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종합대학은 한마디로 주체과학의 전당이라고 말씀드릴수 있겠습니다. 즉 참된 학문과 교과서는 다른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현실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식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조선혁명에 이바지할 수 있는 학문을 배우려면 조선의 인민이 지어내는현실 가운데서 늘 행동하고 사고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 P91

정치란 사람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서로가 올바른 삶의 방식을 자주적으로 규정하여주는 수단입니다. - P92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분열이란 한시도 참을수 없는 일이겠지요. 통일은 분열의 부정으로써만 이루어지는 민족적위업입니다. 따라서 조국의 분열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의 정도는 통일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결정하는 출발점으로 될 것입니다. 조국의 분열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힘의 대치상태의 반영이라고 말합니다. - P93

저는 벌써부터 결혼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보는데요. 그렇지만 얘기하겠습니다. 글쎄요…… 제 남편이 될 사람은 이랬으면 좋이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첫째로 줏대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는 이웃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람, 그리고 셋째로 노동을 사랑하는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P94

그대가 한 그루 나무라면은
이 몸은 가지에 피는 잎사귀
찬바람 불어와 떨어진대도
흙이 되어 뿌리 덮어주리라
아아아, 나의 조국아
흙이 되어 뿌리 덮어주리라 - P98

아마도 통일은 둘이었던 남과 북이 단순히 하나로 되는 것이 아니라 억압되었던 창조적 에네르기가 한꺼번에 분출되어 세계를 이끌고 나아갈 문명관을 가진 새로운 민족의 재탄생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 P101

어쨌든 나는 북에서 가장 인상깊고 좋았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백두산과 함께 어린이들을 으뜸으로 꼽아보고 싶다. 그들은 사랑스럽고무엇보다도 어린이다웠다. 눈치가 빠르고 영악하고 알로 까진 그런 아이어른이 아니라 명랑하고 낙천적이면서도 정서에 민감한 그런 아이들이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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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4-27 1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이 책 오랫만이네요. 이 책 처음 나왔을 때 저는 정말 저 제목에 팍 꽂혔다죠. 냉전시대 반공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저같은 세대에게 가장 큰 충격은 북한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거요. ㅎㅎ
이게 이성적으로 아는거하고 진짜 사람들이 우리랑 똑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읽는건 또 다르더라구요. ^^

대장정 2022-04-27 23:07   좋아요 0 | URL
그쵸 북에는 우리와 다른 괴물들이 사는.. . 저도 반공교육 철저히 받았고 국민학교때 교내 반공웅변대회서 수상도 ㅎㅎ 받고 그랬내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 P69

"황선생님 「객지도 학생 때 서클에서 품평회를 가지고 그랬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곁에 있는 최승칠 선생이 말했다.
"종합대(김일성대학) 문학부 창작과에서는 남한의 민중문학을 광범위하게 읽고 분석합니다. 나중에 직접 가서 확인해 보시지요." - P69

"남한 문학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글쎄요. 제가 뭘 알아야지요. 북조선 문학과는 일정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문학은 남과 북을 합하여 대단한 고양기에 올라 있다고 봅니다. 더욱 훌륭한 문학작품이나오기 위해서도 통일이 되어야겠습니다." - P69

여기서는 대강 알 만한 이름들이 보였다. 얼핏 떠오르는 대로 그 이름들을 적어본다. 홍명희, 이기영, 백남운, 조기천, 이현상, 김상룡, 방준표,
김달삼, 조봉암, 여운형… 등등. 나는 문인이고 벽초 홍명희 선생과민촌 이기영 선생을 우리 민족문학의 개척자로 존경하는 입장이므로비문 앞에 서서 그야말로 사상과 제도의 차이뿐만 아니라 민족문학사의 분단을 넘어서 당당하게 사진 한 장씩을 찍어 주었다. - P71

하여튼 해방직후 북은 어쨌거나 민중을 그 기반으로 삼는 당과 인민위원회를 창설했고 일제의 식민지 잔재를 철저하게 청산한 위에서자기 제도를 뿌리내릴 수가 있었던 점이 우리와 달랐다. 이러한 출발점에서의 구별성은 이쪽이냐 저쪽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를 떠나서 현실로서 주어진 것이었다. 미군정은 식민지 잔재를 그대로 떠안고 아니그것을 중심으로 하여, 구식민지에서 천황주의와 일본제국주의를 선전하고 의식화하는 데 앞장섰던 교육관료와 교원들을 다시금 앞장세워교육정책을 실시했다. 어디 교육만이 그랬으랴마는 어쨌든 해방된 조국의 앞날을 끌고나갈 새 세대를 가르치고 기르는 가장 중요한 일에서 이미 그릇되었던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이면 모두 개탄하는 문제이다. - P76

