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
두경아 지음 / 길벗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내와 함께하는 일본 알펜루트 여행기

여행 5일차, 2026.05.26.(화요일)
이제 진짜 안녕, 도야마 그리고 알펜루트(알프스 재펜)


1. 오전 6시 50분, 이제 정말 떠나는 아침

여행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늘 오전 10시 15분 고마쓰공항에서 출발하는 인천행 비행기를 타면 이번 여행도 정말 끝이다.

오전 6시 50분경 HOTEL JAL CITY TOYAMA를 나섰다.

며칠 동안 아침마다 나서고 저녁이면 다시 돌아왔던 호텔이다.

첫날 도야마에 도착했을 때는 앞으로 며칠 동안 무엇을 보게 될지 기대가 컸는데, 이제는 캐리어를 끌고 떠나는 날이 됐다.

호텔을 나와 도야마역으로 걸었다.

아침의 도야마 거리는 아직 한산했다.

며칠 동안 수없이 오갔던 도야마역 앞 풍경도 오늘 보는 것이 마지막이다.

낡은 녹색 트램 한 대가 아침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이런 풍경도 안녕이다.

그래도 그냥 갈 수는 없다.

도야마역으로 가기 전에 역시 스타벅스에 들렀다.

역 바로 앞 스타벅스.

여행 내내 참 자주도 마신 커피다.

오늘 아침은 따로 밥을 먹지 않고 커피 한 잔으로 끝냈다.

올 때 대한항공을 타고 인천에서 고마쓰로 올 때도 두 시간 남짓한 짧은 노선인데 기내식이 나왔다.

그러니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도 기내식이 나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침은 그냥 커피만 먹자. 비행기 타믄 밥 주잖어.”

마님과 자리에 앉았다.

마님은 마지막 아침 커피를 마시고 나는 출발 시간을 확인했다.

옆에는 우리의 캐리어가 놓여 있었다.

여행 첫날에는 앞으로 며칠 동안 끌고 다닐 짐이었는데 이제는 한국으로 데려갈 짐이다.

마님과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일본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시작했다.

오늘은 더 이상 어디를 바쁘게 돌아다닐 필요도 없다.

이제 공항으로 가서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2. 오전 7시 37분, 쓰루기를 타고 마지막으로 도야마를 떠나다

커피를 마시고 도야마역으로 들어갔다.

신칸센 중앙 개찰구로 향했다.

전광판을 보니 우리가 탈 열차가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오전 7시 37분 출발.

쓰루가행 쓰루기.

그 뒤로 오전 8시 16분 쓰루기와 오전 8시 24분 가가야키가 차례로 표시되어 있었다.

열차 이름도 재미있었다.

‘쓰루기(つるぎ)’는 다테야마 연봉의 험준한 명봉 쓰루기다케(剱岳)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번 여행 내내 바라보고 그 안으로 직접 들어갔던 북알프스의 산 이름이 신칸센 열차명에도 남아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출발하는 ‘가가야키(かがやき)’는 우리말로 하면 ‘빛남’, ‘찬란함’ 정도의 뜻이다.

북알프스를 실컷 보고 떠나는 마지막 아침에 ‘쓰루기’와 ‘가가야키’라는 이름을 나란히 보고 있으니 괜히 더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탈 것은 오전 7시 37분 쓰루기였다.

개찰구를 지나 승강장으로 올라갔다.

도야마역 역명판도 다시 한번 보였다.

‘富山 Toyama’

며칠 동안 여행의 중심이 되었던 역이다.

열차가 들어오고 마님과 캐리어를 끌고 객차에 올랐다.

객차 안은 의외로 한산했다.

붉은색 계열의 좌석들이 길게 이어졌고 빈자리도 많았다.

커다란 캐리어도 우리 좌석 가까이에 놓아둘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한산허니 좋네.”

오전 7시 37분.

쓰루가행 쓰루기가 도야마역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고마쓰역이다.

승차권에는 도야마 오전 7시 37분 출발, 고마쓰 오전 8시 13분 도착으로 적혀 있었다.

열차가 도야마를 벗어나자 창밖으로 다시 익숙한 풍경들이 흘러갔다.

일본식 주택들이 이어지고,
물이 찬 논과 밭이 지나갔다.

그리고 멀리 산들이 길게 이어졌다.

오늘은 어제처럼 쨍하게 맑지는 않았다.

산에는 약간의 연무가 끼어 있었지만 그 너머로 높은 봉우리의 눈이 여전히 보였다.

이번 여행 내내 참 많이 바라본 산들이다.

처음 도야마에 왔을 때부터 눈에 들어왔고,
쿠로베 협곡으로 가는 열차에서도 바라봤고,
어제는 그 산속으로 직접 들어가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를 통째로 넘어왔다.

그리고 오늘은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마지막으로 바라본다.

“안녕.”

창밖으로 설산을 계속 바라봤다.

“이제 진짜 안녕이야.”

어제 아침에는 저 산을 향해 그렇게 신나게 달려갔는데 하루가 지난 지금은 반대 방향으로 떠나고 있다.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그래서 또 여행인가 보다.


3. 신타카오카와 가나자와, 여행의 기억을 다시 지나 고마쓰로

열차는 서쪽으로 달렸다.

넓게 물을 댄 논과 작은 마을들이 계속 이어졌다.

열차는 신타카오카역에 정차했다.

‘新高岡 Shin-Takaoka.’

이번 여행에서 다카오카와 아마하라시를 찾아갔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아마하라시 해안에서 바라봤던 바다와,
바다 건너 설산을 기다리며 걸었던 시간도 생각났다.

신타카오카를 지나 열차는 다시 속도를 냈다.

객차 안내판에는 잠시 뒤 가나자와가 표시됐다.

‘Kanazawa.’

가나자와라는 이름을 보니 이번 여행에서 가장 특별했던 장소 가운데 하나가 떠올랐다.

노다산.

그리고 위대하신 천하영웅 윤봉길 의사님의 암장지.

관광지 하나를 지나가는 기분과는 달랐다.

그곳에서 의사님이 겪으셨던 마지막 시간과,
순국 뒤 일제가 유해를 아무렇게나 묻었던 그 자리를 직접 찾아갔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마지막 날 열차 안에서 다시 가나자와를 지나니 마음이 묘했다.

열차는 가나자와를 지나 계속 남쪽으로 달렸다.

한동안 도시와 마을이 이어지다가 다시 논과 산이 펼쳐졌다.

멀리 산줄기 사이로 눈을 이고 있는 높은 봉우리도 다시 나타났다.

여행이 끝날 때가 되니 지나왔던 장소들이 하나씩 다시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객차 안내판에 마침내 고마쓰가 표시됐다.

“곧 고마쓰에 정차합니다.”

이제 일본에서 타는 마지막 신칸센도 거의 끝나간다.


4. 오전 8시 13분, 고마쓰역에서 곧바로 공항으로

열차는 정확히 오전 8시 13분 고마쓰역에 도착했다.

신칸센에서 내려 승강장을 빠져나왔다.

고마쓰역은 도야마나 가나자와보다 훨씬 한산했다.

역 밖으로 나오자 바로 공항행 버스 승차장이 보였다.

‘小松空港行き バスのりば’

고마쓰공항행 버스 승차장은 4번이었다.

우리가 탈 버스는 오전 8시 22분 출발.

열차에서 내린 지 10분도 되지 않아 바로 버스로 갈아탈 수 있는 일정이었다.

“시간 딱딱 맞네.”

고마쓰역 앞 모습도 마지막으로 사진에 남겼다.

오전 8시 22분경 공항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 전광판에도 ‘小松駅 → 小松空港’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고마쓰역에서 공항까지는 멀지 않았다.

시가지를 빠져나가 약 10분 정도 달리자 고마쓰공항에 도착했다.


5. 한산해서 더 좋았던 고마쓰공항

고마쓰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대한항공 국제선 체크인 카운터가 바로 보였다.

그런데 공항 분위기가 참 조용했다.

대도시 국제공항처럼 여행객들이 끝도 없이 몰려 있는 풍경이 아니었다.

대한항공 체크인 카운터에도 사람들이 조금 서 있을 뿐이었다.

“아이고, 사람 별로 없으니 좋네.”

그러고 보니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꼴인가.

ㅋㅋㅋ.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싫어하는 거다.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사람이 너무 많으면 정신이 없고,
조용한 곳에서 천천히 둘러볼 수 있으면 훨씬 좋다.

고마쓰공항은 그런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시골공항답게 크지도 않았고 사람도 많지 않았다.

복잡하게 헤맬 일도 없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공항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국제선 출발 안내가 보이고,
통로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용 조형물도 있었다.

벽 한쪽에는 일본 특유의 화려한 색으로 꾸민 커다란 그림도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이 거의 없는 대기공간에는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마님과 앉아서 비행기를 기다렸다.

창밖으로는 고마쓰공항 활주로 너머 산들이 보였다.

높은 산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었다.

일본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산이 보인다.

전광판에는 우리가 탈 비행기도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대한항공 KE2190.
서울(인천).
오전 10시 15분.

이제 정말 일본을 떠날 시간이다.


6. 대한항공에 오르고, 이번에는 자위대 전투기 구경

탑승 시간이 되어 대한항공 비행기로 향했다.

탑승교 앞에서 마님과 나란히 마지막 사진도 한 장 남겼다.

며칠 동안 참 많이도 사진을 찍었다.

이제 일본에서 찍는 사진도 정말 몇 장 남지 않았다.

비행기에 탑승했다.

출발 예정시간은 오전 10시 15분.

시간도 거의 예정대로였다.

이제 활주로로 나가 바로 출발하나 싶었다.

그런데 비행기가 좀처럼 뜨지 않았다.

창밖을 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공항 한쪽에 회색 자위대 전투기들이 여러 대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전투기들이 계속 활주로 주변을 오가고 있었다.

고마쓰 공항은 일본 항공자위대 제6항공단이 주둔하는 공항이다.

“야, 전투기가 왜 이렇게 많어?”

한 대가 움직이면 또 다른 전투기가 보이고,
활주로 쪽에서는 계속 군용기 움직임이 이어졌다.

고마쓰공항은 민간공항과 자위대 기지가 함께 있는 곳이다.

이날도 훈련이 있었던 모양이다.

민항기를 타러 왔다가 뜻밖에 자위대 전투기 구경까지 하게 됐다.

“전투기가 끝도 없이 나오네.”

우리가 탄 비행기는 그렇게 약 15분 정도 기다렸다.

출발부터 크게 짜증날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언제 또 이렇게 일본 자위대 전투기들을 줄줄이 구경하겠나.

잠시 뒤 마침내 우리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속도가 붙더니 몸이 좌석 뒤로 살짝 밀렸다.

그리고 땅이 점점 멀어졌다.

창밖 아래로 고마쓰공항 활주로와 주변의 논밭, 마을이 한꺼번에 내려다보였다.

조금 더 고도를 높이자 해안선이 길게 나타났다.

바다와 육지가 선명하게 갈렸다.

조금 전까지 우리가 있던 공항과 활주로도 점점 작아졌다.

“안녕, 일본.”

이제 정말 끝이다.

비행기는 인천 하늘을 향해 방향을 잡았다.


7. 두 시간도 안 되는 거리인데 기내식까지

고마쓰에서 인천까지는 두 시간도 걸리지 않는 짧은 국제선이다.

그런데 대한항공에서는 이런 짧은 노선에도 기내식이 나온다.

일본으로 올 때도 기내식을 먹었기 때문에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도 나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침에는 따로 식사를 하지 않고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만 마셨다.

예상대로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내식이 나왔다.

“그려, 이거 먹을라고 아침 안 먹었지.”

ㅎㅎ.

뚜껑을 열어보니 밥과 고기, 초록색 채소가 들어간 따뜻한 식사였다.

옆에는 작은 빵과 과자,
제주 퓨어워터도 함께 나왔다.

커피도 한 잔 받았다.

두 시간도 안 되는 비행인데 이렇게 한 끼를 챙겨준다.

그리고 맛있었다.

나는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맛있게 먹었다.

마님은 그런 모습도 사진으로 남겼다.

“뭘 밥 먹는 것까지 찍어.”

하면서도 그냥 먹었다.

ㅋㅋㅋ.

아침을 커피 한 잔으로 끝냈으니 더 맛있었다.

마님과 나란히 앉아 기내식을 먹었다.

창밖에는 구름과 바다가 이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래쪽 해안과 섬들도 보였다.

이제 일본에서의 일정은 모두 뒤에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러다 문득 우리가 출발한 공항 이름이 생각났다.

고마쓰.

“고마쓰…… 고마씁니다.”

ㅋㅋㅋ.

이번 여행도 참 고마웠다.


8. 낮 12시, 다시 인천

낮 12시 정각.

비행기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고마쓰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도 되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긴 통로를 따라 입국장으로 이동했다.

익숙한 인천공항이다.

일본의 한산한 고마쓰공항에서 출발해 다시 거대한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니 분위기부터 완전히 달랐다.

입국심사장을 지나 수하물 찾는 곳으로 향했다.

전광판 시계를 보니 낮 12시 24분.

이제 캐리어만 찾으면 된다.

그런데 이놈의 캐리어가 금방 나오지는 않았다.

비행기가 도착하고 약 40분 정도 지나서야 짐까지 모두 챙길 수 있었다.

며칠 전 같은 캐리어를 끌고 일본으로 떠났는데 다시 그 짐을 끌고 한국 땅에 서 있었다.

이제 정말 모든 여행 절차가 끝났다.

마님과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9. “고마쓰, 고마씁니다.”

이번 여행도 그렇게 끝났다.

돌아보면 이번 여행에는 산과 기차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가나자와에서는 내가 오래도록 마음에 두고 있었던 위대하신 천하영웅 윤봉길 의사님의 흔적을 찾아갔다.

노다산의 암장지를 직접 찾아가 의사님이 순국하신 뒤 일제에 의해 유해가 묻혔던 바로 그 자리를 바라봤다.

거꾸로 묻혔다고 알려진 의사님의 암장지.

그곳에 직접 서 있으니 책이나 사진으로 접할 때와는 전혀 달랐다.

그리고 그 암장지를 찾아내고,
잊히지 않도록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애쓴 사람들의 흔적도 만났다.

윤 의사님은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로 일본군 수뇌부에 큰 타격을 입힌 뒤 체포되셨고,
그해 12월 19일 가나자와에서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셨다.

그리고 의사님은 바로 충청남도 예산 출신이다.

나 역시 충남사람이다.

그 사실 때문에 노다산에서 느낀 마음은 더 남달랐다.

멀리 일본 땅까지 와서,
같은 충남 땅에서 태어난 한 젊은이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지고 마지막에는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평소에도 윤봉길 의사님을 위대하신 천하영웅이라 생각해왔지만,
그분의 마지막 흔적이 남은 땅에 직접 서보니 존경심이 더 커졌다.

“의사님, 같은 충남사람인 제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암장지를 바라봤던 기억은 이번 여행에서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가나자와에서 만난 윤봉길 의사님의 숨결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무겁고도 뜻깊은 기억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기억들이 이어진다.

다카오카와 아마하라시에서는 바다와 설산이 함께 어우러지는 풍경을 보았다.

아마하라시 해안에서 바다 건너 산을 바라보고,
기차와 바다와 작은 마을이 어우러지는 풍경 속을 걸었다.

비 내리는 쿠로베 협곡에서는 토롯코열차를 타고 네코마타까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비에 젖은 짙은 초록의 산,
산허리에 걸린 구름,
깊은 계곡과 철교,
그리고 험한 산속에 만들어진 발전시설까지.

그날은 비가 와서 더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토록 기다렸던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를 넘어왔다.

일본에 온 뒤 매일 라이브카메라를 확인하며 날씨를 걱정했는데,
정작 우리가 가는 날은 하늘이 거짓말처럼 맑았다.

