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독서보고] 아야츠지 유키토 『수차관의 살인』: 순환하는 시간, 훼손된 증거, 그리고 탈취된 신원

1. 작품 개요

가. 기본 정보

ㅇ(작품명) 『수차관의 살인』

ㅇ(작가) 아야츠지 유키토

ㅇ(갈래) 장편소설, 본격 미스터리, 관 시리즈

ㅇ(주요 배경) 오카야마현 산속에 자리한 후지누마 저택, 이른바 ‘수차관’이 중심 배경임. 수차관은 본관, 별관, 탑, 중앙정원, 동서남북 회랑, 엘리베이터, 수로와 수차 등으로 구성된 기묘한 저택임.

ㅇ(주요 인물) 후지누마 잇세이, 후지누마 기이치, 후지누마 유리에, 마사키 신고, 구라모토 쇼지, 네기시 후미에, 노자와 도모코, 오이시 겐조, 모리 시게히코, 미타무라 노리유키, 후루카와 쓰네히토, 시마다 기요시 등이 중심 인물임.

ㅇ(주요 내용) 1년에 한 번 후지누마 잇세이의 그림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수차관을 방문하고, 1년 전 벌어진 참극과 현재의 의문이 교차하면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이야기임.

ㅇ(주요 정서) 산속의 고립된 저택, 폭풍우, 덜거덩거리는 수차 소리, 가면을 쓴 주인, 사라진 그림, 탑에서 떨어진 여자, 토막 난 시신 등이 결합하여 처음부터 음산하고 폐쇄적인 분위기를 형성함.

나. 작품의 기본 성격

ㅇ(관 시리즈) 『수차관의 살인』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나카무라 세이지가 남긴 기괴한 건축물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룸.

ㅇ(본격 미스터리) 이 작품은 단순한 괴저택 소설이 아니라, 공간 구조, 시간 구성, 가면, 시신의 신원, 그림의 행방, 인물의 동선을 논리적으로 맞추어야 하는 본격 미스터리임.

ㅇ(시간 교차 구조) 작품은 1985년의 과거 사건과 1986년의 현재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며, 이미 끝난 줄 알았던 사건을 현재의 추리를 통해 다시 해체함.

ㅇ(신분 탈취의 미스터리) 사건의 핵심은 “누가 죽였는가”에만 있지 않음. “누가 죽은 것처럼 보였는가”, “누가 누구로 살아가고 있는가”, “가면 뒤의 정체는 누구인가”가 작품의 핵심 의문임.

ㅇ(수차의 상징성) 작품 제목의 수차는 단순한 시설물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이 현재로 되돌아오고, 멈춘 듯한 저택 안에서 비극이 반복되는 구조를 상징함.

2.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 소개

가. 작가 개요

ㅇ(출생) 아야츠지 유키토는 1960년 12월 23일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소설가임.

ㅇ(본명) 본명은 우치다 나오유키이며, 아야츠지 유키토는 필명임.

ㅇ(학력) 교토대학교 교육학부와 동 대학원에서 수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ㅇ(등단) 1987년 『십각관의 살인』으로 데뷔함.

ㅇ(대표작) 『십각관의 살인』, 『수차관의 살인』, 『미로관의 살인』, 『인형관의 살인』, 『시계관의 살인』, 『흑묘관의 살인』, 『암흑관의 살인』, 『기면관의 살인』 등이 대표작임.

나. 관 시리즈에서 『수차관의 살인』의 위치

ㅇ(두 번째 관) 『수차관의 살인』은 『십각관의 살인』에 이어 발표된 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임.

ㅇ(구조의 변주) 『십각관의 살인』이 섬과 본토를 번갈아 보여주며 사건을 구성했다면, 『수차관의 살인』은 1985년 과거와 1986년 현재를 오가며 사건을 구성함.

ㅇ(공간의 변화) 『십각관』의 핵심이 외딴섬과 십각형 건물의 고립성이라면, 『수차관』의 핵심은 산속 저택, 회랑, 탑, 별관, 수차와 수로가 만드는 폐쇄성임.

ㅇ(속임수의 변화) 『십각관』이 별명과 시간 조작을 통해 독자를 속였다면, 『수차관』은 가면, 휠체어, 시신, 손가락, 그림, 신분 위장을 통해 독자를 속임.

ㅇ(시리즈의 확장) 『수차관의 살인』은 관 시리즈가 단순한 밀실 살인 시리즈가 아니라, 공간 구조와 인간의 욕망, 신분의 불안정성을 함께 다루는 시리즈임을 보여줌.

3. 수차관의 공간 구조와 의미

가. 산속의 고립된 저택

ㅇ(입지) 수차관은 오카야마현 산속, 가까운 마을에서도 차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하는 산간벽지에 자리함.

ㅇ(고립감) 저택은 산, 숲, 강, 폭풍우, 수차 소리와 결합하면서 바깥세상과 단절된 공간처럼 제시됨.

ㅇ(사건의 조건) 외부의 시선이 닿기 어렵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는 외부 개입도 제한되기 때문에 범행과 은폐가 가능해짐.

ㅇ(공간의 성격) 수차관은 사람이 사는 집이면서도, 동시에 과거의 비극과 비밀을 안쪽에 가두어두는 폐쇄공간임.

나. 나카무라 세이지의 건축물

ㅇ(건축가의 흔적) 수차관은 관 시리즈의 배후 설계자인 나카무라 세이지와 관련된 건축물임.

ㅇ(기괴한 구조) 수차관은 단순한 대저택이 아니라, 본관과 별관, 탑, 중앙정원, 회랑, 수차, 수로가 결합된 기묘한 구조를 가짐.

ㅇ(건축의 기능) 건축물의 구조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람의 이동과 목격, 오해와 은폐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로 작동함.

ㅇ(관 시리즈의 특징) 이 작품에서도 나카무라 세이지의 건축은 사건이 벌어지는 무대가 아니라, 사건을 성립시키는 조건임.

다. 중앙정원과 회랑

ㅇ(중앙정원) 1층 중앙에는 넓은 중앙정원이 있고, 그 둘레를 동서남북 회랑이 감싸는 구조임.

ㅇ(회랑의 기능) 회랑은 각 공간을 연결하지만, 동시에 누가 어디로 이동했는지 쉽게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통로이기도 함.

ㅇ(시선의 한계) 중앙정원이 있어 시야가 열려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 생활공간은 방과 회랑, 별관, 탑으로 나뉘어 있음.

ㅇ(공간의 효과) 수차관의 평면 구조는 인물의 이동을 애매하게 만들고, 사건 당시의 목격과 알리바이를 흔드는 장치가 됨.

라. 탑과 발코니

ㅇ(추락의 장소) 탑은 네기시 후미에가 떨어진 장소로 제시되며, 작품 초반부터 강한 불길함을 만듦.

ㅇ(발코니의 단서) 발코니 난간과 볼트, 비바람, 젖은 흔적 등은 후미에의 추락이 단순 사고인지 누군가의 조작인지 의심하게 만듦.

ㅇ(고립된 장소) 탑의 방은 수차관 안에서도 가장 고립된 장소로, 추락과 은폐, 과거 사건의 핵심 이미지를 담당함.

ㅇ(상징적 의미) 탑은 높은 곳에서의 추락을 보여주는 물리적 장소이면서, 수차관 안에 감추어진 진실이 바깥으로 떨어져 나오는 장소처럼 보임.

마. 서재와 닫혀 있던 문

ㅇ(서재의 문) 거실에서 서재로 이어지는 문은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던 문으로 제시됨.

ㅇ(떨어진 열쇠) 작은 검은 열쇠가 떨어져 있고, 그것이 거실에서 서재로 통하는 문의 열쇠라는 사실이 확인됨.

ㅇ(잠금의 허점) 복도에서 거실로 들어오는 문은 잠기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만 있으면 누군가가 드나들 수 있었음이 드러남.

ㅇ(불가능성의 균열) 닫힌 방처럼 보였던 구조에 작은 틈이 생기면서, “아무도 드나들 수 없었다”는 전제가 흔들리기 시작함.

바. 지하실과 소각로

ㅇ(지하실의 기능) 지하실은 사건의 가장 잔혹한 흔적이 드러나는 공간임.

ㅇ(소각로의 이미지) 소각로는 시신이 해체되고 불태워진 장소로, 수차관의 음산함과 잔혹성을 극대화함.

ㅇ(신원 착각의 장소) 소각로에서 발견된 시신은 처음에는 마사키 신고의 시신으로 판단되지만, 실제로는 후루카와 쓰네히토의 시신이었음.

ㅇ(공간의 역할) 지하실과 소각로는 단순한 부속공간이 아니라, 신원 조작과 거짓 진상을 성립시키는 핵심 장소임.

사. 벽난로와 엘리베이터 장치

ㅇ(비밀통로 의심) 인물들은 수차관 안에 비밀통로나 비밀방이 있을 가능성을 의심함.

ㅇ(실제 장치) 그러나 핵심은 전통적인 비밀통로가 아니라, 벽난로와 연결된 엘리베이터 장치였음.

ㅇ(상자 구조) 벽과 연결된 빈 공간, 모터, 위아래로 이어진 상자 구조가 사람이나 시신의 이동을 가능하게 함.

ㅇ(발견의 어려움) 장치의 핵심부가 아래쪽 상자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 안 수색으로는 쉽게 발견되지 않았음.

ㅇ(건축적 의미) 이 장치는 수차관이 단순한 저택이 아니라, 사건의 불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건축 장치임을 보여줌.

아. 수차 소리

ㅇ(반복되는 소리) 작품 곳곳에서 덜거덩거리는 수차 소리가 반복됨.

ㅇ(시간의 감각) 수차 소리는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이면서도, 같은 자리를 계속 도는 소리처럼 들림.

ㅇ(과거의 회귀) 1년 전 사건과 현재 사건이 교차하는 구조 속에서 수차 소리는 과거가 현재로 다시 돌아오는 느낌을 줌.

ㅇ(작품의 상징) 수차관의 수차는 단순한 시설물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도 과거의 비극을 계속 되돌려놓는 상징으로 읽힘.

4. 시간 구성과 서술 방식

가. 1985년 과거 사건

ㅇ(사건의 출발) 1985년 9월, 폭풍우 치는 밤 수차관에서 네기시 후미에의 추락, 후지누마 잇세이의 그림 도난, 후루카와 쓰네히토의 실종, 토막 난 시신 발견이 이어짐.

ㅇ(겉보기 진상) 당시 사건은 후루카와가 잇세이의 그림을 훔치고, 이를 저지하려던 마사키 신고를 죽인 뒤 도주한 사건처럼 정리됨.

ㅇ(공식 수사의 결론) 지하실 소각로에서 발견된 토막 시신은 마사키 신고의 시신으로 판단되고, 후루카와는 사라진 범인으로 지목됨.

ㅇ(과거의 불안정성) 그러나 후미에의 추락, 사라진 그림, 젖은 융단, 소각로 시신, 왼손 약손가락, 반지 자국은 모두 나중에 다시 해석될 여지를 남김.

ㅇ(과거 사건의 기능) 1985년 사건은 이미 끝난 사건이 아니라, 1986년 현재 시점에서 다시 뒤집히기 위해 배치된 거짓 해답임.

나. 1986년 현재 사건

ㅇ(연례 방문) 1년 뒤인 1986년, 잇세이의 그림을 보기 위해 오이시 겐조, 모리 시게히코, 미타무라 노리유키 등이 다시 수차관을 방문함.

ㅇ(가면 쓴 주인) 후지누마 기이치로 보이는 인물은 여전히 가면을 쓰고 휠체어에 앉아 있으며, 과거 사건이 끝나지 않았다는 불안감을 키움.

ㅇ(시마다의 등장) 시마다 기요시는 수차관에 불청객처럼 나타나, 1년 전 사건의 공식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음.

ㅇ(현재 사건의 발생) 미타무라와 도모코가 차례로 살해되면서, 1년 전 사건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는 미해결 구조였음이 드러남.

ㅇ(현재의 역할) 1986년 현재는 과거 사건의 후일담이 아니라, 1985년의 거짓 진상을 다시 해체하는 추리의 무대임.

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 구조

ㅇ(구성 방식) 작품은 1985년 과거와 1986년 현재를 번갈아 보여주며, 독자가 두 시간대를 비교하게 만듦.

ㅇ(수차관의 시간성) 수차가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돌듯이, 1년 전 사건은 현재의 수차관 안에서 다시 되돌아옴.

ㅇ(독자의 착각) 독자는 1985년 사건의 수사결과를 어느 정도 믿은 상태에서 1986년 현재 사건을 따라가게 됨. 그러나 후반부에 이르러 그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음이 드러남.

ㅇ(거짓 해답의 효과) 후루카와 범인설과 마사키 피해자설은 독자가 현재 사건을 잘못 해석하도록 만드는 장치임.

ㅇ(시간 구조의 의미) 『수차관의 살인』의 시간 교차는 단순한 회상 기법이 아니라, 과거의 거짓 결론을 현재의 추리로 무너뜨리는 장치임.

라. 『십각관의 살인』과 다른 시간 트릭

ㅇ(십각관의 방식) 『십각관의 살인』은 섬과 본토를 오가며 독자의 시선을 나누고, 별명과 시간 조작을 통해 착각을 유도함.

