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의 난장판


크리에이티브업계

기획자는 콘텐츠 완성 이후의 유통 전략을 잘 모름

제작자는 시장성을 고려하지 않음

배급자는 콘텐츠 기획 의도를 이해 못한 채 마케팅만 함


IT

서비스 구조와 사용자 니즈를 파악하는 PM은 기술적 제약을 모르고

개발자는 유저의 맥락을 이해못하고 기능만 구현하고

CS나 마케팅 같은 운영팀은 구조를 몰라서 서비스 출시 후 클레임 감정노동하고 사용자 피드백을 받아 토스하기에 바쁨


교육

교육부(관리자)와 교사(현장 실무자)와 학생(최종 교육소비자)가 완전 따로 놀음

정책을 다루는 교육청은 커리큘럼, 평가방식, 예산분배 같은 제도설계만 하고 교사는 현장에서 교육, 평가, 진도관리, 상담하면서 제도를 현실에 맞게 적용하려 애를 쓰는데 학생은 이 두 어른의 생각을 완전 이해못함

어른들은 학생을 성장을 겪는 주체가 아니라 제도의 대상으로 파악하기 바쁨. 정책은 현장을 모르고 교사는 정책을 불신하고 학생은 시스템의 실험대상이 됨



문득 이 책이 생각남
















https://brunch.co.kr/@roysday/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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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제곧내다. 제목이 곧 내용, 즉 결론이다. 우리가 시간이라고 믿는 흐름은 실제가 아니라 측정시계나 세포노화 같은 관측자의 입장에서 발생하는 착각이라는 것이다. 시간의 실체를 부정하고 사건 간의 관계성과 열역학적 비가역성만을 인정한다. 과거만 고정되어 있고 바람이 나를 스쳐지나갈 때 현재가 느껴지며 미래는 내 뒷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그리스인이나 오세아니아인의 해양민족 특유의 비선형적 시간관이나 불교의 윤회적 시간관이 현재→과거→미래라는 선형적 시간을 부정하는 것을 넘어, 로벨리는 시간 자체가 본질이 아닌 인간적 해석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와 비교되는 흥미로운 시간관이 하나 더 있다. 수학의 시간이다. 구조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주사위를 두 번 던질 때 나오는 수 중 3의 배수가 존재할 확률 같은 경우의 수 문제에서 분명 두 번 던지는 과정 중의 시간의 흐름이 있으나, 무작위 추출이라는 확률적 분석의 시간은 정지된 것으로 가정한다. 그래서 시간의 방향성이 무의미하게 설정되는데 이런 맥락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생략되거나 멈춰 있다고 간주된다. 로벨리는 그래도 흐름이 있다고 했으나 통계적 모델링에서 시간은 정지되어 있다.


한편 통계학이 다루는 사회문화적 현상은 분명한 시간의 변화와 맥락적 진화를 전제한다. 따라서 수학적으로 정태적인 모델 안에서 시간은 사라지지만, 실질적으로는 시간성이 통계의 근간을 이룬다. 흥미롭지 않은가? 통계학자가 배우는 시간은 정지되어 있는데 통계학자가 연구하는 대상의 시간은 흐른다니. 4년 전 통계청장이 세바시에 나와 인구주택총조사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의 발달사를 알아볼 수 있다고 했더 것이 기억난다. 모두가 안 하거나 모두가 하고 있으면 물어볼 이유가 없고, 애매하게 하고 있을 때 정밀한 조사를 위해 물어보는 질문들이 매5년마다 바뀌어간다고. TV가 있는지부터 반려동물이 있는지까지.


그러나 로벨리의 생각에는 몇 가지 맹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시간을 생각하는 사람의 정신을 제외했다. 물리학이 아니라 의식이 존재를 구성하기 위해 필수로 요구하는 지각의 구조이고 인간 정신 내부에서만 발현된다. 둘째, 시간은 인간 언어와 이야기 서사의 도구로 만들어진 문화적 산물로 존재론이 아닌 기능적 도구다. 셋째, 시간은 생명이 출현한 이후에만 작동하는 특수한 현상이다. 하여 생명이 없는 영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유기적 기억과 목적이 시간성을 창출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시간이 없고 변화의 관계성만이 실재한다는 로벨리의 주장은 오히려 관찰자 없는 수학적 우주를 상정하며 인식 주체를 제거함으로써 이론적 모순을 낳는다. 또한 열역학적 시간만을 진정한 시간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생명이나 목적 혹은 의식 등에서 나타나는 베르그송적 시간경험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무엇보다 시간이 없다는 주장을 선형적이고 시간적 언어구조로 기술해야만 하는 아이러니는 이론 자체의 한계를 드러낸다. 그는 Ted Chang원작의 <Arrival>의 동시적synchronous 헵타포드 언어를 어떻게 생각할지. 인과관계가 없고 과현미가 동시에 존재하는 시간을 기록하고 표현하는 언어말이다.


