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몬테카를로 앞 바다에 나타난 4인방, 포스 하난 진지하기 그지 없다.>


펭귄들이 비행기를 탈취해 달아난 이후, 알렉스의 향수병이 점점 심해지자 친구들은 그의 생일날 뉴욕시 모형을 선물한다. 하지만 알렉스는 더이상 모형으로 만족할 수 없다며 행동에 나설 것을 선언한다. 이에 마다가스카 4인방--알렉스(사자) 마틴(얼룩말) , 멜빈 (기린) , 글로리아(하마)--은 펭귄을 찾아 몬테 카를로로 향한다. 펭귄일당이 카지노 도박장과 호텔에서 머무르며 돈을 왕창 벌고 있다는걸 알게 된 마다가스카 일행은 치밀하게 4단계 계획을 세운다. 일단 사람들 모르게 펭귄들을 생포한 뒤, 동물적으로(?) 그간의 서운함과 오해를 털어낸 후, 뉴욕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내자는 것,  그러나 그들은 실행에 나서기도 전에  누가 리더냐를 두고 티격태격하다 계획이 엉망으로 만들고 만다. 결국 카지노를 발칵 뒤업고만 마다가스카 일행은 펭귄들을 생포하기는 커녕 그들의 도움으로 카지노를 빠져 나오게 된다. 펭귄 일당을 만난 것도, 무사히 카지노에서 빠져 나온 것도 좋아할 사이도 없이 그들은 동물 포획 전문가라는 뒤부아 여사의 레이다에 걸리고 만다. 7살때부터 동물을 잡아 박제를 만들어 온 경력의 소유자 뒤부아 여사는 자신의 컬렉션에 아직 사자가 없다면서 흥분 한다. 알렉스를 노리며  끈질기게 따라오는 뒤부아 여사를 간신히 따돌린 동물들은 유럽에서 도망자 신세가 된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 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고 유럽을 빠져나갈 것인가 라는 점. 경찰을 피해 도망가던 그들은 눈 앞에 나타난 서커스 기차에 생각할 것도 없이 승선해 버린다. 서커스 단원들에게 자신들을 서커스 전문가라고 속인 알렉스 일행은 이제 자신들이 진짜 서커스를 할 줄 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자, 앞으로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 지려나?


  

     < 미션을 시작하기도 전에 계획이 몽땅 탄로나 버린 뉴욕 4인방, 그들에게 미션 파서블을 임파서블로 만드는건 일도 아니다. > 



뒤부아와 경찰을 피해 도망가던 동물 일행들은 다급한 마음에 서커스단 열차에 승선하게 된다. 우연찮게도 이는 그들의 운명과 직업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는데...>


 뉴욕으로 가기 위해 어떻게든 머리를 굴리던 마가가스카 일행들의 활약이 돋보이던 만화 영화다. 도망자 신세를 모면하기 위해 서커스에 입단하고, 입단한 김에 아예 서커스를 사버린 뒤, 망해가는 서커스를 일으켜 성공적인 공연을 보여준다는 것이 대략의 줄거리로, 3D 영상의 장점들을 적절히 활용해서 스펙타클한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뒤부아 여사가 동물들을 추적하는 씬이라던지, 대포를 이용 동물을 발사하는 장면과 새로운 서커스 공연을 보여주는 장면들에선 3D로 보는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다만 그 장면들의 자극이 너무 컸던 나머지(즉, 신이 났던 나머지) 다른 장면들은 다소 맥빠지게 느껴진다는 점이 단점이다. 짜릿한 스릴에 익숙해지다 보니 그냥 평범하게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엔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무슨 3D가 이래? 라고 조카의 투덜대는 소리를 들으며, 앞으로 3D로 만드는 영화 종사자들은 고민이 많겠다 싶었다.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 관객들이 이젠 왠만한 장면으로 만족할 생각을 안 할테니 말이다. 



<의욕에 차서 새로운 공연 레파토리를 구성하고 있는 알렉스, 그는 매너리즘에 빠진 기존의 맥빠진 묘기 대신 참신하고 특별한 것을 보여줄 생각이다. 문제라면 그 참신함이 위험과 아슬아슬한 경계선상에 놓여 있다는 것 정도?>