ㅇ(수차관의 방식) 『수차관의 살인』은 1985년과 1986년을 오가며, 이미 끝난 사건이라고 믿게 만든 과거를 현재에서 다시 뒤집음.

ㅇ(속임수의 차이) 『십각관』의 착각이 공간과 시점의 분리에 가깝다면, 『수차관』의 착각은 과거 수사결과 자체를 믿게 만드는 데서 발생함.

ㅇ(반전의 성격) 『십각관』이 “같은 인물을 다른 인물처럼 보이게 하는 반전”에 강점이 있다면, 『수차관』은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의 신분 자체를 뒤집는 반전”에 강점이 있음.

ㅇ(관 시리즈의 확장) 이 차이 때문에 『수차관의 살인』은 관 시리즈가 단순한 밀실 살인물이 아니라, 시간 구성과 신분 조작을 함께 다루는 시리즈임을 보여줌.

마. 순환하는 시간의 의미

ㅇ(수차의 상징) 작품 제목의 수차는 물리적 시설물이면서, 동시에 과거가 현재로 되돌아오는 시간 구조의 상징임.

ㅇ(멈춘 저택) 수차관은 시간이 흐르는 장소가 아니라, 1년 전 비극이 그대로 고여 있다가 다시 작동하는 장소처럼 보임.

ㅇ(반복되는 비극) 1985년의 추락, 시신, 그림, 신원 착각은 1986년의 살인과 추리 속에서 다시 반복되고 재해석됨.

ㅇ(시간의 해체) 시마다의 추리는 단순히 범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1년 동안 굳어져 있던 시간의 거짓 질서를 해체하는 과정임.

ㅇ(작품의 구조) 『수차관의 살인』은 수차처럼 돌아오는 시간 속에서, 과거의 거짓 죽음과 현재의 진짜 살인이 서로 맞물리며 진상을 드러내는 작품임.

5. 작품 전체 내용 정리

가. 수차관과 후지누마 잇세이의 그림

ㅇ(잇세이의 명성) 후지누마 잇세이는 ‘환시자’로 불린 불세출의 화가임.

ㅇ(그림의 위상) 잇세이의 그림들은 수차관에 보관되어 있고, 1년에 한 번 제한된 사람들에게 공개됨.

ㅇ(방문객의 목적) 오이시 겐조, 모리 시게히코, 미타무라 노리유키, 후루카와 쓰네히토 등은 잇세이의 작품을 보기 위해 수차관을 방문함.

ㅇ(욕망의 대상) 그림은 순수한 예술품인 동시에, 돈과 명성, 학문적 권위, 소유욕이 얽힌 욕망의 대상임.

나. 1년 전 수차관의 참극

ㅇ(폭풍우의 밤) 1985년 9월, 수차관은 폭풍우 속에서 바깥세상과 더욱 고립됨.

ㅇ(후미에의 추락) 과거 입주 가정부였던 네기시 후미에가 탑에서 떨어져 죽는 사건이 발생함.

ㅇ(사라진 그림) 후지누마 잇세이의 그림 한 점이 사라짐.

ㅇ(사라진 남자)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범인처럼 의심받고 사라진 사람처럼 보임.

ㅇ(토막 시신) 소각로에서 토막 난 시신이 발견되며 사건은 더 기괴한 형태를 띰.

다. 공식 수사결과

ㅇ(후루카와 범인설) 당시 경찰은 후루카와가 잇세이의 그림에 집착했고, 금전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그를 범인으로 추정함.

ㅇ(마사키 피해자설) 지하실 소각로에서 발견된 토막 시신은 마사키 신고의 시신으로 판단됨.

ㅇ(물적 증거) 시신의 왼손 약손가락 결손, 발견된 손가락, 혈액형, 반지 자국 등이 마사키 피해자설의 근거가 됨.

ㅇ(수사결과의 한계) 그러나 시신의 훼손 상태와 범행 경과를 고려하면, 이 결론은 지나치게 성급한 판단이었음.

라. 1년 뒤 다시 모인 사람들

ㅇ(반복되는 방문) 잇세이의 그림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다시 수차관을 방문함.

ㅇ(유리에의 존재) 후지누마 유리에는 젊고 아름다운 아내로 수차관 안에 머물며, 여러 인물의 시선과 욕망이 교차하는 중심에 놓임.

ㅇ(기이치의 불안) 가면을 쓴 기이치는 외부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있지만, 과거 사건이 다시 언급될수록 불안과 경계심을 드러냄.

ㅇ(시마다의 의심) 시마다 기요시는 1년 전 사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당시의 단서와 동선, 시신의 신원을 다시 검토함.

마. 현재 사건의 발생

ㅇ(정전과 혼란) 번개와 폭풍우로 수차관의 전기가 끊기고, 사람들은 불안과 어둠 속에 놓임.

ㅇ(미타무라의 죽음) 미타무라 노리유키가 탑의 방에서 죽은 채 발견됨. 그는 현재의 ‘기이치’가 실제 기이치가 아니라는 사실에 접근한 인물임.

ㅇ(도모코의 죽음) 노자와 도모코는 걸을 수 없는 줄 알았던 ‘기이치’가 실제로 걷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에 살해됨.

ㅇ(반복되는 비극) 1년 전 사건이 현재의 수차관 안에서 다시 되풀이되는 듯한 구조가 만들어짐.

바. 드러나는 진실

ㅇ(가면의 의미) 기이치의 가면은 흉한 얼굴을 가리기 위한 물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분 위장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임.

ㅇ(시신의 착각) 토막 난 시신과 잘린 손가락은 죽은 사람이 누구인지 오인하게 만드는 장치였음.

ㅇ(신분의 도둑질) 마사키 신고는 기이치를 죽이고, 후루카와를 희생양으로 삼으며, 자신이 죽은 것처럼 꾸민 뒤 기이치의 신분으로 살아감.

ㅇ(작품의 본질) 『수차관의 살인』은 단순히 살인을 은폐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 인간의 신분과 존재를 통째로 훔치는 이야기임.

6. 예술과 소유욕

가. 후지누마 잇세이의 그림

ㅇ(예술의 권위) 잇세이의 그림은 예술적으로 높이 평가되는 대상이며, 수차관 방문의 명분이 됨.

ㅇ(소유의 욕망) 그러나 그림은 순수한 감상 대상에 머물지 않고, 금전적 가치, 학문적 권위, 독점 욕망의 대상으로 변함.

ㅇ(방문객의 태도) 오이시는 미술상으로서 시장 가치를 의식하고, 모리는 미술사 교수로서 학문적 권위를 의식하며, 미타무라는 다른 방식으로 그림과 수차관에 접근함.

ㅇ(작품의 의미) 『수차관의 살인』에서 예술은 인간을 고양시키는 대상이기보다, 인간의 욕망과 열등감, 소유욕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함.

나. 「환영공상」의 상징성

ㅇ(숨겨진 유작) 「환영공상」은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잇세이의 유작으로 언급됨.

ㅇ(자의식과 열등감) 작품 속 인물은 「환영공상」을 자의식과 열등감의 화신처럼 받아들임.

ㅇ(기이치의 두려움) 기이치는 아버지처럼 자신도 그 그림이 무섭고, 남에게 보여주기 싫었다고 말함.

ㅇ(내면의 어둠) 「환영공상」은 후지누마 잇세이의 예술세계만이 아니라, 후지누마 집안과 수차관이 감추고 싶은 어두운 내면을 상징함.

다. 그림과 수차관의 관계

ㅇ(그림의 계시성) 후지누마 잇세이의 그림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 수차관의 운명과 비극을 예언하는 듯한 이미지로 제시됨.

ㅇ(수차관의 원형) 마지막에 드러난 그림에는 수차관 자체를 떠올리게 하는 기묘한 이미지가 담겨 있음.

ㅇ(그림 속 요소) 검고 거대한 실루엣, 수레바퀴 모양, 검은 머리의 여성, 길고 하얀 다리, 가면을 쓴 인물, 잘린 손가락이 그림 안에 나타남.

ㅇ(건축의 출발점) 수차관은 단순히 나카무라 세이지의 기이한 설계물이 아니라, 잇세이의 그림에서 출발한 공간처럼 제시됨.

라. 그림이 만든 운명

ㅇ(그림 때문에 지어진 집) 수차관은 잇세이의 그림 때문에 지어졌고, 그 그림 때문에 기이치와 유리에, 마사키의 운명이 이 저택 안에 묶이게 됨.

ㅇ(가면의 반복) 그림 속 가면은 기이치의 가면이자, 마사키가 훔쳐 쓴 기이치의 얼굴을 상징함.

ㅇ(유리에의 상징) 그림 속 검은 머리의 여성은 유리에를 떠올리게 하며, 수차관 안에 갇힌 아름다운 존재로 읽힘.

ㅇ(잘린 손가락) 그림 속 손은 마사키가 자기 손가락을 잘라 신분 위장을 완성한 사건과 연결됨.

ㅇ(작품의 운명성) 수차관의 비극은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라기보다, 잇세이의 그림과 나카무라 세이지의 건축, 기이치와 유리에, 마사키의 욕망이 한 공간 안에서 맞물린 운명처럼 제시됨.

7. 작품의 주요 특징

가. 가면과 신분 위장

ㅇ(가면의 기능) 기이치의 가면은 흉한 얼굴을 감추는 물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얼굴 확인을 차단하는 장치임.

ㅇ(휠체어의 기능) 휠체어는 신체 조건을 고정시켜 사람들의 의심을 줄이는 장치로 작동함.

ㅇ(목소리와 몸짓) 쉰 목소리, 장갑, 불편한 몸 상태는 모두 기이치라는 인물을 특정한 이미지 안에 가두는 요소임.

ㅇ(장치의 반전) 가면과 휠체어는 불행한 주인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사키 신고의 신분 위장을 가능하게 한 도구임.

나. 시신 조작과 손가락 트릭

ㅇ(소각로 시신) 소각로에서 발견된 시신은 처음에는 마사키 신고의 시신으로 판단되지만, 실제로는 후루카와 쓰네히토의 시신이었음.

ㅇ(왼손 약손가락) 발견된 왼손 약손가락은 마사키 자신의 일부였고, 그는 이 손가락을 이용해 시신이 자기 것이라고 믿게 만듦.

ㅇ(반지 자국) 손가락의 반지 자국은 단순한 장신구 흔적이 아니라, 신원 조작을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 단서였음.

ㅇ(잔혹한 조합) 시신 전체는 후루카와, 손가락 하나는 마사키라는 조합이 이 작품에서 가장 잔혹하고도 중요한 트릭임.

다. 과학수사의 한계와 소설적 허용

ㅇ(시대적 조건) 사건 시점이 1980년대 중반이라는 점에서 DNA 감정이 일반화되지 않았다는 설명은 가능함.

ㅇ(전통 법의학의 가능성) 그러나 소각로 시신에 머리와 몸통, 치아와 골격이 남아 있었다면 당시의 법의학 수준으로도 신원 확인을 시도할 여지는 있었음.

ㅇ(수사결과의 약점) 혈액형, 반지 자국, 손가락 단서만으로 시신을 마사키라고 단정한 것은 다소 성급한 판단으로 보임.

ㅇ(작품적 판단) 따라서 이 부분은 시대적 한계만으로 완전히 설명되기보다는, 경찰의 선입견과 비교자료 부족, 시신 훼손, 본격 미스터리의 소설적 허용이 함께 작용한 대목으로 보는 것이 적절함.

라. 수차관의 폐쇄성과 건축 장치

ㅇ(산속 저택) 수차관은 산속에 고립되어 외부의 개입이 어렵고, 폭풍우 속에서 더욱 폐쇄됨.

ㅇ(회랑과 별관) 복잡한 회랑과 별관 구조는 인물들의 이동을 애매하게 만들고 사건의 진상을 흐리게함.

ㅇ(탑과 소각로) 탑은 추락과 죽음의 장소이고, 소각로는 시신 훼손과 신원 착각의 장소로 기능함.

ㅇ(벽난로 엘리베이터) 벽난로와 연결된 엘리베이터 장치는 수차관이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을 가능하게 한 기계적 장치임을 보여줌.

ㅇ(공간의 역할) 수차관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범행과 신분 위장, 시신 은폐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임.

마. 시마다 기요시의 탐정 기능

ㅇ(공식 결론의 전복) 시마다는 경찰이 정리한 후루카와 범인설과 마사키 피해자설을 뒤집음.

ㅇ(물리적 구조의 해체) 그는 시신의 이동, 손가락의 의미, 벽난로 장치, 엘리베이터 구조를 통해 불가능해 보인 사건을 다시 설명함.

ㅇ(신분 위장의 폭로) 시마다는 가면을 쓴 ‘기이치’의 정체가 실제로는 마사키 신고임을 밝혀냄.

ㅇ(탐정의 의미) 시마다는 수차관 사람들이 믿어온 거짓 질서를 무너뜨리고, 사건의 구조를 논리적으로 해체하는 인물임.

8. 작품 감상 및 종합 평가

가. 수차관은 시간이 멈춘 저택처럼 느껴짐

ㅇ(공간의 인상) 수차관은 단순히 산속의 기괴한 저택이 아니라, 과거의 비극이 1년 동안 그대로 고여 있는 공간처럼 느껴짐.

