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겨울 저녁이면 타샤는 활활 타는 벽난로 앞에 앉아, 돋보기를 쓰고씨앗 카탈로그와 원예 서적을 읽을 것이다. 영국에서 온 신간에서 분홍색엔젤 트럼펫 (일명 천사의 나팔꽃: 옮긴이)을 보거나 잡지에서 어느 집안에서 물려내려오는 패랭이꽃을 보면 ‘사냥이 시작된다. 타샤는 찾기 힘들지만 반드시 손에 넣어야 되는 화초와 씨앗의 ‘수배 명단‘을 갖고 있다. 이때가 튜더집안의 수단과 매력과 결단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 P44

하지만 타샤는 꽃송이가 피어날 희망만으로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겨우내 언덕 위 작은 온실에서 그녀의 영혼이 풍성해지고, 그림을 그릴꽃들이 자라난다. 타샤는 아무리 바빠도 매일 집과 온실을 잇는 미로를 오르내리며, 피어나는 꽃에 물을 준다. 타샤는 한겨울이면 내게 종종 말한다.
"일러스트레이터가 안 됐다면 토바처럼 온실 재배인이 되었을 거예요." 단순히 나를 칭찬하는 말만은 아니지 싶다. 타샤는 온실의 화초를 두고 오래도록 법석을 떤다. 또 3월은 그 화초들이 가장 빛을 발하는 시기이다. - P46

버몬트 주민들이 진흙탕 계절‘이라고 부르는 시기가 4월 초에 시작되면, 식물과 씨앗 소포를 배달하는 사람들이 타샤의 집으로 직접 오지못하게 된다. 비포장도로가 몇 킬로미터 이상 구불구불 이어져서, 날씨가아주 좋을 때도 운전하기가 힘들다. 진흙탕 계절에는 그 길을 통과할 재간이 없다. 기나긴 4월 몇 주간 타샤는 완전히 고립된다. - P50

진흙탕 계절 동안 타샤는 응접실의 개들이 흙발로 골동품 카펫을 밟지않도록 응접실 카펫을 걷어낸다. 밖에 나갈 때면 무릎까지 올라오는 국방색 장화를 신는다. 장화를 신고 걸으면 철버덕 소리가 나면서 발자국이 생긴다. 그렇게 걸어 양동이를 들고 염소 우리에 가거나 손수레를 밀고 꽃밭주위로 간다. - P51

날씨가 궂어도 할 일이 많다. ‘아가씨‘ - 젖 짜는 염소 - 은 살림집에 연결된 헛간에서 산다.
동물들에게 사료를 주러 가는 길에 타샤는 구근의 싹이 나왔는지 살펴보고,
가끔은 고개를 내민 용감한 ‘글로리 오브 더 스노‘를 발견하기도 한다. - P52

4월은 타샤를 유혹할 만큼 앵초가 풍성하긴 해도, 아직은 실내에서 자라는 화초들이 주를 이루는 달이다. 4월이면 타샤는 옮길 수 있는 식물은 뭐든 집 안으로 들고 가서, 창틀에 올려놓고 감상한다고 알려져 있다.
지하실 돌계단에는 페이퍼화이트, ‘테트아테트‘, ‘민노우‘ 수선화들과 튤립, 은방울꽃, 사프란을 심은 골동품 화분이 즐비하다. 이것들은 겨울이 짧고 온화하다고 속아 넘어간다. - P54

타샤는 꽃피는 돌능금나무 밑에는 사프란을 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사프란이 구근을 다른 데서 옮겨와 멋진 일을 해낸 들쥐들의 솜씨 (아니면 다람쥐일지 누가알겠어요."라는 것이다. 하지만 들쥐떼의 배설물 때문에 봄이면 타샤는이웃들과 몇 트럭 분량의 배설물을 놓고 협상을 벌인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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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정원 - 버몬트 숲속에서 만난 비밀의 화원 타샤 튜더 캐주얼 에디션 2
타샤 튜더.토바 마틴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이야기 6] 『타샤의 정원』과 흙담 밑 나의 작은 화단
― 사라진 옛집에 다시 피어나는 꽃들

1.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타샤 튜더

타샤 튜더(Tasha Tudor, 1915~2008, 향년 92세)는 미국의 동화작가이자 그림책 화가이다. 그녀는 보스턴의 유복하고 명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윌리엄 스탈링 버지스(William Starling Burgess)는 선박과 항공기를 설계한 기술자였고, 어머니 로저먼드 튜더 버지스(Rosamond Tudor Burgess)는 초상화가였다. 증조부 프레더릭 튜더(Frederic Tudor)는 미국의 얼음 무역으로 큰 부를 이루어 ‘얼음왕’이라 불린 사업가였다.

그녀의 출생 당시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을 딴 스탈링 버지스(Starling Burgess)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등장하는 나타샤(Natasha)를 좋아해 이름을 나타샤로 바꾸었고, 그것이 줄어 타샤(Tasha)가 되었다. 태어날 때의 성은 버지스(Burgess)였으며, 훗날 어머니의 결혼 전 성인 튜더(Tudor)를 자신의 성으로 택해 법적으로 타샤 튜더가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유모의 보살핌을 받았고, 집안은 보스턴 상류사회의 유력 인사들과 교류했다. 타샤는 태생부터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홉 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에는 코네티컷주 레딩에 사는 가족 친구의 집에서 지냈다. 그곳에서 자연과 가까이 생활하며 농사와 가축 돌보기, 요리와 바느질 같은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타샤가 훗날 선택한 소박한 생활을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아낸 삶으로 보기는 어렵다. 실을 잣고 옷을 만들며 가축을 기르고 장작 난로를 사용한 생활은 경제적 궁핍의 결과가 아니라,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타샤가 자신의 취향과 신념에 따라 선택한 삶이었다.


