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 그람시 산문선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김종법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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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의 글에서는 지성과 비판 정신이 빛나지만, 번역자가 당시 시대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 그의 글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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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맛
히라마쓰 요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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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되고 나서 좋아진 음식들이 있다. 어렸을 때는 입에도 못 대던 신김치가 이제는 겉절이보다 더 좋아졌고, 밍밍하다고 싫어했던 두유가 이제는 달달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콩나물국밥, 깻잎, 마늘쫑무침처럼 어렸을 때는 먹어보려는 시도도 안 했다가, 어른이 된 이후에 먹어 보고 '생각보다 괜찮네' 싶어서 먹게 된 음식들도 있다. 이렇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세상의 다양한 맛들을 알게 되었고, 기억 속에 그 맛들이 쌓여 왔다. 일본의 작가 히라마쓰 요코의 음식 에세이집 『어른의 맛』은 어른이 되면서 알게 된 맛들, 세월이 지나면서 기억 속에 쌓여 온 맛들을 이야기한다. 

  코 끝이 찡해질 정도록 알싸한 와사비의 맛, 온갖 감칠맛이 응축된 말린 음식의 맛, 더운 여름날 마시는 시원한 맥주의 맛까지, 작가는 어른이 되어서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맛들을 예찬한다. 사실 나는 이런 맛들을 아직도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영영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작가가 이야기하는 일본 음식들 중 아는 것은 몇 개 되지도 않는다. 일본인 독자라면 공감했겠지만 나는 공감하는 대신 상상했다. "유부의 안쪽으로부터 맛이 스며 나온다. 온화해 보이지만 야만적이다. 조용한 척하고 있지만 수다쟁이다. 변변찮아 보이는 모양인데 무척이나 풍요롭다." 음식 하나에서도 그 음식이 자아내는 맛들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맛의 묘사 덕분에 맛을 상상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의 계절감과 분위기를 생생하게 살려낸 묘사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이 자아내는 열기와 정감이 흐르는 이자카야(일본식 술집)부터 비를 맞아 녹음이 더욱 짙어진 여름날 산골 여관, 온갖 길거리 간식들이 모여 맛있는 냄새를 내는 축제날 거리까지. 무더운 여름날에 읽어서 그런지 특히 여름에 먹는 음식들 이야기에 더 몰입이 되었다. 특히 어린 시절 여름 방학 때 먹었던 간식들 이야기에서는 여름 특유의 청량감이 느껴졌다.


여름에 먹는 간식 미츠마메. 삶은 완두콩에 우무와 꿀을 넣어 만든다. 

사진 출처: https://dolcevita-sana.blogspot.com/2015/07/blog-post_11.html


"낮잠에서 깨면 반드시 차가운 보리차를 마셨다. ... 컵 표면이 순식간에 물방울을 두른다. 잠시 기다린 다음 손가락을 대고 직 그어 투명한 창을 만든다. ... 오후 세 시의 간식은 수박, 아이스캔디. 빙수, 차가운 찹쌀 경단, 미츠마메(みつ豆, 삶은 완두콩에 깍둑썰기 한 우무를 넣고 꿀을 친 음식-역주). 이것들 중 하나를 번갈아 내주셨는데, 그 중에서도 미츠마메가 나온 날은 뛸 듯이 기뻤다. 우무의 사각 단면이 정오를 조금 넘긴 여름빛에 반짝였다."

  미츠마메라는 음식을 잘 모르는데도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간식을 먹을 때 느끼는 여유와 상쾌함, 청량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튀김을 튀겨내는 세세한 타이밍에 맞춰 함께 튀김을 먹으며 이야기하려면 두 사람이 적당하고, 세 명 이상은 무리라는 부분에서는 "아니, 뭘 이렇게까지 해야 돼?"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예전에는 거래처 손님을 대접할 때 어느 계절에는 어느 식당에 가고, 어떤 것을 주문해야 한다는 것까지 신입사원에게 깐깐하게 가르쳤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마음 맞는 사람끼리만 먹고 마시니 그럴 수가 없다는 어느 중년 회사원의 이야기도 공감되지는 않았다. 그런 가르침에 얽매이기보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 맞는 사람들과 먹는 것이 더 좋으니까. 하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배려하면 뭘 골라야 할지 정해진다는 마음가짐은 이해가 되었다. 이런 일본적인 정서는 이름도 낯선 일본 음식들만큼이나 낯설지만, 책을 통해 다른 누군가의 정서를 이해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일 것이다.

