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이 만들어낸
메디치가 교황 - P100

귀족도 아닌 은행업에 종사하던 평범한 메디치가는 어떻게 피렌체를 넘어 유럽의 유력 가문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 시작은메디치가에서 교황을 배출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이때부터 프랑스 왕실과 사돈을 맺으며 외연을 확장했고, 마침내 대관식을 통해 토스카나지방의 군주로까지 지위가 격상되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가문에서의 교황 배출은 위대한 자 로렌초의 집념과 장기적인 계획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P100

그가 생각할 때 그것은 종교의 권력이었다. 추기경을 넘어교황을 배출한다면, 메디치가의 영속을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장기적 목표를 세우고 기초작업에 들어갔다. - P101

추방당해 외로운 방랑길에 올랐다. 메디치가는 역사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메디치가는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피렌체를 떠난 지 무려 18년 만에 다시 금의환향했다. 이듬해에는 로렌초의 소원대로 차남 조반니가 마침내 레오 10세 교황에 등극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 P101

유럽에 유력 가문은 많다. 그러나 메디치가처럼 인류의 발전에 공헌한 가문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들로 인해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메디치가는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업적은 불후의 명성을 얻어 현재까지도 피렌체에 살아 숨을 쉰다. - P103

코시모 1세
유럽의 왕들과 어깨를 겨루다 - P104

시뇨리아 광장에 놓인 기마상의 주인공은 피렌체 최초의군주였던 코시모 1세 데 메디치 Cosimo I de Medici, 재위 1569~1574 이다. 그토록 자유를 외쳤던 피렌체 시민들이 왜 광장의 한쪽에 공화국과 대척점에 있는 군주국의 상징인 기마상을 설치하게 되었을까. - P104

코시모 통치 시기 피렌체는 위대한 자 로렌초 시기의 두 배나 되는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고, 쇠락했던 상공업이 다시 활력을 얻으면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다. 오늘날 토스카나 지방의 아름답고 전원적인 풍경을 만든 올리브 나무의 향연도 당시 농업 육성 사업의 결과이며,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우피치 미술관도 이때 건설되었다. 이밖에 해군을 육성하여 해적을 소탕하고 대외무역을 안정시켰던 점 또한눈여겨볼 만하다. - P106

1570년 로마에서 교황에게 왕관을 받기에 이른다. 마침내 피렌체는 코시모가 그토록 염원했던 프랑스나 나폴리 왕국과 동급인 ‘토스카나 대공국‘으로 격상되었고, 메디치가는 유럽의 왕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향후 170 년간의 역사를 더 이어간다.
- P107

코시모 1세는 엄혹한 전제정치로 과오도 많이 남겼지만, 피렌체 시민들은 피렌체를 다시 부흥시킨 그를 환호했다. 오늘날 시뇨리아 광장에서 있는 그의 기마상은 비록 시민들의 자유를 제약했지만, 피렌체의 위상을 다시 한번 유럽에 드높인 공로는 인정한다는 의미처럼 보이기도한다. - P107

브루넬레스키 돔,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꽃봉오리
- P108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두오모Duoma‘라는 말을 자주듣는다. 얼핏 건물의 천장을 덮는 구 형태의 돔을 생각하기 쉽지만, 주교좌가 있는 ‘대성당‘이라는 뜻으로 라틴어 도무스Domus에서 유래되었다.
기독교 박해 시기 기독교인들은 당국의 눈을 피해 로마의 전통가옥인도무스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시간이 흘러 기독교 시대가 되면서 도무스는 신의 거처, 즉 대성당의 뜻을 가진 두오모로 발전한다. - P108

산타마리아 대성당에 있는 필리포의 묘비명에서 건축가라는 단어는찾을 수 없다.
- P112

"피렌체의 위대한 천재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여기 잠들다." - P112

돔 아래에는 건축가를 넘어 새로운 예술의 경지를 이뤄냈던 천재만이잠들어 있는 것이다. - P112

모험가들,
세상의 대륙을 잇다
- P113

항상 경계를 넘는 사람들이 있다. 돈이 이들에게 유일한목적은 아니다. 이들은 호기심이라는 횃불을 들고 인간의 손길이 한 번도 닿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16세기이후 유럽 곳곳에서 등장한 모험가들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던 짙은 안개를 걷어버리자 전혀 다른 세상에 살아왔던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었다. - P113