2. 결혼과 가족, 그림책 작가로 이룬 성공

타샤는 1938년(22세)에 토머스 L. 맥크리디 주니어(Thomas L. McCready Jr.)와 결혼해 두 아들과 두 딸을 두었다. 가족은 1945년(29세)에 뉴햄프셔의 오래된 농가로 옮겨 생활했으며, 그곳의 가족과 가축, 정원과 들판은 타샤의 글과 그림에 자주 등장했다.

첫 번째 결혼은 1961년(45~46세)에 끝났고, 이후 앨런 존 우즈(Allan John Woods)와 재혼했지만 이 결혼도 1966년(50~51세)에 끝났다. 첫 번째 결혼이 끝난 뒤 자녀들은 성을 맥크리디에서 튜더로 바꾸었다. 훗날 버몬트의 땅을 개간하고 집을 지어준 세스 튜더(Seth Tudor)도 네 자녀 가운데 한 명이었다.

타샤는 결혼한 해인 1938년(22~23세)에 첫 그림책 『호박 달빛』을 출간한 뒤 평생 100권이 넘는 책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1945년(29세)에 『마더 구스』로 첫 번째 칼데콧 아너를 받았고, 1957년(41세)에는 『1은 하나』로 두 번째 칼데콧 아너를 받았다. 그림책뿐 아니라 크리스마스 카드와 달력, 포스터에도 수많은 그림을 남겼다.

타샤는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작품으로 경제적인 성공을 거둔 작가이기도 했다. 1971년(55~56세)에는 직접 쓰고 그린 『코기빌 페어』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당시 자녀들은 모두 성장해 독립한 상태였고, 이 책의 성공은 타샤가 오랫동안 바라던 버몬트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3. 작가로 번 돈으로 마련한 30만 평의 땅

타샤가 버몬트에서 소유한 넓은 땅은 집안에서 그대로 물려받은 재산이 아니었다. 그는 오랜 작가 생활과 『코기빌 페어』의 성공으로 마련한 수입을 바탕으로 1971년 무렵(55~56세), 버몬트 남동부의 외딴 산림을 구입했다.

아들 세스는 그 땅의 일부를 개간하고 1750년경에 지어진 뉴햄프셔 농가를 본떠 집을 지었다. 타샤는 그 집을 ‘코기 코티지(Corgi Cottage)’라 부르며 남은 생애를 보냈다.

타샤는 흔히 ‘30만 평의 정원을 가꾼 사람’으로 소개된다. 나도 처음에는 약 30만 평에 이르는 땅 전체가 정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약 250에이커, 우리 면적으로 약 30만 평은 타샤가 소유한 땅 전체의 면적이었다.

약 30만 평의 땅을 모두 농장으로 경작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손대지 않은 자연림이었고, 일부 목초지에서는 염소를 길렀다. 꽃과 나무를 집중적으로 가꾼 주요 정원은 집과 헛간 둘레의 약 2~3에이커였다. 우리 면적으로 환산하면 대략 2,400~3,700평이니, 그것만으로도 개인이 가꾼 정원으로는 매우 넓은 규모였다.

타샤는 그곳에서 19세기 뉴잉글랜드풍의 옷을 입고 실을 잣았으며, 염소와 닭을 기르고 정원을 돌보았다. 타샤의 정원은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한 배경과 성공한 작가로서 마련한 경제적 기반, 넓은 땅을 구입할 수 있었던 여건, 그리고 오랜 세월 직접 꽃과 나무를 돌본 노동이 함께 만들어낸 공간이었다.


4. 소박한 시골 할머니인 줄 알았지만

처음 『타샤의 정원』을 읽었을 때만 해도 나는 타샤를 시골의 조그마한 정원에서 꽃을 가꾸며 살아가는 소박한 할머니라고 생각했다. 책에 담긴 낡은 집과 골동품 가구, 손수 지은 옷과 정원의 꽃들은 물질적인 풍요와 거리가 먼 검소한 생활처럼 보였다.

그러나 타샤의 생애와 정원의 실제 규모를 자세히 알고 나니 처음의 인상만으로 바라보기는 어려웠다. 그는 보스턴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작가로 성공해 경제적 기반을 마련한 뒤 약 30만 평에 이르는 버몬트의 땅을 구입했다. 그 대부분이 숲이고 실제 정원은 그보다 작았다고 해도, 개인이 그만한 토지를 소유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소박한 시골 할머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오늘날의 표현으로 하면 상당한 부동산을 소유한 ‘땅부자’였던 셈이다. 물론 넓은 땅을 소유했다는 사실만으로 타샤의 노동과 삶의 가치를 낮게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그의 전원생활을 이해하려면 꽃과 동물, 낡은 집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장면뿐 아니라 그 생활을 가능하게 했던 경제적 조건도 함께 바라봐야 한다.


5.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삶은 아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받고 힘든 직장생활과 고단한 현실에 지칠 때 전원생활을 꿈꾼다. 꽃이 피는 정원을 가꾸고, 직접 기른 재료로 음식을 만들며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린다. 나 역시 처음에는 『타샤의 정원』과 같은 책을 읽으며 잠시 마음을 달래고 위안을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 전원생활은 책이나 사진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평온하고 낭만적인 일만은 아니다. 나는 시골에서 자라며 농사를 많이 지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는 조금이나마 맛보았다. 땅을 일구고 작물을 심어 거두는 일은 날씨와 계절에 맞춰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고된 노동이다.

