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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목민심서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 창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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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탐관오리였을까?

— 『목민심서』를 읽고, 공조 치수사업담당 임 정랑의 수해 예방사업

들어가며

“廉者,牧之本務,萬善之源,諸德之根,不廉而能牧者,未之有也。”

“청렴은 수령의 본무로, 모든 선(善)의 근원이요 모든 덕(德)의 뿌리이니, 청렴하지 않고서 수령 노릇 할 수 있는 자는 없다.”

“廉者,天下之大賈也。故大貪必廉。人之所以不廉者,其智短也。”

“청렴은 천하의 큰 장사이다. 그러므로 크게 탐하는 자는 반드시 청렴해야 한다. 사람이 청렴하지 않은 것은 그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 『목민심서』 율기편(律己篇), 청심(淸心)

다산(茶山) 정약용은 청렴을 관리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으로 보았다. 특히 대탐필렴(大貪必廉)이라는 말이 눈길을 끈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더 큰 가치와 명예를 추구하려면 오히려 청렴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산은 『목민심서』 서문에서도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이 자신의 이익에만 급급하고 백성을 돌보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고 꾸짖었다.

그런데 내게는 공전편(工典篇)의 천택(川澤)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하천과 못을 관리하는 일을 다룬 대목이다.

이 책 『정선 목민심서』는 다산연구회의 『역주 목민심서』 여섯 권을 한 권으로 줄인 발췌본이다. 천택에서 인용할 세 구절 가운데 첫 번째만 이 책에 실려 있어, 나머지 두 구절은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에서 원문과 번역을 확인했다.

“川澤者,農利之所本,川澤之政,聖王重焉。”

“천택(川澤)은 농리(農利)의 근본이 되는 것이므로, 천택에 대한 정사를 성왕(聖王)은 소중하게 여겼다.”

“土豪貴族,擅其水利,專漑其田者,嚴禁。”

“토호(土豪)와 귀족(貴族)이 수리(水利)를 멋대로 하여 자기의 전지에만 물 대기를 독점하는 것은 엄금하여야 한다.”

“池澤所產,魚ㆍ鼈ㆍ蓮ㆍ芡ㆍ茭ㆍ蒲之屬,爲之厲守,以補民役,不可自取以養己。”

“못에서 생산되는 물고기, 연마름, 마름줄, 부들 등속은 엄중하게 지켜서 그 수입으로 백성들의 요역에 보충해야 하고, 수령이 스스로 취득하여 사복을 채워서는 안 된다.”

— 『목민심서』 공전편(工典篇), 천택(川澤)

하천과 못은 백성의 생업을 위한 시설이며, 그 혜택을 특정인이 독차지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못에서 나는 물고기조차 사사로이 취하지 말라고 했으니,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분하는 데 얼마나 엄격했는지 알 만하다.

다산이 그토록 경계한 목민관(牧民官)의 폐단은 과연 지금 공직 현장에서 완전히 사라졌을까.

책장을 넘기다 문득,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나 공조(工曹)의 관리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 들었다.

지금의 5급 시설사무관은 조선시대로 치면 어느 정도 벼슬일까?

정5품 정도라면 공조 정랑(正郞)쯤 되었을 법하다. 공조는 오늘날 국토교통부와 비슷한 일을 맡았던 관청이니, 토목직인 내게도 제법 어울리는 자리다.

그런데 나는 과연 다산이 바랐던 청렴한 관리가 되었을까, 아니면 그가 그토록 경계했던 탐관오리(貪官汚吏)가 되었을까?

기왕 상상하는 김에 탐관오리가 되어보자.

1. 금의환향

때는 조선 어느 해 봄.

한양 공조의 정5품 정랑 임 아무개가 충청도 고향으로 내려왔다. 조정의 명을 받아 장마철을 앞두고 제방과 교량을 보수하는 공사를 감독하게 된 것이다.

고향 백성들은 중앙에서 높은 관리가 내려왔다며 반겼다.

그러나 임 정랑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

오래전부터 마음에 걸리던 고향집 뒤편의 낡은 석축이었다.

마침 나라에서 내려준 공사비가 은자 천 냥이었다.

‘기왕 내려온 김에 우리 집부터 손봐야겠구먼.’

임 정랑은 아전들을 불러 석축을 보수하도록 했다. 그런데 공사가 시작되자 욕심이 생겼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배수로도 널찍하게 내고 마당 물매도 잡았다. 내친김에 정원의 연못까지 근사하게 정비했다.

아전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리, 석축만 보수하시면 될 것을 어찌 배수로까지 새로 내시옵니까?”

“이놈아! 석축만 튼튼하면 무엇 하느냐? 물이 빠지지 않으면 수압이 높아져 석축이 무너질 것 아니냐!”

“허나 연못까지 정비하시는 까닭은 무엇이옵니까?”

“그것은 우수 저류시설이니라. 집중호우 때 빗물을 일시적으로 저장하여 하류의 홍수 부담을 줄이는 것이지.”

“그런데 연못에 비단잉어는 어찌 풀어놓으셨사옵니까?”

임 정랑이 혀를 찼다.

“쯧쯧, 무식한 놈 같으니라고. 수질 상태를 상시 확인하기 위한 생물학적 모니터링이니라!”

아전은 감탄했다.

역시 한양에서 내려온 관리는 아는 것부터 달랐다.

2. 장마가 지나간 자리

그해 여름,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제방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어졌다. 백성들의 초가집은 물에 잠기거나 통째로 떠내려갔다.

그런데 임 정랑의 고향집만은 멀쩡했다.

튼튼한 석축과 널찍한 배수로 덕분에 마당에는 물 한 방울 고이지 않았다. 연못에서는 비단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며칠 뒤, 고을에 암행어사가 들이닥쳤다.

“암행어사 출두야!”

관아가 발칵 뒤집혔다.

“네가 공조에서 내려온 임 정랑이냐?”

“그러하옵니다.”

“나라에서 제방을 보수하라고 내려준 은자 천 냥은 어디에 썼느냐?”

“수해 예방사업에 집행하였사옵니다.”

“그렇다면 공사비 장부를 가져오너라!”

임 정랑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황공하오나, 지난 장마에 관아가 침수되어 장부가 모두 떠내려갔사옵니다.”

“뭐라? 장부가 떠내려갔다고?”

“그러하옵니다.”

“그런데 어찌 네놈의 집만 멀쩡하단 말이냐?”

임 정랑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소신이 평생 힘써 온 수해 예방사업의 성과이옵니다.”

3. 시범사업의 성과

“뭐라? 성과?”

암행어사가 눈을 부릅떴다.

“백성들의 집은 모두 떠내려갔는데 네놈의 집만 멀쩡한 것이 성과란 말이냐?”