아이들이 좋아할거라 해서 조카와 함께 본 영화인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이들과 보기 딱 알맞았으니 말이다. 일단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들이 대거 출연하고, 아이들이 열광하는 펭귄들이 손발 척척 맞는 활약상을 보여주는데다, 딱히 영리하진 않지만 리더 역활을 해야 할 때 리드할 줄 아는 사자 알렉스나 호들갑과 오도방정의 대가인 얼룩말 마티, 서로를 잘 보완해주는 멜빈과 글로리아등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살아있다는 것, 톡톡 튀는 유머로 아이들로 하여금 쉽게 호감을 느끼고 이해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외에도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나타나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영악한 펭귄들,  늘 "정상"  과는 거리가 먼 행동으로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마다가스카 3인방, 이 시리즈에 새로 등장하는 동물들인  삐딱한 천재 호랑이 비탈리나 아름다운 표범, 그리고 순둥이 바다 사자등, 개성 만점의 캐릭터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끌고 나갈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서커스의 화려한 볼거리나, 유럽의 아름다운 뒷 배경들도 화면이 지루하지 않도록 눈을 자극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난 이 영화가 <리오>보다 낫다는 다른 블러거의 평엔 동의할 수 없었다.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나 덜 소란스럽다는 점에서 리오가 더 낫지 싶었던 것이다.다소 짧지 싶은 것도 아쉬움을 더했고 말이다. 뭐, 둘 다 수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니 우열을 가릴 필요는 없겠다 싶지만서도.


벌써 아이들용이라는 소문이 나서인지, 내가 간 영화관에도 아이들 투성이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였다. 남 눈치 보지않고 제 멋대로 떠들어 대는 것하며, 영화가 시작되었음에도 진정되지 않는 소란, 영화 시작 전에 틀어준 3D 화면 조정 시간의 왁자지껄한 소동들이 다른 영화관에서라면 상상도 못한 일이었을테니 말이다. 특히 3D 조정 화면이 나오자 보여준 아이들의 열광적인 반응엔 저절로 미소를 짓고 말았다. 다들 자기의 눈 앞으로 공이랑 벌레랑 꽃등이 날라오는걸 보고선 난리를 펴댔기 때문이다. 어른들만 있었다면 속으로 신기하네 하고 말았을텐데, 아이들이다 보니 지글지글 웅성대고, 낄낄대며 좋아하고, 헉하고 놀라고, 크하하하 웃어 제끼고, 벌레가 날라 왔다고 소리치고, 비명 지르고, 손을 뻗어 눈 앞의 것을 잡으려 하는등, 한꺼번에 다양한 반응들을 폭탄처럼 내보였다. 그 천진난만함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나도 같이 동화되고 말았다. 자고로 아이들이 함께 웃는 소리처럼 아름다운건 없다는걸 깨닫게 해준 순간이었다. 내 아이만 떠드는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동시에 떠들어대기 때문에, 마치 집에서 가족들과 관람 하는 듯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정색하지 않아도 감상이 가능한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아마도 아이들만이 가진 특권이겠지. 하여간 아이들과 함께라서 더 재밌었던 영화였다.


하니, 아이들과 함께 할 무언가를 찾고 계신다면 옵션 목록에 넣어도 좋지 않을까 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아이와 함께 봐야 하기에 필수 사항인) 우리말 더빙이 어색하지 않으려나 뜨악해 했었는데, 감상하는데는 아무런 위화감도 없더라. 아이와 함께 보신다면 더빙으로 보셔야 하는 것에 억울함을 안 느끼셔도 좋을 듯. 다만, 아이들을 싫어하는 분이라면 심야나 자막으로 된 것을 선택하심이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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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동안 결혼 생활을 한 에블린은 남편이 죽은 뒤 빚이 많다는걸 알게 된다. 판사인 그레이엄은 동료 판사의 장황한 은퇴 연설을 듣던 중 은퇴를 결심한다. 더글라스와 진 부부는 딸 사업에 투자를 했다가 퇴직금을 몽땅 날린다. 부잣집 가정부겸 집사였던 뮤리엘은 평생을 일했던 집에서 늙었다는 이유로 해고된다. 고관절 수술을 해야 하는 그녀는 인도 병원으로 가라는 말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아이를 봐달라는 딸과 사위의 요청에 마지는 가방을 싸서 집을 나온다. 또다른 남편감을 찾아서...나이에 상관없이 여전히 뻔뻔스러울만치 여자를 밝히는 노먼은 상대를 구하기 점점 힘들어지는 현실이 슬프다. 


