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도 아닌 은행업에 종사하던 평범한 메디치가는 어떻게 피렌체를 넘어 유럽의 유력 가문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 시작은메디치가에서 교황을 배출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이때부터 프랑스 왕실과 사돈을 맺으며 외연을 확장했고, 마침내 대관식을 통해 토스카나지방의 군주로까지 지위가 격상되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가문에서의 교황 배출은 위대한 자 로렌초의 집념과 장기적인 계획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P100
그가 생각할 때 그것은 종교의 권력이었다. 추기경을 넘어교황을 배출한다면, 메디치가의 영속을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장기적 목표를 세우고 기초작업에 들어갔다. - P101
추방당해 외로운 방랑길에 올랐다. 메디치가는 역사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메디치가는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피렌체를 떠난 지 무려 18년 만에 다시 금의환향했다. 이듬해에는 로렌초의 소원대로 차남 조반니가 마침내 레오 10세 교황에 등극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 P101
유럽에 유력 가문은 많다. 그러나 메디치가처럼 인류의 발전에 공헌한 가문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들로 인해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메디치가는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업적은 불후의 명성을 얻어 현재까지도 피렌체에 살아 숨을 쉰다. - P103
코시모 1세 유럽의 왕들과 어깨를 겨루다 - P104
시뇨리아 광장에 놓인 기마상의 주인공은 피렌체 최초의군주였던 코시모 1세 데 메디치 Cosimo I de Medici, 재위 1569~1574 이다. 그토록 자유를 외쳤던 피렌체 시민들이 왜 광장의 한쪽에 공화국과 대척점에 있는 군주국의 상징인 기마상을 설치하게 되었을까. - P104
코시모 통치 시기 피렌체는 위대한 자 로렌초 시기의 두 배나 되는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고, 쇠락했던 상공업이 다시 활력을 얻으면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다. 오늘날 토스카나 지방의 아름답고 전원적인 풍경을 만든 올리브 나무의 향연도 당시 농업 육성 사업의 결과이며,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우피치 미술관도 이때 건설되었다. 이밖에 해군을 육성하여 해적을 소탕하고 대외무역을 안정시켰던 점 또한눈여겨볼 만하다. - P106
1570년 로마에서 교황에게 왕관을 받기에 이른다. 마침내 피렌체는 코시모가 그토록 염원했던 프랑스나 나폴리 왕국과 동급인 ‘토스카나 대공국‘으로 격상되었고, 메디치가는 유럽의 왕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향후 170 년간의 역사를 더 이어간다. - P107
코시모 1세는 엄혹한 전제정치로 과오도 많이 남겼지만, 피렌체 시민들은 피렌체를 다시 부흥시킨 그를 환호했다. 오늘날 시뇨리아 광장에서 있는 그의 기마상은 비록 시민들의 자유를 제약했지만, 피렌체의 위상을 다시 한번 유럽에 드높인 공로는 인정한다는 의미처럼 보이기도한다. - P107
브루넬레스키 돔,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꽃봉오리 - P108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두오모Duoma‘라는 말을 자주듣는다. 얼핏 건물의 천장을 덮는 구 형태의 돔을 생각하기 쉽지만, 주교좌가 있는 ‘대성당‘이라는 뜻으로 라틴어 도무스Domus에서 유래되었다. 기독교 박해 시기 기독교인들은 당국의 눈을 피해 로마의 전통가옥인도무스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시간이 흘러 기독교 시대가 되면서 도무스는 신의 거처, 즉 대성당의 뜻을 가진 두오모로 발전한다. - P108
산타마리아 대성당에 있는 필리포의 묘비명에서 건축가라는 단어는찾을 수 없다. - P112
"피렌체의 위대한 천재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여기 잠들다." - P112
돔 아래에는 건축가를 넘어 새로운 예술의 경지를 이뤄냈던 천재만이잠들어 있는 것이다. - P112
항상 경계를 넘는 사람들이 있다. 돈이 이들에게 유일한목적은 아니다. 이들은 호기심이라는 횃불을 들고 인간의 손길이 한 번도 닿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16세기이후 유럽 곳곳에서 등장한 모험가들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던 짙은 안개를 걷어버리자 전혀 다른 세상에 살아왔던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었다. - P113
^ 콜럼버스 무덤(세비야), 콜럼버스의 유언에 따라 그는 신대륙에 묻혔으나 스페인 식민지가 독립하자후손들은 유해를 스페인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대항해시대 주요 역할을 했던 도시인 세비야의 대성당에 안장했다. - P114
당시 사람들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이론상으로만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직접 증명해볼 엄두를 못 냈다. 정교한 천문관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항해술 없이 연안을 벗어나 대양으로 항해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중 경계를 넘어 신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곳을 엿보기 시작한 야심 넘치는 모험가들이 등장했다. - P115
피렌체 출신의 지도학자 겸 항해사였던 아메리고 베스푸치 Amerigo Ves-pucci, 1454~1512는 4번의 대서양 항해 끝에 콜럼버스가 인도라고 주장한곳은 유럽인에게 전인미답의 신대륙이었음을 밝혀냈다. - P115