“소신의 집은 시범사업 대상지였사옵니다.”

“시범사업?”

“새로운 수해 예방공법을 전면 시행하기에 앞서 한 곳에 먼저 적용하여 효과를 검증한 것이옵니다. 이번 장마로 그 성능이 확실하게 입증되었사옵니다.”

“그 한 곳이 하필 네놈의 집이란 말이냐?”

“사업 효과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려면 관리가 용이한 곳을 선정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그렇다면 백성들의 집은 어찌할 것이냐?”

“내년도 본사업에 반영할 예정이옵니다.”

“내년도라니! 백성들은 당장 올겨울을 어디서 나란 말이냐!”

“그것은 소신의 소관이 아니옵고, 호조와 진휼청에서 검토할 사안인 줄 아뢰옵니다.”

“이놈! 그럼 네놈은 대체 무엇을 했느냐?”

“시범사업을 완료하고, 사업 효과를 검증하였으며, 향후 확대 시행을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하였사옵니다.”

“그 기초자료는 어디 있느냐?”

“장부와 함께 떠내려갔사옵니다.”

암행어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이냐?”

“시범사업 시설물은 온전히 남아 있사옵니다.”

“어디에?”

“소신의 집에 있사옵니다.”

4. 내년도 예산

“여봐라! 저놈을 당장 포박하라!”

역졸들이 달려들었다.

임 정랑이 다급히 외쳤다.

“어사또! 잠시만 기다려 주시옵소서!”

“또 무슨 할 말이 남았느냐!”

“소신을 잡아가시면 내년도 본사업 추진에 차질이 발생하옵니다!”

“뭐라?”

“시범사업을 수행한 담당자가 사라지면 사업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어렵사옵니다. 후임자가 오더라도 현장 여건을 파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옵니다.”

“그래서 네놈을 풀어달라는 것이냐?”

“그런 뜻은 아니옵니다. 다만 백성들의 안전을 생각하신다면 사업의 정상적인 추진을 우선 고려해 주십사 하는 것이옵니다.”

암행어사가 기가 막혀 물었다.

“그렇다면 내년도 본사업에는 얼마나 필요하겠느냐?”

“은자 만 냥 정도면 되겠사옵니다.”

“만 냥이나?”

“정확한 사업비는 실시설계를 거쳐 확정하여야 하옵니다. 다만 물가 상승과 현장 여건 변동에 따라 총사업비가 증액될 가능성은 있사옵니다.”

암행어사는 더 이상 듣지 않았다.

“끌고 가라!”

임 정랑은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면서도 끝까지 외쳤다.

“어사또! 소신은 나라에서 내려준 공사비를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집행하였사옵니다!”

“그 돈을 모두 어디에 썼느냐!”

“그 성과가 지금 소신의 집에 고스란히 남아 있사옵니다!”

5. 후일담

이렇게 공조 정랑 임 아무개는 포승줄에 묶여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나라에서 내려준 공사비로 자기 집을 고쳐놓고도 끝까지 시범사업의 성과라고 우겼으니, 참으로 뻔뻔한 탐관오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임 정랑에게도 억울한 점은 있었을 것이다.

석축은 무너지지 않았고, 배수로는 제 기능을 했으며, 연못의 비단잉어까지 무사했으니 말이다.

사업 효과만큼은 확실하게 입증된 셈이다. 다만 그 혜택을 본 사람이 자기 자신뿐이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도 저런 관리가 되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로부터 얼마 뒤, 임 정랑의 고향집에서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장마가 끝나고 연못의 물이 빠지자 비단잉어들이 하나둘 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식을 들은 임 정랑이 옥중에서 탄식했다.

“아이고, 이런! 수질 모니터링 체계에 문제가 있었구먼.”

그리고 옥졸에게 종이와 붓을 청했다.

“나리, 옥에 갇혀서까지 무엇을 그리 열심히 쓰시옵니까?”

임 정랑이 붓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

“내년도 우리 집 수해 예방시설 유지관리 예산 요구서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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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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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에 대한 단상(步行斷想)
2026년 10월 25일, 일요일


어제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30.6km를 걸었다.

그런데 오늘도 걸었다. 아침에 5.2km, 오후에 20.3km. 합쳐서 25.5km다. 이틀 동안 걸은 거리가 무려 56.1km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참 징하게도 걸었다.

오늘은 멀리 갈 것도 없이 집 주변을 걸었다. 아침에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들어왔다가 오후에 다시 길을 나섰다. 멀리 가지 않았다고 해서 적게 걸은 것은 아니다.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오후에만 20km를 넘겼다.

오늘 하루 걸음 수를 확인하니 약 3만 7천 보다.

오전에는 평지를 따라 5.2km를 걸었는데 약 6천 보였고, 오후에는 평지와 산길을 섞어 20.3km를 걸었더니 약 2만 6천 보가 나왔다. 산길에서는 보폭이 짧아지니 같은 거리를 걸어도 걸음 수가 더 많아진다.

이렇게 운동하면서 걸은 것만 약 3만 2천 보. 여기에 집에서 돌아다니고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등 자잘하게 걸은 것까지 합하니 3만 7천 보가 된 것이다.

얼마 전에는 대전도시철도 1호선의 스물두 역을 따라 걸었다. 역사 따라 걷기 구간은 48km였고, 그날 하루 전체로는 약 57km, 7만 보를 걸었다. 나도 어지간히 걷는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지하철 역사 따라 걷기와 어제 비 내리는 갑천을 따라 걸었던 이야기, 두 편 모두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에 올렸다.

그런데 책을 쓴 하정우, 이 양반은 하루 3만 보를 걷는다고 한다.

하루 3만 보라니.

내 걸음으로 환산하면 대략 24km다. 오늘 오후에만 20km 넘게 걸었는데 쉬는 시간까지 합치니 다섯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렇다면 하루 3만 보를 걸으려면 도대체 몇 시간을 걸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 그럼 일은 언제 하는겨?

물론 걷는 것이 일상인 사람도 있고, 출퇴근하면서 걸음 수를 채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정우도 일상생활에서 걷는 것까지 모두 합산한 숫자일 것이다.

그래도 하루 3만 보를 매일 채우려면 보통 부지런해서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하루 3만 보를 목표로 삼는 것과 실제로 날마다 3만 보를 걷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나야 장거리 걷기가 얼마나 힘든지 진즉에 알고 있다. 오래 걸으면 다리도 뻐근해지고 발바닥도 아프다. 아무리 걷는 것을 좋아해도 발바닥까지 그걸 좋아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나는 걷는 것이 좋다.

특별한 목적지가 없어도 좋고, 오래 걸어 낯선 곳에 도착해도 좋다. 때로는 익숙한 길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걷는다.