5월 말의 새하얀 무로도 설원,
영화 『비밀』을 보고 언젠가는 꼭 가보겠다고 마음먹었던 유키노오타니,
설산 사이로 내려다본 구로베호,
그리고 토목기술자인 내 눈을 사로잡았던 거대한 구로베댐.

어제는 해발 2,450m 무로도의 눈밭과 유키노오타니를 걷고 있었는데,

하루가 지난 오늘은 다시 인천에 와 있다.

여행은 참 빠르다.

떠나기 전에는 한참 남은 것 같다가도 막상 시작하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래도 사진은 남고,

마님과 함께 보고 걷고 웃었던 기억도 남는다.

그리고 마지막 아침 열차 안에서 바라본 설산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안녕. 이제 진짜 안녕이야.”

그렇게 북알프스 알펜루트와 작별하고 고마쓰공항에서 일본을 떠났다.

“고마쓰, 고마씁니다.”

ㅋㅋㅋ.

위대하신 천하영웅 윤봉길 의사님의 숨결을 만났던 가나자와도,

바다와 설산을 함께 바라봤던 아마하라시도,

비와 구름 속 쿠로베 협곡도,

눈부시게 맑았던 다테야마와 유키노오타니도,

모두 참 좋았다.

그리고 그 모든 곳을 사랑하는 마님과 함께했다.

“마님, 이번 여행도 정말 고생했수다.”

이렇게 아내와 함께한 일본 북알프스 알펜루트 여행을 모두 마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
두경아 지음 / 길벗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내와 함께하는 일본 알펜루트 여행기

여행 4일차, 2026.05.25.(월요일)
드디어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를 넘다-2편


19. 오전 9시 40분, 드디어 유키노오타니를 걷다

무로도 고원을 한 바퀴 돌아 다시 터미널 쪽으로 돌아왔다.

오전 9시 30분이 지나면서 드디어 유키노오타니 설벽 산책로가 개방됐다.

우리는 오전 9시 40분경 설벽으로 향했다.

아까 버스를 타고 지나왔던 바로 그 길을 이번에는 직접 걷는다.

밖으로 나가자 먼저 ‘立山・雪の大谷, Tateyama Snow Wall’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해발 2,390m.

기온 8℃.

그리고 오늘의 설벽 높이 11m.

2026년 5월 25일이라는 날짜까지 정확하게 적혀 있었다.

“11미터구만.”

예전에 유키노오타니의 가장 높은 설벽이 20m에 육박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조금은 아쉬웠다.

“4월 개장하자마자 왔어야 했나.”

5월 말이다 보니 그동안 눈이 많이 녹은 모양이었다.
우리가 찾은 이날 현지 안내판에 표시된 최고 높이는 11m였다.

그래도 막상 그 앞에 서보니 11m도 엄청났다.

사람 키의 몇 배나 되는 눈벽이 도로 양쪽으로 길게 이어졌다.

마님과 나는 설벽에 붙어 사진부터 찍었다.

한쪽 다리를 들고 벽에 기대보기도 하고,

두 팔을 활짝 벌려보기도 하고,

설벽을 기어오르는 시늉도 해봤다.

“ㅎㅎ 이거 재밌네.”

눈벽에는 겨울 동안 쌓인 눈의 층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하얀색과 회색빛 선들이 여러 겹 겹쳐져 있었다.

한 번에 쌓인 눈이 아니라 수많은 눈과 바람,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낸 벽이라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조금 더 걸어가자 ‘雪の大谷 最高地点 11m’라고 적힌 표지판이 나타났다.

오늘 가장 높은 설벽 지점이었다.

그 앞에서도 마님과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은 계속 몰려들었다.

설벽 사이 도로가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우리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
눈벽을 만져보는 사람,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탄하는 사람들.

가끔 고원버스도 설벽 사이 도로를 지나갔다.

아까 우리가 버스를 타고 지나왔던 모습을 이제는 밖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영화 『비밀』이 떠올랐다.

영화에서 처음 보고

“저기가 어디여. 언젠가는 꼭 가봐야겄다.”

생각했던 바로 그곳이다.

그 장소를 지금 사랑하는 마님과 함께 직접 걷고 있었다.

사진으로 볼 때와는 전혀 달랐다.

눈벽의 높이도,
차가운 공기도,
파란 하늘과 하얀 눈의 대비도 직접 와봐야 느낄 수 있었다.

5월 말에 이렇게 거대한 눈벽 사이를 걷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고 즐거웠다.

“오…… 내가 진짜 여길 왔구만.”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뒀던 장소 하나를 이렇게 직접 밟았다.


20. 오전 10시 10분, 이번에는 산속을 뚫고 다이칸보로

유키노오타니에서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다시 무로도 터미널로 돌아왔다.

이제 알펜루트 횡단을 계속해야 한다.

오전 10시 10분경 다이칸보로 가는 다테야마 터널 전기버스에 올랐다.

조금 전까지는 파란 하늘 아래 눈밭을 걷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산속으로 들어간다.

버스는 다테야마 산체를 뚫어 만든 터널 속을 달렸다.

창밖 풍경은 없다.

콘크리트 벽과 터널 조명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이것 역시 알펜루트의 재미였다.

산을 올라오는 동안 케이블카와 고원버스를 탔고,

이제는 산 자체를 관통하는 전기버스를 탄다.

눈 위로 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산속을 뚫고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셈이었다.

다테야마를 횡단하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해졌다.

약 15분 뒤.

오전 10시 25분경 다이칸보에 도착했다.


21. 해발 2,316m 다이칸보, 설산과 구로베호를 내려다보다

다이칸보는 해발 2,316m.

역 밖 전망대로 올라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는 순간 또 감탄사가 나왔다.

“와…….”

우리가 조금 전까지 있던 무로도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앞쪽으로는 검고 뾰족한 산들이 거대한 벽처럼 솟아 있었고, 산 아래 깊은 골짜기에는 에메랄드빛 구로베호가 보였다.

그 뒤로 또다시 눈을 뒤집어쓴 북알프스의 산들이 길게 이어졌다.

오늘 정말 설산은 원 없이 본다.

하지만 볼 때마다 또 좋았다.

마님과 전망대 난간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둘이 셀카도 찍고,

마님 혼자도 찍고,

나도 설산과 구로베호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다.

전망대에는 주변 산들의 이름과 높이를 표시한 안내판도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산들이 그냥 이름 모를 산이 아니라 하나하나 이름과 높이를 가진 북알프스의 봉우리들이었다.

그리고 다이칸보에는 재미있는 곳이 하나 더 있었다.

눈을 파서 만든 터널 같은 공간이었다.

‘雪のポケット’, 눈의 포켓.

사람 키보다 높은 눈을 파내 마치 동굴처럼 만들어 놓았다.

밖은 햇빛이 쨍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완전히 눈 동굴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마님과 나란히 입구에 서서 사진도 찍고,

안쪽에서도 또 사진을 남겼다.

“오늘 눈은 정말 원 없이 만져보네.”

무로도에서는 넓은 설원과 유키노오타니의 높은 설벽을 봤다면,

다이칸보에서는 설산 아래로 깊게 내려앉은 구로베호와 북알프스의 험준한 산세를 내려다봤다.

같은 알펜루트 안에서도 장소를 하나 옮길 때마다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22. 오전 10시 50분, 로프웨이를 타고 허공을 건너다

다이칸보에서 다음 목적지는 구로베다이라다.

이번에 탈 것은 다테야마 로프웨이.

오전 10시 50분 출발편이었다.

역 안으로 들어가니 또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승강장 앞에는 로프웨이를 타려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줄을 서 있었다.

“야, 오늘 사람 머리 구경도 원 없이 허네.”

ㅋㅋㅋ.

드디어 차례가 되어 로프웨이에 올라탔다.

이번에는 정말 공중에 매달려 가는 케이블카였다.

다이칸보와 구로베다이라 사이를 지지기둥 없이 한 번에 연결한다.

출발하자 발아래로 산비탈이 멀어졌다.

아래에는 아직 눈이 많이 남아 있었고,

멀리에는 구로베호와 험준한 산들이 펼쳐졌다.

맞은편에서는 반대 방향 로프웨이가 산비탈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알펜루트가 얼마나 깊은 산속에 만들어져 있는지가 더욱 실감났다.

조금 전까지 우리가 서 있던 다이칸보는 점점 멀어졌다.

한쪽에는 눈 덮인 산,

한쪽에는 초록이 올라오기 시작한 산.

겨울과 봄의 경계 위를 공중으로 건너는 느낌이었다.

“이야…… 이것도 끝내준다.”

오늘은 타는 것마다 다 재미있었다.


23. 오전 11시경, 구로베다이라에서 또 설산 구경

오전 11시경 구로베다이라에 도착했다.

다이칸보에서 내려오니 고도는 조금 낮아졌지만 여전히 주변에는 눈이 많이 남아 있었다.

구로베다이라 전망대로 올라갔다.

밖으로 나가자 다시 산들이 펼쳐졌다.

조금 전 다이칸보에서 바라보던 산들을 이번에는 다른 높이와 다른 각도에서 보고 있었다.

검은 바위산 사이로 하얀 눈이 골짜기를 따라 길게 남아 있었다.

반대편으로는 우리가 로프웨이를 타고 내려온 다이칸보 쪽 산이 올려다보였다.

맑은 하늘 아래 설산의 윤곽이 아주 선명했다.

“오늘 진짜 설산 원 없이 본다.”

마님과 전망대를 천천히 돌아다니며 또 사진을 찍었다.

이날 하루 도대체 사진을 몇 장이나 찍었는지 모르겠다.

사진을 찍다가 전망대 야외 테이블에 잠시 앉았다.

아침에 가져온 간식도 조금 꺼냈다.

바나나 하나를 들고 또 설산을 바라봤다.

“이야, 바나나 맛도 좋네.”

해발 높은 산속 전망대에 앉아 눈 덮인 산을 바라보며 먹는 간식.

별것 아닌데 이런 것도 여행에서는 기억에 남는다.

마님은 또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로 산을 찍고,

마님은 휴대전화로 또 찍고.

오늘 둘이 완전히 사진에 미쳐 있었다.

파란 하늘과 설산.

눈이 녹으면서 초록빛을 되찾기 시작한 산비탈.

그리고 저 멀리 계속 이어지는 북알프스 산줄기.

잠시 전망대에서 쉬며 풍경을 충분히 바라봤다.

이제 다음은 구로베호다.

오전 11시 30분.

이번에는 구로베 케이블카를 타고 산속 터널을 따라 아래로 내려갈 차례다.


24. 오전 11시 30분, 구로베 케이블카를 타고 구로베호로

구로베다이라에서 설산 풍경을 충분히 즐긴 뒤 다시 이동할 시간이 됐다.

오전 11시 30분.

이번에는 구로베 케이블카를 타고 구로베호로 내려간다.

승강장으로 내려가니 빨간색과 크림색으로 칠해진 작은 케이블카가 기다리고 있었다.

구로베 케이블카는 지금까지 타고 온 교통수단들과 또 달랐다.

산비탈을 따라 밖으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전 구간이 터널 속에 있다.

차량에 올라 자리를 잡았는데, 이 케이블카 좌석이 엄청나게 좁았다.

가방을 벗고 앉았어야 하는데 나는 백팩을 등에 멘 채 그대로 앉아버렸다.

등을 뒤로 기대면 가방이 등받이에 걸리고, 그렇다고 공간이 좁아서 다시 일어나 가방을 벗을수도 없었다.

결국 가방이 의자 뒤에 닿지 않도록 몸을 앞으로 잔뜩 숙이고 고개까지 푹 숙인 우스꽝스러운 자세가 되어버렸다.

마님이 그 모습을 놓칠 리가 없다.

사진을 찍는데 나도 내 꼴이 우스워 웃음이 터졌다.

조금 쪽팔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내려가는 모습까지 사진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그래도 이동시간은 길지 않았다.

약 5분 뒤 구로베호역에 도착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역명판 앞에서도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이제 드디어 오늘 알펜루트 횡단에서 꼭 보고 싶었던 또 하나의 장소,

구로베댐이다.


25. 터널을 빠져나오자 나타난 구로베댐

구로베호역에서 사람들을 따라 터널을 걸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통로를 지나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시야가 확 트였다.

“와…….”

눈앞에 거대한 구로베댐과 구로베호가 나타났다.

아까 다이칸보와 구로베다이라에서 멀리 내려다보던 구로베호를 이제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물 색깔이 참 예뻤다.

푸른빛과 초록빛이 어우러진 구로베호의 물빛이 햇빛을 받아 더욱 선명했다.

호수 주변에는 연두색 신록이 한창이었고,

그 뒤로는 아직 눈을 잔뜩 이고 있는 산들이 솟아 있었다.

하늘까지 맑았다.

5월 말의 봄과 겨울이 한 화면 안에 함께 들어와 있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호수를 막아선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구로베댐이었다.

댐 위를 직접 걸어 반대편까지 건너가야 한다.

마님과 나는 천천히 댐 위를 걷기 시작했다.


26. 높이 186m, 구로베댐 한가운데 서다

구로베댐 위를 걸어가다 중간쯤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난간에는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ここは黒部ダム中心」
‘여기는 구로베댐 중심.’

그리고 그 옆에 숫자가 적혀 있었다.

댐 높이 186m.
댐 길이 492m.
표고 1,454m.

“186미터여?”

숫자로만 보면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난간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찔했다.

댐 아래쪽 계곡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였다.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이 웬만한 고층건물 꼭대기보다도 높은 곳이라는 사실이 그제야 몸으로 느껴졌다.

반대쪽을 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거대한 구로베호가 산 사이로 길게 뻗어 있고,

멀리 눈 덮인 산들이 호수 끝을 둘러싸고 있었다.

마님과 함께 구로베호를 배경으로 셀카도 찍었다.

오늘 아침부터 수없이 많은 풍경을 봤는데 또 사진을 찍는다.

그래도 이건 안 찍을 수가 없었다.

거대한 댐 한가운데 서서 한쪽으로는 호수를 보고,

다른 한쪽으로는 186m 아래의 계곡을 내려다보는 경험은 흔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27. 역시 우리 토목기술자의 위대함이여

댐을 건너며 가까이서 보니 구로베댐의 규모가 더욱 실감났다.

댐은 일자로 뻗은 벽이 아니라 산과 산 사이를 막으며 활처럼 휘어져 있었다.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계곡을 가로막고 있었고, 한쪽에는 푸른 구로베호의 물이 가득 차 있고 벽 하나 너머는 까마득한 계곡이었다.

높이 186m, 길이 492m.

숫자로만 보면 큰 댐이라는 정도인데 직접 그 위를 걸어보니 규모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댐이 만들어진 역사를 생각하면 더 놀랍다.

구로베댐과 구로베가와 제4발전소 건설은 1956년에 시작해 1963년에 완성됐다.

무려 7년에 걸친 대공사였다.

총공사비는 당시 513억 엔.

이것이 어느 정도의 돈이었는지 감이 잘 오지 않아 1963년 물가를 기준으로 현재 가치로 환산해보면 약 2,657억 엔, 현재 환율로 우리 돈 약 2조 4천억 원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다목적댐인 대청댐과 비교해보면 그 규모가 조금 더 실감난다.

대청댐은 1975년 착공해 1980년 준공했으며 총사업비는 당시 약 1,557억 원이었다. 이를 1980년 소비자물가를 기준으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9천억 원 정도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현재 가치로 보면 구로베댐 건설에는 대청댐의 약 2.7배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 셈이다.

연인원 약 1,000만 명이 공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오마치 쪽에서 터널을 뚫던 중에는 물과 부서진 암반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파쇄대를 만나 공사가 한동안 막혔다.

길이 약 80m에 불과한 그 구간을 돌파하는 데만 7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조사와 건설 과정에서 17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전기버스를 타고 터널을 지나고, 댐 위를 걸으며 경치를 보고 있지만 이 모든 시설은 당시 사람들의 엄청난 노동과 희생 끝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댐을 바라보는 느낌도 조금 달라졌다.

“야…… 역시 우리 토목기술자의 위대함이여.”