전원생활에는 노동뿐 아니라 많은 돈도 필요하다. 땅과 집을 마련해야 하고, 넓은 정원을 유지하려면 시간과 비용을 계속 들여야 한다. 잡초를 뽑고 물을 주는 일부터 집과 울타리를 보수하고 가축을 돌보는 일까지 어느 하나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타샤의 삶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생활방식은 아니다. 충분한 경제적 기반과 넓은 땅, 오랜 노동을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삶이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 삶의 물질적 조건까지 외면한 채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타샤의 삶과 정원이 지닌 가치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타샤는 자신에게 주어진 경제적 여건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꿈꾸었던 생활을 실제로 만들었고, 넓은 정원을 평생 직접 돌보았다. 중요한 것은 타샤의 삶을 그대로 흉내 내는 일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과 함께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경제적 기반과 노동까지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다.


6. 『타샤의 정원』이 불러낸 기억

정원 작가 토바 마틴(Tovah Martin)과 사진가 리처드 W. 브라운(Richard W. Brown)은 타샤의 생활과 정원의 사계절을 『타샤의 정원』에 담았다. 눈 속에서 피어나는 수선화와 봄의 튤립, 여름의 장미와 허브, 가을의 정취와 겨울을 준비하는 모습까지 펼쳐진다. 꽃과 나무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정원과 더불어 살아가는 타샤의 일상과 생각도 함께 담은 책이다.

타샤는 정해진 설계도를 그려놓고 식물을 심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마음 가는 대로 어울려 심었다. 아흔 살이 넘어서도 장미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했던 타샤에게 가드닝은 평생 배우며 누리는 ‘기쁨의 샘’이었다.

『타샤의 정원』을 읽는 동안 내가 태어나 스무 살까지 살았던 시골집과 흙담 밑의 작은 화단이 떠올랐다. 정원이라는 말도, 가드닝이라는 말도 모르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들과 산에서 마음에 드는 풀과 나무를 가져다 심고 그것들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기를 기다리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7.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집

사진 속 집은 내가 태어나 스무 살까지 살았던 시골집이다. 집은 지금 사라지고 없지만, 눈 내리던 어느 겨울날 찍어둔 사진 속에서는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낮은 지붕을 맞댄 집들이 흙담 안에 옹기종기 들어앉아 있다. 흙과 돌로 쌓은 낮은 담이 마당 앞을 길게 두르고, 담 뒤로는 집과 집 뒤편의 나무들이 솟아 있다. 좁은 마을길은 집 옆을 지나 대문을 향해 굽어 올라가며, 대문 곁에는 집보다 훨씬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굵은 가지를 사방으로 펼치고 있다.

겨울에 찍은 사진 속 나의 시골집에는 지붕과 마을길과 나뭇가지 위에 내려앉은 흰 눈만 보인다. 그러나 내 기억 속 옛집은 흰 눈에 잠긴 모습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계절이 바뀌면 흙담 밑에서는 꽃이 피고, 담쟁이는 담을 뒤덮으며, 집 둘레의 나무에서는 여러 열매가 익는다.


8. 흙담 밑에 있었던 작은 화단

시골집 마당 안쪽, 흙담 아래에는 담을 따라 길게 이어진 작은 화단이 하나 있었다. 정원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만큼 소박한 공간이었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그곳에 여러 풀과 나무를 가져다 심으며 제법 정성을 들였다.

1980년대의 일이니 꽃집이나 묘목상에서 마음에 드는 꽃을 골라 사다 심을 형편도 아니었다. 화단에 심은 것들은 대부분 들판과 길가에서 뽑아 온 들꽃이었다. 들길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꽃이 보이면 뿌리째 뽑아 화단에 옮겨 심었고, 산에서는 진달래와 개나리를 캐다 심기도 했다.

우리가 노간지나무라고 부르던 나무도 산에서 캐다 심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 나무를 트리로 꾸며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허락 없이 산에서 나무를 캐오는 것은 처벌받을 수 있는 일이지만, 당시 어린 나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살아 있는 나무를 집으로 옮겨 크리스마스트리로 키워보겠다는 생각에 제법 진지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일이었고, 그때의 나는 그것을 ‘가꾸는 일’이라고 인식하지도 못했다. 그저 마음에 드는 풀과 나무를 옮겨 심고, 그것이 살아남아 새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지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9. 해당화와 백일홍, 분꽃과 봉숭아

우리 집 화단에 들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해당화와 백일홍뿐 아니라 분꽃과 봉숭아도 피어 있었다. 분꽃과 봉숭아는 그 시절 시골집 흙담 밑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꽃들이었다.

화단 앞쪽에는 낮은 돌을 줄지어 놓아 경계를 만들었고, 그 돌 앞에는 키 작은 채송화가 알록달록한 꽃을 피우며 길게 이어져 있었다. 이름난 꽃이나 귀한 나무를 계획적으로 배치한 화단은 아니었지만, 계절이 되면 저마다의 자리에서 꽃이 피었다.

흙담에는 담쟁이덩굴이 칭칭 감겨 올라갔다. 봄이면 연둣빛 새잎이 돋았고, 여름이면 짙은 초록빛 잎이 흙담을 거의 보이지 않게 온통 뒤덮었다. 가을이 깊어지면 잎은 붉은빛과 갈색빛을 띠다가 서서히 말라 떨어졌다. 흙담은 그대로였지만 그 위를 덮은 담쟁이의 빛깔은 계절마다 달라졌다.

그곳은 들과 산에서 데려온 식물들이 제대로 뿌리를 내렸는지 살펴보던 어린아이의 실험장이었고, 계절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놀이터이기도 했다.


10. 한여름에도 손이 얼 것 같았던 우물

화단의 왼쪽 끝 가까이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 그 우물에서는 한여름에도 손이 얼 것처럼 차가운 물이 나왔다. 무더운 날에도 물에 손을 담그면 금세 얼얼해질 만큼 차가웠다. 한여름에 그 우물물로 등목을 하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대전에 사시던 고모님께서 가끔 시골에 오시면 그 우물물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셨다.

