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도 봤다, 곡성! 을 외치고 싶어서 보게된 작품. 원래 공포 영화는 취향이 아니라 잘 안 보는데, 왠지 이 영화는 그걸 넘어서 봐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겨서 말이다. 말하자면 뭣이 중한디? 라는 말의 의미 정도는 알아듣고 싶었다는 뜻. 줄거리는 이미 여기저기서 흘러 나왔기 때문에 구구절절 나열할 필요는 없겠다 싶고, 해서 대략적으로 느낀 점만 풀어 놓는다면...
1. 첫 도입부부터 성경 구절을 인용되는데, 그 구절을 아무 생각없이 따라읽다가 예수가 좀비들의 조상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실소하고 말았다. 우리가 좀비들을 무서워 하면서도 그렇게 매혹적으로 느끼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듯. 예수에게 매혹을 느끼는 이유도 어느정도는 그가 죽었는데 살아돌아왔다고 주장하는 것에서 시작하니 말이다. 어쨌거나 그저 연쇄 살인범에 대한 이야기일거라 막연하게 생각하고 봤다가, 성경을 정반대로 비틀어놓은 내용이라는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2. 예수가 우리 앞에 나타났을때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다. 걍 믿으라고 해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는 증거를 내놓아야 했었는데, 그중 최고봉이 바로 마지막 기적, 즉 죽은 자에서 돌아온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예수가 다른 수많은 사기꾼들과 다른 진정한 예언자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백한 증거였나니, 그의 평범하지 않은 언행과 기행에 마음을 빼앗기긴 했으나 진짜 이 사람이 그 사람인지 믿음이 가지 않았던 사람들 모두를 한방에 무릎 끓게 만든 사건이지 않았는가 한다. 그렇게 증거가 없다면 우리는 예수가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렇다면 만약 악마가 등장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믿을 것인가. 그것이 현실적인 존재라고 받아들일 것인가? 라는 물음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한 질문이었다.
3. 영화속 결론을 말해 보자면, 감독은 악마가 그 자신을 증명할 증거를 아무리 우리 눈앞에 들이민다고 해도 우리가 믿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하다. 왜냐면 악이나 선이 우리의 인식을 벗어날만큼 거대할 시 ,우리는 그것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회피하거나 얘써 별 것 아니었다고 생각해 버리는 경향이 있어서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보좌신부와 외지인인 일본인과의 마지막 조우는 의미심장하다. 그간 본 것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일본인이 평범한 사람일거라 생각하는 보좌 신부와 그런 그를 못내 가소롭다는 듯 처다보는 일본인의 표정이라니...사이코패스가 양심을 인지하지 못하는 양심맹이라고 한다면, 어쩌면 우리 일반 사람들은 악을 인지하지 못하는 악맹들이 아닐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악의 모든 것을 보여줘도, 그것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뭔가 사연이 있을 거라고, 평범치 않은 악에 대해 평범한 일상성을 부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소심한 마음과 초파리같은 초치기 기억력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무리들에게 너희는 제대로 보라, 이것이 바로 악이다. 너희가 눈을 돌리고 부인한다고 해서 악은 사라지거나 물러서지 않는다고,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착해야 한다는 모토아래 위기시에도 안이하게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어떻게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던데, 너무 불안감에 절어서 생활하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서도, 불안과 공포심을 느끼고 행동에 나서야 할때 조차 그걸 억누른다면 어떤 파국이 도래하는지 잘보여주고 있었지 않는가 한다. 우리는 닭이 세번 울렸을때의 베드로처럼, 예수를 부인한 것 만큼이나 악마를 부인할 것이다. 그것이 어쩜 우리 인간의 본성일지도....
4. 이 작품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이 많았는데, 난 그냥 볼만했다. 이걸 보고도 밤에 잘 잔것을 보면 공포 영화에 대한 민감도가 생각만큼 높지 않았는가보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가하면, 또 그건 아니고. 초반 도입부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폼새가 예사롭지 않았다는 점만은 나도 인정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영화를 봤다고 해도 도입부부터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행동들이 왜? 라는 의문 부호를 달기에 충분하게끔 석연찮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서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다 복선이었고, 알게 모르게 연결이 된것이다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서도.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다시 한번 보겠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라서. 그냥 흐름이 끊기더라, 라는 정도로 기억하려 한다. 악은 악이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아무 죄 없는 자도 그들의 먹이가 될 수 있다. 왜냐면 그들은 그저 심심풀이로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이므로. 하니 그 미끼에 우연히 걸려 들은 우리 가여운 중생들은 너무 억울해 말거라, 라는 말을 하려던 것이라면 제대로 알아들은 듯하다.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뭐. 상관은 없고. 잘 만든 작품인가요라고 묻는다면 글쎄...라는 의문 부호가 따른다. 이런 내용으로 이야기를 하나 완성했다는 것만큼은 대단하다 싶긴 하지만 완벽하게 나를 설득하기엔 뭔가 부족했다. 마지막 부분들이 특히나 석연찮다. 과연 천우희는 악마들을 막을 진정한 계략이 있었던 것일까. 모든 정황을 의심의 길로 들게 만들고서는, 딸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인 아버지를 향해 나를 믿어라, 흔들리지 마라라고 말한들, 과연 그 말을 믿을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 천우희 자신은 도움을 주려 왔다고 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의심에 불을 활활 지펴서 악을 향해 달려 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녀는 과연 선인일까? 아니면 아담과 이브의 신화에 나오는 뱀같은 존재인것일까. 과연 우리는 무엇을 믿을 수 있고, 무엇은 믿을 수 없는 것일까. 참으로 골치아픈 명제다. 다만 그저 거대한 악을 마주했을때 그것을 악이라고 알아볼 수 있는 통찰력만은 내게 주어지기를, 하고 영화를 보면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