ㅇ(수차 소리의 효과) 덜거덩거리는 수차 소리는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이면서, 동시에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소리처럼 들림.

ㅇ(과거의 정지) 수차관 안의 사람들은 1년 전 사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음.

ㅇ(공간 감상) 수차관은 과거를 지나 보내지 못한 사람들이 갇혀 있는 장소로 보임.

나. 마사키 신고의 악질성

ㅇ(범행의 성격) 마사키 신고는 단순한 살인범이 아니라, 기이치의 목숨과 신분, 재산, 아내의 자리까지 빼앗은 인물임.

ㅇ(희생자의 규모) 그는 기이치를 죽이고, 후미에를 제거하고, 후루카와를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죽음까지 위장함.

ㅇ(추가 범행) 현재 시점에서도 미타무라와 도모코를 죽이며, 자기 정체가 드러날 위험이 생길 때마다 살인을 반복함.

ㅇ(존재의 탈취) 마사키의 범행은 한 사람을 죽이는 데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삶 전체를 훔치는 범죄임.

ㅇ(개인적 감상) 그래서 마사키 신고는 관 시리즈 안에서도 매우 악질적인 범인으로 느껴짐.

다. 유리에의 위치는 애처롭지만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음

ㅇ(유리에의 상처) 유리에는 어린 나이에 수차관에 들어와, 아버지와 예술, 기이치와 마사키 사이의 욕망에 둘러싸인 인물임.

ㅇ(공범의 문제) 그러나 그녀가 1년 전 사건의 진실을 알고도 마사키와 함께 움직였다는 점에서 완전한 피해자로만 보기는 어려움.

ㅇ(탈출 욕망) 시간이 흐르면서 유리에는 수차관에서 벗어나고자 협박장을 보내며 마사키와의 관계에 균열을 일으킴.

ㅇ(복합적 감상) 유리에는 불쌍한 인물이지만, 동시에 수차관 비극의 한 축을 이룬 인물임.

ㅇ(인물 평가) 유리에의 비극성은 그녀가 피해자이면서도 사건의 방관자 또는 협력자 위치에 놓였다는 데 있음.

라. 수사의 허점은 아쉬움으로 남음

ㅇ(신원 확인 문제) 소각로 시신이 심하게 훼손되었다고 해도, 머리와 몸통, 팔다리, 치아와 골격이 남아 있었다면 더 면밀한 신원 확인이 가능했을 여지가 있음.

ㅇ(후루카와 범인설의 성급함) 경찰은 후루카와의 동기와 정황, 마사키의 손가락 단서에 지나치게 의존해 사건을 정리한 것으로 보임.

ㅇ(소설적 허용) 이 부분은 본격 미스터리의 트릭을 성립시키기 위한 소설적 허용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으나, 현실성 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음.

ㅇ(감상 포인트) 오히려 이 약점 때문에 독자는 작품을 읽으며 “정말 저렇게까지 수사가 정리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됨.

마. 관 시리즈 안에서의 의미

ㅇ(전작과의 차이) 『십각관』이 섬과 본토, 별명과 시간 조작으로 독자를 속였다면, 『수차관』은 과거 수사결과, 소각로 시신, 손가락, 가면, 휠체어를 통해 독자를 속임.

ㅇ(수차관의 개성) 『수차관』은 강렬한 한 방의 반전보다, 1년 전 사건이 현재 사건 속에서 다시 해체되는 구조적 재미가 강함.

ㅇ(시리즈의 확장) 이 작품은 관 시리즈가 단순한 폐쇄공간 살인물이 아니라, 건축 장치와 시간 구성, 신분 탈취를 결합한 신본격 미스터리임을 보여줌.

ㅇ(작품의 자리) 『수차관의 살인』은 『십각관』의 후속작이면서도, 관 시리즈의 관심을 “공간의 고립”에서 “시간의 순환과 신분의 탈취”로 확장한 작품임.

바. 최종 평가

ㅇ(작품의 가치) 『수차관의 살인』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 가면을 통한 신분 위장, 그림을 둘러싼 욕망, 산속 저택의 폐쇄성을 결합한 관 시리즈의 중요한 작품임.

ㅇ(장점) 수차관의 평면 구조와 수차 소리, 탑과 별관, 소각로와 그림이 모두 사건의 진상과 연결되어 있어 공간 활용이 뛰어남.

ㅇ(아쉬운 점) 일부 범행은 지나치게 과감하고 잔혹하며, 소각로 시신을 둘러싼 신원 확인 문제와 마사키의 위장이 장기간 유지된다는 점은 소설적 허용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

ㅇ(최종 소회) 『수차관의 살인』은 살인사건을 다룬 소설이지만, 더 깊게 보면 한 인간의 얼굴과 이름, 삶의 자리가 어떻게 빼앗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분 탈취의 미스터리임.

ㅇ(작품의 성격) 『수차관의 살인』은 순환하는 시간 속에서, 훼손된 증거와 가면 뒤에 숨어 다른 사람의 삶을 통째로 훔친 인간의 비극을 드러내는 작품임.

<수차처럼 순환하는 시간과 가면 뒤에 숨은 신분 탈취의 비극>

『수차관의 살인』은 오카야마현 산속에 자리한 기묘한 저택, 수차관을 배경으로 한 본격 미스터리 소설이다. 이 저택에는 후지누마 잇세이의 그림, 가면을 쓴 주인 후지누마 기이치, 젊은 아내 유리에, 그리고 1년에 한 번 저택을 찾는 방문객들이 있다. 처음에는 산속 저택에서 벌어진 기괴한 살인사건처럼 보이지만, 사건을 따라갈수록 이 작품의 핵심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신분과 존재의 바꿔치기였음이 드러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보여주는 구성이다. 『십각관의 살인』이 섬과 본토를 오가며 독자의 시선을 나누었다면, 『수차관의 살인』은 1985년의 사건과 1986년의 현재를 오가며 독자를 흔든다. 1년 전 폭풍우 치던 밤에 일어난 사건은 이미 끝난 과거처럼 보이지만, 현재의 수차관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 수차 소리는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이면서도, 과거가 계속 되돌아오는 소리처럼 들린다.

수차관이라는 공간도 중요하다. 중앙정원과 회랑, 탑과 별관, 서재와 지하실, 소각로와 벽난로 엘리베이터는 모두 사건의 장치로 기능한다. 탑은 추락과 죽음의 장소가 되고, 소각로는 시신과 신분 착각의 장소가 되며, 벽난로 엘리베이터는 불가능해 보였던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 저택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범행과 은폐, 신분 위장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로 움직인다.

무엇보다 마사키 신고의 범행은 악질적이다. 그는 기이치를 죽여 그 신분을 빼앗고, 후루카와를 죽여 자기 시신으로 위장하고, 자기 왼손 약손가락까지 잘라 신원 조작의 단서로 삼는다. 현재 시점에서는 미타무라와 도모코까지 죽이며,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위험을 계속 제거한다. 이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얼굴과 이름, 재산과 삶의 자리까지 빼앗는 범죄다.

유리에의 위치도 복잡하다. 그녀는 수차관 안에 갇힌 듯한 피해자이면서도, 1년 전 사건에서 마사키와 연결되어 있었던 인물이다. 이후 협박장을 통해 수차관에서 벗어나려 한 점은 그녀의 절박함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리에는 불쌍한 인물이지만, 동시에 수차관 비극의 한 축을 이룬 인물이다.

이 작품에서 잇세이의 그림은 단순한 미술품이 아니다. 그림은 수차관의 탄생과 연결되고, 수차관 안에서 벌어질 비극을 예언하는 듯한 상징물로 기능한다. 검은 머리의 여성, 긴 다리, 가면, 수레바퀴, 잘린 손가락의 이미지는 모두 수차관의 운명과 이어진다. 결국 이 집은 그림 때문에 지어졌고, 그림 때문에 사람들의 욕망이 모였으며, 그림 때문에 비극이 시작된 장소처럼 보인다.

다만 소각로 시신을 둘러싼 신원 확인 문제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건 시점이 1980년대 중반이라 DNA 감정이 일반화되지 않았다는 설명은 가능하지만, 시신에 머리와 몸통, 치아와 골격이 남아 있었다면 당시 법의학으로도 신원 확인을 더 시도할 여지는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경찰의 선입견, 비교자료 부족, 시신 훼손, 그리고 본격 미스터리의 소설적 허용이 함께 작용한 대목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결국 『수차관의 살인』은 과거와 현재가 수차처럼 되돌아오는 작품이다. 1년 전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고, 현재의 방문객들 앞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수차관은 시간이 멈춘 저택이고, 그 안의 사람들은 과거의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작품은 수차 소리와 가면, 그림과 시신, 탑과 회랑을 통해 인간의 신분과 존재가 얼마나 잔혹하게 뒤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분 탈취의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다.

수차관 전경, Painted by Gemini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차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수차관의 살인』 등장인물 정리

1. 후지누마 집안과 수차관의 중심 인물

가. 후지누마 잇세이(고인)

ㅇ(기본 성격) ‘환시자’로 일컬어진 불세출의 화가임.

ㅇ(작품 속 역할) 수차관과 막대한 유산, 그리고 자신의 그림들을 남긴 인물임.

ㅇ(인물 관계) 후지누마 기이치의 아버지이며, 유리에의 아버지인 시바가키 고이치로의 스승이기도 함.

ㅇ(그림의 의미) 잇세이의 그림은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라, 수차관 사람들과 방문객들의 욕망을 끌어들이는 중심 대상임.

ㅇ(욕망의 구조) 잇세이의 그림을 둘러싸고 예술적 감상, 금전적 가치, 학문적 권위, 소유욕이 뒤섞임.

ㅇ(인물의 의미) 잇세이는 현재 시점에는 죽은 인물이지만, 그의 그림과 명성, 유산이 수차관 사건의 근본 배경이 됨.

나. 후지누마 기이치(41)

ㅇ(기본 성격) 후지누마 잇세이의 아들로, 사고로 얼굴을 다쳐 가면을 쓰고 휠체어 생활을 하는 수차관의 주인으로 제시됨.

ㅇ(작품 속 역할) 아버지 잇세이의 그림을 관리하고, 젊은 아내 유리에와 함께 수차관에 은둔하듯 살아가는 인물임.

ㅇ(가면의 의미) 기이치의 가면은 흉한 얼굴을 감추는 물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분 위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장치로 작동함.

ㅇ(욕망의 대상) 기이치는 수차관의 주인 자리, 잇세이의 그림, 막대한 재산, 유리에와 연결된 인물로, 마사키 신고가 빼앗고자 한 모든 것의 중심에 있음.

ㅇ(스포일러 핵심) 현재 시점에서 ‘기이치’로 보이는 인물은 실제 기이치가 아니라, 마사키 신고가 기이치로 위장한 존재임.

ㅇ(인물의 의미) 후지누마 기이치는 이 작품에서 단순한 피해자나 주인이 아니라, ‘가면을 쓴 주인’이라는 외형을 통해 신분 위장과 시체 바꿔치기 트릭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인물임.

다. 후지누마 유리에(19)

ㅇ(기본 성격) 후지누마 기이치의 젊은 아내이며, 잇세이의 제자였던 시바가키 고이치로의 딸임.

ㅇ(작품 속 역할) 수차관 안에서 보호받는 듯하지만, 동시에 바깥세상과 떨어져 갇힌 듯한 위치에 놓인 인물임.

ㅇ(시선의 중심) 유리에는 기이치, 마사키 신고, 미타무라 노리유키 등 여러 남성 인물의 시선과 욕망이 교차하는 중심에 있음.

ㅇ(욕망의 구조) 유리에는 한 사람의 독립된 인물이라기보다, 수차관의 재산, 그림, 주인 자리, 남성들의 소유욕이 모이는 자리로 제시됨.

ㅇ(스포일러 핵심) 1985년 사건에서 마사키 신고의 계획에 협력한 공범적 위치에 있음. 다만 범행의 주도자라기보다, 마사키의 욕망과 수차관의 폐쇄성 속에 끌려든 인물로 볼 수 있음.

ㅇ(인물의 의미) 유리에는 보호받는 미소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차관의 재산, 그림, 욕망, 신분 위장 구조 한가운데 놓인 인물임.

라. 시바가키 고이치로(고인)

ㅇ(기본 성격) 후지누마 잇세이의 제자였던 화가이며, 후지누마 유리에의 아버지임.

ㅇ(작품 속 역할) 직접 현재 사건을 이끄는 인물은 아니지만, 유리에가 수차관과 후지누마 집안에 들어오게 되는 배경과 관련됨.

ㅇ(예술의 계보) 시바가키 고이치로는 잇세이의 예술 세계와 유리에의 삶을 연결하는 과거의 인물임.

ㅇ(인물의 의미) 시바가키는 죽은 인물이지만, 유리에의 출신과 수차관 내부의 예술적 권위, 후지누마 집안의 폐쇄성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인물임.

2. 수차관 내부 관계자

가. 구라모토 쇼지(56)

ㅇ(기본 성격) 수차관의 집사임.

ㅇ(작품 속 역할) 후지누마 집안과 수차관을 오래 관리해온 인물로, 저택 내부의 생활과 질서를 유지함.

ㅇ(사건과의 관련) 1985년 사건 당시 네기시 후미에의 추락 장면을 목격하는 등 사건의 주변 정황과 관련됨.

