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엽. 장정
장정 1 - 나의 광복군 시절 - 상
장정 2 - 나의 광복군 시절 - 하
장정 3 - 나의 대학총장시절
장정 4 - 나의 무직시절, 
역사의 神을 찾아서
장정 5 - 다시 대륙으로, 한중문화교류의
사자(使者)가 되어

ㅇ김준엽(金俊燁, 1920년 8월 26일 ~ 2011년 6월 7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397호
서훈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중국어언문화우의장 수훈
ㅇ배우자: 민영주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6묘역-39호
상훈
건국포장 수훈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이런 책은 많이 사서 많이 읽어야 되는데 우리들이 사지않고 읽지 않고 이러니
품절이다. 신판, 개정판 모두
그래도 사 놨으니 다행이다
읽진 못하고 있지만 조만간 독파 하리라 맘 먹는다.
장정, 나의 광복군시절, 김준엽선생의 손녀분인 김현경님께서. 장정1,2 권을 짜깁기? 읽기쉽게? 해서 2023년에 출간했다네요.

두분 묘소가 가까운 국립대전현충원에 있구나.
언젠가 한번 소주 한잔 올리고 싶다.
요즘 현충원에 자주 갔지만...
공짜 국수만 먹고 ㅠㅠ ㅠㅠ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제 강점기에 일본 학도병으로 징집되었던저자 김준엽은 일본군을 탈출하여  청년시절을 중국 유격대와 중경임시정부에서 보낸 민족해방운동가이다. 광복 이후에는 중국에 남아동아시아 역사를 연구하였으며, 1949년 귀국하여 평생을 학계에 몸담은 역사학자이자 교육자이기도 하다.

‘장정‘ 시리즈는 저자 김준엽의 회고록이다.
《장정 제1·2권, 나의 광복군시절》시리즈의(上下)은 저자가 목격한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활동상을 통해 일제하의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를 조명한 회고록이다. 대륙의 말발굽 속에서 광복을 위한 학병과 임시정부, 광복군의 투쟁사이자 피로 쓴  한국 현대사이며, 우리 독립운동사의 대기록이다. 개인의 단순한 체험담에 그치지 않고 당시 중국대륙 및 세계정세의 변화와 임시정부의 활동등 관계기록을 방대하게 고증하는 체험적 현대사 저술로 평가받아, 제28회<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수상하였다.
저자는 우리의 독립운동사를 옳게 연구하고그것을 현대사의 주류로 앉히기 전에는  우리의 민족사(民族史)가 올바르게 되지 않는다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이 조그마한 수기라도 우리의 민족사를 정립하는 데 모래 한 알의 도움이라도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붓을 들었다고 고백한다. ˝현실에 살지 말고 역에 살라˝는 저자의 말은  《장정》 시리즈 전반에 흐르는 올곧은 신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들은 인생의 출발점에 서 있다. 응당 그래야 하듯이,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지옥은 비었다.’" 닐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글을 읽는다. "클레어 씨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습니까?"

"인용구예요. 「템페스트」에 나오는."

"지옥은 비었다." 나는 읊는다. "그리고 모든 악마는 여기에 있다."

당신의 부정이 아니라 내 광기가 떠든다는 말로 맘에 맞는 고약을 영혼에 바르지 마세요.

엘라는 내 킹사이즈 침대에 털썩 몸을 던졌다. 엘라가 말했다. "릭이랑 자게 될 것 같아." 나는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엘라는 두 사람이 해변에서 "십대처럼" 서로 더듬었으며, 아마 "휴가지 섹스"를 할 것 같다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현실에서는 별거 아닌 일로 칠 수 있지 않냐면서. "릭은 유부남이잖아." 내가 말했다. 엘라는 릭이 자기에게 미쳐 있다고, "완전히 사로잡혔다"고 말했다. "나 때문에 병이 난다나."

