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꼿꼿하며 간쟁을 서슴지 않았다. 올곧은 간쟁으로야 어찌 태부 신석정이나 혜민시 대령 난곡을 당할까마는, 신석정이나난곡은 황제를 독대하여 간쟁하지만 주공신은 편전에서 대놓고 하기 일쑤였다. 그는황제의 처족이나 척신들을 물리치는 일에누구보다 앞장섰으며, 관제를 대폭 개편해폐습을 개혁하고 유신을 단행해야 한다고주장했다. 그리고 그것이 관철될 때까지 끊임없이 상소했다.

마지막 상소문에서도 주공신의 서슬은한 치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선조들이 다스리던 땅은 송곳을 꽂을 만한 작은 땅이라도되찾아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황제의 도리라고 했다.

"비록 짐이 아끼는 독수리를 죽인 놈이지만, 늠름한 기세를 멸할 수 없도다. 가져가 딸에게 주어라. 또한 딸의 용기가 가상하여 금잔과 옥환을 하사하노라."
뜻밖에도 금잔과 옥가락지까지 받은 주공신은 머리를 조아렸다.

"독수리가 어느 정도 살면 묵은 털로 나래가 무거워지고 발톱의 날카로움도 무뎌지며, 부리도 닳아 그대로는 몇 년 더 살 수없게 되옵니다. 이때 살기를 체념한 독수리는 얼마 못 살고 죽지만, 용기 있는 독수리는 깎아지른 벼랑에 둥지를 틀고, 아무것도먹지 않고 부리를 절벽에 부딪쳐 깨뜨리옵니다. 그렇게 계속 깨뜨리면 닳아빠진 부리가 빠지고 새 부리가 나옵니다."

"발톱도 절벽에 갈고 또 갈면 묵은 발톱이 빠지고 예리한 새 발톱이 나오는데, 이때쯤이면 독수리가 벼랑을 벗어나 창공을줄곧 날면서 묵은 털을 빼버리옵니다. 독수리는 털이 빠진 채 바싹 말라 벌거숭이가되지만 다시 새 털이 나게 되옵니다. 털은윤이 흐르고 부드러우며 가벼워서 창공을맘껏 날아다닐 수 있사옵니다. 이렇게 처절히 고행을 한 독수리는 40년을 더 산다 하옵니다."

주공신의 얘기를 들으면서 대흠무는 독수리의 고행과 웅지가 고구려가 멸망한 지30년 만에 일어선 발해의 기상과 닮았다고생각했다.

그날 밤 국구 고원이 은밀히 대흠무를찾아왔다.
"폐하, 신이 감히 아뢰옵니다. 충신을 얻기 위해서는 주공신의 딸을 후궁으로 맞아들이시옵소서."
사사로이는 장인이 아니던가. 대흠무는젊고 고혹스런 후궁을 두라는 국구의 말을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천하를 다스리려면 물과 같아야 하옵니다. 물은 만물에게 두루 베풀지만 다투는일이 없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위치하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연한 물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쇠와 돌을 다루고, 스스로모양을 갖지 않아 작은 틈새까지 자유자재로 스며드옵니다. 앞으로 주공신은 간쟁을서슴지 않을 것이니, 그의 간쟁을 받아들이시면 반드시 성덕이 사해를 비출 것이옵니다.

"폐하, 새가 죽을 때는 울음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말이 옳다고 했사옵니다. 누구든 죽기를 각오하고 간하거든,옳은 말이라 여기시옵소서."
결국 밤 이슥토록 고원과 마주앉아 청담을 나눈 대흠무는 고원의 청을 듣기로 마음을 굳혔다.
 
병신(756)년 화창한 봄날, 발해 황제 대흠무는 강역의 중심인 상경으로 천도하고선조에게 제를 올렸다. 천지신명께도 도성의 무궁함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 후 대사면을 단행했다. 죄의 대소를 논하지 않고 뇌옥을 열게 했으며, 유배 갔던 자들도 모두방면했다.

신석정은 대흠무가, 위기에 처한 당나라를 급습하거나 내홍에 싸인 당나라가 경황이 없을 때 신라를 공략하여 남방을 평정하거나, 국기를 바로잡아 대국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쇄신을 단행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신석정은 그런 기운을 곳곳에서 감지하면서도 부러 내색하지 않았다. 대흠무는누가 간언하지 않아도 천하의 흐름을 읽고민심을 세세히 파악했다.

"높은 산을 오르면 눈보라와 강풍과 세찬 빗방울이 그치지 않듯 인간사도 그러하옵니다."

그 무렵 당제 이융기는 재상 양국충의간언을 받아들여 장안의 서남방에 있는 파촉으로 몽진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극비리에 용무장군 진현례에게 2천 명의 호위 군사와 말 9백여 필을 대기시켰다. 때는 병신(756)년 6월 13일이었다.
부슬비가 내리고 안개 자욱한 새벽에 몰래 황궁을 빠져나가는 도피 일행은 3천여명이었다. 태자와 공주 등 황손들과 양국충, 위견소, 고력사가 황제를 따랐다. 양귀비를 비롯한 양씨 일족과 환관, 비빈들이 뒤따르고 있었지만 도망자의 처량한 행렬이었다.

도주 이틀째 되는 6월 14일, 마외역에 도착했지만, 현령은 도망쳤고 배곯은 군사들은 금세라도 폭동을 일으킬 것 같았다. 눈치 빠른 호위 대장 진현례는 목청을 세워군사들의 원성을 엉뚱한 데로 모았다.
"지금 천하가 무너져 백성들이 떠돌아다니고 만승천자께서도 모든 것을 잃으셨다.양국충 같은 간신이 백성들을 벗겨 먹지 않았다면, 조야가 어찌 오늘의 처지에 이르렀겠느냐? 양국충을 죽여 만백성들의 원망과분노를 막아야 한다."

호위 대장의 선동으로 호위 군사들 손에양국충의 목이 달아났다. 그의 아들 호부시랑 양훤도 아비와 같은 신세가 되었고, 양귀비의 언니 한국부인과 진국부인도 칼날아래 이슬이 되었다.

"폐하, 소첩은 폐하의 은의에 어긋나는몸이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한시 바삐 부처님을 뵙게 해주옵소서."
눈물범벅이 된 양귀비의 목을 고력사가 비단수건으로 졸랐다.
"귀비, 극락왕생하여라."
이융기는 끓어오르는 통한을 삼켰다. 서른여덟의 천하절색 양귀비는 경국지색이라는 이름과 함께 사라졌다.

대흠무는 당나라 사신이 돌아간 후 신석정과 대신들에게 안녹산 군사와 함께 당나라 깊숙이 진격한 발해 군사 5천 명을 회군시킬 방책을 마련하라고 했다.
 
한편, 대굉임 일행이 발해 강역을 순람하여 북방의 흑수 지경에 다다랐을 때는 추위가 극심한 한겨울이었다. 그들은 덫으로 작은 짐승을 잡고 창애로 꿩을 잡아 허기를때우며 순례를 계속했다.

그러나 어느 틈에 설개의 졸개가 대굉임을 향해 장도를 내리쳤다. 난청이 칼날을다급히 막다가 왼쪽 목을 찔려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삽시에 덜미에서 붉은 피가솟구쳤다. 어수선한 틈에 설개가 말을 타고도망치기 시작했다

난청이 무겁게 눈을 한 번 떴지만 이내눈꺼풀이 내려앉았다. 회자정리라지만, 인생의 무상함이 대굉임의 가슴을 메웠다. 어찌 그리 갈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의 목숨이이리 가볍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대굉임은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 채하늘을 보았다.

난청의 아버지 난삼은 열아홉 젊은 나이에 태자비 강사임을 위해 험준한 태백산에홀로 올라 자인삼을 캐어 바쳤다. 소꿉동무강사임이 회임하자 태자비의 순산을 위해초하루와 보름마다 몸을 깨끗이 하고 천신에게 빌었다. 그의 아들 난청도 황자를 지키려다가 기꺼이 목숨을 바쳤으니 어찌 대굉임의 가슴이 미어지지 않겠는가. 난청은그렇게 허망하게 저승길로 떠났다.

"그 산이 얼마나 아름답고 수려하면, 이름도 서릿발같이 하얗다 하여 상악이라 부르겠습니까. 또한 가을 단풍이 기가 막히다하여 풍악, 겨울 되어 나뭇잎이 다 떨어지면 신기한 바위가 드러난다 하여 개골, 동해 바다 가운데에 있어서 신선이 살고 불로초와 불사약이 있는 영산이라 하여 봉래라고 합니다. 또 부처님께서 살고 있는 동해한가운데의 아름다운 산이 금강산인데, 그산처럼 아름답고 신비하다 하여 금강산이라고 부릅니다. 대방광불화엄경이라는 경전에 나오는 산 이름이 바로 금강산입니다."