시간이 흐르지 않을 수도 있을까? 시간의 정지말이다. 문득 일본애니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 등장하는 디오의 스탠드가 생각난다. 더 월드는 몇 초에서 몇 분에 이르는 짧은 시간 동안 외부세계를 정지시키고 그 안에서 자신만 자유롭게 움직이는 능력이다. 이 설정은 시간의 멈춤이 물리적 실재로 구현 가능하다는 전제에 입각해있다. 능력이 성장함에 따라 멈출 수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난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시간의 정지 속에서 상대의 몸에 구멍을 내고 피가 튀기는 등의 변화는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리학적으로 시간은 변화의 순서를 의미하므로 변화가 없다면 시간도 정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디오 본인이 움직인다면 그 자체가 변화이므로 시간은 멈춘 게 아니다. 모순이다. 게다가 디오가 사람을 때려서 상처를 입히고 물체를 움직인다는 것은 운동의 발생, 에너지 전달, 분자 간 반응이 일어난다는 의미다. 그러나 시간 없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힘=질량×가속도인데, 가속도는 시간의 함수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완전히 정지시키는 게 아닌 조금 더 유연한 모델로는 마블의 퀵실버나 DC의 플래시가 생각난다. 이 캐릭ㅓ들은 시간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속도를 극도로 높여 상대적으로 주변 세계가 정지해 보이게 만든다. 시간 정지가 아니라 시간의 상대적 인지속도의 차이를 극대화한 효과다. 이 방식은 일반상대성이론이나 생리학적 반응 한계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상상이다. 상대적으로, 이론적으로는 설명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생명체가 그 속도를 견디며 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건 비현실적이다. 공기저항, 마찰열, 시각처리, 반사신경 등도 초월해야 하기 때문. 초고속으로 주변 물체와 충돌하면 에너지 전달량이 어마어마하게 커져 현실에서는 즉사하기 십상이다.


디오 더 월드의 시간정지든, 플래시나 퀵실버의 시간지연이든 픽션에서 펼치는 상상의 나래로만 취급하기엔 아직 재미있는 생각의 실타래가 남아있다. 그래도 그 능력들을 현실가능하게feasible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타협해보는 게 좋을까?


일단 시간정지는 뇌의 처리율을 변화시키는 능력일 수 있다. 커피가 주는 효과다.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는 주파수를 빠르게 공명시키는 것이다. 왜 어릴 때는 방학이 너무 긴데 나이가 들면 깜빡깜빡할까? 작년에 왜 어제같아질까? 어렸을 때는 경부선 타고 귀향하는 길이 천년만년 같았는데 왜 지금은 눈 깜짝할새일까? 뇌에서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는 주파수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커피가 그 주파수를 원래 리듬대로 조여 인식속도를 빨라지게 한다. 단, 5분간만. 그래서 사람들이 커피를 그렇게 쪽쪽 수혈하는 것이다. 실제로 머리가 좋아지는게 아니라 시간을 정교하게 인식하는 것일 뿐인데 능률이 좋아진 것 같은 플라시보 효과를 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뇌처리율을 높여 외부세계가 멈춘 듯 인지되도록 만드는 착각을 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인식의 흐름이 빨라진 것이지 물리적으로 빨라진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물리적인 효과를 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특정공간 내에서만 시공간을 왜곡하거나 중력장을 생성하여 국소적 시간버블을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복잡한 수식과 이론은 생략. 아니면 최근 회빙환+시스템관리자계열 웹툰에서 상상하듯이 운영자 권한으로 시간을 편집하고 정지한다는 설정도 있다. 마치 게임에서 일시정지하고 캐릭터를 이동시킨 뒤 다시 재생하는 것처럼. 시간은 실제로 멈춘 것이 아니라 시뮬레이션에 개입하는 API같으 고차원적 존재가 일시정지-수정-재생한다는 급진적 생각이다. <테넷>도 리와인드라는 카메라의 기능을 영화적으로 재해석한 것이고, 멀티버스 세계관도 게임의 캐릭터 사망 후 리로드, 리플레이를 스토리로 재해석한 것이듯, 한 콘텐츠의 시간에 대한 생각은 다른 미디어에도 영향을 준다.


카를로 로벨리까지 경유할 필요 없이 시간은 절대적이며 전 우주에 균일하게 흐른다는 전제는 이미 현대 물리학에서 부정되었다. 다만 그렇다면 이제 어떤 시간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있을까? 가 관건이다. 변화가 있으면서도 시간을 부정하는 주장은 개념적으로 자기모순에 가깝고 시간 없이 순서를 말할 수 없다는 언어적 한계가 있다. 시간정지나 시간지연, 다른 시간선 모두 흥미롭지만 인식주체 없는 외부세계만을 상정하는 환원주의적 시야를 전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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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에 다녀왔다. 궁중여인의 복식은 오늘로 끝났다. 기획전시로 크게 홍보하는 것과는 달리 원삼과 당의 한 벌씩만 전시되어있었다. 실제 사용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었을까. 용두사미다. 이화여대 박물관에 가면 더 많은 복식을 볼 수 있다.



역사학도 트렌드가 있는데 인접학문과 사회문화의 발달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1990년대는 한국적인 가치의 찾기, 2000년 후부터는 글로벌 교류사, 2010년대이후 과학사, 의학사, 2020년대 후 여성사 등이 있다.


그러한 학문의 발전에 따라 왕조사 중심이던 조선사에서 과학이라는 주제를 발견했고 박물관에도 따로 코너가 생겼다. 아 물론 지금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영어번역은 다소 불만이 있다. 그나마 몇 년전 번역에 비하면 다듬은 편이지만 여전히 영어 잘하는 한국인만 이해할 수 있고 한국사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은 재밌게 읽을 수가 없다. 나의 꿈은 영어로 한국사, 한국미술사를 써서 퓰리처상을 받는 것! 대안으로 나는 이렇게 표현해보면 좋겠다.


영어로 쓴다.


1.

From its inception in 1392, the Joseon Dynasty articulated a unique epistemological vision wherein scientific inquiry was not only instrumental to governance but foundational to royal legitimacy. Unlike the segmented division between science and state often assumed in Western historiography, Joseon's rulers, heavily influenced by Neo-Confucian ideology, saw the mastery of natural phenomena—especially astronomical cycles—as a sacred duty of kingship. Knowledge of the heavens was not simply a matter of cosmic curiosity; it was an enactment of moral authority, inscribing the monarch’s rule into the very rhythms of the universe.