 그렇게 각각 다른 사연을 가졌지만 황혼의 나이에 갈 곳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던 일곱 명은 인도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라는 웹싸이트 광고에 혹하고 만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품격있고 고풍스런 궁전으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그곳은 바로 <베스트 엑조틱 메리 골드 호텔>!  웹싸이트에 소개된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비슷은 하겠지라는 심정으로 호텔에 도착한 일행은 영락한 전경에 실망하고 만다. 포샵을 했다는 항의에도 지금은 단지 '리모델링' 중이라서 그렇다고 대꾸하는 인도 청년 소니, 그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호텔을 재건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동분서주중이었다. 다만 문제라면 그에게 있는 것이 젊음과 야심과 한없이 긍정적인 마인드 뿐이라는 것, 돈도 능력도 요령도 경험도 부족한 그는 주먹구구식으로 호텔을 운영하면서 마냥 헤매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숙박객들이 인생 경험 풍부한 노장들이라는 것은 그에게 다행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사기라고 소란을 떠는 대신 실망을 접은 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인도에서 시작된 그들의 새로운 인생,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다양한 사연으로 인도에 오게 된 일곱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자신의 노년이 맘에 드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나오는 일곱 명의 사연을 들어보면 늙는다는게 다소 두렵기까지 하다. 40년을 함께 살아왔지만 남편이 빚을 비밀로 했다는걸 알게 된 에블린은 자신의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낀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언어로 남편을 학대하는 맛에 살고 있는 진은 그럼에도 자신을 이해하려는 착한 남편이 밉살맞기만 하다. 로맨스와 섹스를 빼고 나면 자신들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미지의 상대를 개척하기 위해 나선 마지와 노먼은 인도에서도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평생 한 가족만을 위해 살았지만 결코 그들의 가족이 될 수 없다는걸 뒤늦게 깨달은 뮤리엘은 그녀가 그토록이나 싫어하는 유색인종들 사이에 있게 된 것이 못마땅하다. 마지막으로 그레이엄 판사, 게이인 그는 그제서야 용기를 내어 40년전의 사랑을 찾아 나선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사랑, 그때만큼 행복했던 순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없었다는걸 깨달은 그레이엄은 지금이라도 그를 만나야 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 역시 그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제와서 그를 찾아도 되는 것일까? 기대와 함께 두려움이 교차한다. 


그렇게 한평생을 열심히 살아왔지만 어째 말년이 그다지 괜찮지 않은 숙박객들은 뒤늦게 자신들의 삶을 바로 잡으려 한다. 삶을 정리해야 하는 때이지 시작하는 때가 아닌 황혼에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낙관적이기만 한 인도 청년 소니는 " 끝은 언제나 괜찮아야 한다. 괜찮치 않으면 끝이 아닌 것이다." 라는 말로 그들을 계몽하지만 과연 그게 맞는 말일까?


영화는 결국 소니의 말이 (한편으론) 옳다는 것을 증명해내고 있었다. 즉,  괜찮지 않다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라도 고통이 있다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비참한 인생이라도 인내하고 참고 버티는게 아니라 괜찮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점수를 높이 살만하다. 그래, 다들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말들은 하지만 과연 진짜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책임과 의무에 짓눌려서, 내진 불행과 고통에 절어버린 삶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다른 삶을 꿈꾸는 것이 불가능해진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지 않을까. 그렇게 이게 삶이겠거니 하면서 저항마저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다른 대안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그걸 해결하는 산뜻한 방식에도. 그리고 행복이 찾아왔을때 마다하지 않고 손을 내미는 그들의 주름진 손에도. 삶이 이어지는 한, 아직은 괜찮아질 수 있다고, 고통이 있다면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노년의 지혜에 박수를...


대배우라 할만한 영국 배우들이 총출동하기에 보게 된 영화다. 그들이 다 나온 영화 치고는 작품성이 높진 않았지만--이런 배우들을 가지고 이런 영화밖에 못 만든다는 것은 낭비지 싶다. 하지만 뭐, 대배우라고 해서 늘 걸작에만 출연해야 하는건 아니니까.--그렇다고 그들의 이름값도 못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일단 빌 나이나 주디 덴치, 매기 스미스등의 배우를 한 영화에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그들의 연기야 뭐,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건 황홀하게 들려왔으니 말이다. 배우는 목소리가 좋아야 한다고 하던데, 대배우들의 특징이 그것이 아닌가 한다. 얼굴이 아니라 목소리만으로도 연기가 가능하다는 점. 언제나 매혹적이다. 내용도 괜찮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나쁘진 않았다. 썩 마음에 든 것도 아니지만서도... 별다른 기교 없이 이야기에만 충실했던 통에 살짝 지루해지는 순간들도 있었는데, 그건 눈감아 주기로 하자. 심각한건 따로 있었으니 말이다.


