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 - 경계와 일탈에 관한 아홉 개의 사유
강상중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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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외라는 개념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이론을 구성하는 데 있어 들어맞지 않는 퍼즐 조각이자 골칫거리일 것이다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새롭게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예외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고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막을 수 없는 변화의 계기로 보고 수용하는 사람들이 있다예외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이 책은 역사학정치학경제학법학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전문가 아홉 명이 예외라는 화두로 각자 풀어낸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소수의 특수한 사례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예외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들을 지닐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저자들은 예외가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과학의 입장에서 살펴보자면하나의 과학 법칙이 정립된 이후 그 법칙에 대한 예외가 어김없이 나타난다대부분의 예외는 기존의 법칙 안에 포섭되지만어떤 예외는 기존의 법칙을 대체하는 새로운 법칙이 된다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과학은 발전해 간다또한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즉 예외가 되지 않으려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독립적인 사고를 하는 예외적인 사람들은 역사의 변화를 일으키는 도화선 역할을 한다법과 예법제도가 옳지 못하면 그것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는 대로 행동하라고 주장했던 공자가 그런 예외적인 인물의 대표라고 불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외를 두려워하고 배척하는 것이 공연한 것만은 아니다저자들은 예외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무시하지 않는다평범한 중학생이 이유 없이 어린아이를 죽인 사건처럼 예외로서의 극단적인 악도 존재한다도덕을 중시하는 성리학 사회였던 조선에서조차시신을 이용해 무고한 사람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고 돈을 갈취하는 도뢰(圖賴)’라는 예외적인 범죄가 성행했다박정희의 유신정권에서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헌법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예외 상태의 통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책은 이렇게 위험한 예외들에서도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관념에 얽매이고 당장 눈앞의 도뢰 사건을 해결하는 데 급급해도뢰가 내포하고 있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에 대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그러나 우리는 예외 상태의 통치였던 독재를 통해통치 권력을 규제하는 절대적 규범의 존재 자체가 문제를 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박정희라는 한 인격이 통치 권력을 규제하는 절대적 규범이 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계급민족이념 등 어떤 절대적인 규범이 통치 권력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다절대적 규범이 권력을 작동시키게 하는 대신 여리고 나약한 존재들이 상위의 권위 없이 연대하는 것이것이 우리가 예외 상태에서 배우는 정치적 상상력이다.

 

   한편 예외는 배제당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정치학자 박상훈은 한국의 지역주의를 통해예외와 배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왔던 한국의 정치 현실을 비판한다그는 지역주의라는 해석의 틀을 악용해 사람들을 분열시켜 온 세력들에 맞서지역을 넘어 실업자비정규직이주노동자 등 더 많은 예외와 배제의 대상을 돌아보자고 이야기한다기획자의 말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까닭은 예외들의 희생 덕분이고우리 자신 또한 언제든지 예외와 배제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예외를 배제당하는 존재로 볼 때예외를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우리나라의 세월호 사건 등 최근 예외적인 사태들이 늘어나고 있다그리고 성소수자이민자 등 예외적인 존재들의 존재감도 전 세계적으로 점점 커지고 있다그러나 국가는 예외적인 사태에서 어떤 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고사람들은 예외적인 존재들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히 드러낸다이렇게 계속해서 예외적인 것들에 대해 아무 고찰 없이 외면하거나 거부한다면우리는 예외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도 못하고함께 살아가는 법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 책은 말한다우리는 예외를 막을 수 없고예외를 잊어서도 안 된다고그리고 묻는다예외를 대하는 당신의 태도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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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 - 경계와 일탈에 관한 아홉 개의 사유
강상중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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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연구에서 애를 먹이기도 하고 발견의 실마리가 되기도 하는 특수 사례,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악, 소외당하는 소수자들까지 예외의 다양한 의미들에 대해 고찰해 본다. 지면의 한계상 깊이 있는 고찰까지 하지는 못하지만, 생각의 단초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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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은 강간이다
조디 래피얼 지음, 최다인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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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간은 강간이다매우 당연한 이야기이다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당연한 이야기를 부정하는 사람이 많다.  2017년 7월, 한 강간 피해자가 자살했다.  그녀는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 학생들이 사용하는 앱 안의 익명게시판에서 자신이 겪어온 성폭행 피해 사례를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피해자 코스프레 한다", "꽃뱀 같고 역겹다", "남자한테 꼬리쳤는데 넘어오지 않으니 자존심이 상해 엿먹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란 단어가 아깝다", "공론화 좀 그만 시켜라"라는 악플들이 달렸다. 9개월이 넘도록 이런 비난에 시달린 그녀는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강간을 부정하는 행동이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되고, 끝내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미국의 여성 범죄 전담 변호사 조디 래피얼이 쓴 『강간은 강간이다』는 강간은 강간일 뿐이라는 것을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증거를 통해 논증한다. 우리보다 성 문화에 있어서는 더 진보적일 것 같은 미국에도 강간 피해자들의 고발을 허위 신고로 치부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성폭력과 가정폭력은 인격장애가 있는 여자들이 피해자인 척하려고 애쓴 결과다", "강간 신고는 여성들의 생리 증후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여성들을 깊이 불신하는 남성들이 있다. 심지어 여성들 중에도 강간을 강간으로 인정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극단적인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성적 자유를 누리려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강간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보수주의적인 여성들도 여성이 헤퍼서 일어난 일이라며 강간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돌린다. 