ㅇ(저택과의 관계) 구라모토는 단순히 주인 개인에게 봉사하는 집사라기보다, 수차관이라는 집 자체의 질서를 지키는 인물처럼 보임.

ㅇ(인물의 의미) 구라모토는 범행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수차관이라는 폐쇄된 공간의 내부 사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인적 인물임.

나. 네기시 후미에(45)

ㅇ(기본 성격) 과거 수차관의 입주 가정부임.

ㅇ(작품 속 역할) 기이치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돌보던 인물로, 주인의 몸 상태와 생활 습관을 잘 아는 위치에 있었음.

ㅇ(사건 속 위치) 탑에서 떨어져 죽는 인물로, 1985년 사건의 비극을 강하게 각인시키는 피해자임.

ㅇ(스포일러 핵심) 마사키 신고가 기이치로 위장한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살해됨.

ㅇ(인물의 의미) 네기시 후미에는 단순한 가정부가 아니라, 신분 위장 트릭이 들통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관찰자였음.

다. 노자와 도모코(31)

ㅇ(기본 성격) 현재 수차관의 통근 가정부임.

ㅇ(작품 속 역할) 네기시 후미에 이후 수차관에서 일하는 가정부로, 현재 사건의 생활공간 안에 놓인 인물임.

ㅇ(사건 속 위치) 현재 시점에서 수차관 내부의 일상과 이상 징후를 보여주는 인물임.

ㅇ(스포일러 핵심) 걸을 수 없는 줄 알았던 ‘기이치’가 실제로 걷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마사키 신고의 위장이 드러날 위험에 놓이고 살해됨.

ㅇ(인물의 의미) 노자와 도모코는 현재 시점에서 신분 위장 트릭이 다시 노출되는 계기를 만드는 인물임.

3. 1년에 한 번 수차관을 방문하는 사람들

가. 오이시 겐조(49)

ㅇ(기본 성격) 미술상임.

ㅇ(작품 속 역할) 후지누마 잇세이의 그림을 보기 위해 1년에 한 번 수차관을 방문하는 인물임.

ㅇ(욕망의 방향) 예술적 가치보다 그림의 금전적 가치와 시장성을 강하게 의식하는 인물로 볼 수 있음.

ㅇ(그림과의 관계) 잇세이의 그림은 오이시에게 감상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거래와 소유의 대상임.

ㅇ(인물의 의미) 오이시는 수차관 사건에서 잇세이의 그림이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라, 돈과 욕망의 대상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줌.

나. 모리 시게히코(46)

ㅇ(기본 성격) M□□ 대학의 미술사 교수임.

ㅇ(작품 속 역할) 잇세이의 작품을 학문적·예술사적으로 바라보는 인물임.

ㅇ(욕망의 방향) 그림을 돈으로만 보지는 않지만, 예술을 해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지적 우월감과 권위를 드러냄.

ㅇ(사건과의 관련) 1년에 한 번 수차관을 방문하는 고정 방문객 중 하나로, 과거 사건과 현재 사건을 이어보는 증인 집단에 속함.

ㅇ(인물의 의미) 모리는 잇세이 그림의 예술적 권위와 학문적 평가를 대표하는 인물임.

다. 미타무라 노리유키(36)

ㅇ(기본 성격) 외과 병원장임.

ㅇ(작품 속 역할) 1년에 한 번 수차관을 방문하는 인물이며, 의사라는 직업상 신체와 상처, 손가락 문제를 알아차릴 수 있는 위치에 있음.

ㅇ(유리에와의 관계) 유리에를 둘러싼 감정과 욕망의 흐름 속에 놓인 인물로, 수차관 내부의 긴장을 더함.

ㅇ(스포일러 핵심) 현재의 ‘기이치’가 실제 기이치가 아니라는 사실에 접근하게 되고, 유리에와의 관계 문제까지 겹치면서 마사키 신고에게 살해됨.

ㅇ(인물의 의미) 미타무라는 수차관 사건에서 신체적 단서와 신분 위장 트릭을 위협하는 인물임.

라. 후루카와 쓰네히토(37)

ㅇ(기본 성격) 대대로 후지누마 집안의 위패가 안치된 절의 부주지임.

ㅇ(작품 속 역할) 1년에 한 번 수차관을 방문하는 인물이며, 1985년 사건 이후 범인으로 의심받고 사라진 사람처럼 보임.

ㅇ(사건 속 위치) 겉으로는 도망친 범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피해자 중 한 사람임.

ㅇ(스포일러 핵심) 실제로는 도망친 범인이 아니라, 마사키 신고에게 살해되어 마사키가 죽은 것처럼 꾸미는 데 이용된 희생자임.

ㅇ(인물의 의미) 후루카와는 이 작품의 시체 바꿔치기 트릭에서 가장 중요한 희생자임. ‘사라진 범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분 위장의 대체 시신’으로 이용됨.

4. 수차관에 머문 외부 인물과 탐정

가. 마사키 신고(38)

ㅇ(기본 성격) 후지누마 기이치의 친구이며, 한때 후지누마 잇세이에게 가르침을 받은 인물임.

ㅇ(작품 속 역할) 겉으로는 기이치의 친구이자 수차관에 머물던 인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건 전체의 핵심 범인임.

ㅇ(욕망의 방향) 마사키는 기이치의 재산, 잇세이의 그림, 유리에, 수차관의 주인 자리까지 탐낸 인물로 볼 수 있음.

ㅇ(스포일러 핵심) 마사키는 실제 후지누마 기이치를 죽이고 그의 자리와 신분을 빼앗음. 이후 가면과 휠체어, 쉰 목소리, 신체적 장애 이미지를 이용해 기이치 행세를 계속함.

ㅇ(범행 구조) 마사키는 기이치를 죽여 신분을 빼앗고, 네기시 후미에를 죽여 위장이 들통날 위험을 막고, 후루카와 쓰네히토를 죽여 자기 죽음까지 위장함.

ㅇ(현재 사건) 현재 시점에서는 미타무라 노리유키가 자신의 정체에 접근하자 그를 살해하고, 자신이 걸어다니는 모습을 본 노자와 도모코까지 살해함.

ㅇ(범행의 악질성) 마사키의 범행은 단순 살인이 아니라, 타인의 목숨과 이름, 재산과 아내의 자리까지 빼앗은 신분 탈취의 범죄임.

ㅇ(인물의 의미) 마사키 신고는 이 작품에서 ‘사라진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의 이름과 몸짓을 차지한 범인임. 『수차관의 살인』의 핵심은 마사키가 죽은 것이 아니라, 마사키라는 이름이 죽은 것처럼 처리되었다는 데 있음.

나. 시마다 기요시(36)

ㅇ(기본 성격) 불청객처럼 수차관에 찾아온 인물이며, 관 시리즈의 탐정적 인물임.

ㅇ(작품 속 역할) 1년 전 수차관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현재의 수차관에 들어옴.

ㅇ(공적 수사 바깥의 위치) 시마다는 경찰이나 검찰 같은 공적 수사기관의 요원이 아님. 그는 법적 권한이 아니라 관찰력과 추리력으로 사건에 접근함.

ㅇ(추리의 방식) 엘리베이터 위치, 젖은 융단, 탑의 방, 발코니, 회랑, 방의 잠금, 시신의 신원 같은 물리적 단서를 바탕으로 사건을 해체함.

ㅇ(공식 결론의 전복) 시마다는 경찰이 정리한 후루카와 범인설과 마사키 피해자설을 뒤집고, 가면을 쓴 ‘기이치’가 실제로는 마사키 신고임을 밝혀냄.

ㅇ(긴다이치와의 비교) 긴다이치 코스케가 가문과 전설, 원한과 혈연의 비극을 듣는 탐정이라면, 시마다 기요시는 관과 도면, 동선과 시간표의 논리를 읽는 탐정임.

ㅇ(인물의 의미) 시마다 기요시는 수차관의 가면과 휠체어, 바꿔치기된 시신, 왜곡된 신분 관계를 논리적으로 해체하는 탐정적 중심축임.

5. 수차관과 관 시리즈의 배후 인물

가. 나카무라 세이지(고인)

ㅇ(기본 성격) 관 시리즈에서 여러 기괴한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임.

ㅇ(작품 속 역할) 수차관 역시 나카무라 세이지와 관련된 건축물로 제시됨.

ㅇ(공간적 의미) 수차관은 산속에 고립된 저택, 수로와 수차, 탑과 회랑, 별관과 소각로를 통해 사건의 은폐와 착각을 가능하게 함.

ㅇ(관 시리즈의 구조) 나카무라 세이지의 건축물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건을 가능하게 하는 물리적 장치로 기능함.

ㅇ(인물의 의미) 나카무라 세이지는 직접 범행을 저지르는 인물은 아니지만, 수차관이라는 공간 자체에 음산하고 구조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배후의 설계자임.

6. 인물 관계와 욕망의 구조 정리

가. 후지누마 집안의 축

ㅇ(잇세이의 유산) 후지누마 잇세이는 그림과 수차관, 예술적 명성을 남긴 인물임.

ㅇ(기이치의 자리) 후지누마 기이치는 잇세이의 아들이자 수차관의 주인으로, 재산과 그림, 유리에와 연결된 중심 인물임.

ㅇ(유리에의 위치) 후지누마 유리에는 젊은 아내이자 여러 인물의 욕망이 모이는 중심에 놓인 인물임.

ㅇ(집안의 의미) 후지누마 집안은 예술, 재산, 혈연, 소유욕이 뒤엉킨 수차관 비극의 중심축임.

나. 그림을 둘러싼 욕망

ㅇ(오이시의 욕망) 오이시는 잇세이의 그림을 시장 가치와 거래 가능성의 대상으로 봄.

ㅇ(모리의 욕망) 모리는 잇세이의 그림을 학문적 권위와 해석의 대상으로 봄.

ㅇ(기이치의 욕망) 기이치는 아버지 잇세이의 그림을 외부에 쉽게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음.

ㅇ(마사키의 욕망) 마사키는 그림과 재산, 수차관의 주인 자리까지 빼앗으려 함.

ㅇ(그림의 의미) 『수차관의 살인』에서 그림은 순수한 예술품이 아니라, 인간의 소유욕과 열등감, 권위욕을 드러내는 매개물임.

다. 유리에를 둘러싼 욕망

ㅇ(기이치의 관계) 유리에는 기이치의 아내로, 수차관 내부에 갇힌 듯한 위치에 놓임.

ㅇ(마사키의 관계) 마사키는 유리에와 함께 기이치의 자리와 수차관의 질서를 빼앗는 쪽에 서 있음.

ㅇ(미타무라의 관계) 미타무라는 유리에와의 관계를 통해 현재 사건의 긴장을 키우는 인물임.

ㅇ(유리에의 의미) 유리에는 단순한 피해자도 아니고 단순한 공범도 아님. 그녀는 수차관의 욕망 구조 한가운데 놓인 복합적 인물임.

라. 신분 탈취의 구조

ㅇ(기이치의 죽음) 실제 기이치는 마사키에게 살해되고, 자신의 이름과 자리를 빼앗김.

ㅇ(마사키의 위장) 마사키는 가면, 휠체어, 목소리, 신체적 장애 이미지를 이용해 기이치 행세를 함.

ㅇ(후루카와의 희생) 후루카와는 마사키가 죽은 것처럼 꾸미는 데 이용된 대체 시신이 됨.

ㅇ(후미에와 도모코의 위험성) 후미에와 도모코는 마사키의 위장을 알아차릴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제거됨.

ㅇ(사건의 본질) 『수차관의 살인』의 핵심은 단순 살인이 아니라, 한 인간의 신분과 삶 전체를 훔치는 신분 탈취의 구조임.

마. 탐정과 사건 해체의 구조

ㅇ(시마다의 위치) 시마다 기요시는 수차관 내부의 욕망에 직접 묶인 인물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와 사건을 다시 해석하는 탐정임.

ㅇ(공식 결론의 의심) 그는 1년 전 사건의 공식적·상식적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음.

ㅇ(공간의 재해석) 시마다는 회랑, 탑, 엘리베이터, 젖은 융단, 시신의 신원을 다시 따지며 사건의 구조를 해체함.

ㅇ(탐정의 의미) 시마다의 역할은 범인을 찾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수차관 사람들이 믿어온 거짓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 있음.

수차관 전경, Painted by ChatGP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올해도 여기서 살인을 저질렀다. 이런 말씀이십니까?"
"오이시 씨, 아무리 그래도 그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모리가 안경을 밀어 올렸다. 오이시는 초조한 듯이 콧등을 긁으면서 반박했다.

"잘 보세요. 이 오른손은 왼손 반지를 쥐고 있습니다. 어쩐지 반지를 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시마다는 으음, 하고 나지막한 소리를 냈다.
"죽기 직전에 그 ‘버릇‘이 나왔다고 볼 수는 없겠고. 아아, 그러고 보니 작년 사건에서도 시체 손가락에서 반지가 빠져 있었죠."

"후지누마 씨, 잠깐만요."
시마다가 또 나를 불러 세웠다.
"아까부터 뭔가가 보일 것 같단 말입니다. 뭔가 그, 완벽한 ‘형태‘가요."
"진상 확인은 경찰에 맡깁시다. 이제 질렸습니다. 설마, 내가 범인이라고 하지는 않겠죠?"