토목기술자인 내 눈에는 단순한 관광지로만 보이지 않았다.

이 깊은 산속에 길을 내고, 터널을 뚫고,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우고, 물을 막아 발전까지 가능하게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했다.

사진으로 볼 때는 그저 큰 댐이었는데 직접 그 위를 걸어보고 역사를 알고 나니 왜 구로베댐이 일본 토목사의 상징처럼 여겨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더구나 주변 풍경도 기가 막혔다.

짙은 녹색의 산, 막 돋아난 연두색 신록, 그 사이로 이어지는 깊은 계곡, 그리고 그 뒤에 솟아 있는 하얀 설산.

인간이 만든 거대한 댐과 북알프스의 자연이 한눈에 들어왔다.


28. 전망대로 올라가는 끝없는 계단

댐을 건넌 뒤 안내판을 보니 위쪽으로 ‘댐 전망대’와 ‘방수 관람 스테이지’가 표시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다.

“전망대 올라가야지.”

그런데 계단을 보니 만만치 않았다.

산비탈을 따라 빨간 계단이 끝없이 이어졌다.

마님과 함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무로도 고원을 걷고, 유키노오타니 설벽도 걸었고, 계속해서 타고 걷기를 반복한 뒤라 다리가 슬슬 무거워질 때였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구로베댐 전망대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한 계단,

또 한 계단.

계단을 오르다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았다.

올라갈수록 조금 전 우리가 걸어왔던 댐이 아래로 내려가고, 활처럼 휘어진 구로베댐의 모습이 점점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구로베호의 예쁜 물빛도 위에서 내려다보니 더욱 선명했다.

“야, 올라오길 잘혔다.”

힘은 들었지만 높이 올라갈수록 풍경이 그만큼 보답해주었다.


29. 표고 1,508m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구로베댐

마침내 전망대에 올라섰다.

‘黒部ダム 展望台休憩所
KUROBE DAM REST HOUSE
標高 1,508M’

표지판이 서 있었다.

댐 위가 표고 1,454m였으니 50m 넘게 더 올라온 셈이다.

그리고 여기서 내려다보니 구로베댐의 진짜 규모가 제대로 보였다.

활처럼 휘어진 거대한 댐의 곡선,

그 뒤를 가득 채운 구로베호의 물,

호수 양쪽을 감싸고 있는 초록빛 산,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하얀 설산까지.

아래에서 볼 때와는 또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이야…… 여기가 제대로네.”

짙은 산과 하얀 설산 사이에 푸른빛과 초록빛이 감도는 호수가 길게 들어앉아 있었다.

마님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마님 혼자도 찍고,

나도 찍고,

둘이 셀카도 찍었다.

나는 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구로베댐을 찍었다.

아침부터 카메라와 휴대전화를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눈앞에 이런 풍경이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오늘 하루 날씨가 도와준 것이 정말 고마웠다.

파란 하늘 아래 구로베호의 물빛도 선명했고 멀리 설산까지 깨끗하게 보였다.

알펜루트를 횡단하며 하루 종일 보아온 설산과 신록,

그리고 거대한 구로베댐과 구로베호가 한 장면 안에 모두 들어와 있었다.

전망대에 올라오길 정말 잘했다.


30. 다시 내려와 오기사와행 전기버스 승강장으로

전망대에서 충분히 구로베댐을 내려다본 뒤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올라올 때 힘들었던 계단을 이번에는 거꾸로 내려간다.

알펜루트 횡단도 이제 거의 마지막이다.

오기사와행 전기버스 승강장으로 가는 길은 우리가 올라왔던 길과 달랐다. 반대편 산속으로 이어지는 터널식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조금 전까지 파란 하늘 아래 구로베댐과 설산을 보고 있었는데 다시 콘크리트 터널 속으로 들어왔다.

통로 한쪽에는 물이 흘러나오는 곳도 있었다.

마님이 손을 내밀어 물을 만져봤다.

그렇게 터널을 따라 걸어 전기버스 승강장으로 향했다.

오기사와(扇沢)로 가는 전기버스 안내가 보였다.
전광판에는 우리가 탈 버스가 표시되어 있었다.

‘扇沢行 12:35発’

오기사와행 오후 12시 35분 출발.

시간이 조금 남아 승강장에서 잠시 기다렸다.

새벽부터 산을 오르고 눈길을 걷고 여러 교통수단을 갈아타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 이 산을 빠져나가는 마지막 교통수단 하나만 남았다.


31. 오후 12시 35분, 알펜루트 마지막 전기버스에 오르다

오후 12시 35분.

드디어 오기사와행 전기버스가 출발할 시간이 됐다.

승강장에는 흰색 차체에 붉은색 선이 들어간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앞에서도 사진을 한 장 남겼다.

나는 카메라를 멘 채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렸다.

“자, 이제 오기사와로 진격의 거인.”

오늘 아침 비조다이라에서 무로도로 올라갈 때는 내가 에렌, 마님이 미카사라고 했는데 벌써 알펜루트의 마지막 구간이다.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다시 터널이었다.

구로베댐과 오기사와를 잇는 산속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오늘 하루 참 별것을 다 타봤다.

다테야마역에서 시작해 여러 교통수단을 차례로 갈아타며 산 하나를 통째로 넘어왔다.

버스가 천천히 출발했다.

구로베댐을 뒤로하고 오기사와를 향해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32. 오후 12시 50분경, 오기사와에 도착하다

오후 12시 35분 구로베댐을 출발한 전기버스는 긴 간덴터널 속을 달렸다.

이번 터널은 느낌이 조금 달랐다.

이 터널을 빠져나가면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 횡단이 사실상 끝난다.

오후 12시 50분경.

전기버스가 오기사와(扇沢)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괜히 마음이 뿌듯했다.

“마님, 우리 진짜 넘어왔네.”

도야마 쪽 다테야마역에서 산으로 들어와 북알프스를 완전히 넘어 나가노현 오기사와까지 온 것이다.

그토록 기대했던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 횡단이 드디어 끝났다.

밖으로 나오니 조금 전까지의 설원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주변은 짙은 초록색이었다.

버스터미널 앞에는 여러 대의 버스가 서 있었고 주차장에는 자동차들이 빼곡했다.

산 위 무로도에서는 눈벽 사이를 걸었는데 불과 몇 시간 뒤 이곳에서는 신록이 한창이었다.

하나의 산 안에서 겨울과 봄을 모두 지나온 셈이었다.

이제 나가노로 간다.


33. 오기사와에서 잠시 숨을 돌리다

나가노행 버스 출발은 오후 1시 40분경이었다.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 버스 승차장을 확인했다.

안내판에는 나가노역과 시나노오마치역 방면 버스가 표시되어 있었다.

시간이 남아 터미널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2026年 05月25日’ 날짜가 들어간 알펜루트 포토스팟도 있었고 한쪽에는 커다란 곰 박제도 전시되어 있었다.

“야, 이런 놈 산에서 실제로 만나믄 큰일나겄네.”

벽에는 ‘고생하셨습니다. 알펜루트 마지막 매점입니다’라는 안내도 보였다.

정말 알펜루트의 끝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침부터 계속 시간을 맞춰 움직였던 터라 잠시 쉬는 시간도 반가웠다.


34. 오후 1시 40분, 오마치의 산과 마을을 지나 나가노로

오후 1시 40분경 나가노행 버스에 올랐다.

이제 북알프스를 등지고 나가노로 가는 길이다.

오기사와를 벗어나자 산길이 이어졌다.

조금씩 고도가 낮아지면서 넓은 계곡과 초록색 산들이 나타났고 버스는 오마치온센쿄(大町温泉郷)를 지나 시나노오마치 시가지로 들어갔다.

창밖으로 붉은 지붕의 시나노오마치역(信濃大町駅)도 보였다.

시나노오마치를 지나자 다시 논과 밭, 작은 농가들이 이어졌다.

물이 찬 논과 초록빛 마을 뒤로는 아직 눈을 이고 있는 북알프스의 산들이 계속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 산에서 그렇게 내려왔는디도 아직 설산이 보이네.”

산 아래는 완전히 봄인데 멀리 높은 산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조용한 산촌과 작은 마을, 물길을 차례로 지나며 버스는 나가노를 향해 계속 달렸다.

한참 뒤 건물들이 점점 많아졌다.

버스 앞 모니터에 마침내

‘長野駅東口’

나가노역 동쪽 출구가 표시됐다.

길었던 산길이 끝나고 다시 도시로 들어왔다.


35. 오후 3시 20분경, 나가노역에 도착

오후 3시 20분경 나가노역 동쪽 출구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역으로 걸어갔다.

조금 전까지 산과 논, 작은 마을 사이를 지나왔는데 이제 눈앞에는 커다란 JR 나가노역이 있었다.

우리가 탈 열차는 오후 3시 56분 쓰루가행 호쿠리쿠신칸센이었다.

승강장으로 올라갔다.

역명판에는 ‘長野 NAGANO’.

시간이 조금 남아 승강장에서 쿠키도 하나 먹었다.

잠시 뒤 우리가 탈 신칸센이 들어왔다.

이제 다시 도야마로 돌아간다.


36. 오후 3시 56분, 신칸센을 타고 다시 도야마로

오후 3시 56분.

쓰루가행 호쿠리쿠신칸센에 올랐다.

붉은색 계열 좌석이 이어진 객차에 마님과 자리를 잡았다.

하루 종일 걷고 이동한 뒤 푹신한 좌석에 앉으니 몸이 편안해졌다.

열차가 나가노역을 출발했다.

창밖으로 시가지와 산들이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

갈 때는 하루 종일 북알프스를 직접 넘어왔지만 돌아오는 길은 신칸센이라 금세 지나갔다.

마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창밖도 바라보며 도야마로 돌아왔다.

오후 4시 55분경 도야마역에 도착했다.

11시간 걸려 도야마역에서 나가노역까지 알펜루트로 횡단한 거리를 신칸센으로 단 1시간만에 주파하여 돌아왔다.

신칸센의 위용이여

새벽에 이곳을 떠난 지 거의 12시간 만이었다.


37. 여행의 마지막 저녁, 스시 우미토야마

도야마역에 도착한 뒤 저녁을 먹으러 갔다.

오늘 저녁은 ‘鮨 海富山(うみとやま)’, 스시 우미토야마였다.

“오늘은 제대로 먹자.”

역시 일본에 왔으면 스시다.

테이블에는 여러 종류의 초밥이 차려졌다.

연어와 참치, 흰살생선 등 여러 가지 스시를 먹고 별도로 한 판을 더 주문했다.

바삭하게 튀긴 튀김도 곁들였다.

도야마에서 유명한 반딧불오징어도 먹었다.

조그만 몸집에 통째로 먹는 오징어인데 도야마를 대표하는 해산물 가운데 하나였다.

“역시 일본에서는 스시여.”

새벽부터 산을 넘고 눈길을 걸어 다닌 뒤라 더 맛있었다.

마님과 천천히 저녁을 먹으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자기야, 오늘 날씨 진짜 잘 걸렸지?”

정말 그랬다.

어제 쿠로베 협곡에서는 비와 구름이어서 좋았고 오늘 다테야마에서는 쨍하게 맑아서 좋았다.

이번 여행은 날씨까지 우리 편이었다.


38. 다시 HOTEL JAL CITY TOYAMA로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객실에 들어오니 이제야 정말 모든 일정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시작한 긴 하루였다.

몸은 피곤했지만 기분 좋은 피곤함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를 바라던 날씨 속에서 제대로 넘어왔다.

내일은 고마쓰공항으로 가서 인천으로 돌아가면 된다.

씻고 짐을 정리한 뒤 편하게 쉬었다.


39. “마님, 이번 여행도 고생했수다.”

드디어 이번 여행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이번에도 언제나 옆에는 마님이 있었다.

내가 사진을 찍느라 한참을 서 있으면 기다려주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 또 서주고,

좋은 풍경이 나타나면 같이 감탄하고,

내가 이상한 포즈를 취하면 같이 웃었다.

오늘도 새벽부터 함께 일어나 하루 종일 북알프스를 넘어왔다.

“마님, 이번 여행도 고생했수다.”

이제 내일이면 일본을 떠난다.

고마쓰공항으로 가서 인천으로 돌아간다.

이번 여행도 이렇게 끝이 났다.

새하얀 다테야마의 설산과 유키노오타니,

푸른 구로베호와 거대한 구로베댐,

그리고 그곳을 마님과 함께 걸었던 기억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이번 여행도 참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
두경아 지음 / 길벗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내와 함께하는 일본 알펜루트 여행기

여행 4일차, 2026.05.25.(월요일)
드디어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를 넘다-1편


1. 일본에 온 뒤 매일 확인했던 무로도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다렸던 날이 밝았다.

오늘은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를 횡단하는 날이다.

사실 일본에 도착한 뒤부터 나는 매일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 홈페이지에 들어가 무로도 라이브카메라를 확인하고 있었다.

오늘은 어떨까.

어떤 날은 파란 하늘 아래 설산이 기가 막히게 보였고, 어떤 날은 안개와 구름에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걸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빌었다.

“우리가 가는 날만큼은 제발 맑아라.”

알펜루트를 횡단하는 날 새벽에도 눈을 뜨자마자 라이브카메라부터 확인했다.

오전 4시 12분.

화면에 나타난 해발 2,450m 무로도는 내가 바라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떠오르기 전이었다.

눈 덮인 산 너머로 하늘이 주황빛으로 밝아오기 시작했고, 어둠이 조금씩 걷히면서 산의 능선과 골짜기에 남아 있는 눈이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로도 고원은 아직 온통 눈이었다.

5월 25일인데도 넓은 설원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나이스.”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무로도만 확인한 것이 아니었다.

알펜루트를 따라 다이칸보, 미다가하라, 구로베다이라, 구로베댐의 라이브카메라까지 차례로 확인했다.

해발 2,316m 다이칸보에는 산허리를 따라 구름이 조금 걸려 있었지만 그 위로 설산의 봉우리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해발 1,930m 미다가하라에는 넓은 설원이 펼쳐져 있었고 시야도 좋았다.

구로베다이라에서도 눈을 뒤집어쓴 산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화면마다 찍힌 시간은 오전 4시 12분에서 13분.

불과 몇 시간 뒤면 우리가 직접 저곳들을 지나가게 된다.

오늘은 되겠다.

일본에 온 뒤 며칠 동안 매일 라이브카메라를 들여다보며 날씨 때문에 마음을 졸였는데, 정작 우리가 알펜루트를 횡단하는 날 아침에는 하늘이 우리 편을 들어주는 것 같았다.

어제 쿠로베 협곡에서는 비가 내리고 산허리에 구름이 걸렸다.

나는 원래 비가 지나간 뒤 구름과 안개가 산을 감싸는 풍경을 좋아해서 어제는 그런 날씨가 오히려 좋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다테야마의 새하얀 설산과 유키노오타니를 보러 가는 날이다.

오늘만큼은 파란 하늘과 눈부신 설산을 보고 싶었다.

어제는 비와 구름이어서 좋았고,
오늘은 맑아서 좋다.

우리는 운이 좋은가 보다.

오늘은 쨍해야 하는 날이었다.


2. 새벽 4시 40분, 벌써 환한 도야마의 거리

오전 4시 40분경 호텔을 나섰다.

우리가 탈 열차는 덴테츠도야마역에서 오전 5시 10분에 출발하는 다테야마행 특별쾌속열차였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자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거리의 밝기였다.

“야, 이 시간인데 벌써 이렇게 환해?”

새벽 4시 40분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밝았다.

대낮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우리나라보다 동쪽에 있는 일본이라 해가 일찍 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새벽 거리에 나와 보니 실감이 났다.

아직 사람도 자동차도 거의 보이지 않는 도야마의 거리를 마님과 걸었다.

어제 비가 내리던 도야마와는 완전히 다른 아침이었다.

하늘은 밝아지고 있었고 오늘 하루 날씨가 좋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점점 커졌다.