  이들은 오류가 있는 통계 자료를 인용한 자료들을 반복해서 인용하며 허위 강간 신고의 비율을 부풀려서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최근 정정된 통계 자료는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자료들만 선택해서 근거로 삼는다. 이들의 주장에 반박하려면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에, 저자는 강간 피해자 보호단체들이 정확하지 않은 통계 자료를 근거로 하는 것도 경계한다. 그녀는 수많은 강간 연구와 통계를 꼼꼼히 검토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확인된 수치만을 근거로 든다. 그 결과, 허위 강간 신고는 강간 신고 전체 중 2~8퍼센트에 불과하고, 그 중에서도 피해자의 신고 철회에 근거를 둔 경우가 많았다. 피해자의 신고 철회는 용의자의 협박이나 수사과정에서 겪는 압박감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경찰과 법정은 피해자를 허위 신고자로 의심할 때가 많고, 심지어 피해자의 성기 사진을 법정에서 공개하거나 피해자에게 강간 당시 촬영된 동영상을 보라고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큰 상처를 입고 기소를 포기하는 피해자들이 많다. 


  저자는 통계 분석과 함께 다섯 명의 피해 여성들의 사례도 함께 이야기한다. 저자는 피해 사례를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준다.  책에 소개된 피해자들 또한 사법 당국이나 주변의 몰이해와 비난에 상처 받았지만, 강간으로 인해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고 강간에 대한 사람들의 몰이해에 반박한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 책은 강간을 통계상의 수치로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체험으로 이해하게 한다. 


"강간은 나쁜 섹스가 아니에요.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강간은 아예 섹스가 아니에요. 섹스는 합의하에 이루어지고 강간은 그렇지 않죠. ...강간범에게는 섹스일까요? 강간범은 섹스를 섹스로 이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강간은 섹스를 무기로 사용하는 행위죠." 


“강간은 그 자체로 충분히 끔찍해요. 그런 사건을 겪은 피해자가 사람들, 가해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자기를 의심하고 혐오하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되는 거잖아요. 주변에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그 사람 편이라고 알려주세요. 명백히 잘못된 일을 목격했다면 그렇다고 말해주세요. 침묵을 지키는 것은 중립이 아니에요.”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면은 최소화되었지만, 강간당했다는 사실마저 의심당하고 피해자들이 몰이해와 비난이라는 2차 가해를 당하는 상황, 피해자들이 한 인간이라는 사실보다는 자신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급급한 강간 부정론자들의 모습 자체가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직시해야 우리는 강간이 부정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강간이 부정당하는 세상에서 강간범들은 자유를 얻고 여성들은 더 큰 위험 속에서 살아간다. 저자가 말하듯이, 강간은 강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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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은 강간이다
조디 래피얼 지음, 최다인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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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이라는 주제를 자극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준다는 점에서 피해자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볼 수 있다. 객관적인 통계와 근거로, 허위 강간 신고의 비율이 높다며 강간의 위험성을 간과하는 주장들을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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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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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포함

 『해리 포터』에서는 기차역 한쪽 벽 너머에 마법의 승강장이 숨어 있고, 『나니아 연대기』에서는 옷장 속에 환상의 세계 나니아로 가는 통로가 있다.『위저드 베이커리』는 우리나라 어느 도시의 어느 골목에 있는 빵집 너머에 있는 마법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그러나 『해리 포터』와 『나니아 연대기』에서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주로 마법의 세계 안에서 펼쳐지는 반면,  『위저드 베이커리』 속 주인공은 현실의 공간 안에서 현실과 부딪치는 마법을 본다. 현실은 말할 것도 없이 가혹하고, 마법도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청소년 소설이면서도 어른을 위한 잔혹동화이기도 하다. 

  제목 그대로 마법사의 빵집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 책은 마법의 빵보다는 마법의 빵을 둘러싼 사람들의 욕망과 실수, 그로 인한 가혹한 대가, 그리고 주인공 소년의 어두운 성장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소년은 위저드 베이커리에 숨기 전에도 후에도 아동성폭행, 아동학대, 자살, 스토킹 등 현실의 어두움과 마주친다. 사람들은 마법이 자신의 소망을 이루어지고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를 만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인간에 비하면 전지전능한 것 같은 마법사 점장도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마법과 환상은 소년도 손님들도 마법사 자신도 구원하지 않는다. 소년과 마법사에게 위안과 구원을 준 것은 서로를 아끼는 마음과 자신 앞에 놓인 고난들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소년이 타임 리와인더 쿠키로 시간을 되돌리지 않았을 때의 결말 속에 작은 희망이 숨어 있을 것이다. 소년이 가족들이나 손님들의 어두움을 다시 마주친다고 해도, 다시 만난 마법사, 파랑새와 함께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소년이 본 열 가지가 넘는 마법의 빵 중 그 효과가 손님들에게 나타난 이야기가 생각보다 적은 것은 아쉽다. 시험이나 출장 때 마인드 컨트롤을 돕는 마인드 커스터드 푸딩, 화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주는 메이킹 피스 건포도 스콘(개인적으로 가장 쓰고 싶은 빵이다.), 학교나 회사에 자기 대신 도플갱어가 나가게 만드는 도플갱어 피낭시에까지 실제 효과가 나타난 이야기를 좀 더 썼다면 이야기가 더 풍성해졌을 것이다. 체인 월넛 프레첼을 산 여성이 경솔했던 것은 맞지만, 헤어진 남자친구의 스토킹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방어 수단조차 주지 않고 혼자 책임지라고 한 것(마법사는 자신의 실수로 인해 일어난 살인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니었고, 적어도 자신을 방어할 수단들을 갖추고 있었다.), 여성 캐릭터들은 희생자(주인공의 친어머니, 주인공의 이복여동생)가 아니면 조력자(파랑새), 악역(진상 손님들, 배선생)일 뿐이라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환상과 현실을 엮어나가는 솜씨와 잔혹한 현실과 마법 속에서 작게나마 빛나는 희망은 여전히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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