화단 오른쪽에는 장독 하나를 땅에 묻어두었다. 그 장독은 겨울에만 사용했다. 동치미를 담아두었다가 겨울 내내 뚜껑을 열고 꺼내 먹었다. 한여름의 차가운 우물물과 겨울의 동치미는 꽃과 나무와는 또 다른 옛집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11. 집 둘레를 채웠던 과실나무와 장독대

집 둘레에는 여러 과실나무가 있었다. 집 뒤에는 밤나무가 세 그루 정도 있었고 그 곁에는 감나무도 자랐다. 옛날식 푸세식이라 냄새가 지독했던 뒷간 옆에는 대추나무와 단감나무, 벚나무가 있었으며, 흙담 바깥에는 앵두나무가 자랐다.

뒤뜰에는 포도나무를 세 그루 정도 심어놓았고, 간장과 고추장, 된장 등이 가득 담긴 장독들이 놓인 장독대도 있었다. 포도나무는 그늘진 곳에 있어 열매가 제대로 달리지 않았다. 세 그루나 있었지만 포도를 따 먹은 기억은 거의 없다. 포도나무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포도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초여름이면 담 밖의 앵두나무에 빨간 앵두가 열렸다. 흙담 너머로 뻗어온 가지에서 잘 익은 앵두를 골라 따 먹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그러나 나무가 더 자라면 뿌리 때문에 흙담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걱정이 생겨 나중에는 베어냈다.

뒷간 옆의 단감나무는 몇 년 동안 땡감나무인 줄만 알았다. 열매가 달려도 당연히 떫을 것이라고 생각해 따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그 나무의 감을 혼자 따 먹고 있는 모습을 딱 보았다. 그때서야 땡감인 줄 알았던 감이 달고 아삭한 단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누군가는 이미 그 맛을 알고 있었는데, 나는 몇 년 동안 땡감인 줄만 알고 입에도 대지 않았으니 몹시 억울했다.

그래도 시골집에서 자란 덕분에 대추와 감, 밤과 단감, 앵두와 버찌를 따 먹으며 살았다. 특히 버찌를 정신없이 따 먹고 나면 입술이 꺼멓게 물들곤 했다.

집 둘레의 나무들이 모두 끝까지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흙담 밖의 앵두나무는 담이 무너질 것을 걱정해 베어냈고, 뒷간 옆의 대추나무와 벚나무는 죽은 뒤 베어버렸다.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질 때마다 그 나무가 만들던 그늘과 꽃, 해마다 내어주던 열매도 함께 사라졌다.


12. 대문 옆의 느티나무 보호수

대문 옆에는 집의 다른 나무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낮은 흙담과 지붕보다 훨씬 높이 솟아 굵은 가지를 사방으로 펼친 나무였다. 우리 집에서 심어 가꾼 나무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며 마을의 세월을 함께 견뎌온 보호수였다.

느티나무 곁의 보호수 비석에는 1991년 9월 25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고 새겨져 있다. 지정 당시 기록은 수종 느티나무, 수령 120년, 수고 15m, 나무 둘레 2.8m이다. 비석 아래에는 “조상의 얼이 깃들인 이 나무를 보호합시다”라는 문구도 새겨져 있다.

1991년 당시 추정 수령 120년에 그 뒤로 흐른 세월을 더하면, 2026년 현재 수령은 단순 환산으로 약 155년이 된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내던 때에도 느티나무는 이미 집보다 훨씬 크고 오래된 나무였다. 우리 집에 딸린 나무 한 그루라기보다 집과 마을의 시간을 함께 지켜본 존재에 가까웠다.


13. 사진 속에서 다시 돌아오는 계절

내게 남은 옛집 사진은 눈 내리던 겨울의 한 장면뿐이다. 그러나 나는 사진에 미처 담기지 않은 공간들의 위치와 그곳에서 보낸 시간을 기억한다. 흙담 안쪽 어디에 화단이 있었는지, 우물과 땅에 묻은 장독은 어디에 있었는지, 집 뒤와 뒷간 옆, 담 밖에는 어떤 나무가 자랐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사진을 바라보면 눈 덮인 겨울 풍경 위로 다른 계절이 겹쳐진다. 흑백에 가까운 집과 담에 꽃과 잎의 색이 돌아오고, 한여름의 차가운 우물물과 겨울 동치미의 맛까지 함께 떠오른다. 사진 한 장은 그렇게 내가 태어나 성장한 집과 그곳에서 보낸 시간을 되짚어가는 기억의 지도가 된다.


14. 타샤의 정원과 나의 작은 화단

타샤의 정원과 내 어린 시절의 화단은 규모도, 만들어진 조건도 달랐다. 그 차이를 알고 나니 두 공간을 같은 것으로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졌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식물을 가까이에 심고, 그것이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기를 기다리는 기쁨은 서로 닮아 있었다.

『타샤의 정원』이 내게 건네준 것은 타샤의 전원생활을 그대로 따라 살고 싶다는 환상이 아니었다. 이 책은 오래전에 사라진 옛집과 흙담 밑의 작은 화단, 그리고 그곳에서 보낸 계절을 다시 불러내 주었다.

그 시절의 생활은 힘들었고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다. 가난 그 자체가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형편 속에서도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찾아 옮겨 심고 작은 기쁨을 만들었던 시간은 지금도 아련하게 남아 있다. 가난했지만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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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8-13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오래전에 읽은 기억이 납니다.그나저나 정원이 3천평이라니 한국인은 꿈도 꿔보지 못할 스케일이네요.

대장정 2026-08-13 10:17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어마어마한 스케일입니다.
 