^ 콜럼버스 무덤(세비야), 콜럼버스의 유언에 따라 그는 신대륙에 묻혔으나 스페인 식민지가 독립하자후손들은 유해를 스페인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대항해시대 주요 역할을 했던 도시인 세비야의 대성당에 안장했다. - P114

당시 사람들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이론상으로만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직접 증명해볼 엄두를 못 냈다. 정교한 천문관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항해술 없이 연안을 벗어나 대양으로 항해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중 경계를 넘어 신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곳을 엿보기 시작한 야심 넘치는 모험가들이 등장했다. - P115

피렌체 출신의 지도학자 겸 항해사였던 아메리고 베스푸치 Amerigo Ves-pucci, 1454~1512는  4번의 대서양 항해 끝에 콜럼버스가 인도라고 주장한곳은 유럽인에게 전인미답의 신대륙이었음을 밝혀냈다. - P115

스페인 출신의 탐험가 발보아는 1513년 9월,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파나마 지협 횡단에 성공해 태평양을 본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이로써 인류는 대서양 이외에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알게 되었다. 이후 포르투갈의 탐험가 마젤란이 이끈 선단은 대서양을건너 남미를 돌아 태평양을 횡단해 유럽으로 복귀함으로써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던 대륙들이모험가들에 의해 서로 연결되자 진정한 세계사가 시작되었다.
- P116

일반 사람들은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만하고 끝낸다.
한편, 어떤 이들은 호기심과 열정을 참지 못하고 저 너머에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선을 넘어선다. 새로운 지식의 유입으로 촉발된 르네상스시대를 맞아, 이때 등장한 다양한 분야에서 경계를 밥 먹듯 드나드는 이들로 인해 세상은 진보했다. 르네상스 시대는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비워야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시대이기도했다. - P116

세 번째길
베네치아, 자유의 길 - P119

"인간은 자유롭다.
그러나 스스로를 믿지 않을 때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인간이 주어진 운명의 길을 잠자코 좇아가기만 한다면,
신이 인간에게 ‘이성‘을 허락하면서 부여한 힘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불멸의 유혹 카사노바 자서전』, 자코모 카사노바 - P121

야만족의 침입,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 P123

전 세계 곳곳에서 베네치아와 비슷한 물의 도시나 마을혹은 섬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베네치아가 걸어온 장구한 역사와 도시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석호 한가운데에 흩뿌려진150개의 섬이 410개의 다리로 연결되고, 그 안팎을 180개의 크고 작은운하가 혈관처럼 사통팔달로 뻗어 나가자 비로소 살아 숨 쉬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탄생했다. - P123

자유를 찾아 바다로간 사람들에 의해 베네치아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 P125

인생을 운명에만 맡기지 않고 스스로 행동하여 기회를 만들었다. 또한, 강한 의지를 가진 인간은 지옥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믿었다. 저승에 갔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 아이네아스도 그들의 선조라는것을 그들은 잊지 않았다.
- P126

포효하는 사자,
개펄에서 피어난 희망이란 꽃
- P127

베네치아를 여행할 때 자주 마주치는 동물이 있다. 한 손에 성경을 들고 있는 날개 달린 사자다. 선박의 깃발, 성당의 벽면, 광장의 높은 기둥 위에서 사자는 당연한 듯 당당한 포즈를 취한다. 세계 3대예술 영화제로 유명한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의 최고상도 황금사자상이다. 날개 달린 사자가 베네치아의 상징이 된 연유를 알게 된다면 길에서만나는 사자가 더욱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 P127

V 리알토 다리, 대운하를 연결하는 네 개의 다리 중 가장 오래되었다.
산마르코 지구와 산폴로 지구를 연결한다. - P128

"나를 죽일 수 없는고통은 나를 더욱더 강하게 만든다" 라고 했던 니체의 말처럼, 고난을 이거내는 과정에서 그들 내면에 잠들어 있던 상인의 기질을 발견하게 된것이다. 상인은 인종과 종교를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이익이 된다면 지옥까지 가서라도 거래를 할 자신이 있었다.
- P129