"오이시 씨의 가설을 들으니 적잖이 마음이 움직이는군요. 어쨌거나 우리에게 당신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입니다. 의심받아도 어쩔 수 없겠죠."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에서 냉정할 수 있겠습니까."

벌컥 화를 내며 말해놓고 나는 휠체어를 움직여서 ‘서쪽 회랑‘으로 통하는 문으로 향했다. 유리에가 불안한 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밖에서는 여전히 폭풍우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식당에 남은 사람들의 당혹스러운 시선을 등으로 받아내며 회랑으로 나온 나는, 이제 저 바깥의 폭풍우보다도, 이저택 안을 거세게 휩쓸며 우리의 정적을 무너뜨리려는 광기의 바람이 더 증오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하얀 가면에 뚫린 두 눈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눈두덩을 세게 눌렀다.
"......마사키다."
"그럴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몸을 일으키며 미타무라가 대답했다. 그리고 자기 왼손 약손가락에 낀 금반지를 오른손으로 비틀면서 말했다.
"마사키 씨의 그 묘안석 반지 자국이겠죠."
"그렇다면 마사키는 역시 그자 손에......."

저것, 그러니까 가장 깊숙한 쪽 벽에 소각로가 있었다. 그 앞에 선 오이시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던 검은 막대기를 주워들었다. 쇠로 된 불쏘시개였다.
"히익!"

"어떻게 이런 짓을."
그것은 사람의 잘린 머리였다.
새카맣게 불타서 흰 연기가 쉭쉭 올라오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몽땅 탔고 눈, 코, 입 전부 문드러져서 형체를 잃었다.
한편 미타무라가 쥔 불쏘시개 끝에도 물체 하나가 마치 꼬치처럼 꽂혀 있었다.
"이건 팔인가."

하지만 죽은 자들은 말이 없었고, 자취를 감춘 남자는 그저 커다란 수수께끼만을 남긴 채 두 번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피로와 혼란 속에서 우리는 오로지 ‘사건‘을 넘겨받아야 할 경찰만을 기다렸다. 그날 9월 29일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한 경찰들은 저택에서 일어난 이상한 사건에하나같이 눈을 부릅떴다. 쉴 틈도 없이 시작된 참고인 조사와 현장 검증, 부근 수색...... 그리고.
이윽고 그들이 내세운 수사방침이라는 명목 아래 그날 밤의 ‘사건‘은 하나의 ‘해결‘ 속에 묻혔다.
골짜기에 다시 정적이 돌아왔고, 나는 그저 그 정적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먼저 굴러 나온 머리와 마찬가지로 불에 타서 새카맣고 열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비틀린 인간의 팔. 아무래도 왼팔 같았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 손에 손가락 하나가 모자란다는 사실이다. 엄지손가락부터 헤아려 네 번째 손가락이었다. 왼손 약손가락.
소각로 안에서는 인간의 시체 한 구가 불타고 있었다.
머리, 몸통, 양팔, 양다리. 여섯 토막으로 잘린 하나의 몸이.

c. 후루카와는 사람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머물던 2층 방을 빠져나왔다. 아래층 홀에 미타무라 노리유키와 모리 시게히코가 있었으나 교묘하게 눈을 속이고 회랑으로 나가서 그림 한 점을 훔쳤다. 그 후 뒷문을 통해 밖으로 도주하지만 폭풍우 때문에 발이 묶였다.
d. 마사키 신고가 후루카와를 발견하고 그를 쫓아 저택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때 후루카와는 쫓아온 마사키를 살해했다.
e. 후루카와가 마사키의 시체를 해체한 후 소각한 이유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범행 후 증거 인멸. 시체만 발견되지 않는다면 살인 사실은 증명할 수 없다. 그래서 후루카와는 시체를 지하실 소각로에서 태워야겠다고 결심했다. 시체를 토막 낸 것은 온전한 상태로는 소각로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소각 현장이 발각되지 않았다면 후루카와는 시체가 다 탔을 때쯤 지하실로 되돌아가서 재를 수습하여 처분할 작정이었을 것이다.
f. 시체를 절단하는 데 사용한 도구는 저택 주방과 물품보관함에서 조달한 육류용 칼과 손도끼다. 이것들은 시체와 함께 소각로에서 불타고 있었다. 해체 작업은 저택 밖 어딘가에서 했으리라 추정되는데, 비에 씻겼는지 장소는 확인되지 않았다.

3. 범행 경과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볼 때, 사건의 가해자는 전날 저택을 방문한 후루카와 쓰네히토(37세)로 추정된다. 다음은 범행 경과를 드러난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것이다.
a. 후루카와 쓰네히토는 가나가와 현 다카마쓰 시 **절에 거주하며 그곳의 부주지다. 그는 저택을 방문한 다른 손님 세 명과 마찬가지로 후지누마 기이치가 소장한 후지누마 잇세이 화백의 작품을 애호했는데, 그 그림들을 살 만큼의 경제력이 자신에게 없다는 사실을 몹시 애석하게 여겨왔던 듯하다. 최근에는 가족들 몰래 주식 투자를 하다가 실패해서 금전적으로도 몹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b. 잇세이 화백의 작품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후루카와는 저택 회랑에 장식된 그림 한 점을 훔쳤다. 이것은 계획적인 범행이 아니라 다분히 우발적이고 격정적인행동이었으리라고 짐작된다. 사건이 일어난 날 밤, 회랑에서 후루카와가 작품에 홀린 듯이 서 있는 것을 사용인 구라모토 쇼지가 목격했는데 이는 그의 심리 상태를뒷받침해주는 중요한 증언이다.

2. 피해자 판정
a. 관계자에게 들은 사건 당시의 상황, 검시 부검 결과, 지하실에서 발견된 물적 증거를 근거로 피해자는 후지누마 기이치의 저택에 머물던 마사키 신고(38세)로판명되었다.
b. 위에 적은 동일성 확인을 위한 물적 증거란 소각로 곁에 떨어져 있던 손가락이다. 이것은 시체의 왼손 결손과 부합하는데, 범인이 시체를 해체한 후 소각할 때실수로 떨어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감식 결과, 이 손가락과 마사키 신고의 혈액형이 일치(O형, Rh+)했다.
c. 발견된 약손가락에는 반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마사키 신고는 같은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있었다고 한다. 또 그가 머물던 방과 그가 연주한 피아노 건반에서 채취한 지문이 잘린 손가락의 지문과 일치한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수차관‘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 관한 공식 견해*
당시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와 신문기사, 잡지기사, 그 밖의 정보를 취합 요약한 시마다 기요시의 노트에서
1. 시체 소견
9월 29일 이른 아침, 후지누마 기이치의 저택 지하실에서 발견된 시체를 검시 부검한 결과 다음 사실이 판명되었다.
a. 시체는 머리 하나, 몸통 하나, 팔 둘(다만 왼손 약손가락에 결손이 있었다), 다리 둘, 모두 여섯 토막으로 해체되어 지하실 소각로에서 태워졌다.
b. 시체의 손상이 심해서 인상착의나 개인적 특징은 알 수 없었으나 성별은 남자, 나이는 35~45세, 체격은 신장 165센티미터 전후의 중키 그리고 마른 체형으로추정된다. 고열 때문에 단백질이 변성되어 혈액형은 검출할 수 없었다.
c. 사인은 질식사. 교살 혹은 액살로 추정된다. 소각해서 탄화가 상당히 진행된 탓에 사망추정시각은 좁힐 수 없었다.

4. 보충
그 후의 조사로 다음 사실이 밝혀졌다.
a. 피해자 마사키 신고는 같은 해 2월에 도쿄 도 네리마 구에서 일어난 강도 살인미수 사건의 주요 용의자였다. 마사키는 몇 해 전부터 여러 가지 사정으로 폭력단이 운영하는 사채에 손을 댄 모양으로, 돈 갚을 길이 막막하여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겠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당국은 반년 전에 자취를 감춘 마사키의 행방을 쫓고 있었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서 지명 수배를 내리지는 못했다고 한다.
b.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후루카와는 전국에 지명 수배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g. 토막 시체를 지하실로 옮길 때 마주친 사용인 구라모토를 때려서 기절시킨 후, 묶어서 식당에 방치했다.
h. 시체의 손가락을 절단한 것은 그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묘안석 반지를 빼기 위해서다. 손가락에 꽉 맞아서 빠지지 않던 반지라고 한다. 시체를 해체할 때 후루카와는 도랑치고 가재 잡는 식으로 고가의 반지를 챙긴 것이다.
i. 소각 현장이 발각된 사실을 안 후루카와는 시체 인멸을 포기하고 훔친 그림을 가지고 도주했다. 도주 경로는 불분명하지만 도로 통행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산속으로 도주했을 가능성이 크다.

가슴속에 번지는 다양한 감정, 곤혹, 불안, 초조, 분노......를 억누르면서 나는 되도록 부드러운 말투로 그녀에게 말을 던졌다.
"일단 그 남자 말인데, 미타무라는 왜 네 방에 있었을까? 넌 그가 방에 찾아올 줄 몰랐니?"
유리에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몰랐다는 말이구나."

"이 집에서 나가고 싶었어요. 제가 여기서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고요. 그래서......."
(그래서......)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나를 협박했다는 거야?)

"어째서 이런 걸 썼지?"
그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협박장을 ‘보낸 사람‘이 다름 아닌 유리에였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때, 그러니까 어제 저택을 찾은 손님 세 명을 마중하러 ‘서쪽 회랑‘을 통해 현관으로 향했을 때, 아니면 다시 되돌아왔을 때 거실 문 아래에 이미이 편지지가 끼워져 있었다는 사실도.

이를테면 여기서 나가고 싶다고 내게 말해봤자 들어줄 리 없다는 것쯤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으리라. 혼자서 나가겠다는데 내가 허락을 하겠는가. 그래서.
(그래서 ‘협박자‘의 탈을 쓰고 내게 겁을 줘서 이곳을 뜨게 할 셈이었나. 그때는 자기도 같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아아...... 그런)잠긴 서재 문 너머에서?
이윽고 소리는 멎었다. 몸이 뻣뻣하게 굳었고 모든 신경은 검은 빛을 띤 마호가니 문에 집중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것일까.
신경이 곤두섰고 무시무시한 어떤 예감에 몸이 파르르 떨렸다.

덜컥 하고 소리가 났다.
아까처럼 귀에 선 금속적인 소리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분명히 무언가 의지로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뭔가 있다)그렇게 직감한 나는 몸을 더욱 긴장시켰다.
덜컥. 소리가 또 났다. 이어서 부스럭부스럭, 옷이 스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다음에는.

내가 간절히 바라고 필사적으로 매달려온 ‘정적. 사람이 언젠가 죽는 것처럼 정적도 깨지게 마련이다. 어쩌면 나는 이런 파멸을 아주 오래전부터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그녀는, 그리고 나는, 이 수차관은 어떻게 될까.

"대강 상상하던 대로였어요. 이야, 정말이지 이런 터무니없는 범죄도 다 있더군요."
"뭐가 어떻다는 거요?"
"진상을 알아냈다, 이 말입니다, 오이시 씨."

"돌아가! 제발 돌아가줘."
침실에서 유리에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도 문 너머에서 난 소리를 들었나 보았다.
찰카닥찰카닥. 저 안쪽에서 누군가 문손잡이를 계속 돌렸다. 바깥에 자물쇠가 걸려 있다고 판단했는지 이번에는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만둬!"

돌아가던 문손잡이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나이트 스탠드만 켜져 있는 어둑한 침실에서 모습을 드러낸 자는........
"이야, 간신히 나왔네."
마르고 거무스름한 얼굴에 천연덕스러운 미소를 띤 그 남자, 시마다 기요시였다.
"영락없이 되돌아가야 하나 싶었습니다. 유리에 씨가 문을 열어줘서 다행이에요."

"그뿐만이 아니죠. 작년 사건도 전부 다 당신 짓입니다."
시마다는 멈추지 않았다.
"네기시 후미에 씨를 ‘탑‘ 발코니에서 떨어뜨린 사람도 당신입니다. 그림을 훔친 이도, 그리고 물론 지하 소각로에서 토막 시체를 불태운 이도."

"이제 단념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후지누마 씨."
"이만큼 오싹한 범죄를 계획해 실행한 분 아닙니까. 그에 걸맞게 막도 깔끔하게 내립시다."
"당신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은 내가 범인이라는 거요?"
"아닌가요?"
"적당히 합시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전부 다요."
시마다는 망설임이 없었다.

"후지누마 씨는 그런 짓을 할 수 없었습니다. 네기시 후미에 추락사건 때 후지누마 씨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습니다. 소각로의 시체는 어떨까요. 다리가 불편해서 혼자 힘으로는 지하실 계단을 오르내릴 수가 없겠죠. 오늘 밤 미타무라 씨가 살해당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상태라 ‘탑‘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어요. 맞습니다. 확실히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아니, 꼭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겠군요. 제가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도 머지않아 당신은 파멸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니까요."
"운명?"
"그래요.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이 저택, 거기 사는 자의 운명이죠."

시마다는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퍼뜩 놀라 나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는 마치 상처 입은 짐승을 애처롭게 바라보듯이 내 눈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제 손으로 꼭 그 가면을 벗겨야만 하겠습니까, 마사키 신고 씨."