대흠무는 사위 양태사에게 대임을 맡기기로 했다.
"일본 가는 뱃길이 멀고 험해서 아까운인재들이 주검 되어 깊은 바다에 수장되니짐의 마음이 심히 아프도다. 부마는 오늘부터 해로를 익히고 교역을 배워 짐을 보필하고 나라의 동량이 되어라."

해가 바뀌어 정유(757)년 정월 보름 무렵, 경천동지할 소식이 장안에서 날아들었다.천하를 뒤흔들던 연나라 황제 안녹산이 급사하고 둘째아들 안경서가 계위했다고했다. 뜻밖의 보고를 받은 대신 고원은 급히 황제를 알현했다. 대흠무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안녹산에게 은밀히 빌려준 발해 군사 5천 명을 안전하게 회군하는 일이 화급했다.또 안녹산을 거병케 하는 데 사력을 다했던이합비의 안전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후 이합비가 참살당했다는 소식이전해졌다. 이합비를 끝까지 수발했던 해시례가 천신만고 끝에 장안을 탈출하여 상경까지 도망쳐 올 수 있었던 덕에 안녹산이급사한 내막과 이합비의 죽음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신석정의 머리는 오직 이합비의 시신을찾을 생각 뿐이었다.
병신년 정월 초하루에 낙양에서 황위에올랐으니, 안녹산은 꼭 1년 만에 아들과 심복의 손에 암살당했다. 이와 함께 안녹산의마음을 흔들어 중원을 어지럽힌 이합비는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안경서는 황위에 오래 있지 못할 것이오. 하북의 맹주가 된 사사명에게는 10만 대군이 있소이다. 안경서가 사사명을 위천왕으로 봉했지만, 사사명이 심복 장수 채희덕에게 태원성을 맡기고 범양으로 급히돌아간 건 딴 생각이 있기 때문이오. 안녹산이 낙양과 장안을 함락하고 막대한 금은재화를 범양에 옮긴 걸 사사명이 왜 모르겠소."

혜민시에서 혜민부로승격하면 그 수장은 중신반열에 오르고, 황제를 수시로 독대할 수 있으니 벼슬만 중신이지 권신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대흠무는 대신들의 주청을 받아 혜민부경에 난곡을 임명하였다. 의술에 능하고 시문에 밝으며 황제의 심경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사명은 오승은을 참살하고 무술(758)년 6월, 13만 대군을 일으켰다. 그는 당군에 대패하고 도망 다니는 안경서의 구원 요청을 핑계로 단숨에 위주를 점령하는 위용을 보였다. 이에 안경서는 목숨을 부지하기위해 사사명에게 전위하겠다고 말했다.
기해(759)년 정월 초하루, 사사명은 위주에서 연나라 황제를 칭하고 즉위했다. 그러나 두어 달이 지난 어느 봄날 느닷없이 안경서를 형장에 세우고 참수했다. 안경서의죄목은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아버지를 죽이고 황위에 올랐으니 천륜을 어긴 대역죄를 지었다는 것이었다. 안경서 뿐만 아니라 동생 4명과 그의 심복들도 목 졸라 죽이는 교형에 처했다.

그러나 대흠무는 일거에 거절했다. 당나라에서도 수차 간곡히 원병을 청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어느 편도 거들지 않는 것이유익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흠무의 계략이었다. 겉으로는두 나라의 전쟁이지만 실제로는 내란이었다. 중원의 내란이 길어질수록 발해는 오히려 부강해질 것이다. 내란이 끝나면 강역이 폐허가 되고 국고가 비어서 군심과 민심을 다독거리는 일만도 힘겨울 것이다.
발해는 그 틈에 군사를 기르고, 농경과물산을 장려하고, 교역을 넓혀 나라를 부국강병하게 하려 했다. 그러나 강직한 신하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 중 당나라 유학파들은 황제 대흠무가 유약하다고 생각했다. 위기에 처한 당나라를 도와주고 중원이 평정된 뒤 약조대로 요서 땅을 차지하면, 그것이 바로 부국강병이라고 생각했다.

"춘추필법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었도다. 첫째 존화양이라 하여 중화를 높이며 다른 나라는 깎아내리고, 둘째는 상내약외라하여 중화의 역사는 상세히 기술하되 다른나라 역사는 간단히 쓰며, 셋째 위국휘치라하여 중화를 위해 수치스러운 것은 모두 숨긴다는 것이다. 공자가 춘추를 쓰면서 왕이나 천자의 잘못을 대놓고 쓰지 못해 이리저리 에둘러 기술한 것이 바로 춘추필법임을경들은 아는고?"

"그러함에도 우리의 사가와 선비들이 춘추필법의 장단에 춤을 추며 중화의 사서를베끼고 있지 않는가. 간쟁을 하려거든 그런어리석고 옹졸한 선비들처럼 정세를 다루고 있지나 않는지 살펴보라. 당나라는 내란이 평정되면 분명 오랑캐들이 스스로 군사를 일으켜 황은에 보답했다고 기록하리라.섣불리 우리가 기병하지 않는 까닭이 거기에 있음을 경들은 숙고하라."

"성무고황제께서는 유언으로 신라를 치지 말라 이르셨노라. 나당 연합으로 백제와고구려를 멸망케 했더라도 다 같은 단군자손이니 형제로 대하라 하셨도다. 신라를 치는 것은 바로 형제를 죽이는 것과 같도다.현명한 신하는 먼저 백성의 어려움을 보고,간교한 신하는 먼저 군주의 얼굴빛을 살핀다고 했도다. 경들은 늘 바른말로 간하니충신이 분명하도다. 언제고 짐의 부덕을 간쟁하는 데 충절을 아끼지 말라."

사사명도 안녹산처럼 자식 복이 없었는지 장남 사조의 대신 첩의 자식이자 막내인사조청을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었다. 사조의는 아버지가 동생 사조청을 부원수로 삼고 자신을 제거하려 하자, 신축(761)년 3월심복 장수 낙열, 허계상과 모의하여 아버지사사명을 죽이는 패륜을 저질렀다.

더구나 당나라와 신라, 일본까지 교역하여재산을 불린 것을 푼푼하게 나누어주었기때문에 대소신료들로부터도 신망을 크게얻었다. 그러나 강직한 신하들은 대견강의득세를 걱정하여 대술묘를 후궁으로 앉히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
특히 양소화는 대술묘의 입궁뿐 아니라대견강과 대원의가 근신이 되는 걸 한사코반대했다. 그들이 돈벌이라면 해적질까지서슴지 않았으며, 백성들의 고혈을 짜 큰재물을 모은 죄상을 낱낱 적어 상소했다.그러나 대흠무는 주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구려 후손들 중 왕모중과 고선지 이후에 후희일과 이회옥이 두각을 나타내며 주목받고 있는 걸 대흠무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지략과 용맹이 두드러진 탓도 있지만,그들 휘하에 있는 군사들은 고구려 후손들이 주축을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태부는 오직 충성으로만 폐하를 섬기며나라의 부국강병에만 혼신을 바치옵니다.그러나 국구는 고구려 왕손의 피를 숨기지못하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사옵니다. 폐하께서 보위에 오른 지 스물다섯 해가 되었사옵니다. 태자를 봉하시면 그들이 태자에게 모여드는 게 보일 것이옵니다. 그러면충신과 간신도 보이게 되옵니다."
대흠무는 당당한 체구의 대원의를 내려다보며 지략과 기개가 담대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한 말이 다시는 입 밖에서 공론이되지 않게 하라. 너의 충절은 잊지 않겠도다."

"폐하, 사람이 모여드는 이유는 이득이나 덕이 있기 때문이옵니다. 국구 고원은덕이 있어 사람이 모여들고, 대견강은 이득이 있어 사람이 모여드는 것이옵니다. 덕을좇는 자들은 도리를 지키지만, 이익을 좇는자들은 사욕을 위해 음모와 흑심을 품게 마련이옵니다."
대흠무의 얘기를 다 듣고 난 신석정은 오히려 대원의의 부친인 대견강을 비판하고 나섰다.

"폐하, 재물은 반드시 사람을 떠나지만덕은 후세까지 모여드옵니다. 지략이 지나치면 음계가 되고 음계가 지나치면 반심이되옵니다. 대견강 부자를 경계하옵소서."
신석정이 아니라면 차마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황제가 총애하는 대술묘의 아버지요, 오라버니였다.

