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농서 - 이름 없는 영웅들의 비밀 첩보 전쟁
마보융 지음, 양성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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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책을 알게 되고 읽게 되는 것이 즐겁다. 이 책의 제목만 먼저 봤다면 '그냥 중국 역사 소설이구나' 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런데 대만 여행을 하면서 예전에 읽었던 대만 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이 생각났고,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으로 검색하다 추리 소설 전문 잡지 『미스테리아』 2024년 11월 호에서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과 함께 다룬 중국 소설들 중 흥미가 가는 것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중 한 권이 이 책 『풍기농서』였다. 어린 시절부터 『삼국지』를 좋아했고 『삼국지』의 등장인물 중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제갈량인데, 제갈량의 지시로 움직이던 가상의 첩보 조직 이야기라니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은 삼국시대 말, 제갈량이 위나라로의 북벌을 추진하던 시기고, 공간적 배경은 촉나라와 위나라가 대치 중인 중국의 서북 지역 농서隴西다. 제목 '풍기농서風起隴西는 '농서에 바람이 일다'라는 뜻이다. 제목대로 소설 속 농서 지역은 촉나라와 위나라의 첩보전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 위나라는 촉나라가 개발한 신무기의 설계도와 실물, 무기를 만드는 기술자를 노리고 있고 촉나라는 그것을 막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촉룡이라는 암호명의 위나라 간첩으로 인해 촉나라 요원들은 작전 수행에 번번이 방해를 받는다. 그런 데다 정보 기관과 군부의 알력, 같은 고명 대신(선대 군주의 유언을 받드는 대신)인데도 더 큰 권력을 쥔 제갈량을 향한 이엄의 견제까지 겹쳤으니 산 넘어 산이다. 촉나라 정보 기관의 요원들은 과연 신무기를 지켜낼 수 있을까. 촉룡은 과연 누구인가. 『풍기농서』는 이 얽히고 섥힌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스릴러다.

작가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것이 영국의 스릴러 작가 프레더릭 포사이스의 소설들이라고 하고, 포사이스처럼 스파이 소설을 쓰려고 했다고 한다. 삼국시대는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시대라 소설의 시대적 배경으로 선택한 것이지, 이 소설은 치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역사 소설이라기보다는 『삼국지』의 설정만 빌린 공상 소설이라고. 그런 것치고는 『삼국지』의 2차 창작이자 역사 소설로 봐도 꽤 탄탄하고 핍진성이 높다.

2차 창작의 미덕은 원작을 존중하는 것이다. 2차 창작 소설을 재미있게 읽다가 원작의 설정과 캐릭터 성격과 너무 동떨어진 묘사가 나오면 몰입이 깨진다. 그런 면에서 『풍기농서』는 걸리는 것이 없다. 제갈량, 이엄, 양의, 위연 등 『삼국지』에 원래 등장했던 인물들은 『삼국지』에서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더 입체적인 면을 드러낸다. 특히 제갈량은 분량이 아주 크지는 않지만 소설 전반에 영향을 미치면서 이야기의 열쇠를 쥐고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몇 수를 앞서 보고 큰 그림을 그려내면서도, 누구보다 세밀하게 모든 것을 살핀다. 『삼국지』의 제갈량을 사랑하게 했던 매력들을 『풍기농서』의 제갈량은 고스란히 갖고 있다.

