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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8월
평점 :
[부록 1] 『시계관의 살인』 시마다 스님의 사회학 강의
― ‘현실’이라는 공적 환상과 개인이 키우는 ‘악몽’
1. ‘현실’은 정말 객관적인가
『시계관의 살인』에서 시마다 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한 추리소설 속 잡담으로 보기에는 제법 묵직하다. 그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조차 사회가 공동으로 만들어낸 하나의 거대한 환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질서와 규칙을 필요로 한다. 국가, 법률, 제도, 도덕, 화폐, 역사에 대한 평가와 같은 것들이 모여 사회가 인정하는 하나의 ‘현실’을 형성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현실을 객관적인 세계 그 자체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이러한 공통의 현실이 있기 때문에 사회는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규칙 안에서 생활할 수 있다.
그러나 시마다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사회가 만든 ‘현실’은 사람들에게 안정과 질서를 제공하는 동시에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일정한 틀 안에 가두는 통제장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현실은 단순히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그 만들어진 현실을 다시 진짜 현실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2. 사회가 만든 ‘현실’이라는 공적 환상
시마다가 말하는 현실은 개인 한 사람이 꾸는 환상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함께 믿고 있기 때문에 현실처럼 작동하는 공적인 환상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만들어져 있는 사회의 언어와 가치관, 제도와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인지에 대한 기준도 대부분 그 사회 안에서 배운다.
이러한 공적 현실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그것이 지나치게 강해질 경우이다.
사회가 정해놓은 현실만을 유일한 진실이라고 요구하기 시작하면, 그 틀에서 벗어나는 개인의 생각과 상상은 비정상이나 위험한 것으로 취급될 수 있다.
시마다가 말하는 ‘현실이라는 환상’에는 따라서 두 얼굴이 있다.
ㅇ 인간을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안정과 질서의 장치
ㅇ 인간을 일정한 사고방식 안에 머물게 하는 지배와 통제의 장치
이 양면성을 이해해야 시마다가 다음으로 꺼내는 ‘악몽’이라는 개념도 이해할 수 있다.
3. 개인이 키우는 또 하나의 세계 ― ‘악몽’
사회가 만든 공적 현실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시마다는 이러한 개인적인 환상을 ‘악몽’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악몽은 반드시 공포스럽거나 악한 생각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회가 당연하다고 규정한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기존의 질서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정신활동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에 가깝다.
그래서 시마다는 예술가·사상가·과학자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력자까지도 거대한 ‘악몽’을 키우는 인간으로 바라본다.
작품에서 피카소·마르크스·아인슈타인·히틀러 같은 서로 전혀 다른 인물들이 한꺼번에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을 도덕적으로 같은 선상에 놓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공통점은 기존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 현실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피카소는 기존의 시각적 현실을 해체했고, 마르크스는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틀을 제시했으며, 아인슈타인은 인간이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바꾸었다.
히틀러 역시 자신이 만들어낸 정치적·인종적 세계관을 현실에 강제로 구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시마다가 말하는 ‘악몽의 사육가’라는 범주 안에 들어간다.
물론 이는 그들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평가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특히 나치 독일의 범죄와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마다의 관심은 선악의 판정이라기보다 인간이 만들어낸 사적인 환상이 얼마나 거대한 공적 현실로 변할 수 있는가에 있다.
4. 누가 현실을 만드는가 ― 역사와 권력
시마다의 이야기가 더욱 도발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역사에 관한 언급이다.
그는 현실과 역사에 대한 평가 역시 승리한 사회와 권력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다.
가령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가 지금과 전혀 달랐다면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역사적 평가와 사회의 공식적인 언어 역시 지금과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승자가 언제나 옳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시마다가 강조하려는 것은 사회가 무엇을 현실이라고 부르고 무엇을 정상적인 역사로 가르치는가에도 권력의 작용이 개입한다는 점이다.
역사적 사실 그 자체와 사회가 그 사실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서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우리가 너무도 단단한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현실’의 일부도 인간 사회가 만들어낸 해석의 체계일 수 있다는 것이다.
5. 점은 왜 맞는 것처럼 보이는가
시마다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노노미야의 점에 대한 설명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점쟁이가 반드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점쟁이 본인이 자신의 능력을 진심으로 믿는 것과, 실제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마다는 예언이 맞는 것처럼 보이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표현의 넓은 해석 가능성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28세 이후 죽는다.’
라는 말은 사실 29세에 죽어도 맞고 50세에 죽어도 맞으며 90세에 죽어도 맞는다.
마찬가지로
‘16세가 되기 전에 죽는다.’
라는 예언도 태어나자마자 죽든 15세에 죽든 모두 적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언의 범위를 넓게 만들어두면 사건이 벌어진 뒤 결과를 다시 예언에 끼워 맞추기가 쉬워진다.
여기에 인간의 기억과 선택적 해석이 더해진다.
맞지 않은 예언은 잊어버리고 우연히 들어맞은 부분만 기억하면 점쟁이의 예언은 점점 더 정확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시마다는 이것을 단순한 사기라고만 보지 않는다.
사람이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의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그런 점에서 점에 관한 이야기도 앞서 말한 ‘현실이라는 환상’과 연결된다.
6. 나카무라 세이지의 건축 ― 개인의 ‘악몽’을 현실로 만드는 공간
시마다의 긴 이야기가 『시계관의 살인』에서 중요한 이유는 결국 나카무라 세이지의 건축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시마다는 나카무라 세이지가 단순히 기괴하고 복잡한 집을 설계한 건축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지은 관들은 의뢰인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고독한 환상과 집착을 건축이라는 현실의 공간으로 끌어내는 장소이다.