대원의의 주장이 마땅히 옳으니 받아주옵소서. 양소화가 비록 여인의 몸이지만 웅지가 장대하니 재상으로 삼아 곁에 두옵소서. 대원의의 현책은 받아주시고 간책은멀리하옵소서."
"폐하, 국구는 고구려 왕손이옵니다. 그에게 충역이 있으면 진작에 작은 징후라도있었을 것이옵니다. 국구는 겉모습과 나이만 변했을 뿐 마음은 한결같사옵니다. 통촉하옵소서."

"짐이 어리석을 때마다 눈이 흐려졌음이니, 눈에 침을 맞아야 한다고 말하시오.또한 남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귀가 어두워졌음이니 귀에 침을 맞으라 하고, 부당한명령을 내리거든 입이 가벼워졌음이니 입에 침을 맞으라 하시오. 하늘을 우러러보지못하면 머리끝에 침을 놓겠다 하고, 덕이모자란 듯하면 가슴에 침을 맞으라 하시오."
"폐하!"
신석정은 몸을 더 조아렸다.
"경은 신하일 뿐 아니라, 짐의 스승이자자손들의 스승이오. 오늘부터 태부는 짐에게 무슨 말을 해도 벌하거나 죄를 물을 수없는 면책권과 불촉권을 주겠소."

"폐하, 대원의의 얼굴은 역상이옵니다.신이 청하건대 그를 멀리하시어 후환을 방비하옵소서."
하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신석정은 단호하게 간했다. 양소화도 누차 대원의를 멀리하라고 상소했다.
"짐에게 맡겨 두시오."
기어이 황제는 태부의 뜻을 자르고 물러가게 했다.

조정에서는 그녀의 공을 높이 받들어 개국공으로 추증했지만, 백관들은 별로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신석정과 무명선사를 비롯한 소수의 권신들만이 그녀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겼다. 그들은 양소화의 급작스런횡사에 의문을 품었지만, 진위를 밝힐 만한단서를 찾지 못했다. 양소화의 죽음에 얽힌풍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10호 연좌제 때문에 그녀를 미워하는 권신들의 암계가 아니면 그녀가 매섭게 비판한 대원의 일가의 응징이란 소문이 나돌았다.
그 즈음 대원의의 사가에는 심복 몇 사람이 무릎 끓은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찌 감쪽같이 주살하지 못하고 풍문이들끓게 했느냐?"
"곧 주서채를 죽여 소문의 진원을 없애겠습니다."

이렇듯 대흠무는 3성 6부 1대 7시 1원 1감 1국의 주요 관작을 모두 정비했다. 그외에도 무관직제 10위를 정해 각 위마다대장군, 장군을 두고 그 밑에 도장과 낭장을 두었다. 별도로 혜민부를 두어 백성을구휼하도록 했고, 문무를 가리지 않고 품계를 1품에서 9품으로 나누어 각각 정과 종으로 구별했다. 그 안에서도 상과 하를 구분하여 벼슬을 세분했다.

대흠무는 도성인 상경용천부를 비롯한 5경과 15부의 도독과 그 관하 62주에는 자사를 모두 정비하여 강역을 장악하는 쇄신을단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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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처럼 누추한 안국사까지 왕림하셨으니 감은부복하나이다."
대흠무 일행은 승려를 따라 절 마당으로들어섰다. 앞뜰에 30척이나 높이 솟은 9층석탑이 있고 그 옆으로는 온통 꽃밭이었다.승려는 탑 앞에 합장하고 낭랑한 목청으로고했다.
"나무 아미타불, 혜명선사시여! 제자 무명은 10년을 기다려서 효감금륜성법 대왕을 모셨나이다. 굽어 살피소서."

별안간 거문고 줄이 툭 끊겼다. 무명은거문고를 내려놓고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귀인이 엿들으면 줄이 끊어진다 했나이다. 엿듣는 귀인은 어디 계시옵니까?"
대흠무는 기척하고 무명 앞으로 나섰다.
"폐하, 어찌하여 홀로 들으셨사옵니까?"
"거문고 소리가 짐의 마음을 헤집으니어찌 잠들 수가 있으리오. 달은 밝고 경치는 수려하니 춤이라도 추고 싶소."

"혜명선사께서 세속에 나와 백성을 구원하고 나라를 강건하게 하셨음을 아시오?"
"스승께서는 혜안이 있으시니 능히 그러셨을 거라 짐작되옵니다."
"혜명선사의 수제자이니 응당 짐을 도와나라와 백성을 구원해야 하오."
무명은 고개를 저었다.

"개국 황제이신 성무고황제께서는 유지를 남겨 부처님 나라 천축에 가서 진신사리를 구해 나라의 안녕을 도모하라 하셨소.만천하를 둘러보아도 멀고 험한 천축까지다녀올 만한 승려는 무명뿐이오. 짐이 안국사까지 달려온 것은 무명에게 대임을 맡기기 위함이오. 이는 또한 혜명선사의 가르침이기도 하오. 혜명선사는 짐이 올 것을 미리 알았듯 무명이 대임을 맡게 될 것도 알았소이다."

황제가 애원하는 것은 정녕 보기 드문광경이었다.
"소승은 어리석어 제 한 몸 추스르지 못하는 승려이옵니다."
대흠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두손을 모으고 무명에게 절을 올렸다. 한 나라의 주인이요, 지엄하기가 하늘과 같다는황제가 승려 앞에 꿇어 엎드렸으니 천하가놀랄 일이었다.

대흠무의 곡진한 간청을 더 물리는 일이불충임을 깨달은 무명은 황제 밑을 파고들듯 땅바닥에 엎드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이 한 목숨을 바쳐 성은에 보답하겠나이다."

"그러하옵니다. 폐하께서 강역을 넓혀사방이 4천 리나 되옵나이다. 중경은 남쪽에 위치하였으나, 상경은 국토의 중심이옵니다. 서로는 요하를 경계로 당나라가 있고, 북으로는 속말수를 경계로 거란이, 흑수를 경계로 흑수가 있으며, 남으로는 패수를경계로 신라가 있나이다. 이렇게 강성해진발해의 도읍지는 홀한수를 끼고 번성해야하옵니다."

배를 버들방천에 매어두고 뭍에 오르자, 호숫가를 따라 버드나무가 울창했다. 그 길을 따라가니 천하를 희롱하는 듯 웅장한 금경(경박)폭포가 나왔다.

거연히 솟은 소나무 밑에 선 황제 일행은 마치 거센 눈발처럼 물보라가 휘날리는폭포를 바라보며 누구라 할 것 없이 감탄했다. 천하 장관이었다. 흡사 하늘에서 수백 마리 백룡이 내리꽂히듯 했고, 용궁에서수많은 은룡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 천년이끼 자란 바위 위에서 홀한해의 맑은 물이쏟아지고 있었다.

높이가 390여 척이요, 너비가 1,300여 척이나 되는 푸른 소에 쿵쿵 떨어지는 폭포의 울부짖음은 산악이 무너지고 하늘이 진동하듯 요란했다. 홀한수(목단강)는 홀한해와 옛 화산의 분화구였던 이 깊고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끝없는 샘물이 시원이 되고 원천이 되어, 수백 리 화산석 벌판을 적시며 유유히 동으로 흘렀다.

이튿날 아침, 황제 일행은 부지런히 지하삼림을 향했다. 지하삼림은 지금으로부터78년 전 대흠무의 증조부이자 고구려 유장인 진국장군 대중상이 고구려 멸망 뒤 패잔병과 저항군을 규합하여 개국의 발판으로삼았던 곳이다.
"정말 감회가 깊도다."

"폐하, 이곳이야말로 꿈에 용이 승천한곳이니, 용천이 틀림없고 황도로 손색이 없사옵니다. 이런 길몽이 어디 있겠사옵니까.사람이 생존하자면 물과 곡식이 있어야 하옵니다. 저 너른 들에 양식이 풍성하고 용천이 있어 세세연년 물 걱정은 아니 해도되니 이런 길지가 어디 있겠사옵니까. 이곳을 상경용천부로 삼고 도읍하소서."

"당나라 장안의 황성 못지않게 축성하되고구려의 혼을 잊어서는 안 되니 옛 평양성을 본뜨게 하라. 10만 호가 살 만큼 성역을넓히고 발해의 장구한 역사가 자리 잡게하라. 결코 서둘러 축조하지 말고 10년 동안 짓되 천년 동안 보전케 하라."