"미타무라 씨를 살해한 건 바로 당신입니다. 그리고 범행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다가 당신을 목격한 도모코 씨도 죽였고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역시 그랬군요. ‘나가. 이 집에서 나가‘ 이 집에는 당신, 아니 그녀 자신까지 포함한 당신들의 범죄를 알아차린 누군가가 있다, 유리에 씨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서당신을 겁주려고 한 겁니다. 그러면 당신이 자신을 데리고 이곳을 떠날 줄로 알았겠죠."

‘본관‘에 깔린 칙칙한 진홍색 융단도, ‘별관‘에 깔린 융단과 커튼의 이끼색도 내게는 전부 ‘잿빛‘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저택을 둘러싼 녹색 산들도, 중앙정원에심긴 나무들도 빛이 바랜 ‘음울한 잿빛‘일 뿐이다. 어제 오전에 시마다가 찾아왔을 때에도 나는 녹색 잎이 무성한 나무들 때문에 언덕 아래 임도에 멈춘 빨간색 차를잘 알아보지 못했다.

"그 약손가락만이 진짜 마사키 신고의 일부였습니다. 그 손가락은 범인으로 지목된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마사키 신고의 반지를 빼기 위해 절단한 게 아니라, 소각로안의 시체를 마사키 신고로 위장하기 위해서 마사키 자신이 제 손으로 잘라서 남겨둔 것이었죠."

미타무라 씨는 알고 있었죠.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아주 드문 사례이기는 하나, 사고 당시 머리를 세게 부딪쳐서 당신은 정상적인 색각을 잃었다고 하더군요. 아주 심각한 후천적인 색각이상, 그것도 적록색맹과 비슷하다고요. 마사키 씨, 틀린가요?"

왼손 손가락을 쥔 모습을 보고 오이시 씨는 반지를 빼려고 한 게 아닐까 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는 반지가 아니라 반지를 낀 손가락을 가리켰던 겁니다. 왼손 약손가락을 말이죠. 그걸로 범인의 정체를 알리려고 했던 겁니다."

그때 내 왼손을 잡았던 미타무라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몹시 불안해졌다. 어쩌면 내 왼손 약손가락이 없다는 사실을 그가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남녀의 진부한 줄다리기가 한동안 이어지다가, "저기, 저...... 샤워를" 하고 유리에는 부끄러운 듯이 그렇게 말했다.
"아, 그래요."
미타무라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공주님."

"전기가 나갔을 때 제 부주의로 마사키 씨가 휠체어에서 떨어지는 일이 있었잖아요. 그때였을 겁니다. 그때 옆에서 부축하다가 미타무라 씨는 마사키 씨의 왼손을 붙잡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테고요. 어떻습니까, 마사키 씨."

울컥해서 머리로 피가 몰렸다. 당초 계획은 미타무라가 ‘탑의 방‘에서 나와 ‘별관‘으로 되돌아갈 때 덮치는 것이었지만, 급격하게 부풀어 오른 살의는 실행을 미룰 시간을 단 1초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마 뭐가 뭔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당연하다.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할 사람이 제 발로 힘차게 복도로 뛰쳐나왔으니까.
불쌍할 정도로 당황한 그녀는 본능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도망치기 시작했고, 나는 그 뒤를 쫓았다. 그리고 뒤에서 달려들어 양손으로 목을 졸랐다.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그녀는 차갑게 식었다.

"뒷문 자물쇠를 끌러둔 건 범행을 외부 소행으로, 구체적으로는 작년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후루카와 쓰네히토의 소행으로 위장하기 위해서였겠죠? 어쩌면 머지않아 진상을 알게 될지도 모를 우리 모두를 몰살하고 모든 죄를 고진 씨한테 뒤집어씌우려 했는지도 모르겠군요. 터무니없는 소리지만."

"‘깜빡하고 못 봤을지도 모른다‘는 의혹과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범인이라는 선입관이 이 명쾌한 답을 흐려놓았습니다. 물론 그 후에 마사키 씨 자신과 유리에 씨가
‘목격‘한 고진 씨의 ‘살아 있는 모습‘ 또한 이 답을 가리는 절묘한 장막이었고요.

그날 밤, 마사키 씨는 5호실로 돌아간 후루카와 씨를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옷을 벗기고 욕실로 옮겨서 미리 준비해둔 식칼과 손도끼로 시체를 여섯 토막으로 해체했죠. 토막들은 아마도 검은 비닐봉지 같은 것에 나눠 싸서 창밖으로 내던졌을 겁니다. 옷과 날붙이도 마찬가지 방법을 써서 밖으로 옮겼겠죠. 방에다 향을 피운 건 피냄새를 지우기 위해서였고요. 이렇게 후루카와 씨를 ‘탈출‘시킨 후, 라이터나 손전등으로 ‘탑의 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공범자에게 일을 끝냈다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공범자?"
모리가 삐딱한 안경을 바로잡으면서 말했다.
"설마 유리에 씨......."

후루카와 쓰네히토는 ‘별관 2층에서 자취를 감춘 시점에 이미 죽은 상태였다, 그것도 토막 난 시체로 그 창문을 통해 밖으로 옮겨졌다. 이 기괴한 결론을 바탕으로 작년 일을 되짚어보면 사건의 실체가 명확하고 아주 깔끔한 ‘형태‘로 눈에 들어옵니다.

"그렇죠. 유리에 씨 말고 다른 공범자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신호가 바로 구라모토 씨가 자기 방 창문에서 우연히 목격한 그 수상한 빛이었습니다."

자, 곰곰이 따져봅시다. 그 창문으로 사람이 통과하기는 불가능하다. 여기서 ‘사람‘이란?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 하나가 살아 있는 상태로 거길 빠져나가기는절대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죽어서 토막이 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 공간에서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사라진 것이 명백한 사실이라면 그는 토막 난 시체라야 했다, 이겁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당신은 이미 인생에서 낙오한 데다 돌이킬 수 없는 범죄에까지 손을 댄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이 세상에서 말살하고 아름다운 유리에씨와 이 집, 이 집의 재산, 이 집에 소장된 후지누마 잇세이의 그림, 그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웠어요. 그 바탕에는 당신의 인생을 파멸로 내몬 장본인, 후지누마 기이치에 대한 복수심도 있었겠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까, 아니 몇 시간 전에 후루카와 씨는 2층 방으로 올라갔죠. 잠시 후에 오이시 씨와 당신도 방으로 돌아가고 저와 모리 교수님은 여기 계속 남아서 체스를 뒀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일찌감치 일어섰겠지만 낮에 벌어진 사건 때문인지 둘 다 신경이 예민해져서 잠이 쉬이 올 것 같지 않았거든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내내 여기 이 소파에 앉아 있었습니다. 후루카와 씨가 계단을 내려왔다면 몰랐을 리가 없죠."
"그런......."
마사키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못 본 건 아니고요?"
"못 보다니요.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 계단을 내려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적어도 후루카와 쓰네히토를 부르러 2층으로 갔던 모리와 미타무라 두 사람만은 분명 이상함을 감지했으리라. 홀에서 기다리던 다른 사람들은 그림 한 점이 사라진데 이어 사람 한 명이 방에 없다는 상황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예. 쥐새끼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그 한마디로 이번 소동의 결론이 확고해졌다. 즉.
후루카와 쓰네히토는 이 ‘저택‘ 2층에서 말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제 방이요?"
마사키가 소스라치며 소리를 질렀다.
"당신이 그를 숨겨주었다는 뜻이 아니라요. 그러니까 당신이 아까 홀에 내려온 틈을 타서 그 방으로 도망치지는 않았을까 해서......."
"아,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요."

"여러분이 조사한 시점에서 ‘별관 2층의 창문은 전부 안쪽 걸쇠가 걸려 있었습니다. 창문이 깨져 있지도 않았고요. 계단 아래에서는 모리 교수님과 미타무라 씨가 눈을 빛내고 있었죠. 그런데도 2층 5호실로 돌아갔을 후루카와 쓰네히토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옷장 속, 책상과 침대 밑, 천장 위...... 사람이 숨을만한 곳, 아니 없어진 그림 수색을 겸해서 사람이 숨지 못할 장소까지 꼼꼼히 살폈지만 역시 수상한 점은 없었어요. 이런 사실들로만 판단한다면 그는 ‘별관 2층에서그야말로 증발한 것이로군요."

"하지만 사람이 폐쇄된 공간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다니,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현상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믿는 이 세상의 규칙, 물리학적 법칙으로 보자면 말이죠.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저야 이리저리 머리는 굴려봤었죠. 당신 말을 빌려서 자신의 세계관을 바꾸지 않고 그 불가해한 상황을 해석하려면 역시 무슨 트릭 같은 것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군요."
"그래요, 정론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가능한 트릭이란?"

하지만 이런 불가해한 문제에 직면하면, 사람은 어떻게든 자신의 상식과 신념을 무너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향으로 해석하려 드는 법이죠. 그러니까 요는, 여러분 각자가 어떤 해석을 내렸느냐는 겁니다. 일단 후지누마 씨부터."
"저도 마음은 미타무라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앞뒤 상황이 그렇다지만 우리 눈에 띄지 않고 계단을 내려왔다는 건 좀......."

"흔해빠진 비유입니다만, 사물을 해석하는 행위는 직소 퍼즐을 완성하는 것과 닮았어요. 다만 완성된 그림이 없고 퍼즐 조각이 전부 몇 개인지 모른다는 차이가 있죠. 퍼즐 조각이 평면이 아니라 3차원 입체이거나 때로는 4차원 5차원의 성질을 띠기도 하고요. 따라서 완성된 그림......이라기보다 ‘형태‘가 퍼즐을 맞추는 사람에 따라크게 달라지는 일이 많습니다.
제 말은, 작년에 사건이 일어났을 때 경찰이 완성한 ‘형태‘는 어쩐지 틀린 것 같다, 이겁니다. 어딘지 부자연스러워요."

오후 10시 지나서. 구라모토, ‘북쪽 회랑‘에서 후루카와 목격.
오후 10시반이 되기 전. 후루카와, 2층으로.
오후 10시 반. 오이시, 방으로.
오후 10시 50분. 마사키, 방으로. 모리와 미타무라는 홀에 계속 머무름.
오전 1시 지나서. 구라모토, 수상한 빛을 목격. 유리에, 수상한 소리를 듣고 아래층으로. 뒷문이 열려 있고 그림이 사라짐.
오전 1시 50분. 후루카와, 2층 어디에도 없었음.
오후 10시 반. 오이시, 방으로.
오후 10시 50분. 마사키, 방으로. 모리와 미타무라는 홀에 계속 머무름.
오전 1시 지나서. 구라모토, 수상한 빛을 목격. 유리에, 수상한 소리를 듣고 아래층으로. 뒷문이 열려 있고 그림이 사라짐.
오전 1시 50분. 후루카와, 2층 어디에도 없었음.

"적어도 일곱 가지 버릇은 있다고들 하지요. 주위에서 알아채지 못하고 본인조차 의식하지 못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버릇‘을 가지고 있는 법입니다. 후지누마 씨는."
오후 9시. 후루카와, 그림을 보러 복도로.

"그런데 미타무라 씨는 그 결론을, 그러니까 두 분이 깜빡하고 보지 못했다는 결론을 인정하시나요?"
"인정하고 싶겠습니까."
외과 의사는 입술을 더 썰쭉댔다.
"하지만 뭐, 다른 가능성이 없다면 인정하는 수밖에요. 술도 좀 마신 상태였고 하니까."

마침 그때 창밖에서 번개가 번쩍였다. 하지만 시마다는 아랑곳없이 내 가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후지누마 씨, 뻔뻔한 부탁을 하나 더 하려고 하는데요. 문제의 밤에 고진 씨가 묵은 5호실을 지금 당장 보고 싶습니다."

저는 ‘버릇‘이 나쁘니 어쩌니 왈가왈부하려는 게 아닙니다. 누가 갑자기 늘 하던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예를 들어 오이시 씨가 어느 날부터 콧등을 긁지않는다면? 더 사소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그랬을 때 아마 주변 사람들은 어디가 달라졌는지 확실히는 몰라도 뭔가 이상하다고는 느끼겠죠. 뭔가 이상하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형태가 아닌데 하면서요. 한마디로 석연치 않은 거죠. 바로 그런 느낌이라는 겁니다."

"청옥부, 십각관, 그리고 수차관. 나카무라 세이지가 청옥부 사건으로 죽은 직후에 고진 씨가 휘말려든 사건. 그 무대가 또 세이지가 설계한 집이라는 사실을 알고 정말이지 오싹했습니다."

"음, 진짜 그렇다면 흥미진진하겠군요. 인간이 증발하는 불가해한 상황까지 등장하는 본격 미스터리풍의 사건, 그런데 그 사건의 진범은 죽은 건축가의 악령이었다,
그런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있다면 보통은 혀를 차겠지만 저라면 박수를 보내겠습니다."

"담배는 하루에 딱 한 대만 피우자고 굳게 다짐했거든요. 이건 그 다짐을 지키기 위한 전용 담배 케이스입니다. 괜찮겠습니까?"

