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바로크 비로소 쟁취한 평화를 새기다 - P267
네덜란드 곳곳을 수놓는 색색의 튤립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의 유산이다. 그 시절 네덜란드는 오랜 투쟁 끝에 거머쥔 자유와 구슬땀으로 일궈낸 풍요로 활기가 가득했다. 안락하고 편안한 일상의 틈에서 움튼 자본주의 아래 화가들은 각자의 시선을 캔버스에 담았다. 네덜란드 미술은 그렇게 피어났다. ㅡ튤립밭, 네덜란드 - P268
나는 낡은 붓을 들고 홀로 서서. 하나님께 영감을 구하는 단순한 사람일 뿐이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 P270
북유럽 바로크를 이끈루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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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화가 중 바로크 미술처럼 다채롭고 화려한 인생을 살다 간 화가가 있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에너지, 탁월한 그림 솜씨에 사업 수완까지 좋았던 인물이죠. 화가라고 하면 외롭게 살다가 죽고 나서야 유명해지는게 아닌가요? - P271
화가라고 하면 외롭게 살다가 죽고 나서야 유명해지는 게 아닌가요?
이 화가는 그런 삶과 거리가 멀어요. 살아있을 때부터 그림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어서 화가들의 왕‘이었고, 유럽의 여러 왕이 그의 그림을 너무나 갖고 싶어 해서 왕들의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이 화가는 바로 루벤스입니다. 북부 유럽 출신이지만 알프스산맥을 오가며 바로크 미술을 유럽 전체로 확산시킨 주인공입니다. - P271
안트베르펜 대성당에 전시된 십자가를 세움 루벤스가 안트베르펜에 돌아와서 그린 첫 번째 대규모 작품이다. 성 발부르가 성당의 중앙 제대화로 제작되었지만, 나폴레옹 시대에 약탈당했다가 1815년 반환되어지금은 안트베르펜 대성당에 자리한다. - P276
이 그림 이전에는 교훈적인 내용을 크게 그리고 사물은 배경에 소품처럼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전통적 화면 배치를 완전히 뒤집어 교훈이 되는 이야기를 배경에 넣고 사물을 앞자리에 내세운 겁니다. - P287
맞습니다. 안트베르펜을 비롯하여 플랑드르의 도시들은 루터파보다 강경한 칼뱅파 교리를 따르며 종교미술을 비판합니다. 급기야 플랑드르에있는 성당 곳곳에서 성상 조각이나 종교화가 제거되거나 폐기되는 일이벌어지죠. 그중 가장 대규모 성상 파괴 운동이 1566년 8월 안트베르펜에서 일어납니다. 아래 삽화에는 신교도들이 안트베르펜 대성당에 들어가밧줄로 성상을 끌어내리고 사다리로 부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16세기안트베르펜은 경제적으로는 부유했지만 정치·종교적으로는 아주 혼란스러웠습니다. - P295
프란스 호헨베르흐, 칼뱅주의자의 성상 파괴, 1566년
1566년 8월 안트베르펜 대성당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곳곳에서 칼뱅파 신도들이 교회의 성상을 파괴했다. - P295
80년 전쟁 또는 네덜란드 독립전쟁이라고도 합니다. 기나긴 전쟁을 통해 네덜란드를 구성하는 17개 주 중 북쪽의 7개 주가 독립에 성공해 공화국을 세웁니다. 이들은 1581년 독립을 선포하고 계속 저항하다 결국 1648년 최종적으로 독립을 인정받습니다. - P298
나머지 10개 주는 독립하지 못했나요? 플랑드르 남쪽 지역의 10개 주는 계속 스페인의 지배를 받습니다. 안트베르펜은 반란의 중심지였지만, 스페인 군대가 이곳을 잔혹하게 진압해서계속 스페인의 지배를 받습니다. - P298
루벤스의 활동 지역 루벤스는 지겐에서 태어나 쾰른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12세에 안트베르펜으로 돌아간다. 이탈리아 유학 시절 만토바에 살며 로마 등지를 여행하고, 만토바 공작의 명으로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도 일한다. 또한 마리 드 메디시스의 연작을 위해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으며, 스페인과 영국 외교 사절로서 런던과 마드리드를 오간다. - P299
설마 한복을 입은 건가요? 글쎄요, 학계에서는 이 인물의 국적과 관련하여의견이 분분합니다. 중국인으로 보기도 하고, 한국인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복이 중국식도포인지 한복인지 다소 애매하기 때문이죠. 정확히 어느 나라라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저는 한국인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물이 쓴 모자가 우리 전통 모자탕건과 비슷하고, 남자를 그리기 위한 루벤스의 준비 드로잉도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루벤스가 한국의 복식과 외양을 구전으로듣거나 간단한 스케치를 보고 나서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P307
앞쪽 배는 사람들을 질서 있게 구해내지만 바로 오른쪽 뒤의 배는 위태로워 보입니다. 사람을 잘 구하는 앞쪽 배는 개신교를 상징하고, 위태로운뒤의 배는 가톨릭을 상징합니다. - P329
167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동인도회사는 상선 150척, 군함 40척, 직원 5만 명, 군대 1만 명을 보유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 P344
전성기를 누렸던 네덜란드와 영란전쟁의 흔적을 살피려면 암스테르담국립미술관을 찾아야 합니다. 라익스 뮤지엄으로도 불리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네덜란드의 국보급 미술품이 가득합니다. 이중에서도 한 점을뽑아야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렘브란트의 야간순찰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 명화를 한자리에 모은 2층 정중앙에 당당히 자리할 정도로 네덜란드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작품이죠. - P345