In this context, the observation and codification of the twenty-four solar terms (jeolgi, 節氣) served not merely as agricultural markers but as celestial confirmation of royal virtue. By accurately measuring time, forecasting seasonal shifts, and aligning the agrarian calendar with cosmological order, the Joseon court positioned itself as an intermediary between Heaven (cheon, 天) and Earth (ji, 地), thereby reaffirming its claim to the Mandate of Heaven (天命, cheonmyeong). This was not symbolic rhetoric—it was enacted in bronze instruments, star charts, and the construction of observatories such as the Cheomseongdae and later Gwancheongcheo.


The dynasty's investment in scientific institutions—exemplified by the establishment of the Royal Bureau of Astronomy (Gwansanggam, 觀象監) and Hall of Worthies (Jiphyeonjeon, 集賢殿)—reveals a sustained commitment to integrating scientific precision into the ideological fabric of the state. Technologies and calendrical systems from Ming China, and later Jesuit-infused Western astronomy, were neither passively received nor wholesale adopted. Rather, they were meticulously reinterpreted, hybridized, and adapted to the Korean ecological and cultural milieu. The synthesis of these foreign systems with indigenous knowledge reflects not cultural dependency, but intellectual sovereignty—a deliberate assertion of Joseon’s capacity to refine and localize universal knowledge.


Indeed, the Joseon king was not merely a patron of science; he was expected to embody its principles. The Confucian sage-king was a ruler whose virtue radiated outward to harmonize society, nature, and the cosmos. Thus, the empirical sciences—far from being secular or neutral—were imbued with metaphysical and moral weight. Accuracy in calendrical reform, advancements in medical practice, and innovations in agricultural technique were understood as direct expressions of just governance. Conversely, failures in these domains were read as signs of cosmic imbalance and political illegitimacy.


Over five centuries, this integration of scientific rationality into the symbolic order of power not only stabilized the Joseon polity but also fostered a distinctive form of technocratic kingship. The Joseon experience complicates conventional narratives of modernity by demonstrating that a sophisticated, state-led scientific culture could emerge outside the Enlightenment framework, driven not by capitalist markets or secularism, but by ritual, hierarchy, and moral philosophy.


In the ideological architecture of the Joseon Dynasty, the legitimacy of royal authority was not derived solely from bloodline or military conquest, but from a continuous reaffirmation of the Mandate of Heaven through cosmological literacy and moral governance. The sovereign’s role was not only administrative but cosmic—an agent positioned between Heaven and Earth whose virtue had to be continually validated through alignment with celestial rhythms.


Astronomy thus became a political theology: it offered a tangible, empirical means of enacting and confirming the king’s fidelity to divine order. The regular observation of the stars, correction of calendars, and public dissemination of the twenty-four solar terms were not mere scientific tasks, but sacred responsibilities. When eclipses, comets, or unusual meteorological events occurred, they were interpreted not as natural anomalies, but as potential signs of cosmic displeasure—warnings from Heaven about the king’s moral failings or the court’s ethical lapses.


Accordingly, every astronomical act was a ritual of state. Calendrical reform, for instance, was a public testament to the king’s intellectual virtue and his ability to harmonize human affairs with natural law. The monarch’s observance of rites (ye, 禮) tied to seasonal changes reaffirmed his role as a moral exemplar whose personal discipline mirrored the cyclical precision of the cosmos.


Even beyond state rituals, the dissemination of accurate seasonal information through the Gwansanggam (Royal Bureau of Astronomy) enabled agricultural stability, linking celestial insight with the material welfare of the people. In this way, astronomical knowledge became a political instrument—one that fused Confucian ideals of benevolent rule with the empirical authority of science.


Ultimately, the king’s knowledge of the heavens was a mirror of his governance on Earth. To rule well was to observe well. And through the meticulous reading of the skies, Joseon kings inscribed their authority into both the calendar and the cosmos.


2. 한국어로 번역한다.

1392년 건국과 함께 조선 왕조는 과학적 탐구를 단순히 통치의 도구로 보는 것을 넘어, 그것을 왕권 정당성의 기초로 삼는 독자적인 인식론적 비전을 제시하였다. 서구 역사서술에서 흔히 상정되는 과학과 국가의 분리와는 달리, 조선의 군주들은 성리학 사상의 깊은 영향을 받아 특히 천문 주기같은 자연 현상의 통달을 왕으로서의 신성한 책무로 여겼다. 하늘에 대한 지식은 단순한 우주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도덕적 권위를 실현하는 행위였으며, 군주의 통치가 우주의 리듬 속에 새겨지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스물네 절기(節氣)의 관측과 체계화는 단순한 농업 지표가 아니라 왕의 덕성을 하늘이 확인해주는 증거로 기능하였다.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계절의 변화를 예측하며, 농사력과 우주의 질서를 일치시키는 일을 통해 조선 왕실은 스스로를 하늘(天)과 땅(地) 사이의 매개자로 자리매김했고, 이로써 천명(天命)에 대한 정당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상징적 수사가 아니라, 청동기구, 성도(星圖), 첨성대 및 후대의 관청처(觀廳處) 같은 천문대의 건설을 통해 실질적으로 구현되었다.