정원 가꾸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이다
- 조지 버나드 쇼

타샤 튜더 홈페이지
https://tashatudorandfamily.com/

출생 1915년 8월 28일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턴
사망 2008년 6월 18일 (향년 92세), 미국 버몬트 말보로
국적 미국
데부 1938년 《Pumpkin Moo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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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8-12 08:19   좋아요 1 | URL
사실 많은 도시인들이 정원을 가꾸며 사는 전원생활을 꿈꾸는데 실제 정원을 가꾸는 것은 매우 빡세게 힘들어서 열의 이홉은 굳 포기한다고 하더군요.

대장정 2026-08-12 19:12   좋아요 0 | URL
아 네 그렇죠, 저도 시골출신이라 잘압니다. 이분이 가꿨던 정원이 30만평이라나요 😢
 
유럽 도시 기행 3 -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뽀르투 편 유럽 도시 기행 3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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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3』

1. 개요
• 도서명 : 유럽 도시 기행 3
• 부제 :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포르투 편
• 저자 : 유시민
• 저자소개 : 1959년 경북 경주 출생.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마인츠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음. 제16·17대 국회의원과 제44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으며, 이후 정치 활동을 접고 작가와 방송인으로 활동해 왔음
• 출판사 : 생각의길
• 출판년도 : 2026년 7월 9일
• 작품 성격 :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포르투 네 도시를 직접 여행하며 이베리아반도의 역사와 문화, 제국의 흥망, 해양 진출과 근현대사의 흐름을 함께 읽어 내는 인문기행서

2. 책의 기본 내용
• 공간적 범위 :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포르투갈의 리스본과 포르투를 중심으로 전개됨

• 전개의 방식 : 도시의 거리와 광장, 궁전과 성당, 미술관과 항구를 따라 걸으며 그 공간에 축적된 역사와 문화, 정치와 예술의 흔적을 함께 풀어냄

• 마드리드 : 스페인 통일과 왕조의 역사, 프라도 미술관을 비롯한 예술과 문화, 스페인 내전과 민주화 과정을 함께 살피며 현대 스페인의 형성과정을 설명함

• 바르셀로나 : 가우디의 건축과 카탈루냐 문화, 지역 정체성과 독립 문제, 지중해 무역도시로 성장한 역사를 함께 다룸

• 리스본 : 포르투갈의 해양 진출과 바스쿠 다 가마를 비롯한 항해의 역사, 해양제국의 성장과 변화를 도시 공간과 연결하여 설명함

• 포르투 : 두루강과 포트와인, 포르투갈 상업도시의 성장, 대서양 교역과 시민문화의 형성을 함께 살핌

• 핵심 흐름 : 이베리아반도의 네 도시를 통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어떻게 통합되고 바다로 진출했으며, 그 과정에서 세계사와 연결되고 이후 변화해 왔는지를 도시의 역사와 공간을 따라 살펴봄

3. 책의 특징
• 이베리아반도 중심의 시선 : 서유럽의 대표 국가들을 반복해서 다루기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집중하여 이베리아반도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보여줌

• 레콩키스타와 국가 형성 :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왕국들이 오랫동안 공존하고 충돌했던 역사를 통해 오늘날 스페인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봄

• 해양 진출과 세계사의 변화 :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바다를 통해 세계 각지로 진출하면서 유럽과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가 본격적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도시의 역사와 함께 바라봄

• 역사와 예술의 결합 : 프라도 미술관과 가우디 건축, 리스본과 포르투의 도시경관 등 예술과 건축을 역사적 배경과 함께 풀어냄

• 도시와 인간의 이야기 : 왕과 정치가, 항해자와 예술가뿐 아니라 그 도시를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함께 살피며 도시의 성격을 입체적으로 보여줌

• 기행과 인문해설의 결합 : 여행 동선을 따라가면서도 관광정보보다 역사와 문화, 정치와 인간에 대한 해석에 더 큰 비중을 둠

• 주유형·부유형 : 기행문(紀行文)을 주유형(主類型)으로 하고 여행기(旅行記)를 부유형(副類型)으로 볼 수 있음. 도시의 역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 해설한다는 점에서는 답사기의 성격도 일부 함께 지님

4. 읽어볼 만한 이유
• 이베리아반도의 역사 이해 :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고 세계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음

• 레콩키스타의 두 얼굴 : 기독교 왕국의 영토 확대와 국가 형성이라는 측면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약화된 알안달루스의 다문화적 환경과 종교적·지적 다양성까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음

• 도시와 역사의 연결 : 거리와 광장, 성당과 미술관, 항구를 통해 역사를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실제 공간 속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바라보게 함

• 저자 특유의 해설 : 역사적 사실을 어렵지 않게 풀어내면서도 정치와 인간, 사회와 문화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함께 따라가게 함

• 여행 전후 모두 유익 :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배경지식이 되고, 다녀온 사람에게는 여행의 기억을 역사와 연결해 다시 정리하게 해 주는 책임

5. 종합 평가
• 평가 : 『유럽 도시 기행 3』은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포르투를 통해 이베리아반도의 역사와 문화, 레콩키스타와 해양 진출, 근현대사의 변화를 함께 풀어낸 인문기행서임

• 인상 :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화려한 도시와 예술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레콩키스타와 국가 형성, 해양 진출이라는 굵직한 역사적 흐름을 함께 짚어 이베리아반도를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함

• 판형에 대한 개인적 인상 : 앞선 시리즈와 같은 비교적 작은 판형은 휴대성은 좋지만 사진과 지도, 도시 공간을 넉넉하게 감상하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음. 다만 전자책으로 읽을 경우에는 판형의 제약 없이 내용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

• 한줄 정리 : 마드리드에서 포르투까지 네 도시를 따라 걸으며 이베리아반도의 역사와 문화, 레콩키스타와 해양 진출의 흔적을 함께 읽어 내는 도시 인문기행서임