"이 건물, 바깥쪽 벽은 상당히 두껍습니다. 뭔가 있다면 이 벽일 가능성이 큰데."
하지만 벽에서도 수상한 점은 전혀 찾아낼 수 없었다. 시마다는 으음, 하고 앓는 소리를 내더니 우리를 돌아보았다.
"아아, 여러분. 지루하시면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저는 조금 더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그 사람은 묘한 인물이었습니다. 뛰어난 건축가였다는 건 확실한데, 뭐랄까, 평범한 집의 설계는 거부했다고 해야 할까. 그때그때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는 작업에만참여했다고 해요. 게다가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에 반드시 장난스러운 비밀 장치를 설치했는데, 그게 도리어 이곳저곳의 호사가들 사이에서 좋은 평판을 얻었죠."
"그래서 이 수차관에도 그런 장치가 있을지 모른다. 이 말이로군요."

"시마다 씨는 이 방 어딘가에 비밀 통로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는 겁니다."
"비밀 통로요?"
외과 의사는 노골적으로 얼굴을 찡그리더니 반지를 비틀었다. 마찬가지 반응을 모리와 오이시의 얼굴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표정이 바뀌지 않은 사람은 구라모토뿐이었다.

"지금 번개는 상당히 먼 곳에서 쳤습니다. 건물에 직접 떨어진 게 아니에요. 이 집은 수차로 발전을 하니까......."
"아아, 그랬죠. 그렇다면 번개와는 상관없이 발전기가 고장 난 걸까요?"
"바로 보고 오겠습니다."
구라모토가 말했다.

그럴 듯한 말을 구구절절 늘어놓기는 했지만, 요컨대 그는 이 방에 ‘비밀 통로‘가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별난 건축가가 설계한 기묘한 저택.
그 저택 안에서 발생한 도저히 불가능한 인간 증발극.

"융단 가장자리가 젖혀져 있어서 그만......."
"어두우니 어쩔 수 없죠."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미타무라가 물었다. 흐트러진 가운 앞섶을 여미며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한 나는, 그때 희미한 촛불에 비친 외과 의사의 얼굴을 보고 문득 불길한 예감으로 가슴이두근거렸다.

"저희 절에 오래된 자가 발전기가 있거든요. 좀 만지작거려본 정도이긴 한데,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앗!"
갑작스레 터져 나온 짤막한 비명과 함께 휠체어가 휘청, 하고 기울었다. 시마다의 발이 뭔가에 걸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틈도 없이 깨진 균형과 한쪽으로 쏠리는 관성 때문에 내 몸은 바닥으로 푹 고꾸라지고 말았다.

거실로 돌아와 불을 켰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짐승 같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뭐지?)너무 놀라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대체 이건......)들어와서 오른쪽에 있는 문, 서재로 이어지는 그 문이 열려 있었다. 요 1년 동안 결코 열리지 않았던 암갈색 문.
(......어떻게 된 거지?)2026.07.05 오전 0시 49분63%산봉우리 중 하나는 나를 엄청난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곳에는 아주 불길한 광기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도망치려면 좋든 싫든 또 다른 산봉우리로 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 맙소사)그건 그렇고 도대체 어째서?
나는 암담한 기분으로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암흑을 노려보았다.

들어오자마자 바로 눈에 띄는 곳에 작고 검은 열쇠가 떨어져 있었다. 주워서 확인할 필요도 없이 그것이 거실에서 서재로 통하는 이 문의 열쇠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냉정해라.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복도에서 거실로 들어오는 문은 내내 잠가놓지 않았다. 그러니까 기회만 있으면 누구든지 드나들 수 있었다. 저녁 식사 후에 누군가 숨어든 것일까.

손님들에게 편히 쉬라는 인사를 남긴 후 유리에는 ‘탑‘의 계단을 올라갔다. 그때 미타무라 노리유키가 던진 시선이 못내 마음에 걸려 견딜 수가 없었다. 유리에의 가녀린 몸에 들러붙은 찐득한 시선.......
오늘 밤 자정 넘어서, 라고 그는 말했다.

"여러분, 어쨌거나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경찰에 신고는 하겠지만 길이 복구될 때까지는 기다려야겠죠. 그렇다고 밖으로 무작정 찾아나서는 것도 무모한짓입니다."

"그러니까 댁들이 깜빡하고 못 본 거라니까요."
"우리는 이 소파에 앉아 있었고 계단은 바로 저기입니다. 절대로 못 봤을 리가 없어요."

"이대로 손가락만 빨고 있으라는 거요?"
"그렇다면 오이시 씨."
기이치는 중앙정원과 마주한 유리문을 쳐다보았다.
"저 폭풍우 속으로 뛰어들어서 직접 찾아보겠습니까?"
"그, 그야........"

"예, 쫓아가볼게요. 후지누마 씨, 다른 사람들한테는 알리지 마세요. 괜히 시끄러워지기만 할 테니까."
"하지만 마사키......."
"괜찮습니다."
마사키는 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고 다시 한 번 이쪽을 돌아보더니 굳건한 표정으로 기이치에게 말했다.
"이건 제 속죄입니다. 방으로 돌아가서 기다리세요. 유리에 씨도."

"으윽!"
갑자기 뒤에서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 구라모토는 무릎을 꿇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뒤통수가 깨질 듯이 아팠다.
"누, 누구......."
혀끝을 깨무는 바람에 피가 배어나왔다. 비릿한 쇳내가 입 안 가득 퍼졌다.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때 다시 한 번, 이번에는 목 아래에 충격이 왔다.
구라모토는 정신을 잃고 융단에 얼굴을 풀썩 묻었다.

(진짜 묘한 하루야)그 순간 몹시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주인의 명령대로 잠그지 않고 내버려둔 뒷문이.
주인은 마사키에게 맡겨두라고 했다. 그 말에 따르는 것이 구라모토의 일이자 의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사키를 혼자 폭풍우 속에 내버려두다니.......

조심스럽게 발을 끌면서 어둠을 뚫고 그쪽으로 향했다. 그때 구라모토는 문 앞쪽 융단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두운 진홍색 융단에 거무스름한 얼룩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물이었다.
(발자국이군)바로 알 수 있었다.

그때 기이치가 뒷문은 잠그지 말라고 일렀다. 이유를 묻자 마사키 신고가 후루카와를 쫓아 저택 밖으로 나갔다고 했다.

......끼익.
......끼이익, 끽.......
눈을 뜨고 의식적으로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소리는 금세 사라지고 더는 들리지 않았다.
(꿈이었나)

융단의 얼룩은 거의 같은 간격으로 이어졌고 갈수록 옅어졌다. 역시 비에 젖은 신발 자국인 듯했다. 얼룩을 따라가는데.
(어?)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문 하나가 들어왔다.
바로 앞 왼쪽의 검은 문.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작은 방의 문. 그 문이 아주 조금 열려 있었다.

‘본관‘ 식당 앞에 모인 사람들은 문제의 계단실로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집사가 켜두었다는 불은 꺼져 있었고, 분명히 목격했다는 후지누마 잇세이의 ‘분수‘ 역시눈에 띄지 않았다.
폭풍우의 밤은 서서히 새벽을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택에서 일어난 ‘사건‘은 잔혹하고 악마적인 마지막 모습을 준비하고 계단 아래 암흑 속에서 사람들을기다리고 있었다.

"아아, 맞습니다. 진짜로 연기가 납니다."
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지만 굴뚝 꼭대기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똑똑히 보였다. 연기는 바람에 흩어지고 비에 스러지면서도 동트기 직전의 검푸른 하늘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저 광경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지금 지하실 소각로에서 뭔가를 태우고 있는 것이다.

유리에의 비명은 한동안 이어졌다. 그녀가 이렇게나 크게, 그리고 길게 목소리를 내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바로 앞에서 나를 보고도 그녀는 여전히 얼이 나간 사람처럼 눈물 맺힌 커다란 눈을 불안정하게 움직였다. 젖은 긴 머리칼이 뺨과 목덜미에 들러붙어 있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이 뭔가를 말하려는 듯 살짝 벌어졌다가 그대로 멈췄다.

모리 교수가 큰 소리로 물으며 계단으로 향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얼어붙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는 우리 사이로 긴장된 침묵이 흘렀다. 계단을 오르던 모리도 도중에 발을 멈추고 되돌아올 목소리를 기다렸다.
이윽고 계단 위에 시마다의 후리후리한 모습이 나타났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는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타무라 씨가 죽었습니다."

"미타무라 씨가 안 보입니다."
‘......사실입니까?"
"예. 대답이 없어서 방에 들어가 봤더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문은 안 잠겨 있었고요. 1층 화장실과 욕실도 들여다봤는데, 거기에도 없었어요. 경찰에 신고는 하셨나요?"

미타무라 노리유키의 시신은 ‘탑의 방‘ 한가운데 놓인 그랜드 피아노 앞에 있었다. 짙은 반물색 슬랙스에 캐러멜 빛 긴팔 셔츠를 입은 그는 이쪽을 등지고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었다. 상반신을 구부려 건반 뚜껑에 얼굴을 묻은 채로. 시마다가 말한 대로 그 몸은 이제 제 의지로는 움직일 수 없는 하나의 물체로 변해 있었다.

시마다의 얼굴에서 눈에 띄게 핏기가 가셨고 목소리도 상당히 떨렸다. ‘탐정‘인 양 행동하기는 했어도 살해 현장의 시체를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인지도 모른다.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오이시가 탁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잔에 남은 술을 쭉 들이켰다.
"역시 그 정신 나간 땡중이 또 살인을......."
"오이시 씨, 잠깐만요. 좀 진정하세요."
시마다가 냉정하게 주의를 주었다.

"자기 의지?"
시마다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른바 다잉 메시지 같은 거죠."
"다잉 메시지?"
오이시가 짧은 목을 기울였다. 모리의 반응도 같았다. 나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 그 자세의 의미를 거듭 생각하면서 중얼거렸다.

"미타무라 씨가 어째서 당신 방에 왔을까요?"
"몰라요."
유리에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매끄러운 볼이 약간 상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짓말이야)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넌 오늘 밤에 그가 찾아오리란 걸 알고 있었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이시 씨가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상당히 불쾌해지는군요. 우리까지 품격도 절도도 모르는 무뢰한이 된 것 같다, 이 말입니다. 자, 후루카와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그렇고 1년 못 본 사이에 더 예뻐졌네요."
미타무라는 유리에를 쳐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내년이면 스무 살? 이야, 역시 나이가 차면 여자는 아름다워지는 법이군요. 후지누마 씨가 부럽습니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정각이었다. 차를 마신 뒤 나는 시마다에게 5시에 내 방으로 와달라고 말해두었다.

도모코는 시마다 기요시가 이 편지를 방금 전에 건네주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시마다가 이 편지를 발견한 시각은 2시 50분쯤.
시마다가 쓴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오후 2시 20분에서 50분 사이에 누군가 이것을 문 아래 끼워놓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를테면 손님 세 명 중 누군가가 구라모토와 도모코의 눈을 피해 일을 치를 수도 있었으리라. 물론 구라모토와 편지를 건네준 도모코가 ‘협박장을 보낸 사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쪽 회랑‘에 있는 내 방은 거실, 서재, 침실 이렇게 세 공간이 연결되어 있다.복도와 연결된 북쪽의 넓은 방이 거실이고 그 남쪽으로 서재와 침실이 나란히 붙어 있는데, 서재가 복도 쪽이고 침실은 중앙정원 쪽에 면해 있다. 거실과 나머지 두방은 각각 다른 문으로 연결되어 있고, 침실에서 서재로 통하는 문도 있다. 하지만 서재에는 복도로 난 문이 없다.

역시 물리적인 상황만 봐서는 ‘협박자‘를 한정할 수 없을 듯하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나 자신만은 ‘범인‘이 아니라는 것.

"자세하고 뭐고 특별한 건 없었어요. 손님 세 분이 도착한 그때, 저는 혼자 회랑을 돌며 그림을 보고 있었죠. 저쪽 ‘북쪽 회랑‘에서 이쪽으로 여유를 부리며 걷고 있는데...... 이곳 방문 밑에 녹색의 뭔가가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어요. 처음에는 복도에 깔린 빨간 융단에 얼룩이 졌나 싶었습니다."
"융단의 얼룩이라."
나는 몸을 구부려 탁자의 편지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고진 씨가요?"
"당신이 추리소설을 아주 좋아하는 듯싶어서요. 그래서 나도 거기에 맞춰 상상력을 발휘해본 겁니다. 1년 전에 종적을 감춘 후루카와가 실은 이 저택 어딘가에 숨어있었다, 그리고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뭔가 불미스러운 짓을 꾸미려 하고 있다......."

"남의 편지를 훔쳐보는 취미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건 봉투도 없고 해서...
"읽었다는 말이로군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정말이지 허투루 볼 수가 없군."

"그 종이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이걸 발견했을 때의 상황을 자세히 듣고 싶군요. 아니, 그 전에."
나는 고무가면 밖으로 드러나 있는 입술을 혀끝으로 핥았다.
"뭐라고 쓰여 있는지 들여다봤습니까?"

"저도 서재다운 방을 한 번 가져보고 싶어요. 규슈에 있는 저희 집은 오래된 절이라서 아무래도 좀...... 그러니까, 역시 서재는 이런 서양식 주택에 있어야 폼이 난다고 해야 할까. 괜찮다면 잠깐 구경해도 될까요?"
"미안하지만 들어갈 수 없습니다."
"들어갈 수 없다니요?"
"열리지가 않는다는 말입니다."