조선의 과학 제도에 대한 투자는 관상감(觀象監)과 집현전(集賢殿) 같은 기관의 설립에서 잘 드러난다. 이는 과학적 정밀성을 국가 이념의 구조에 통합하려는 지속적인 의지를 보여준다. 명나라로부터 전래된 기술과 역법, 나아가 예수회가 들여온 서양 천문학은 단순히 수용되거나 무비판적으로 모방된 것이 아니었다. 조선은 이를 철저히 재해석하고 혼합하며, 자국의 생태적·문화적 현실에 맞춰 정교하게 재구성하였다. 이와 같은 외래 체계와 토착 지식의 융합은 문화적 의존이 아니라 지적 자율성(지적 주권))의 표출이었으며, 보편 지식을 정련하고 지역화할 수 있는 조선의 역량에 대한 의도적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조선의 국왕은 과학의 후원자일 뿐 아니라, 그 원리를 체현하는 존재로 기대되었다. 유교의 성군은 덕을 통해 사회, 자연, 우주를 조화롭게 만드는 존재였다. 따라서 경험과 실증에 기반한 과학은 결코 세속적이거나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이고 도덕적인 무게를 지닌 것이었다. 역법 개정의 정밀성, 의학의 발전, 농업 기술의 혁신은 모두 정의로운 통치의 직접적 표현으로 여겨졌고, 반대로 이들 분야의 실패는 곧 우주의 균형이 깨졌거나 정치적 정당성이 무너졌다는 신호로 해석되었다.


5세기에 걸쳐 조선은 과학적 합리성을 권력의 상징 질서에 통합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꾀했을 뿐 아니라, 독창적인 ‘기술관료적 왕정’의 형태를 발전시켰다. 조선의 경험은 ‘근대성’에 대한 통념적 서사를 흔들며, 계몽주의, 자본주의 시장, 세속주의가 아닌 제의, 위계, 도덕철학이 이끄는 세련된 국가 주도의 과학 문명이 존재할 수 있었음을 증명한다.


조선 왕조의 이념적 구조 속에서 왕권의 정당성은 단지 혈통이나 무력 정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의 뜻(천명)에 대한 지속적인 확인을 통해, 천문 지식과 도덕적 통치의 실천 속에서 정당화되었다. 국왕은 단순한 행정의 수장이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에 위치한 존재로서 그의 덕은 끊임없이 하늘의 리듬과의 조화를 통해 입증되어야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천문학은 일종의 ‘정치적 신학’으로 기능했다. 천문학은 국왕이 신성한 질서에 충실함을 실천하고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수단이었다. 별자리의 정기적인 관측, 역법의 수정, 그리고 스물네 절기의 대중적 보급은 단순한 과학적 과업이 아니라 신성한 책무였다. 일식, 혜성, 이상기후와 같은 천문현상이 발생했을 때, 이는 단순한 자연적 이상이 아니라, 왕의 도덕적 결함이나 조정의 윤리적 타락에 대한 하늘의 경고로 해석되었다.


이에 따라 모든 천문학적 행위는 국가의 의례이자 정치적 제의로 간주되었다. 예를 들어, 역법의 개정은 왕의 지적 덕성과 인간의 일상을 자연법과 조화시키는 능력을 대외적으로 입증하는 행위였다. 절기와 계절의 변화에 맞춰 예(禮)를 준수하는 국왕의 모습은, 우주의 주기적 질서에 부합하는 도덕적 모범으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것이었다.


국가 의례를 넘어, 관상감(觀象監)을 통해 제공된 정밀한 절기 정보는 농업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천문학적 통찰을 백성의 물질적 삶과 연결해 주었다. 이처럼 천문 지식은 과학의 경험적 권위와 유교의 덕치 이념을 결합한 정치적 도구가 되었다.


궁극적으로 하늘에 대한 국왕의 이해는 곧 지상에서의 통치의 거울이었다. 잘 다스린다는 것은 곧 하늘을 잘 관찰한다는 뜻이었다. 하늘을 정밀하게 읽어내는 행위를 통해 조선의 왕들은 자신의 통치 권위를 달력 속에, 그리고 우주 질서 속에 새겨넣은 것이다.



3. 여기서부터는 왜 그렇게 썼는지 설명


1) 첫 문장은 During the Joseon Dynasty(1392-1897)로 시작하는데 조선시대 내내 과학의 역할을 다룰 것이 아니라면 역사지식용 연도는 필요없다. 어떻게 왕권의 정당성을 보여주고, 사회안정에 기여했는지 설명이 없어 과학도구를 만들었다는 다음 문장과 이음새가 약하다. 문장이 다 깨지고 이어지지 않는다. 특히 과학-국가가 분리된 서양과 차별성과 그 이유를 언급해줘야하다. 

From its inception in 1392, the Joseon Dynasty articulated a unique epistemological vision wherein scientific inquiry was not only instrumental to governance but foundational to royal legitimacy. Unlike the segmented division between science and state often assumed in Western historiography, Joseon's rulers, heavily influenced by Neo-Confucian ideology, saw the mastery of natural phenomena—especially astronomical cycles—as a sacred duty of kingship. Knowledge of the heavens was not simply a matter of cosmic curiosity; it was an enactment of moral authority, inscribing the monarch’s rule into the very rhythms of the universe.


1392년 건국과 함께 조선 왕조는 과학적 탐구를 단순히 통치의 도구로 보는 것을 넘어, 그것을 왕권 정당성의 기초로 삼는 독자적인 인식론적 비전을 제시하였다. 서구 역사서술에서 흔히 상정되는 과학과 국가의 분리와는 달리, 조선의 군주들은 성리학 사상의 깊은 영향을 받아 특히 천문 주기 같은 자연 현상의 통달을 왕으로서의 신성한 책무로 여겼다. 하늘에 대한 지식은 단순한 우주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도덕적 권위를 실현하는 행위였으며, 군주의 통치가 우주의 리듬 속에 새겨지는 방식이었다.


2) 천문 하나가 끝이 아니라 세분화해서 요소별로 설명해줘야 영어권 사고흐름에 맞다. 절기, 역법, 그리고 관측지까지. 각각의 문맥적 의미도 끌어ㅐ줘야한다. 그렇게 쓰기는 어렵지 않다. ving로 연결해주면 된다. 영작에서는 원래 원어를 써주고, 한국어 음차에 한자까지 괄호에 넣어줘야 한다. 읽을 때는 그냥 읽히지만 각주처럼 이런 세밀한 보정작업이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든다.