릭이 나한테도 한 말이었다. 바로 ‘나’한테, 고작 몇 달 전에 한 말이었다. "난 당신에게 미쳐 있어요, 클레어. 항상 당신 생각만 하죠. 당신 때문에 병이 난다고." 나는 당시에 그 말이 참 불길하다고 생각했다. 나 때문에 ‘병이 난다’. "병이 나면, 도움을 받으세요."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유부남이잖아요. 난 유부남과는 자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끌린 것은 사실이었다.

처음부터 클레어 캐시디가 싫었다. 일단 너무 키가 컸다. 짧은 진갈색 머리, 커다란 눈, 긴 목, 영원히 이어지는 듯한 다리. 나한테는 천막 같을 드레스를 입고도 사뿐사뿐 걸어 다닐 여자. 심지어 닐도 반했다. 그는 "모델같이 생겼지"라고 말하고는 내 표정을 보더니 덧붙였다. "정말로 쓰레기 같은 잡지에 나오는 그런 모델." 나쁜 부류의 인간은 아니다, 닐은.

"지옥은 비었다." 파텔이 말했다.

"지옥이라니, 지옥 같은 소리하고 있네." 닐은 같은 말을 반복한다는 것도 모른 채 말했다.

트위터 아이디는 @lizziebennet77이었다. 이 아이디의 뜻을 닐에게 설명해줘야 했다.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인물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괜찮으시면," 낯선 사람이 말했다.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고 싶소. 긴 여행인 데다 하늘 상태를 보아하니 한동안은 이 칸에서 나갈 길은 없을 테니 이야기를 나누면서 몇 시간 보낸들 어떻겠소? 늦은 10월 저녁에는 딱 제격이지.

불쌍한 거전이 이 셋 중 하나라고 말했던가? 거전은 걱정하고 있었다오, 안경 없이는 눈뜬장님이었거든. 하지만 내가 그에게 말한 대로 우린 모두 안대를 하고 있었으니 피장파장이었지.

사람은 눈이 없이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볼 수 있지.

개가 자리에 없는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다면 이보다 더 무서운 게 있을까요? 고양이들도 으스스하기로 유명하죠

"동물들은 쓰고 버릴 수 있으니까요." 나는 말한다. "작가들은 종종 긴장감을 자아내려고 동물들을 죽이죠. 인간을 죽이는 것만큼 중대하진 않지만 놀랄 정도로 동요를 일으킬 수 있으니까요."

"클레어, 끔찍한 소식이 있어요."

엘라가 죽었다. 릭이 그 말을 해주었을 때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차츰 실감이 나자, 나는 생각했다. 자동차 충돌, 불의의 사고, 어떤 종류의 약물 과다 복용. 하지만 릭은 "살해당했다"고 말했다. 마치 외국어로 말하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꿈이 지어지는 재료이다.

카우어는 말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아는 사람들에게 살해당합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라고 생각할 만한 근거가 있습니다."

경찰은 누구를 의심하고 있을까?

"이 세상에 영원히 숨길 수 있는 것은 없다."—윌키 콜린스, 『이름 없는 사람』.

"캔자스에서는 누군가 저 멀리 달려나가는 모습을 며칠 동안 계속 볼 수 있죠." 여기서는 며칠까지는 안 걸려도, 달리는 사람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기까지 몇 시간은 걸릴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다

박선호로부터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직후인 저녁 7시 40분께 김재규는 옆자리에 앉은 김계원을 톡 치면서 “각하 똑바로 모시시오” 하더니, 권총을 꺼내 차지철에게 “이 버러지 같은 새끼……” 하면서 한 발을 쏘았다. 차지철을 먼저 쏘았기 때문에 박정희의 추종자들은 김재규와 차지철의 갈등 때문에 김재규가 욱해서 우발적으로 차지철을 쏘고 흥분해서 박정희까지 쏘게 되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김재규가 박정희에 앞서 차지철을 쏜 것은 그가 총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하여 먼저 제압한 것이었다.

