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멸망후 당나라 영주로 고구려 유민들 20만명이 끌려가고, 고구려 멸망에 앞장선 거란족 가한 이진충-고구려 멸망에 앞장서면 나라를 세울수 있게 해주겠단 당나라에 속아-은 당나라가 약조를 어기고, 영주 도독 조홰의 폭정에 반당 봉기를 일으킨다. 이에 영주, 요서, 요동의 동북아 정세는 급변하게 되고 고구려를 복국하기에 더엎이 좋은 기회로 판단한 대중상 부자는 영주에 끌려온 고구려, 말갈 유민들을 규합하여 요동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당은 돌궐을 끌어들여 거란의 무상가한 이진충을 죽이고, 2대 가한 손만영까지 참하여 거란을 멸하고 요동으로 이동하는 대조영을 추격하기 시작한다. 거란장수 이해고는 요동으로 이동하여 대조영과 연합하여 거란의 가한에 올라 거란을 이끌어 달라는 국사 역밀의 말을 무시하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당에 항복하게 된다. 당은 거란 항장 이해고에게 군권을 맡기고 40만 대군을 편성하여 대조영군을 몰아붙이게 된다. 이에 대조영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고 천신만고 끝에 천문령 앞에 다다르게 되는데....

대중상 부자의 성씨는 말갈 성씨로, 이진충은 반드시 주멸하겠다는 멸로, 손만영은만 번 참수하겠다는 참으로 바꾼 것이다.

당나라는 연개소문 대막리지의 성씨인연을 천으로 바꾸어 천개소문이라 적었소.연개소문을 겁내고 두려워했기 때문이오.만약 내가당에 굴종했다면 내 성씨를 이씨로 바꾸어 이중상이 되었을 것이오. 당나라가 내 성씨를 바꾼 것은 나를 두려워한다는뜻이니 얼마나기쁜 일이오. 자고로 전쟁에서는 두려워하는 쪽이 패하는 법이오.

‘인중승천이라고, 사람이 많으면 하늘도이긴다.

화살은 인마를 가리지 않았다

어찌 전장에서 이기기만을 바라는가?능자다로라고 했다. 재능 있는 사람에게 어찌 어려움이 따르지 않겠느냐. 한 번 패하고 세 번승하면, 한 번 패함이 어찌 즐겁지않겠는가? 수하 장졸들이 장수의 담대함을우러러보게 하라

당나라에서는 우리가 거란을 공격하는형상이고, 거란에서는 고구려가 요동 군사를 방어하는 형상입니다

아! 인연은 어디에서 비롯되어 어디로 흘러가는가.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연정을 무어라 불러야 하는가.

대중상은 고구려 진영에서 보낸 2만 군사를 점고하고 강역도를 꺼내 지세를 가늠해 보았다. 대무예가 이끌고 온 발해 군사들은 모두용맹한 정예병들이었다.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전쟁은 없다. 승패는 곧 생과 사를 가르니, 어찌 중요하지않은 전쟁이 있겠느냐. 장졸들에게 묻거라.살고싶은가, 죽고 싶은가를. 천지를 한눈에 보는 것은 곧 휘하 장졸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니 한 치의 소홀함 없이 지세를 익혀라

구지란, 첫째, 군사가 흩어지기 쉬운 산지요, 둘째, 적지에 깊숙이 들어가지 않는 경지요, 셋째, 적과 싸워 서로 빼앗으려는 쟁지요,
넷째, 쌍방이 서로 교통하는 교지요, 다섯째, 왕래의 통로가 되는 구지요, 여섯째,적지 깊숙이 들어간 중지요, 일곱째, 지형이험한비지요, 여덟째, 막다른 골목 같은 위지요, 아홉째, 진퇴가 곤란해 반드시 죽는 사지이다.

전쟁은 사람이 만들어 낸 가장 나쁜 악덕이었다. 천재지변이나 돌림병은 사람을겸손하게 만들지만, 전쟁은 복수설한을키울 뿐이었다

아, 천명이 대발해를 부르는도다!

언젠가는 고구려가 봉기할 줄 알았소이다. 옛 기상이 어디 가겠소이까. 정말 장하오. 꼭 나라를 되찾으시오.

한지붕 아래 하룻밤을 지냈으니 낯선사이가 아니요, 목숨 구해 줄 때는 은혜 갚는다 하더니 작은 청 하나 들어주지 못하는것은결례요,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 어리석음은 고구려 장부답지 않습니다

부담 갖지 마시오. 흘러가는 바람결에 풀잎이 누웠다고 어디 그냥 누워만 있으리오. 바람 자면 일어설 테고 해가 바뀌어 봄이 되면 또새싹을 내밀겠지요

살아 있으면 필히 만납니다. 천지조화가 따로 있지 않고 인연이 조화를 부린다고 했습니다. 끝내 두 정인이 서로 끌어당길것입니다

사람이 죽음을 무서워하는 것은 오래살고 싶은 욕심이 있음이요, 남을 두려워하는 것은 명예욕이 가득함이며, 권세를 무서워하는것은 지위를 탐하기 때문이고, 형벌을 무서워하는 것은 재물을 탐내기 때문이라 하겠소이다. 대장군께서는 거란 제일 명장이고,
따르는 장졸이 많소이다. 명을 재촉하지 않으려거든 진정 사람을 두려워하고 때를 기다려야 하오

본디 사기와 지혜는 유사하고, 아첨과 충성도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비천한 자도 사유가 깊으면 큰일을 저지를 수 있고, 상대를•현혹시키는 재주가 뛰어나면 거짓으로 사람을 불러 모으게 됩니다. 사술에 능한 자를 잡으려면, 정술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칼은 누구를 해치기 위해 드는 게 아니라,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든다 하였소이다. 우리가 봉기한 것은 소중한 고구려를 지키기위한 것이었소. 어찌 한시도 잊을 수 있으리까. 기필코 강성한 나라를 세울 것이니, 때가 되면 전하께서 경하해주시오.