그리고는 ‘홍선생, 이리 와서 저 소리 좀 들어보시지요. 저들이 우리의 귀중한 미래입니다‘ 하시더라는 걸세. 할아버지가그냥 계시기로 마음 잡수신 게 바로 그때라고 하시데. - P79

"우리나라를 민주주의 자주독립국가로 건설하기 위하여서는 많은인재가 요구됩니다. 우리는 하루 빨리 학교를 많이 세워 인재에 대한요구를 해결하여야 합니다. 그러자면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를 많이 세우는 동시에 대학을 빨리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형편에서는 많은 대학을 한꺼번에 세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나라에세워질 각 대학의 모체로 될 수 있는 종합대학을 먼저 세우려고 합니다. 종합대학에는 일제의 악독한 식민지통치로 말미암아 공부를 할 수없었던 무산계급의 자녀들, 진정한 근로인민의 아들딸들을 받아들여조국과 인민에게 충실히 복무할 수 있는 훌륭한 민족간부로 길러내야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세우는 종합대학을 진정한 인민의 대학으로만들어야 합니다." - P79

사회주의 교육에 관한 테제

1. 사회주의 교육학의 기본원리, 
2. 사회주의 교육의 내용 (정치사상교양, 과학기술교육, 체육교육), 
3. 사회주의 교육의 방법(깨우쳐 주는 교수교양, 이론교육과 실천교육, 교육과 생산노동의 결합, 조직생활 · 사회정치활동의 강화,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의 결합, 학교전 교육·학교교육 · 성인교육의 병진), 
4. 우리나라 사회주의 교육제도(전반적 의무교육제도, 전반적무료교육제도,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제도, 국가적 어린이 보육교양제도), 
5.교육기관의 임무와 역할, 교육사업에 대한 지도와 협조 - P82

서울대학교 화학과 4학년 조성만,
종합대학 화학부 화학과 4학년 1반에 등록하여 현재 5학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3학년 박종철, 종합대학 어문학부 어학과 3학년에 등록하여현재 5학년, 단국대학교 법학과 2학년 최덕수, 종합대학 법학부 법과3학년 1반에 등록하여 현재 4학년 1반, 연세대학교 경제과 3학년 이한열, 종합대학 정경과 3학년 1반에 등록하여 현재 5학년 1반, 평양상업대학이나 교원대학, 공업대학 등에는 또 다른 동무들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슬프고 안타까울수록 더욱 열심히 조국을 강건하게 성장시켜 나가리라 다짐하게 됩니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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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기로 그들의 별명을 지어서 불렀다. 가령 북경서 만났던 일꾼은고향이 함경북도의 산골이라고 해서 ‘산골 아바이‘라고 부르고, 살림맡은 사람은 키가 작고 바지런한 중학 교원 출신이었는데 ‘훈장‘이라지었으며, 민요를 걸찍하게 부르고 고지식하며 그들 말대로 인민적인책임자는 ‘머슴동지‘라고 지었다. - P27

어느면에서는 우리들보다 순수하고 이해타산이 없어 보였다. 생존경쟁이애초부터 배제된 사회이기 때문인가. 자신의 체제에 관한 우월성을 먼저 주장하거나 토론을 벌이려고 이를 악물고 덤비면 40년이 넘어도만날 수 없지만, 생활하는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면 10분만에 서로가한 핏줄임을 확인하게 되었던 점이 내가 이번 방문에서 깨달은 남과북의 인간관계이다. - P28

처음 만난 북의 문인들 - P28

백인준 선생은 금년에 일흔둘이며 연희전문과 와세다를 나왔고 시인 윤동주와 동경 시절에 같이 하숙을 했다고 한다. 시의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남의 땅 남의 나라에서 어머님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보니, 삶은 어려운데 시가 왜 이렇게 쉽게 써지느냐고 하는- 그 유명한 시를 쓸 무렵에 백선생과 윤동주는 함께 살았다고 한다. - P28

세수대야만한 그릇에 담은 잣죽 - P29

예쁘고 수줍은 혜숙이 - P31

첫날 밤의 상념들 - P32

주위는 적막한데 먼 숲 속에서 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밤 새소리는마치 서울 북한산 기슭이나 광주의 또는 해남의 야산 언저리에서 듣던 것과 똑같았고 어느 마을에선가 들려오는 컹컹 개짖는 소리까지도다를 바가 없으니 은 강토가 한동네인 셈이었다. - P32