차지철은 수도경비 사령부의 막강한 무력을 경호실의 통제 아래 돌렸지만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권총 한 자루 지니고 있지 않았다. 김재규가 총을 뽑고 조금 망설였던 탓인지 차지철은 팔로 방어 자세를 취했고 김재규가 쏜 총알은 차지철의 오른 팔목에 맞았다. 자신만이 박정희를 보호할 수 있는 것처럼 으스대던 차지철은 피를 흘리며 화장실로 도망갔다. 김재규는 차지철을 쫓아갈 듯 엉거주춤 일어서다가 앞에 앉은 박정희의 가슴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대의를 위해 박정희와의 개인적인 의리라는 소의를 끊고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쏜 것이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향해 다시 방아쇠를 당겼으나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 김재규는 밖으로 나와 박선호의 총을 빼앗아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경호원을 부르며 화장실에서 나오는 차지철에게 한 발을 발사하고 식탁에 쓰러져 있는 박정희에게 다가갔다. 50센티미터 거리에서 김재규는 박정희의 뒷머리에 다시 한 발을 쏘았다.
실내에서 김재규가 첫 발을 쏘았을 때 경호처장 정인형과 부처장 안재송은 박선호와 대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해병대 동기인 정인형과 박선호는 휴가를 같이 가는 둘도 없는 친한 친구였다. 상황을 예측하고 있던 박선호는 총소리와 함께 먼저 총을 꺼내 들었다. 박선호는 “꼼짝 마!”라고 소리치며 정인형에게 “우리 같이 살자”고 애원조로 말했다. 국가대표 사격선수 출신으로 속사에 능한 안재송이 총을 뽑으려 하자 박선호의 총이 불을 뿜었고, 정인형도 총을 뽑으려 하자 박선호의 총이 다시 친구를 쓰러뜨렸다. 김재규는 그 직후 밖으로 나와 이 총을 가져가 박정희를 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십여 년 전 마봉춘이 제정신이던 시절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투기의 뿌리 강남공화국’ 편을 연출한 유현 피디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 불법으로 사람 잡아다가 고문하고 때리고 한 거 용서할 수 없는 짓입니다. 그런데 이 프로를 만들고 보니까 그보다 더 나쁜 것은 모든 사람들이 투기를 꿈꾸게 만드는 사회구조, 도덕이나 근면 따위는 ‘웃기는 짜장’으로 만들어버리고 불로소득, 일확천금을 꿈꾸게 만드는 사회구조, 또 그 사람들이 더 높은 아파트를 쌓고, 타워팰리스를 쌓아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호의호식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버린 것이 오히려 박정희, 전두환에게 더 준엄하게 따져 물어야 할 죄악이 아닐까요?" 유신은 이렇게 오늘을 지배하고 있다.

문교부는 중학교의 일류병을 없애기 위해 서울의 경기중·서울중·경복중과 경기여중·이화여중 등 5개의 명문 중학교를 폐쇄하기로 했다. 국민 대다수는 이 조치를 "20년 동안 끌어온 입시지옥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학교군 추첨제의 혁명"이라고 환영했다.6 언론은 국민학교엔 환성이 터지고 어린이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다고 보도했다.

중학교 입시 폐지를 발표한 권오병에 대해 당시 한 신문은 "폭탄적인 중학입시제 폐지를 발표, 600만 국민교생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었다"며 "이 정도라면 어린이 왕국에서 왕좌를 누릴 만하다"고까지 보도했다.

권오병은 "중학교 무시험 추첨제가 의무교육 9년 연장을 위한 첫 조치"라면서 "수익자에게 과중한 부담 없이 정부의 중등교육비로 3년 안에 중학교의 평준화를 기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박정희는 "공부는 고등학교에서 더 시키고 중학교의 어린 학생에게는 과도한 입시경쟁에서 벗어나 심신을 고루 발달시키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학벌과 일류 고등학교를 따지는 의식이 팽배해 있는 사회에서 중학과 고교의 평준화는 박정희가 늘 입에 달고 살았던 ‘가난한 농민의 아들’다운 정책이며 그가 행한 가장 급진적인 사회개혁이었다.