In this context, the observation and codification of the twenty-four solar terms (jeolgi, 節氣) served not merely as agricultural markers but as celestial confirmation of royal virtue. By accurately measuring time, forecasting seasonal shifts, and aligning the agrarian calendar with cosmological order, the Joseon court positioned itself as an intermediary between Heaven (cheon, 天) and Earth (ji, 地), thereby reaffirming its claim to the Mandate of Heaven (天命, cheonmyeong). This was not symbolic rhetoric—it was enacted in bronze instruments, star charts, and the construction of observatories such as the Cheomseongdae and later Gwancheongcheo.


이러한 맥락에서 스물네 절기(節氣)의 관측과 체계화는 단순한 농업 지표가 아니라 왕의 덕성을 하늘이 확인해주는 증거로 기능하였다.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계절의 변화를 예측하며, 농사력과 우주의 질서를 일치시키는 일을 통해 조선 왕실은 스스로를 하늘(天)과 땅(地) 사이의 매개자로 자리매김했고, 이로써 천명(天命)에 대한 정당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상징적 수사가 아니라, 청동기구, 성도(星圖), 첨성대 및 후대의 관청처(觀廳處) 같은 천문대의 건설을 통해 실질적으로 구현되었다.


3) 간간히 서양 예수회도 언급해줘야 몰입이 끊기지 않는다. 그러나 문단의 시작은 과학제도=기관설립으로 시작하고 외래기술이 더해져서 더 나은 기술이 되었다는 데 방점이 있다. 영작에서 dash의 사용은 글을 맛깔나게 만든다. 부연설명일 때 사용하는데 여기서는 -었으며, 로 쓰기 위해 사용했다.

The dynasty's investment in scientific institutions—exemplified by the establishment of the Royal Bureau of Astronomy (Gwansanggam, 觀象監) and Hall of Worthies (Jiphyeonjeon, 集賢殿)—reveals a sustained commitment to integrating scientific precision into the ideological fabric of the state. Technologies and calendrical systems from Ming China, and later Jesuit-infused Western astronomy, were neither passively received nor wholesale adopted. Rather, they were meticulously reinterpreted, hybridized, and adapted to the Korean ecological and cultural milieu. The synthesis of these foreign systems with indigenous knowledge reflects not cultural dependency, but intellectual sovereignty—a deliberate assertion of Joseon’s capacity to refine and localize universal knowledge.


조선의 과학 제도에 대한 투자는 관상감(觀象監)과 집현전(集賢殿) 같은 기관의 설립에서 잘 드러난다. 이는 과학적 정밀성을 국가 이념의 구조에 통합하려는 지속적인 의지를 보여준다. 명나라로부터 전래된 기술과 역법, 나아가 예수회가 들여온 서양 천문학은 단순히 수용되거나 무비판적으로 모방된 것이 아니었다. 조선은 이를 철저히 재해석하고 혼합하며, 자국의 생태적·문화적 현실에 맞춰 정교하게 재구성하였다. 이와 같은 외래 체계와 토착 지식의 융합은 문화적 의존이 아니라 지적 자율성(지적 주권)의 표출이었으며, 보편 지식을 정련하고 지역화할 수 있는 조선의 역량에 대한 의도적 주장이라 할 수 있다.


4) 여기서 중세정치신학자 에른스트 칸토로비치가 주장한 왕의 두 신체 이론을 넣고 싶었지만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패스. 이런 세부적인 논의를 하나하나 발전시켜야지 그냥 툭 하고 "천문학은 제왕학이었고 천문학을 통해 국왕의 통치가 하늘의 뜻에 따른 것임을 드러냈다"하고 주장을 던지면 안된다. 주장 이후 뒷받침(substantiate)하는 문장을 보강해야한다. AP 작문의 핵심이다.

Indeed, the Joseon king was not merely a patron of science; he was expected to embody its principles. The Confucian sage-king was a ruler whose virtue radiated outward to harmonize society, nature, and the cosmos. Thus, the empirical sciences—far from being secular or neutral—were imbued with metaphysical and moral weight. Accuracy in calendrical reform, advancements in medical practice, and innovations in agricultural technique were understood as direct expressions of just governance. Conversely, failures in these domains were read as signs of cosmic imbalance and political illegitimacy.


실제로 조선의 국왕은 과학의 후원자일 뿐 아니라, 그 원리를 체현하는 존재로 기대되었다. 유교의 성군은 덕을 통해 사회, 자연, 우주를 조화롭게 만드는 존재였다. 따라서 경험과 실증에 기반한 과학은 결코 세속적이거나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이고 도덕적인 무게를 지닌 것이었다. 역법 개정의 정밀성, 의학의 발전, 농업 기술의 혁신은 모두 정의로운 통치의 직접적 표현으로 여겨졌고, 반대로 이들 분야의 실패는 곧 우주의 균형이 깨졌거나 정치적 정당성이 무너졌다는 신호로 해석되었다.


5) 우리는 항상 1392-1897 정도로만 쓰지만, 영작에서는 유의어 표현이 발달해서 같은 표현을 다시 쓰지 않는다. 5세기라고 한 것은 조선왕조통치내내, 대신에 쓰는 표현이다. 꾀했다 같은 좋은 표현을 foster로 이해하며 좋다. 항상 '촉진하다, 도모하다'라고만 외우지말고 한국말의 다양한 용언을 익히는 게 좋다. allow to를 '-하도록 하다'라고 쓰는 게 나은 것 처럼. 