지난번에는 지하철역 스물두 개를 찾아 걸었고, 어제는 비 내리는 갑천을 따라 걷다가 가을 축제들을 만났다. 오늘은 집 주변을 돌아다녔다.

걷는 길도 다르고, 만나는 것도 다르다.

하지만 걷는 것이 좋다고 해서 무작정 많이 걷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56.1km를 걸었더니 온몸이 노곤하다. 어디가 특별히 심하게 아픈 것은 아닌데 그냥 피곤하다.

하긴, 그만큼 걸었으니 피곤하지 않으면 그게 더 신기한 일 아니겠는가.

얼마 전 내가 만든 말이 있다.

사와생보(死臥生步).

죽어서야 누울 것이니, 살아 있으니 걸어라.

걸을 수 있을 때 걷고, 떠날 수 있을 때 떠나고, 읽을 수 있을 때 읽자는 뜻에서 만든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여야겠다.

피즉휴식(疲則休息).

피곤하면 쉬어라.

집에 돌아와 쉬는 동안에는 틈틈이 책도 읽는다. 한참 걷고 난 뒤 편히 앉아 책장을 넘기는 시간도 좋다. 두 다리는 쉬고, 좋아하는 책은 읽고.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휴식 아니겠는가.

死臥生步 疲則休息.

살아 있으니 걷되, 피곤하면 쉬어야 한다.

걷는 것도 좋지만 내일은 좀 쉬어야겠다.

그런데 또 길을 보면 걷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참, 사람 마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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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기록

2026년 10월 25일(일요일)

오전 걷기
전체거리 : 5.2km
출발시간 : 오전 7시 56분 33초
종료시간 : 오전 9시 33분 19초
소요시간 : 1시간 36분 46초
운동시간 : 1시간 14분 46초
휴식시간 : 22분 00초
평균속도 : 4.2km/h
누적고도 : 133m
걸음 수 : 약 6,000보

오후 걷기
전체거리 : 20.3km
출발시간 : 오후 1시 00분 58초
종료시간 : 오후 6시 21분 27초
소요시간 : 5시간 20분 29초
운동시간 : 5시간 01분 24초
휴식시간 : 19분 05초
평균속도 : 4.0km/h
누적고도 : 720m
걸음 수 : 약 26,000보

하루 합계
전체거리 : 25.5km
소요시간 : 6시간 57분 15초
운동시간 : 6시간 16분 10초
휴식시간 : 41분 05초
평균속도 : 4.1km/h
누적고도 : 853m

하루 전체 걸음 수 : 약 37,000보 (일상생활 약 5,000보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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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6 0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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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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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가을 축제들을 만나다

— 비 내리는 갑천을 따라 가을의 한자락을 거닐다 —

2026년 10월 24일, 토요일

날씨: 하루 종일 비

ㅇ 걷기 코스: 집 → 유림공원(국화축제) → 신세계백화점 → 엑스포다리 → 둔산대공원 → 도안호수공원 → 가수원교 → 소태봉,옥녀봉 → 집

ㅇ 걷기 기록

* 전체거리 : 30.6km
* 출발시간 : 오전 9시 25분 15초
* 소요시간 : 7시간 02분 30초
* 운동시간 : 5시간 54분 45초
* 휴식시간 : 1시간 07분 45초
* 평균속도 : 5.2km/h
* 누적고도 : 53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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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에는 비를 맞으며 걸어보자

지난 10월 10일, 대전도시철도 1호선의 스물두 역을 따라 48km를 걸었다.

유성온천역에서 출발해 반석역을 찍고 판암역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유성온천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었고, 그곳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그냥 주말이니 또 한번 걸어보자는 생각이었다.

마님은 일직근무를 나갔다. 지난번에는 마님이 사과를 싸줬지만, 이번에는 그럴 형편이 아니니 내가 직접 사과를 썰어 통에 담았다.

배낭을 챙기고 집을 나서려는데 밖에서는 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다.

아니, 모처럼 걷겠다고 나서는 날에 비라니.

그렇다고 비가 온다는 이유로 걷기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우산을 챙겨 들고 오전 9시 25분, 집을 나섰다.

처음부터 비가 꽤 내렸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걷는 사람이 많지 않은 거리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고, 나무에서는 젖은 낙엽들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릴 모양이었지만 걷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오래 걷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직은 레인코트를 꺼내 입을 필요는 없겠다 싶어 우산을 쓴 채 계속 걸었다.

오늘은 어디까지 걸을까.

아직 정해진 것은 없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보자는 생각뿐이었다.

2. 비 내리는 국화축제, 그리고 태권브이

우산을 쓰고 걷다 보니 제17회 유성국화축제 현장이 나타났다.

국화축제가 한창이었다.

노란색과 분홍색, 자주색과 붉은색 국화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비를 맞은 꽃들은 색깔이 더욱 진해 보였고, 물기 어린 바닥에는 꽃과 주변 시설물의 모습이 비쳤다.

축제장에는 단순히 국화 화분만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갖가지 조형물도 만들어놓았다.

그중 단연 눈길을 끈 것은 거대한 로보트 태권브이였다.

어릴 적 즐겨 보았던 바로 그 태권브이가 꽃으로 옷을 갈아입고 서 있었다. 몸통에는 노란 국화가 촘촘히 박혀 있었고, 특유의 브이자 장식도 눈에 띄었다.

그 옆에는 커다란 로켓처럼 생긴 조형물도 있었다.

태권브이와 로켓이라니.

어릴 적 만화영화를 보던 때가 떠올랐다. 꽃구경을 하러 왔다가 뜻밖에 어린 시절의 영웅까지 만난 셈이다.

국화꽃으로 만든 커다란 책도 있었다. 펼쳐진 두 장의 책장을 꽃으로 빼곡하게 장식해 놓았는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괜히 더 눈길이 갔다.

이 밖에도 두 마리 학이 긴 목을 굽혀 부리를 맞대고 있는 조형물이 있었다. 서로 마주한 목이 하트 모양을 이루고 있었는데, 제법 그럴듯했다.

녀석들, 사람들 사진 찍으라고 자세 한번 잘 잡았구먼.

국화꽃 사이에는 인공 폭포도 만들어놓았다. 바위 사이로 물이 떨어지고 주변에는 형형색색의 국화들이 가득했다.

한쪽에는 노란색과 자주색 국화들이 줄지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분홍색 꽃들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축제장을 둘러보며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라 우산을 들고 구경하기가 조금 불편했지만, 꽃구경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비에 젖은 국화와 물기 어린 바닥이 가을날의 운치를 더했다.

처음부터 국화축제를 구경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그냥 걷다가 만난 것이다.

이것이 오늘 첫 번째 우연이었다.