YH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시인 고은은 1970년대의 시작과 끝을 이렇게 노래했다. "1970년 전태일이 죽었다/1979년 YH 김경숙이/마포 신민당사 4층 농성장에서 떨어져 죽었다/죽음으로 열고/죽음으로 닫혔다/김경숙의 무덤 뒤에 박정희의 무덤이 있다/가봐라"

사건이 터졌을 때,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다. 여기저기서 남민전이 얼마나 무모하고 분별없고 소영웅주의적이고 모험적이고 맹동적이고 운동에 해만 끼쳤는가를 성토해댔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물었다. "가만, 그래도 연장이라도 한번 들어본 게 지리산에서 다 깨진 다음에 처음이잖아!" 반년쯤 지나 광주에서는 수천의 시민군이 총을 들었다.

사람이 한번 세상에 태어나서 불의 앞에 납작 엎드려 있어도 죽고, 마주 싸워도 죽어야 할 운명이라면 마주 싸우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김남주는 미지근한 싸움은 차라리 참는 게 낫다고 했다.(〈진혼가〉) ‘얼어붙은 강을 으깨어’놓기 위해 전사 김남주가 원했던 것은 ‘철의 규율’과 ‘불의 열정’과 ‘바위의 조직’이었다.(〈강〉)

경찰의 완강한 봉쇄에 막혀 주춤하던 학생들은 구 정문 옆의 담장을 힘껏 밀었다. 때로 부실공사도 민주화에 기여하는가, 힘없이 무너진 담장 밖으로 학생들은 몰려나가기 시작했다.

김재규는 "대장부로 이 세상에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죽을 수 있는 명분을 발견"했다고 생각했기에 법정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부하들만큼은 꼭 살리고 싶어 했다. "혁명 이념에 완전히 동조한 사람이면 저세상에 데리고 가도 좋지만 아무것도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죽는다는 것"에 대한 죄의식 때문이었다.

김재규는 최후진술에서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오"라는 말로 국민들에 대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김재규가 사형당한 것은 광주에서 민중항쟁이 한창이던 1980년 5월 24일이었다. 김재규를 죽인 전두환은 광주 시민들의 항쟁마저 짓밟고 생명이 다한 것 같았던 유신체제를 간판만 바꿔 달아 신장개업했다. 전두환의 내란은 그렇게 완성되었고, 그로부터 33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아직도 자유민주주의를 만끽해보지 못했다.

황제 나폴레옹의 동상이 거꾸러져 산산조각이 나기 위해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의 어깨에 황제의 망토가 걸쳐져야 했던 것처럼,31 박정희의 향수도 또 어떻게든 한 번은 소비되어야 했다. 역사의 법정에서 박정희와 김재규가 제대로 마주 서게 되는 것은 그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지금은 대중들에게 자신이 왜 박정희를 쏘았는지를 이야기할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김재규의 재평가를 위한 준비를 시작할 때다.

모두 죽기를 각오하고 도청에 남았지만 워낙 화력 차이가 커 순식간에 제압당한 탓인지 꽤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오월의 사회과학》의 저자 최정운 교수는 "살고 싶었던 사람은 다 살았고, 죽기로 작정한 사람도 한 반은 살았다"고 썼다.

1983년 9월 김근태를 의장으로 하는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 결성되었을 때 민청련의 상징은 두꺼비였다. 옴두꺼비는 뱀의 길을 가로막아 스스로 잡아먹히지만, 뱀의 몸 안에 독을 뿜어 죽게 하고 그 몸 안에 알을 낳아 수백 마리의 새끼 두꺼비들이 뱀의 몸을 파먹으며 자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몇 년 전 방영된 드라마 〈여인천하〉의 중전마마 대사를 빌려 딱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그 입 다물라!"

유신시대가 부활할지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2012년에 대학교수와 언론인을 비롯한 지식인의 수는 유신시대에 비해 수십배 늘어났다. 그러나 유신의 부활을 막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지식인은 불행히도 그리 많지 않았다. 장준하, 리영희, 송건호 같은 거룩한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