호랑이를 길들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결코 호랑이에게 살아 있는 먹이를 주지 않음으로 호랑이가 산 사람에게 덤비지 못하게하는 것이오. 둘째는 먹이를 줄때 결코 통째로 주지 않는데, 호랑이가 먹이를 찢어먹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오. 이처럼 호랑이의배고픔을 잘 이용하면 능히 호랑이를 조종할 수 있소이다

만에 하나, 당나라와 돌궐이 연합하여 공격할 지 모르니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장차 북동쪽을 향해 천문령을 거쳐 오루하(목단강)가 있는 동모산에 웅거해야 합니다. 적은 군사로 대군과 겨루려면 험준산령을 이용해야 하니 군사 조련에 힘쓰시오

그물을 칠 때 새가 없는 곳에 그물을 치면 온종일 한 마리도 걸려들지 않고, 새가 많은 곳에 치면 도리어 새들이 놀라 도망갑니다.
그래서 애매한 곳에 그물을 쳐야 많은 새를 잡을 수 있습니다. 소장을 믿고 맡겨주십시오. 당과 돌궐을 농락하겠습니다.

둘 다 옳습니다. 사람은 대저 훔치고 빼앗고 죽이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먹고 입고 자는 것을 살펴보면 본디 사람의 것이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사람도 죽습니다. 헛되이 죽지 않고 대의를 위해 죽는다면 죽음에도 보람이 있습니다.

산에 사는 산새는 반나절을 휘젓고 다녀 겨우 벌레 한 마리 잡아먹고 밤을 지새우며, 다른 짐승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깊이 잠들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새장 속에 가둬두고 비바람 막고 먹이 풍족하게 준다한들 새답게 사는 것이겠습니까? 고구려 백성도 그와 같습니다. 고구려 유민들이 사람답게 살자 하는 것이니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마십시오. 가슴에 울화가 쌓이면 육신을 갉아먹는다했습니다.

팔순이 다 된 늙은이가 비도를 네 관모에 정확히 꽂은 것은 고구려의 기상이 펄펄 살아 있음이며, 천하를 얻을 때까지 결코 굴하지 않을 것을 천명함이니 가서 전하라.우리는 고구려의 옛 땅에 나라를 세울 것이다. 침략하면 반드시 진멸할 것이니, 사직을 보전하려면경거망동하지 말라 이르거라. 그대로 전하겠는가?

고구려 사직은 무너졌으나 고구려 혼은굳건하다. 우리를 핍박하면 마땅히 당나라사직을 능멸하고 무씨의 씨를 말릴 것이다.
남김없이 전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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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8년 평양성 함락으로 고구려는 멸망하고, 검모잠, 안승의 부흥운동도 검모잠의 과욕으로 실패하고만다. 대중상과 대조영은 남은 고구려군을 이끌고 홀한해의 지하삼림에 말갈족의 도움으로 후일을 도모할수 있는 후방 배후기지를 만들게 되고.....

발해를 우리 민족사에 남기는 게 국회의원 열 번 하는 것보다 낫다. 그래서 30년뒤의 대한민국을 예견하는 지혜를 얻으라. - P-1

어느 나라나 멸망할 때는 첫째, 내분으로나라가 어지럽고 둘째, 지도자가 혼암(어리석고 못나서 사리에 어두움)하며 셋째, 지도층이호사를 누리고 넷째, 민심이 이반하며다섯째, 외침을 받는다. - P-1

8월 7일 새벽, 우리는 중국 지안의 압록강변에 있는 통천동을 찾았다. 사료에 따르면 이 국동대혈은 고구려 왕이 하늘과 선조에게제사 드리던 곳이었다. 나는 꼭두새벽에 목욕재계하고 통천동에 올라 환인, 환웅, 단군께 술을 따르고 차례로 3배를 올렸다. 또 발해시조 대조영에게도 술을 따르고3배를 올려 『김홍신의 대발해』의 집필을고했다. - P-1

중국은 황당하게도 발해 시조 대조영을 고구려에 귀화한 말갈족이라고 왜곡했다.발음이 같고 글자가 다른 한자의 특성을 교묘히악용하여 고구려 왕족인 고씨의 별종인 대씨를 굳이 고구려 별종이라고 우긴다.또한 대조영의 아버지가 걸걸중상이며 말갈족이라고주장한다. - P-1

이자가 오랑캐 이자가 아니라 본디 동쪽의 군자를 뜻했는데 중국에서 오랑캐 이자로 둔갑시킨 것을 알아냈다. - P-1

200자 원고지 1만 2천 매를 만년필로 썼는데 퇴고하는 데만 무려 7개월이 걸렸다. 내 손가락을 잘라내듯 2천 5백여 매를 버리며나는 매일 곡하는 심정이었다. - P-1

한국인은 흥이 나면 천하를 흔들 만큼웅혼한 기백을 자랑한다. 나는 『김홍신의대발해』가 우리 미래의 물살을 가르는 한바탕 흥겨움이되고, 이로 인해 30년 뒤에는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서기를 소망한다. - P-1

마자수(압록강) 갈대밭에 서릿발이 엉기면서 무진(668)년 가을은 깊어갔다. - P-1

대형 검모잠은 1만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박작구에서 서해안을 따라 남녘을 향했으며, 서쪽 마자수를 지키던 진국장군 대중상도 아들 대조영과 함께 5천여 군사를 이끌고 평양성을 향했다. - P-1

사람이 많으면 하늘도 이긴다고 했던가. 적의 군사는 개미 떼처럼 무수했다. - P-1

원래 고구려군은 청야 전술과 수성전, 궁노술과 단병접전에 뛰어났다. 벌을 불태워곡식과 말먹이를 없애고, 유격 전술에 능한 정진대가 적의 치중대를 섬멸하여 공격력을 꺾는 전법이었다. 또한 활쏘기에 능한 기병들이 적의 전열이 정비되기 전에 기습 돌격하는 도탕대의 용맹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 P-1

당군의 공성무기는 강력했다. 고구려의 견고한 성벽을 가차없이 무너뜨릴 만큼 사나웠다. 움직이면서 성 안을 살피는 소차와 묵직한 돌덩이를 성 안으로 날리는 발석거,이동식 사다리인 운제와 성문을 마구 부술수 있는 충차를 갖추고 있었다. - P-1