오늘은 알펜루트를 횡단하는 날이다.

발걸음부터 달랐다.


3. 새벽부터 엄청난 줄, 덴테츠도야마역

오전 4시 50분경 덴테츠도야마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역 안으로 들어가자 깜짝 놀랐다.

“우와, 이 시간에 사람이 이렇게 많어?”

새벽 5시도 되지 않았는데 역 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매표소와 승강장으로 이어지는 곳에는 배낭을 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모두 우리처럼 다테야마와 알펜루트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표를 미리 구입해 놓았기 때문에 매표소 앞에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

바로 승차를 기다리는 줄에 합류했다.

전광판에는 오전 5시 10분 다테야마행 열차가 표시되어 있었다.

‘특별쾌속 다테야마.’

성인 1,000엔의 추가요금을 내야 하는 열차였다.

일반열차보다 돈을 더 내는 대신 다테야마까지 단숨에 달려가는 열차다.

드디어 승강장으로 들어갔다.

이른 새벽부터 몰려든 사람들을 보니 오늘 알펜루트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지 벌써 짐작이 갔다.

그래도 마님과 나는 자리를 잡았다.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앉아서 가야지.

오늘은 이제 시작이다.


4. 1,000엔 더 내고 다테야마로 단숨에

오전 5시 10분.

특별쾌속열차가 덴테츠도야마역을 출발했다.

무려 1,000엔이나 더 냈다.

그러니 제대로 달려줘야 한다.

어제 우나즈키온센으로 향하면서 지나갔던 철길을 오늘 다시 달렸다.

하지만 어제와 오늘은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어제는 이동 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산에는 구름이 걸렸다.

오늘은 아침부터 햇빛이 쏟아졌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들판과 논, 작은 마을들이 아침 햇살을 받았고 멀리에는 다시 눈을 뒤집어쓴 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제 보았던 설산인데 오늘 다시 보아도 좋았다.

열차는 빠르게 달렸다.

그리고 어제도 지나갔던 데라다역이 가까워졌다.

데라다역은 우나즈키온센으로 향하는 노선과 다테야마로 향하는 노선이 갈라지는 역이다.

어제는 이곳에서 우나즈키온센 방향 선로를 따라갔고, 오늘은 다테야마 방향으로 간다.

하지만 우리가 탄 열차는 특별쾌속이다.

데라다역에는 정차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했다.

어제는 쿠로베 협곡으로,
오늘은 다테야마로.

같은 데라다역을 지나지만 오늘은 어제와 다른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5. 이런 역도 남겨둔다고?

도야마 시가지를 벗어나면서 창밖 풍경은 조금씩 달라졌다.

논과 밭이 나타나고 작은 마을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산으로 들어갈수록 아주 작은 역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그런 역들을 볼 때마다 신기했다.

“일본은 참 대단혀.”

우리나라 같았으면 이용객이 적다는 이유로 진작 폐역시켜 버렸을 것 같은 역들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떤 곳은 정말 역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특히 오래된 역사는 눈길을 끌었다.

벽은 양철이나 골함석 같은 재료로 만들어져 있었고 곳곳이 벌겋게 녹슬어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그런데도 없애지 않았다.

열차는 여전히 그곳을 지나고 필요하면 사람을 태우고 내려준다.

특히 아리미네구치역(有峰口駅·ありみねぐちえき) 같은 작은 역도 그렇게 철길 옆에 남아 있었다.

번듯하고 새것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오래되고 작은 것들도 제자리에서 계속 역할을 하게 하는 모습.

나는 이런 풍경을 볼 때마다 일본 철도여행이 재미있다.

무조건 허물고 새로 짓는 대신, 구조적 기능만 유지된다면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안고 제 역할을 다하게 만드는 것이 일본 철도 인프라가 가진 뚜렷한 특징이지 싶다.

그리고, 화려함보다는 실용성과 보존을 택하는 방식이 험준한 산악 철도 시스템에도 그대로 녹아있는 것 같았다.


6. 첩첩산중(疊疊山中), 심산유곡(深山幽谷) 속으로

데라다역을 지나 다테야마 쪽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풍경은 완전히 산악지대로 바뀌었다.

첩첩산중(疊疊山中), 심산유곡(深山幽谷)

딱 그 말이 어울렸다.

산은 점점 높아졌고 철길 옆으로 깊은 계곡이 따라붙었다.

아침 햇빛을 받은 산은 온통 짙은 초록빛이었다.

그 사이로 계곡물이 흘렀다.

열차는 산과 산 사이를 파고들듯 달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계곡에는 작은 보와 사방댐 같은 구조물들이 연이어 나타났고, 물은 층층이 떨어지며 아래쪽으로 흘러갔다.

산비탈을 따라 난 도로와 터널도 보였다.

우리가 탄 열차가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눈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멀리 왼쪽으로 다테야마역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왔다.

어제 쿠로베 협곡에 이어 오늘은 다테야마다.

이제 정말 입산이다.

다테야마는 한자로 立山.

우리식 한자음으로 읽으면 ‘입산’이다.

속세를 떠나 산으로 들어갈 때도 입산한다고 하지 않는가.

“자, 이제 진짜 입산하는 겨.”

그리고 이곳부터 진짜 알펜루트가 시작된다.


7. 오전 6시, 입산역에 도착하다

오전 6시경 다테야마역에 도착했다.

아니, 오늘만큼은 ‘입산역’이라고 부르고 싶다.

다테야마역(立山駅). 해발 475m.

이름부터 오늘 일정에 딱 맞았다.

역 앞에는 ‘立山駅’과 함께 날짜까지 표시된 기념촬영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2026년 5월 25일.

오늘 우리가 이곳에 왔다는 기록이다.

나도 찍고 마님도 찍고 둘이 함께 사진도 남겼다.

오늘은 사진을 많이 찍어야 한다.

이제부터 보는 것 하나하나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다렸던 풍경일 테니까.

우리가 예약한 다테야마 케이블카는 오전 7시 출발편이었다.

역 안으로 들어가니 상황이 장난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었다.

매표소에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케이블카를 타려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졌다.

그런데 우리는 여유가 있었다.

이미 예약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케이블카 승차 줄에는 우리가 1번으로 섰다.

“ㅎㅎ 우리가 1번이네.”

이 맛에 미리 예약하는 거다.

한편 매표소 쪽에는 현장에서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계속 줄을 서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알펜루트에 예약도 하지 않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내 입장에서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이날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오전 7시 정규편에 이어 7시 10분 임시편까지 편성됐다.

전광판에도 07:00 출발,
그 아래에는 ‘次発 07:10発’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미 첫차를 기다리는 맨 앞자리.

이제 문만 열리면 된다.

다테야마역에서 비조다이라까지.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고원버스를 타고 해발 2,450m 무로도로 올라간다.

새벽 4시 12분 라이브카메라로 바라보았던 그 설산 속으로 이제 우리가 직접 들어간다.

알펜루트 횡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8. 오전 7시, 다테야마 케이블카 맨 앞에서 진격

드디어 다테야마 케이블카를 탈 시간이 됐다.

오전 7시 출발편.

우리는 승차 줄에 가장 먼저 서 있었기 때문에 케이블카가 들어오자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차량은 붉은색과 주황색 계열로 꾸며져 있었고 옆면에는 꽃과 새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케이블카와는 완전히 달랐다.

공중에 매달려 가는 것이 아니라 가파른 산비탈에 놓인 레일 위를 달리는 차량이었다.

“이게 무슨 케이블카여. 그냥 산악열차지.”

나는 진행방향 쪽 자리를 잡았다.

선로가 바로 눈앞으로 보였다.

출발하자 기다란 레일이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위로 뻗어 있었다.

보통 철도에서는 보기 힘든 경사였다.

케이블에 이끌려 올라가는 방식이기는 하지만 눈으로 보기에는 정말 작은 산악열차를 탄 것 같았다.

잠시 뒤 터널이 나타났다.

열차는 어두운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터널 벽 바로 옆으로 레일과 케이블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케이블카와 교행했다.

우리가 올라가면 반대편 차량은 내려간다.

좁은 산속 선로에서 두 차량이 엇갈려 지나가는 모습까지 맨 앞에서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고 눈으로도 열심히 바라봤다.

알펜루트를 시작하자마자 교통수단부터 재미있었다.


9. 오전 7시 7분경, 비조다이라에 도착

약 7분 정도 올라가 오전 7시 7분경 비조다이라(美女平)에 도착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びじょだいら BIJODAIRA’라고 적힌 역명판이 보였다.

이제부터는 다시 교통수단을 바꿔야 한다.

고원버스다.

안내판에는 무로도와 구로베댐, 오오기자와와 나가노 방면으로 가는 고원버스 승차장이 표시되어 있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린 사람들이 한꺼번에 계단을 올라 버스 승차장으로 향했다.

우리도 그 흐름을 따라갔다.

밖에는 흰색 차체에 붉은 무늬가 들어간 알펜루트 고원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이 버스를 타고 해발 977m의 비조다이라에서 해발 2,450m 무로도까지 단숨에 올라간다.

높이 차이만 해도 1,400m가 넘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테야마역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왔는데 이제는 버스를 타고 더욱 깊은 산속,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역 안 모니터에는 무로도와 다이칸보의 현재 모습도 나오고 있었다.

무로도 해발 2,450m, 기온 11.1도.

다이칸보 해발 2,316m, 기온 12.1도.

화면에 보이는 무로도의 설산은 여전히 깨끗했다.

“좋아. 날씨 살아있네.”

이제 저곳으로 직접 올라간다.


10. 오전 7시 17분, 에렌과 미카사 무로도로 진격의 거인

오전 7시 17분경 고원버스가 비조다이라를 출발했다.

“자, 무로도로 진격의 거인.”

오늘 나는 에렌이다.

그리고 옆에 앉은 마님은 미카사.

ㅋㅋㅋ.

버스가 출발하자 처음에는 울창한 숲길이 이어졌다.

창밖으로 거대한 삼나무들이 지나갔다.

어떤 나무는 굵기가 어마어마했다.

산 아래에서는 이제 완전히 봄을 지나 초여름으로 가는 풍경이었다.

나무에는 푸른 잎이 가득했고 햇빛도 강했다.

그런데 버스가 고도를 높일수록 조금씩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출발한 지 약 12분쯤 지났을 때 왼쪽 창밖 멀리 깊은 협곡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사이로 길고 하얀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쇼묘폭포였다.

“자기야, 저기 봐. 폭포.”

깊게 파인 협곡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가 멀리에서도 또렷하게 보였다.

잠깐 나타났다가 버스가 움직이면서 다시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버스 여행이라 원하는 곳에 멈출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이동하면서 하나씩 풍경이 나타나는 것도 재미있었다.


11. 초록의 산에서 눈의 나라로

버스가 계속 고도를 높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풍경이 확실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산 정상과 골짜기에 조금씩 남아 있던 눈이 점점 많아졌다.

눈이 남은 산들이 하나둘 나타났고 어느 순간부터는 창밖 어디를 보아도 설산이었다.

“와…….”

“이야…….”

마님과 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5월 25일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완연한 봄을 지나 초여름으로 가는 시기다.

그런데 눈앞에는 겨울 같은 산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검은 산 능선을 따라 하얀 눈이 줄무늬처럼 남아 있었고 골짜기마다 눈이 길게 이어졌다.

조금 더 올라가자 도로 주변까지 눈으로 덮이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 아래 새하얀 설원이 펼쳐졌다.

산 아래에서 보았던 초록색 숲은 어느새 사라지고 있었다.

멀리 아래쪽을 바라보면 우리가 올라온 평야가 희미하게 보였고 바로 주변에는 눈밭과 설산이 펼쳐졌다.

고도 차이가 만들어낸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이 계절에 이런 걸 볼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냐?”

그런데 일본에서는 가능했다.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어디를 찍어도 설산이었고 어디를 보아도 장관이었다.

아까 새벽 라이브카메라를 보며 ‘나이스’를 외쳤던 것이 다시 생각났다.

오늘 제대로 걸렸다.

날씨가 정말 끝내줬다.


12. 유키노오타니, 영화 『비밀』 속 그곳을 지나가다

무로도에 가까워질수록 도로 옆에 쌓인 눈이 점점 높아졌다.

처음에는 사람 키보다 낮았던 눈벽이 어느 순간 버스 창문 높이를 훌쩍 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설벽이 나타났다.

유키노오타니(雪の大谷).

눈의 대협곡이었다.

버스는 양쪽으로 높게 솟은 설벽 사이를 달렸다.

창문 바로 바깥으로 거대한 눈벽이 지나갔다.

눈은 한 덩어리의 흰 벽이 아니었다.

겨울 동안 눈이 여러 차례 쌓이고 굳으면서 생긴 층이 줄무늬처럼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오…… 내가 여기를 진짜 왔네.”

감격스러웠다.

유키노오타니는 내가 오래전부터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처음 이곳을 알게 된 것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비밀』을 영화로 만든 작품을 통해서였다.

영화 초반에 스키버스가 눈으로 뒤덮인 산길을 달린다.

운전기사는 돈을 벌기 위해 무리하게 운전을 계속하다가 피로가 쌓였고 결국 졸음운전을 하면서 사고를 낸다.

그 버스에 타고 있던 스기타 나오코와 딸 모나미도 사고를 당한다.

어머니 나오코는 죽고 딸 모나미는 살아남는다.

그런데 병원에서 깨어난 딸 모나미의 몸속에는 어머니 나오코의 인격이 들어와 있다.

몸은 딸인데 영혼은 엄마.

히로스에 료코가 딸 모나미를 연기했던 영화다.

참 재미있게 봤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버스가 거대한 눈벽 사이를 지나가는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기가 어디여? 나중에 꼭 한번 가봐야겄다.”

그곳이 다테야마의 유키노오타니였다.

그런데 지금 그 길을 마님과 함께 버스를 타고 지나고 있었다.

영화로 처음 본 장소를 실제로 찾아왔다는 것이 묘하게 감격스러웠다.

“자기야, 내가 영화에서 보고 꼭 와보고 싶다던 데가 여기여.”

창밖으로 설벽이 계속 지나갔다.

또 영화 『비밀』을 한번 보고 싶어졌다.


13. 오전 8시경 무로도, 먼저 눈의 회랑으로

오전 8시경 무로도에 도착했다.

해발 2,450m.

드디어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다렸던 장소에 발을 디뎠다.

그런데 우리가 버스를 타고 지나온 유키노오타니 설벽 산책로는 아직 들어갈 수 없었다.

입구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고 안내판에는 ‘SNOW WALL WALK’ 개방시간이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라고 적혀 있었다.

“아직 한 시간 반이나 남았네.”

그냥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무로도에는 볼 것이 많다.

우리는 먼저 눈의 회랑, 스노 코리도(Snow Corridor) 쪽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가자 파란 하늘과 눈밭이 한꺼번에 눈앞으로 들어왔다.

정말 새하얀 세상이었다.

눈을 파서 만든 길 양쪽으로 높은 눈벽이 이어졌다.

사람이 그 사이를 걸어가니 눈의 높이가 더 실감났다.

마님과 나도 눈의 회랑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부터 찍었다.

나 혼자 한 장.

마님과 둘이 한 장.

그리고 눈벽을 만져보았다.

5월 말에 이렇게 두꺼운 눈벽을 손으로 직접 만지고 있으니 참 신기했다.

“자기야, 손 한번 찍어봐.”

둘이 나란히 손바닥을 눈벽에 꾹 눌렀다.

눈 위에 마님 손자국과 내 손자국이 나란히 남았다.

한번 더.

또 한번.

사진도 남겼다.

별것 아닌 손자국인데도 이런 곳까지 마님과 함께 왔다는 기록 같아서 좋았다.

눈 속에 작은 인형을 올려놓고 사진도 찍고, 설벽에 기대 장난스러운 자세로 사진도 남겼다.

나도 한쪽 다리를 들고, 마님도 한쪽 다리를 들고.

ㅋㅋㅋ.