<유럽 도시 기행 3> 네 도시를 걸으며 이베리아의 시간을 읽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3』은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포르투 네 도시를 직접 걸으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역사와 문화, 예술과 인간의 삶을 함께 읽어 내는 인문기행서이다. 프라도 미술관과 가우디의 건축, 리스본의 항구와 포르투의 두루강을 따라가며 저자는 도시를 하나의 살아 있는 역사책처럼 풀어낸다. 특히 레콩키스타와 스페인의 국가 형성,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해양 진출을 도시의 역사와 연결하며 오늘날 이베리아반도가 만들어진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이베리아반도를 유럽사의 변방이 아니라 세계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든 공간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스페인의 통일과 레콩키스타,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해양 진출, 그리고 그 이후의 변화가 네 도시의 거리와 건축물, 미술관과 항구를 따라 이어진다. 다만 레콩키스타 이후 이베리아반도에서는 무슬림과 유대인이 함께 만들어 온 알안달루스의 다문화적 환경이 크게 약화되었고, 서로 다른 종교와 학문이 교류하며 형성했던 지적 다양성 역시 이전보다 줄어들었다는 점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앞서 정리한 여행기록문의 분류에 따르면 『유럽 도시 기행 3』 역시 기행문을 주유형으로 하고 여행기를 부유형으로 두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이번 3권은 전자책으로 읽고 있다. 1·2권의 종이책은 내용 자체보다 작은 판형이 아쉬워 결국 중고로 처분했는데, 전자책에서는 그런 물리적 제약 없이 내용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편하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리스본과 포르투라는 네 도시를 따라가다 보면 이베리아반도의 화려한 예술과 도시 풍경뿐 아니라, 그 뒤에 놓인 종교와 권력, 국가 형성과 세계 진출의 역사를 함께 바라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유럽 도시 기행 3』은 앞선 두 권의 도시 인문기행 형식을 이어가면서도, 이베리아반도 특유의 역사적 층위를 새롭게 보여주는 책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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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시 기행 3 -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뽀르투 편 유럽 도시 기행 3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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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문] 『유럽 도시 기행 3』 포르투갈편

뽀르투 ― 나라 이름의 뿌리에서 책과 지식, 음식과 여행의 속도까지

11. 나라 이름의 뿌리가 된 아담한 항구도시

리스본을 떠나 뽀르투로 올라왔다. 뽀르투는 도루강 하류의 북쪽 비탈과 언덕에 들어선 도시로, 포르투갈에서 리스본 다음으로 큰 도시라고 하지만 상주인구는 약 25만 명에 불과하다. 주변 도시와 도루강 남쪽의 가이아까지 묶은 광역권이 약 150만 명이라니, 도시 자체는 생각보다 훨씬 아담하다.

그런데 도시의 크기와 달리 이름이 지닌 무게는 상당하다. ‘뽀르투(Porto)’는 항구를 뜻하고, 포르투갈이라는 국호 역시 라틴어 지명 ‘포르투스 칼레(Portus Cale)’에서 유래했다. 말하자면 나라 이름의 뿌리가 된 도시인 셈이다.

여기서 잠깐 엉뚱한 궁금증이 생겼다. 항구라면 적의 침입을 막는 요새나 포대가 따라붙었을 것 같은데, 영어의 fort나 fortress와 혹시 어원이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찾아보니 아니었다. Porto의 뿌리는 라틴어 portus, 즉 ‘항구’이고, fort와 fortress는 ‘강하다’는 뜻의 fortis에서 나왔다. 말의 뿌리는 전혀 달랐지만 내 연상이 완전히 엉뚱했던 것은 아니었다. 역사에서 중요한 항구와 요새는 늘 가까운 사이였고, 뽀르투 역시 도루강 하구를 방어하는 요새를 두고 있었다.

책 한 문장에서 시작한 궁금증이 항구와 요새의 역사까지 데려갔다.

12. 하루면 걸어볼 수 있는 도시,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저자가 제시한 뽀르투 하루 여행코스를 보니 도시의 크기가 더 실감났다. 아침에 시청사를 출발해 서점과 기차역, 성당을 보면서 걸어서 도루강의 히베이라까지 내려간다. 점심을 먹고 유람선을 탄 다음 강 건너 가이아까지 둘러본다. 이틀이 있다면 같은 길을 더 여유 있게 걸으면 된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내 여행 방식과도 잘 맞는다.

리스본에서도 생각했지만 여행에서 부지런함은 많이 보기 위해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여유 있게 보기 위해 시간을 먼저 확보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행지에서 새벽 네 시나 다섯 시에 일어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남들이 나오기 전에 먼저 움직이면 한 곳을 한적하게 찬찬히 볼 수 있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으로 다른 곳도 하나 더 볼 수 있다.

뽀르투처럼 작고 주요 명소가 걸어서 이어지는 도시라면 하루도 꽤 길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13. 리스본의 작가들, 뽀르투의 가헤뜨

리스본에서 사라마구와 페소아를 만났다면 뽀르투에서는 알메이다 가헤뜨를 만난다. 시청사에 그의 흉상이 서 있다.

가헤뜨는 단순한 낭만파 시인이 아니었다. 무신론자임을 숨기지 않았고, 1820년 뽀르투 자유주의 혁명에 참여했으며 혁명이 실패하자 영국과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귀국한 뒤에는 시와 희곡뿐 아니라 민담을 모으고 역사소설을 썼으며 왕립극장 건립에도 관여했다.

리스본 사람들이 사라마구와 페소아를 기억한다면 뽀르투 사람들은 자기 도시에서 태어난 가헤뜨를 기억하고 있었다.

리스본과 뽀르투는 서로 다른 작가를 내세우고 있었지만 자기 도시의 작가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방식은 닮아 있었다.

사라마구 기념관에서 보았던 특별한 전집과 페소아가 도시 곳곳에 남아 있던 풍경이 여기서 다시 이어졌다.