더구나 성벽에 접근하여 땅을 파는 전호피차와 수십명의 군사가 올라타고 싸울 수 있는 팔륜수차까지 동원했다. - P-1

그리고 당군이 연전연승하며 평양성까지 치달린 것은 후방에서 양초와 군물을 조달해 주는 치중대가 있기에 가능했다. - P-1

평양성을 포위한 적군은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많았다. 사람이 많으면 하늘도 이긴다는 말이 실감났다. - P-1

그날 아침, 승려 신성은 성루에 흰 기를꽂고 성문을 활짝 열어 항복했다. 무진(668)년 9월 21일. 705년 동안 천하를 진무하며 수나라를 물리치고 당나라와 맞겨루던 고구려는 멸망하고 말았다. - P-1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인체는 참으로 신비해서 사기를 북돋아주면 천리 길도 어렵지 않습니다." - P-1

"장수 손책은 전하의 어필을 흉내 내어 유조를 만들어라. 전하가 전장에서 붕어하면 내가 유조를 받들어 계위하겠다. 그리고 군사를 이끌고 남쪽으로 달려가 백제 유민과 신라의 도움을 받아 웅거하겠다. 나를 따르면 그 훈공이 천추만세까지 영화를 입으리라." - P-1

그러나 검도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내 어찌 반적이 되겠는가‘ 검모잠의 방을 나서며 검도삭은 이를 악물었다. - P-1

이팔천계지 팔팔천계갈이라 했습니다 - P-1

대조영이 가는 곳이 곧 길이 되리라. - P-1

당제 이치는 중원의 역대 황제들이 꿈꾸었으나 이루지 못했던 동방정복의 대업을 이루었다. 이치가 다른 황제보다 영민해서가 아니라 연개소문의 죽음 뒤에 몰아닥친 고구려 조정의 암투와 분란으로 강성한 고구려가 무너지고 말았다. - P-1

"고구려 군사여, 적을 섬멸하라! "우장군 신세중도 군사들을 독려하며 짓쳐나갔다. 고구려 군사들은 고구려라는 소리만 들어도가슴이 미어졌다. 얼마나 애달프고 목 메이는 소리인가. - P-1

끝내 대원영은 피투성이로 나뒹굴었다.무수한 적의 창검이 대원영의 몸에 박혔다. 고구려의 기상 같던 장수 대원영은 장렬하게 전사했다. 마치 고구려의 처절한 멸망처럼. - P-1

숙신 땅을 향해 밤낮없이 발걸음을 재촉한 진국장군 부대는 마침내 홀한해 서쪽 30리 지경에 당도했다. - P-1

연길존안 을해 시월 십삼일 경시납폐 동일수시 - P-1

"마치 망포 같구나!" 망포란 용포를 뜻하는 것이니 함부로 입에 올릴 말은 아니었다. 일순 좌중은 조용해졌다. 분위기를 눈치 챈 신재용이 거들고나섰다. - P-1

대조영이 왕상의 서기를 타고난 인물이니 망말은 아니올시다 - P-1

대조영과 임소진은 초례청에서 교배례와 합근례의 순서로 혼례를 치렀다. - P-1

대조영은 그날 아내 임소진을 진심으로 따뜻하게 안았다. 미리내가 유난히도 밝은 밤이었다. - P-1

비록 오래전의 일이지만 고구려가 수나라의 거듭된 침공을 물리치고 당나라의 집요한 침략을 방비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바로돌궐, 거란, 해, 습, 말갈을 비롯한 여러 부족과 동맹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 P-1

사람마다 원이 다른데 그 원이 모두 이루어지면 세상이 어찌되겠습니까. - P-1

백발노장 대중상. 대씨는 고구려의 왕족인 고씨의 별종이었다. 대씨를 고씨의 별종이라 하는 것은, 왕족인 고씨의 호구가 늘어 그수효가 많아지자 방계손에게 대씨를하사했기 때문이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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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 아래쪽에 황초령 진흥왕순수비가 있잖아요."
"황초령비는 지금은 함흥력사박물관에 있단 말입니다. 교수 선생은 아는 건 많아도 제대로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 P133

그때 나는 욕망이라는 단어가 그토록 강력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 삼지연 배개봉관에 다시 가고 싶다. 가서 여든두 가지 감자요리를 다 맛보고 싶다는 욕망을 채우고 싶다. 그때는 삼수갑산의 허천도 보고, 황초령과 마운령의 진흥왕순수비도 답사하고, 일본에서 찾아다 길주에 복원한 북관대첩비도 보고 싶다. 이것이 정녕 ‘욕망‘이 아니길 바라는 기도하는 마음이다. - P140

이때 새 지도자로 등장한 덩샤오핑은 공칠과삼(功七過三)론을 폈다. 마오쩌둥이 중국 현대사에 미친 ‘공로가 7이고 과오가 3이며마오의 과오에는 나의 과오도 들어 있다‘며 끌어안고 갔다. 참으로 대륙적이고 대인다운 포용력이었다. - P143

내가 중국을 답사하면서 배우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도 공칠과삼, 구동존이 같은 마음 자세이다.  - P147

특히 그들이 입에 붙이고 사는 ‘인인유책(有)‘, 즉 ‘사람마다 책임 있다‘는 표어는 차라리감동적이다.
‘거리 청결 인인유책‘
‘문화재 보호 인인유책‘
‘문명 창달 인인유책‘ - P148

그런 일본이기 때문에 그들이 한때는 세계 2위를 차지했던 경제 대국이고, 노벨상 수상자가 25명에 달하는 문명국이며, 유럽의유수한 박물관들이 중국문화실 못지않은 일본문화실을 갖출 정도로 일본이 세계인으로부터 존경을 받아도 한국인들은 전혀 인정할 마음이 없다. - P157

이런 한일 정서는 열등의식으로 인해 서로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일본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은 근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을 무시하고 있다." - P157

"조천일우 차국보(照一隅此則國)"  천 가지 중 오직 하나를 잘하면 그것이  국보라는 뜻이다. 한 가지 일에 충실하면 그것이 인생의 보람이고,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나라에 기여하는 길이라는 신념을 말해주는 표어다. 그런 정신에서 일본은 장인을 존중하는 사회로 성장했고 직업윤리 의식이 형성되었다. - P159