파란 하늘 아래 새하얀 눈벽 사이에서 둘이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아까 버스를 타고 올라오며 설산을 바라볼 때부터 계속 감탄했는데 막상 직접 눈 위를 걷고 눈벽을 만지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제 겨우 오전 8시를 조금 넘겼을 뿐이다.

유키노오타니 정식 개방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무로도 고원을 제대로 돌아보기로 했다.


14. 스키를 메고 설산을 오르는 사람들

눈의 회랑을 둘러본 뒤 본격적으로 무로도 고원을 걷기 시작했다.

주변 안내도를 보며 다테야마 무로도산장과 미쿠리가이케 쪽으로 향했다.

파란 하늘 아래 사방으로 설산이 펼쳐져 있었다.

눈이 녹아 드러난 돌길도 있었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다시 온통 눈밭이었다.

이런 풍경 속을 걷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그런데 설원 위를 걷다가 더 신기한 사람들을 보았다.

스키를 메고 산을 올라가는 사람들이었다.

스키장처럼 리프트나 곤돌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스키와 장비를 직접 짊어지고 눈 덮인 산을 걸어서 올라가고 있었다.

“야, 저 사람들은 스키에 미친 사람들인가 봐.”

저 높은 곳까지 자기 발로 올라간 뒤 스키를 타고 내려올 생각인 모양이었다.

타고 내려오는 것은 신나겠지만 그 한번을 위해 무거운 스키를 메고 설산을 올라간다.

나는 도저히 못할 짓 같았다.

그래도 저 사람들에게는 저게 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겠지.

5월 말인데도 아직 스키를 탈 수 있는 곳.

눈앞에 펼쳐진 무로도의 풍경을 보고 있으니 그 사람들이 굳이 장비를 짊어지고 여기까지 올라오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15. 설산 한가운데서 먹은 아침 아닌 아침

다테야마 무로도산장 쪽으로 걸었다.

눈밭 사이로 ‘立山室堂山荘’이라고 적힌 이정표가 보였다.

산장 주변에는 눈이 아직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우리는 산장 앞쪽에 마련된 야외 쉼터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아침 아닌 아침을 먹었다.

어제 도야마역 북쪽 로손에서 미리 준비해온 먹을거리들을 꺼냈다.

바나나, 샌드위치와 빵, 스타벅스 커피.

별것 아닌 편의점 음식이었다.

그런데 눈앞에는 새하얀 설원과 설산이 펼쳐져 있었다.

“자기야, 여기서 먹으니께 이것도 꿀맛이네.”

정말 그랬다.

호텔 조식이나 유명한 식당에서 먹는 아침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 있었다.

해발 2,450m 설산 한가운데 나무 테이블에 앉아 사랑스러운 마님과 함께 먹는 아침이었다.

바나나 하나를 먹으면서도 자꾸 산을 바라보게 됐다.

사진도 찍었다.

먹다가 찍고,
산을 보다가 찍고,
마님과 같이 또 찍었다.

아침 4시부터 움직였으니 배도 고팠다.

맑은 하늘과 눈부신 설산을 바라보며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다.

여행에서는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디에서 누구와 먹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이날 아침이 그랬다.


16. 뇌조를 만나고, 눈을 파내는 미니 포클레인까지

무로도산장 주변에서 뜻밖의 녀석도 만났다.

눈과 돌이 드러난 길가에 새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 저거 뇌조 아녀?”

몸에는 갈색과 검은색 무늬가 섞여 있었고 배 쪽은 하얬다.

눈 위쪽에는 붉은색도 선명하게 보였다.

가까이에서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다리에 무언가가 채워져 있었다.

표식처럼 보였다.

사람이 가까이 있는데도 크게 놀라 달아나지 않았다.

“얘는 산장에서 키우는 애인가?”

그때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다리에 달린 표식 때문이었다.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야생의 설원에서 저렇게 가까이 새를 보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이번에는 전혀 다른 장면이 나타났다.

작은 굴착기 한 대가 엄청난 양의 눈 속에 파묻히다시피 들어가 눈을 퍼내고 있었다.

커다란 제설차도 아니고 조그만 미니 포클레인이었다.

그 작은 장비가 산더미처럼 쌓인 눈을 한 삽씩 퍼내면서 길을 만들고 있었다.

“야, 5월 말에 아직도 눈을 파서 길을 뚫고 있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우리가 걷는 길 양옆으로도 사람 키보다 높은 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겨울 동안 얼마나 많은 눈이 내렸는지를 눈앞에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곳에서는 봄이 와도 눈이 녹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눈을 파내야 길이 다시 열리는 모양이었다.

산장 주변에서 뇌조 같은 새를 만나고, 바로 근처에서는 작은 굴착기가 설산을 파고 있었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무로도의 조금 특별한 풍경이었다.


17. 미쿠리가이케와 무로도 고원을 걷다

아침을 먹은 뒤 다시 무로도 고원을 걷기 시작했다.

주변은 정말 어디를 바라봐도 그림이었다.

파란 하늘 아래 새하얀 눈밭이 이어졌고 그 뒤로 검은 산줄기와 눈이 만들어낸 무늬가 선명하게 펼쳐졌다.

눈이 녹은 곳에서는 키 작은 고산식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눈밭과 초록색 관목 사이로 돌을 깔아 만든 산책로가 이어졌다.

어떤 곳은 눈이 완전히 녹아 돌길이 드러났고, 조금만 걸으면 다시 눈길이 나타났다.

마님과 천천히 걸었다.

사진을 찍지 않고 지나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자기야, 거기 서봐.”

이번에는 마님을 세워놓고 찍고,

조금 뒤에는 내가 서서 찍었다.

둘이 같이 셀카도 남겼다.

산책로를 걷다 보니 커다란 바위에 붉은 글씨로 표시된 표석도 보였고, 라이초소(雷鳥荘)와 미쿠리가이케 방면을 알려주는 이정표도 나타났다.

하늘에서는 헬리콥터 한 대가 무언가를 길게 매달고 날아갔다.

도로로 물자를 실어 나르기 어려운 높은 산이다 보니 산장이나 시설에 필요한 물자를 옮기는 것 같았다.

설산을 배경으로 헬리콥터가 물건을 매달고 날아가는 모습도 이곳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조금 더 가자 화산가스에 주의하라는 안내판도 보였다.

이 주변 아래쪽에는 지고쿠다니가 있다.

눈 덮인 고요한 설산의 모습만 보고 있으면 잊기 쉽지만 이곳 다테야마가 화산활동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산이라는 것도 실감났다.

한쪽에는 여전히 겨울 같은 설원이 펼쳐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눈이 녹으면서 초록색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겨울과 봄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것 같았다.


18. 엔마다이에서 아이스크림, 얼어붙은 미쿠리가이케

엔마다이, 지고쿠다니를 내려다보는 전망대 쪽까지 걸어왔다.

주변에는 눈 덮인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었다.

그리고 미쿠리가이케온천 앞에서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샀다.

연보라색 소프트아이스크림이었다.

“이런 데 왔으니 아이스크림도 먹어줘야지.”

설산을 배경으로 아이스크림을 들고 사진부터 찍었다.

내 것과 마님 것을 나란히 맞대어 건배하듯 사진도 한 장 남겼다.

나는 설산을 바라보며 한입 크게 먹었다.

차가운 눈밭에서 먹는 차가운 아이스크림.

이상한 조합인데 또 맛있었다.

그리고 미쿠리가이케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사진에서 보던 짙고 푸른 미쿠리가이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호수 대부분이 아직 눈과 얼음에 덮여 있었다.

가장자리 일부에서만 얼음이 녹으면서 옥빛 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얀 얼음 사이로 드러난 푸른빛이 오히려 더 신기했다.

그 뒤로는 눈 덮인 다테야마의 산들이 둘러서 있었다.

완전히 녹은 여름의 미쿠리가이케도 아름답겠지만 우리가 본 것은 5월 말에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마님과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도 남겼다.

아침부터 설산을 원 없이 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질리지가 않았다.

어디를 돌아봐도 또 다른 산이 있었고,
몇 걸음만 옮겨도 풍경이 달라졌다.

이제 시간이 제법 흘렀다.

우리가 기다리던 오전 9시 30분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드디어 유키노오타니 설벽을 직접 걸으러 갈 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
두경아 지음 / 길벗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내와 함께하는 일본 알펜루트 여행기

여행 3일차, 2026.05.24.(일요일)
비 내린 산과 협곡, 쿠로베 토롯코열차를 타다


1. 새벽 5시 기상, 오늘은 쿠로베 협곡으로

아침 5시에 눈을 떴다.

오늘은 쿠로베 협곡으로 가는 날이다.

덴테츠도야마역에서 오전 6시 10분에 출발하는 우나즈키온센행 열차를 타야 했기 때문에 평소보다 약간 일찍 하루를 시작했다.

전날 다카오카와 아마하라시까지 돌아다닌 피로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여행지에서 기차를 타러 가는 아침은 힘들지가 않다.

특히 일본 여행에서 나는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참 좋다.

신칸센처럼 빠르고 편한 열차도 좋지만, 작은 역에 하나씩 서면서 시골과 산속으로 들어가는 지방열차에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역과 역 사이로 펼쳐지는 논과 밭, 오래된 집들, 작은 마을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여행이 시작된 기분이다.

역시 일본 여행은 기차를 타야 낭만이 있다.

호텔을 나서 덴테츠도야마역으로 향했다.

아침 6시 전이었지만 밖은 이미 완전히 밝았다.

비는 오지 않았다.

구름은 제법 끼어 있었지만 이른 아침 공기가 상쾌했다.

전날 저녁 덴테츠도야마역 위치와 승강장까지 미리 확인해두었으니 아침부터 헤맬 일도 없었다.


2. 덴테츠도야마역, 나란히 서 있던 두 대의 열차

덴테츠도야마역 승강장으로 들어서자 두 대의 열차가 나란히 서 있었다.

크림색 차체 아래쪽으로 붉은색 선이 둘러진 오래된 전동차였다.

요즘의 매끈하고 세련된 열차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둥근 전조등과 각진 차체, 오래된 승강장과 지붕까지 어우러지니 그 자체가 참 예뻤다.

“이야, 기차 이쁘다.”

그냥 타고 가기에는 아까웠다.

나는 열차 앞으로 가서 사진을 찍고 마님과도 열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다.

우리가 탈 열차의 행선판에는 ‘普通 宇奈月温泉’, 우나즈키온센행 보통열차라고 적혀 있었다.

차량 안으로 들어가니 붉은색 천으로 된 좌석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열차라 승객도 많지 않았다.

한산한 객차에 마님과 자리를 잡으니 그것 또한 좋았다.

붐비는 열차보다 이렇게 조용한 시골열차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며 움직이는 것이 훨씬 내 취향이다.

오전 6시 10분.

열차가 덴테츠도야마역을 출발했다.

오늘의 쿠로베 협곡 여행이 시작됐다.


3. 시골열차를 타고 설산을 바라보며

도야마 시내를 벗어나자 건물은 줄어들고 논과 밭, 작은 마을들이 이어졌다.

물이 가득 찬 논과 일본식 주택들이 차창 밖으로 천천히 흘러갔다.

오른쪽 창밖으로는 높은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야마 평야 동쪽에 길게 이어진 다테야마 연봉이었다.

구름이 산을 부분적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높은 봉우리에는 아직 눈이 많이 남아 있었다.

논과 작은 마을 뒤로 설산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모습이 기가 막혔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계속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님은 그런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주었다.

“와, 기가 막히는구만.”

높은 설산과 논, 작은 일본식 주택이 한 장면 안에 같이 들어왔다.

대도시에서 목적지까지 빠르게 가는 열차와 달리 이 열차에서는 창밖을 구경하는 시간 자체가 여행이었다.

열차 안도 한산해서 더욱 좋았다.

마님과 조용히 앉아 창밖 풍경을 마음껏 바라보았다.


4. 데라다역, 오늘과 내일의 길이 갈라지는 곳

열차는 작은 역들을 하나씩 지나갔다.

엣추산고, 엣추후나하시 같은 역들이 차례로 나타났다.

그리고 데라다역(寺田駅)에 들어섰다.

이곳은 이번 여행에서 나에게 꽤 의미 있는 역이었다.

오늘 우리가 가는 우나즈키온센 방향과 내일 알펜루트를 향해 가게 될 다테야마 방향이 바로 이곳에서 갈라진다.

오늘은 우나즈키온센으로 가지만 내일은 다시 이곳을 지나 다테야마 쪽으로 향한다.

하루 차이로 같은 역에서 서로 다른 산으로 들어가는 셈이었다.

승강장에는 오래된 지붕과 기둥이 남아 있었고 다른 선로에도 지방철도 특유의 열차가 서 있었다.

이런 모습들이 참 좋다.

열차는 다시 출발했고 다테야마 방면 선로와 헤어진 뒤 우나즈키온센을 향해 계속 달렸다.


5. 열차 안에서 시작된 비

정확히 어느 지점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열차를 타고 가는 도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차창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논과 마을도 비에 젖기 시작했다.

나는 오히려 좋았다.

햇볕이 쨍하게 내리쬐는 날의 산도 좋지만 비가 한 차례 지나가고 산허리에 구름이 걸린 풍경을 더 좋아한다.

비에 젖은 나무와 논의 초록빛 벼가 더욱 짙어지고 공기도 깨끗해 보였다.

창밖의 설산도 구름에 가렸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를 반복했다.

이런 날의 산은 맑은 날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있다.


6. 신쿠로베역과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

우나즈키온센에 가까워질수록 열차 안에는 등산복과 등산가방 차림의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산으로 향하는 지역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신쿠로베역에 도착하자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열차에서 내렸다.

이곳은 바로 옆의 호쿠리쿠신칸센 구로베우나즈키온센역과 연결되는 곳이다.

우리와 함께 우나즈키 방향으로 오던 등산객들 가운데서도 여기서 내리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열차는 다시 출발했다.

도야마 시내에서 출발했을 때와 달리 이제 창밖의 산은 훨씬 가까워져 있었다.


7. 비와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열차

우치야마역과 오토자와역 등을 지나면서 열차는 완전히 산속으로 들어갔다.

짙은 초록색 산 사이로 하얀 구름이 걸려 있었다.

구름은 산꼭대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산허리와 골짜기 사이까지 내려와 있었다.

비에 젖은 숲과 산 사이로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이 정말 좋았다.

“자기야, 저 산들과 구름 좀 봐.”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었다.

햇볕이 쨍한 날보다 이런 날의 산이 더 좋을 때가 있다.

비가 지나간 뒤의 산과 숲, 구름과 안개, 깨끗한 공기.

열차가 잠시 작은 역에 멈출 때마다 젖은 승강장과 산골마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야마 시내에서 불과 두 시간도 달리지 않았는데 완전히 다른 곳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8. 오전 8시경, 우나즈키온센에 도착

오전 8시경 우나즈키온센역에 도착했다.

열차에서 내리자 가장 먼저 산이 눈에 들어왔다.

역 바로 뒤까지 산이 다가와 있었고 비에 젖은 숲은 짙은 초록색이었다.

산허리에는 하얀 구름이 걸려 있었다.

우리가 타고 온 열차를 배경으로 사진도 남겼다.

온천마을은 아직 아침이라 비교적 조용했다.

길 건너편에는 오늘 우리가 진짜 타러 온 쿠로베협곡철도의 선로와 차량들이 보였다.

주황색 기관차와 함께 ‘黒部峡谷鉄道’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오…… 드디어 왔구만.”

도야마에서 여기까지 오는 열차 여행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좋았다.

하지만 오늘의 진짜 목적은 이제부터였다.


9. 우나즈키역에서 토롯코열차 표를 받다

덴테츠 우나즈키온센역에서 쿠로베협곡철도 우나즈키역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토롯코열차를 미리 예약해두었다.

역에서 예약 QR코드를 보여주고 실제 탑승권으로 교환했다.