"상경은 개활지여서 상호 왕래가 편한땅이요, 땅이 기름지고 기후도 따뜻하며 홀한수가 있어 농사짓기도 좋고, 마소 기르기도 좋나이다. 백리 석판벌에 홀한수가 흐르고 높은 산들이 병풍인 양 둘러쳐 천년 요새를 이루고 있어 나아가면 진공할 수 있고물러서면 방어할 수 있는 요충지이옵니다.더욱이 북방으로 강역을 넓혀 나가기 위해서는 국토의 가운데에 자리 잡아야 하옵니다."

무명선사가 황명을 받들어 부처님 진신사리를 구하기 위해 상경을 떠난 것은 병술(746)년 5월이었다.
"선사를 사지로 내모는 것 같아 짐의 마음이 편치 못하오. 그러나 이는 발해의 대업이자 숙원임을 잊지 마시오."

초기의 순례자들 가운데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고승은 동진시대의 법현이었다. 뒤를이어 북위 왕조 때 호태후의 명을 받고 불전을 수집하기 위해 송운이 순례를 떠났다.그로부터 한 세기 뒤에는 당나라의 현장법사가 천축국을 다녀왔고, 의정도 뒤따랐다.바람결에 들리는 얘기로는 신라의 승려 혜초가 천축에 다녀와서 지금 장안에 머물고있다고 했다.

천복사에서 금강지 선사는 이미 5년 전에 입적했다는 애석한 소식을 들었다. 금강지의 법통을 이은 승려가 신라에서 건너온 혜초라는걸 알고 그를 만나보기로 했다.
무명은 혜초가 묵는 처소로 찾아갔다. 단아한 표정으로 손을 맞는 혜초는 따스한 웃음이 얼굴에 가득했다.
"소승, 문안 여쭙니다."
혜초가 합장한 채 반가운 낯으로 물었다.
"누추한 곳을 어찌 찾아주시었소?"
"천축을 순례하려 합니다. 금강지 선사께 가르침을 받고 싶어 왔으나, 이미 입적하셨다고 하여 스님을 찾아뵈었나이다."
"천축에 가신다니 큰 뜻을 세우셨습니다."
"스님께서도 천축에 다녀오신 걸로 알고있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로 다녀왔습니다."
"부처님의 자비가 소승을 이곳으로 인도했습니다.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천축으로 향한 것은 소승의 나이 스무살 때였습니다. 스물네 살에 돌아왔으니, 4년 정도 걸린 셈입니다. 자그마치 5만 리길이었으며, 모래폭풍과 모든 것이 다 말라비틀어지는 혹독한 더위, 느닷없이 길을 막는 산적 떼와 가도 가도 알 수 없는 길들…… 세상 모든 것이 순례의 길을 막는 악귀같았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로 천축에 당도해 부처님의 자취를 순례할 수 있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혜초는 계해(723)년에 금강지의 권유로광주를 떠나 약 4년 동안 곤륜(동남아시아)과 불서(수마트라), 사자주(스리랑카)와 오천축, 북천축 등 서역 여러 지방을 순례했다. 그리고 정묘(727)년 11월에 안서도호부의 소재지 구자를 거쳐 장안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천축에 가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뜻을 세워 가는 것이고,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가피로 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어려울 때마다 먼저 그 길을 다녀온 선사들을 떠올리고, 발해 황제의 간절한 염원과 백성들이 기다리는 정법을 되새겨야만 합니다."

옥문관은 한나라 무제가 장성 서쪽 끝에설치한 관문이었다. 후에 무제가 하서4군을 설치하고 서역을 지배하던 거점이기도했다. 당시 서역 여러 나라에서 옥을 가져올 때 이곳을 통과했기 때문에 옥문관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난주에서 옥문관을 거쳐 돈황까지는 2천9백 리나 되는 먼 길이었다. 천축에 가는순례자들은 대부분 돈황을 거치는 여정을택했다. 왜냐하면 돈황에는 석굴사원 천불동과 막고굴이 있기 때문이었다.

무명 일행은 돈황이 서역으로 통하는 또하나의 큰 관문이자 성지이나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그 먼 길을 갔다가 다시 돌아 나오기에는 시일이 많이 소요될 것 같았다.

천축을 비롯 서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거쳐야 할 거대한 장벽은 바로 총령(파미르고원)과 탑극랍마간(타클라마칸) 사막이었다. 죽음의 대장벽, 지옥의 대장벽이라불리는 이곳은 죽음을 불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넘나들었다. 법현, 현장, 혜초 모두그 지옥의 대장벽을 넘은 순례자들이었다.
무명은 사막으로 들어서기 전에 한번 더다짐했다.

사람들은 하나둘 지치기 시작했다. 발해에서 가장 강건하고 용맹한 자들인데도 이글거리는 태양을 견디지 못해 쓰러졌다.
"들으시라. 태양이 아무리 이글거려도 사람을 태울 수 없으며 더구나 사람의 마음은 결코 태울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 마음을 부처님께 모으고, 관세음보살을 부르시오."

"아! 이 사막의 끝이 있기는 있습니까?"
검두밀이 물었다.
"세상에 처음과 끝이 없는 것이 어디 있으리오. 가고 또 가면 사막이 끝날 것이오."
무명은 믿고 있었다. 선험자들의 발자취를 믿기 때문이었다.

"늙은 몸을 섬겨야 하는 여인은 늘 삭일수 없는 애달픔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애달픔을 채워 줄 남자는 천하에 대부뿐입니다. 귀비는 열일곱에 시집와 한창 물오른스물두 살에 황제를 만났으며, 8년 동안이나 오직 늙은 남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몸을 바쳤습니다. 지금 귀비는 자신의 몸을열락에 빠지게 할 남자가 절실합니다."

안서도호부는 경자(640)년에 당나라가토노번(투루판) 지방의 고창국을 멸망시키고 서주를 경략하기 위해 설치했다. 6도호부의 하나로 서역 경략의 거점이었다.
안서도호부의 절도사는 고구려 후손인고선지였다.
고려노였던 고선지의 아버지 고사계는하서군에 종군하여 여러 공을 세워 장군이되었다. 그 공덕으로 고선지는 장군의 반열에 올랐다.

"이곳에서는 고구려 후손이라면 어딜 가나 대우를 받습니다. 총령과 탄구령을 가장먼저 넘은 군사들이 바로 고구려 후손들이었습니다. 고선지 장군은 천하의 영웅으로추앙받고 있습니다."
"우리도 익히 소문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은덕으로 동족을 만나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장군께서는 늘 고구려 후손이 세운 나라가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고구려의 혼을 일으켜 세우고 고구려 땅을 지키는 발해의 웅혼함을 부러워했습니다."
돈벌이를 하기 위해 길잡이를 하겠다던사내는 오히려 고선지 장군의 도움을 받으라고 권했다.
"고구려 후손이 절도사가 되었다면 그만한 공력이 있었겠지요?"
"부친 고사계 장군이 큰 공을 세워 사진십장을 거쳐 장군이 되었습니다. 그 아들도출중하여 장군에 오르고 공이 혁혁하여 절도사가 되었습니다.

성 밖까지 마중 나온 고선지의 위용은대단했다. 정예무사로 이루어진 겸종 30기의 늠름함은 마치 제후의 행차 같았다. 고선지를 호위하기 위해 늘어선 30기의 복색이 모두 선명한 붉은 색이어서 그런지 더욱당당해 보였다.
고선지는 말에서 내려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어서 오십시오. 먼 길 오시느라 고초가많으셨습니다."

"제가 크고 작은 전쟁을 하면서 늘 저 자신을 괴롭히는 게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이미 짐작하셨겠지요?"
그리고는 좌우를 한번 둘러보았다.
"누구를 위해 싸우는 것인가입니다. 내나라를 멸망시킨 당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싸운다고 생각하면 맥이 풀리고 가슴 속에불덩이가 들어앉습니다. 아무리 큰 공을 세워도 저는 결국 고려노일 뿐입니다. 어떻게죽든 이민족이자 번병입니다. 곽국공 왕모중도 고구려 후손이었기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곳 총령은 피로 얼룩진 계곡입니다.오래전부터 수많은 전란의 현장이고, 산적떼가 숱하게 출몰하는 곳입니다. 이름 없이사라진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산적에게 약탈당하거나 목숨을 빼앗겼고, 발을헛디뎌 천길 벼랑으로 떨어져 죽었습니다.그래서 계곡에는 늘 피가 마르지 않았다고합니다."
그렇게 험한 길인데도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지나다녔다면 부처의 정법을 갈구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는 뜻이었다. 무명은경외심으로 새삼 내딛는 걸음에 힘을 주었다.