그건 바로 인도 배우들의 연기가  이 영화에 어울리지도 매끄럽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보여준 오글거리고 과장된 연기는--아마도 인도 영화 특유의 표현방식일-- 침착하고 안정된 연기를 하는 영국 배우들 앞에서 그 어색함이 두드러졌다. 왜 그들은 아직도 제 3세계 무지 몽매한 유색인종으로밖에 자신들을 보여주지 못하는지 씁쓸하다. 그것이 아직도 인도인에 대해 서양인들이 가진 편견이라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국인인 인도 배우들은 알 것 아닌가. 자신들도 그냥 별다를게 없는 보통 인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오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기를 했다면 오히려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도, 지상에서 10 센티미터 정도는 붕 떠서 살아가는 듯한 그들이 나와 떠들어대기 시작하면 영화가 확 이상해져 버렸다. 장르 구분조차 애매해진다. 노년의 희망을 다룬 진지한 드라마인지, 아니면 노년의 비참함을 부각시켜 웃기려 한 코미디인지 말이다. 그들이 빨리 화면에서 사라져주길 바랄뿐이었다. 그나저나 서양인들이 인도인들과 어울리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현실에서 말이다. 보통 평범한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이해하는게 가능하지 않으려나? 갑자기 궁금해진다. 충분히 그럴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말이다. 하여간 배우들의 연기 톤의 부조화가 영화를 망치고 있었다. 물론 그래도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지만서도. 그저 완벽하진 못했다는 뜻이다. 그랬더라면 영화가 더 재밌었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마도 지금 현실에선 그게 최선이었을꺼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관을 나왔다. 언젠가는 인도 배우들도 자연스럽게 연기를 해도 된다는걸 깨닫게 되는 날이 오겠지. 그날이 오게 되길 기대하면서. 설마 안 오는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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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산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어중띤 장소의 표본 같은 곳이지만, 한번 살기 시작하면 벗어나기 힘든 중독성을 가졌다는 마을 마호로, 그 마을 역 앞에서 심부름집을 하고 있는 다다는 <무엇이든 다 해드립니다. 살인만 빼고...> 라는 모토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심부름집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사정에 끼여 드는걸 천성적으로 싫어하는 그는 의뢰인이 치와와를 며칠 돌봐달라고 하자 난감해 한다. 마지못해 치와와를 맡으면서도 뜨악한 마음 금할길 없던 다다는 일을 마치고 나와 보니 개가 사라져 있자 당황한다. 개를 찾아 사방을 둘러보던 그는 개를 안고 있는 남자를 보게 된다. 개를 찾았다는 안도도 잠깐, 다다는 남자가 중학교 동창인 교텐이라는 것을 알아본다. 실은 다다에겐 교텐이 미안함으로 남아있는 존재였다. 워낙 말이 없던 그에게 말을 해보려 했던 것이 그만 사고로 이어져 교텐의 새끼 손가락을 다치게 했던 것, 다다는 몰골이 말이 아닌 그를 보면서 혹시 그때의 실수가 이런 미래로 연결이 된 것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안 좋다. 마지막 버스를 놓쳤다는  교텐의 말에 역까지 데려다 주기로 한 다다는 하룻밤만 재워 달라고 교텐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다. 그것이 하룻밤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  < 버스 정거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창, 다다와 교텐>


다음날 아침, 알아서 나가줄 거라 생각한 교텐이 알아서 트럭 옆자리를 꿰차고 앉자 다다는 살짝 위화감을 느낀다. 알아서 나가주지 않는다면야 나가달라고 말하면 되지 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그는 치와와 주인 야반 도주 사건을 해결하다가 말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이제 진짜로 치와와의 주인이 된 다다는 교텐마저 어물쩍 심부름집에 눌러앉자 자신의 팔자를 한탄하기 시작한다. 내가 왜? 라면서 불평을 하던 그는 그럼에도 둘을 내쫓지 못한다. 치와와에게 좋은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광고를 낸 두 사람은 개를 준다는 말에 쏟살같이 찾아온 창녀를 보고는 거절할 말을 찾느라 곤혹을 치른다. 그들이 자신들을 좋게 봐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쿨하게 이해한 창녀는 반대로 그들에게 일감을 맡긴다. 문짝을 고치러 창녀의 집에 들른 다다는 그를 오해한 창녀의 남친으로부터 된통 당할 처지에 놓인다. 그때 평소에 제대로 하는 일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길이 없던 교텐이 나서서 일을 해결한다. 더불어 교텐은 창녀에게 그 남자와 헤어진다면 치와와를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난색을 표하는 다다와는 달리 교텐은 치와와가 필요한 곳은 그곳이라면서 친구의 불안감을 날려 버린다.


한편 초등학생인 유라의 하교를 맡게 된 다다와 교텐은 도무지 귀염성이라고는 없는 아이가 이해되질 않는다. 처음 유라의 행동과 말본새에 반발을 하던 다다는 아이의 사정을 알게 되고는 점차 그에게도 관여를 하게 된다.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부모밑에서 사랑없는 양육을 당하고 있던 유라는 방치된 아이 특유의 사건을 일으키고 다니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를 잃어본 적이 있는 다다와 자신의 아이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교텐은 아이을 지키기 위해 나서기로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마주해야 하는 상대가 조폭이라는 것, 과연 그들이 고작 심부름집 두 남자에게 당해줄만큼 만만할 수 있을 것인가.


