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의 골프>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천국에서의 골프 -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천재 18명의 인생 수업
밥 미첼 지음, 김성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절판


시험 준비를 하느라.. 한동안 책을 손에 잡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책을 손에 잡긴 했지만 집중을 하지 못했고 대부분은 대여섯장 읽다가 그만두기를 거듭하곤 했다. 시험이 끝나야 책이 읽히겠구나 싶어 책을 밀어놓고 한동안 책을 잡지 않았다가 드디어 시험이 끝난 이번주에 참으로 오랜만에 손안에 잡고 책장을 넘겼던 책이 바로 이 책 천국에서의 골프였다. 그리고 천국에서의 골프는 뭔가에 쫓기듯 급하고 마음을 다잡지 못했던 나에게 몇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정말이지 시기가 적절했던 책이었다.

심장마비로 생사의 갈림길에 선 한 남자. 남자는 수술대에 누워 사경을 헤매이며 무의식 속에서 자신의 목숨을 건 다소 무모한 내기를 하게 된다. 내기를 건 이는 바로 생사를 가를 수 있는 권능을 손안에 가지고 있는 하나님.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내기에 응하게 되었다. 그가 응하게 될 내기는 골프. 코스선택은 자신이 할 수 있지만 상대를 알지 못한채, 그는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에 가장 중요한 내기를 하게 된다. 천국에서의 골프는 바로 그 목숨을 건 골프내기를 하는 동안 남자가 그 경기를 통해 배우게 되는 여러 인생의 지침과 깨달음, 그리고 교훈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남자가 내기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위대한 사상가, 혹은 작곡가, 심리학자, 철학자들이다. 이름만 들어도 사람들이 아는 이들. 그저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뒤흔들고 역사에 남아 많은 후대의 사람들에게 수 없이 많은 가르침을 남긴 이들을 직접 만나 골프라는 게임을 통해 대화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동안 남자는 때로는 대화를 통해, 때로는 그저 그들의 모습을 통해, 그리고 때로는 경제차체만으로 그가 인생에서 놓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간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때로는 전혀 새롭게 때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잠시 망각했던 것들로 다가온다

18홀의 경기를 다 도는 동안, 남자는 생사를 건 내기에서 남자는 많은 것들을 배워나간다. 혹은 깨달아 나간다. 그리고 천국에서의 골프를 읽는 동안 나도 18홀의 경기동안 많은 위인들을 만나고 때로는 새로운, 때로는 알고 있었으나 망각했던 것들을 상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경기를 통해, 혹은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말이다. 인생이라는 경기는 18홀의 골프처럼 코스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들이 골프를 선택한 것은 바로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전혀 다른 것들을 모두 같은 사람이 이겨내야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니까 말이다.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다를 것이다. 그래서 인생을 사는 동안 사람들을 통해 얻는 깨달음은 모두 다른 모습으로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다가오리라. 꼭 천국일 필요가 있겠는가? 사람이 사는 것이 모두 골프처럼 매 순간 목숨을 건 내기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천국에서의 골프는 내용만 따지자면 사실 새롭지도 흥미롭지도 않은 이야기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그저 약간의 비유를 통해, 약간의 양념을 쳐서 만들어낸 스토리텔링식의 자기계발서이니 말이다. 하지만 똑같은 것도 어느 순간에 만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듯, 나에겐 바로 그 순간 천국에서의 골프를 읽으며 아주 작은 위안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골프내기를 함께 하는 동안 한숨을 몰아쉬며 '그래..그랬지'라는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당신의 골프경기는 지금 몇 번째 홀을 누구와 돌고 있을까?
몇번째 홀이든, 누구와 돌고 있든,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사실은 그 경기를 모두 치루어 내는 것은 당신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는 경기가 되든, 지는 경기가 되든, 그 경기는 당신의 경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장바구니담기


딸 둘에 늦둥이 아들 하나. 아빠와 엄마까지 다섯식구가 둘러 앉아 무엇인가를 한가득 입에 물고 이야기를 나눌때면 엄마가 가끔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너희 할머니가 가끔 그랬다. 다른 건 인색하고 아까워도, 내 논에 물들어가는거랑 내 새끼 입에 음식 들어가는 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인제는 알겠다." 엄마의 엄마가 그랬듯, 나의 엄마도 역시 그랬다. 다른 엄마들처럼 내 자식들 입을 채워줄 음식을 사는 것은 아까운 것이 없었고, 내 아이들 입성을 챙기는 것도 아까울 것이 없었던 엄마. 엄마는 그렇게 늘 엄마였다. 한번도 엄마는 엄마가 아닌 것이 없었다. 태어날때부터 엄마였던 사람처럼, 언제나 나에게는 엄마였던, 한때는 소녀였고, 한때는 젊음을 간직한 여인이었던 그녀. <엄마를 부탁해>는 나에게 나의 엄마를 다시 꼭 붙들어매게 했던 작품이었다