첨예한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치 국면에서도 베네치아는 유럽보다 발전된 문명을 가진 이슬람 세계와 거래를 이어갔다. 그들에게 삶이란 교황의 협박과 파문으로도 막을 수 없는 소중한 가지였기 때문이다.
- P130

날개 달린 사자는 마가 성인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마가 성인의 유해는 산마르코 대성당에 안치되었고, 대신 상징물인 날개 달린 사자가 도시 곳곳에 배치되어 도시를 수호한다. 포효하는 용맹스러운 사자처럼,
베네치아는 아드리아해를 넘어 지중해 전역으로 세력을 뻗쳐나갔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었던 개펄에서 희망이라는 꽃을 피워 냈다. - P130

네 마리 청동 말,
아드리아해를 넘어 지중해로 나아가다 - P131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에는 당시 비잔티움 제국을처음 봤던 십자군의 놀라움이 잘 나타난다. "도시의 엄청난 길이와 너비,
병사들은 이 세상에 그렇듯 부유하고 웅장한 곳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전율하지 않을 만큼 대담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며, 또한 천지가 창조한 이래 그처럼 대단한 광경은 없었다". - P133

베네치아의 사자가 그들의 정체성이라면 네 마리 청동 말은 그들이바다를 통해 꿈꾸었던 이상이었다. 산마르코 광장을 굽어보는 청동 말은여전히 사람들에게 베네치아 과거의 영광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언제든 바다로 달려나갈 준비를 한다. - P135

자유와 축제는 한 단어처럼 느껴진다. 자유가 있는 곳에서만 누구나즐길 수 있는 축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에 자유가 숨 쉬는 한축제는 늘 진행될 것이다. - P143

카니발,
가면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P139

두칼레 궁전,
진취적 기상과 자유를 담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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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정치 중심지인 베키오궁 앞에는 널찍한 시뇨리아 광장 Plaza della Signoria 이 있다. 중세 피렌체는 ‘시뇨리아‘ 라는 귀족과 유력 상인으로 구성된 8인의 최고 행정기구에 의해 운영되었는데, 광장의이름은 여기서 유래한다. 이 광장은 늘 관광객으로 북적이는데 지척에세계 최고 수준의 우피치 미술관이 있고 광장 주변을 웬만한 박물관에가야 볼 수 있는 최고의 조각품으로 꾸며놨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20대 시절 만들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균형미와 조형미가 완벽한다비드> 상도 이 광장에 전시되어 있다. - P94

중세시대 피렌체는 유럽의 변방 도시에 불과했다. 1239년 이탈리아북부 롬바르디아 지역에서 내려온 우밀리아티 Uniliati 수도사들이 피렌체에서 모직 사업을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 P95

메디치가를 선장으로 한 거대한 피렌체 호는 세상을 바꿔보고 싶은 혁신적인 선원들의 활약과 함께 험난한 중세의 바다를 건너 근대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막 들어서고 있었다.
- P99

메디치가가 유럽 여타의 가문들과 다르게 현재까지 존경받는 이유 중하나가 학자들과 예술가들에게 거의 무제한의 후원을 베풀었다는 점이다. - P98

시민들은 세련되고 자부심 넘치는 피렌체를 건설한 로렌초에게 ‘위대한 자 Lorenzo il Magnifico‘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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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견고한 신 중심 세계에
새어든 한 줄기 새로운 빛
- P90

오늘날 우리는 편하게 이천 년 전에 살았던 역사가와 시인이 저술한 로마의 역사와 서사시를 읽는다. 2,500년 전 그리스의 비극, 신화, 서사시는 오늘날까지 살아님아 영화와 연극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어 관객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오래전부터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했던 다양한 고전이 순풍에 돛 단 듯 자연스럽게 오늘까지전해졌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어둠 속에 갇혀 영원히 사라져버렸을수도 있었던 이러한 고전들을 세상으로 건져 올린 사람들이 있었다. 피렌체 여행은 이들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 P90

이렇게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된 문헌을 읽고 연구하는사람들을 가리켜 인문학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P91

