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라는 말은 일상적인 대화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데 대중가요에서는 왜 이렇게 자주 등장할까? '햅쌀'은 '쌀'이라는 명사에 '그해에 난'이라는 뜻의 접두사 '햇-'이 붙어서 만들어진 단어인데, 왜 '햇쌀'이 아니라 '햅쌀'일까? '케첩'이 원래 중국어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일상적인 말들에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우리 삶 속의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들은 우리가 매일 듣는 노래에도, 매일 먹는 음식에도 숨어 있다. 여기, 일상적인 단어들에서 우리가 몰랐던, 또는 너무나 당연해서 무심코 지나쳤던 삶의 이야기들을 발견하는 책들이 있다. 



1920년대 초 유성기 음반으로 유행가가 발매되기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 대중가요의 역사는 한 세기에 가깝다. 한 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삶과 사랑, 시대의 단면들은 크게 달라졌고, 그에 따라 대중가요에서 쓰이는 말들도 달라지게 되었다. 이것을 뒤집어보면, 대중가요에서 쓰이는 말들의 변화를 통해 한 세기 동안 우리 대중가요를 듣고 부르던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음반으로 발매된 최초의 대중가요라고 알려진 <희망가>가 나온 1923년 이후 조사 작업이 이루어진 2016년까지 나온 26000여 곡의 가사를 분석했다.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가사 속에 특정한 단어들이 나타나는 빈도를 알아보고, 전체 말뭉치(언어 연구를 위해 컴퓨터가 읽고 처리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한 언어 자료)에서 그 단어들이 나타나는 빈도와 비교해 보았다. 왜 이 단어가 특히 노래 속에 자주 등장하는지, 일상에서보다 노래에서 자주 쓰이는지 분석해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대'와 '당신'은 일상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지만 노래에서는 자주 등장하는데, 1990년대 이후로 점점 줄어들고 그 대신 '너'라는 2인칭대명사가 점점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손위의 남자 형제'가 아닌 '연인'이라는 의미의 '오빠'는 2000년대에나 처음 등장한다. 술이 등장하는 노래 가사에는 '한 잔'이라는 단어가 따라 들어갈 때가 많다. 왜 그럴까? 이유를 알아보면서 우리는 노래 속에 담긴 우리 삶의 모습과, 그 모습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노래의 언어』의 저자가 『노래의 언어』를 쓰기 2년 전에 냈던 책이다. 『노래의 언어』가 가사 속 단어들의 빈도라는 수학적 통계를 활용한 반면, 『우리 음식의 언어』에서는 우리 음식을 가리키는 단어들과 그 어원을 언어학적으로 파헤친다. 하지만 노래 속 단어들이든 음식을 가리키는 단어들이든 그 안에 담긴 우리 일상의 단면들을 살펴보고, 그 일상이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 살펴보고 있으니 『우리 음식의 언어』는 『노래의 언어』로 이어지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우리 음식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밥에서부터 시작해서 빵, 국수, 국, 채소, 고기 반찬, 생선 반찬, 후식까지 우리 음식을 종류별로 나눈 뒤 그 안에 속하는 음식들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우리 음식을 가리키는 말들과 관련된 언어학적인 지식도 흥미롭지만, 음식 자체와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지식까지 얻을 수 있어 더 흥미롭다. 중간 중간에 저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우리 음식의 언어를 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



  세 책 중 가장 나중에 읽었지만 사실은 가장 먼저 출간된 책이다. 『우리 음식의 언어』의 저자 한성우 교수는 『우리 음식의 언어』를 쓰면서 『음식의 언어』를 알게 되었고, 동업자에게 경외와 감사의 마음을 느끼면서도 그 동안 연구해 온 것을 빨리 결과물로 엮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직접 읽어보니 한성우 교수가 자극을 받았을 만하다. 다른 대륙에 있는 나라에 가려면 몇 개월씩 길고 지루한 항해를 해야 했던 그 옛날에도 음식과 그것을 가리키는 언어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멀리, 더 넓게 퍼져나가며 각각의 나라에 맞는 형태로 다양하게 변형되었다. 저자 댄 주래프스키는 케첩, 피시 앤 칩스, 칠면조, 마카롱 등 우리 주변의 음식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느 나라들을 거쳐 지금의 모습과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흥미 있게 풀어낸다. 그 이야기 속에 음식의 세계 문화사가 담겨 있다.


