악몽‘을 동경해서 쓴소설이었어요. 저와 코난 군에게는 그게 ‘현실‘이라고 해두죠."

그 ‘유서‘에서 아사오는 자신이 쓰바키모토 레나를 죽였다고 고백했다. 자신이 죽였음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썼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녀는, 쓰바키모토 레나는 아사오에게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레나는 아사오에게 살해당하지 않았다. 아니, 살해가 다 뭔가. 레나는 아무에게도 살해당하지 않았다.

장서실에서 레나의 시체를 관찰했을 때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레나는 교살당한 것이 아니라 심장마비 따위의 다른 원인으로 죽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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