Over five centuries, this integration of scientific rationality into the symbolic order of power not only stabilized the Joseon polity but also fostered a distinctive form of technocratic kingship. The Joseon experience complicates conventional narratives of modernity by demonstrating that a sophisticated, state-led scientific culture could emerge outside the Enlightenment framework, driven not by capitalist markets or secularism, but by ritual, hierarchy, and moral philosophy.


5세기에 걸쳐 조선은 과학적 합리성을 권력의 상징 질서에 통합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꾀했을 뿐 아니라, 독창적인 ‘기술관료적 왕정’의 형태를 발전시켰다. 조선의 경험은 ‘근대성’에 대한 통념적 서사를 흔들며, 계몽주의, 자본주의 시장, 세속주의가 아닌 제의, 위계, 도덕철학이 이끄는 세련된 국가 주도의 과학 문명이 존재할 수 있었음을 증명한다.


6) 위에서 끝낼 수 있었지만, 조금 더 천문과 왕권의 정당성을 연결시키는 글을 발전시켜보자.

In the ideological architecture of the Joseon Dynasty, the legitimacy of royal authority was not derived solely from bloodline or military conquest, but from a continuous reaffirmation of the Mandate of Heaven through cosmological literacy and moral governance. The sovereign’s role was not only administrative but cosmic—an agent positioned between Heaven and Earth whose virtue had to be continually validated through alignment with celestial rhythms.


조선 왕조의 이념적 구조 속에서 왕권의 정당성은 단지 혈통이나 무력 정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의 뜻(천명)에 대한 지속적인 확인을 통해, 천문 지식과 도덕적 통치의 실천 속에서 정당화되었다. 국왕은 단순한 행정의 수장이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에 위치한 존재로서 그의 덕은 끊임없이 하늘의 리듬과의 조화를 통해 입증되어야 했다.


7) 이 한 문단이면 천문학이 왜 조선의 통치에 중요했는지 그 아이디어를 영미권 화자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다

Astronomy thus became a political theology: it offered a tangible, empirical means of enacting and confirming the king’s fidelity to divine order. The regular observation of the stars, correction of calendars, and public dissemination of the twenty-four solar terms were not mere scientific tasks, but sacred responsibilities. When eclipses, comets, or unusual meteorological events occurred, they were interpreted not as natural anomalies, but as potential signs of cosmic displeasure—warnings from Heaven about the king’s moral failings or the court’s ethical lapses.


이러한 맥락에서 천문학은 일종의 ‘정치적 신학’으로 기능했다. 천문학은 국왕이 신성한 질서에 충실함을 실천하고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수단이었다. 별자리의 정기적인 관측, 역법의 수정, 그리고 스물네 절기의 대중적 보급은 단순한 과학적 과업이 아니라 신성한 책무였다. 일식, 혜성, 이상기후와 같은 천문현상이 발생했을 때, 이는 단순한 자연적 이상이 아니라, 왕의 도덕적 결함이나 조정의 윤리적 타락에 대한 하늘의 경고로 해석되었다.


8) 추가적으로 더 렌더링해준다. S's Noun of N같은 표현을 써보자. 왕조의 준수 of 예, 여기서 of를 '준수하는'과 같이 더 다양한 용언으로 바꿔줘야한다. of에는 소유격 의 말고 아주 다양한 뜻이 있다. 왕조의 예에 대한 준수, 라고만 하면 그 의미를 소략한 것이다. 예를 준수하는 국왕(의 모습)까지 담았다.

Accordingly, every astronomical act was a ritual of state. Calendrical reform, for instance, was a public testament to the king’s intellectual virtue and his ability to harmonize human affairs with natural law. The monarch’s observance of rites (ye, 禮) tied to seasonal changes reaffirmed his role as a moral exemplar whose personal discipline mirrored the cyclical precision of the cosmos.


이에 따라 모든 천문학적 행위는 국가의 의례이자 정치적 제의로 간주되었다. 예를 들어, 역법의 개정은 왕의 지적 덕성과 인간의 일상을 자연법과 조화시키는 능력을 대외적으로 입증하는 행위였다. 절기와 계절의 변화에 맞춰 예(禮)를 준수하는 국왕의 모습은, 우주의 주기적 질서에 부합하는 도덕적 모범으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것이었다.


9) 아까 관상감 한 번 썼는데, 그래도 한 번 더 써보자 왜냐면 아까는 국가기관의 설립의 목적만 설명했을 뿐이고 지금은 그 기관을 풀어서 설명하면서 왜 중요했는지 재서술하려고 하기 때문.

Even beyond state rituals, the dissemination of accurate seasonal information through the Gwansanggam (Royal Bureau of Astronomy) enabled agricultural stability, linking celestial insight with the material welfare of the people. In this way, astronomical knowledge became a political instrument—one that fused Confucian ideals of benevolent rule with the empirical authority of science.


국가 의례를 넘어, 관상감(觀象監)을 통해 제공된 정밀한 절기 정보는 농업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천문학적 통찰을 백성의 물질적 삶과 연결해 주었다. 이처럼 천문 지식은 과학의 경험적 권위와 유교의 덕치 이념을 결합한 정치적 도구가 되었다.


10) 최종 결론 한 문단으로 마무리. 늘 엔딩이 어렵지만, 너무 빨리 끝내면 <하얼빈>처럼 아쉽다. 관찰한다 정밀하게 읽어낸다. 국왕의 이해는 통치의 거울이다. 약간의 문학적인 표현을 곁들여서. 


Ultimately, the king’s knowledge of the heavens was a mirror of his governance on Earth. To rule well was to observe well. And through the meticulous reading of the skies, Joseon kings inscribed their authority into both the calendar and the cosmos.