--- <플란다스의 개>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울고 있는 두 남자. 이 둘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장면이다. --




한편, 우연히 교텐의 전처를 만난 타다는 반듯하고 아름다운 그녀에게 놀라고 만다. 지금의 교텐을 생각하면 도무지 가능하지 않는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교텐이 본 적도 없다는 아이까지 보게 된 타다는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사는 친구가 더욱 더 이해되질 않는다. 전처의 입을 통해 수수께끼 투성이던 교텐의 과거를 듣게 된 다다는 그때서야 조금 친구를 이해하게 된다. 왜 그가 과거에 그런 행동을 했으며, 왜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것에 대해. 교텐이 언제나 진실을 말했으며, 자신의 고통을 삭이면서도 남을 도와주고 있었다는걸 알게 된 다다는 본격적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친구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남을 위해서만 산다는 것은  즉, 자신은 언제든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산다는 걸 뜻했으니 말이다. 다다가 교텐에 대해 이해를 높이고 있는 사이, 교텐은 창녀를 쫓아 다니는 악질 스토커에 맞서 도발을 시작한다. 숨기만 해서는 스토커를 물리칠 수 없다고 판단한 교텐은 일부러 스토커의 칼에 맞는데...


실제로도 친한 친구 사이라는 두 미남 배우의 앙상블이 멋졌던 영화다. 사회의 낙오자가 되어 만난 두 동창생이 이런 저런 사건들을 맡으면서 서로를 구원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허름한 배경에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가진 등장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만든 영화였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울리는 뭔가가 있어 본 보람이 있었다. 이야기가 가진 힘은 잔잔한 전개에도 졸지 않게 해주었고,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 남자가 쌓아가는 우정은 멋졌던 데다, 그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웃음이 실실 나오게 했으며, 그들과 엮이게 되는 사람들의 사연도 공감이 가고 자연스러웠으니 그럴 만도 하다. 물론 교텐으로 나오는 배우가 조금 힘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서도...상상하던 원작의 이미지와 조금 달라 보여서 말이다. 


하여간 원작을 재밌게 봤던 터라 영화화 한다는 말에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원작의 분위기를 100%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망칠 정도는 아니었지 않나 싶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원작에서는 교텐의 엉뚱함이 도를 넘고, 이를 수습하러 다니던 다다의 일상이 거의 재난 수준으로 중계가 되던 통에 거의 만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면, 영화는 원작보다 현실적으로 그려내서 차분해 보였다는 것?  재미만 따지자면야 원작이 낫다고 하겠지만서도, 일본 영화의 제작 특성상 충분히 코미디스럽게 과장해서 찍을 수 있었을텐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좋게 느껴졌다. 어른스럽다고나 할까. 진지해 보였다고나 할까. 뭐, 그런 것들, 적어도 원작에서 하려던 말을 우스갯 거리고 만들지는 않겠다는 결심이 느껴져서 말이다. 요즘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보게되면,  일본인들이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관습적이지 않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뜨이는데, 이 영화서도 그런 것들이 느껴져서 흥미로웠다. 남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들이 생각해서 답을 쓰고 있다는 느낌인데, 놀라운  것은 그들이 내놓은 답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신선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날카로운 시선들에서 늘 한 수 배우는 느낌이다. 이런 점들은 우리나라 작가들도 배워줬으면 하는 바람이고, 또 그게 발전 방향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한다. 인간의 관계 대한 고찰은 끊임없이 계속되야 하고, 진정성이란 관습적인 것에서 벗어나야 비로서 보이는 법이니 말이다.


더불어 다양한 드라마에서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에이타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면 섭하겠다. 지난 1분기 일본 드라마중에서 가장 히트를 쳤다는 <럭키 세븐>을 보면서 느낀건데, 에이타는 같은 얼굴을 하고도,  단지 연기만으로 충분히 다른 사람을 표현해 내더라. 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표현이 진부하달 정도로 경이로운 변신들인데, 진심으로 연기에 반하고 말았다. 맡는 배역에 따라 표정이고 동작이고 전혀 다른 인간으로 등장하는데 그 변신이 놀랍도록 설득력있다. 진짜로 영리하던지, 아니면 피나게 연구하는 연기자인듯 싶다. 단지 재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연기다. 비교적 짦은 시간 안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발전하는 그를 보자니, 과연 그에게 질릴 날이 오겠나 싶었다.  하여간 앞으로 에이타란 배우를 주목해서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과연 그가 어디서 멈출지, 멈출 날이 오기는 하려는지 궁금해진다. 물론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잔잔하지만 지루하지 않는 영화를 보고 싶으시다면 보셔도 좋을 듯.