3. 엑스포다리에서 레인코트로, 그리고 코스모스

국화축제를 구경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엑스포다리까지 걸어왔다. 출발한 뒤 거의 10km를 우산을 쓰고 걸은 셈이다.

이쯤 되니 우산을 들고 걷는 일이 슬슬 귀찮아졌다.

마침 엑스포다리 아래에는 비를 피할 만한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우산을 접고 배낭에 넣어두었던 레인코트를 꺼내 입었다.

이제야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

물론 레인코트를 입었다고 비가 그치는 것은 아니지만, 장거리 걷기에는 우산보다 훨씬 편했다.

다시 걸음을 옮기며 갑천변에 펼쳐진 코스모스 꽃밭을 바라보았다.

분홍색과 흰색 코스모스가 강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쪽으로는 붉고 푸른 아치가 교차하는 엑스포다리가 보였고, 반대편에는 높이 솟은 엑스포타워가 서 있었다.

그런데 이곳이 어딘가.

불과 엿새 전에도 왔던 곳이 아닌가.

지난 10월 18일 일요일, 고향 친구가 대전에 찾아왔었다. 그날도 비가 내렸지만 마님과 친구, 이렇게 셋이 함께 이곳을 찾아 코스모스를 구경했다.

그날의 이야기는 「가을비 속에 만난 동네 친구」라는 제목으로 남겨두기도 했다.

그런데 엿새 만에 또 이곳에 온 것이다.

그날은 친구와 마님이 함께였고, 오늘은 나 혼자다.

코스모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 피어 있었다.

엿새 전에도 느꼈지만 요즘 코스모스는 키가 작아 예전처럼 하늘거리는 맛이 없다. 그래도 넓게 펼쳐진 꽃밭을 바라보니 가을 분위기는 제법 난다.

같은 장소를 찾았으니 사진도 비슷하게 찍게 된다.

엑스포다리를 배경으로 한 장, 이번에는 카메라를 반대편으로 돌려 엑스포타워를 배경으로 또 한 장.

그러면서 엿새 전 친구와 함께 걸었던 시간이 떠올랐다.

고향 친구와 함께한 코스모스 구경도 좋았지만, 오늘 혼자 걸으며 그날을 떠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같은 장소를 다시 찾았는데도 함께하는 사람이 다르고, 그 자리에 서 있는 내 마음도 다르다.

엿새 전에는 친구와 함께 코스모스를 보았고, 오늘은 코스모스를 보며 친구를 떠올렸다.

꽃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엿새라는 시간 사이에 또 하나의 추억이 쌓였다.

4. 사과 한 조각과 따뜻한 커피

걷기를 이어가다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배낭을 내려놓았다. 준비해 온 사과를 꺼내고 따뜻한 커피도 한 잔 마련했다.

비 오는 날 오래 걸은 뒤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은 참 좋다.

사과 한 조각을 곁들이니 이만한 간식도 없다.

근사한 카페에 앉은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걷다가 잠시 쉬어가는 이 시간이 좋았다.

한 손에는 사과를 들고, 옆에는 커피를 놓았다. 빗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사과를 씹었다.

오래 걷는 날에는 이런 짧은 휴식도 중요하다.

아무리 걷는 것을 좋아해도 계속 걷기만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다리를 쉬게 하면서 주변도 둘러보고, 사진도 확인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배낭을 둘러멨다.

아직 걸을 길이 많이 남았다.

5. 둔산대공원에서 만난 또 하나의 우연

이번에는 둔산대공원에서 또 하나의 행사를 만났다.

「2026 대전지역 전통민속놀이 대축제」.

넓은 광장에 초록색 천막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과 우산을 쓴 방문객들이 오가고 있었다.

천막에는 지역별 민속놀이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날씨가 영 협조해 주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바람에 광장에는 물이 고여 있었고, 바닥은 온통 젖어 있었다. 넓은 공간에 마련된 행사 시설들을 보니 맑은 날이었다면 제법 볼만했을 것 같았다.

행사를 준비한 사람들은 얼마나 속상할까.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천막과 행사장을 설치하고, 준비할 것도 많았을 텐데 하필 비가 내리다니.

그래도 천막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저마다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들도 보였고, 우산을 쓴 시민들도 행사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구경하며 지나갔다.

그러다 문득 신승훈의 노래 한 곡이 떠올랐다.

「우연히」.

우연히 그렇게 널 만난 거야.

오래전에 들었던 노래다.

노래 속에서는 우연히 만난 사람이 애틋한 사연의 주인공이지만, 오늘 내게 우연히 찾아온 것은 사람 대신 축제들이었다.

국화축제를 만났고, 이번에는 전통민속놀이 행사까지 만났다. 그 사이 엿새 전 친구와 함께 보았던 코스모스도 다시 보고 왔다.

이쯤 되면 참 풍성한 하루다.

그냥 걷겠다고 길을 나섰을 뿐인데, 대전에서 열리는 가을 행사들을 연달아 구경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동차를 타고 목적지만 찾아다녔다면 이런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다.

그런데 걸으니 보인다.

오늘은 발길 닿는 곳마다 볼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6. 갑천누리길, 물새들과 함께 걷다

다시 갑천을 따라 걸었다.

엑스포다리에서 가수원교까지 이어지는 길은 갑천누리길 1코스다.

총연장 약 10.3km.

도심을 가로지르는 갑천을 따라 걸으면서도 자연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길이다.

한쪽에는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이어지고, 다른 한쪽에는 갈대와 물풀이 우거진 하천이 펼쳐져 있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고층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으니 도심과 자연이 나란히 있는 셈이다.

물가에서는 오리들이 무리를 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녀석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물 위를 떠다녔다.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헤엄치는 녀석도 있었고, 함께 움직이는 녀석들도 있었다.

얕은 물에는 하얀 백로들도 보였다.

긴 다리로 물속을 천천히 걸으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어떤 녀석은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었고, 다른 녀석은 날개를 펼치기도 했다.

그 뒤로는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었다.

참 재미있는 모습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심 한복판에서 물새들이 제법 한가롭게 자기들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월평습지 일대에는 갑천 습지보호지역이라는 안내판도 있었다.

안내판을 읽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이 단순한 산책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대와 물풀, 물새들이 살아가는 공간이 도심 가까이에 남아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물길을 따라 걷다 보니 징검다리도 만났다.

물 위로 콘크리트 블록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그 옆으로는 물이 흘렀다. 비가 내려 젖은 블록들을 바라보니 괜히 옛날 생각도 났다.

비가 내리는 갑천변은 한산했다.

산책로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고, 나무 아래에는 젖은 낙엽들이 떨어져 있었다. 길게 뻗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가을이 조금씩 깊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런 날에는 일부러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러니 길이 한결 조용하다.