외국인 독자이기에 중국 독자처럼 고증의 허점을 찾지 못한 것일 수 있지만, 이 소설 속 세계가 삼국시대 촉나라와 위나라라는 것을 믿게 할 만큼 핍진성이 높다. 사문조와 정안사 같은 정보 기관은 작가가 만들어낸 조직이지만 촉, 위, 오 삼국의 국가 기관과 행정 체계는 꽤 정교하고 그 속의 관습과 관례도 현실적이다. 위나라 관리가 된 촉나라 고정 간첩 진공의 단출한 세간살이나 농서 지역 성 안 풍경의 묘사를 보면 당시의 일상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진공이 다른 촉나라 간첩과 접선을 시도하다 들른 국밥집의 훈훈한 연기, 그가 위나라의 군사, 행정 관련 정보를 얻으러 문서 창고에 들어갔을 때 창고 안의 싸늘한 공기와 죽간들 위에 덮인 먼지까지 느껴지는 듯하다. 고증보다는 탄탄한 세계관과 생생한 묘사가 『풍기농서』 속 촉나라와 위나라를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살아 숨 쉬는 세계로 만든다. 거기에 개정판에서는 고증에서 어긋난 부분들을 몇 군데 바로잡았다니 고증에도 아예 신경을 안 쓴 것은 아닌 것 같다(송나라 이전까지는 중국에서 '대인'이라는 존칭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이 책의 작가 후기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파이 소설이자 스릴러로서 잘 쓰였냐는 것인데, 나는 그렇다고 본다. 간결한 문장과 작은 단서들로 전체의 3분의 2 지점까지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가다, 마지막 3분의 1에서 이야기의 속도를 높이며 결말까지 달려간다. 그러니 인내심을 가지고 3분의 2 지점까지 문장 하나, 단서 하나 빠뜨리지 않고 읽어나간다면 마지막 3분의 1 분량에서 스릴러로서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눈 코 뜰 새 없이 휘몰아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쌓아왔던 단서들을 충실하게 활용해서 진상을 밝히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주인공 순후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에 촉나라 내부에서도 방해를 받으면서도 하나하나 장애물을 돌파하고 끈질기게 작전을 수행해 가는데, 그와 함께 소설에서 펼쳐지는 상황들을 헤쳐 나가면 결말로 나아가는 느낌이다.


『미스테리아』에서는 『풍기농서』가 잘 쓴 스파이 소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주요 등장인물들이 추호의 의심도 없이 '한나라 부흥'이라는 대의를 외칠 뿐 그 대의에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고 성찰하지 않는 것을 아쉬워한다. 그것이 중국 스파이 소설이 검열을 회피하는 경로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하면서, 그런 제약을 뛰어넘은 중국 스파이 소설이 나오길 기대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순후는 한나라 부흥을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했지만 결국은 자신이 제갈량의 장기판 위 장기말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허탈해한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첩보전에서 싸우던 순후도, 위나라와 촉나라 모두의 머리 꼭대기에서 모든 것을 자신의 큰 그림대로 움직이던 제갈량도 결말 시점에서 고작 3년 뒤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수십 년 뒤에 촉나라는 멸망한다. 인생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결말이지만 이런 결말을 통해 모두가 목숨을 바쳐가면서 외치던 '한나라 부흥'이라는 목표가 결국 허상이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것이 소설 속 촉나라 간첩들이 말안장에 숨겼던 쪽지처럼 숨어 있는 성찰일지도 모른다.


P.S. 이 책은 2022년 24부작 드라마로도 만들어졌고 왓챠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드라마는 원작보다 촉나라 고정간첩 진공의 비중을 더 늘리고 원작에 없는 여성 캐릭터들을 넣고 이야기를 더 드라마틱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아직 2회까지만 봤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어떻게 각색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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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농서 - 이름 없는 영웅들의 비밀 첩보 전쟁
마보융 지음, 양성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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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문장들과 작은 단서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큰 판국을 완성한다. 첩보물로서나 역사물로서나 삼국지의 2차 창작으로서나 꽤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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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개주막 기담회 케이팩션
오윤희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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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미야베 미유키의 역사 소설 『외딴 집』을 재미있게 읽었고, 최근에는 중국 작가 마보융의 삼국지 2차 창작 소설 『풍기농서』와 박서련의 삼국지 재해석 『폐월 초선전』을 읽었다. 그러고 나니 한국 작가가 한국 역사로 쓴 소설이 읽고 싶어져 이 책을 선택했다. 조선 후기(박지원과 이덕무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들이 활동했던 영조, 정조 재위기로 짐작된다) 마포나루 근처에 있던 '삼개주막'이라는 가상의 주막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이 주막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들려주는 기이한 이야기들이 이 책을 구성하고 있다.