14. 렐루서점과 룰루레몬, 그리고 책에 대한 뜻밖의 논쟁

가헤뜨의 흉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 유명한 렐루서점(Livraria Lello)이 있다.

그런데 나는 ‘렐루’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엉뚱하게도 룰루레몬이 떠올랐다.

책으로 가득한 백 년 넘은 서점을 보면서 운동복 브랜드부터 생각했으니 나도 참 별수 없다. 물론 둘 사이에는 아무 관계도 없다. 그래도 렐루, 룰루레몬. 한번 연결되고 나니 머릿속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웃음은 웃음이고, 저자는 렐루서점에 대해서는 꽤 냉정하다. 『해리 포터』의 마법학교 구상에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퍼진 뒤 관광객이 몰려 이제는 책방이라기보다 관광명소가 되었고, 긴 줄을 서서 들어갈 필요까지는 없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나도 이해한다. 여행에서 어디를 볼 것인지는 각자의 취향이고,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줄을 서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야기가 갑자기 다른 데로 간다. 저자는 책은 더 이상 지성의 상징이 아니며 숭배할 대상도 아니고, 인터넷, 검색엔진, 인공지능 시대에 종이책은 전성기가 지난 전통 미디어라고 말한다.

평생 책을 써서 세상과 관계를 맺어왔고 지금도 책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니 뜻밖이다. 냉정한 자기평가라기보다 자기부정에 가깝게 느껴졌다. 자기가 평생 몸담아온 책이라는 매체의 의미를 스스로 너무 쉽게 깎아내리는 것 아닌가 싶었다.

더구나 책을 왜 종이책으로만 보아야 하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전자책도 책이고, 그 안에 담긴 지식과 사상은 종이냐 화면이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생각했다. 그 소설에서 책은 단순한 종이뭉치가 아니다. 수도원의 미궁 같은 장서관에 지식이 모여 있고, 누가 어떤 책을 읽을 수 있는지를 통제하는 것이 곧 권력이다. 책은 지식의 저장소이면서 지식과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권위를 좋아하거나 신봉한다는 뜻은 아니다. 책이 지식과 권위의 상징이었다는 사실과 그 권위를 숭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으로 지식을 얻는 통로가 다양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유명 서점에 긴 줄을 설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에서 책이 더 이상 지성의 상징이 아니라는 이야기로 발전하는지 잘 모르겠다.

15. 상벤투역, 벽에 펼쳐놓은 포르투갈 역사책

상벤투역의 대합실은 수많은 아줄레주(Azulejo)로 포르투갈의 역사를 펼쳐놓은 공간이다.

아줄레주는 여러 장의 타일을 이어 역사, 종교, 생활풍경 등을 그림처럼 표현한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장식예술이다. 상벤투역에는 포르투갈 건국과 관련된 발데베즈 전투, 주앙 1세 부부의 뽀르투 입성, 엔히끄 왕자의 세우타 정복 같은 장면들이 벽에 이어진다.

기차역 대합실이면서 거대한 역사책인 셈이다.

이런 곳이라면 나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할 것 같다. 기차를 타러 들어갔다가 벽에 그려진 전투와 역사인물 하나하나 들여다보느라 자칫 기차를 놓칠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유럽을 여행하면서 이곳만큼 한국인을 많이 본 적이 없었다며 뽀르투가 한국 젊은이들에게 ‘힙한 여행지’가 된 것 같다고 했다. 한국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이야기는 의외였지만, 상벤투역 사진을 보면 왜 사람들이 이곳에서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는지는 알 것 같다.

16.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는 공감하지만

뽀르투 국립미술관에서 저자는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떠올린다. 마드리드의 유명 미술관에서 거장의 대작을 보는 것만 의미 있는 일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지방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것도 충분히 아름다운 경험이라는 것이다.

“중심과 변방이 저마다 아름다울 수 있다.”

이 말에는 공감한다.

이름난 거장의 작품만이 예술이고 대도시의 유명 미술관만 좋은 미술관일 수는 없다. 작은 도시의 작은 미술관에서 처음 만난 작품이 더 깊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앞으로의 여행에서도 나는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행지에 가면 역사유적과 자연경관을 먼저 찾는다. 시간은 한정돼 있고 보고 싶은 것은 많다. 작은 미술관의 가치를 몰라서가 아니라 내 여행에서 무엇을 먼저 볼 것인가의 문제다.

저자는 여행에서 통념보다 자신의 마음을 따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나도 내 마음을 따르겠다.

17. 아랍 홀에서 다시 만난 이슬람 건축의 아름다움

뽀르투의 ‘아랍 홀’ 사진은 보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이슬람 건축을 떠올리게 했다.

이스파한과 사마르칸트, 그리고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이다.

단단한 원목을 정교하게 맞춘 바닥, 아랍문자를 이용한 벽장식, 기하학적 문양, 스테인드글라스, 금빛으로 가득한 천장과 기둥. 서로 다른 지역과 시대의 건축인데도 기하학과 반복문양, 문자와 색채를 이용해 공간 전체를 장식하는 방식에는 통하는 것이 있다.

나는 이런 이슬람 건축을 좋아한다.

구조물을 만들고 장식을 덧붙인다는 느낌보다 공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무늬와 빛으로 만들어버리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알함브라 궁전을 ‘이겨 먹으려고’ 만든 것 아닌가 싶다고 했는데, 사진을 보니 왜 그런 표현을 했는지 알 만했다.

18. 정어리보다 김치찌개가 좋다

저자는 뽀르투에 와서도 음식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히베이라 광장에는 정어리 굽는 냄새가 가득했고, 자신은 등 푸른 생선의 비린내와 맛을 좋아해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나는 정반대다.

비린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뽀르투까지 갔다고 해서 굳이 정어리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여기서 저자와 나의 여행음식 철학을 한 번 맞붙여보면 이렇다.