가장 마음을 울린 장면을 하나만 꼽자면...

입이 거친 아이 답지 않게 플란다스의 개를 좋아하는 유라, 자신에게 무관심한 엄마에게 마음을 다칠데로 다친 그는 이렇게 말한다. " 부모가 계속 안 계시는 거랑, 부모에게 계속 무시당하는 거랑,  어느게 더 나은지 플란다스의 개는 알고 있었다고 봐 " 보통 어른 같았으면 아이의 말에 반박 하면서 절대 너희 부모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을테지만서도, 다다는 그러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 아무리 기대를 해도 너희 엄마가 네가 바라는 모습대로 사랑해주는 일은 없을 거라고 봐. 하지만 그럼에도 너는 사랑할 수 있어... 살아있는 한..." 아마도 그것이 인생의 정답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언젠가 우리들은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으리니, 어린 시절에 좌절하지 말라고. 거기에 희망을 걸어봐도 좋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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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더(새를 쫓아다니면서 관찰하는 사람들, 새들의 광팬쯤으로 생각하심 되겠다. )들의 꿈의 경기인 빅이어 우승자 중, 전대미문의 732 라는 숫자로 우승한  케니 보스틱은 새해가 시작되자 마자 다시 경기에 돌입한다. 한 해 동안 전미를 돌면서 얼마나 많은 새를 보았는가로 우승을 가리는 빅 이어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돈도 엄청 깨지는 소모성(?) 스포츠다.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곤 달랑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버더들이 알아준다는 것뿐, 트로피도, 상금도, 명예의 전당도 없는 그 일을 그들은 꼬박 1년동안 매달린다. 이젠 가족수를 늘릴때라는 아내의 잔소리를 적당히 귓등으로 흘려버린 채 오늘도 새를 찾아  길을 나서는 보스틱, 그가 세운 기록에 놀란 사람은 그의 능력에 또 한번 놀라곤 만다. 풍부한 경험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열정, 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규칙이나 예의는 아무렇지 않게 깨버리는 순발력에, 느물대며 능글맞은 성격에다, 경쟁이 시작되면 지기 싫어하는 도박사기질까지...그가 세계 기록 보유자가 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명성을 가능케 했던 보스틱의 카리스마와 난공불락같은 기록에 도전장을 내미는 신참 둘이 있었으니, 그 둘이 바로 브래드와 스튜다. 


37살인 브래드 해리스는 이혼남에 뚱보에 싫어하는 직장에 다니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프로그래머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루저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새에 관한 열정에 있어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울음소리만으로 새를 식별하는 귀를 가진 그는 돈을 탈탈 털어 빅 이어에 참가하기로 결심한다. 이론은 쌓을만큼 쌓았으니 이제 실전에 나서고 싶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결심에 다들 어이없어 한다. 인생을 낭비하는 듯 보이는 아들이 아버지는 못내 못마땅하고, 늘상 사라지는 부하의 시간 조정요구에 직장 상사는 넌덜머리를 낸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단지 주위 사람들의 지지와 이해만이 아니었다. 턱없이 모자라는 돈과 시간 역시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끝까지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는 점차 자신이 안이하고 순진했음을 깨닫게 된다. 


한편 은퇴한 CEO인 스튜는 오랜 망서림 끝에 빅 이어에 참가한다.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라는걸 알고 있던 아내의 성화에 힘입은 것이었다. 뭔가 희귀한 것을 보고 오라는 아내의 지지에다 시간과 돈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이미 그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 해서 희귀한 새가 떴다는 말에 헐레벌떡 찾아가보면 이미 발 빠른 보스틱이 다녀간 뒤였다. 빅 이어에 참가한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던 그는 자꾸 마주치는 브래드와 친해지게 된다. 후에 서로가  빅 이어에 참가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둘은 눈에 가시처럼 알짱대는 보스틱이 얄미워 죽을 지경이다. 처음엔 순수한 열정으로 참가했지만, 중반을 넘어서자 우승외엔 관심이 없어진  둘에게 공통의 적이 나타난 것이다.결국  누군가는 보스틱의 기를 확실하게 죽여놔야 한다는 대화끝에 둘은 의기투합하기에 이른다. 함께 팀을 꾸린 둘은 보다 안정적으로 새사냥(새를 죽이는게 아니라, 새를 보기 위해 쫓아 다니는 것을 일컬음)에 나서게 된다. 과연 열정과 자본이라는 둘의 시너지 효과가 보스틱의 경험을 이길 수 있을까? 그해에 있었던 폭풍에 의한 봄 낙진( 새들이 맞바람에 갖혀 한 곳에 내려 앉는 현상)으로 새로운 기록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과연 누가 최종 우승자가 될지에 대한 흥분으로 경기는 점차 흥미로워져 가는데...