궁금했던 건 이야기의 재미와 디테일이었는데, 이야기는 딱 어린 시절에 봤던 <전설의 고향>만큼 재미있었다. <첩의 환생>은 계모의 손에 죽은 아이가 계모의 친자식으로 환생했다는 괴담("엄마, 또 나 밀 거야?")의 조선 버전이구나 싶었고, <열녀>는 <전설의 고향>에서 많이 보던 이야기였다. 열녀문 때문에 시댁 식구들에게 살해당하고 자살로 위장된 과부 혼령의 복수 이야기. <옹기장의 꿈>은 무섭지는 않지만 우리 옛이야기 특유의 정이 느껴지는 이야기고, <그림 그려주는 노인>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놓지 못하다 파멸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유괴된 아이>는 실제로 조선 시대에 기록된 일화를 바탕으로 해서인지 이야기가 가장 탄탄하고 섬뜩하면서도 가슴 먹먹해지게 했다. 특히 동굴에 갇힌 아이가 죽어가면서 부모가 자신을 구하러 오는 모습을 환상으로 보면서 행복해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과거 보러 가는 길>은 평화로워 보이는 장면들에서도 불길한 단서들이 조금씩 엿보이다 경악스러운 진상이 드러나기까지의 과정이 꽤 탄탄했지만, 마지막 반전이 좀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전반적으로는 <전설의 고향>의 여러 에피소드들을 글로 읽은 느낌이다. 이야기의 구조가 아주 치밀하거나 참신한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을 정도.

시대상의 디테일은 작가가 신경 쓴 것이 보인다. 그 시대의 문물을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넣으려고 한 것이 보이고, 그중 독자들에게 낯선 것들은 부연 설명한다.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 역사 소설의 압도적인 디테일에 비하면 그렇게 세밀하지는 않고, 마보융처럼 주막 안의 훈훈한 온기와 국 냄새까지 느껴질 정도로 그 시대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포착하는 것은 아니다. 딱 이야기의 밀도만큼의 디테일이다. 그리고 '그녀'라는 호칭 등 조선 후기에 쓸 법하지 않은 말이 튀어나오거나, 뒷간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잠자는 방과 같은 건물에 있는 등 시대에 맞지 않는 표현이나 묘사가 나와 몰입이 깨질 때가 있었다. 그러니 독자들의 허를 찌르는 기발한 이야기나 미칠 듯한 디테일을 기대했다면 아쉽겠지만, 쉬면서 가볍게 읽기에 좋다.