우산을 쓰고 걷던 아침과 달리 이제는 레인코트를 입고 있으니 두 손도 자유롭다.

물가의 새들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때로는 발걸음을 멈추며 걸었다.

오랫동안 도로와 교량을 다루던 토목기술자라 그런지 다리 아래 비탈면이나 시설물도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쉬는 날에도 그런 것까지 살펴보고 있으니 직업이란 것이 참 무섭다.

그래도 오늘은 업무를 보는 날이 아니다.

그냥 걷는 사람이다.

7. 도안호수공원에서 먹는 건빵

둔산대공원에서 민속놀이 행사를 구경한 뒤에도 한참을 더 걸었다.

대략 6km쯤 걸었을까. 도안호수공원에서 잠시 쉬었다.

이곳에서는 아까 먹던 사과 대신 건빵을 꺼냈다.

‘우리밀 추억건빵’.

건빵이라니.

군대에서 먹던 그 건빵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건빵을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추억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서 팔고 있으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한 봉지를 뜯어 먹었다.

오래 걷다가 먹으니 건빵도 제법 맛있다.

지난번 48km 걷기에서는 코다리냉면에 동태전까지 시켜 먹었다. 결국 너무 많이 주문한 동태전은 절반이나 포장해서 들고 왔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오늘은 사과와 커피, 건빵으로 간식을 해결했으니 제법 소박한 편이다.

물론 30km 넘게 걷는 사람이 먹는 것을 너무 소박하게 챙기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뭐, 어쩌겠는가.

건빵도 맛있으면 그만이지.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8. 가수원교에서 방향을 바꾸다

갑천누리길 1코스의 끝은 가수원교다.

엑스포다리에서 시작해 갑천을 따라 내려온 길이 이곳에서 끝난다.

그러나 오늘 걷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수원교에서 방향을 바꿔 건양대학교병원 쪽으로 향했다. 이후 소태봉과 옥녀봉을 거쳐 목원대학교 방향으로 걷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하천을 따라 걷던 길에서 산길과 도심을 지나는 길로 바뀌었다.

비를 맞으며 오래 걸었으니 몸도 제법 무거워졌다. 하지만 여기까지 걸어왔으니 집까지도 내 두 발로 돌아가야 한다.

애초에 어디까지 걷겠다고 정하지 않았으니, 돌아가는 길도 오늘 걷기의 일부다.

그렇게 집으로 향했다.

최종거리 30.6km.

지난번 대전도시철도 1호선 48km 걷기보다는 짧았지만, 이번에도 만만치 않은 거리였다.

무엇보다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걸었다는 점에서 지난번과는 또 다른 하루였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면서 갑천누리길에 얽힌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9. 8년 전 걸었던 길, 그리고 다음 걸음

2018년 10월.

그때도 갑천누리길을 걸었다.

갑천누리길은 모두 세 개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1코스는 엑스포다리에서 가수원교까지 이어지는 약 10.3km의 도심 속 갑천길이다. 2코스는 약 16.6km, 3코스는 약 13.0km로, 세 코스를 합하면 약 40km에 이른다.

2018년 10월에는 이 길을 두 차례로 나눠 걸었다.

먼저 1코스를 걸었다. 그런데 가수원교에서 걷기를 끝낸 것이 아니라 집까지 그대로 걸어 돌아왔다.

그렇게 걸은 거리가 20km였다.

다음에는 2코스와 3코스를 한 번에 이어 걸었다. 두 코스를 합하면 약 30km. 그렇게 두 차례에 걸쳐 갑천누리길 세 코스를 모두 완주했다.

벌써 8년 전 일이다.

이번에는 비 내리는 갑천을 따라 1코스를 다시 걸은 셈이다. 물론 국화축제도 구경하고 코스모스 꽃밭도 둘러본 뒤, 가수원교에서 건양대학교병원 쪽으로 방향을 바꿔 소태봉과 옥녀봉, 목원대학교를 거쳐 집으로 돌아왔으니 전체거리는 30.6km가 됐다.

그러고 보니 나머지 2코스와 3코스도 다시 걸어보고 싶어졌다.

다음 주쯤 두 코스를 한 번에 다시 걸어볼까.

2018년에 걸었던 길이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그때 보았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새롭게 바뀐 곳도 있을 것이다.

8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도 같지는 않을 테고.

이번에는 그냥 걷고 싶어 길을 나섰다가 국화축제와 전통민속놀이 행사를 만났다. 엿새 전 친구와 함께 보았던 코스모스를 다시 보았고, 비 내리는 갑천을 따라 걷다 보니 8년 전의 기억까지 떠올랐다.

그러고는 또다시 걸어보고 싶은 길이 생겼다.

2018년 10월에 걸었던 그 길을, 2026년 가을에 다시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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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한 열네 번의 인생 수업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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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속에 만난 동네 친구

— 비에 젖은 대전의 어느 일요일(’26.10.18.), 세월이 흘러도 이어지는 관계와 만남의 소중함

1. 대전에 오는 동네 친구

오랜만에 고향 동네 친구가 대전에 놀러 온다고 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다. 같은 동네에서 자랐으니 알고 지낸 세월만 해도 반세기에 가깝다. 그런데 이 친구는 나뿐 아니라 아내와도 인연이 있다. 아내에게도 중학교 동창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일요일에 온다고 하자 아내가 토요일에 오라고 했다. 일요일에는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는 일기예보에 비가 저녁부터 온다고 했다며 부득불 일요일에 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일요일로 약속이 정해졌다.

모처럼 찾아오는 친구를 어디로 데리고 갈까 고민했다. 하필 날씨가 좋지 않으니 야외 나들이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대전에 왔으니 이것저것 구경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쯤에서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해야겠다.

이 친구에게는 우리 부부와 관련된 특별한 이력이 있다.

바로 우리 부부의 중신애미라는 사실이다.

그렇다. 나와 아내를 맺어준 사람이 바로 이 친구다. ㅋㅋ

2. 하늘거리지 않는 코스모스

친구를 만나 먼저 갑천변 코스모스 꽃밭으로 향했다.

분홍색과 흰색 코스모스가 넓은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꽃밭 너머로는 엑스포다리가 보였다. 잿빛 하늘 아래 펼쳐진 코스모스는 제법 아름다웠다.

그런데 꽃밭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코스모스가 너무 작았다.

내가 기억하는 코스모스는 저렇지 않았다. 사람 허리춤을 훌쩍 넘기는 가느다란 줄기 끝에 꽃을 매달고, 가을바람이 불면 하늘하늘 흔들리던 꽃이었다.

바람이 세게 불면 쓰러질 듯 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섰다. 꽃잎이 예쁜 것도 좋았지만, 코스모스는 그렇게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더 좋았다.