"진신사리가 꼭 붓다의 몸에서 나온 사리만을 뜻하는 게 아니오. 붓다의 말씀이새겨진 경전도 진신사리요, 붓다의 법인 지혜와 자비를 행하는 것도 진신사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니어찌 하늘이 감동하지 않고, 불법이 감동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무서운 것은 사막도 험준한 벼랑도 아닙니다. 야수나 독충보다 더 조심해야할 것은 사람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사람이 더 무서운것은 욕심 때문이 아니겠는가. 일행을 짓누르는 긴장감이 높아질수록 발걸음이 빨라졌다. 냇물을 건너 한나절쯤 가자, 수림이깊어지고 푸르른 골짜기가 나타났다.

무명은 사람들이 말리는데도 잘 벼린 단검으로 자신의 배를 그었다. 칼끝이 지나간자리에 붉은 선혈이 뚝뚝 배어 나왔다. 무명은 진신사리 2과를 갈라진 상처 속에 넣고 실로 꿰맸다. 무명은 생살을 갈라 사리를 넣고 꿰매는 끔찍한 일을 오히려 광영으로 여기는지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신라는 선덕여왕 재위 말년인 병오(646)년에 당나라로 유학 갔던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하며 당나라에서 구해온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자장은 진골 출신으로 속명은 김선종이었다. 당나라에 들어가 8년간불경을 닦고 돌아와 대국통이 되었다. 자장은 당나라 종남산 운제사의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하며 정진한 끝에 사리를 구했다.그 사리는 통도사 외에 금성(지금의 경주)의황룡사탑과 울산의 태화사탑에 봉안되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심복을 궁중에 심어조정의 움직임을 신속하게 알아야 합니다.조정대신들과 황제의 근신들이 전하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변고가 생길 수있습니다. 고구려의 왕모중이 인신으로서는 더 오를 데가 없었는데 주검이 된 걸 모르십니까? 장안과 범양은 수천 리 길입니다. 그러나 장안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소상히 살핀다면 누가 감히 전하를 능멸하겠습니까?"

요서벌에서 누란의 위기가 꿈틀대고 있음을 모르는 이융기는 늙은 몸으로 양귀비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이튿날 새벽, 간밤에 은밀히 찾아왔던 심복 왕경유, 장경승, 이건묵이 모두 참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망연자실한 안녹산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곁에 있는 이합비를쳐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차가웠다.
"그들은 죽어 마땅합니다."
"무슨 소리냐?"
이합비의 말에 더욱 놀란 안녹산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다그쳤다.
"발해를 공격하겠다고 20만 군사를 요청하는 순간 황제의 총애는 거두어집니다. 그러잖아도 조정에서는 20만 대군을 거느린전하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여차하면 전하를 제거하려고 합니다. 그들이 조정의 밀명을 받고 전하를 떠보기 위해 술수를 부린것을 왜 모르십니까?"

"폐하, 보구림은 안녹산에게 뇌물을 받고 거짓으로 상주했사옵니다. 안녹산을 조종하는 것이 첩 이합비인데, 발해 여인으로안녹산을 부추겨 역심을 품고 군사를 기르게 한 계집이옵니다. 폐하께서 입조를 명하시면 안녹산은 반드시 입궐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통촉하옵소서."

그런데 북방에 모진 추위가 몰아치던 그해 동짓달 초순, 황제 이융기가 극비리에보낸 사신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의 품에는 황제의 친필 밀서가 들어 있었다. 안녹산은 크게 놀라 심복 장수들을 불러들였다.
장수들도 경천동지할 황제의 밀조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역적 양국충이 모반을꾀하고 있으니, 충신 안녹산은 군사를 이끌고 장안으로 달려와 양국충과 그 무리를 주살하라는 밀명이었다. 거병할 날은 을미(755)년 동짓달 아흐레, 군사를 일으켜 장안으로 진격하면 충성스런 신하들이 응전하겠다고 했다.

황제의 밀서가 가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합비와 둘째아들 안경서, 측근 심복엄장, 손효철, 가순, 여지희, 고수암 정도였다.

이융기는 황자 이완을 토적군 원수로, 고선지를 부원수로 삼았다. 그리고 급히 관고를 열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곡식과 옷감을주어 군사를 충원했다. 급조된 오합지졸이었지만, 천무군으로 명명했다.

영성은 고선지가 자신의 은밀한 청을거절한 데 앙심을 품고 허위사실을 들어 황제에게 밀고했다. 고선지가 섬주 땅 수백리를 버렸을 뿐 아니라, 뱃놀이를 즐기며국고의 관물을 도적질했다는 것이었다. 황제 이융기는 적을 앞에 두고 호화롭게 뱃놀이를 즐겼다는 말에 격노했다. 고선지가 적의 기습에 대비하여 강을 둘러본 일은 어이없게도 화근이 되었다. 늙은 황제의 흐린분별은 결국 고선지를 참하라는 어이없는명을 내렸다.
드디어 충역지자 안녹산이 낙양에서 칭제건원하고 연국을 선포하고 황위에 오르니, 때는 병신(756)년 정월 초하루였다.

하늘과 땅이 세상 만물을 만들어 내고,사람이 그것을 취해 생존하옵니다. 밭에 씨앗을 뿌려 곡식을 얻는 것도 햇빛과 물과흙이 조화를 부렸기 때문이옵니다. 천지만물은 하늘과 땅이 만들고 사람이 먹을 뿐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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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흠무가 즉위한 뒤 발해는 무왕 시기의 공세 국가에서 문왕 시기의 수성 국가로 넘어가는 길목에 들어선다. 그러나 그 출발은 결코 평온하지 않다. 흑수말갈이 다시 세력을 떨치며 북방을 위협하자 대흠무는 양소화를 북정군 통수로 내세워 이를 막으려 한다. 양소화는 초반에는 기세를 잡지만 요충지 자림성을 오소걸몽에게 빼앗기고, 이를 만회하려 무리하게 공격하다 큰 피해를 입는다. 이때 대흠무에게 정혼자를 빼앗기고 태백산에 물러나 있던 장문휴가 민병 5천을 이끌고 돌아와 전세를 뒤집는다. 장문휴는 자림성을 수복하고 오소걸몽을 추격해 끝내 제거하지만, 승세를 멈추지 않고 적진 깊숙이 들어갔다가 독화살을 맞고 전사한다. 장문휴의 죽음은 나라를 구한 충신의 승리이자, 황권이 끝내 감당하지 못한 비극으로 남는다.

이후 대흠무는 장문휴의 죽음을 영가혼례로 예우하고, 양소화를 다시 불러들여 감찰과 정치를 맡긴다. 양소화는 서북압록부 감찰어사로 나가 도독 공심지의 악행을 밝혀내고, 결국 그를 선참후결로 처단한다. 공심지가 황비 공사량의 오라비였음에도 대흠무가 양소화를 벌하지 않고 오히려 대신으로 중용한 것은 문왕 치세가 혈연보다 체제 정비와 실무 능력을 앞세우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대흠무는 기존 수도가 남쪽에 치우쳤다고 판단해 흘한해 일대를 순행하고, 국토 중심에 가까운 상경용천부 건설과 천도를 구상한다. 이는 발해가 더 넓어진 강역을 안정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장기적 재편의 출발점이 된다.

이와 함께 대흠무는 무명선사에게 천축으로 가 진신사리를 구해 오게 하여 왕권의 종교적 권위까지 다지려 한다. 무명선사는 돈황, 옥문관, 총령과 탄구령을 넘어 천축으로 향하는 극한의 순례길에 오르고, 그 과정에서 혜초와 고선지를 만나 도움을 받는다. 결국 진신사리를 무사히 가져와 바침으로써 문왕의 통치는 군사와 행정만이 아니라 불교의 상징과 성덕의 언어로까지 확장된다. 그러나 왕실 내부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문예의 아들 대청천은 당과 연결되어 대흠무 암살을 시도하고, 이는 대조영의 두 아들 가운데 한 계통은 황통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 계통은 대를 이어 반란으로 흐르는 비극을 드러낸다. 동시에 당에서는 현종의 궁정 문란과 안녹산의 비대화가 심화되고, 발해 여인 이합비의 공작까지 겹치면서 안녹산의 난이 현실화된다. 결국 6권은 문왕 대흠무가 북방의 위협, 충신의 희생, 체제 정비, 천도 구상, 불교 권위 확보, 그리고 대당 질서의 붕괴 조짐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 6권의 내용이다.