  너무나 흔한 음식이지만 오래된 세계사를 품고 있는 음식이 케첩이다. 케첩은 원래 동남아시아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해 중국 푸젠성으로 이어진 생선 소스에서 유래했고, '케첩'이라는 명칭도 그 소스를 가리키는 푸젠성 방언에서 온 말이다('케'는 정확한 한자를 찾지 못했지만 '첩'은 한자 '즙(汁)'의 푸젠성 방언, 광둥어 발음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중국 상인들과 무역을 하던 영국 선원들은 이국적이고 자극적인 소스 케첩을 좋아하게 되었고, 케첩은 영국에 수입되면서 조리법이 여러 가지로 변형되었다. 그러면서 주 재료인 생선이 빠지고 버섯, 호두, 토마토 등 원래 부 재료였던 것들이 주 재료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 중에서도 토마토가 케첩의 대표적인 재료가 되었고, 미국의 케첩 제조 회사들이 설탕과 식초를 더 많이 넣어 케첩의 저장성을 높이면서 토마토 케첩은 지금과 같이 새콤달콤한 맛이 되었다. 이렇게 케첩 하나만 들여다봐도 세계 경제와 무역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저자는 음식과 그것을 가리키는 언어와 관련된 문화사뿐만 아니라, 심리학과 음운학을 통해서도 음식의 언어를 들여다본다. 고급 레스토랑은 자신들이 내는 음식이 진짜 재료를 쓴 좋은 음식이라고 사람들이 믿을 것을 알기에, 메뉴에서 구구절절 설명을 하지 않는다. 반면 중간 가격대의 식당들은 손님들에게 자신들이 내온 음식이 진짜라는 확신을 주고 싶어서 '진짜'라는 것을 강조하고 맛있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온갖 수식어를 붙인다. 바삭바삭함이 생명인 크래커의 제품명들에는 삐죽삐죽한 느낌을 주는 자음인 T와 D가 많이 들어가지만, 풍부하고 부드러운 맛을 강조해야 하는 아이스크림의 제품명들에는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자음 L과 M이 많이 들어간다. 과거의 역사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음식과 그에 관련된 언어를 다양한 학문들로 풀어내고 있으니, 단순히 '문화사'가 아니라 '인문학'이라고 할 만하다.


  다만 한국 독자로서는 한국 음식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울 수 있다. 아랍의 알코올 증류법에서 기원한 각 나라의 토산 증류주들은 '땀'이라는 뜻의 아랍어 '아라크'에서 유래한 이름들을 갖고 있다. 이 책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우리의 전통 증류식 소주는 고려시대 원나라에서 들어와 '아라길주'라고 불렸고, 지금도 전통 소주 제품들 중 '아락'이라는 말이 제품명에 들어간 것들이 여럿 있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소주도 저 멀리 아랍 지역에서 기원해 온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 개발된 발효된 콩 반죽이 일본의 미소 된장의 선조라는 것을 언급하는데, 그 중간에 있을 한국 된장은 왜 언급도 되지 않는지. 내가 한성우 교수고 『우리 음식의 언어』를 쓰기 전 이 책을 봤다면 우리 음식과 그에 관련된 언어만 집중해서 살펴보는 책을 쓰고 싶다는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내게 교정교열 일을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은 하루에 국어사전 몇 페이지만 읽어봐도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분의 말처럼 언어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쌓아온 다양한 분야의 다채로운 지식과 지혜가 녹아 있다. 이 세 권의 책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들에 어떤 역사와 문화, 지식들이 녹아 있는지 살펴본다면,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좀 더 이해하고 지식을 쌓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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