요즘은 키가 작은 왜성 품종을 많이 심어서인지 예전처럼 훤칠한 코스모스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꽃은 촘촘하고 화려하지만 하늘거리는 맛이 없다. 꽃밭은 풍성해졌는데 운치는 오히려 줄어든 것 같다.

어린 시절 고향의 가을 풍경이 떠올랐다.

그때는 길가에도 코스모스가 흔했다. 누가 심었는지도 모르는 꽃들이 가을이면 피어났고, 가느다란 줄기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특별히 가꾸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그 시절 우리는 그런 풍경 속에서 자랐다.

같은 동네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이제는 쉰 살을 훌쩍 넘겼다. 그때는 매일 마주치던 얼굴들이었는데, 이제는 서로 다른 곳에서 살면서 이렇게 날을 잡아야 만날 수 있다.

코스모스 구경을 마치고 꿈돌이와 꿈순이도 만나러 갔다.

대전의 마스코트인 꿈돌이와 꿈순이를 보니 1993년 대전엑스포가 생각났다. 그때 우리 나이 스무 살 무렵이었다. 어느덧 30년이 훌쩍 지났으니 꿈돌이도 우리와 함께 세월을 먹은 셈이다.

우산을 쓰고 사진도 찍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날씨가 영 고약했다.

3. 비 맞은 개꼬라지

일기예보에는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했지만, 비는 저녁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것도 적당히 내리는 비가 아니었다. 대차게 쏟아졌다.

우산을 받쳐 들어 머리와 윗몸은 어느 정도 비를 피했지만, 바짓가랑이와 신발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빗물이 튀고 바닥에 고인 물을 밟을 때마다 바짓단이 젖어 들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길도 온통 구적구적했다.

그래도 이왕 나온 김에 구경은 계속했다.

마침 엑스포과학공원 일대에서 대전 빵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비가 그렇게 쏟아지는데도 행사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산을 든 사람들이 천막 사이를 오가며 빵을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 틈에 섞여 돌아다녔다.

대전의 빵축제라면 역시 성심당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성심당 부스에 가보니 줄이 드럽게 길었다.

비까지 맞아가며 그 긴 줄에 서 있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빵이 아무리 맛있어도 그렇지, 신발까지 젖어 가며 기다릴 일은 아니었다.

결국 축제장 성심당 부스의 긴 줄은 포기했다. 대신 그 근처에 있는 성심당 DCC점 튀소정거장으로 향했다.

친구는 그곳에서 빵을 한 보따리 샀다. 우리야 대전에 사니 언제든 사 먹을 수 있지만, 멀리서 찾아온 친구는 기왕 온 김에 넉넉히 사 가고 싶었을 것이다.

친구가 산 빵은 내가 대신 들었다. 한 손에 빵 봉지를 잔뜩 들고 젖은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사진에도 남았다.

그동안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신발 속까지 물이 들어왔다. 아내도 친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셋 다 비 맞은 개꼬라지가 되었다. ㅋㅋ

토요일에 오라고 했던 아내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겠는가.

4. 비에 젖어도 즐거운 하루

몸은 고단했지만 참 재미있었다.

어릴 적에는 친구를 만나는 일이 특별하지 않았다. 같은 동네에 살았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 시간을 맞추고 먼 길을 오가야 한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어도 만나면 반갑고 편안하다. 오랜 친구 앞에서는 굳이 지난 시간을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서로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그날 찍은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비에 젖은 풍경도,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던 모습도 사진 속에 남아 있었다.

다음에는 날씨가 좋은 날 다시 만나면 좋겠다.

하지만 이번처럼 궂은 날씨에 고생한 하루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어쨌든, 비는 실컷 맞았어도 친구는 참 잘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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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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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田都市鐵道 一號線 驛舍 따라 걷기

죽어서야 누울 것이니, 살아 있으니 걸어라. (死臥生步)

— 스물두 역을 걷다 —

2026년 10월 10일, 토요일

ㅇ 걷기 코스: 유성온천역 → 반석역 → 시청역 → 대전역 → 판암역 → 대전역 → 시청역 → 유성온천역

(儒城溫泉 → 九岩 → 顯忠院 → 世界杯競技場 → 老隱 → 智足 → 盤石 → 智足 → 老隱 → 世界杯競技場 → 顯忠院 → 九岩 → 儒城溫泉 → 甲川 → 月坪 → 葛馬 → 政府廳舍 → 市廳 → 炭坊 → 龍汶 → 五龍 → 西大田四街 → 中區廳 → 中央路 → 大田 → 大洞 → 新興 → 板岩 → 新興 → 大洞 → 大田 → 中央路 → 中區廳 → 西大田四街 → 五龍 → 龍汶 → 炭坊 → 市廳 → 政府廳舍 → 葛馬 → 月坪 → 甲川 → 儒城溫泉)

ㅇ 걷기 기록

- 출발시간: 오전 6시 37분
- 총거리: 48.0km
- 소요시간: 9시간 39분 4초
- 이동시간: 8시간 54분 29초
- 휴식시간: 44분 35초
- 평균속도: 5.1km/h
- 총 획득고도: 904m
- 최고점: 해발 13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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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 걷고, 다시 책을 읽기로 했다

미국 여행을 다녀온 지도 며칠이 지났다.

이번 미국 여행에서는 참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이동한 거리만 놓고 보면 어마어마했지만, 정작 내 두 발로 걸은 거리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었던 탓이다.

여행을 다녀오느라 한동안 책도 제대로 읽지 못했고, 평소 즐기던 걷기 운동도 소홀해졌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으니 운동도 시작하고, 밀렸던 책도 펼쳐야겠다. 기왕이면 체중도 조금 줄였으면 좋겠고.

그런 생각으로 이번 주말에는 좀 길게 걸어보기로 했다.

어디를 걸을까. 산에 오를 수도 있고, 갑천을 따라 걸을 수도 있다. 그러다 문득 대전도시철도 1호선이 떠올랐다.

늘 익숙하게 지나치는 지하철역들을 지상에서 하나하나 찾아가며 걸어보면 어떨까.

유성온천역에서 출발해 북쪽 종점인 반석역을 찍고, 다시 동쪽 종점인 판암역까지 내려간 다음 처음 출발했던 유성온천역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이렇게 하면 대전도시철도 1호선의 스물두 역을 모두 찾아가게 된다.

지하철을 타면 어렵지 않을 길이지만 지상에서 걸으려면 제법 긴 거리가 될 것이다. 대략 50km 가까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오늘의 걷기 코스를 정했다.

2. 고요한 아침, 반석을 찍고 돌아오다

오전 6시 37분, 유성온천역 4번 출구.

오늘 걷기의 출발점이다.