P. S. <과거 보러 가는 길>에서 주인공 세진이 사실 지박령 일가의 막내 아들이었다는 반전은 억지스럽다. 지박령 일가 중에서 적어도 아버지는 세진이 자기 아들인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아버지라면 자기 자식이 원수의 자식이 되었더라도 진실을 모르고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랐을 것이다. 그것도 세진이 자기 의지로 가족들을 배신하고 원수의 자식이 되어 호의호식한 게 아니라, 어린 나이에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원수의 양자가 된 게 아닌가. 가족이라면 자식이, 막내 동생이 지박령이 돼서 그 외딴 집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부유하고 안락하게 평생을 보내길 바라지 않을까? 이것은 반전을 위한 반전이라고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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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개주막 기담회 케이팩션
오윤희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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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상의 디테일이나 이야기의 짜임새는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대 시리즈에 미치지 못하지만, 가볍게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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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의 물건들 - 옛 물건은 훗날 역사라 부르는 모든 사건의 '씨앗'이다 주용의 고궁 시리즈 1
주용 지음, 신정현 옮김 / 나무발전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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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후속작인 『자금성의 그림들』은 작년 3월에 읽었는데, 정작 전작인 이 책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읽지 않고 있었다. 도서관에 신청까지 해놨는데도. 그러다 지난 달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 다녀오면서 중국어권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복습하고 싶어서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 관한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국내서 중에서는 한 권도 없었다. 아쉽지만 대신 예전부터 읽으려고 기억하고 있었던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내전을 치르던 시기, 국민당의 수장인 장제스는 대만으로 후퇴하면서 자금성에 소장되어 있던 수십만 점의 유물들을 가져갔다. 그 유물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곳이 타이베이의 고궁박물원이고, 저자가 몸을 담고 있는 곳,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유물들이 소장된 곳은 자금성의 고궁박물원이다. 장제스가 알짜배기 유물은 다 가져갔다고 하지만 베이징의 고궁박물원도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유물을 수집해 지금은 유물이 (저자의 말에 따르면) 186만여 점에 이른다고 한다. 저자는 상나라부터 청나라까지 시대순으로 18개의 카테고리를 나누어 그에 해당하는 유물 수십 개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한 알의 모래알에서 우주를 본다고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서너 점에서 일고여덟 점의 유물에서 한 시대를 본다. 모래알같이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미미한 것에서도 우주를 볼 수 있는데 그 시대의 미감과 정신을 쏟아부은 유물에서는 당연히 그 시대를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저자는 지금은 검푸른색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났을 청동기들에서 상나라의 풍요로움을 상상하고, 거리낌 없이 말을 타고 있는 여인들을 묘사한 그림과 도자기 인형을 통해 당나라 여성들의 자유롭고 당당한 삶을 짐작한다. 나라 하나가 백 년을 가지 못했던 혼란의 시기인 5대 10국 시대에 만들어진 보살상들은 더없이 고요하고 온화해, 신앙으로 위로를 받았을 당시 사람들을 생각한다. 저자는 역사적 사실을 빼곡히 적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빼대로 자신의 상상과 감상을 덧붙여, 독자들이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이 책을 읽으며 수천 년의 세월을 걸어가게 한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의 저자 주용을 '중국의 유홍준'이라고 했지만, 이 책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보다는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 가깝다. 고요하고 단정한 문체로 유물과 그에 얽힌 역사를 담담히 풀어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주용 쪽이 조금 더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하게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어떤 곳에서는 역사소설 같고, 어떤 곳에서는 에세이 같을 정도로 저자의 글은 문학적인 면모를 보인다. 저자의 감각적이고 섬세한 문장을 읽다 보면 흙먼지를 일으키며 한혈마가 달려가는 초원이, 눈 속에 매화가 피어나 은은한 향을 풍기는 정원이 눈앞에 있는 것 같다.

저자가 중국인이다 보니 중국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들 수 있다. 하나라는 아직 고고학적으로 그 존재가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는데, 저자가 하나라가 분명히 있었던 것처럼 서술하는 것은 중국 학계의 입장이니 걸러 들을 필요는 있다. 중국의 사상이나 문화가 서양의 그것들보다 더 깊이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자부심과 자만심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한다. 저자는 중국사가 한족뿐만 아니라 여러 이민족들의 역사이기도 하고, 그들이 있어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더 역동적이고 다채로워졌다는 것을 인정한다. 제3자인 외국인 독자의 입장에서도 자부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자부심 아래에서 역사와 인간, 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각 시대에는 그 시대의 기질이 있다며 각 시대의 기질을 자기 나름대로 정의하지만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 시대 나름의 가치를 발견한다. 한 시대라는 거대한 역사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사람들을 연민하면서 그들이 만들어낸 예술에 경의를 표한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아름다움은 보통 사람의 종교이며, 홍진 같은 인생에 주는 의미'라고 말한다. 이것을 이해해야 옛 물건의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며, 이것이 자신이 이 책을 쓸 때의 마음이라고 한다. 이 책 속의 글과 사진으로 그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고단한 삶이 잠시라도 조금이라도 더 윤택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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