궁극적으로 하늘에 대한 국왕의 이해는 곧 지상에서의 통치의 거울이었다. 잘 다스린다는 것은 곧 하늘을 잘 관찰한다는 뜻이었다. 하늘을 정밀하게 읽어내는 행위를 통해 조선의 왕들은 자신의 통치 권위를 달력 속에, 그리고 우주 질서 속에 새겨넣은 것이다.


11)

아오 어쩔 수 없이 글을 쓰다보면 뒤쪽이 약간 분량이 줄어드는데 어쩔 수 없다. 전시도 도입 부분에 사람이 몰리고 뒤로 갈수록 슬슬 보며 지나치는 것과 같다. 이미 할 말을 앞에서 힘줘서 다 썼는데 어쩔.. 오늘은 오늘의 지력을 다 썼다. 이제 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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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탐험 - 슷카이 그림책
슷카이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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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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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에 다녀왔다


3층은 홍정인의 여성노동과 생태를 두루두루 다룬 작품으로 원래부터 다수의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두루미DMZ Qrreeuk가 인상깊었다. 드래곤 라자가 생각난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이것은 또 별도로 포스팅


1층과 2층은 스페인 갤러리와 협업해 TBA21의 소장품을 전시했다. 아트선재는 동서양을 균형있게 다루며서 미래에 아젠다를 선점하고 그 이슈를 잘 보여줄 수 있으면서 마케터블한 작품을 가져오는데 영민함을 발휘한다. 전시가 바뀌는 흐름만 봐도 동서동서 균형이 있고, 서양의 경우 레바논계 프랑스인이라든지 스페인이라든지 주류문화권 내에서도 주목받지 않은 다양한 목소리를 포착하려고 시도한다. 언뜻 생각해봐도 서용선→아투이→이요나→반데벨데→서도호→호추니엔→하종현 으로 로테이션이 있다


참조: https://artsonje.org/exhibition-program/exhibition/?_exhibition_type=past_exhibition&_paged=2


그 큐레이션은 정치적이고 전략적이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하므로 이유가 명확해야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이고, 차후 어떤 네트워크, 인적자원, 브랜드이미지에 연결될지를 예측하고 감수하며 행하는 점에서 전략적이다. 그런 맥락에서 아트선재는 작품을 보여주고 파는 상업화랑이 아니라 전시를 통해 어떤 이슈를 먼저 다루느냐 어떤 지역과 관계를 맺느냐 어떤 감수성을 한국의 예술 담론에 도입하느냐를 주도적으로 결정한다. 갤러리와 국공립기관 사이의 어딘가를 잘 포지셔닝했다.


그래서 이번 TBA21 연계전시는 비단 스페인 작가의 작업을 수입해 보여주는 미술도매상의 역할을 넘어서, 스페인 특유의 혼종문화, 기후위기와 탈식민, 쪼그라드는 구제국과 인구급증으로 영향력이 커지는 식민지 사이의 전복적 관계 그리고 인간의 우주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큰 흐름 안에서 동시대 미술의 궤적을 보여준다. 단지 매달 매달 전시 콘텐츠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문화적 스탠스를 선취하는 것이며 그 자체가 일종의 비즈니스이자 공공외교이리라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2층 끄트머리 레히나 데 미겔의 74분 영상이다. 레히나는 스페인어로 읽은 여왕regina이라는 뜻이다. 다른데선 레지나라고 읽는다. 그레고리안 성가에서 자주나오는 (중세라틴어발음의) 사아알웨salve 뤠쥐이이나아아regina의 그 regina다. 안녕 레지나? 여왕 만세


Nekya, a river film 네키아 영화의 강(2022)은 스페인 남서부 리오틴토 지역의 고대신화와 식민착취, 노동운동, 생태파괴의 역사에 우주 생명탐사를 중첩해 하나의 장소를 다루면서 지역, 지구, 우주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성찰하는 정치精緻한 영화이자, 고고학, 광물학, 지역사, 식민사, 천체생물학, 생태노동, SF 모두 한 큐에 쓰리큐션을 성공시킨 담대한 영화다. 이런 영화는 보고 나면 생각할 질문이 많아진다.



리오틴토라는 지역을 작가는 그저 하나로만 정의하지 않고 기억의 매장지이자 미래 실험실로 재구성하면서 이런 챕터를 버무린다.


1) 외계행성을 향해 탐사하는 우주선으로 광물탐사의 의미를 성찰하다가

2) 남미 안달루시아 광맥탐사을 논하다가

3) 산맥아래로 내려가 그리스신화의 지하세계 이야기하고

4) 페니키아 전에 있었다는 스페인의 사라진 고대문명 타르테소스 이야기를 섞고

5-6) 이를 다시 로마와 콜로니, 노예노동의 이야기로 발전시키다가 리오틴토의 식민지회사 (독일자본에 영국직원에 스페인회사)와 광물소성으로 인한 거주환경 저하로 그 지역 사람들의 생태주의, 노동투쟁(유럽 최초)를 다루는데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영화는 명시적인 엔딩없이 우주의 진공을 부유하는 우주선으로 다시 이어져 끊임없는 순환고리를 형성하고 리오틴토 지역의 극한노동 및 광물탐사와 연결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생명의 기원, 외계생명의 가능성을 질문하고, 우주라는 먼 공간을 위로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아래를 보게 만드는(즉 우리 자신과, 우리의 역사로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미래의 이미지와 과거의 이미지가 연결되는 것이다. 


또한 오디세이아의 지옥인 네키아의 검은 이미지의 우주와 연결시키기도 하고, 과거의 안달루시아 금광 은광개발을 현재의 우주탐험과 엮어 자원채굴의 욕망이 대륙과 세기를 초월해 반복된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주를 다루는 스페인의 방식이 흥미롭고 다른 문화와 비교해보면 재밌다. 픽션에서 우주를 다루는 방식은 문화별로 다른데 이유는 우주는 상상의 영역이기 때문에 현재의 우리시각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주는 배경설정에 불과한 게 아니라 한 사회문화가 어떻게 역사와 기술, 인간의 미래를 상상하고 있느냐를 반영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서부개척의 일환으로 우주는 미개척지라고 생각한다. 전인류의 확장이라는 큰 소명을 미국이 대리해서 실현해준다고 믿는다.