<엄마를 부탁해>는 어느날 서울역의 지하철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가족이, 엄마를 잃어버린 후 자신들이 잊고 있던 엄마라는 존재를 뒤늦게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모든 소중한 것들이 그렇듯, 내 곁에 존재했을때에는 그 의미를 잊고 살다가 사라지고 난 후에야 그 가치를 깨달은, 인간이라 이름지어진 우리들의 어리석음과 아둔함을 지적하는 이야기이자, 그 가치를 잊지 말아달라 부탁하는 누군가의 애원이기도 한 간절한 이야기. 엄마라 불렀고, 엄마라 불리웠던 한 여인을 기억하는 그녀의 가족들이 말하는 그녀에 대한 기억을 통해, 누군가의 엄마로 고단했던 그녀의 삶들을 그리움을 담아, 그리고 그녀를 되찾고 싶은 간절함을 담아 풀어놓는, 바로 당신과 나의 어머니에게 드리는 한편의 사모곡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엄마를 부탁해>가 한 평생을 자식과 남편을 위해 오로지 헌신만을 하며 살아온 안타깝고 서글픈 인생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산골에서 태어나 가진 것 하나 없이 오남매를 키워내며 독에 양식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두려웠던 누군가의 엄마 속에, 평생을 간직하며 위로받았던 단 하나의 애틋함이 있었음을, 그래서 그녀 역시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내이기 이전에 아름다운 여인이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홀로 간직한 그 마음만큼은 억척스럽게 밭을 매고 누룩을 띄워 가족을 건사하는 강인함이 아닌 바람에 흔들리고 어디에서고 고단함을 기대어 위로받고자 하는 연약한 여인의 마음이었음을 말이다.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존재이다. 어버이날이면 습관처럼 불렀던 어버이은혜의 한 소절처럼 언제나 자식들의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며 손발이 다닳도록 고생하시며 말이다. 어린시절에는 그 손길 없이 단 한발자국도 자신이 없었건만, 나이가 들고 성장을 하며 가끔 우리는 그 엄마를 잊고 살아간다. 늘 있었기에 굳이 의식할 필요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듯이, 너무도 무심하게,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게 말이다. 누군가의 무엇으로 일평생을 살았으니, 그 자리가 아니면 당신이 갈 수 있는 곳은 어느 곳에도 없을지 모르는데, 그렇게 외로운 그녀의 유일한 자리를 우리는 잊어버리는 것이다. 단지 그녀를 기억해주는 것으로 그녀를 그곳에 편안하고 행복하게 모실 수 있는데, 이제야 비소로 행복을 느낄 여유를 가지게 된 노년의 엄마들의 자리를 그렇게 빼앗아 버리는 불효를 의식하지도 못한채 저지르는 못난 자식들에게, 엄마는 또 어느날엔가 미안하다고 말할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잊지말고 기억해..
엄마를 지켜줘...
한평생 자식들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 일생을 바쳐온 그녀의 검버섯 핀 손을..
이제는 네가 잡고 놓치지 말아줘...

<엄마를 부탁해>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노희경 원작소설
노희경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0년 4월
구판절판


소설이나 시를 쓰는 작가나,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이름을 듣게되면 떠오르는 일정한 이미지가 있는 것처럼, 드라마 작가에게도 이미지라는 것이 있다. 누군가가 쓴 드라마는 유쾌하고, 누군가가 쓴 드라마는 파격적이며, 누군가가 쓴 드라마는 은유적이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드라마 작가 역시 글을 쓰는 사람들이기에, 단지 그들의 글은 드라마라는 영상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를 뿐, 그들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일관된 이미지와 느낌들을 가지는 것은 누군가가 만들어낸 소설이 같은 빛을 띄고 있고, 누군가가 만들어낸 영화가 같은 향기를 지니는 것과 다를 것 없는 일이리라. 아니 어쩌면 드라마 작가가 쓰는 글들은 글로 태어나 영상을 꾸민다는 점에서 그 빛과 향기가 더욱 진할지로 모를 일이다