"당장은 누가 ‘범인‘인지 좁혀서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군요. 적어도 물리적 시간적 조건만으로는 무리입니다. 하지만 동기로 보면...... 후지누마 씨, 정말로 짚이는데가 없습니까?"
"없다고 했을 텐데요."
"그러신가요. 그럼 뭐 그렇다고 해두죠."

거무스름한 얼굴에 큼지막한 매부리코를 움찔거리면서 시마다는 다시 서재 문을 쳐다보았다.
"흥미롭다고 하면 실례겠죠. ‘열리지 않는 방‘이라......."

(구라모토한테도 기회는 있었어)(목적은? 이 협박 글에 담긴 의미는?)
구라모토 쇼지. 그가 의미를 두는 것은 저택의 주인이 아니라 이 저택 자체라고 나는 예전부터 생각해왔다. 그는 후지누마 기이치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수차관이라는 이 집에 봉사하고 있다.

휠체어를 움직이면서 나는 사고의 방향을 틀었다.
(역시 ‘범인’은 저택을 방문한 손님 중에 있어)
그렇게 단정하는 편이 차라리 마음이 편할 것이다.
시마다 기요시까지 네 사람.

"아, 그렇지. 실은 소원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실래요?"
"오늘 밤 ‘탑‘에 있는 당신 방으로 그림을 보러 가고 싶은데요.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보긴 했지만, 다시 한 번 꼭....
"아니, 후지누마 씨한테는 비밀로요. 아마 싫어하실 겁니다. 둘이서만 천천히 얘기를 나누고 싶기도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주 많아요. 어때요, 괜찮죠?"
"좋아요, 결정한 겁니다. 그럼 오늘 밤, 그렇지, 자정 넘어서 뵙겠습니다. 알겠죠?"

(그렇다면 설마......)
다음으로 유리에를 머릿속에 그렸다가 바로 떨쳤다.
그건 아니다. 결코 그럴 리 없다.

규슈 전역을 폭풍우 속으로 밀어 넣은 태풍 16호는 진로를 유지하며 동쪽으로 나아가다가 오늘 밤에서 내일 아침 사이에 동해 쪽으로 빠져나갈 전망이며, 세력은 약간 약해졌으나 주고쿠 지방에도 꽤 강한 비바람이 예상되니 주의를 기울이라는 내용이었다.
"길이 또 무너지지나 말아야 할 텐데요."

(그래, 유리에가 제법 성숙해지기는 했어)그래서 작년까지는 그런 티를 내지 않던 호색한 외과 의사가 갑자기 유리에한테 흥미를 보이는 것이리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는 한 방 얻어맞은 기분으로 휠체어를 돌려 어스름한 회랑을 되짚어갔다.

"그리고 후지누마 씨의 건강과 유리에 씨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부끄러움도 모르고 지껄이는 미타무라의 말에 내 옆에 앉은 유리에는 미소로 답했다. 곁눈질로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가슴이 턱 막혔다.
유리에는 저녁을 들기 전에 ‘북쪽 회랑‘에서 미타무라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을 아직 내게 알리지 않았다. 엿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가능하면 먼저 고백해주기를바랐다.

어느 틈엔가 냅킨과 안주 포장지로 만든 다양한 ‘종이접기 작품‘이 그의 앞에 진열되기 시작했다. ‘학‘이며 ‘배‘, 난생처음 보는 훨씬 복잡한 ‘작품‘도 있었다. 아무래도종이를 접는 움직임이 몸에 배어서 손에 잡히는 종이는 무의식중에 접어버리는 모양이다.
"술이요?"
내 물음에 시마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가락을 멈췄다.
"그럼 좀 마셔볼까요."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복도에서 본 것이 있어요."
"뭘 말입니까?"
"복도의 융단이 젖어 있는 걸요."

"그런 일이 터진 직후라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지만 제가 선두에 서 있었다는 건 확실히 기억해요. 그러니까 오이시 씨, 미타무라, 후루카와 씨, 저까지 넷이서 되돌아올 때 제가 맨 앞에서 걸었다는 말이죠. 모두 비를 맞아서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흠뻑 젖어 있던 터라 우리가 지나간 다음이라면 융단이 젖어 있어도 이상할 건 없어요. 하지만 제 눈에 들어온 건 앞쪽, 그러니까 비에 젖은 우리가 지나가려는 곳이었습니다."

"구라모토 씨의 목소리가 ‘별관‘까지 들렸고 그 후에 현관 쪽이 시끌시끌했어요. 아무래도 무슨 큰일이 났구나 싶어서 우리는 현관으로 달려갔고, 네기시 씨가 그렇게물살에 휩쓸려간 다음에 우리는 다시 ‘별관‘ 쪽으로 되돌아왔었죠."

"융단이?"
"예. ‘남쪽 회랑‘에 깔린 융단이 물에 젖어서 더러워져 있었어요. 그랬던 것 같아요."
"그게 뭐가 어떻다는 거요?"
오이시가 끼어들었다.
"아니, 뭐...... 아아, 그냥 그랬단 말이죠."
시마다는 입을 오므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리를 주시한 채 손가락을 움직여 또 ‘종이접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언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누군가 네기시 후미에를 살해했다, 그때 후루카와 쓰네히토에게는 알리바이가 있었다, 따라서 그는 마사키를 죽인 범인이 아니다...... 이런 주장은 어디까지나 혐의의 소극적인 부정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요컨대 이런 이야기로군요. 어수선한 소리를 듣고 여러분이 현관으로 달려간 그때 이미 몸이...... 아니, 적어도 구두가 물에 젖은 사람이 여러분 가운데 섞여 있었다.
‘여러분‘이란 그때 ‘별관‘ 쪽에서 달려온 네 명. 여기에 계신 세 분과 돌아가신 마사키 씨죠. 그리고...... 아, 교수님 제가 말해도 되겠습니까?"

"다른 가능성. 예를 들어, 그렇지. 꽃병의 물을 쏟았다거나 화장실 수도꼭지가 고장 나서 물이 튀었다거나 그랬던 분은요? 역시 안 계시는군요.
그렇다면 그 사람이 젖은 원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비를 맞았다는 것."

"그럼 여기서 결론입니다. 그 사람이 비를 맞은 곳은 ‘탑의 방‘ 발코니다. 즉 그 사람이 네기시 후미에가 추락하는 데 어떤 형태로든 관여했다는 말입니다. 더 단적으로 말할까요? 비에 젖은 그 사람이 바로 네기시 후미에를 발코니에서 떨어뜨린 범인입니다."

"호오, 그럼 이 작품은 어떻습니까?"
그러면서 마사키는 눈앞 벽에 걸린 소품을 가리켰다.
‘분수‘라. 1958년 작품이로군요."
미술상은 팔짱을 끼고 언덕 위에 분수가 있는 기묘한 풍경을 응시했다.
천오백 만."

"세상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고 생각해요. 돈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죠. 그 차이를 구분하는 것, 그게 장사라는 거요. 마사키라는 남자는 한눈에도 못 가진 자로 보입디다. 그렇지 않소? 어쩐지 그 스님이랑 분위기가 비슷하잖아요."
"아하, 후루카와 씨. 그 사람은 예년보다 혈기가 더 없어 보이더군요."
"그야 그럴 테죠. 원래도 그랬지만, 특히 아까는 그림이 몇 천만 엔 어쩌고 하니까 더 그랬겠죠. 그 스님이 잇세이 화백의 그림에 끌리면 끌리는 만큼 아쉬움은 더 커질 거요."

10년을 한 지붕 아래서 같은 ‘집‘에 헌신해온 여자의 죽기 직전의 얼굴과 표정. 그때 거센 빗줄기 사이로 들린 비명까지도 귓속 깊은 곳에 박힌 채 메아리쳤다.
수차에 튕겨서 공중에 떴다가 탁류 속에 빨려 들어간 그녀가 살아 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길이 끊겨서 수색이 불가능하다던 경찰의 목소리에서도 이미 늦었음을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한번 생각해보시오. 그 남자는 반년 전부터 이 집에 신세를 지고 있다고 했어요. 뭔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게 분명해요. 한두 달이면 모를까 반년이라니...... 그렇지않소? 뭔가 구린내가 나."
"구린내요?"
"음, 아주 폴폴 풍겨요. 돈이 엄청 아쉽든지 아니면 그보다 더 골치 아픈 사정이 있을 거요. 오늘 그 남자를 처음 봤을 때도 어쩐지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었어요. 아무래도 그 사진 같은 걸 보지 않았나 싶은데."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놀라움과 두려움, 공포와 불안이라는 감정이 그의 마음속을 더 크게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이 서로 뒤얽혀서 그의 마음을 마구 헤집어놓았다.

식사 준비는 익숙하지 않았다. 더구나 후미에의 얼굴과 목소리가 문득문득 뇌리에 되살아나서 자신도 모르게 손끝이 떨려왔다. 그런 와중에도 식사 시중을 들 때 접시 한 장 깨뜨리지 않은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설거지를 마치면 그다음은 수차 기계실 점검과 문단속.......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후미에가 주인에게 말했다. 밤에도 감기약을 잘 챙겨 드시라고. 어떻게 할까. 뭐,
괜찮을 것이다. 주인의 건강관리는 자신의 담당이 아니니까.

2026.07.04 오후 20시 2분48%
"그럼 저도 이만 쉬겠습니다."
홀을 떠나려는 구라모토의 뒤에서 그런 말소리가 들리더니 마사키가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때 별 생각 없이 시계를 보았다. 오후 10시 50분이었다.
‘남쪽 회랑‘에서 현관 홀로 향했다.

후루카와는 허둥거리며 눈을 사방으로 굴렸다. 그러더니 바지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이마를 닦으며 말했다.
"그럴 생각으로 그런 건...... 그러니까 그, 정말로 멋진 그림이라서 저도 모르게 그만."
"어찌되었든 작품에 손은 대지 마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아아, 그건, 예."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이 붉어졌다. 화가 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수치심 때문이라는 사실을 구라모토는 알았다.
"거듭 당부 말씀 올립니다. 유념해주십시오."

어스레한 회랑 가운데쯤에 사람이 보였다.
누가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한순간 움찔했지만, 둥글둥글한 민머리를 보고 바로 후루카와 쓰네히토임을 알았다. 마르고 왜소한 몸에 흰색 긴팔 셔츠, 검은 슬랙스. 멀찍이서 보니 마치 아르바이트에 지친 고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두 잔을 비운 뒤 불을 끄고 어중간한 취기에 비척거리며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 반쯤 걷어두었던 남쪽 창의 커튼을 치려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그는 분명 그것을, 암흑 속에서 흔들리는 작고 노란 빛을 보았다.
‘별관‘ 쪽이었다.

구라모토에게 후미에의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 남자는 유능한 ‘집사‘지만 결코 주인인 자신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 ‘집‘, 이 건물 자체에 충성할 뿐이라고 기이치는 생각했다.

(무슨 빛이었을까)구라모토는 혼자서 되물었다.
2층 복도는 불이 꺼져 있다. 희미하게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진 불빛..
(누가 담배에 불이라도 붙인 걸까)(......전등이 꺼진 깜깜한 복도에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녀의 마음이 열릴까.
하얀 천장갑을 낀 양손으로 드러난 뺨을 만져보았다. 천 한 장을 사이에 두어도 우둘우둘 불쾌한 감촉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다못해 이 얼굴, 이 두 다리라도 성했더라면......)

"유리에예요."
기이치는 바로 문을 열었다. 어둑어둑한 복도에 하얀 네글리제로 몸을 감싼 어린 아내가 서 있었다.
"이런 시간에 어쩐 일이니?"
그는 놀랐다. 혼자서 ‘탑의 방‘에 있기 싫으면 이리로 오라고 말은 했지만 설마 진짜로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역시 그 방에 혼자 있기가 힘들었구나."
"아니오."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니라......."

(아아, 유리에)바로 그녀만이 그의 마음을 지탱해주는 존재였다. 마사키 신고가 지적한 대로 그는 이 저택에 모아들인 후지누마 잇세이의 환상풍경 속에 그녀를 가두어 독점하는것에서만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유리에는 내 손안에 있어도 도저히 손에 닿지를 않아)

"불을 켰더니 뒷문이 조금 열려 있는 게, 뭔가 이상했어요."
"뒷문이?"
"예. 그리고 복도의 그림이 한 장 없어졌고요."
"뭐라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길이 도중에 끊겨서 마을과 저택을 오가기는 불가능해. 게다가 저 자물쇠를 봐. 부서지지 않았어. 안에서 돕지 않는 한 외부인이 들어올 수는 없다고 보네."

"후루카와 씨는?"
"없습니다."
미타무라가 계단 난간 너머로 상반신을 내밀고 대답했다.
"방에 아무도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야심한 밤에 벌어진 이 이상한 사태에 모두 곤혹을 감추지 못했다. 입을 여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휘몰아치는 바람과 건물을 때리는 빗소리만이 2층 높이의 공간에 고인 긴장된 공기를 뒤흔들 뿐이었다. 이윽고.

"문은 안 잠겨 있고, 방 안에는 짐이 그대로 있더군요."
"화장실에는?"
"화장실과 욕실에도 없어요. 몇 번이나 불러봤는데, 아무래도 2층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