사무실로 올라가니 오카노 위원장 하는  말이, 이 점포는 100년전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시니세로 현재는 자신이 4대째 당주라는것이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응접실 한쪽엔 가훈이 걸려 있는데  이렇게 쓰여 있더란다. - P161

"머리부터 꼬리까지 앙꼬(팥소)." - P162

이제 우리는 일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알아야겠고, 일본은 혐한론을 멈추고 갈등의 원인인 과거사 문제를 깨끗이 정리하여 두 나라가 공존과 공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일본 답사기를 썼다. - P162

미술이 어떻게 언어의 기능을 회복하는가 하는 것이 오랜 나의숙제였다. 따라서 미술사에서, 수많은 미술운동들 속에서 이런 해답을 얻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말 없는 벙어리가 되었다. - P193

오윤의 부친은 「갯마을」의 소설가 오영수이다. 그리고 6살 위의 누님 오숙희 또한 서울대 미대를 나온 인간미 넘치는 분으로오윤을 끔찍이 챙겼다. 부친과 누님은 사람을 좋아하여 그의 집에는 훗날의 많은 문사, 투사, 지식인들이 드나들었다. - P194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1941~2022)를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비난하고 외면하더라도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그의 세례를 받고 성장한 그의 아우로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인연을 끊지 않았다. 개인적인 인연이 아니라 해도 김지하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시인이자영웅적인 민주투사였다. 70년대에 그가 7년간 감옥살이를 한것은 그 자체로 민주화운동의 한 축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었다.
비유하자면 넬슨 만델라의 옥살이에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 - P201

김지하: 꽃과 달마, 그리고 ‘흰그늘‘의 미학 - P201

김지하는스스로 말하기를 "동학은  내 실천의 눈동자요, 불교는 내 인식의  망막이다"라고 하였다. - P208

김지하의 수묵산수화는 반(半) 추상화로 농묵과 담묵이 카오스를 이루면서 미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가 묵란과 묵매에서 추구해온 대로 화면 속에 ‘기우뚱한 균형‘이 유지된다. 그는 작가의 변에서 "수묵산수는 우주의 본체에 대한 접근이다. (…) 산(어두움)과물(밝음), 농경과 유목 문화의 대비 등을 담채(淡彩)와 진채(眞彩)로 드러내보았다"라고 하였다. - P209

나라가 깨지고 임금도 잃고 사직이 무너졌도다
치욕스러운 마음으로 죽지 못해 여태 살아왔다만
비록 몸은 늙었어도 아직 하늘 찌를 뜻이 있어
단숨에 몸을 솟구쳐 만리 길을 떠나노라

國破君亡社稷傾 包差忍死至今生
老身尙有沖초志 一擧雄飛萬里行 - P215

‘서여기인(如人)‘이라고 해서 글씨는 곧 그 사람이라고 한다. 올곧게 일생을 살아온 동농 김가진은 세상이 혼탁할수록 정도를 지켜야 한다는 지조가 있었다. 그래서 동농은 정법의 행서로일관하였던 것이고 그렇게 낳은 그의 서예는 우리 근대서예사를대표하고 있다. - P224

리영희 선생과의 만남
리영희(1929~2010) 선생님은 내 결혼식 주례이셨다. 그때 선생님 나이 48세로 내가 첫 주례 제자였다. 리영희 선생님이 내 결혼식 주례를 맡게 된 것은 1970년대 유신독재가 낳은 시대의 인연이었다. 1974년 2월, 나는 3년(정확히 35개월)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그해 3월, 서울대 미학과 4학년에 복학하였다. 그런데 한 달 만인4월, 일명 민청학련 사건으로 불리는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구속되어 제대 두 달 만에 감옥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 P227

비상고등군법회의 2심에 항소이유서를 써낼 때 나는 딱 한 문장만 썼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징역 10년 살 행동을 하지 않았다.‘ - P228

출소해보니 수감자 중 대법원에 상고한 사람들은 서류가 법원에 갔다 와야 하는 형식적인 절차가 복잡해 곧바로 석방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 뒤인 17일 저녁에 출소한다는 소식이 텔레비전뉴스에 나왔다. 그래서 나는 ‘공범들의 석방을 맞이하러 서대문구치소(서울구치소)로 갔다. 그때 나는 감옥 안에서 말로만 듣던 지하철을 처음 타보았다. - P228

인생을 뜻있고 선이 굵게 사는 사람은  자잘한 것에는 잔신경을 쓰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기 쉽지만, 매사에 정확하고  성실하고섬세한 사람이 선이 굵고 멀리  볼 수 있는 법입니다. 신랑, 신부는 시간을 지킨다는 작은 일부터 소홀히 하지 말고 먼 곳을 생각하기바랍니다. - P235

그리고 두 사람이 살다 보면 의사 결정에서 의견이 달라질 때가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판단이 다를 때 작은 일은  남자 쪽이건 여자이건 어느 것을 따라도 무방할 것이니 서로 양보하는 미덕이  해결해줄 것입니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의 큰일에서 의견 차가 생긴다면  신랑은 반드시 신부의 의견을 따르기 바랍니다. 이것은인생의 선배로서 경험적으로 드리는 충고입니다." - P236

"신랑 유홍준 군과 신부 최영희 양은 어떠한 경우라도 항시 사랑하고 존중하며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할 것과 어른을 공경하고 나라에 공헌할 것을 맹서합니까?" - P237

그런데 나중에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이 ‘혼인서약‘을 펼쳐보니주례 리영희  선생은 혼인서약 문장 중 ‘나라‘라는 단어를 두 줄로긋고 ‘사회‘라고 교정보아놓았다. 만년필로 ‘사회‘라고 고쳐 쓴 것이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제기동으로 선생님을 찾아뵙고 ‘혼인서약‘의 단어 고친 것을 물었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 P238