무혜비가 태자 이영과 황자 이요, 이거에게 사람을 보내 궁중에 적란이 일어났으니 급히 구원해 달라고 청했다 하옵니다.무혜비의음모를 알 리 없는 태자가 두 황자와 함께 군사를 모아 궁중으로 달려가자무혜비가 다급히 황제에게 고하기를 태자와 두 황자가모반을 꾀해 군사를 일으켰다고 하옵니다. 환관을 내보내 확인해 보니사실이어서 재상 이림보와 상의 끝에 태자를 폐출하는 칙지를내렸다 하옵니다.

호색의 당제 이융기는 무려 서른 명의황자와 스물아홉 명의 공주를 두었다

당나라의 후궁 제도는 수나라의 제도를 본떠 황후 이외에 귀비, 숙비, 덕비, 현비를 둘 수있고, 소의, 소용, 소원을 비롯한 아홉명의빈을 두었으며, 첩여, 미인, 재인을 각각 아홉 명씩 두었다. 그 아래 보림, 어녀, 채녀가 각각 스물일곱이나 되어 후궁 숫자만121명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통칭 3천 궁녀라고 불리는 궁녀들이 궁궐을 가득 메웠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태자를 포함하여친아들 셋을죽였으니 어찌 참화가 아니겠는가.

이듬해인 무인(738)년 6월에 충왕 이형이 태자로 책봉되었다. 당나라에서는 뒤늦게 대흠무의 등극에 경하 사절로단수간을파견하여 금은옥향과 비단과 명마를 바쳤다. 대흠무는 답례로 담비가죽과 약재, 마른 문어와 포를 보내며 한서, 삼국지,진서,
십육국춘추, 당례의 필사를 요구했다.대흠무는 묵은 원한을 딛고 일어서 당나라와 당당하게 겨루기 위해 그들의 학문과문물을배우고 익혀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학생을 파견하여 당나라 문물도 배워오게 할 작정이었다.

대흠무가 당나라 문물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은 정묘(727)년, 신라 승려 혜초가천축(인도)의 성적을 순례하고 왕오천축국전 세권을 지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였다.혜초는 남해에서 바다로 천축에 이르러동, 중, 남, 서, 북의 다섯 천축을 두루 돌아부처의 성적을찾아 참배하고 마지막에 총령을 넘어 10년 만에 당나라로 돌아왔다고한다.

개국 황제 대조영이 부처의 나라 천축에가서 진신사리를 구해, 탑을 쌓고 나라의 안녕과 태평성대를 축원하라는 유지를 남겼지만,
아직 그 유지를 받들지 못했다. 돌궐과 거란의 와해로 당나라와 발해 지경에서 완충 역할을 하던 세력이 사라졌기에, 발해는 당나라와직접 부딪쳐야 했다.

신이 알기로는 보통 두 가지 방법이 있나이다. 하나는 아편으로 마취한 후 대나무집게로 고정시켜 예리한 칼로 고환을 빼내거나,
옥경을 절단한 부위에 식물에서 짠기름을 뜨겁게 하여 붓고 기름 적신 천으로환부를 압박하는 방법이나이다. 다른 하나는 뜨거운호초탕(후추나무의 열매로 만든 탕)으로 마취하여 절단한 뒤 백납의 심지를요도에 삽입하고, 냉수에 적신 한지로 환부를 압박하는방법이나이다.

"경들의 뜻이 갸륵하여 내시를 두기로했노라. 다만 궁중에 항시 기거해야 하는내시는 충절이 깊고 총명하며 신뢰할 수 있어야 하니,
경들의 아들 중에 가려 뽑을 것이로다. 스스로 기꺼이 천거하라. "황제의 옥음이 이러하자 편전은 삽시에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일부 대신들의얼굴은 흙빛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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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이 알기로 권신들이나 변방의 성주와장수들이 사사로이 죄인을 궁형에 처한다고 들었도다. 이는 당나라의 못된 제도를본뜬 것이요, 국법을 어긴 것이니 마땅히문죄하겠노라."
추상 같은 옥음은 곧장 변방의 뇌옥에까지 전달되었다. 이로써 죄인을 궁형으로 다루던 관습이 일거에 사라지게 되었다.

북정군 본진을 영자성에 설치한 양소화는 동쪽으로 군진을 넓혀 월희 말갈의 동태를 파악했다. 흑수와 인접해 있으면서 흑수의 완력에 복종하거나 눈치를 보는 부족이었다. 월희 쪽을 주시한 것은 월희를 먼저장악하여 흑수를 고립시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동양 대해를 정복한 장문휴가 어느정도 토평했지만 완전히 굴복시키지는 못했는데 그가 사직하고 떠난 뒤에는 흑수의조종을 받았다.

"적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해서는 안된다. 명심하라!"양소화는 진병하는 순간에도 결코 적이강을 건너지 못하게 하라는 장령을잊지 않았다.

남흑수의 맹장 오소걸몽은 발해의 북정군 통수가 여장군이라는 데 놀라움과 함께승리를 자축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북흑수의 수령낙길몽과 연합하여 발해를 치기로하고 월희부의 발문계와 발기계 형제에게선봉에 서서 발해군을 유인하게 했다.

오소걸몽이 발해 군사가 강병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대일하가 영자성을 지키고 있을 때만 해도 감히 발해 지경을 넘볼 생각조차못했다. 그러나 황제가 바뀌고 여장군이 북정군 통수가 되었다니 흑수의 존재를 부각시킬 호기라 여겼다. 발해를무찌르기만 하면당나라의 지원을 받을 수있고 발해의 집요한 공격도 피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잠깐이었다. 영자성으로부터 생각지 못한 흉보가날아들었다. 영자성 북동방의 전진기지인자림성이 흑수의침공을 받아 함락됐다는급보였다. 군사를 보호하기 위해 적을 유린하느라 여러 날 지체한 사이에 흑수군이 발해의 요충지인 자림성을침공한 것이다."아! 내가 어리석었도다."

영자성의 방어벽이자 흑수를 경략하는 제일 요충지가 오소걸몽의 수중에떨어졌기에 앞으로 적잖은 희생을 각오해야 했다. 자림성수성장 방철은 끝내 순절했고 포로가 된 군사만도 5백 명이 넘었다.

"대장군께서는 여자니까 행여라도 전공을 크게 세워야 한다고 고심하십니까? 대화인 장군께서는 적을 물리침에 힘보다는지혜를빌렸다고 들었습니다." 심복 장수 왕치장이 끝내 듣기 거북한소리를 했다.

태백산 일대의 사냥꾼과, 화전을 일구며칩거해 있던 현사들이 장문휴를 따르기로한 것은 법연스님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3백 명밖에안 되었지만 날이 갈수록 수효가불어나 북쪽으로 진병할 때는 1천여 명이나 되었다. 넉넉하지 못한 대로 군자금도충당되었고 군마와군막, 병장기와 수레도

모양새를 갖추었다. 발해의 제일 맹장이요보국대장군이었던 장문휴는 1천여 기밖에안 되는 민병으로 소소한 말갈 부족을 차례차례•굴복시키며 북진했다.

"우리가 쳐부숴야 할 적은 흑수가 아니냐. 흑수와 가장 가까운 부족이 월희와철리와 불열이 아니겠느냐. 그들을 앞세우면 흑수를가볍게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장문휴가 발해인보다 말갈인들을 선호하고 중용하는 까닭을 알게 된 양두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쯤 양소화가 얼마나 노심초사하고있을까 걱정했다. 발해 역사상 두 번째 여자 대장군이지만 북정군 통수가 된 것은 정말 대단한일이었다. 임무를 완수하면 응당황성으로 올라가 중신의 반열에 오르게 될것이다. 그런 막중한 임무를 띠고 북방으로와서 요충지를적에게 내주었다니 지금쯤마음의 고통이 크리라고 생각했다.

"아, 속았구나!"
낙수몽은 말달리기 어려운 험로에 들어선데다 수효를 짐작할 수 없는 복병을 만났고, 뒤에는 추격병이 무서운 기세로 덤벼드는 걸 보고 맥이 풀렸다. 군사들은 제멋대로 도망치느라 경황이 없었다.
"혈로를 뚫어라!"

혈로를 뚫기 위해 장검을 들고 앞장선 낙수몽은 산자락에 우뚝 선 장수를 보았다.
"발해 대장군 장문휴가 낙수몽의 목을가지러 왔다. 항복하면 살려주겠지만 거역하면 몰살하겠다!"

쩌렁쩌렁 울리는 저 우렁찬 목소리, 발해제일 명장이요 당나라를 놀라게 한 그의 용맹은 신화처럼 떠돌았다. 동양 대해를 평정하고 말갈 제부를 속복케 한 대장군이 아니던가. 보국대장군이 전장에 나섰으면 적어도 수만 군사가 따르고 있을 것이다.