남쪽에서의 내 삶의 흔적들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물처럼 흘러갔다. 공산주의 소쩍새가 따로 있을리 없건만 사람들의 인생은 저토록심하게 갈라져서 전혀 다른 모양으로 살아왔고, 남과 북에서 태어나는모든 우리나라 아기들은 애초부터 둘로 헤어진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고 앞으로도 얼마쯤의 세월이 흘러야 할지 모르는 채로 살아가야 할것이다. - P32

저는 우리 남한 민중의 통일에 대한 열망에 순종하여 북을 방문하려고 합니다. 저는 정치하는 사람도 아니고 무슨 뚜렷한 이념을 따르는 사람도 아닌 분단된 우리나라의 작가입니다. 따라서 저는 분단시대남한의 작가로서 통일을 절실하게 바라며 또한 실천할 의무가 있습니다. - P32

지금부터 우리네 조국강산은 봄입니다. 봄꽃은 우리나라 남쪽 끝의한라산에서부터 피어나기 시작하여 아무런 장애도 없이 휴전선 철조망을 넘어서 북의 백두산 기슭에 피어납니다. 저와 우리 민중들은 우리나라 야산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어린 풀꽃들을 눈물이 나도록 사랑합니다. 바로 저들의 재생력이야말로 이 무렵이면 우리 국토를 뒤덮는 탱크와 미사일을 이겨낼 위대한 힘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 P33

평양은 한마디로 서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며 동경이나뉴욕과는 더욱 다른 도시이다. 글쎄, 별로 세계의 곳곳을 다녀보지는못했지만 내가 보았던 도시들 가운데서는 - 베를린과 비슷한 느낌이든다고나 할까. 어떤 유럽인은 평양을 동양의 부다페스트라고 표현한적도 있지만 나는 헝가리에 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다만 서양고전 양식과 동양적인 양식이 섞여 있으며 조경은 우리식인데 광장이라든가 다리나 기념물이나 조각들이 서양식이라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 P36

사유재산이란, 그것을 지니고 누리는 개인에게는 대단히 좋은 것이겠지만 대도시의 경우에서 보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장소를 이루는 데에는 매우 거추장스러운 것이기도 하겠다. - P36

얼핏 눈에 들어오는 간판들을 대충 적어본다. 공산품상점, 농산물상점,
물고기 상점, 남새상점, 육고기집, 단고기(개고기)집, 국수집, 얼음보숭이청량음료집(아이스크림과 차와 음료수를 파는 다방 같은 곳), 리발소, 미장원, 목욕탕, 과자점(제과점), 전자기구 수리집, 옷집, 양복점, 국밥집,
책방 등등이 있었다. 이것은 물론 개인 상점들이 아니라 국가에서 주민들에게 수요와 공급을 원활히 해주기 위하여 운영하는 편의시설들도 있고 각개 직장이나 주거지역 공동체에서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는데, 작은 업소에서 큰 곳에 이르기까지 발령을 받은 봉사원이나 관리인 또는 지배인이 있기 마련이다. 변두리는 주거지역의 아파트아래 층의 이러한 봉사와 편의시설들이 있었으며, 보다 번화한 중심가에는 대규모의 점포가 있었다. - P40

2칸 집에 들어가 본 것은 혼자 살고 있는 고 박태원(소설가) 선생의미망인 권경희 여사(82세)의 집을 방문했을 때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아파트에는 인생을 출발하는 젊은 부부가 많고 따라서 아이들도갓난애가 대부분인데 한편으로는 자식들을 외지에 출가시킨 노부부나 정년퇴직한 노인도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 P44

그들은 ‘통제‘라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며 그 말부터 고쳐야만 북한 사회에서의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말을 이해하게 된다고 대답했다. - P48

"‘루이제 린저‘ 여사도 자꾸 그런 말을 해서 할 수 없이 우리가옥 견학을 시켜줬지요. 우리의 감옥은 농장입니다. 하나의 분리된거공동체지요. 이러면 또 아오지에서 강제노동시킨다고 하겠군요.
여튼 정도의 차는 있지만 지구상에서 사람이 만든 제도 아래 벌어지는 일은 다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 P50

15도,25도, 40도 짜리의 세 종류가 있었다. 어느 유럽인 친구는 들쭉술을 중국 연변지방의 동포들 술집에서 먹어본 적이 있다며 식후 술로서는세계에서 최고의 맛이라고 감탄했다. 외국인들은 대개들 15도 짜리를좋아하는 모양인데, ‘미테랑‘의 평양 방문 길에 그의 부인이 먹어보고포도주보다 훨씬 좋다고 하여 12상자를 비행기에 실어주었다는 술이다. - P53