"그게 그거일 수 있으나, ‘나라‘라는 말에는 파쇼 냄새가 나지만 ‘사회‘라는 말에는 인간의 윤리가 살아 있다는 차이 아니겠어."
- P238

아! 나는 이런 분의 주례로 결혼했다. 이것이 나의 복인가, 아니면 내 생의 부담인가. 그것을 나는 아직도 분명히 가름치 못한다. 다만 주례 선생님께 변함없는 존경과 감사를 드리며 살아왔다. - P238

선생님의 글씨로 말하자면 한국 서예사에 홀연히 나타난 금자탑이었다. ‘여럿이 함께‘ ‘길벗 삼천리‘ ‘처음처럼‘ 등 네다섯 글자로 화두(話頭)를 던지고 그 아래에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라고 풀이를 단 작품들은 한글 서예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 P255

신영복 선생의 글씨체를 나는 ‘어깨동무체‘라고 불렀다. 거친 듯 리듬이 있고, 기울어진 획들이 서로 의지하는 글자의 구성이 마치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연대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영복 선생은 평소 연대감과  ‘관계‘라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였는데 글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P256

일껏 붓을 가누어 조신해 그은 획이 그만 비뚤어버린 때 저는 우선 그 부근의 다른 획의 위치나 모양을 바꾸어서 그 실패를 구하려합니다. 획의 성패란 획 그 자체에 있지 않고 획과 획의 ‘관계‘에있다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돌베개 2018) - P256

<더불어 숲>은 신영복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보름 전에 쓴 작품이다. 이 마지막 작품은 대작인 데다 획에 흔들림이 없어 전혀 절필 같지 않고 오히려 이제까지 당신이 살아온 삶과 사상과 예술이이 한 작품에 담긴 것 같은 웅혼함이 있다. 그 ‘더불어 숲‘이라 쓴 네 글자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다. - P256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 P256

"혹, 자신이 소시민으로 되어간다는 생각은 안 해봤니?"
"아니, 나는 한 사람의 엑스퍼트로 미술평론가가 되기 위해10년은 더 이렇게 일하면서 공부할 거야. 너는?"
"난 이 유신독재의 질곡을 깨뜨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중이야."
"무얼 할 생각인데?"
"도시 게릴라!" - P273

세화는 책 출간의 모든 것을 나에게 위임하였다. 나는 이 원고를 전달받아 창작과비평사로 달려갔다. 당시 창작과비평사의 고세현 사장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명저라고 판단을 내리고 곧바로출간작업에 들어갔다. 책 제목을 정할 때 나는 반드시 ‘나의‘가들어갈 것을 주장했다. 민주화 투쟁 시절에는 ‘나‘를 잊고 집단적이고 공통적인 목표를 향하는 자세가 필요하였지만 민주화를 어느 정도 쟁취한 지금의 시점에선 ‘나‘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P275

그 ‘나‘는 저자 개인을 말하는 동시에 우리가 집단적으로 겪었던시대의 아픔을 넘어서려는 공통의 이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 P275

내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나의‘에 포함된 개인적 감성이 대중적 동의를 얻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1995년 3월 25일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출간되었다. - P275

톨레랑스는 타인과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관용(寬容)‘이라고 번역되고 있지만 홍세화는 이보다는 ‘용인(容認)‘에 가깝다고 했다. 프랑스 사전은 이 단어를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라고 풀이한다. 한자로풀자면 ‘화이부동(和而不同)‘에 가깝다. 즉 ‘남을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남으로 하여금 당신을) 존중하게 하시오‘라는 뜻이다. 홍세화의 화(和)이다. - P276

프랑스에는 소설 속에 미리엘 주교가 있다면, 대한민국 현실 속에는 미리엘 홍세화가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홍세화는 인생을 참 올곧게 산 사람이다. 많은 이들이 오래도록 그를 그리워할 것이다. 1970년 서울대 문리대 교정 마로니에 그늘에서 만나50년 넘게 함께 지낸 벗으로서 작별한다. - P279

"아직 환갑은 안 됐지유?"
"안되고말고요."
"그럼 청년회로 들어가슈." - P308

당송8대가의 한 분인 당나라 한유(韓愈)는 「양양 우적 상공께올리는 편지(襄陽于相公書)」에서 이렇게  말했다.
풍부하되 한마디 군더더기가 없고
축약했으되 한마디 놓친 게 없다

豊而不餘一言 約而不失一辭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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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연: 마지막 담배를 피우며
새해로 들어서면서 나도 담배를 끊었다. 지난해 그믐밤 마지막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이것이 마지막 담배라고 생각하니 쓸쓸한마음이 절로 일어났다. - P15

내가 담배를 피운 지 45년이다. 한생을 같이해온 이 기호품과 결별하자니 깊은 감회가 일어난다. 200여 년 전, 나하고 종씨인 유씨(兪氏)부인이 27년간 써오던 바늘이 부러지자 이를 애도하는 조침문(弔文)」을 썼듯이 나도 고별연(告別煙)이라도 남겨야겠다. - P15

글을 쓰다 펜이 멈출 때 담배 한 대 물고 잠시 사색에 잠기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 - P-1

정희성 시인은 
「동년일행(同年一行)」
에서 이렇게 읊었다.

괴로웠던 사나이
순수하다 못해 순진하다고 할 밖에 없던
남주(南柱)는 세상을 뜨고
서울 공기가 숨쉬기 답답하다고
안산으로 나가 살던 김명수(金明秀)는
더 깊이 들어가 채전이나 가꾼다는데
훌쩍 떠나
어디가 절마당이라도 쓸고 싶은 나는
멀리는 못 가고
베란다에 나가 담배나 피운다. - P16

그러다 꿈에도 그리던 백두산 정상에 올라 신령스러운 천지 못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을 때 북측 안내원이 다가와 "교수 선생, 백두산 정상에는 ‘백두산‘ 담배가 제격 아니겠습니까"라며 권하는것이었다. 나는 이 순간에도 한 대 피우지 않는다면 그건 감성의동물인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담배를 건네받아 불을 댕겼다. 핑 돌거나 거부감이 일어나면 바로 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천지가 더욱 황홀해 보였다. 이후 나는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 P17

노무현 대통령은 엄청난 골초이셨다. 식사를 하고나면 담배를 연거푸 두 대를 피우는 것이었다. 가만히 보니 대통령은 타르가1.0mg인 ‘에쎄‘를 피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5.0mg인 클라우드나인을 한번 피워보시라고 권했더니 맛있다며 묻는 것이었다. - P18