스페인 출신의 탐험가 발보아는 1513년 9월,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파나마 지협 횡단에 성공해 태평양을 본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이로써 인류는 대서양 이외에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알게 되었다. 이후 포르투갈의 탐험가 마젤란이 이끈 선단은 대서양을건너 남미를 돌아 태평양을 횡단해 유럽으로 복귀함으로써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던 대륙들이모험가들에 의해 서로 연결되자 진정한 세계사가 시작되었다. - P116
일반 사람들은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만하고 끝낸다. 한편, 어떤 이들은 호기심과 열정을 참지 못하고 저 너머에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선을 넘어선다. 새로운 지식의 유입으로 촉발된 르네상스시대를 맞아, 이때 등장한 다양한 분야에서 경계를 밥 먹듯 드나드는 이들로 인해 세상은 진보했다. 르네상스 시대는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비워야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시대이기도했다. - P116
"인간은 자유롭다. 그러나 스스로를 믿지 않을 때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인간이 주어진 운명의 길을 잠자코 좇아가기만 한다면, 신이 인간에게 ‘이성‘을 허락하면서 부여한 힘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불멸의 유혹 카사노바 자서전』, 자코모 카사노바 - P121
야만족의 침입,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 P123
전 세계 곳곳에서 베네치아와 비슷한 물의 도시나 마을혹은 섬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베네치아가 걸어온 장구한 역사와 도시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석호 한가운데에 흩뿌려진150개의 섬이 410개의 다리로 연결되고, 그 안팎을 180개의 크고 작은운하가 혈관처럼 사통팔달로 뻗어 나가자 비로소 살아 숨 쉬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탄생했다. - P123
자유를 찾아 바다로간 사람들에 의해 베네치아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 P125
인생을 운명에만 맡기지 않고 스스로 행동하여 기회를 만들었다. 또한, 강한 의지를 가진 인간은 지옥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믿었다. 저승에 갔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 아이네아스도 그들의 선조라는것을 그들은 잊지 않았다. - P126
포효하는 사자, 개펄에서 피어난 희망이란 꽃 - P127
베네치아를 여행할 때 자주 마주치는 동물이 있다. 한 손에 성경을 들고 있는 날개 달린 사자다. 선박의 깃발, 성당의 벽면, 광장의 높은 기둥 위에서 사자는 당연한 듯 당당한 포즈를 취한다. 세계 3대예술 영화제로 유명한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의 최고상도 황금사자상이다. 날개 달린 사자가 베네치아의 상징이 된 연유를 알게 된다면 길에서만나는 사자가 더욱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 P127
V 리알토 다리, 대운하를 연결하는 네 개의 다리 중 가장 오래되었다. 산마르코 지구와 산폴로 지구를 연결한다. - P128
"나를 죽일 수 없는고통은 나를 더욱더 강하게 만든다" 라고 했던 니체의 말처럼, 고난을 이거내는 과정에서 그들 내면에 잠들어 있던 상인의 기질을 발견하게 된것이다. 상인은 인종과 종교를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이익이 된다면 지옥까지 가서라도 거래를 할 자신이 있었다. - P129
첨예한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치 국면에서도 베네치아는 유럽보다 발전된 문명을 가진 이슬람 세계와 거래를 이어갔다. 그들에게 삶이란 교황의 협박과 파문으로도 막을 수 없는 소중한 가지였기 때문이다. - P130
날개 달린 사자는 마가 성인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마가 성인의 유해는 산마르코 대성당에 안치되었고, 대신 상징물인 날개 달린 사자가 도시 곳곳에 배치되어 도시를 수호한다. 포효하는 용맹스러운 사자처럼, 베네치아는 아드리아해를 넘어 지중해 전역으로 세력을 뻗쳐나갔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었던 개펄에서 희망이라는 꽃을 피워 냈다. - P130
네 마리 청동 말, 아드리아해를 넘어 지중해로 나아가다 - P131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에는 당시 비잔티움 제국을처음 봤던 십자군의 놀라움이 잘 나타난다. "도시의 엄청난 길이와 너비, 병사들은 이 세상에 그렇듯 부유하고 웅장한 곳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전율하지 않을 만큼 대담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며, 또한 천지가 창조한 이래 그처럼 대단한 광경은 없었다". - P133
베네치아의 사자가 그들의 정체성이라면 네 마리 청동 말은 그들이바다를 통해 꿈꾸었던 이상이었다. 산마르코 광장을 굽어보는 청동 말은여전히 사람들에게 베네치아 과거의 영광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언제든 바다로 달려나갈 준비를 한다. - P135
자유와 축제는 한 단어처럼 느껴진다. 자유가 있는 곳에서만 누구나즐길 수 있는 축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에 자유가 숨 쉬는 한축제는 늘 진행될 것이다. - P143
카니발, 가면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P139
두칼레 궁전, 진취적 기상과 자유를 담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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