입후보자의 원칙이란 한마디로 말하여 근로민중과 자기의 조국 그리고 제도에 대한 충실성과 헌신적 복무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 P54

내가 북한 돈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에 당황하여 아내에게 달래서 가지고 오겠다고 말하여 함께 웃은 적이 있었다. 즉 북의 돈은 노동의교환가치를 설정하기 위하여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의가치나 소비의 욕구는 구조적으로 일정한 정도를 넘을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 P58

최선생과 그의 모친은 그 친구를 얼싸안고 울음을 터뜨렸더란다. 이런 경우는 그대로 뒤집어서 남쪽으로 월남한 사람들에게도 보편적인 이야기가 된다. 나는 최선생에게 말했었다.
당시에 남으로 가느냐 북으로 가느냐 하는 문제는 생존의 조건에 따른 간발의 차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난 42년은 그러한 사람들을 우주처럼 어마어마한 거리로 떼어놓고 말았습니다.
- P60

"내가 잘 아는 남쪽 어느 시인이 이런 시를 썼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은 두 절름발이다. 그들이 서로 온전해지려면 남은 왼발로 딛는 연습을, 북은 오른발로 딛는 연습을 해야 제대로 걸을 수가있다. 뭐 그런 시였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전후 세대들은 역사가남겨준 증오와 불신의 유산을 수십년 동안의 분단교육을 통해서 주입식으로 물려받아 왔습니다. 지금 당신이 얘기한 사건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우리가 민족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부터 늦지 않았으나 서로가 다른점은 인정하고 나아가서 같은 점들을 찾으려는 노력을 급히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정말 통일을 원하지 않는 세력은 한줌도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 P65

개선문의 정치적 의미
개선문은 주체사상탑과 함께 82년 4월에 완공되었다. 82년은 김주석의 탄생 70주년이 되는 해이며 김정일 비서의 탄생 40주년이 되는 해로서 이 두 건조물은 ‘혁명전통의 계승‘을 내외에 선언하는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겠다. - P67

북한의 수령론과 후계자론은 다른 장에서 살펴보기로 하는데, 다만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저쪽의 통치권의 후계문제를 관념적으로 파악하려는 위험에 빠져서는 안되겠다는 점이다. 정치가 무엇보다도 현실과 실천의 영역이라는 말이 맞는다면 저쪽은 저쪽 나름대로의 형편과 속사정이 있다. 일단 그것을 사실로서 인정하자는 것이다. - P67

"우리 조선민족이 민주주의 새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힘을 합칠때는 왔습니다. 힘 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건국사업에 적극 이바지하여야 하며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민주를 사랑하는 전민족이 굳게 단결하여 민주주의의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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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봉황
관두 감독, 오호택 외 출연 / 비디오여행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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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쿨풀에 이슬이 맺혔네
아리따운 여인의
눈과 이마는 예쁘기도하지
우연히 서로 만나다니
네 소원이 이루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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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작가 황석영을 가리켜 "우리시대 최고의 리얼리스트 작가"
"현장 중심의 철저한 문학운동가" 라고 부릅니다. 그는 항상 현장의 중심에 있었고 그가 선택한 역사적 입장이 항상 옳았다는 것은 지난 시대 우리 역사를 통해 명백히 확인되고 있습니다. - P3

지금 제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문민화와 민주화가 ‘완성‘ 되었다고하는 생각이 제법 많이 퍼져 있는 것과, 독일의 경험으로 비추어보아비용이 많이 드는 통일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 어차피 통일은 흡수통일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제도권 매체의 논리가 상식화되어 있는점입니다. - P6

또 하나의 걱정은 문화예술에서 보이는 보수화, 복고주의적 경향과심화된 또 다른 형태의 서구 모더니즘에의 편향이 반동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현상입니다. 하이는 6·25 이후에도 그랬고 4·19가 좌절된 5·16이후에도 그랬습니다. 그 파도를 솟음치고 신동엽과 김수영이 있었지요. 과도기의 반동적 현상은 그때마다 복고주의와 선진국의 문예사조를 동원하여 그
‘공허‘를 메꾸어 왔던 것이지요. - P7

그런 의미에서 저는 느닷없이 ‘새로움‘이라든가 특히 세대론‘ 따위를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요즈음의 신세대론은 옛날 70년대의 히피나 반전문화와 연관된 ‘청년문화론‘과도 달리, 일본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는 듯하며 예전이 명동 부근이었다면 (구로공단은 빠지고) 요즘은 압구정동과 홍대입구 정도로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 ‘청년문화론‘이 상업주의 + 새세대의 저항을 달래고 수렴하는과정에서 제도권 문화가 의미부여 + 길들임의 도식을 가졌던 것과 꼭같은 식으로 보입니다.
여러분! 분발합시다! 우리는 세계사의 대단원을 해결하고 이를 새로운 신명의 방식으로 지구 전체에 되돌려줄 사명을 가진 오늘 이땅의 작가들입니다.
1993. 8. 29 황석영 - P7