"이게 어디 제입니까?"
"국산입니다."
"클라우드 나인이 무슨 뜻입니까?"
"속어로 ‘뿅 갔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 단어를 써도 됩니까?"
"외국에도 수출하다 보니 자극적인 이름이 필요했나 봅니다." - P19

아닌 게 아니라 이 담배는 마약쟁이들의 비속어를 이름으로 썼다고 비난받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담배인삼공사(KT&G) 임원을 만났을 때 클라우드 나인은 아홉 개의 구름이라는 뜻이니 이것은 한글소설 『구운몽(九雲夢)』에서 나온 것이라고 둘러대라고 일러주었다. - P19

태초에 이 땅에 주인으로 태어나 잡초라는 이름으로 짓밟히고,
뽑혀도 그 질긴 생명력으로 생채기 난 흙을 품고 보듬어 생명에 터전을 치유하는 위대함을 기리고자 이 비를 세우다. - P27

김정헌과 나는 청옥산 육백마지기의 잡초공적비를 떠나면서이생진 시인의 「풀 되리라」를 큰 소리로 낭송하였다.

물 가까이 살다
물을 만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풀되리라

아버지 날 공부시켜
편한 사람 되어도
나 다시 공부해서
풀 되리라 - P28

"뭔 꽃이 저렇게 난리도 아니게 지랄같이 피어댄데여. 손이 열개라도 모자라는데 우쩌란 말이여."
농사꾼은 이처럼 바쁜 일손을 놓지 못하고 봄을 탄식하고, 고단한 인생살이에 시달리는 분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몸으로 살아가지만 한가한 옛 문인들은 봄을 한없이 만끽하면서 수많은 봄노래를 남겼다. - P34

중국 소주(蘇州, 쑤저우)에는 수많은 명원이 있어 아홉 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그중 하나인 망사원(網師園, 왕스위안)의 입구 담벽에는 ‘향수춘농(香睡春濃)‘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풀이하자면 ‘무르익어가는 봄날, 향기에 취해 졸음이 온다‘는 뜻이니 봄을 즐기는 최고의 경지가 아닌가싶다. - P34

봄꽃은 희망이기도 하다. 송나라 애국 시인인 육방송(陸)은「산서 마을을 노닐며(遊山西村)」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산은 첩첩, 물은 겹겹이라 길이 없는 듯했는데버들잎 짙고, 꽃들이 밝게 피어난 곳에 또 한 마을 있네
山重水複疑無路 柳暗花明又一村 - P34

"뭐긴다 뭐여, 인생이란 맥주병 위에 떠 있는 빈 배란 말이시."
천연덕스러운 이 할아버지의 해설 앞에 나는 미술평론가로서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이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고단했던 삶과 그 삶 속에 함께했던 술과, 그 술기운에 실어왔던 꿈과 그 꿈의 허망을 모두 읽어냈던 것이다. - P49

백남준의 말을 빌리든, 한 중년 신사의 고함을 인용하든, 현대미술을 일컬어 사기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사기란정치꾼이나 장사꾼의 그것과는 달리 아주 애교 있고 악의 없는, 그래서 우리의 정서 함양에 매우 유익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예술은 사기이되 이유가 있는 사기인 것이다. - P49

일주일이면 한 번, 못 돼도 한 달에  한 번은 뵙던 얼굴인데, 이 봄이 다 가도록 만날 수 없었으니, 저술에 전념함이 깊으신 것인지 영남의 꽃이 좋아 아니 올라오심인지. 다름 아니오라 책을  정리하다가우리 회화사 연구에 도움이  될 듯한 자료가 나와 한부 복사하여동봉하오니 잘 엮어서 좋은 작품을 만드심이 어떠하실지. 부처님얼굴 살찌고 아니고는 석수장이 손에 달렸다고 합니다.
하하하, 이만 총총. - P53

선생은 스스로 책방 주인이라고 낮추었지만 누구 못지않은 애서가였다. 통문관에는 ‘적서승금(積書勝金)‘이라는 편액이 걸려있었다. 책을 쌓아두는 것이 금보다 낫다는 뜻이다. 그리고 선생은 훌륭한 서지학자, 국학자이셨다. - P55

이겸로 선생은 2006년 10월 15일, 향년 97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유언으로 수목장을 해달라고 하셨다. 선생은 진실로 인생을 잘 사신 인사동의 큰어른이셨다. 지금 통문관은 손자인 이종운 씨가 가업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끊겨 사실상문을 닫은 셈이어서 쓸쓸하다. - P55

모든 물건에는 주인이 있는 법인데, 이제 이 소책자가 주인에게로 돌아갑니다. 이 또한 선친의 뜻입니다. 청컨대 웃으면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物各有主今此小冊子
歸於主此亦先考之意也請笑納之 - P57

본래 세계적으로 자동차와 기차는 우측으로 달리는 것이 대세다. 유독 영국과 일본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몇 나라만이 좌측으로 달린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때부터 영국을 선망하여 자기네 나라를 동양의 영국으로 만들고 싶다는 열망으로 기차와 자동차를도입할 때 영국식으로 좌측통행을 택했다. 바로 그 이유로 지금우리는 영국과 일본을 가게 되면 자동차 오는 방향을 헷갈려 길을건널 때 습관적으로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을 살피곤 한다. 영국과일본은 명확히 기차, 자동차, 사람 모두 좌측통행이다. - P77

그러나 미국, 프랑스, 독일 등 그 이외 국가들은 기차, 자동차,
사람 모두 우측통행이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런데왜 우리나라만 "사람들은 왼쪽 길, 차나 짐은 오른 길"이라는 보행규칙을 갖게 되었는가?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근대화과정에 일제강점기가 겹치면서 보행 문제를 혼잡하게 만들고 만것이다. - P77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대가 달항아리 형태로 만들어질정도로 달항아리는 한국미의 상징이 되었다.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이 어제의 미학이 아니라 한국미의 영원한 아이콘으로 오늘날우리들의 미의식에 살아 있다는 것은 여간 큰 행복이자 자랑이 아닐 수 없다. - P87

남한의 3대 정자로는 진주 남강변의 촉석루, 밀양 낙동강변의영남루, 제천 청풍 남한강변의 한벽루를 꼽고 있다. 북한에선 평양 대동강의 부벽루와 연광정, 안주 청천강의 백상루, 의주 압록강의 통군정 등이 예부터 이름 높다. - P89

세종 때 하륜崙)이 보물 제528호인 
한벽루(寒碧樓)에 쓴 중수기문은 가히  교과서에 실릴 만하다.

