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은 강간이다
조디 래피얼 지음, 최다인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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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간은 강간이다매우 당연한 이야기이다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당연한 이야기를 부정하는 사람이 많다.  2017년 7월, 한 강간 피해자가 자살했다.  그녀는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 학생들이 사용하는 앱 안의 익명게시판에서 자신이 겪어온 성폭행 피해 사례를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피해자 코스프레 한다", "꽃뱀 같고 역겹다", "남자한테 꼬리쳤는데 넘어오지 않으니 자존심이 상해 엿먹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란 단어가 아깝다", "공론화 좀 그만 시켜라"라는 악플들이 달렸다. 9개월이 넘도록 이런 비난에 시달린 그녀는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강간을 부정하는 행동이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되고, 끝내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미국의 여성 범죄 전담 변호사 조디 래피얼이 쓴 『강간은 강간이다』는 강간은 강간일 뿐이라는 것을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증거를 통해 논증한다. 우리보다 성 문화에 있어서는 더 진보적일 것 같은 미국에도 강간 피해자들의 고발을 허위 신고로 치부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성폭력과 가정폭력은 인격장애가 있는 여자들이 피해자인 척하려고 애쓴 결과다", "강간 신고는 여성들의 생리 증후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여성들을 깊이 불신하는 남성들이 있다. 심지어 여성들 중에도 강간을 강간으로 인정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극단적인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성적 자유를 누리려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강간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보수주의적인 여성들도 여성이 헤퍼서 일어난 일이라며 강간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돌린다. 


  이들은 오류가 있는 통계 자료를 인용한 자료들을 반복해서 인용하며 허위 강간 신고의 비율을 부풀려서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최근 정정된 통계 자료는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자료들만 선택해서 근거로 삼는다. 이들의 주장에 반박하려면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에, 저자는 강간 피해자 보호단체들이 정확하지 않은 통계 자료를 근거로 하는 것도 경계한다. 그녀는 수많은 강간 연구와 통계를 꼼꼼히 검토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확인된 수치만을 근거로 든다. 그 결과, 허위 강간 신고는 강간 신고 전체 중 2~8퍼센트에 불과하고, 그 중에서도 피해자의 신고 철회에 근거를 둔 경우가 많았다. 피해자의 신고 철회는 용의자의 협박이나 수사과정에서 겪는 압박감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경찰과 법정은 피해자를 허위 신고자로 의심할 때가 많고, 심지어 피해자의 성기 사진을 법정에서 공개하거나 피해자에게 강간 당시 촬영된 동영상을 보라고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큰 상처를 입고 기소를 포기하는 피해자들이 많다. 


  저자는 통계 분석과 함께 다섯 명의 피해 여성들의 사례도 함께 이야기한다. 저자는 피해 사례를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준다.  책에 소개된 피해자들 또한 사법 당국이나 주변의 몰이해와 비난에 상처 받았지만, 강간으로 인해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고 강간에 대한 사람들의 몰이해에 반박한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 책은 강간을 통계상의 수치로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체험으로 이해하게 한다. 


"강간은 나쁜 섹스가 아니에요.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강간은 아예 섹스가 아니에요. 섹스는 합의하에 이루어지고 강간은 그렇지 않죠. ...강간범에게는 섹스일까요? 강간범은 섹스를 섹스로 이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강간은 섹스를 무기로 사용하는 행위죠." 


“강간은 그 자체로 충분히 끔찍해요. 그런 사건을 겪은 피해자가 사람들, 가해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자기를 의심하고 혐오하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되는 거잖아요. 주변에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그 사람 편이라고 알려주세요. 명백히 잘못된 일을 목격했다면 그렇다고 말해주세요. 침묵을 지키는 것은 중립이 아니에요.”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면은 최소화되었지만, 강간당했다는 사실마저 의심당하고 피해자들이 몰이해와 비난이라는 2차 가해를 당하는 상황, 피해자들이 한 인간이라는 사실보다는 자신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급급한 강간 부정론자들의 모습 자체가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직시해야 우리는 강간이 부정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강간이 부정당하는 세상에서 강간범들은 자유를 얻고 여성들은 더 큰 위험 속에서 살아간다. 저자가 말하듯이, 강간은 강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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