작년부터 재편성되기 시작한 모든 재야단체들이 조국의 민주화와 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조직의 결성 목표로 삼았고, 민주 자주 통일은 80년대의 전기간에 걸쳐서 우리가 추진하여 왔던 민주화 운동의내용 그 자체였다. 노대통령이 7. 7선언에서 밝힌 대로 남과 북은 동반자 관계이며 서로의 공동체적 동질성을 찾아야 하며 남북 교류를 밝힌 것으로서, 여기까지 이르는데 실로 20년 가까이 걸렸던 것이다.
- P16

입국 심사대 앞에 섰을 때, 관리는 통과비자가 찍힌 별지를 찬찬히들여다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디로 가는가?"
"왜 묻는가?"
나는 느긋하게 그에게 되물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통과비자가 아닌가?"
"그렇다. 너의 정부가 찍어 줬다.
"다음 행선지가 어디인가?"
나는 빙긋이 웃었다.
"말할 수 없다."
그는 두 손을 들어 보이면서 여권을 도로 내밀었다.
"좋다." - P18

사진보다 미남이요 - P19

"황석영 선생입네까?"
나는 정말 긴장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웃으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인차 차를 부를테니까 잠깐만 기다리기 요."
그가 어디론가 훌쩍 가버린 뒤에 나는 다시 공항 대합실에 혼자 남아서 이제는 되돌이킬 수 없는 북으로 가버리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가 묻지도 않고 내 가방을 끌고 나가서 검은 색의 대형 벤츠에다 실었다. 운전석의 사내가 푸념반 인사반 섞어서 내게 투덜거렸다.
"수요일부터 매일 공항에 나왔수다. 거 한번 만나기 힘들구만." - P20

"기래두 이 많은 인구를 멕이는 거이 간단치 않아요." - P21

그들은 자기의 것에 대한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닌지. 한편으로는 반쪽으로 갈라져서 아직도 아득바득 하고 있는 남북관계가 한없이 야속했다. 우리가 남을 침략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남의 땅을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라, 그저 같은 민족끼리 한번 오손도손 살아 보겠다.
는데 왜들 못살게 하는지 그것도 한 마을이나 다름없는 동북아를 조망해 보면 남들은 제각기 제 식구들 살리노라고 여념이 없고 은근히우리의 분단을 고소해 하는 것도 같은데, 어째서 우리는 아직도 철저하게 갈라져서 서로를 미워하고 살아가야만 하나. - P21

"지금부터 조국의 상공입네다." - P22

갑자기 뜨거운 것이 목구멍 너머에서 울컥 하더니 눈물이 눈가를적시고 저절로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 우리 땅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밟을 수 없던 국토가 지금 눈 아래 펼쳐져 흐르고 있었다. - P23

"황선생의 공화국 방문은 일단 비공식이기 때문에 행사도 조촐합니다. 량해하시라요." - P23

"황석영 선생님이 조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는 얼결에 꽃다발을 받고 나서 아이의 뺨에 뽀뽀를 해주면서 중얼거렸다.
"오, 그래 우리 딸 같구나, 고맙다."
- P23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 - P24

조촐한 환영파티 - P26

천리마표 냉장고 - P26

집필실에는 백과사전류며 여러 종류의 참고서적이 꽂힌 책장과 채상, 안락의자가 있고 텔레비전이 있으며 구석에 천리마표 냉장고가 있었다. 책상 위의 문갑을 열어보니 만년필 연필 볼펜 백지며 두툼한 노트와 메모수첩이 있었다.
냉장고 안을 열어 보았다. 역시 배 사이다, 귤 물, 금강산 오미자 물,
백두산 들쑥 물, 용성 맥주, 금강 생맥주, 그리고 광천수와 신덕 샘물이었다. 우유 과자와 가운데 크림을 넣은 샌드 비스킷, 젤리와 오랜만에 보는 가래엿이 있었다. 또한 투박한 배와 토종 사과가 두 알씩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샘물과 오미자 물을 가장 좋아했으며 엿이 좋았다. 엿은 누룩으로 단맛을 낸 예전의 구수한 맛 그대로였다.
방에는 모두 바닥에 개성산 화문석 돗자리가 정갈하게 깔려 있었다. 개성에서는 주로 이와 같은 종류의 토산품이나 경공업 제품이 나온다는데 옛날부터 생산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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