생각하건대, 정자를 수리하는 것은  한 고을의 수령 된 자의 일로서는 아주 작은 말사(末事)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것이 잘되고 못됨은 실상 고을의 다스림과 깊이 관계된다. 다스림에는 오르내림이 있어 민생이 즐겁고 불안함이 늘 같지 않듯이 정자의 흥폐도 이에 따른다.  하나의 정자가 흥하고 폐한 것을 보면  그 고장 사람들이 즐거운가 불안한가를  알 수 있고, 그것으로써 한 고을 다스림의실태를 엿볼 수 있을지니, 어찌 그것이 하찮은 말사라고 할 수 있겠는가. - P89

성종 때 서거정(徐居正)이 공주 금강변 정지산 산마루의 취원루(聚遠樓)에  붙인 기문 또한 천하의 명문으로 그  경륜의 시각은 참으로 원대하다.

정자를 세우는 것은 다만 놀고 구경하자는 뜻만이 아니다. 이 정자에 오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들판을 바라보면서 농사의 어려움을생각해보게 하고, 민가를  바라보면서는 민생의 고통을 알게 하고,
나루터와 다리를 보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내를 잘 건너갈 수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 곤궁한 백성들의 생업이 한두 가지가아님을 여기서 보면서 죽은 자를 애도하고 추운 자를 따스하게 해줄 것을 생각하게 한다. (…) 이는 멀리 있는 사물에서 얻어낸 것을정자에 모으고, 정자에서 모은 바를 다시 마음에 모아서, 내 마음이항상 주인이 되게 한다면 이 정자를 취원루라고 이름 지은 참뜻에가까울 것이다. - P90

지는 달은 희미하게 먼 마을로 넘어가는데
까마귀 다 날아가고 가을 강만 푸르네
누각에 머무는 나그네는 잠 못 이루고
밤서리 바람에 낙엽 소리만 들리네

과연 『징비록(懲毖錄)』의  저자다운 시다. 그러나 누구나가 다 서애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 P92

국토의 어디로 떠나든 차창 밖으로는 문득 저 멀리 정자가 나타날지니 그러면 고려시대 박윤문(朴文)이 단양을 지나다가 취운루(翠雲樓)라는 정자를 바라보면서 읊은 시에 공감을 보내게 될 것이다.

관동으로 가는 길목, 저 멀리 보이는 정자 하나
십리 소나무 그늘은 참으로 그윽하구나 - P92

우리나라는 기록유산의 나라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나라 기록유산은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 
『조선왕조실록』 『훈민정음』
『동학농민혁명기록물』 등 18건이나  된다. 그중 『조선왕조실록』은  총 1,894권 888책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기록물이다. - P94

1. 『조선왕조실록』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천재지변 등 다방면의 자료를 수록한 종합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
2.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실록이 있는 나라 중 편찬된 실록은 후손왕이 보지 못한다는 원칙을 지킨 나라는 조선왕조뿐이다.
3. 위 원칙의 고수로 『조선왕조실록』은 기록에 대한 왜곡이나고의적인 탈락이 없어 세계 어느 나라 실록보다 내용 면에서 충실하다. 책 권수로 치면 중국 명나라 실록이 2,900권으로 더 많으나 실제 지면 글자 수는 1,600만자 정도로, 4,965만자인 『조선왕조실록』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4.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의 다른 나라  실록들은 대부분 원본이 소실되었고  근현대에 만들어진 사본들만 남아  있으나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왕조 시기의 원본이 그대로 남아 있다. - P95

국보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은『태조실록』부터 철종실록』까지의 25대 472년의 기록만을 말한다.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일제강점기에 종래의 엄격한 방식이 아니라 소략하게 의례적으로 편찬하였고,  또 일제가 정략적 의도로 왜곡한 부분이 있어 별도로 취급한다. - P95

『조선왕조실록』은 여러 판본이 있는데 일찍이 1973년에 정족산사고본(1,187책)이 국보 제151-1호로 지정된 바 있고, 오대산사고본, 적상산사고본, 봉모당본, 낙질 및 산엽본 등이 국보 제151-6호까지 추가로 지정되었다. 이는 그간의 험난했던 이동과 망실의 역사와 피눈물 나는 보존의 의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것이다. - P96

전쟁에 정신없는 관리들은 땅에 묻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때 태조 이성계를  모신 사당인 경기전의 참봉 오희길(吳希吉)은 내장산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는데 888책을 모두 담으려면 60여 궤짝에 말 20여 필이 필요하였다.
이에 오 참봉은 태인에 살고 있는 선비인 안의(安義)와 손홍록(弘祿)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그러자 이들은 집안사람과 하인등 30여 명을 인솔하고 와서 실록을 내장산 산속 암자로 피란시켰다. 조정에서 실록을 행재소가 있는 해주로 옮기라는 명이 내려온 것은 이듬해 (1593) 7월이었다. 그때까지 두 사람은 물경 1년 하고도 닷새 동안 내장산에 기거하며 실록을 지켰던 것이다. 그때 안의는 65세, 손홍록은 57세였다. 벼슬도 없는 무명의 선비가 사재를 털어가며 끝내 실록을 지켜낸 것이다. 훗날 이들에게는 별제(6품) 벼슬이 내려졌다. 안의와 손홍록은 의병(義兵) 못지 않은 의인(義人)이자 애국자이고 문화유산지킴이의 상징이다. - P97