드라마 작가 노희경의 이름을 들었을때,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는 선명하지 않았다. 무언가 그녀를 대표할 수 있는 선명한 사물이 떠오르기 보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섬세하고 조근하다는 느낌을 받을 뿐이었다. 아마도 그것이 그녀의 글이 가지는 이미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선명히 무엇인가를 떠올릴 수는 없지만 다른 무엇보다 작은 것에 집중하고 섬세한 손길. 우리가 자칫 지나쳤던 아주 작은 것에서도 큰 이야기를 떠올리게 해주는 노희경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섬세함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앞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이야기의 제목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은 너무도 절절한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서 보여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가슴아프지만 아름답게 그려낸 바로 그 이야기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이미 오래전에 방영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노희경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고 그녀의 섬세한 이야기들을 다시 되짚어보게 했던 바로 그 동명의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소설화한 이야기이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잔잔하게 물결치는 바다와 같았던 가족의 이야기. 매 순간마다 나보다 가족을 먼저 떠올렸던 바로 그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온전한 글로써 만날 수 있게 한 이야기.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라고 할 순 없지만 방영당시 그 드라마를 보았던 사람들에게는 당시의 영상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눈물짓게 할 이야기이며, 드라마를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글을 통해 가족과 어머니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향해, 자신이 죽으면 이제 당신을 돌볼 사람이 없으니 가족들에게 짐이 되지 말고 함께 떠나자 울부짖던 병든 어머니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 절절한 외침 속에 끝까지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사랑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도 진하게 베어들어 있어서, 그리고 그 고통속에 마지막까지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은 사랑이 남아있어서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드라마의 한장면 한장면을 마치 스틸사진처럼 천천히 보여주며 감동을 배가시키는 느낌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며 지었던 눈물보다 더욱 진한 눈물을 흘려야만 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머니, 라는 이름은 세상의 그 어떤 이름보다 아름답다고 한다.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 이미 보았던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며 여전히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마도 어머니라는 그 이름의 가치가 여전히 우리에게 눈물짓게 하기 때문이리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바로 그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가끔, 당신이 어머니를 잊어버리고 살아간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읽어보길 바란다. 여전히 사랑으로 가득찬 눈으로 가족을 그리는 당신의 어머니가 그 안에 있을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픈 유어 마인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Open Your Mind 오픈 유어 마인드 -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행복명언
이화승 엮음 / 빅북 / 2010년 4월
품절


때로는 장황한 연설보다, 길고 긴 누군가의 이야기보다, 단 한마디의 말이 순간을 좌우하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어떤것도 명확하지 않을때, 인생의 지침처럼 짧고 강하게 누군가를 이끌어 줄 수 있는 한 마디의 지혜. 그것을 가르켜 이름짓기를 사람들은 명언이라고 부른다. 잘 알려진 누군가의 말. 사전적인 의미는 다소 건조하지만 실제 명언은 그보다는 더욱 큰 힘을 발휘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잘 알려진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누군가를 이끄는 힘있는 인생의 지혜로서 말이다

는 바로 그 명언을 모아놓은 명언집이라고 볼 수 있는 책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흔들거나 역사속에서 수 없이 되뇌여졌던 누군가의 말들을 모아놓은 명언집. 바로 그 명언을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삽화와 함께 만날 수 있도록 구성된 책이 인데, 꽤 두꺼워 보이는 책 안에 역시나 꽤 많은 양의 명사들의 명언들을 모아놓았다는 점에서 마음 놓고 책장을 펼쳐들고 앉아 볼 수 있는 책이라기 보다는 시간날때 짬짬히 자신의 빈 시간들을 그 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생각의 시간으로 삼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한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면 은 명언을 그저 나열한 것에 그치지 않고 명언의 영문 문장을 함께 구성함으로서 명언 자체를 읽어내려가면서 살짝 영어 공부도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듯 하다. 물론 그 많은 명언들의 원래 언어가 모두 영어는 아니었겠지만 잘 알려진 글들을 통해 아주 짧은 시간동안 영어공부를 하는 즐거움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메모처럼 명언과 함께 적어내려간 영문의 명언을 보며 나의 마음에 남는 단 한마디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그리고 그 한마디의 명언을 살짝이 영어로 외워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고 말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라는 제목의 이 책의 포지셔닝이 살짝 애매하다는 점이다 격언이나 명언들을 모두 모아 제공하는 것이 책의 목적이었다면 좀 더 많은 분량의 짧은 말들을 싣어 그 내용적인 면을 보강할 수 있었을 것이고 단지 명언만을 소개하기 보다는 그 명언이 탄생하기까지의 배경이나 일화들을 소개했다면 더 많은 즐거움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시간 날때 짬짬히 명언을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면 책의 사이즈를 조금 줄여 휴대성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또 영어로 된 명언들을 추가로 담아 영어 공부의 토막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좀 더 충실한 문법적 설명이라든지 단어 해설을 담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면들이 모두 애매하고 다소 부족하다 싶은 책의 공백은 의 가장 아쉬운 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싱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싱커 (반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29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구판절판