                                         <폭풍에 의한 새들의 봄 낙진 현상을 보기 위해 떼거리로 달려든 버더들>


 얼마전에 재밌게 본 책인 <빅 이어>를 원작으로 한데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코미디 배우들 셋까지 출연했으니,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는 그런 영화였다. 기대한만큼 실망하면 어쩌나 조금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걸작까지는 아니라도 원작의 장점들을 잘 살려내고 있었다. 우선 세 배우들의 능청스런 연기가 좋았다. 너무 과장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지나치게 딱딱하지도 않게 괴짜들임이 분명한 버더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원작속 세 남자의 캐릭터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던데, 캐스팅이 적절했지 싶다. 특히 우승을 위해서라면 어떤 규칙도 다 깨뜨리는 보스틱 역의 오웬 윌슨은 마치 본인이 출연한 것 같았다. 어찌나 실감이 나던지 느물대기 한량없는 의뭉스러운 지붕업자가 어떻게 빅 이어의 우승자가 될 수 있었는지 감이 팍팍 왔다. 원작에서 보다 훨씬 더 실감이 났다는 점에서 캐릭터를 제대로 살려냈지 싶다.맡은 역에 생명력을 불어넣는걸 보니 오웬 윌슨은 아마도 보기보단 영리한 배우이거나 , 아니면 극중 캐릭터가 본인의 성격과 비슷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그렇게 얄미운 캐릭터도 그가 연기하면 정이 간다니까. 심지어는 귀엽기까지 하니 연기는 잘하고 볼 일이다.


그외에 1년동안 빅이어에 참가하는 버더들을 쫓아다니면서 그들이 어떻게 새를 관찰하는지 보여준다는 점도 좋았다. 그들은 갖은 운행 수단을 이용, 철따라 새들이 몰려드는 곳을 찾아 전국을 해매던데, 단지 새를 보기 위해 갖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그들이 부러웠다. 인생을 재밌게 사는 것 같아 보여서 말이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빅 이어 사상 최고의 경쟁으로 인해 전설로 남겨졌다는 1998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미 전설이 되어 있는 건설업자와 그를 쫓는 아마추어, 이렇게 세 사람의 실제 대결을 그린 것이다 보니,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갖가지 잔꾀와 기지로 우승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누가 이길지 궁금하게 만드는 긴장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고생고생해서 도착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 새들은 환호성을 지르기에 충분했다. 화면상으로의 만남이었음에도 말이다. 더불어, 미국엔 버더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얄미운 보스틱을 꺽기 위해 명절도 반납하던 배주인 애나와의 실갱이도 재밌었다. 원작에 있던 이야기를 잘 살려냈지 싶다.


하지만 그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최고 공로자를 꼽자면 당연히 <새들>이었다. 왜 버더들이 돈과 시간을 내버린 채 불편함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서는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의 아름다움을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당연히 거기서 벗어나기 힘들지 않을런지...참, 이 해에 누가 우승했는지 궁금하시죠? 궁금하시면 영화를 보시길...덤으로 영화속에 나온 새들을 올려 드립니다.



 
                                                                  <유령처럼 밤 하늘을 배회하는 흰 올빼미>
 <자기 머리로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
 
 
 