우리가 예약한 것은 창문이 있는 릴랙스 객차였다.

쿠로베 협곡의 토롯코열차에는 바깥이 그대로 열린 일반객차도 있지만, 우리는 창문이 있는 객차를 골랐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창문이 있는 릴랙스 객차를 선택한 것이 꽤 잘한 일일 것이라....

이른 시간이라 사람도 많지 않았다.

우리가 탄 객차에는 다른 승객이 한 명도 없었다.

마님과 나 둘뿐이었다.

“이거 완전히 전세 냈네.”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싶었다.

북적거리지 않고 둘이서 조용히 쿠로베 협곡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10. 오전 8시 17분, 쿠로베 협곡 속으로

오전 8시 17분.

토롯코열차가 우나즈키역을 출발했다.

긴 객차를 이끌고 열차가 천천히 산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으로 쿠로베강이 나타났고, 강 양쪽으로는 짙은 초록색 산과 가파른 절벽이 이어졌다.

비가 내린 뒤라 산허리에는 낮은 구름이 걸려 있었다.

구름이 산을 완전히 덮는 것이 아니라 골짜기와 능선 사이를 흘러다니며 산의 모습을 가렸다가 다시 보여주었다.

나는 이런 날씨의 산을 참 좋아한다.

햇볕이 쨍한 날에는 멀리까지 또렷하게 볼 수 있지만, 비가 지나간 뒤의 산은 구름과 안개 때문에 풍경이 계속 달라진다.

방금 전까지 보이던 절벽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가 조금 뒤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산허리 아래로는 짙은 숲과 계곡이 이어졌다.

철길은 쿠로베강을 따라 산허리를 파고들 듯 이어졌다.

열차는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밖으로 나오기를 반복했고, 협곡을 가로지르는 교량 위를 지날 때마다 발아래로 강과 깊은 골짜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교량을 건널 때는 열차가 공중에 떠서 협곡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강 건너편으로는 산을 뚫어 만든 웅장한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극한의 자연환경 속에 지어진 쿠로베가와 제2발전소(黒部川第二発電所)와 부속 댐 시설물들이 험준한 협곡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의 손이 닿기 어려워 보이는 이 깊은 산속에 수로와 터널을 뚫고, 철길을 놓아 발전시설을 완성해 낸 치열한 토목 시공의 흔적을 마주하니 새삼 놀라웠다.

쿠로베 협곡철도가 애초부터 관광열차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 깊은 산속의 전력개발과 공사 자재, 사람을 실어 나르기 위해 놓인 철도라는 것이 풍경을 보고 있으니 더 실감났다.

창문이 있는 릴랙스 객차 안에는 마님과 나 둘뿐이었다.

한쪽 창으로 풍경을 보다가 반대편에 좋은 장면이 나타나면 자리도 마음대로 옮겨 다녔다.

누가 앞을 가릴 일도 없고 사진을 찍으려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와…….”

“이야…….”

마님과 둘이 호젓하게 앉아 계곡과 산을 바라보는 시간이 정말 좋았다.

아침 일찍 움직인 덕을 제대로 보고 있었다.


11. 교량과 터널, 발전시설 사이로 이어진 비경

열차가 안으로 들어갈수록 쿠로베 협곡의 규모가 더욱 실감났다.

양쪽 산은 강에서 거의 곧바로 솟아오르는 것처럼 가팔랐고, 아래로는 쿠로베강이 깊게 파인 골짜기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이 험준한 산악 지형을 돌파하기 위해 철길은 일반 철도보다 좁은 762mm 특수 협궤(Narrow Gauge)로 설계되었고, 그 좁은 산비탈에 겨우 자리를 낸 듯 이어졌다.

한쪽은 깎아지른 절벽이고 다른 한쪽은 바로 계곡이었다.

열차는 짧고 긴 터널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어두운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가 밖으로 나오면 전혀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떤 곳에서는 짙은 숲으로 뒤덮인 산이 바로 앞에 나타났고, 또 어떤 곳에서는 협곡을 가로지르는 교량과 깊은 강물이 한꺼번에 보였다.

교량을 건널 때마다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아래로는 회색빛이 감도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고, 양쪽으로는 비에 젖은 절벽과 숲이 이어졌다.

곳곳에는 댐과 수력발전 관련 시설도 보였다.

콘크리트 구조물과 터널 입구, 산속에 붙어 있는 건물들이 자연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깊은 산속에 웬 시설물인가 싶었지만, 쿠로베 협곡 자체가 일본의 대표적인 수력발전 개발지역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 철도와 발전시설이 협곡의 역사 그 자체였다.

자연만 바라보는 여행이었다면 그냥 아름다운 계곡으로만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토롯코열차를 타고 달려보니 쿠로베 협곡은 거대한 자연과 그 안에 철길과 교량, 터널, 발전시설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흔적이 함께 보이는 곳이었다.

비가 그친 뒤의 풍경은 더욱 좋았다.

젖은 숲은 초록색이 짙었고, 산허리에는 구름이 띠처럼 걸려 있었다.

구름 아래로 절벽과 계곡이 나타났다 사라졌고, 그 사이로 철교와 발전시설이 잠깐씩 모습을 드러냈다.

맑은 날의 쿠로베 협곡도 분명 멋있겠지만 이날만큼은 이런 날씨라서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객차 안에는 여전히 마님과 나뿐이었다.

사진을 찍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냥 창밖만 바라보았다.

“이야…… 이런 데가 있었구만.”

쿠로베 협곡은 단순히 산이 깊고 계곡이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다.

열차가 한 굽이 돌 때마다 전혀 다른 장면이 나타났고, 터널 하나를 빠져나올 때마다 또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여기까지 온 보람이 충분했다.


12. 네코마타, 지금은 여기까지

오전 9시 2분 네코마타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네코마타는 원래 쿠로베협곡철도의 종착역이 아니다.

원래 열차는 이곳을 지나 가네쓰리(鐘釣)를 거쳐 더 깊숙한 곳에 있는 게야키다이라(欅平)까지 들어간다.

2024년 노토반도 지진으로 가네쓰리 일대의 교량과 사면 등이 피해를 입으면서 복구공사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찾은 2026년 5월에는 우나즈키에서 네코마타까지만 운행하고 이곳에서 다시 되돌아가야 했다.

네코마타까지 왔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원래는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는 건디…….”

쿠로베 협곡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가네쓰리와 게야키다이라까지 이어지는 더 깊은 협곡이 남아 있었다.

우리가 여행한 뒤에도 복구공사가 계속 진행되었고, 2026년 10월 1일부터는 우나즈키~게야키다이라 전 구간 운행이 다시 재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온다면 그때는 꼭 게야키다이라까지 들어가보고 싶다.

13. 네코마타에서 잠시 머물다 다시 우나즈키로

네코마타역에 내리니 깊은 산속의 작은 역답게 주변이 조용했다.

한쪽에는 ‘猫又 NEKOMATA’라고 적힌 역명판이 있었고, 역 이름에 맞춰 고양이와 쥐를 형상화한 포토스팟도 마련되어 있었다.

마님과 나는 고양이와 쥐 장식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역명판 앞에서도 여러 장을 남겼다.

깊은 산속 역에 이런 귀여운 포토스팟이 있으니 조금 뜻밖이면서도 재미있었다.

역 주변에는 굴착기를 비롯한 공사장비와 자재들이 놓여 있었고, 일부 구역은 펜스와 안전시설로 막혀 있었다.

관광지라기보다 실제 복구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철도 현장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 뒤로는 비를 머금은 짙은 초록색 산과 계곡이 펼쳐져 있었다.

산허리에는 하얀 구름이 낮게 걸려 있었고, 곳곳에서는 물줄기가 산비탈을 타고 흘러내렸다.

공사장비와 철도시설 바로 뒤에 이런 자연풍경이 이어지는 모습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평소 전 구간 운행 때에는 관광객이 내려 둘러보는 역이 아니기 때문에, 네코마타에 직접 내려 주변을 구경한 것도 이번 여행에서만 할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역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고 사진도 충분히 남겼다.

오전 9시 27분.

다시 열차에 올랐다.

돌아가는 길에는 올 때와 반대편으로 보이는 협곡과 산을 다시 바라봤다.

같은 철길을 되돌아가는데도 보는 방향이 달라지니 놓쳤던 풍경들이 새로 눈에 들어왔다.

마님과 단둘이 앉아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우나즈키로 돌아왔다.

오전 10시 17분.

열차는 다시 우나즈키역에 도착했다.

쿠로베 협곡에서의 두 시간이 그렇게 끝났다.


14. 우나즈키온센 마을을 혼자 한 바퀴

덴테츠도야마로 바로 돌아가려 했는데 문제가 있었다.

우나즈키온센에서 도야마까지 곧바로 가는 열차는 오전 11시 45분이었다.

한 시간 반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그냥 역에서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서 오전 10시 55분 열차를 타고 신우오즈까지 간 뒤 그곳에서 도야마행으로 환승하기로 했다.

출발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다.

마님은 아침 일찍부터 움직인 데다 쿠로베 협곡까지 다녀오느라 힘들었는지 역에서 쉬고 있겠다고 했다.

나는 혼자 우나즈키온센역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역 앞에는 온천마을답게 온천수가 나오는 분수가 있었다.

손을 넣어보았다.

“오, 따뜻허고 좋구만.”

아침 일찍부터 돌아다닌 몸을 저 물에 푹 담그고 한숨 자고 싶었다.

근처의 시계탑과 온천마을 거리를 둘러보며 사진도 몇 장 찍었다.

비가 내렸다 그친 뒤라 산에는 아직 구름이 남아 있었다.

작은 온천마을과 구름 낀 산이 참 잘 어울렸다.

잠시 둘러본 뒤 다시 역으로 돌아와 마님과 합류했다.


15. 신우오즈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다시 도야마로

오전 10시 55분 우나즈키온센을 출발했다.

덴테츠도야마까지 바로 가지 않고 신우오즈에서 갈아타기로 했다.

아침에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셈이었다.

산속을 벗어나자 창밖 풍경도 조금씩 달라졌다.

짙은 산과 계곡이 멀어지고 다시 논과 작은 마을들이 나타났다.

신우오즈역에 도착한 뒤에는 지하통로를 따라 JR 우오즈역 쪽으로 이동했다.

역과 역이 완전히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하보도로 이어져 있어 갈아타기는 어렵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가 지하통로를 지나 다시 올라가니 우오즈역이 나왔다.

우오즈에서 도야마까지 가는 승차권을 다시 샀다.

잠시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려, 오전 11시 50분쯤 도야마행 열차에 올랐다.

아침에 우나즈키로 갈 때 타던 도야마지방철도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열차였다.

창밖으로 다시 평야와 마을이 이어졌다.

낮 12시 20분쯤 도야마역에 도착했다.

새벽 5시에 하루를 시작해 우나즈키온센과 쿠로베 협곡까지 다녀왔는데 아직 점심시간이었다.

아침 일찍 움직이면 하루가 참 길다.


16. 다테야마 소바 한 그릇과 마음에 남은 선승

도야마역에 돌아오니 배가 고팠다.

역 바깥쪽에 있는 ‘다테야마 소바(立山そば)’로 들어갔다.

마님과 따뜻한 소바 한 그릇씩 먹었다.

아침부터 계속 기차를 타고 산속까지 다녀온 뒤라 뜨거운 국물이 더 반가웠다.

화려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이런 날에는 오히려 이런 한 그릇이 좋다.

소바를 먹고 역 밖으로 나오는데 한 선승이 눈에 들어왔다.

삿갓을 쓰고 가사를 걸친 채 조용히 서서 시주를 받고 있었다.

그때는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하니 그 장면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아…… 그때 시주라도 좀 할 걸 그랬네.”

이상하게 나는 우리나라 스님들보다 일본 여행 중 길에서 만나는 이런 선승들에게 더 눈길이 간다.

말없이 서 있는 모습 때문인지, 옷차림 때문인지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내가 일본놈인가…… 에효.”

농담처럼 생각했지만 지나고 나니 시주하지 못한 것이 괜히 아쉬웠다.

여행에서는 이렇게 그냥 지나친 장면이 나중에 더 오래 남기도 한다.

그날 도야마역 앞에서 만난 선승이 그랬다.


17. 내일 알펜루트를 위한 표를 미리 발권하다

덴테츠도야마역으로 가서 내일 사용할 알펜루트 승차권부터 챙겼다.

미리 예약해두었지만 승차권은 이용 하루 전 낮 12시 이후부터 발권할 수 있었다.

내일은 도야마에서 다테야마로 들어가 알펜루트를 넘어 오기사와까지 간다.

오기사와에서 나가노까지 이동하는 표도 준비되어 있고, 나가노에서는 다시 호쿠리쿠신칸센을 타고 도야마로 돌아올 예정이다.

오늘 오후 일정까지 돌아다닌 뒤 내일 새벽에 다시 표를 챙기는 것보다는 미리 받아두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18. 덴테츠도야마역 앞에서 만난 야스다 젠지로

역 주변을 걷다가 동상 하나를 보았다.

받침대에는 ‘安田善次郎翁之像’이라고 적혀 있었다.

야스다 젠지로(安田善次郎)였다.

처음에는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동상이라 사진부터 찍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도야마에서 태어나 에도로 올라가 사업을 시작했고 훗날 야스다은행을 비롯한 금융사업을 크게 일으켜 야스다재벌을 만든 인물이었다.

일본 근대 금융사를 대표하는 사업가 가운데 한 명이었다.

도쿄대 야스다강당의 ‘야스다’도 바로 이 사람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도야마역 바로 앞에 그의 동상이 서 있는 이유도 이곳이 그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여행 중에는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찍은 동상 하나가 나중에 한 도시의 역사를 알려주기도 한다.


19. 스타벅스에서 잠시 쉬었다 도야마성으로

덴테츠도야마역 앞 스타벅스에서 잠시 쉬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 마님과 함께 쿠키도 하나 먹었다.

아침 5시부터 움직인 데다 쿠로베 협곡까지 다녀왔으니 잠시 앉아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커피를 마시고 다시 출발했다.

이번 목적지는 도야마성이다. 오후 1시 20분경 트램을 탔다.

전날 우나즈키온센행 표를 준비하면서 산 것은 성인 3,400엔짜리 ‘철도선·시내전차 1일 프리 승차권’이었다.

덕분에 오늘 도야마 시내를 다니며 트램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우리가 탄 차량은 제법 오래된 트램이었다.

창틀에는 녹이 슨 곳도 보였다.

“야, 일본은 이런 것도 참 오래 쓰네.”

일본이 선진국이지만 물건을 참 오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였으면 낡았다며 새것으로 바꾸라는 이야기가 벌써 나왔을 것 같은데 일본에서는 오래된 전차도 여전히 현역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일본도 과거 우리에게 못된 짓을 많이 한 나라다.

그 역사와는 별개로 여행을 다니다 보면 물건을 아껴 쓰고 질서를 지키는 모습 등 배울 만한 국민성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깝고 여행비용도 유럽이나 미주, 대양주에 비해 훨씬 덜 든다.

게다가 작은 지방도시에도 기차와 트램이 있고, 역사와 생활이 남아 있는 볼거리가 많다.

이래서 내가 일본 여행을 좋아하는가 보다.


20. 도야마성, 거대한 돌이 박힌 이시가키

트램에서 내려 도야마성으로 향했다.

도야마성에 가기 전 “어메이징 도야마”라고 쓰여있는 포토스팟에서 도야마성을 배경으로 마님과 사진도 남겼다.

도야마성은 규모가 큰 성은 아니지만 해자를 두르고 돌로 쌓은 성벽과 천수각이 어우러져 일본 성 특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천수각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성벽이었다.

돌을 층층이 쌓아 만든 이시가키(石垣) 사이사이에 다른 돌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하고 육중한 돌들이 박혀 있었다.

사람 키보다 훨씬 큰 돌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예전에 오사카성에서 직접 보았던 거대한 돌들이 떠올랐다.