책을 접할때, 되도록이면 편견이나 선입견에 좌우되지 않고 글 자체를 읽고 즐기려 노력하는 편이지만, 나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이겨내어지지 않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특정 장르는 나와 맞지 않는다거나, 이 작가의 글은 이럴 것이다라는 추측. 그 추측은 때론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 혹은 장애가 되기도 하며, 나를 당황시키거나 혹은 만족시키기도 한다. 다소 익숙치 않거나 이름을 발음하고 외우기 조차 어려운 외국문학의 경우에는 그나마 이런 선입견이 다행히도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작가의 글들에 국한되지만, 작가의 이름은 생소하더라도 같은 땅에서 호흡하며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문학인 경우 작가를 넘어 우리나라의 정서 혹은 내가 바라는 공감대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외국 문학을 접할때보다 우리 문학을 접할때 나는 더 많이 당황하고 더 많이 놀라워한다. 우리 문학은 이럴것이다라는 막연한 기대와는 전혀 다른 글들을 종종 만나게 되고, 최근들어 그런 경우가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어쩌면 이것은 그만큼 우리의 문학들이 조금 더 넓어지고 다양해졌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싱커>라는 제목의 이 이야기는 바로 이렇게 나를 당황시킨 이야기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의 문학이라면 개인의 감정이나 일상의 작은 것들을 찾아 나를 설득시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고, 그래서 황당하기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환상적이라기 보다는 참담함에 가까운 땅의 이야기를 즐기던 나에게 <싱커>는 전혀 다른 장르의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누군가는 상상했거나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세계, 현실이 될 수는 있으나 아직 존재하지 않은 그 가상의 현실은 <싱커>라는 이야기 속에서 수 많은 미래적인 상상력의 혼합으로 새롭게 재편되지만 너무 생소하고 희안해서 황당하기 보다는 인류를 통제하는 당국의 조치에서는 몇해 전 인기를 끌었던 영화 아일랜드를, 그리고 인류의 늦둥이 아이들이 살아있는 세상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그 매게가 되는 게임 <싱커>에서는 아바타를 떠올리게 하여 어느 정도 친숙함을 느끼게 하는 부분도 존재했다.

<싱커>는 미래의 이야기이다. 더 이상 지상에서 살 수 없고, 땅 밑의 시안으로 들어가 살 수 밖에 없는 조금은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인류의 미래로부터 시작하는 <싱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느끼고 공유할 수 없게 되어버린 밝지 만은 않은 미래의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곳에서도 권력은 존재하고, 사람들을 통제함으로 힘을 이어가려는 이들이 존재한다. 환경을 달라지고 날짜를 알려주는 숫자는 변했지만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달라지지 않은 세계. 더 이상 위에서 살아갈 수 없고 아래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서도 그곳에서 다시 위를 점유하려 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들이 세상을 느끼고 생명을 체험하려는 그 세대의 늦둥이들에 의해 변화를 도모하는 그런 이야기로 <싱커>를 이해한다면, <싱커>는 단순히 미래의 모험을 그린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거울이 되어주기도 할 것이다.

<싱커>는 장르상 SF소설이고 계층상 청소년 문학에 속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이미 타락하고 이미 추락을 시작한 기성세대들이 아니라, 뒤늦게 나마 새로움을 추구하고 진정한 가치를 추구할 자격을 갖춘 순수를 유지한 늦은 세대들이다. 생명의 가치와 삶에 대한 열망을 간직한 이들. 그들을 희망의 매게로 하여 <싱커>는 미래의 어느때를 빌려 현재의 우리들에게, 혹은 지금의 젊은 그들에게 새롭지 않은, 그래서 구태의연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욱 진리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가 되어 줄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