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작가 황석영을 가리켜 "우리시대 최고의 리얼리스트 작가"
"현장 중심의 철저한 문학운동가" 라고 부릅니다. 그는 항상 현장의 중심에 있었고 그가 선택한 역사적 입장이 항상 옳았다는 것은 지난 시대 우리 역사를 통해 명백히 확인되고 있습니다. - P3

지금 제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문민화와 민주화가 ‘완성‘ 되었다고하는 생각이 제법 많이 퍼져 있는 것과, 독일의 경험으로 비추어보아비용이 많이 드는 통일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 어차피 통일은 흡수통일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제도권 매체의 논리가 상식화되어 있는점입니다. - P6

또 하나의 걱정은 문화예술에서 보이는 보수화, 복고주의적 경향과심화된 또 다른 형태의 서구 모더니즘에의 편향이 반동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현상입니다. 하이는 6·25 이후에도 그랬고 4·19가 좌절된 5·16이후에도 그랬습니다. 그 파도를 솟음치고 신동엽과 김수영이 있었지요. 과도기의 반동적 현상은 그때마다 복고주의와 선진국의 문예사조를 동원하여 그
‘공허‘를 메꾸어 왔던 것이지요. - P7

그런 의미에서 저는 느닷없이 ‘새로움‘이라든가 특히 세대론‘ 따위를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요즈음의 신세대론은 옛날 70년대의 히피나 반전문화와 연관된 ‘청년문화론‘과도 달리, 일본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는 듯하며 예전이 명동 부근이었다면 (구로공단은 빠지고) 요즘은 압구정동과 홍대입구 정도로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 ‘청년문화론‘이 상업주의 + 새세대의 저항을 달래고 수렴하는과정에서 제도권 문화가 의미부여 + 길들임의 도식을 가졌던 것과 꼭같은 식으로 보입니다.
여러분! 분발합시다! 우리는 세계사의 대단원을 해결하고 이를 새로운 신명의 방식으로 지구 전체에 되돌려줄 사명을 가진 오늘 이땅의 작가들입니다.
1993. 8. 29 황석영 - P7

작년부터 재편성되기 시작한 모든 재야단체들이 조국의 민주화와 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조직의 결성 목표로 삼았고, 민주 자주 통일은 80년대의 전기간에 걸쳐서 우리가 추진하여 왔던 민주화 운동의내용 그 자체였다. 노대통령이 7. 7선언에서 밝힌 대로 남과 북은 동반자 관계이며 서로의 공동체적 동질성을 찾아야 하며 남북 교류를 밝힌 것으로서, 여기까지 이르는데 실로 20년 가까이 걸렸던 것이다.
- P16

입국 심사대 앞에 섰을 때, 관리는 통과비자가 찍힌 별지를 찬찬히들여다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디로 가는가?"
"왜 묻는가?"
나는 느긋하게 그에게 되물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통과비자가 아닌가?"
"그렇다. 너의 정부가 찍어 줬다.
"다음 행선지가 어디인가?"
나는 빙긋이 웃었다.
"말할 수 없다."
그는 두 손을 들어 보이면서 여권을 도로 내밀었다.
"좋다." - P18

사진보다 미남이요 - P19

"황석영 선생입네까?"
나는 정말 긴장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웃으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인차 차를 부를테니까 잠깐만 기다리기 요."
그가 어디론가 훌쩍 가버린 뒤에 나는 다시 공항 대합실에 혼자 남아서 이제는 되돌이킬 수 없는 북으로 가버리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가 묻지도 않고 내 가방을 끌고 나가서 검은 색의 대형 벤츠에다 실었다. 운전석의 사내가 푸념반 인사반 섞어서 내게 투덜거렸다.
"수요일부터 매일 공항에 나왔수다. 거 한번 만나기 힘들구만." - P20

"기래두 이 많은 인구를 멕이는 거이 간단치 않아요." - P21

그들은 자기의 것에 대한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닌지. 한편으로는 반쪽으로 갈라져서 아직도 아득바득 하고 있는 남북관계가 한없이 야속했다. 우리가 남을 침략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남의 땅을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라, 그저 같은 민족끼리 한번 오손도손 살아 보겠다.
는데 왜들 못살게 하는지 그것도 한 마을이나 다름없는 동북아를 조망해 보면 남들은 제각기 제 식구들 살리노라고 여념이 없고 은근히우리의 분단을 고소해 하는 것도 같은데, 어째서 우리는 아직도 철저하게 갈라져서 서로를 미워하고 살아가야만 하나. - P21

"지금부터 조국의 상공입네다." - P22

갑자기 뜨거운 것이 목구멍 너머에서 울컥 하더니 눈물이 눈가를적시고 저절로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 우리 땅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밟을 수 없던 국토가 지금 눈 아래 펼쳐져 흐르고 있었다. - P23

"황선생의 공화국 방문은 일단 비공식이기 때문에 행사도 조촐합니다. 량해하시라요." - P23

"황석영 선생님이 조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는 얼결에 꽃다발을 받고 나서 아이의 뺨에 뽀뽀를 해주면서 중얼거렸다.
"오, 그래 우리 딸 같구나, 고맙다."
- P23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 - P24

조촐한 환영파티 - P26

천리마표 냉장고 - P26

집필실에는 백과사전류며 여러 종류의 참고서적이 꽂힌 책장과 채상, 안락의자가 있고 텔레비전이 있으며 구석에 천리마표 냉장고가 있었다. 책상 위의 문갑을 열어보니 만년필 연필 볼펜 백지며 두툼한 노트와 메모수첩이 있었다.
냉장고 안을 열어 보았다. 역시 배 사이다, 귤 물, 금강산 오미자 물,
백두산 들쑥 물, 용성 맥주, 금강 생맥주, 그리고 광천수와 신덕 샘물이었다. 우유 과자와 가운데 크림을 넣은 샌드 비스킷, 젤리와 오랜만에 보는 가래엿이 있었다. 또한 투박한 배와 토종 사과가 두 알씩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샘물과 오미자 물을 가장 좋아했으며 엿이 좋았다. 엿은 누룩으로 단맛을 낸 예전의 구수한 맛 그대로였다.
방에는 모두 바닥에 개성산 화문석 돗자리가 정갈하게 깔려 있었다. 개성에서는 주로 이와 같은 종류의 토산품이나 경공업 제품이 나온다는데 옛날부터 생산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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