유성온천역에서 반석역까지는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구암, 현충원, 월드컵경기장, 노은, 지족을 지나 반석에 이른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선 탓인지 거리는 조용했다. 평소 차량과 사람들로 분주한 도심이지만 이른 아침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한산한 거리를 따라 걷는 기분이 좋았다.

지족역에서는 뜻밖의 일이 생겼다.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진 것이다. 다행히 지하철역이 있으니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장거리 걷기에서 지하철역은 이럴 때도 요긴하다.

그렇게 첫 번째 종점인 반석역을 찍었다.

이제 방향을 바꿔 대전의 동쪽 끝, 판암역으로 향한다. 반석에서 되돌아오는 길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한가로운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같은 길을 되짚어 걷지만 풍경은 달라 보인다. 진행 방향이 달라지면 거리의 표정도 달라지는 법이다.

정부청사 일대에 이르렀을 무렵, 걸음 기록은 17.3km를 가리켰다. 경과시간은 3시간 10분. 지족역에서 화장실에 들렀던 시간까지 포함해서다.

잠시 녹지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파란 하늘 아래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소나무와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멀리 정부청사 건물들이 보였다. 마님이 싸준 사과를 꺼내 먹으며 잠시 쉬었다.

아침부터 걸었으니 사과 한 조각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평소 집에서 먹던 사과와 다를 게 없겠지만, 오래 걸은 뒤에 먹으니 맛이 한결 좋았다.

사과를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아침의 고요함도 어느새 지나가고, 대전의 중심부로 들어설수록 거리에는 차량과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전 11시 30분, 대전역 통과. 누적거리 27.0km.

대전역 앞 세븐일레븐 편의점에 들렀다. 게토레이를 사려고 보니 마침 2+1 행사를 하고 있었다. 한 병을 사느니 세 병을 사는 게 낫겠다 싶어 세 병을 구입했다.

그 자리에서 한 병을 마시고 나머지는 챙겼다. 아침부터 사과만 먹으며 걸어왔으니 수분과 당분을 보충할 때도 됐다.

다시 길을 나서 대동역과 신흥역을 지나니 마침내 판암역이 나타났다.

누적거리 30.6km.

두 번째 종점이다. 유성온천에서 반석을 거쳐 판암까지 왔으니 대전도시철도 1호선의 양쪽 끝을 모두 밟았다.

이제 처음 출발했던 유성온천역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3. 판암에서 돌아서다, 그리고 사와생보

판암역 역사 안에는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테이블이 있었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게토레이 한 병과 마님이 싸준 사과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뒤 잠시 휴식을 취했다.

30km가 넘도록 걸었으니 몸이 피곤할 법도 한데 아직은 걸을 만했다. 그렇다고 힘이 남아도는 것은 아니다. 장거리 걷기에서 중요한 것은 순간의 속도보다 자기 걸음을 유지하는 일이다.

오늘 걸으면서 ‘와사보생(臥死步生)’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뜻이다. 걷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지만, 나는 이 네 글자의 순서를 바꾸고 싶었다.

사와생보(死臥生步).

죽어서야 누울 것이니, 살아 있으니 걸어라.

비슷한 말처럼 보이지만 내가 담고 싶은 뜻은 조금 다르다.

와사보생이 건강을 위해 걸으라는 말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사와생보는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걸어야 할 이유라는 뜻이다.

언젠가는 누구나 영원히 누울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두 다리의 움직임도 세월이 흐르면 예전 같지 않을 수 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고, 보고 싶은 것이 있어도 쉽게 찾아갈 수 없는 날이 올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날을 미리 걱정하며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미뤄둘 이유는 없다.

내가 해외여행을 자주 떠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올해 터키와 미국은 네 식구가 함께했고, 일본은 아내와 두 차례 다녀왔다. 먼 나라에서 낯선 풍경을 만나는 일이나, 익숙한 도시를 천천히 걸으며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나 내게는 같은 즐거움이다.

책을 통해 세상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직접 그 땅을 밟고 사람들을 만나며 눈앞의 모습을 바라보는 경험은 또 다르다.

걸을 수 있을 때 걷고, 떠날 수 있을 때 떠나고, 읽을 수 있을 때 읽는 것.

내가 생각하는 사와생보는 그런 삶의 자세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신흥역과 대동역을 거쳐 대전역으로 돌아왔다. 같은 대전역을 오늘 두 번 지나간 셈이다.

4. 성심당의 긴 줄, 그리고 추억의 코다리냉면

중앙로역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뜻밖의 구경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성심당 케익부띠끄 앞이었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끝나는 곳을 찾기도 쉽지 않았고, 햇볕을 피하려고 양산을 들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니, 빵이 뭐라고 저렇게까지 줄을 선단 말인가.

물론 저 사람들에게는 성심당 빵을 사는 일이 대전 여행의 중요한 목적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마찬가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지하철역 스물두 개를 찾아다니며 50km 가까이 걷겠다고 나섰으니, 다른 사람이 나를 보면 똑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누군가는 도시를 걸어서 돌아본다. 즐거움을 찾는 방법이 서로 다를 뿐이다.

그렇게 혼자 웃으며 중앙로역을 지나 중구청역에 도착했다.

이제는 제대로 식사를 해야겠다. 아침부터 사과와 게토레이로 버텼으니 점심 한 끼는 든든하게 먹어도 될 것 같았다.

중구청역을 지나 속초 코다리냉면 식당에 들어갔다.

이곳은 내게 낯선 식당이 아니다. 예전에 문화동에 살 때 자주 들르던 냉면집으로, 지역에서는 제법 유명한 곳이다. 여름이면 어느 냉면집이나 손님이 많겠지만, 이곳은 특히 붐비던 기억이 있다.

오랜만에 다시 찾으니 반가웠다.

메뉴판을 보니 코다리냉면이 13,000원, 동태전이 15,000원이었다. 코다리냉면 한 그릇에 동태전 한 접시를 주문했다.

혼자 먹기에 적지 않은 양이지만 오늘 걸은 거리를 생각하면 그 정도는 먹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먼저 나온 동태전은 큼지막하고 노릇노릇했다. 간장 양념에 찍어 먹으니 제법 맛있었다.

이어서 코다리냉면이 나왔다. 커다란 그릇에 면이 담기고, 그 위에는 붉게 양념한 코다리와 오이, 배, 삶은 달걀이 올라가 있었다. 보기에는 무척 매워 보였지만 생각보다 맵지 않았고, 맛도 좋았다.

다만 욕심껏 주문한 동태전은 양이 너무 많았다. 배가 불러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어 결국 절반 정도는 포장했다.