적장이 장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낙수몽도 장창을 꼬나잡고 말을 달렸다. 낙수몽이 뒹굴었다. 장문휴의 칼날에는 무서운 힘이 실렸다. 칼자루를 잡은 손이 얼얼할 만큼 상대의 장력이 느껴졌다.
낙수몽은 항복을 선언하고 군사들에게도 도망가지 말고 병장기를 버리라고 소리쳤다.

"나라의 근간을 바로잡고 태평성대를 구가하려면 무릇 밖으로는 변방이 조용해야하고, 안으로는 충절이 가득해야 합니다.당나라가 두려워하는 대장군께서 군권을쥐고 천하를 호령해야 나라의 안녕을 도모합니다. 저를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젊은 시절, 그들은 서로 좋아하면서도 황자대문예 때문에 결합할 수 없었다. 그 시절이 지나자 양소화는 장문휴를 오라버니 대하듯 했고, 장문휴 역시 누이 대하듯 정을나누었다.

"하룻밤만이라도 제 가슴 속에 살아 있는 연정을 달래 주십시오."
장문휴는 그제야 양소화가 못 마시는 술을 부러 마셨다는 걸 알았다. 그녀도 이제서른 중반의 여인이었다. 장문휴는 말없이양소화를 끌어안았다. 건장한 사내의 품에안긴 여인은 기다림에 매여온 지난 세월이서러운지 나지막이 흐느꼈다. 장문휴는 그런 양소화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대문예가아니었던들 두 사람은 혼례를 치르고 자식도 낳았을 것이다.

"폐하, 세상에 널리 알려진 대로 장문휴는 천하 명장이옵니다. 장문휴가 군권을 다지면 밖으로는 당나라를 견제하고 번족들의 경거망동을 막으며, 안으로는 충직한 장수를 널리 중용하는 성덕이 되옵니다. 지난날 성무고황제께서는 장군기만 휘날려도당나라 군사들이 지레 겁을 먹었사옵니다.사해를 다스리기 위해서 장문휴가 폐하의곁을 지켜야 하옵니다."
대신 미발계는 오히려 장문휴를 중용하라고 간했다.

"장문휴의 선대를 살펴보아도 충직하지않은 자가 없었나이다. 부친 장사무는 선제를 모시고 비사성을 빼앗고 장렬히 전사했으며, 조부 장작명은 반당투쟁으로 목숨을버린 충신이었나이다. 장문휴의 피 속에는반심이 있을 수 없으니 장문휴을 곁에 두옵소서."
태사 신승도 미발계와 같은 뜻을 피력했다.

"황명의 지엄함을 어찌 모르십니까?"
양소화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장문휴를전장에 내보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번전투가 그에게는 마지막 교전이 될지도 모른다. 도성으로 올라가 군권을 쥐게 되면다시는 일선에서 직접 칼을 휘두르지 않을것이다. 그렇기에 온몸을 던져서라도 흑수를 물리치고 오소걸몽을 사로잡으려는 것같았다.

적장을 사로잡은 장문휴는 추격을 늦추지 않았다. 오소걸몽의 본진을 섬멸하는 것은 오소걸몽을 사로잡는 것만큼 긴요했다.

양소화가 비보를 접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아, 하늘이시여! 아니 됩니다. 아니 됩니다."
양소화의 울부짖음이 너무 처절해 보는이도 눈물을 쏟게 했다. 당나라를 놀라게했던 일세의 영웅 장문휴가 적이 쏜 독화살에 쓰러졌으니 하늘이 무심했다. 비로소 대수령을 사로잡아 남흑수를 토평했거늘 어찌하여 일세의 영웅을 거두어가는가. 부친장사무가 장렬히 전사하며 비사성을 되찾아 발해 품에 안겨주었듯이, 유복자로 태어나 불굴의 의지로 무시에 장원급제하고 수군을 길러 당나라를 거침없이 침공한 대장군은 독화살을 뽑지 못한 채 한세상을 마감했다.

"나라의 봉공을 받는 대장군은 법도를지켜야 하고 황상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아니 됩니다. 군국대사라면 바른 진언과 간쟁을 할 수 있지만, 이것은 정녕 사사로운 것입니다."
"황제는 사사로이 남의 여인을 취해도그만이고 대장군은 법도를 따라야 하느냐?법도란 물이 흐르는 것과 같아야 한다."
신달미는 양소화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표문을 어람한 대흠무는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양소화의 청을 받아들였다.
"양소화의 표문은 방자할 정도로 당돌하지만 밉지 않은 수작이로다. 술관 선수종은태사와 의논하여 영가혼례를 주선하라."

예상치 못한 대흠무의 찬찬한 배려에 모두 놀랐다. 지나간 일이지만 비빈 공사량과장문휴와의 인연도 그렇고, 양소화의 표문이 법도에 없는 간청이었음에도 황제가 친히 영가혼례를 주선하는 걸 보고 모두마음을 쓸어내렸다. 누가 보아도 도량이 넓은황제임에 틀림없었다.

대흠무는 국기를 바로세우고 부국강병을 꾀하기 위해 관제를 정비하고, 드넓은강역을 다스리기 위해 5경과 부, 주, 현을정비하기로 했다. 이는 당나라와 맞설 수있을 만큼의 치세를 굳건히 하기 위한 수순이었다.
황제를 보필하는 최고의 통치기관으로정당성을 두고, 그 아래에 선조성과 중대성을 두었다. 그 밑으로는 좌육사인 충부,인부, 의부와, 우육사인 지부, 예부, 신부를두어 당나라 관제와 겨루어도 모자람이 없었다.

3성 6부 외에도 1대, 9시, 1원, 1감, 1국을 두어 문관의 작제를 보강했다. 무관 작제도 과거보다 2위를 늘려 좌맹분위, 우맹분위, 좌웅위, 우웅위, 좌비위, 우비위, 남좌위, 남우위, 북좌위, 북우위, 10위를 두었다.
각 위에는 대장군, 장군, 도장, 낭장이 있어 군사들을 통솔했다.

고구려 때보다 강역이 넓어졌고 호구도많이 늘어난 터라 대흠무는 치세를 원활히하기 위해 다섯 개의 도읍지를 두었다. 5경은 숙신 땅의 상경 용천부와 조선 땅이자지금의 도성인 중경 현덕부, 예맥족이 살던곳으로 바닷가와 가까워 일본 가는 길로 통하는 동경 용원부, 옛 옥저 땅으로 신라 가는 통로인 남경 남해부, 고구려 때 국내성이 있던 곳으로 당나라 가는 통로인 서경압록부였다.

한편 대흠무는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서쪽 바다로 흐르는 마자수를 압록수로, 동쪽바다로 흐르는 통문하를 두만하로 고쳐 부르게 했다.

대흠무가 크게 흥한다는 뜻으로 대흥이라 연호를 정한 것도 다 까닭이 있었다. 당나라를 경계하고 신라가 발호하지 못하게하기 위해서는 당나라와 화의하고 일본과화친해야 했다.

예인 이구년을 불러 가무를 즐기던 이융기는 문득 구룡전 연못에 비친 여인의 치맛자락을 보고 환관 고력사에게 풍류를 아는여인인 듯하니 데려오라 일렀다. 여인은 태자위에 오를 뻔했던 수왕 이모의 비인 양옥환이었다. 예전에 수왕과 같이 알현하던 자리에서도 잠시 느꼈지만 과연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천하절색이었다. 스물두 살의 여인을 반갑게 맞은 황제의 나이는 쉰여섯이었다

사사로이는 며느리요, 맺어져서는 아니 될 여인에게 한눈에 반해버렸으니, 이비극 서린 만남이 훗날 경국지색의 참화가될 줄 누가 알았으랴. 옛날 한나라의 성제가 조비연에게 빠지고, 은나라 주왕이 달기에게 빠져 나라가 기울었던 걸 외로운 황제가 어찌 기억했겠는가.

양옥환은 남방의 촉 태생으로 촉주사호양현염의 딸인데, 아버지가 일찍 죽어 숙부인 양현교 밑에서 자랐다. 풍만한 몸집이어디 한군데 빠진 데 없이 고르게 균형이잡혔으며 오관이 바르게 놓였고, 크고 해맑은 눈이 보석처럼 빛나는 여인이었다. 입술은 단물이라도 흐를 듯 촉촉이 젖어 미소가잔잔히 묻어나며, 희고 고른 치아가 유난히돋보였다. 살결은 희다 못해 푸른빛이 날정도여서, 마치 막 잠을 잔 누에가 고치를지을 때처럼 핏줄마저 투명했다. 엷고 붉은연지와 풀어놓은 머리채가 탐스러웠고 사향각시를 품었는지 향긋한 향내가 풍겼다.
"천하절색이 아니더냐?"

