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이 시작되고 4년이 지난 1512년 작품이 공개되자 교황은 천장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일반에게 공개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그 공간에 압도되고 말았다. 바사리는 "천장화가 공개되자 각지의 사람들이 그것을보려고 달려오는 소리가 귀에 울릴 정도였다" 라고 할 만큼 시대에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 - P70
바야흐로 바로크 시대의 시작이었다.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을 가진바로크의 특징은 화려함과 역동성이다. 로마는 요조숙녀 같은 정숙한 모습에서 생기발랄한 처녀처럼 활력이 넘치는 도시로 변해갔다. - P74
"피렌체인들은 끈기 있게 일하고, 위험에 기꺼이 맞서며, 열정적으로 영광을 구하고, 적절하게 조언하며, 근면하고 관대하며, 위대하고, 유쾌하고 상냥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시민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 『피렌체 찬가』, 레오나르도 브루니 - P79
미켈란젤로 광장, 피렌체 영광을 조망하다 - P81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벌어진 미궁의 살인사건을 다룬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수련사 아드소는 스승 윌리엄 수도사가 비밀 가득한 장서관을 밖에서만 보고 내부를 정확히 통찰하는모습에 깜짝 놀란다. 이에 스승은 "예술이 창조한 것은 그렇다. 우리의마음으로 그 일을 이룬 장인의 마음을 짚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하는데, 관점의 변화가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 P81
피렌체 여행 또한 미켈란젤로 광장에 올라 원대한 이상을 품고도시를 건설했던 중세시대 피렌체인의 마음으로 전경을 조망하는 것이좋은 시작이다. 너무 가까이에서만 보면 특정한 한 점만 보고 끝나버릴 수 있다. - P81
미켈란젤로 광장. 피렌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로 미켈란젤로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여 조성되었다. - P82
피렌체를 여행할 때는 가깝게 있는 ‘이런 점과 멀리 있는 ‘저런면‘을 함께 봐야 도시를 더욱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 P83
유럽의 중세 도시는 대부분 정치의 중심지 시청와 종교의 중심지 대성당가 하나의 광장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렌체에서는 속세의 영역과 신의 영역이 서로에게 종속되지 않겠다는 듯떨어져 있다. 이러한 건물의 배치에서 정치 및 종교 그 어느 쪽에도 얽매이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 P83
심지어 망원경을 통해지구 너머의 새로운 행성과 위성을 발견하는 등 베일에 싸여 있던 우주의 영역까지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피렌체에서 시작된 이 새로운 기운으로 인류의 정신은 한 단계 도약했다. - P84
천 년 만에 부활한 고대 그리스·로마의 정신 - P85
^ 단테 가묘(假墓),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되어 이탈리아를 전전하다가1321년 동북부의 도시 라벤나에서 눈을 감는다. 피렌체는 언젠가 단테가 꼭 돌아와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산타크로체성당에 가묘를 조성해 놓았다. - P87
특이하게도 이 작품은 기존 상식을 깨고 당시 국제어이자 특권층의 언어였던 라틴어가 아닌 피렌체 사람들이 사용하던 토스카나 방언으로 쓰였다. 이는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름답고위대한 생각을 담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획기적 사건이었다. - P88
언어는 군대를 거느린 한 방언이다" 라는 격언이 있다. 『신곡』의 강력한영향으로 일개 방언 중 하나에 불과했던 토스카나어는 이탈리아의 다른방언들을 물리쳤다. 이어 단번에 정상의 자리에 올라서더니 오늘날 표준이탈리아어의 기원이 되는 영광을 차지한다.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라틴어라는 문자 권력이 큰 도전을 받았다. - P88
하지만 새로운 지식이점차 견고한 신 중심사회에 스며들었다. 민중은 스스로 읽고 생각할 수있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자기 생각을 글로 썼다. - P88
역사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계속 진보만을 거듭하는 것일까. 그러나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스스로 생각하게 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대 로마시대보다 훨씬 뒤떨어진 문명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새롭게 유입된 지식으로 사람들은 완전무결한 줄 알았던 교황의 말과 행동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신념이라는 암흑 속에서 의심이라는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 P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