아침에는 살을 빼야 한다며 사과와 게토레이로 버텼는데, 점심에는 코다리냉면에 동태전까지 시켜 먹고 남은 음식을 싸 들고 나서는 신세가 됐다.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걸음을 이어갔다. 서대전네거리역과 오룡역을 지날 무렵에는 슬슬 몸이 대근해졌다.

특별히 어느 한 곳이 아픈 것은 아니었다. 그냥 전반적으로 피로가 쌓인 느낌이었다. 아침부터 38km가 넘는 거리를 걸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5. 40km를 넘어서 만난 또 하나의 성심당

용문역에 도착하니 마침내 누적거리 40km를 넘어섰다.

40.3km.

용문역 부근 롯데백화점 대전점 앞에서는 또다시 긴 행렬을 만났다. 이번에도 성심당이었다.

중앙로에서만 사람이 많은 줄 알았더니 이곳도 만만치 않았다. 백화점 건물 앞 경사로를 따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도로 사정도 비슷했다. 백화점으로 들어가려는 차량들 때문에 주변 교차로가 복잡해졌고, 경찰관들이 나와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인도에서는 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도로에서는 백화점에 들어가려는 차량들이 기다린다.

대전의 토요일 오후가 참 부산스럽다.

걸어서 지나가는 내게는 그 혼잡마저 구경거리였지만, 차를 몰고 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는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닐 것이다.

성심당이라는 빵집 하나가 사람과 차량의 흐름까지 바꿔놓는 광경이 새삼 놀라웠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탄방역에 도착했다.

6. 바르게 살자, 그리고 가을 축제

시청역으로 향하던 중 커다란 돌 표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르게 살자’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

대전광역시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에서 세운 표석이었다.

거창한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당연한 말도 돌에 새겨놓고 마주하니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바르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게는 오늘처럼 걷고, 보고,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도 내가 바라는 삶의 한 모습이다.

그렇게 시청역에 도착했다.

인근 보라매공원에서는 축제가 한창이었다.

제10회 대전 서구 아트페스티벌.

가을볕이 참 좋은 날이었다.

나무들은 아직 푸른빛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지만 군데군데 노랗고 붉은 잎들이 섞이기 시작했다. 공원 산책로에는 국화 화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길 양옆으로는 하얀 행사 천막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전시와 체험행사를 구경하는 사람들, 가족과 함께 나온 시민들, 그늘에 앉아 쉬는 사람들까지 공원은 제법 활기가 넘쳤다.

잔디광장에는 무대가 설치돼 있었고, 객석에는 수많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는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을 풍경은 참 좋았지만 노랫소리는 내 귀에 영 거슬렸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내게는 차라리 조용한 가을 산책로가 더 좋겠다 싶었다.

조금 더 걸으니 행사 부스들이 길게 이어졌고,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가을볕이 길가의 국화꽃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멀리 여행을 떠나야만 좋은 풍경을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늘 생활하는 도시에서도 계절은 바뀌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를 즐기고 있었다. 자동차나 지하철을 타고 지나갔다면 이런 장면들을 얼마나 자세히 보았을까.

걷는 동안에는 거리의 모습이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는다. 때로는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때로는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오늘 ‘역사 따라 걷기’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도 바로 이런 데 있을 것이다.

7.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오다

정부청사역을 다시 지날 때는 누적거리가 43.7km에 이르렀다.

아침에 마님이 싸준 사과를 먹으며 쉬었던 곳이 가까워졌다. 그때는 아직 17.3km를 걸었을 때였는데, 어느새 43km를 넘겼다.

같은 장소라도 아침과 오후의 느낌은 달랐다. 조용했던 아침 거리를 걸어 반석에 다녀온 일이 벌써 오래전의 일처럼 느껴졌다.

이어서 갈마역에 도착했다.

주변 가로수들이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햇살을 받은 나뭇잎들이 반짝였다. 오늘 찍은 수많은 역사 사진 중에서도 갈마역의 가을 풍경은 유난히 보기 좋았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월평역을 지나 갑천역에 이르렀다. 남은 역은 유성온천역 하나뿐이다.

아침부터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니 참 멀리도 돌아왔다. 유성온천에서 반석까지 올라갔다가 판암까지 내려왔고, 다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차를 타고 움직였다면 그저 몇 차례의 이동으로 끝났을 길이지만, 걸어서 지나온 거리에는 중간중간 쉬었던 자리와 길에서 만난 사람들, 눈에 들어왔던 장면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유성온천역이 나타났다.

먼저 1번 출구를 지나면서 누적거리가 47.9km를 가리켰다. 이제 아침에 출발했던 4번 출구로 돌아갈 차례다.

유성온천역 4번 출구.

아침에 걸음을 시작했던 바로 그 자리다.

다시 돌아와 역 표지판을 사진으로 남겼다.

최종 누적거리 48.0km.

오늘 계획했던 대전도시철도 1호선 역사 따라 걷기가 끝났다. 반석역과 판암역을 모두 찍고 스물두 역을 따라 걸어 처음 출발한 자리로 되돌아왔다.

아침에 이곳을 떠날 때는 그저 오래 걸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밀린 책도 읽으며 일상의 리듬을 되찾겠다는 다짐이 출발의 이유였다.

하지만 하루를 걷고 돌아오니 거리의 숫자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마님이 싸준 사과, 지족역에서의 급한 화장실, 게토레이 2+1 행사, 예전에 자주 다니던 냉면집과 남아서 포장한 동태전. 성심당 앞의 긴 줄과 롯데백화점 주변의 혼잡, 보라매공원에서 만난 가을 풍경까지.

빵을 사려고 긴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웃었던 나도, 누가 시키지 않은 48km를 걸었다. 남 웃을 처지가 아니었다.

아침에 출발했던 자리로 다시 돌아왔지만, 그 길에서 보고 느낀 것들까지 출발할 때와 같지는 않았다.

역사 따라 걷기는 여기서 끝났지만 집까지는 조금 더 걸어야 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고 보니 하루 동안 걸은 거리는 어느새 51km가 되어 있었다.

미국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운동하고 책을 읽겠다고 마음먹었던 주말. 이제 밀린 책도 다시 펼치고, 기회가 닿으면 또 길을 나설 것이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도 많고, 읽지 못한 책도 많다.

언젠가는 마음이 있어도 떠나지 못할 날이 올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죽어서야 누울 것이니, 살아 있으니 걸어라.

死臥生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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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10-12 2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창 많이 걸을 떄는 하루 7~8km씩 주 5~6일을 걸은 기억이 나는데 하루 40km는 정말 엄두가 나질 않네요.걷고나서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대장정 2026-10-13 05:11   좋아요 0 | URL
네~~아직은 젊은지라 괜찮습니다. 일요일, 월요일에도 각각 2만보이상 걸었네요. 대략 15km이상 될듯 합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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