  일본적인 정서가 책 전체에 짙게 배어 있음에도 음식을 통해 작은 위로와 행복, 즐거움을 얻는다는 메시지에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음식으로 누리는 작은 호사에 공감했다. 비싼 음식을 먹는 것이 호사가 아니다. 평소에는 가격이나 칼로리 때문에 선뜻 손을 대지 못했던 음식들을 어느 날 마음껏 먹어보는 것. 이런 호사에는 "평소 해 오던 억제와 인내를 힘껏 걷어치우면서" 느끼는 쾌감이 숨어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숨막힐 듯 단조로운 일상에서 이런 작은 기쁨이 막혀 있던 숨을 틔워주곤 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다양한 음식을 먹어 왔고, 다양한 맛을 알게 되었다. 그 맛들이 쌓여 우리의 추억뿐만 아니라 우리 자체를 이루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살아가는 것은 맛을 알아가는 것, 맛이 쌓여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쌓여 온 맛들이 소중하고, 앞으로 만날 맛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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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맛
히라마쓰 요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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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을 조금씩 음미하며 먹듯이 조금씩 천천히 읽었다. 책 속 일본 음식을 잘 모르지만 음식으로 얻는 작은 기쁨과 위로, 행복에 공감했다. 처음부터 한국어로 쓰여진 글인 것처럼 깔끔한 번역이 작가의 정갈한 문체를 잘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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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창작 - 동시대 미술의 형식과 의미
테리 바렛 지음, 이지연.강주희 옮김 / 미진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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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늘 염려되었던 것은 내가 조형적인 측면을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나는 미술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미술 작품의 조형적인 측면보다는 작품과 관련된 배경 지식에 더 강했고명도와 채도도 구분하지 못했을 정도로 조형적인 측면에 무지했다미술가는 조형적인 요소들을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데 이렇게 조형적인 면에 소홀해서야 미술사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까그 미술가가 어떻게왜 이러저러한 조형 요소들을 사용해 작품을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까그래서 미술 창작의 지침서인미술 창작을 읽게 되었다이 책은 미술을 창작하는 학생들을 위한 책이지만미술가의 창작 과정을 이해하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니비아 곤잘레스, <어린 천사>, 1995.

 "인물의 정중앙을 관통하는 가상의 선은 양쪽을 정확히 대칭하여 나눈다. ... 인물의 내리뜬 눈과 은은한 색조는 대칭 구성과 어우러지며 명상에 잠긴 고요한 느낌을 강조한다."(p. 187-188.) 이렇게 이 책은 작품의 의미를 표현하는 데 조형 요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실제 작품들을 예시로 들면서 설명한다.


  내가 바랐던 대로 이 책은 미술 작품의 조형적인 측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이 책의 열세 개 챕터 중 여덟 개가 조형 요소를 다루고 있을 정도로 이 책은 조형 요소에 많은 비중을 쏟고 있다작품의 소재와 물감돌 같은 재료와 회화조각 같은 미술 형식 모두를 포함하는 매체, 작품의 물리적 구조인 형식, 미술가에게 영향을 미친 개인적 경험시대적 배경 등을 뜻하는 맥락이 합쳐져 작품의 의미를 형성하는데이 요소들은 작품 속 조형 요소를 통해 표현되거나 조형 요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조형 이론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양감질감 같은 조형 요소들이 실제 작품들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작품의 의미를 전달하고 표현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직접 보여주고 있다덕분에 미술 작품의 조형적인 면을 보는 눈을 좀 더 키웠다.


마틴 퓨리어, <부커 T. 워싱턴을 위한 사다리>, 1996. 부커 T. 워싱턴은 노예로 태어나 사회적 평등 운동의 지도자로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시민권을 요구하기보다 교육을 통해 흑인들을 진보시키려고 했다. 워싱턴의 이러한 전략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보기에도 위태로운 사다리와 같다고 퓨리어는 비판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더 높은 곳을 향하는 워싱턴의 의지를 찬양하는 의도일 수도 있다. 이렇게 미술 작품의 해석은 다양한 방향으로 열려 있다.

  그리고 미술가들이 어떤 태도로 창작과 비평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들을 읽으면서미술가들과 미술 작품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미술가는 작품의 구성 요소들을 통해 작품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만감상자 스스로 작품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해석의 폭을 열어놓아야 한다미술가는 자신의 작품이 자신이 말하려는 것과 정반대로 해석되지 않도록 어느 정도 해석의 범위를 좁히지만아예 닫아두어서는 안 된다미술가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설명을 뒤집어보면 감상자인 내가 어떻게 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된다그리고 학생들이 만든 실제 작품에 대한 다른 학생들의 비평을 보면서내 눈에는 그저 사물들의 집합처럼 보이는 미술 작품이 얼마나 많은 해석들을 낳을 수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론적인 팁 외에도 선배 미술가들이 남긴 조언들을 한 챕터에 모아 놓았다이들의 조언은 미술 창작에 대한 것이지만 나에게도 동기를 부여하고 용기를 주었다. “여러분의 작품과 소통하는 사람이 단 두 명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불쾌해하지 마세요. ...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았는지얼마나 많은 리뷰를 받았는지로 인해 맘 상해하지 마세요여러분의 작품은 계속 존재할 것이고세상에 영향을 미칠 테니까요또한 여러분의 작품이 주목을 받든 받지 못하든끊임없이 세상이 변화하는 데 영향을 줄 겁니다.” 오노 요코의 이 말은 미술 작품뿐 아니라 뭔가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사람들각자의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용기를 준다그러니 내 자신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물론 미술 창작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고그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것이다하지만 미술 창작자가 아닌 감상자인 내게도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미술에 대한 내 눈을 조금은 더 넓혀주었으니. ‘이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책이야라고 생각되는 책들도 이렇게 종종 뜻하지 않은 선물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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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창작 - 동시대 미술의 형식과 의미
테리 바렛 지음, 이지연.강주희 옮김 / 미진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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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가 아닌 감상자의 입장에 있는 나로서는, 미술 작품의 창작 과정과 작품 자체를 좀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론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작품들을 예시로 들고 분석해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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