그림의 대상이 일상적인 소재에서 점점 사치품으로 바뀝니다. 이처럼 16세기에는 소시민의 소박한 삶을 나타내는 정물화가 대부분이었다면, 17세기에 들어서 정물화는 부유층의 고급스러운 삶을 우아하게 보여줍니다. - P358
그러나 만개한 해바라기 사이로 병들어 시든 꽃이 눈에 띕니다. 삶을 예찬하는 동시에 죽음을 이야기하는 네덜란드 정물화의 전통이반 고흐 같은 19세기 인상주의 화가에게까지 이어진 셈이죠. 반 고흐역시 네덜란드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찍부터 전통적인 네덜란드 정물화의 특성을 알았을 겁니다. - P365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를 세계 최초로 보는 구체적 근거는 무엇인가요?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1602년에 설립되었다고 말씀드렸죠. 동인도회사는 최초로 기업공개를 통해 주식을 발행하여 만든 회사였습니다. 따라서 기업이 발행한 주식 역시 공공장소에서 거래했는데요. 바로 이 목적에 맞게 새롭게 지은 건물이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였습니다. - P377
경제학자들은 이 현상을 튤립 버블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이 희귀한 튤립을 갖기 위해 돈을 있는 대로 끌어다 쓰면서 튤립 가격이 천정부지로솟구칩니다. 가장 귀한 품종이었던 셈퍼르 아우휘스튀스는 구근 하나가격이 20배 가까이 오릅니다. 1633년에 500 길더였던 구근이 불과 4년 만에 1만 길더가 된 거죠. 1636년에 배 한 척이 500 길더였음을 고려하면 엄청난 수치인 셈입니다. - P386
그게 문제였어요. 이런 상황이 사람들의 조바심을 불러일으켰고, 너나 할것 없이 꽃 재배 사업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극에 달한 기현상도 결국 끝을보입니다. 1637년 2월, 오를 대로 오른 튤립 가격이 상승을 멈추거든요. 불과석 달 만에 수요가 급격히 줄고 가격은 순식간에 폭락합니다. 이 여파로파산자가 속출하자 네덜란드 정부까지 개입해서 간신히 위기를 넘깁니다. - P387
당시 유럽 국가 중 사회 전 계층이 미술품을 거래한 곳은 네덜란드뿐입니다. 힌트는 부의 분배에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비교적 부가 고르게 주어진 사회였습니다.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이 투자나 투기를 할 수 있는 잉여 자본을 갖고 있었죠. 일찌감치 거래 문화에 익숙했던 네덜란드 사람들이 미술품을 투자 대상으로 인식한 겁니다. - P392
힌트는 오른쪽 아래 계단에 놓인 칠판에 있습니다. ‘풍요 속 사치를 조심하라‘는 속담이 적혀 있는데요. 그림 속 집주인처럼 눈 감은 채로 손을 놓으면 힘들게 쌓은 재물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경고를 담은 겁니다. 천장에 달린 바구니 속 목발, 지팡이, 회초리는 사치로 재물을 몽땅 잃었을 때얻게 될 질병과 빈곤을 의미합니다. - P401
그림 오른쪽 요리하는 두 하녀 앞에 깨진 달걀 껍데기가 마구 널려 있습니다. 당시 달걀 깨기는 성관계를 암시하는 표현이었습니다. 특히 속이텅 빈 달걀은 아버지로 보이는 인물이 생식 능력이 없음을 뜻하죠. 아니나 다를까 아이를 안은 아버지 뒤에는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고 있는남성이 있습니다. 짓궂은 웃음이 마치 자신이 진짜 아버지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 P403
네덜란드의 김홍도 이렇듯 얀 스테인은 세속적인 블랙 코미디를 즐겨 그렸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림을 더 소개할게요. 다음 페이지에 있는 마을 학교라는 작품입니다. - P403
얀 스테인, 마을 학교, 1670년경,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남자 선생은 술에 취해 있고 여자 선생님만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려고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제각각 소란스러운 모습이다. - P404
당시 네덜란드 교육 체계의 문제점을 풍자한 그림일지도 모릅니다. 동시에 네덜란드에서 초등 교육이 얼마나 활발하게 운영되었는지 엿볼 수 있죠 네덜란드는 시민사회였는데요. 부르주아를 중심으로 노동자와 평민이 이끄는 사회여서 교육의 역할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학교 풍경을 담은 얀스테인은 한국에서 특이한 별명으로 불립니다. 바로네덜란드의 김홍도인데요. 얀 스테인이 그린 또 다른 마을 학교를 보면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 P405
왼쪽 페이지의 그림은 간척 사업 전1300년대 네덜란드 지형입니다. 군데군데비어 있죠? 그러나 15세기에 접어들며 오늘날 국토의 약 20퍼센트에 해당하는 땅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신은 세상을 만들었지만,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들이 만들었다‘라는 유명한 속담이 있을 정도죠. 수 세기에 걸쳐 국토를 직접 일군 노력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 P409
좋은 지적입니다. 이 인물은 언제든지 군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전쟁을 치르며 용병을 동원했지만, 병력의 핵심은 시민군이었습니다. 민병대가 잘 짜여 있어서 생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비상시에는 전쟁터로 나갔죠. 여기서 의기양양한 사냥꾼은느긋하게 사냥길에 나서지만 국가에 위기가 닥치면 언제든지 조국을 위해 싸우는 군인이 되었을 겁니다. - P418
이번에도 단순히 아름다운 경치만 담은 게 아니네요. 국토에 대한 인식을 치밀하면서도 친절하게 그림으로 표현한 장르가 풍경화였던 거죠. 평범해 보이는 자연과 생활의 터전이 네덜란드인들에겐정성껏 일군 세계였습니다. 풍경을 화폭에 담는 과정은 그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었을 거예요. - P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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