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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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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를 리셋하듯이 답답한 세상을 리셋해 버리고 싶을 때 이 책의 과격한 제목에 끌리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망할 놈의 세상 리셋해 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사람들이 왜 '이 놈의 세상 갈아엎어 버려야지'라고 말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갈아엎을 수도 리셋할 수도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격한 제목과 달리, 저자는 분노하지도 않고 냉소하지도 않고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국민의 힘으로 부패한 권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아직도 희망은 멀게만 느껴진다. 정치, 경제, 외교, 국방 등 여러 분야에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이 계속 튀어나오고 있고, 경제난, 취업난은 도무지 끝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공공연해지고 있다. 이처럼 지금의 한국은 희망이 없는 사회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희망이 없기에 모든 것을 아예 백지 상태로 돌리고 싶다고 소망하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희망이 없어졌을 때의 사람들의 반응을 두 가지로 나눈다. 무기력해지거나 분노하거나. 세상은 사람들에게 자기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 '노오력'을 하라고 요구하지만, '노오력'하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쉽게 배신당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오력'하면서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면서 소진시키다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노오력'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타인들에게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들이 노력을 하지도 않으면서 특혜만 받는다고 여기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조치들이 불공정한 특혜라고 생각한다. 무기력과 분노는 개인의 내면을 잠식하고 때로는 타인을 혐오하고 폭력을 가하게 만들면서 개인들을 병들게 한다. 

  저자는 개인을 병들게 하는 것이 사회의 무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심리에서 시야를 넓혀 개인들이 '리셋'을 바라게 만드는 사회를 살펴본다. 중세 국가는 '죽게 하고 살게 내버려 두는 권력', 즉 공개처형을 통해 권력의 위엄을 보이고 사는 문제는 개인이 각자 알아서 하게 두는 국가였다. 반면 근대 국가는 개인의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질병, 경제적 어려움, 재난에서 개인의 생명을 지키고 돌보았다. 그러나 저자가 보는 지금의 한국은 '살게 내버려 두고 죽게 내버려두는 국가'이다.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사건은 질병과 재난 앞에서 국민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의 무능함을 보여주었다. 구의역에서 실습생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달려오는 전동차에 치여 숨졌을 때, 사고 원인은 보호 조치 없이 실습생을 현장에 밀어넣은 업체가 아닌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실습생의 탓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굶어죽음과 언제나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생존, 두 가지 죽음 앞에 놓여 있다는 저자의 말에서 우리가 얼마나 큰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사적인 관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저자는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대다수가 말 한 마디 잘못했다 SNS상에서 위험에 처했던 경험 때문에 SNS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SNS에서 글을 쓰거나 댓글을 달았을 때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공격을 당하고, 그 뒤로는 '눈팅'만 하거나 댓글 하나를 쓸 때도 자기검열을 하게 되어버린다.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연인도 데이트 폭력이나 데이트 강간, 리벤지 포르노(연인과의 성행위를 녹화했다 헤어졌을 때 복수하려고 인터넷에 영상을 유포하는 행위)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 공동세계에 참여하고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 자체조차 위험해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은 안전, 사회적 인간으로서 죽은 상태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존엄과 안전 모두를 요구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단순히 생물학적 안전을 위해 가만히 있는 삶이 아닌,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의 의견과 활동의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저자는 리셋 대신 전환을 꿈꾼다. 미국의 트럼프와 필리핀의 두테르테는 비상식적일 정도로 과격한 정치 노선을 보여주었고, 사람들은 정치판 자체를 리셋할 것이라는 기대로 그들을 선택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고 리셋이나 혁명 뒤에도 거의 모든 것은 과거와 다를 것 없이 지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 이전에 미리 혁명 이후를 살아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혁명을 완성하기 전에 혁명 이후, 민주주의적인 삶의 일부라도 조금씩 미리 경험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에게 말을 걸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자고 이야기한다. 물론 낭만적인 환상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소통의 경험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협력이 획일적인 동원이나 개인적인 노력들의 기계적 연결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성과를 내기 위해 진정한 협력이라기보다는 기계적인 분업에 가깝고, 독박을 쓰는 성실한 학생과 무임승차자로 나뉘는 경우가 많은 조별과제가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그리고 위로와 공감을 넘어 상대에게 새로운 제안을 계속하며 상대의 참여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저자는 과격한 리셋 대신 점진적이지만 꾸준한 전환을 꿈꾼다. 저자는 광장의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점으로서 협력하되, 자신과 나란히 점으로 있던 다른 이의 얼굴, 그가 지닌 나와 평등한 존엄을 기억하자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해서 대의 민주주의가 멈춰섰던 곳을 넘어서 더 멀리 나아가는 꿈을 꾸는 것이다. 무기력과 분노, 혐오가 들끓는 세상, 희망과 절망이 엇갈리면서 조증과 울증을 오가게 만드는 세상에서 저자는 좀 더 길게 보고 평상심을 회복하며 세상을 회복시켜 가자고 주장한다. 그의 꿈이 '망할 놈의 세상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를 하루에도 몇 번씩 외치던 사람들의 내면뿐만 아니라 세상 자체를 회복시킬 실마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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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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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하지 않고는 희망이 없을 것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하는 희망. 현실을 직시하고 리셋 없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가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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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의 시대 - 요리는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레이철 로던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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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식의 시대』라는 제목만 보면 사람들의 탐식 때문에 지구의 많은 동물들이 대량학살당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책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원제인『요리와 제국-세계사에서의 요리(Cuisune and Empire: Cooking in World History)』 그대로이다.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2010년대 현재까지 요리의 세계사를 폭넓게 살펴보고 있다. 전 시대와 전 세계의 음식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 내용이 꽤 방대하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하나, 음식의 평등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 이다. 


