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싸울 기회 - 민주당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자서전
엘리자베스 워런 지음, 박산호 옮김 / 에쎄 / 2015년 8월
평점 :
미 상원의원인 엘리자베스 워렌의 자서전. 별 생각없이 집어 들었다가 흥분해서 계속 읽게 된 책이 되겠다. 상원의원이 되기 전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파산법을 가르치시던 교수셨다고 하던데, 자신의 전공을 살려 서민들과 약자들을 위한 십자군 기사가 되어 정치계에 뛰어 들었다는 점이 특이한 이력. 한국인들은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하면서 못살겠다고 난리를 피는데, 그것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런 책을 읽어보면 미국도 헤븐어메리카는 아니지 싶다. 무엇보다 금융계의 도덕적 타락이 심각한 상태. 은행에서 나온 친절하고 선량한 직원의 조언에 힘입어 대출서류에 무심코 사인했다가 파산대열에 들어선 서민들이 많다는 것을 이 책을 보고 알았는데, 놀라운 것은 이 정도 되면 금융업이 아니라 막강한 사기대부업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구만, 그 누구도 나서서 제지나 제제를 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에서는 계약이 자유라서, 사인을 한 이상 누구도 터치를 할 수 없다고. 그렇다보니 성실하고 선량한 시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빚을 감당못해 하루아침에 파산길에 오르는 것이 부지기수라고. 이런 사태에 심각성을 느낀 워렌은 금융업계를 규제하고 소비자를 보호하는 법과 기구를 만들기 위해 발벗고 나선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실감나고 박진감있게 그려내고 있던 책으로, 미국의 선량한 지식인들이 약자를 위해 고분분투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막강한 금융업계의 로비들과 맞서 싸우는, 가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투에서, 이런 저런 연줄과 읍소, 악다구니와 다부진 언변으로 하나씩 하나씩 장애물을 물리쳐가며< 소비자 보호 금융국>을 설립하는 과정는 흥미진진하기 그지없었다. 이 책을 보고 나니, 미국이 오바마라는 대통령을 택한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고,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의 일화를 보면서는, 케네디가 집안 사람들이 어쩌면 굉장히 선량한 사람들이겠다 싶었다. 미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몇 개 안 되는 가문중 하나가 아닌가 싶던데, 미국인들이 그들을 존경하는 이유를 알 것 같더라. 결론은, 워렌 여사가 실천으로 보여주다시피, 돈이 없더라도 나머지 자원으로라도 피터지게 싸워야 한다는 것이고, 싸움을 하는 한, 즉, 싸울 기회가 주어지는 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조금하나마 희망이 생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약자를 변호하고 불의에 분노하며 변화시키기 위해 도전하는 그녀 같은 사람이 있어 그래도 미국이 망하지 않고 돌아가지 않는가 싶더라. 솔직히 부러웠다. 그녀의 분노와 그녀의 믿음과 그녀의 열정이. 우리나라에서도 그녀와 같은 정치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세대가 아니라면 다음 세대에서만이라도 이런 사람들이 나타나 주기를 바라본다. 어쩌면 그건 우리 세대들의 손에 달린 것일지도. 그들을 키워내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니 말이다. 완벽한 자서전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시야의 폭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강추천작으로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