즉 우주는 신프론티어이고 원래 냉전시기 군사기반의 나사의 프로젝트에서 비로쇠어 영화에서도 자주 미군과 연계된다. <인터스텔라>, <아마겟돈>, <마션> 같은 영화는 인간이 환경을 극복하고 식민지화한다는 서사다. 문제는 진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다루기 위해 우주는 도전과 성취의 무대로 그려진다.


이렇게 10대의 개척자 스피릿이 뿜뿜 풍기는  미국에 반해 한국의 우주는 현실의 은유처럼 다뤄진다. 미국이 프런티어정신이면 한국은 언더독정신이다. <승리호>의 영어제목은 space sweepers로 우주쓰레기청소부다. 우주라는 화려한 배경은 있지만 서사는 철저히 현실의 고통, 언더독정신, 재벌비판, 소자영업자 옹호, 그리고 마지막에 누가 도와준다는 점에서 메시아적 구원의 구조 안에서 굴러간다.


<별들에게>나 <더 문>, <정이>도 거의 지구에 남은 가족, 책임감, 감정이 중심이 되어 우주로 배경을 바꾸었을 뿐 사실상 우주 자체보다는 지상 문제의 연장선이다. 그래서 미국과는 달리 공감과 생존을 테마로 한 현실비판의 감정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일본은 우주실사영화가 드물다. 훨씬 좋은 대체제가 있기 때문. 일본애니의 우주작화는 대단하다. <건담>이 대표적이다. 한국과 달리 현실적 질문을 던지지 않는데 이유는 애초에 우주라는 공간이 현실적 도피처의 일부로서 이해되기 때문이다. 대신 한국보다는  더 큰 철학적 질문, 주체로서의 개인, 운명과 세계의 구조에 대한 질문이 엿보인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큰 로봇을 조종하는 일본소년의 이미지인데 이는 거대한 서양 문명의 외피를 입었으나 정신만큼은 동양 소년이 조종한다는 동도서기(한국버전), 화혼양재(일본버전)을 상징한다. 서구적 기술문명을 완전히 탈피할 수도, 쉬이 버릴 수도 없기에(즉 로봇을 버리거나 로봇 없이 서바이벌이 불가능하기에) 일본적 정체성이 충돌하거나 조화를 이루면서 네러티브가 만들어진다. 나아가 기계와 혼의 융합이라는 최근 논의되는 (사이보그로 부터 이어지는) 포스트휴먼철학까지 생각해볼 수 있겠다.


우주를 미개척지로 여기고 인류확장을 위해 투쟁하는 군사기업의 미국, 

우주를 배경설정으로 다루며 사회현실적 갈등을 중심에 둔 한국,

우주를 애니메이션의 무대 삼아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일본


과는 달리 아트선재 스페인 영화 네키아에서 우주는 인간이 묻고 있는 오래된 질문의 다른 표현이다. 위로 올려다 본 우주로부터  아래로 내려다 본 우주(지하)까지 시선이 옮겨지며 미래가 과거로 등치된다. 식민주의의 역사, 인간의 생존조건, 신화적 과거, 포스트 식민을 논하면서 리오틴토 지역의 고대 지하신화 → 광물 자본주의 → 우주 생명탐사까지 한 축에 다루는 영화를 보고나면 우주는 저 멀리 개척지도, 또 다른 서바이벌 게임장이나 현실도피처가 아닌 이미 우리의 일부였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금, 은, 철, 니켈 등 온갖 광물의 이름을 읊조리는데 영어와 다르면서 비슷한 스페인식 발음의 과학용어를 듣는 재미가 있다. 스페인어는 유럽어 중 가장 발음이 쉽다고 마케팅되어 초급반 강의가 많다. 낱말 단위로 발음은 쉬운 편이지만 실제 회화에서는 단어들이 묶여 흘러가듯 발음되기 때문에 듣기가 어렵다. 웃고 들어가 울고 나오는 셈.


유럽 스페인어와 남미 스페인어도 어휘, 문법, 발음에서 다르다.

예컨대 유럽에서 차는 coche지만 남미에서는 carro나 auto다. 컴퓨터는 스페인에서 ordenador지만 남미에선 computadora다. 유럽은 질서잡아주는 기계, 남미는 미국때문. 핸드폰도 스페인은 móvil, 남미는 celular다. 

같은 단어라도 발음이 다르다. 예를 들어, c는 스페인 본토에서는 영어의 th나 한국어의 ㅎ에 가깝게 들리는데 남미에서는 z에 가깝게 들린다.


문법적으로도 차이가 있다. 남미에서는 단순과거(pretérito indefinido)를 주로 쓰는 반면 스페인에서는 아베르+뻬뻬(haber+pp)의 복합과거(pretérito perfecto)를 더 자주 사용한다. 스페인 말라가 출생으로 알려진 레히나 데 미겔이지만 이 영화의 나레이션은 남미식 스페인어 같다. 프레테리토가 더 많이 들린다. 예컨대 영화에서 cubrieron이라 했다. 스페인이었으면 haber cubrido라 했을 것이다. 물론 스페인어의 힘듦은 발음보다는 재귀대명사 se의 여러 용법(무인칭인가 수동태인가 스스로인가 등)에도 있지만 아무말 대잔치는 여기까지. 오늘은 오늘의 전시와 영화를 가야해서 글은 여기까지 쓰고 나-가야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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