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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의 발견
박영수 지음 / 사람in / 2023년 7월
평점 :
어원(語源): 어떤 단어의 근원적인 형태. 또는 어떤 말이 생겨난 근원.
아주 일상적인 단어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요즘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더 자주 쓰이지만 그래도 일상적으로 하는 말 ‘고맙습니다’. 이 단어의 근원적인 형태를 살펴보면, ‘남의 인격이나 행위를 높여 공경하다’라는 의미의 고유어 ‘고마’가 어근이다. 이 말은 이렇게 공경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 생긴 것이다. ‘누군가의 호의나 도움을 받아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고 감동적이다’라는 지금의 뜻으로 사용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다. 이 책은 이렇게 말의 근원적인 형태, 또는 말이 생겨난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모둠: 한 무리가 되게끔 작은 단위로 모아둔 것
‘모둠’은 ‘모으다’라는 뜻의 옛말 ‘모두다’에서 나온 말로, 한 무리가 되게끔 작은 단위로 모아둔 것을 가리킨다. 이 책은 우리말의 어원과 우리말 한자어의 언어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단어 하나하나들이 그 두 부분을 이루고 있다. 다양한 음식들을 모은 ‘모둠 안주’처럼 이 책에는 우리말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 우리 역사에 대한 지식까지 다양한 지식들이 담겨 있다.
이판사판. 수리수리 마수리. 찰나. 강림. 경계.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원래 불교 용어였던 단어들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일상 속 단어들이 불교 용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교가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의 언어와 문화,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기서 실감할 수 있다. ‘땡전’이란 단어에는 흥선대원군의 화폐 개혁으로 대량 발행된 당오전에 대한 반감이 녹아 있고, ‘벼슬아치’라는 단어에는 원나라와의 교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렇게 우리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우리는 그 말을 만들어낸 우리 조상들의 일상과 문화, 역사를 만나게 된다. 모둠 안주에서 다양한 음식을 하나씩 집어 먹듯 다양한 지식을 하나씩 얻는 재미가 쏠쏠하다.
감질나다: 바라는 정도에 아주 못 미쳐 애가 타다.
‘감질(疳疾)’이라는 병에 걸리면 땀이 나고 목이 마르며 시원한 것을 찾게 된다고 한다. 그런 증세에 빗대어 ‘어떤 일이 마음에 차지 않아서 애태우는 심정’ 또는 ‘무언가를 몹시 하고 싶어 애타는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 ‘감질나다’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느끼게 되는 감정이 바로 ‘감질나다’이다. 사실 바라는 정도에 ‘아주’ 못 미치는 것은 아니고 ‘조금’ 못 미친다.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것보다 조금 크고,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이니 크기도 작고 페이지 수도 적다. 각 단어에 배정되는 페이지는 한두 페이지뿐이니, 아주 깊이 있게 어원과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파헤치지는 않는다. 어원에 대해 더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기대했다면 감질날 것이다. 반면 한두 페이지씩 가볍고 흥미로운 지식을 읽는 것이 더 좋은 사람이라면 이 책이 안성맞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