  이 책은 고대 세계에서 요리와 식사를 지배하는 규칙은 세계의 질서에 따라서 식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군주는 인간 세상의 위계질서의 정점이자 우주의 축으로서 가장 훌륭한 요리를 먹었다.고귀한 신분은 고급 요리를 먹고 미천한 신분은 하급 요리를 먹는 음식의 구별은 19세기 말까지 계속되었다. 심지어 19세기 초인 1806년에도 "가난이 없이는 노동도 없고, 노동 없이는 부도, 세련된 문화도, 안락함도,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혜택도 없다."면서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를 통해 세계 각지의 각종 식재료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식품 가공, 냉장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음식의 평등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근대 이전에 가난한 농민들은 멀건 죽 같은 하급 요리로 간신히 연명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부드러운 곡물 음식(흰 빵이나 흰 쌀밥), 고기, 유제품, 달콤한 과자들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고급 요리만큼 비용이 많이 들지 않지만 기름지고 부드러운 음식,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중급 요리가 널리 보급된 것이다. 물론 여전히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국민의 대다수가 하급 요리로 연명해야 했던 전근대와 비교하면 음식의 평등이 실현되었다고 할 만하다.


  저자는 현대의 음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권력자가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이유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제한하는 세계로 역행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그래서 옛날 음식들이 현대의 음식들보다 순수하고 전통적이었다는 낭만적인 환상을 깨뜨리려고 한다. '국민 요리'로 생각되는 음식들은 사실 20세기 중반 강대국들에서 여러 나라들이 독립할 때, 각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음식을 두고도 다른 두 나라가 서로 자국의 국민 요리라고 다투기도 한다. 유구한 전통을 지닌 것 같은 음식들도 관광객들을 끌기 위해 더 고급스러운 재료를 쓰는 등의 개량 과정을 거쳤다. 현대인의 조상들 대다수가 먹었던 '순수하고 전통적인 음식'은 사실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먹는 하급 요리였을 것이다. 저자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음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음식의 평등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방대한 내용이 나열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조금은 읽기 버거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만큼 음식의 역사를 폭넓게 바라보는 책도 드물 것이다. 저자가 서양인이니만큼 서양의 음식사에 더 치중되어 있고, 동양인들의 주식으로서 음식 문화에서 큰 영향을 미친 밥에 대한 내용이 의외로 적은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음식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통해 세상이 평등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다. 그리고 '오랜 전통을 지닌 국민 음식'이라는 고정 관념을 깨는 시각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정치사, 경제사보다 일상적인 것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 영미권 저자가 쓴 책이라 중국 저자의 이름은 중국어 발음대로, 책은 영문 번역으로 나왔을 텐데도 고대 중국인의 이름, 중국 서적의 이름의 한자를 찾은 수고는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pseudo'(-의 작품이라고 전해졌지만 사실은 아닌 것으로 밝혀진)를 '프세우도'로 번역하고, 세계 인구를 600억이라고 번역한 것은 너무했다. 영어사전을 찾아보거나 기본 상식을 떠올렸더라도 이런 오역은 없었을 것이다. 나머지 부분의 번역은 무난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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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의 시대 - 요리는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레이철 로던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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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판의 제목을 보면 현대인의 탐식을 비판하는 책 같지만,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음식을 개발해 온 역사를 살펴보는 책이다. 달콤하고 부드럽고 기름진 음식, 육류가 모든 사람이 즐기는 음식이 되어가면서 음식의 평등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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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란 어떤 그림인가
조용진, 배재영 지음 / 열화당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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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미술사를 공부했지만 시각의 폭을 넓히기 위해 한국미술사나 동양미술사에 대한 기본 지식도 갖추어야겠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미술사와 중국미술사 강의도 들었지만 몇 년이 지나니 잊어버린 게 많아, 한국미술사, 동양미술사에 대해 기본 지식을 다시 쌓고 싶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이 책 『동양화란 어떤 그림인가』였다.