오사카성 사쿠라몬 안쪽 마스가타에 있는 다코이시(蛸石)는 정말 압도적이었다.

당시 아들을 돌 앞에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는데 사람이 바로 앞에 서 있어야 그 크기가 실감날 정도였다.

안내판에 따르면 다코이시는 표면적 약 59.43㎡, 추정 무게 약 108톤으로 오사카성 안에서 가장 큰 거석이라고 한다.

커다란 돌 하나가 웬만한 건물 벽만 했다.

일본의 성곽 이시가키에서는 이렇게 눈에 띄게 큰 돌을 중요한 출입구와 성벽에 배치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성벽을 튼튼하게 쌓는 기능적인 목적과 함께 이렇게 거대한 돌을 운반해 성을 쌓을 수 있다는 영주의 힘과 권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었다.

도야마성의 돌들이 오사카성 다코이시만큼 엄청난 크기는 아니었지만, 여러 크기의 돌로 쌓은 성벽 사이에 유난히 크고 육중한 돌이 박혀 있는 모습을 보니 예전에 직접 보았던 오사카성의 이시가키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이런 일본 성의 돌벽을 볼 때마다 신기하다.

기계도 없던 시절에 저 육중한 돌들을 어떻게 옮겨와 맞춰 쌓았을까 싶다.

천수각 안은 도야마시 향토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전시물을 보며 도야마성과 도야마번의 역사를 둘러보고 위층 전망대로 올라갔다.

높은 성은 아니지만 도야마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21. 도야마성 공원을 돌아 다시 트램으로

천수각을 내려와 성 주변 공원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해자와 돌담, 정원과 나무들이 도심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도야마는 큰 도시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시내를 조금만 돌아다녀도 볼거리가 이어졌다.

성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 사진도 여러 장 남겼다.

오후 2시 18분경 다시 트램을 타고 환수공원 스타벅스에 가기위해 도야마역으로 돌아갔다.


22. 약장수의 도시를 만든 번주, 마에다 마사토시

도야마성 공원을 둘러보다 눈에 띄는 동상을 만났다.

도야마번 제2대 번주 마에다 마사토시(前田正甫)였다.

안내판을 확인하니 이 양반의 이력이 재미있었다.

보통 ‘번주’라고 하면 갑옷을 입고 칼을 찬 사무라이부터 떠오른다.

그런데 마에다 마사토시는 의학과 약에 관심이 많았던 번주였다.

그는 번의 산업을 키우는 데 힘썼고 특히 도야마 매약업의 기초를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에도성에서 한 다이묘가 갑자기 심한 복통을 일으키자 마사토시가 가지고 있던 약을 먹여 효과를 보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 일을 계기로 다른 번에서도 도야마의 약을 찾게 되었고, 약장수들이 각지를 돌며 약을 먼저 맡겨두고 다음에 방문했을 때 사용한 만큼만 돈을 받는 ‘선용후리(先用後利)’ 방식이 자리 잡았다.

훗날 ‘에치추 도야마의 약장수’로 전국에 이름을 알린 도야마 매약업의 출발점이었다.

칼 잘 쓰는 사무라이 영주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약과 의학에 밝고 지역산업까지 키운 번주였다.

도야마가 지금까지도 제약산업으로 유명한 데에는 이런 오랜 역사가 있었다.


23. “자, 환수공원 스타벅스로 진격의 거인.”

도야마역 북쪽으로 나와 환수공원까지 걸었다.

역에서 멀지는 않았다.

도시 건물을 지나자 갑자기 넓은 수변공간이 나타났다.

도야마현 후간운하 환수공원이었다.

커다란 운하를 중심으로 잔디와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고 멀리 두 개의 벽돌색 전망탑과 그 사이를 연결하는 덴몬교가 보였다.

그리고 물가 한쪽에 오늘의 목적지 스타벅스가 있었다.

유리창이 넓게 난 단층 건물이 잔디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까이 갈수록 사람이 심상치 않았다.

“아이고, 사람이 왜 이렇게 많어.”

정말 많았다.

실내도 가득했고 야외 테라스도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겨우 자리를 하나 확보한 뒤 주문 줄에 섰다.

사진과 영수증을 다시 확인하니 이때 마님이 마신 것은 내가 기억하던 말차라떼가 아니었다.

톨 사이즈 말차 크림 프라푸치노, 나는 늘 그렇듯 벤티 아이스 카페 아메리카노였다.

영수증에는 주문 시간이 오후 2시 45분, 아메리카노 537엔, 말차 크림 프라푸치노 555엔으로 남아 있다.

이런 건 사진이 있으니 기억보다 정확하다.

“자기는 또 말차여?”

마님은 말차,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일본 여행 며칠째 계속되는 익숙한 조합이다.


24.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바라본 운하 풍경

운 좋게 창가 쪽에서 환수공원을 바라볼 수 있었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운하가 펼쳐지고 작은 유람선이 물 위를 지나갔다.

맞은편으로는 잔디밭과 나무가 이어졌고 멀리 덴몬교가 보였다.

사람이 워낙 많아 호젓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경치는 정말 좋았다.

마님과 음료를 앞에 두고 잠시 쉬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우나즈키까지 갔다가 쿠로베 협곡을 왕복하고 다시 도야마성까지 돌아본 뒤였다.

이쯤 되니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세상 편했다.

밖으로 나와 스타벅스를 배경으로 둘이 사진도 한 장 남겼다.

유리 건물과 잔디, 운하가 어우러지니 왜 이곳 스타벅스가 도야마의 유명한 장소가 됐는지 알 것 같았다.


25. 덴몬교 전망탑에서 내려다본 도야마

커피를 마신 뒤 덴몬교 쪽으로 걸었다.

두 개의 벽돌색 탑을 연결한 다리가 환수공원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전망탑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전망대에 서자 환수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아래로는 운하가 길게 이어지고 스타벅스와 잔디밭, 산책로가 작게 보였다.

반대편으로는 도야마 시내가 펼쳐졌다. 그리고 멀리 산들이 보였다.

구름이 많아 완전히 선명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산줄기가 희미하게 이어졌다.

아침 기차 안에서부터 하루 종일 보고 다녔던 도야마의 산들이었다.

전망탑의 둥근 창으로 내려다보는 풍경도 재미있었다.

마님과 전망대에서도 사진을 여러 장 남겼다.

높은 전망대는 아니지만 환수공원의 전체 모습을 보기에는 딱 좋았다.

공원을 내려다보며 이런 생각도 들었다.

“여기는 밤에 다시 오면 정말 이쁘겠는디.”

덴몬교와 공원에 불이 들어오고 물 위로 야경이 비치면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 같았다.

밤에 한번 다시 와보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오지 못했다.

아침 5시부터 시작한 일정이라 저녁이 되니 피곤하고 움직이기 싫어졌다. 이건 조금 아쉽다.


26. 다시 도야마역으로, 내일 먹을 것부터 준비

환수공원을 충분히 둘러본 뒤 다시 걸어서 도야마역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참 많이도 걸었다.

도야마역 북쪽 출구 쪽 로손에 들러 내일 먹을 것도 미리 샀다.

내일은 알펜루트를 넘어가는 날이다.

아침부터 계속 이동해야 하니 중간에 먹을 것을 챙겨두어야 했다.

빵, 바나나, 스타벅스 커피, 오징어채 등 이것저것 골랐다.

여행 중에는 이런 편의점 장보기도 중요한 일정이다.

내일 아침 배고프다고 난리 치지 않으려면 오늘 준비해놔야 한다.


27. 오후 4시 30분, 오늘 저녁은 버거킹

저녁은 거창하게 먹지 않기로 했다.

도야마역 앞 버거킹으로 갔다.

시간은 오후 4시 30분쯤이었다.

매장 앞에는 고기와 치즈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간 ‘2대째 BABY BODY BURGER’ 광고가 붙어 있었다.

가격도 2,890엔이나 하는 엄청난 햄버거였다.

“저건 먹다 죽겄다.”

우리는 평범하게 먹기로 했다.

마님이 카운터에서 주문하고 둘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가 주문한 햄버거가 나오자 숙소로 향했다.


28. 다시 HOTEL JAL CITY TOYAMA로

호텔로 돌아오니 오후 5시경이었다.

포장해온 햄버거로 객실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제야 하루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님, 오늘 고생했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우나즈키온센으로 가는 지방열차를 타고, 쿠로베 협곡의 토롯코열차를 타고 네코마타까지 들어갔다 돌아왔다.

다시 도야마로 와서 도야마성을 보고 환수공원까지 걸어 다녔다.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29. 비 내린 산이 더 좋았던 하루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쿠로베 협곡이었다.

다테야마 연봉의 설산을 바라보며 달리던 시골열차도 좋았고, 비가 내린 뒤 산허리에 구름이 걸린 우나즈키의 풍경도 좋았다.

무엇보다 토롯코열차의 창문 너머로 보이던 비에 젖은 쿠로베 협곡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날씨가 맑지 않아 아쉬웠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나는 역시 쨍하게 맑은 산보다 비가 지나간 뒤 구름과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는 풍경을 좋아한다.

그리고 객차 하나에 마님과 단둘이 앉아 그 풍경을 바라봤던 것도 참 좋았다.

게야키다이라까지 들어가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그것은 다음 여행의 이유로 남겨두면 된다.


30. 오늘의 대장정을 마치다, “마님 고생했수다.”

아침 5시에 시작한 오늘의 대장정이 드디어 끝났다.

기차를 타고 산으로 들어가고, 토롯코열차로 협곡을 달리고, 다시 도야마로 돌아와 트램을 타고 성을 둘러보고, 환수공원까지 걸었다.

하루 동안 산과 계곡, 지방철도와 트램, 성과 공원까지 참 많은 것을 보았다.

여행은 역시 많이 보고 많이 걷게 된다.

마님도 오늘 정말 고생했다.

이제 쉬어야 한다.

내일은 드디어 이번 여행의 가장 중요한 일정 가운데 하나인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
두경아 지음 / 길벗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내와 함께하는 일본 알펜루트 여행기

여행 2일차, 2026.05.23.(토요일)[오후편]
가나자와를 떠나 도야마로, 다카오카와 아마하라시까지


19. 가나자와에서의 마지막 준비와 스타벅스 한 잔

윤봉길 의사님의 순국지와 순국기념비, 암장지, 그리고 박인조 선생님의 묘소까지 찾아뵙고 가나자와역으로 돌아왔다.

아침부터 계속 걸어다닌 데다 날씨도 제법 더워 땀을 많이 흘렸다.

숙소인 하얏트 센트릭 가나자와로 돌아와 먼저 샤워부터 했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설 때와는 마음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오전 내내 윤 의사님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다니며 묵념하고 절을 올린 뒤라 쉽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여운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 여행자의 시간으로 돌아갈 차례였다.

샤워를 마치고 짐을 정리했다.

캐리어를 다시 챙기고 빠뜨린 물건이 없는지 확인한 뒤 오전 11시쯤 체크아웃했다.

가나자와에서의 숙박은 여기까지였다.

오늘부터는 도야마로 숙소를 옮긴다.

마님과 캐리어를 끌고 다시 가나자와역으로 향했다.

가나자와역에 도착해서는 역시 스타벅스부터 찾았다.

아침에도 커피를 사 들고 윤 의사님의 순국지로 향했는데, 가나자와를 떠나는 길에도 또 스타벅스에 들렀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 마님은 말차라떼를 골랐다.

둘이 음료를 들고 플랫폼에 앉아 잠시 쉬었다.

아침부터 워낙 많이 걸었던 터라 이 짧은 휴식이 좋았다.

커피를 들고 마님과 사진도 한 장 남겼다.

이제 정말 가나자와를 떠날 시간이었다.


20. 호쿠리쿠신칸센을 타고 도야마로

우리가 탈 열차는 오전 11시 59분 출발 호쿠리쿠신칸센 하쿠타카 562호였다.

전광판에는 바로 앞 열차인 11시 49분 가가야키 530호와 우리가 탈 11시 59분 하쿠타카 562호가 나란히 표시되어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승강장으로 올라갔다.

열차에 올라 자리에 앉으니 다시 한번 일본 신칸센 좌석의 넉넉함이 느껴졌다.

우리나라 KTX와는 좌석 공간부터 차이가 컸다.

앞뒤 간격이 넓어 작은 캐리어 정도는 무릎 앞에 놓아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고, 선반에도 짐을 올릴 수 있었다.

마님 앞에 캐리어와 배낭을 놓았는데도 좌석 공간에 여유가 있었다.

나는 일본에서 신칸센을 탈 때마다 이 점이 참 좋다.

반대로 KTX를 탈 때면 좌석과 앞좌석 사이가 너무 좁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열차는 가나자와를 출발했다.

창밖으로 호쿠리쿠의 도시와 논, 낮은 산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가나자와에서 도야마까지는 정말 가까웠다.

가나자와역에서 도야마역까지 대략 신칸센으로 45km쯤 되는 거리를 약 20분 만에 주파했다.


21. 처음 만난 도야마와 오늘의 숙소 JAL시티

낮 12시 20분쯤 도야마역에 도착했다.

플랫폼에 내리자 ‘富山 Toyama’라고 적힌 역명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가나자와와는 또 다른 도시가 시작되었다.

역 밖으로 나오니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제법 큰 도시였다.

역 앞에는 호텔과 상업시설이 모여 있었고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트램이었다.

도야마역 주변으로 여러 형태의 노면전차가 계속 오갔다.

새로 만든 듯한 현대적인 차량도 있었고 오래된 형태의 차량도 보였다.

트램을 카메라로 찍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나와 마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도야마에서 처음 만난 도시 풍경과 트램들을 한참 카메라에 담았다.

오늘부터 26일, 귀국할 때까지 3일간 묵을 숙소는 HOTEL JAL CITY TOYAMA였다.

호텔은 도야마역에서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런데 역에서 내려 바로 호텔로 간 것이 아니었다.

역 앞을 오가는 트램들이 눈에 들어오는 바람에 한동안 서서 구경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보니 도야마역에서 호텔까지 가는 데 거의 20분 가까이 걸렸다.

거리는 5분도 안 되는데 트램 구경하느라 네 배 가까이 걸린 셈이다.

건물 전면에 HOTEL JAL CITY TOYAMA라는 간판이 크게 붙어 있었다.

체크인 절차는 미리 할 수 있었지만 아직 객실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프런트에 캐리어를 맡겼다.

여행을 며칠 다니다 보면 짐을 숙소에 먼저 맡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몸이 훨씬 가벼워진다.

큰 캐리어들을 맡기고 카메라와 작은 가방만 챙겼다.

이제 본격적인 도야마 오후 여행을 시작할 차례였다.


22. 도야마역에서 먹은 늦은 점심

호텔에 짐을 맡긴 뒤 다시 도야마역 쪽으로 돌아왔다.

점심부터 먹어야 했다.

역 주변 상업시설을 돌아보다 오후 1시경 돈카스 전문점 富金豚(とみきんとん, 토미킨톤, TOMIKINTON)에 들어갔다.

메뉴판을 보니 돈카스와 새우튀김, 규카츠 등 여러 메뉴가 있었다.

마님은 늘 그렇듯 일반 돈카스를 골랐다.

나는 규카츠 정식을 주문했다.

마님 앞에는 노릇하게 튀겨진 돈카스와 양배추가 놓였고, 내 규카츠는 속이 붉은빛을 띤 채 먹기 좋게 잘려 나왔다.

아침부터 계속 움직인 뒤라 그런지 더 맛있었다.

마님은 역시 평소 좋아하는 돈카스를 먹고, 나는 규카츠를 먹었다.

일본 여행을 다니면서 둘이 무엇을 먹는지도 이제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다음 목적지인 다카오카로 향했다.


23. 오후 2시 20분 다카오카, 도라에몽의 도시로

도야마역에서 다카오카로 가는 열차를 탔다.

사진에 남아 있는 승차권에는 2026년 5월 23일, 도야마에서 다카오카까지 390엔이라고 찍혀 있다.