인문학자 로렌초 발라 Lorenzo Valla는 그동안 교황이 황제와 대립할 때마다 매번 서방 세계의 우위권을 주장하며 제시했던 콘스탄티누스 기증 문서‘가 거짓 문서임을 밝혀냈다. - P91

잊혔던 과거를 찾아내어 현재라는거울에 비추자 고대 로마의 문명과 단절되어 한참 뒤떨어져 있던 자신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 P92

언어는 사고를 규정한다 - P92

어떤 언어를 말하고 쓰는가에 따라 우리의 생각도 크게 달라진다. 잊혔던 고대 텍스트와의 만남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품게 하여 전과 다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강력한동기를 부여했다. 문학, 건축, 조각, 특히 회화 분야는 전과 다른 새로운방향으로 발전한다. - P93

v 파치 예배당 중정, 로마 양식의 특징인 반원형 아치와균형, 비율, 대칭이 절묘하게 조화된 열주가 만든 공간이 무척 세련되어 보인다. - P92

이 모든 일련의 사건이 바다도 인접하지 않은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도시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최선을 다한 결과가 인류 역사에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생각하면 우리 삶의 무게가 전혀 가볍지 않게 느껴진다. - P93

메디치,
천재 양성 인큐베이터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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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이 시작되고 4년이 지난 1512년 작품이 공개되자 교황은 천장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일반에게 공개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그 공간에 압도되고 말았다. 바사리는 "천장화가 공개되자 각지의 사람들이 그것을보려고 달려오는 소리가 귀에 울릴 정도였다" 라고 할 만큼 시대에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 - P70

바야흐로 바로크 시대의 시작이었다.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을 가진바로크의 특징은 화려함과 역동성이다. 로마는 요조숙녀 같은 정숙한 모습에서 생기발랄한 처녀처럼 활력이 넘치는 도시로 변해갔다. - P74

두 번째 길
피렌체, 회복의 길 - P77

"피렌체인들은 끈기 있게 일하고,
위험에 기꺼이 맞서며, 열정적으로 영광을 구하고,
적절하게 조언하며, 근면하고 관대하며,
위대하고, 유쾌하고 상냥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시민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 『피렌체 찬가』, 레오나르도 브루니 - P79

미켈란젤로 광장,
피렌체 영광을 조망하다 - P81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벌어진 미궁의 살인사건을 다룬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수련사 아드소는 스승 윌리엄 수도사가 비밀 가득한 장서관을 밖에서만 보고 내부를 정확히 통찰하는모습에 깜짝 놀란다. 이에 스승은 "예술이 창조한 것은 그렇다. 우리의마음으로 그 일을 이룬 장인의 마음을 짚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하는데, 관점의 변화가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 P81

피렌체 여행 또한 미켈란젤로 광장에 올라 원대한 이상을 품고도시를 건설했던 중세시대 피렌체인의 마음으로 전경을 조망하는 것이좋은 시작이다. 너무 가까이에서만 보면 특정한 한 점만 보고 끝나버릴 수 있다. - P81

미켈란젤로 광장.
피렌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로 미켈란젤로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여 조성되었다. - P82

피렌체를 여행할 때는 가깝게 있는 ‘이런 점과 멀리 있는 ‘저런면‘을 함께 봐야 도시를 더욱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 P83

유럽의 중세 도시는 대부분 정치의 중심지 시청와 종교의 중심지 대성당가 하나의 광장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렌체에서는 속세의 영역과 신의 영역이 서로에게 종속되지 않겠다는 듯떨어져 있다. 이러한 건물의 배치에서 정치 및 종교 그 어느 쪽에도 얽매이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 P83

심지어 망원경을 통해지구 너머의 새로운 행성과 위성을 발견하는 등 베일에 싸여 있던 우주의 영역까지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피렌체에서 시작된 이 새로운 기운으로 인류의 정신은 한 단계 도약했다.
- P84

천 년 만에 부활한
고대 그리스·로마의 정신 - P85

^ 단테 가묘(假墓),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되어 이탈리아를 전전하다가1321년 동북부의 도시 라벤나에서 눈을 감는다.
피렌체는 언젠가 단테가 꼭 돌아와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산타크로체성당에 가묘를 조성해 놓았다. - P87