부동산 파동의 근본 요인 중 하나는 아파트가 현찰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택에는 그런 환금성이 없다. 그렇다면규제를 풀어 주택건설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아파트값 파동을 막는 첩경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 진정 국토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인지 원점에서 생각하고 과감하게 바꿀 때가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집의 본원적 기능을 회복하는 길이며, 무엇보다도 우리네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 P105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를 가르치고, 중고등학교에서는 한문을 가르치고, 대학에서도 한문을 교양필수 과목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외워서 익힐 것은 어려서부터 해야 한다. 26세가 넘으면 외우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그러지 않으면 나처럼 ‘그놈의‘ 한문 공부 때문에 평생을 학생으로 살게 된다. 한자교육은 요즘 말하는 인문학의 기초 체력을 기르는 필수과목인 것이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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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보고] 영화 메이즈 러너 3부작 종합 분석: 시스템의 통제를 넘어선 인간 존엄과 연대의 대서사시

1. 시리즈 종합 개요 및 서사적 진화
가. 기본 정보 및 서사적 흐름
ㅇ (개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웨스 볼 감독이 연출한 3부작으로, 폐쇄된 미로(1편), 황폐화된 사막(2편), 통제된 최후의 도시(3편)로 공간을 확장하며 인류 구원의 본질을 탐구함.
ㅇ (서사의 완성) 기억이 삭제된 피실험체에서 시작하여, 연대와 희생을 통해 부패한 권력을 무너뜨리고 인류의 대를 잇는 주체적 구원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림.
나. 위키드(WCKD)의 통제 논리
ㅇ (공리주의의 폭주) 인류 전체를 살린다는 대의를 위해 면역자들의 뇌 효소와 혈액을 착취하며, 소수를 도구로 삼는 파시즘적 통제 시스템을 고착화함.

2. 주요 인물 및 세력의 실존적 변화
가. 토마스: 설계자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ㅇ (주체성 회복) 위키드의 수석 연구원이었으나 시스템의 야만성을 깨닫고 스스로 미로에 투입되었으며, 3편에 이르러 자신의 피가 유일한 치료제임을 알고도 시스템에 굴복하지 않는 독자적 구원관을 완성함.
나. 빈스와 오른팔 조직: 인류 문명의 실질적 요람
ㅇ (저항의 구심점) 위키드에 맞서 면역자들을 구출하고, 생존자들을 안전지대(Safe Haven)로 인도하여 인류 문명이 단절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게 한 본작의 실질적 영웅 세력임.
다. 트리사와 갤리: 배반과 귀환을 통한 속죄
ㅇ (트리사) 대의에 매몰되어 동료를 배신했으나, 마지막에 토마스를 구하고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비극적 속죄를 이룸.
ㅇ (갤리) 1편의 증오와 광기에서 벗어나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후, 동료들을 위한 헌신적인 조력자로 거듭나며 화해와 성숙의 실존적 가치를 증명함.
라. 에바 페이지와 잰슨: 위선과 탐욕의 종말
ㅇ (에바) 인류 구원의 희망을 트리사에게 투영하며 마지막에 인간성을 보이려 하나, 결국 자신이 설계한 시스템의 수하인 잰슨에게 살해당하며 인과응보를 맞음.
ㅇ (잰슨) 인류 구원이라는 명분마저 버리고 오직 치료제 독점과 권력욕에 사로잡혀 폭주하다 자신이 멸시하던 크랭크들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함.

3. 주요 사건 및 주제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
가. 폐쇄된 안전과 위험한 자유의 변증법
ㅇ (미로에서 사막으로) 1, 2편을 거치며 주인공들이 마주하는 갈등은 위키드가 제공하는 통제된 안전(사육)과 장벽 밖의 지옥 같은 자유(실존) 사이의 선택이며, 이는 인간다움의 본질이 안주가 아닌 저항에 있음을 시사함.
나. 도구적 합리주의에 대한 인간 존엄의 저항
ㅇ (효소 추출에서 혈액 채취까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위키드의 실험은 인간을 치료제 생산을 위한 생체 부품으로 전락시켰으나, 단 한 명의 동료(민호)를 위해 본부로 침투하는 소년들의 연대는 효율성보다 존엄이 우선임을 증명함.
다. 진정한 치료제의 의미와 인류애의 복원
ㅇ (혈액이 아닌 유대) 육체적 질병을 고치는 약은 실패했을지라도, 죽음의 문턱에서 동료를 포기하지 않고 상실의 고통(뉴트의 죽음)을 함께 나누는 마음이야말로 멸망해가는 인류를 구원할 진정한 치료제임을 역설함.

4. 포스트 아포칼립스 대표작 비교 분석
가. 레지던트 이블과의 비교: 기업의 탐욕과 생물학적 재난
ㅇ (공리주의의 변주) 거대 기업의 비윤리적 실험을 공유하나 초인적 단일 영웅에 집중하는 레지던트 이블과 달리, 평범한 소년들의 연대와 집단적 희생을 통한 생존에 초점을 맞춤.
나. 매드맥스와의 비교: 황폐화된 세계와 권력의 통제
ㅇ (자원 독점과 인간성) 사막화된 디스토피아 권력에 맞서는 저항을 공유하나 자원 약탈 중심인 매드맥스와 달리 다수를 위한 소수의 도구화라는 철학적 딜레마를 심도 있게 다룸.
다. 독자적 철학 구축
ㅇ (자유의지) 멸망한 세계 속에서도 기성세대의 위선적 시스템에 맞서 인류의 대를 잇고자 하는 청춘들의 꺾이지 않는 자유 의지를 성공적으로 형상화함.

5. 종합 평가 및 현대적 시사점
가. 거대 담론의 몰락과 인류애의 승리
ㅇ (일장춘몽의 교훈) 인류 구원이라는 거대한 명분이 무고한 희생을 정당화할 때 초래되는 참상을 고발하며, 모든 것이 파괴된 폐허 위에서 피어난 연대 의식이야말로 인류를 지탱하는 유일한 힘임을 강조함.
나. 미래 세대를 위한 새로운 요람
ㅇ (안전지대 안착의 의의) 빈스와 저항군이 인류를 안전지대로 인도하여 문명을 다시 시작하게 한 것은, 권력의 통제가 아닌 인간의 자유로운 연대만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인문학적 결론임.


존명(尊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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