                                    < 다시 흰 올빼미,영어명 Snowy Owl로 보스틱을 끝까지 애먹이는 새로 등장한다.>
 
                                                                                  < 왕관을 쓴 듯한 표정이 인상적인 회색 부엉이>
 
                                               < 예쁜 신발을 신고 파티에 참석한 듯한 분홍발 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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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마을 스니드 빌에선 인간을 제외한 모든 것이 인공이다. 공기도, 나무도, 풀도,바람도,먹는 것도...길거리는 한톨의 먼지도 없이 깨끗하고, 사람들은 음료수를 사 먹듯 공기를 사서 들이마신다. 마을 주민들 모두 걱정이나 욕망 없이 단지 행복해만 보이는 그곳에 소년 테드가 산다. 옆집 누나 오드리를 짝사랑하던 그는 그녀가 진짜로 살아있는 나무를 보고 싶다고 하자 나무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스니드 빌도 한때는 나무가 무성한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과거를 짐작도 할 수 없는 상태, 테드는 나무가 멸종하게 된 경위를 알고 있다는 윈슬로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묻는다. 마을 외곽에 괴짜 은둔자로 살아가는 윈슬로는 아직도 나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냐면서 깜짝 놀란다. 나무가 사라진 것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화를 내면서도 그는 나무를 사라지게 한 장본인은 자신이라고 실토를 한다. 돈을 벌 욕심에 나무 요정인 로렉스와의 약속도 져 버리고 마지막 한그루까지 베어 버린 것이 그였으니 말이다. 나무가 울창하던 풍성한 숲, 물고기가 뛰어 다니고, 오리가 활개를 치며, 곰들이 사고를 치던 아름다운 스니드빌은 나무가 사라짐으로써 황량한 들판이 되었다. 더불어 윈슬로의 사업 역시 망해 버렸고, 그는 후회와 자책감에 은둔자가 되어 버렸다. 나무를 살게 하고 싶다는 테드의 말에 윈슬로는 마지막 남은 씨앗을 그에게 맡긴다. 마을에 공기를 독점판매하고 있던 오헤어 사장은 테드가 나무를 심는다는 말에 펄쩍 뛴다. 공짜로 공기를 배출하는 나무를 마을에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 말이다. 오헤어 사장의 방해 공작에, 마을 사람들 역시 지저분한 나무가 왜 필요하다는 것인지 이해를 못한다. 과연 테드는 윈슬로의 희망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인가?





  < 깜찍해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하는 짓은 귀여운 나무 요정 로렉스, 주인공으로써는 드물게 별다른 활약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내용이 요즘 만화영화 같지 않게 고루하고 교훈적이라 했더니, 유명한 동화 작가 닥터 수스가 원작자라고 한다. 아마도 각색자들이 원작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를 쓴 모양이다. 요즘 나오는 영화 치고는, 특히 <슈퍼 배드>를 만든 제작진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착했으니 말이다. 슈퍼 배드의 특징이 뭔가, 괴짜라고 할만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시종 냉소적인 톤을 유지하면서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괴짜들을 가지고도 그렇게 사랑스런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기발한 발상들에 박수를 쳐주었어는데...  캐릭터의 승리라고 할만한 특이한 등장인물에 기괴한 상상력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전작의 기억에 힘입어 대충 그런 영화를 기대하고 갔건만, 이 영화에는 공감 가는 사랑스런 괴짜는 없었다. 인간성은 딱 두가지로 나뉘는데, 좋은 사람 아니면 나쁜 사람이고, 나쁜 사람들은 다 돈을 밝히는 사람들이다. 인공적이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스니드빌의 모습에 대비해 공해로 쩌들은 외곽을 보여주는데, 주민들의 안락을 위해 그들이 외면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강조해준다. 지나친 단순화, 흑백 논리, 착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이 어찌나 뻔하게 드러나던지, 종종 지루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휘향찬란한 3D 효과와 귀여운 동물들, 투덜쟁이 할아버지 같은 나무 요정 로렉스등 반할만한 요소가 많았음에도 말이다. 만약 그들마저 없었다면 공익광고인줄 착각했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이렇게 노골적인 공익 영화를 찍다니, 놀랠 노자다. 그들에겐 이거 너무 뻔해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을까? 여기 저기를 조금 손보면 보다 세련된 영화가 되지 않을까 고민해본 적은 없었는지 묻고 싶었다. 왜냐면 너무도 뚜렷한(?) 주제 의식이---환경을 훼손하지 말자, 나무를 자라게 하자는-- 이야기의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잘 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갑다를 실감나게 해줬고, 종종 웃기긴 했지만 그게 이야기와 연결됐다기 보단 산발적인 이벤트에 그치다 보니 산만하게 여겨졌으며, 3D 효과에 탄성을 지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이야기를 더 재밌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렇다보니, 가장 재밌게 본 장면이 본 영화 상영전 틀어 준< 슈퍼배드 2>의 티저 영상이었다. 영화를 보고 났더니 기억나는 것이라곤 다른 영화 예고편이라니, 할 말이 없다. 역시 영화의 완성도는 이야기가 얼마나 탄탄한가에 달렸지 싶다. 아무리 영상에 공을 들였다고 해도 이야기가 진부하거나 캐릭터가 유치할 시 치유할 길이 없으니 말이다. 조잡하기 이를데 없던 < 아더 크리스마스>가 작년에 상영되었다는 것이 그나마 이들에겐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적어도 우린 그렇게 망하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추신 1--오! 최양락 아저씨잖아? 오헤어 사장을 보는 순간 자동적으로 들었던 생각...

추신 2--아이들에게는 이 영화가 재밌을까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함께 영화를 본 아이들 반응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조카에게 보여주고픈 영화는 아니었거든요. 대신 내년 수퍼배드 2를 기약하려구요.

추신3--굳이 보신다면 3D로. 다른 영화에 비해서 3D 효과가 일취월장한 느낌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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