(위) 박수근, <소와 유동(遊童)>, 1962, 캔버스에 유채. (아래) 박래현, <작품 8>, 화선지에 채색.


  이 책은 동양화에 대한 백문백답을 통해 동양화에 대한 기본 지식을 전달한다. 저자들은 우선 '한국화가 어떤 그림인가'를 정의한다. 토속적인 소재를 다루었지만 서양 회화의 재료인 캔버스와 유화 물감을 사용한 박수근의 작품과, 서양의 추상화와 비슷한 모습이지만 한국화 재료인 화선지를 사용한 박래현의 작품 중 어느 것이 한국화일까? 한국인이 한국 고유의 정서에 따라 그렸다면 재료의 종류와 상관 없이 한국화로 볼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저자들은 한국화의 전통 양식 특성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회화 재료와 도구를 사용하면서 한국적 정서를 표현한 작품을 한국화로 본다고 말한다. 저자들의 분류에 따르면 박수근의 작품은 서양화, 박래현의 작품은 한국화이다.

  또한 '동양화'는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가 주관하는 <조선미술전람회>의 전통 회화 부문을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조선화로 부르기 꺼림칙했기 때문에 만들어냈던 신조어라는 것을 밝힌다. 60년이 지난 1982년부터 '한국화'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지만, 아직 한국적 그림 양식이 자리잡히지는 못했다는 것도 짚고 넘어간다. 이 책은 한국화뿐만 아니라 한국화에 영향을 준 중국 미술, 동양 미술 중 독특한 자기 영역을 지니고 있는 일본 미술도 같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동양화'란 어떤 그림인가라는 제목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위) 책의 아랫변보다 윗변이 더 길게 그려진 책거리 그림. 원근법에 맞지 않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마인데르트 호베마,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길>, 1689. 정확한 원근법을 따라 그려졌다.


  이 책에서는 서양화와의 대비를 통해 동양화의 특성들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미술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시각이 서양 미술 쪽에 치우쳐져 있기 때문에, 동양화는 동양의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멀리 있는 사람이 더 크게 그려져 있는 등 서양화의 원근법에는 어긋나게 그려진 동양화는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 사물을 관찰하고 원근법과 명암법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서양화와 달리, 동양화는 화가가 생각한 것이나 아는 것, 관념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양화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 자식이 많은 것을 상징하는 석류 등 상징성을 지닌 소재들을 조합해 뜻을 전달하기 때문에 읽는 그림이라고 한다. 서양화에도 시간을 상징하는 낫을 든 노인, 허영을 상징하는 거울처럼 상징적인 도상들로 이루어진 알레고리화가 있다. 그리고 구도나 색감, 데생력 등 미적인 요소로 동양화를 감상하는 것이 그림 속 상징들을 통해 그림을 읽는 전통적인 안목이 크게 훼손된 것이라고 하는데, 동양화도 '미'술에 속하는데 미적인 요소로 감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소 이분법적인 느낌이 들긴 하지만, "(동양화가 서양화와 퓨전을 이루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 문화적 흐름에 적응한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양화와 서양화가 서로 개성 없이 같아진다면 이 얼마나 재미없는 일이겠는가."라는 저자의 말에서 동양화만의 개성과 전통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동양화에 대해 미술사적 지식만 알고 싶은 사람으로써는 문방사우 장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종이, 붓, 먹, 벼루부터 표구용 풀까지 어떤 재질로, 어떤 공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보관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하나 하나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동양화를 직접 그릴 생각도 없는데 왜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동양화를 직접 그리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실용적인 부분일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동양화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것이다.


  그 밖에도 먹으로만 그리면 수묵화이고 색을 사용하면 채색화인가, 민화에는 왜 낙관이 없을까, 동양화의 여백은 다 그리고 난 나머지로서의 여백인가 등 흥미로운 질문들이 독자들을 동양화에 대한 기본지식으로 이끈다. 다채로운 동양화들의 도판들은 읽는 재미에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그림과 함께 읽는 동양화의 기본 지식 백과사전 역할을 충실히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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