즉 의뢰인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악몽’을 실제 사람이 들어가 살아갈 수 있는 건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수차관이나 미로관 역시 그곳의 주인이 품은 강한 욕망과 집착을 건물의 형태로 구현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카무라 세이지는 단순한 건축가라기보다 타인의 악몽을 공간으로 증폭시키는 사람에 가깝다.
그리고 시계관에서 그 역할은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7. 고가 미치노리의 ‘악몽’ ― 도와와 멈출 수 없는 시간
시계관의 주인 고가 미치노리에게 그 ‘악몽’의 중심에는 딸 도와가 있었다.
미치노리의 도와에 대한 집착은 정상적인 부녀관계의 범위를 넘어선다. 그는 딸과 시간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시계관이라는 거대한 건축물 속에 새겨 넣는다.
수많은 시계와 종, 시계탑, 그리고 외부보다 1.2배 빠르게 흐르는 구관의 시간은 단순한 장식이나 기발한 건축 아이디어가 아니다.
고가 미치노리가 머릿속에서 키워온 시간에 대한 집착을 나카무라 세이지가 실제 공간으로 구현한 결과이다.
여기서 시마다가 말한 ‘악몽’이라는 표현이 구체적인 모습을 얻는다.
사회의 일반적인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시간이 시계관 안에서는 현실이 된다.
외부에서 50분이 흐르는 동안 내부에서는 60분이 흐른다.
시계관 안에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그 잘못된 시간이 오히려 ‘현실’이 된다.
이것은 앞서 시마다가 했던 사회에 관한 이야기와도 묘하게 겹친다.
사람들이 모두 같은 것을 현실이라고 믿으면 그것은 그 세계 안에서 현실로 기능한다.
구관 사람들은 수많은 시계가 모두 같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잘못된 시간이지만, 구관 안에서는 그것이 하나의 ‘공적 현실’이 된 셈이다.
8. 고가의 악몽을 이용한 사요코
여기서 작품은 한 번 더 뒤틀린다.
고가 미치노리가 만들어놓은 이 기괴한 시간은 애초에 살인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요코는 시계관의 비정상적인 시간구조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자신의 복수에 이용한다.
고가 미치노리의 개인적인 악몽이 사요코에게는 완전범죄를 가능하게 하는 현실적인 살인도구가 된 것이다.
그녀는 구관과 외부의 시간차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죽인 뒤 밖으로 빠져나오고, 구관 사람들이 범행시각이라고 믿는 시간에는 시마다와 함께 있으면서 알리바이를 만든다.
따라서 『시계관의 살인』에는 여러 층의 ‘현실’이 겹쳐 있다.
ㅇ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정상적인 외부의 시간
ㅇ 고가 미치노리가 만들어놓은 시계관 내부의 시간
ㅇ 사요코가 피해자들에게 보여주는 날조된 과거
ㅇ 구관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믿는 ‘도와의 복수’
ㅇ 그리고 그 모든 거짓 현실 뒤에 숨어 있는 실제 사건
사요코의 범행은 결국 사람들에게 가짜 현실을 믿게 만드는 행위이기도 하다.
9. 「침묵의 여신」 ― 악몽을 추적하다 범행을 발견하다
고가 미치노리가 남긴 「침묵의 여신」은 사요코의 복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사요코는 오히려 그 시를 시마다를 자신의 곁에 붙잡아두기 위한 미끼로 이용한다.
시마다가 고가의 시를 해석하느라 자신과 함께 움직이면, 사건이 벌어졌다고 알려진 시간에 사요코가 시마다와 함께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가 된다.
시마다는 「침묵의 여신」을 해석하기 위해 고가 미치노리의 과거와 시계관을 조사하고, 그 과정에서 고가가 만들어놓은 ‘악몽’의 핵심인 1.2배 빠른 시간에 접근한다.
결국 사요코가 자신의 알리바이를 굳히기 위해 끌어들인 사람이 사요코의 시간 트릭을 무너뜨린다.
이 점에서 시마다의 긴 사회학적 이야기도 단순한 철학적 장광설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처음부터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관을 누군가의 악몽이 현실화된 공간으로 바라보았고, 고가의 악몽을 이해하려 했기 때문에 시계관의 진짜 시간에 도달할 수 있었다.
10. 정리 ― 『시계관의 살인』에서 ‘현실’과 ‘악몽’이 의미하는 것
시마다의 강의는 언뜻 보면 연쇄살인과 직접 관계없는 철학적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품 전체를 알고 다시 보면 이것은 시계관이라는 공간을 이해하는 하나의 해석틀이 된다.
사회는 수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현실’을 만들어낸다.
개인은 그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의 ‘악몽’을 키운다.
고가 미치노리는 도와와 시간에 대한 자신의 악몽을 키웠고, 나카무라 세이지는 그것을 시계관이라는 건축물로 현실화하였다.
그리고 사요코는 그 악몽 속에 만들어진 1.2배의 시간을 자신의 복수를 위한 살인도구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 악몽의 구조를 이해하려 했던 시마다가 시간의 비밀을 발견하면서 범행은 무너진다.
그런 의미에서 『시계관의 살인』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 가운데 하나는 ‘무엇이 현실인가’라는 시마다의 질문이 작품의 핵심 트릭과 그대로 겹친다는 데 있다.
구관에 갇힌 사람들에게 1.2배 빠른 시간은 거짓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모든 시계가 같은 시간을 가리키는 동안에는 누구도 그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가 믿는 잘못된 시간이 하나의 현실이 된 것.
시마다가 말한 ‘현실이라는 공적 환상’이 시계관이라는 건축물 안에서 문자 그대로 구현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