우리가 탄 열차는 오후 2시 20분 가나자와행 보통열차였다.

승강장 전광판에도 14:20 金沢行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플랫폼에 서서 열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차량 내부는 신칸센과는 전혀 달랐다.

지방 도시를 오가는 평범한 통근형 열차였다.

손잡이가 길게 늘어서 있고 좌석도 단순했다.

열차가 도야마를 벗어나자 창밖으로 논과 주택들이 이어졌다.

물이 가득 찬 논과 낮은 집들이 펼쳐지는 풍경을 보며 다카오카로 향했다.

다카오카역에 도착했다.

역 안에서부터 도라에몽이 눈에 띄었다.

커다란 도라에몽 우체통이 있었고 역 주변에도 도라에몽과 관련된 시설들이 보였다.

“여기가 도라에몽의 도시인개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도라에몽』을 만든 만화가 후지코 F. 후지오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바로 다카오카다.

다카오카에는 지금도 후지코 F. 후지오의 흔적을 기리는 시설과 도라에몽 관련 조형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역을 나서니 도시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걷기 좋은 지방도시 분위기가 느껴졌다.

다카오카역 앞에서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첫 번째 목적지인 즈이류지로 향했다.


24. 다카오카의 골목을 걸어 국보 즈이류지로

즈이류지까지는 걸어가기로 했다.

날씨가 제법 더웠다.

역을 벗어나니 관광지보다는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본 지방도시의 모습이 이어졌다.

낮은 주택들과 오래된 집들이 골목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관광지까지 가는 길이라고 특별히 화려한 것은 없었다.

나는 이런 길을 걷는 것도 좋아한다.

그 도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집에서 살고 어떤 골목을 이용하는지를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님과 함께 천천히 걸어 즈이류지로 향했다.

조금씩 땀이 났다.

그러다 길 끝으로 절의 모습이 나타났다.

즈이류지 입구에 도착해 먼저 매표소에서 표를 샀다.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자 바깥에서 보던 것보다 규모가 훨씬 크게 느껴졌다.

즈이류지(瑞龍寺)는 가가번 2대 번주 마에다 도시나가를 기리기 위해 3대 번주 마에다 도시쓰네가 세운 조동종 사찰이다.

특히 산문과 불전, 법당은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여러 건물과 회랑이 중요문화재로 남아 있다.

절 전체가 하나의 건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건물과 긴 회랑이 넓은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였다.

입구를 지나 산문 쪽으로 들어가니 정면으로 거대한 목조건물이 나타났다.

첫눈에 들어오는 인상부터 강했다.

“어, 생각보다 훨씬 큰디?”

사진으로 볼 때보다 실제 규모가 훨씬 컸다.


25. 생각보다 훨씬 웅장했던 즈이류지

즈이류지는 생각보다 정말 좋았다.

우리나라 사찰과는 분위기도 구조도 꽤 달랐다.

넓은 잔디와 자갈마당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고, 주요 건물들이 긴 회랑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목조건물의 규모가 상당했다.

커다란 기둥과 두꺼운 목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문과 지붕의 선도 묵직했다.

나는 건물 안팎을 천천히 돌아보며 사진을 많이 찍었다.

긴 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같은 건물도 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마님을 회랑 가운데 세워놓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마님은 반대로 멀리 서 있는 나를 찍어주었다.

이곳에서는 신발을 벗지 않고 그대로 돌아다녔다.

회랑과 건물 사이를 오가며 목조건축의 구조를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사찰 건축도 아름답지만, 순수하게 건물 규모와 공간의 배치를 놓고 보면 이곳 즈이류지가 더 크고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회랑이 사방으로 길게 이어지고 그 안에 넓은 마당과 중심 건물들이 배치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6. 마에다 도시나가와 신란 성인의 흔적

즈이류지의 중심에는 마에다 도시나가라는 인물이 있었다.

마에다 도시나가는 가가번 초대 번주 마에다 도시이에의 장남으로, 다카오카성을 쌓고 이곳에 성하마을을 조성하며 오늘날 다카오카의 기초를 놓은 인물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동생이자 가가번 3대 번주였던 마에다 도시쓰네가 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즈이류지를 크게 조성했다.

그래서 즈이류지는 단순히 오래된 절이라기보다 다카오카라는 도시의 시작과 마에다 가문의 역사가 함께 담긴 장소였다.

사찰 안에는 여러 불상과 불교 관련 조형물이 있었고, 천장에 매달린 커다란 물고기 모양의 목조물도 눈에 띄었다.

법당과 불전 내부도 상당히 넓었다.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둘러보니 밖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볼거리가 많았다.

즈이류지와 주변을 돌아보면서 신란 성인과 관련된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신란은 일본 정토진종을 연 인물로, 일본 불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승려다.

다카오카와 호쿠리쿠 지역에는 정토진종의 영향이 강해 여러 곳에서 신란 성인의 동상과 흔적을 볼 수 있다.

즈이류지 자체는 정토진종 사찰이 아니라 조동종 사찰이지만, 주변 지역을 걷다 보니 이곳 사람들의 불교 신앙과 역사 속에 여러 종파의 흔적이 함께 남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찰 밖으로 나와 주변을 걷는 길에도 승려의 동상이 보였고, ‘親鸞聖人’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또 갑옷을 입고 앉아 있는 마에다 도시나가공의 동상도 있었다.

한쪽에는 종교의 역사, 한쪽에는 이 도시를 만든 영주의 역사가 나란히 남아 있는 셈이었다.


27. 다시 다카오카역으로, 도라에몽 산책길

즈이류지를 충분히 둘러본 뒤 다시 다카오카역 쪽으로 걸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걸어서 돌아갔다.

길가에는 붉은 철쭉이 피어 있었고 정돈된 산책길과 오래된 거리 풍경이 이어졌다.

다카오카역에 가까워지자 다시 도라에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역 앞 Wing Wing Takaoka 부근에는 ‘도라에몽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도라에몽뿐 아니라 노진구, 시즈카, 자이언, 스네오 등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동상이 줄지어 서 있었다.

후지코 F. 후지오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이 다카오카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어른인 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도라에몽과 친구들을 하나씩 사진에 담았다.

아이들도 동상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즈이류지에서 오래된 목조건축과 역사를 보고 나왔는데 몇 분 뒤에는 도라에몽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묘한 도시였다.

오래된 역사와 현대 일본의 대표적인 만화문화가 한 도시에 함께 있었다.


28. 도라에몽을 뒤로하고 아마하라시 해안으로

다카오카에서의 다음 목적지는 아마하라시 해안이었다.

다카오카역 일대에서 도라에몽 산책길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은 뒤 버스 승강장으로 향했다.

오후 4시 무렵 히미시민병원(氷見市民病院)행 버스를 탔다.

우리가 탄 것은 초록색 가에츠노버스였다.

버스에 올라타니 전형적인 일본 지방 노선버스 모습이었다.

운전석 위쪽에는 요금표가 있었고 좁은 시내도로와 주택가를 지나 서서히 바다 쪽으로 향했다.

다카오카 시내를 벗어나면서 풍경이 조금씩 한적해졌다.

약 35분 정도 지나자 바다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으니 바다가 나타났다.

아마하라시 해안이었다.

이곳을 찾아온 가장 큰 이유는 바다 건너로 다테야마 연봉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도야마만을 사이에 두고 해발 3,000m급 산들이 이어지는 다테야마 연봉을 바다와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곳.

사진으로 여러 번 봤던 풍경이었다.

직접 와보니 해안과 철길, 도로, 작은 마을이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바다에는 이곳을 대표하는 두 개의 바위가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온나이와(女岩), 여자바위였다.

주변의 작은 암초들이 아이들처럼 보여 여자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오토코이와(男岩), 남자바위도 있었다.

여자바위 주변의 큰 바위가 마치 한 쌍의 부부처럼 보인다고 해서 남자바위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여자바위가 워낙 눈에 잘 띄어 아마하라시의 대표적인 풍경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와보니 남자바위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또 ‘雨晴(아마하라시)’라는 이름에도 이야기가 있었다.

미나모토노 요시쓰네가 형 요리토모를 피해 오슈로 가던 길에 이곳에서 갑작스러운 비를 만나 바위 아래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는 전설에서 ‘비가 갠다’는 뜻의 아마하라시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작은 바위섬과 바다, 오래된 전설까지.

아마하라시는 단순히 풍경만 아름다운 해안은 아니었다.


29. 바다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설산

그리고 바다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구름과 산의 경계가 잘 구별되지 않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구름 사이로 날카로운 산 능선들이 나타났다.

설산이었다.

“와…… 자기야 저것 좀 봐.”

산 정상과 능선 곳곳에 눈이 남아 있었다.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저렇게 높은 설산이 길게 펼쳐진다는 것이 신기했다.

날씨가 완전히 맑은 날은 아니었다.

구름이 산을 가렸다가 다시 보여주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구름 사이로 설산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 더 극적이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계속 셔터를 눌렀다.

사진을 확대해보면 바다 너머 다테야마 연봉의 눈 덮인 산줄기가 분명하게 보였다.

구름 아래로 산맥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죽이는구만.”

정말 멋졌다.

도야마에 왔다면 아마하라시는 꼭 한번 와봐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0. 온나이와와 다테야마 연봉

온나이와를 앞에 두고 뒤로 다테야마 연봉이 펼쳐지는 자리를 찾아 사진을 찍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산 쪽을 계속 바라봤고 마님은 그런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주었다.

마님과 온나이와를 배경으로 함께 사진도 찍었다.

바다는 잔잔했고 구름은 많았지만 멀리 설산은 계속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산과 바다 사이에는 항만시설과 교량, 공장들도 보였다.

자연풍경만 있는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도야마만의 실제 풍경이었다.

바다와 산업시설, 작은 어촌과 철길, 그 모든 것 뒤에 거대한 설산이 서 있었다.

산만 따로 보고 바다만 따로 보는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이곳을 왜 많은 사람들이 도야마의 대표적인 조망 장소로 꼽는지 직접 와보니 알 것 같았다.


31. 바다와 철길이 나란히 가는 곳

아마하라시 해안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한쪽에는 바다가 펼쳐지고 그 바로 옆으로 JR 히미선 철길이 지나갔다.

해안과 철길이 거의 붙어 있었고 철길 건너에는 주민들이 사는 작은 집들이 이어졌다.

나는 원래 다카오카와 아마하라시 사이를 오가는 히미선 열차를 꼭 한번 타보고 싶었다.

바다 바로 옆을 따라 달리는 지방철도라는 것부터 마음에 들었다.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아마하라시 해안과 함께 기대했던 것 중 하나였다.

해안을 걷는 동안 히미선 열차가 지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바다와 철길, 마을이 거의 붙어 있는 풍경은 내가 좋아하는 일본 지방철도의 모습 그대로였다.

마님과 철길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나는 이런 장소가 좋다.

관광객을 위해 따로 만들어놓은 풍경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마을 사이로 철길이 지나가고, 그 몇 걸음 뒤에 바다가 있으며, 날씨가 허락하면 그 바다 너머로 거대한 설산까지 나타난다.

온나이와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바다 건너 다테야마 연봉을 바라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이제 다카오카로 돌아갈 시간이 됐다.


32. 눈앞에서 놓쳐버린 히미선, 결국 다시 버스로

아마하라시에서 다카오카로 돌아갈 때는 꼭 히미선 열차를 타려고 했다.

해안에서 아마하라시역은 철길 건너편에 있었다.

문제는 건널목이었다.

바로 앞에서 철길을 건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건널목까지 제법 돌아가야 했다.

해안에서 사진을 찍고 서둘러 역으로 향했지만 생각보다 돌아가는 길이 길었다.

건널목을 건너 역 쪽으로 가는 사이, 내가 타려고 했던 다카오카행 열차가 눈앞에서 지나가버렸다.

“아이고…… 저걸 타야 되는디.”

그야말로 코앞에서 놓쳤다.

이번 여행에서 다카오카~아마하라시 구간의 히미선은 꼭 한번 타보고 싶었는데, 바다 구경하고 사진 찍다가 결국 기회를 놓쳐버린 셈이다.

아쉬웠다.

특히 방금 전까지 해안에서 그 철길을 바라보며 ‘저 기차 타고 가야지’ 하고 있었는데 정작 내가 탈 열차가 눈앞에서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더 허탈했다.

다음 열차를 기다리기에는 이후 일정이 맞지 않았다.

결국 할 수 없이 다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아마하라시역 부근 버스정류장에서 시간표를 확인하고 기다렸다.

잠시 뒤 초록색 가에츠노버스가 도착했고 마님과 함께 다카오카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한 뒤에도 아쉬움이 조금 남았다.

아마하라시의 바다와 온나이와, 다테야마의 설산은 실컷 봤지만 히미선만큼은 숙제로 남았다.

언젠가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는 꼭 다카오카에서 히미선 열차를 타고 이 바닷가를 다시 찾아오고 싶다.


33. 다시 도야마로, 내일을 위한 덴테츠도야마역 사전정찰

다카오카로 돌아온 뒤 도야마행 열차를 탔다.

하루 사이에 도야마와 다카오카를 오가며 신칸센, 보통열차, 버스까지 여러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아침에는 가나자와의 산속에서 윤봉길 의사님의 마지막 길을 찾아 걸었고, 오후에는 도야마로 넘어와 다카오카의 오래된 사찰과 도라에몽, 그리고 아마하라시의 바다와 설산까지 보았다.

하루가 무척 길게 느껴졌다.

저녁 6시 반쯤 다시 도야마에 도착했다.

숙소로 바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내일은 이번 여행의 또 다른 중요한 일정인 쿠로베 협곡으로 가는 날이다.

쿠로베 협곡으로 가려면 우나즈키온센 방면 열차를 타야 한다.

그 다음날 알펜루트의 시작점인 다테야마로 갈 때에도 같은 역에서 기차를 타야된다.

그래서 오늘 미리 덴테츠도야마역을 확인해두기로 했다.

나는 여행을 다닐 때 다음 날 아침 일찍 이용해야 할 역이나 승강장은 가능하면 전날 미리 찾아가 확인해두는 편이다.

가나자와에서도 윤 의사님 순국지로 가는 21번 버스를 타기 위해 전날 저녁 9번 승강장을 미리 확인해두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덴테츠도야마역으로 가서 역 위치와 승강장을 살펴보고, 미리 예약해둔 표도 찾아두었다.

이제 내일 아침에는 헤맬 일이 없었다.

쿠로베 협곡으로 가는 준비까지 끝냈다.


34. HOTEL JAL CITY TOYAMA로 돌아와

모든 일정을 마치고 HOTEL JAL CITY TOYAMA로 돌아왔다.

낮에 맡겨두었던 캐리어를 찾아 객실로 올라갔다.

아침 6시에 가나자와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윤봉길 의사님의 순국지와 순국기념비, 암장지를 찾아가고 박인조 선생님의 묘소까지 참배했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체크아웃한 뒤 신칸센을 타고 도야마로 넘어왔다.

다시 다카오카로 가서 즈이류지를 둘러보고 도라에몽 산책길을 걸었으며, 버스를 타고 아마하라시까지 갔다.

그곳에서는 바다 너머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다테야마 연봉의 설산을 바라보았다.

꼭 타보고 싶었던 히미선 열차를 눈앞에서 놓쳐버린 것은 아쉬웠다.

하지만 그 아쉬움까지도 여행의 한 장면으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내일 쿠로베 협곡으로 가기 위한 덴테츠도야마역 사전정찰과 승차권 수령까지 마쳤다.

참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였다.

오전에는 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천하영웅 윤봉길 의사님의 마지막 길을 걸었고, 오후에는 다시 마님과 함께 여행자의 모습으로 돌아와 도야마와 다카오카를 돌아다녔다.

슬프고 먹먹했던 아침과 아름답고 즐거웠던 오후가 한날 안에 함께 있었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하루가 될 것 같다.

내일은 쿠로베 협곡이다.

이번 여행의 또 다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