“멀리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가치가 있다.” — 유시민군

“그 맛있는 걸 찾는 게 문제랑께. 잘못 걸리믄 한입 먹고 쓰레기통 가는 겨.” — 나

우리 유시민군은 좋은 데서만 먹는가 보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10여 년 전 밴쿠버에서는 아내가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 찾아간 치폴레에서 음식을 받아 한입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보낸 적이 있다. 내 여행 역사에서 손꼽히는 최악의 음식이었다.

그런데 같은 캐나다의 밴프에서는 정반대였다. 별다른 검색없이 들어간 메이플리프라는 식당에서 스테이크와 랍스터를 먹었는데 한 끼에 15만 원쯤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워매, 이건 그냥 살살 녹는겨.”

맛은 훌륭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중국여행에서는 음식 때문에 더 고생한다. 아내는 거의 먹지 못할 때도 있어서 김과 고추장을 챙겨간다. 그래도 밥이 있으니 그것으로 한 끼를 넘길 수 있다. 일본 음식은 대체로 입맛에 잘 맞는다. 역시 문제는 가격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중저가 음식은 입맛에 잘 맞지 않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돈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내게 음식은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일 수는 있어도 여행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아니다.

나는 토종 시골 촌놈이다. 정어리구이보다 김치찌개가 좋다.

19. 벨 에포크, 유럽인들에게는 얼마나 그리운 시대일까

저자는 ‘벨 에포크’가 끝난 뒤 유럽이 정치, 경제, 군사적 주도권을 미국에 넘겨주었으며, 다시는 되찾지 못했다고 썼다. 벨 에포크는 끝난 전성기에 대한 유럽인의 그리움을 자극하는 말이라고 한다.

읽으면서 속으로 한마디 했다.

써글넘들, 얼마나 그리울까나.

유럽에게는 과학, 경제, 도시문화와 예술이 번성했던 ‘아름다운 시대’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번영 뒤에서 식민지배와 수탈을 겪었던 사람들에게까지 아름다운 시대였던 것은 아니다.

역사를 길게 놓고 보면 세계의 중심이 언제나 한곳에 머물렀던 것도 아니다.

중국과 인도 문명이 번성하던 시대가 있었고, 이슬람 세계가 학문과 상업의 중심이었던 시대가 있었으며, 근대 이후에는 유럽이 세계를 지배했다. 20세기에는 주도권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넘어갔다. 앞으로 한국, 일본,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가 세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적어도 한 문명이 영원히 패권을 독점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역사가 보여준다.

패권은 돌고 돈다. 유럽의 벨 에포크도 긴 문명사의 한때였을 뿐이다. 다시 유럽 차례가 오려면 한 2천 년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20. 하이고, 유시민군. 너무 낭만적인 것 아닌가

히베이라에 도착한 저자는 뽀르투에 완전히 빠져버린다.

군밤 굽는 연기, 음식 냄새, 호객 소리, 연인과 아이들, 서로 어깨를 기댄 오래된 집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하는 서울과 달리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도시라 한국의 젊은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이해한다.

그런데 다음 이야기는 너무 멀리 간 것 같다.

포르투갈이 정복전쟁과 대항해시대의 영광, 제국의 몰락과 살라자르 독재를 겪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이제는 ‘이기기보다 오래 지속되는 삶, 이웃을 적보다 친구로 만드는 삶, 속도보다 방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하이고, 유시민군. 저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까지 생각할까.

한 나라가 제국의 흥망과 독재를 경험했다고 해서 국민 모두가 같은 역사적 교훈을 얻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는 과거의 잘못을 잊고 비슷한 일을 반복한 경우도 수도 없이 많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저자가 리스본과 뽀르투에서 느낀 친절과 여유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여행하면서 실제로 받은 인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서 만난 사람들의 친절한 모습을 포르투갈의 제국 흥망사와 연결해 국민 전체의 삶의 태도로 설명하는 것은 너무 낭만적인 해석으로 보인다.

21. 우리 유시민군, 드디어 빠이빠이 한다

뽀르투를 떠나면서 저자는 비행기 안에서 도시를 향해 약속한다.

“잘 있어. 또 올게!”

리스본에서도 오래 살아보고 싶다고 했으니 이번 포르투갈 여행에서 두 도시에 단단히 빠져버린 모양이다.

우리 유시민군, 드디어 빠이빠이 한다.

저자는 리스본과 뽀르투에서 한국에서는 가질 수 없는 것을 얻었다고 했다. 무엇이든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성공적으로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잠시 벗어나 현재 머물고 있는 공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마음에는 공감한다.

다만 나의 여행 방식은 조금 다르다.

나는 여행지에서도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하지만 빨리빨리 보기 위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남들보다 일찍 움직이면 사람이 붐비기 전에 한 곳을 여유 있게 볼 수 있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으로 다른 곳도 하나 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느리게 움직이는 것만이 여유로운 여행은 아니다.

내게 여행의 여유는 부지런히 움직이면서도 찬찬히 보는 것이다.

리스본에서 전차와 벨렝의 긴 줄을 보며 했던 생각이 뽀르투에서 다시 돌아왔다.

저자의 여행방식을 그대로 따라 할 필요도 없고, 저자가 좋았던 것을 내가 똑같이 좋아할 필요도 없다. 작은 미술관이 좋다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나는 여전히 역사유적과 자연경관을 먼저 찾아갈 것이다. 뽀르투 사람들이 즐기는 정어리보다 김치찌개가 더 좋고, 유명한 렐루서점보다 상벤투역의 역사화 앞에서 더 오래 서 있을지도 모른다.

여행에서는 결국 자신의 마음을 따르면 된다.

그 말만큼은 이번에는 유시민군과 의견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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