영남도호부가 있는 광주(광동성)는 도성에서 남쪽으로 수만 리 떨어져 있어 오가는데 오랜 시일이 걸렸다. 다행히 수왕 이모는 싫어하는 내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황제의 신임을 얻어 대임을 잘 마무리하면 태자위에 오를 수 있다 생각했다.
그것이 천하 대란의 시발이 될 줄 누가알았으랴.

여인은 금세 새로운 요지경에 빠진 듯신음소리로 사내의 애욕에 불을 지폈다. 입술과 혀끝으로 이융기의 몸을 핥아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천하의 음탕이 무슨 수로양태진의 육신에 스며들었는지 모르지만 황제의 늙은 몸을 펄펄 살아 움직이게 했다. 황제는 중원을 호령했지만 양태진은 그런황제를 옥문과 혀와 입술, 눈웃음과 자지러지는 신음, 금방 숨이 넘어갈 듯한 교태와온몸을 불사르는 열정으로 휘어잡았다.
그 무렵 동방의 전략기지 유주에서는 야심가인 안녹산이 평로병마사가 되어 동방의 맹주 발해를 노려보고 있었다.

발해를 둘러싸고 있는 당, 거란, 흑수, 신라와 항시 부딪혔다. 국운을 건 대전이 언제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니 부지런히 군마를 늘려야 했다. 말을 강건하게 조련시켜전장에 나서면 당연히 승산이 높아질 것이다. 대흠무는 친히 봉희대까지 달려가 군사들을 독려하고 군마와 비둘기들을 살폈다.

"폐하, 때로는 바다 속 암초같이 모습을감추었다가 큰 파도 칠 때 모습을 드러내고, 때로는 바람 앞의 버드나무처럼 세상과같이 흔들리며, 때로는 돌밭을 경작하는 소처럼 우직하게 밀어붙이고, 때로는 진흙 밭에서 싸우는 개처럼 악착같이 적을 이겨야하며, 때로는 큰 바위 밑에 오래 된 불상처럼 꿈쩍하지 않으셔야 하옵니다."

사방에서 상주문과 표문이 올라오면 반드시 고력사가 먼저 본 뒤에 황제에게 올렸고, 고구려 후손으로 황제의 권위에 도전했던 왕모중을 제거한 실력자였다. 간사한재상 이림보조차 고력사를 두려워했으니고력사의 위세는 나는 화살도 멈추게 할 정도였다.
"그대는 발해 황제가 되고 싶지 않은가?"

당나라는 5년간이나 끌어오던 안서 땅을평정하고 이제 동쪽으로 눈을 돌렸다.
북방의 대초원을 지배하던 서돌궐의 한부족 돌기시 가한 궐특근이 사망하자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소록이란 걸출한 인물이등장했다. 소록은 백성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며 근면하고 검약하여 존경받았다. 전쟁에서 획득한 재화를 모두 부하에게 나누어주었으니 소문이 근동으로 퍼져 나가 여러부족이 충성을 바쳤다. 하지만 5년 동안이나 당나라와 맞서 싸우면서 많이 쇠락해졌다.

"전하, 거대한 동쪽의 용 한 마리를 낚아채는 데 울안에 기르는 어여쁜 고기 한 마리쯤 낚시에 걸어두는 게 천하 장부의 묘책임을 아십니까?"

그곳에는 과부나 이혼녀, 기녀로 입적하지는 않았지만 자유분방하게 즐기려는 처자들과 서방 몰래 정념을 풀려는 여인들까지 이른바 여자도사라는 이름으로 거룩한채 좌정하고 있었다. 여도사들의 기묘한 음행을 묵인하며 짭짤하게 이득을 챙기는 도관 중에 함의관은 제일 소문난 곳이었다.

격노한 신하들은 끝까지 추격해 대청천을 사로잡아 능지처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신 명림무흥은 대청천을 주살하여국기를 바로세우기를 강력히 주청했다.
"폐하, 공이 있는 자에게는 상을 내리는것이 좋은 규범이고, 죄가 있는 자는 주형하는 것이 선제의 영전이옵니다. 기릉과 무염이 극에 달해 흉사한 자를 잡아들이고,난역에 가담한 무리들을 징치하는 것은 천하의 도리이옵니다. 다행히 천지의 살핌과종묘 신령의 힘을 입어 옥체를 보전하실 수있었으나, 효경(어미를 잡아먹는 새와 아비를 잡아먹는 짐승)과 같은 흉측한 자들을 결코살려두어서는 아니 되옵니다."

닷새 만에 안녹산은 또 다시 이징관의 집을 찾았다. 별채에 마련한 술상 앞에서 안녹산은 이합비의 손을 덥석 잡았다.
"네 소원을 들어 주기로 했다."
이합비가 곱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소녀의 꿈은 드넓은 황궁에서 3천 궁녀, 3천 내시와 뭇 신하들이 머리를 조아리게하는 것입니다. 온 천하를 둘러보아도 천번지복하여 황룡 위에 앉을 분은 절도사 어른밖에 없습니다. 제 한목숨 언제든지 바칠수 있으니 기꺼이 밟고 용상에 오르셔야 합니다."

"발해의 운명을 네 마음과 몸으로 짊어진 것이니 어떤 신고가 따르더라도 이겨내거라. 목숨 바칠 일이면 기꺼이 바치고 몸바칠 일이면 아끼지 마라. 이합비의 충절은사관의 일필로 후세에 기록될 것이다."
난삼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이합비는 안녹산의 마음과 몸을 사로잡기 위해 비법을배우고 익혔던 것이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연모하는 정인을 두고 당나라 땅에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리게 될 것을.

위기의 순간에 양소화를 구한 것은 놀랍게도 금군장수 임도빈이었다. 양소화가 어사를 제수받고 도성을 떠날 때부터 은밀히그녀를 뒤따르며 지키라 명한 것은 태부 신석정이었다. 양소화는 얼른 말에서 내려 동쪽을 향해 세 번 절을 올렸다.

그 순간 소리를 지른 것은 뜻밖에도 서경압록부의 운휘장군 검두삭이었다. 백전노장이지만 자원하여 변방 장수로 나가 젊은 장수들에게 규범을 보여주던 덕장이었다. 비록 공심지의 아랫자리에 있지만 청렴하고 결백하여 군사들이 어버이 섬기듯했다. 군사들이 머뭇거리자 검두삭은 또 한번 소리 질렀다.
"이 칙서는 가짜다. 죄상이 드러날까 두려워한 공심지가 꾸며 만든 것이다. 알겠느냐? 모두 무기를 내려놓아라!"

"탐관오리는 백번 죽어 마땅하옵니다.기군망상의 죄상은 반드시 참해야 국기가바로 서며 척신 공심지의 죄상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고 크나이다. 지금양소화를 징치하면 반드시 어질지 못한 무리들이 음흉한 간계로 날뛸 것이옵니다. 멀리 보신다면 오히려 양소화에게 후한 상을내리심이 마땅하옵니다. 그러하면 척신과근신은 물론이고 탐관오리들이 사라질 것이옵니다."

자고로 충성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애국은 맹세를 저버리지 않는 법이로다. 근자에서경압록부 도독 공심지가 간악하고 요사스런 꾐에 빠져 국고금을 훔쳐 사욕을 채우고,백성들의 골육을 짜낸 뇌물로 사방을 어지럽혔으며, 국법을 어기고 기군망상하여 그 폐해가 극심했더라.
또한 공공연히 인륜을 어기고 무수한 여인들을 농락하며 음란을 자행했고, 국법으로 금지한 사형을 자행하매 죄 없는 남자들을 강제로 고자로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도다. 범법이있는 곳에 악이 따르고, 악이 있는 곳에 벌이따르게 마련이라. 짐은 양소화를 어사로 삼아국기를 엄히 다루게 했으며, 죄를 다스리매먼저 행하고 후에 장계하라 명했도다. 이에 어사 양소화가 위급한 지경에 공심지를 참한 것은 짐의 명을 따르고 법을 지켰으며 예를 벗어나지 않았다. 어찌 자식의 잘못이 부모의 죄가 되겠느냐만, 사공 공진방은자식의 죄를 감추고 짐을 속였으니 멀리 안변부로 귀양 보내 지은 죄를 씻게 하겠노라. 이에 짐은 조서를 내리니 진신들은 함부로공론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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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성 암과 같은 군산복합체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다.
《커커스리뷰Kirkus Re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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