특이하게도 이 작품은 기존 상식을 깨고 당시 국제어이자 특권층의 언어였던 라틴어가 아닌 피렌체 사람들이 사용하던 토스카나 방언으로 쓰였다. 이는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름답고위대한 생각을 담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획기적 사건이었다. - P88

언어는 군대를 거느린 한 방언이다" 라는 격언이 있다. 『신곡』의 강력한영향으로 일개 방언 중 하나에 불과했던 토스카나어는 이탈리아의 다른방언들을 물리쳤다. 이어 단번에 정상의 자리에 올라서더니 오늘날 표준이탈리아어의 기원이 되는 영광을 차지한다.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라틴어라는 문자 권력이 큰 도전을 받았다. - P88

하지만 새로운 지식이점차 견고한 신 중심사회에 스며들었다. 민중은 스스로 읽고 생각할 수있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자기 생각을 글로 썼다.
- P88

역사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계속 진보만을 거듭하는 것일까. 그러나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스스로 생각하게 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대 로마시대보다 훨씬 뒤떨어진 문명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새롭게 유입된 지식으로 사람들은 완전무결한 줄 알았던 교황의 말과 행동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신념이라는 암흑 속에서 의심이라는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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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베드로 대성전,
가톨릭 분열의 분수령 - P58

^ 성베드로 대성전, 120년의 기간을 거쳐 1667년,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 베르니니에 의해광장이 완공되면서 로마는 기독교 최고의 성지로 발돋움한다. - P60

이제 사람들은 특정 계층만 읽을 수 있는 라틴어가 아닌 자신들의 언어로 인쇄된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성직자들의 성격 해석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할 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동시에 교황청의 권위는 끝없이 추락했다. - P61

시스티나 예배당,
바티칸에 재현된 예루살렘 신전 - P63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예배당에 새겨 넣은 불멸의 혼
- P67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 전혀 다른 분야에 도전해서도탁월한 성과를 내는 사례를 종종 보곤 한다. 한번 정상에 올라본 사람은어느 길로든 다시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법이다. 르네상스 시기에 다양한분야를 섭렵했던 대가들이 넘쳐났었지만, 그중에서도 미켈란젤로는 단연 눈에 띄는 천재였다. - P67

L1475년 3월 6일 태어난 미켈란젤로 Micheclangclo Buonarroti, 1475~1564 - P67

하나의 위대한 인간을 빚어내는데 주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학문과 예술이 늘 공기와 같이 집안 어느 곳에서나 존재했던 덕분에 자신의 조각품처럼 미켈란젤로 자신도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거장으로 조형되고 있었다. 거장은 태어나기도 했지만 만들어지기도 했다.
- P68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벽면을 가득 메운 예술가들의열정과 혼이 온몸에 전해진다. 프레스코화를 보는 사람들의 눈에도 예리한 빛이 번득인다.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위대한 영혼의 기운을 받아 현실의 험난한 벽을 넘을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곳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 P71

V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
이스라엘의 예언자, 고대 세계의 신녀 등 300명 이상의 인물들이 개성 있게 프레스코 되었다. - P71

바로크의 도시,
역동성과 화려함으로 리모델링 - P72

로마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고 역동적이며 아름답기까지 한 분수에서 시원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광경을 보는 것은 흔한일이다. 도심에 빼곡히 들어선 200여 개 이상의 교회에서 하늘을 향해힘껏 솟은 돔 지붕이 수려한 스카이라인을 그린다. 어느 곳에 눈을 돌려도 화려한 건축물이 서로의 기량을 뽐내듯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 P72

 통일기념관 전망대에서 바라본 로마 전경.
교회의 돔 지붕들이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만든다. - P75

로마는 여러 번의 침략을 받아 폐허가 되었다. 한때 세계의 중심이었다가 다시 변방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 P75

같은 기독교도의 침략으로 거의도시를 포기해야 하는 지경까지 갔으나 로마는 다시 일어섰고 영원의도시‘가 되었다.  - P75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반드시 기회는 온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날개를 펴기 전까지 얼마나 높이 날 수 있을지 아무도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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