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난 남편과 이혼 한 뒤 고향 베를린으로 돌아온 카티는 새 직장을 얻기 위해 고용센터로 간다. 어린 시절부터 미용실에 끌렸다는 그녀는 사람들의 머리를 해주는 것을 천직으로 아는 여자다. 백화점 미용실에 자리 하나가 비었다는 소식에 신이 나서 달려간 카티, 하지만 미용실 주인은 그녀의 몸매를 보자마자 퇴자를 놓는다. 미용실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곳이라 그녀처럼 아름답지 않은 여자가 있을 곳이 못 된다는 이유였다. 비록 자신이 뚱뚱하긴 하나, 실력만은 좋다고 간청을 해보지만 주인의 결심은 완고하다. 무시만 당한 채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돌아오던 그녀는 백화점에 가게 자리가 하나 빈 것을 보게 된다. 취직이 안 될 바엔 창업을 하자고 결정한 그녀는 조건을 알아본다. 월세 보증금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돈을 구하러 이리저리 뛰어 다닌 그녀는 이혼녀는 대출을 받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현찰 박치기에 세금을 안 내도 된다는 소리에 꺼리던 "이동 미용실" 장사를 시작한 그녀는 고객인 양로원의 할머니가 머리를 말고 죽는 바람에 경찰 신세를 지게 된다. 가게는 하고 싶고, 돈은 모자라고, 딸의 비밀 저금통까지 털었지만 그것으로도 돈이 부족하자 카티는 불법 이민 수송에 나선다. 별로 어렵지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그녀가 누군가. 무슨 일을 해도 안 풀리는 카티 아닌가? 폴란드에서 베트남 사람 12명을 데리고 온 그녀는 일이 꼬이는 바람에 그들 전부를 자신의 집에 데리고 온다. 이에 그간 엄마가 하는 일에 묵묵히 지지해주던 딸은 화를 내고 아빠에게로 간다. 자립도 해야 겠고, 딸도 데리고 와야 하며, 자신의 인생도 되찾아야 하는 카티,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펼쳐지는 소동에도 불구하고 좌절하기 보단 끝없이 낙천적인 그녀, 과연 그녀의 소원대로 미용실을 열 수 있을 것인가? 몇개 월이 지난 뒤, 모든 것을 잃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그녀는 손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주절주절 털어 놓는데...
정말 이 영화가 <파니 핑크>를 만든 감독의 작품이란 말인가?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도무지 같은 감독의 영화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뭐랄까. 깜찍하고 사랑스런 소녀가 끔찍할만큼 뚱뚱한데다 매력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중년의 여인이 되어 나타난 걸 본 기분이랄까. 어린 시절의 곱고 친절해 보이는 얼굴 선이 아직까진 망가지진 않았지만, 코끼리가 걷는 듯한 걸음걸이에 관절염이 제일 먼저 걱정되는 그런 사람으로 변해서 말이다. 외모만 망가진거라면 그래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뚱뚱한 사람도 얼마든지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런 사람도 못 됐다. 몸매따라 인생도 흐트러진 모양이었다. 나도 한때는 날씬했다면서, 바람이 난 남편과 친구를 원망하지만, 솔직히 여자인 나도 바람이 난 그 남편에게 뭐라 할 수 없더라. 아무리 아내라고 해도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완전히 놔버린 사람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기란 힘들지 않겠는가. 아무리 그녀가 착하다고 해도 말이다.
뭐, 이혼한 것은 좋다. 이혼녀가 되었으면 정신이라도 차려야 하는데, 그녀의 미용실 차리기 프로젝트는 얼마나 엉성하게 흘러 가던지...처음엔 안 된 마음에 응원을 해주다, 하도 일이 틀어지니까 애처로워 보이더니, 결국엔 그녀가 바보 같아 보였다. 주인공이 매력까진 아니더라도, 조금은 공감이 되야 영화 볼 마음이 나는데, 공감은 커녕 근처에 가까이 가기도 싫은 여자다 보니, 영화를 보는 것이 내내 꽤 끔찍했다.
이 감독 생각엔 그렇게 구제불능인 카티가 그럼에도 낙천적인데다 늘 쾌활하고, 어떤 경우에도 사람들에게 친절한 것이 장점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해도, 우선 본인부터 챙겨야 하는게 아니겠는가.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희생정신이 넘친다해도 신뢰가 안 간다. 게다가 스토리의 전개는 어찌나 억지 투성이던지...스토리텔러로써의 감독의 자질이 의심스러웠다. 그것뿐인가? 뚱뚱한 카티가 올 누드로 잠을 자는 모습등, 역겹다 못해 눈살이 찌프려 지는 장면들을 꼭 세번씩 넣던데, 그건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한번만으로는 관객들이 이해를 못할까봐서 그런 것일까? 한번으로도 눈 버리는 심정이었구만, 감독은 잣니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외면하지 않고 보여주려 했다는걸 강조하고 싶었는지, 반복에 반복을 해댔다. 요즘은 아무리 좋은 장면도 길고긴 16부 드라마에서조차 반복하지 않는다. 설마 그걸 사람들이 무척 재밌어 할거라는 기대로 넣은 것은 아니겠지. 너무 기괴해서 현실감조차 있지 않더만, 아마도 감독은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니, 세번쯤 넣지 않는다면 뚱뚱한 여자에 대한 모욕이 된다고 생각한 듯했다. 날씬한 여자였다면 분명 그랬을 거라고 말이다. 음, 과연 그럴까? 오히려 날씬한 여자가 주인공이었다면 누드가 전혀 필요치 않지 않았을까? 그저 이야기 자체에 촛점을 맞추면 되니 말이다.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철목련>이나 미용실을 다룬 다른 영화 <뷰티 샵>처럼 말이다.
하여간 뚱뚱한 여자가 겪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만 보여주겠다는 것이 감독의 의도였다면 아예 다큐를 찍는게 나았을 것이다. 적어도 웃길려 애를 쓰는 배우들의 수고에 한숨이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뚱뚱한 여자의 있는 그대로의 현실 보여준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감독의 의도는 단지 코미디 물로 만들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실패한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도무지 웃을 만한 데가 없었으니 안 그렇겠는가. 오히려 웃기려 만든 장치들이 역겹고, 짜증나고, 한심하고, 불쾌하고...거기에 잘 만든 영화라면 차별을 시정해야 겠다고 생각되는게 올바른 수순일텐데, 어떻게 된 것 일인지, "우리가 왜 뚱뚱한 사람들을 싫어하더라? 귀여운 구석은 없고 미련해 보이는데다 역겹기 때문이지!" 라는것만 새록새록 생각나게 해주고 있었다. 어찌나 설득력이 대단해 주시던지 말이다. 만약 뚱뚱한 여자의 현실에 대해 일러주고 싶은게 있다면 차라리 미국 드라마 <빅 C>를 보라, 그게 훨씬 더 낫다. 거기선 적어도 뚱뚱한 여자가 아름답다는 식의 가식은 없으니까.
어쩌면 독일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을 웃기는지 모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정확한 분석이건 침소봉대건 간에, 하여간 독일 사람들에게 " 만약 이게 최선이라면, 앞으로 코미디 물은 찍지 말아주셔요~~ "라고 애원하고 싶다. 아~~~ 과거가 그립다. <파니 핑크>나 <비욘드 사일런스><베를린 천사의 시> 같은 영화를 만들어 내던 독일의 과거가 말이다. 정녕 그런 좋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들의 문화가 어쩌다 이렇게 후퇴했을지 안타까울 뿐이다.
<네영카 시사회를 통해 본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