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싱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싱커 (반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29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구판절판


책을 접할때, 되도록이면 편견이나 선입견에 좌우되지 않고 글 자체를 읽고 즐기려 노력하는 편이지만, 나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이겨내어지지 않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특정 장르는 나와 맞지 않는다거나, 이 작가의 글은 이럴 것이다라는 추측. 그 추측은 때론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 혹은 장애가 되기도 하며, 나를 당황시키거나 혹은 만족시키기도 한다. 다소 익숙치 않거나 이름을 발음하고 외우기 조차 어려운 외국문학의 경우에는 그나마 이런 선입견이 다행히도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작가의 글들에 국한되지만, 작가의 이름은 생소하더라도 같은 땅에서 호흡하며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문학인 경우 작가를 넘어 우리나라의 정서 혹은 내가 바라는 공감대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외국 문학을 접할때보다 우리 문학을 접할때 나는 더 많이 당황하고 더 많이 놀라워한다. 우리 문학은 이럴것이다라는 막연한 기대와는 전혀 다른 글들을 종종 만나게 되고, 최근들어 그런 경우가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어쩌면 이것은 그만큼 우리의 문학들이 조금 더 넓어지고 다양해졌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싱커>라는 제목의 이 이야기는 바로 이렇게 나를 당황시킨 이야기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의 문학이라면 개인의 감정이나 일상의 작은 것들을 찾아 나를 설득시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고, 그래서 황당하기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환상적이라기 보다는 참담함에 가까운 땅의 이야기를 즐기던 나에게 <싱커>는 전혀 다른 장르의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누군가는 상상했거나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세계, 현실이 될 수는 있으나 아직 존재하지 않은 그 가상의 현실은 <싱커>라는 이야기 속에서 수 많은 미래적인 상상력의 혼합으로 새롭게 재편되지만 너무 생소하고 희안해서 황당하기 보다는 인류를 통제하는 당국의 조치에서는 몇해 전 인기를 끌었던 영화 아일랜드를, 그리고 인류의 늦둥이 아이들이 살아있는 세상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그 매게가 되는 게임 <싱커>에서는 아바타를 떠올리게 하여 어느 정도 친숙함을 느끼게 하는 부분도 존재했다.

<싱커>는 미래의 이야기이다. 더 이상 지상에서 살 수 없고, 땅 밑의 시안으로 들어가 살 수 밖에 없는 조금은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인류의 미래로부터 시작하는 <싱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느끼고 공유할 수 없게 되어버린 밝지 만은 않은 미래의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곳에서도 권력은 존재하고, 사람들을 통제함으로 힘을 이어가려는 이들이 존재한다. 환경을 달라지고 날짜를 알려주는 숫자는 변했지만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달라지지 않은 세계. 더 이상 위에서 살아갈 수 없고 아래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서도 그곳에서 다시 위를 점유하려 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들이 세상을 느끼고 생명을 체험하려는 그 세대의 늦둥이들에 의해 변화를 도모하는 그런 이야기로 <싱커>를 이해한다면, <싱커>는 단순히 미래의 모험을 그린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거울이 되어주기도 할 것이다.

<싱커>는 장르상 SF소설이고 계층상 청소년 문학에 속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이미 타락하고 이미 추락을 시작한 기성세대들이 아니라, 뒤늦게 나마 새로움을 추구하고 진정한 가치를 추구할 자격을 갖춘 순수를 유지한 늦은 세대들이다. 생명의 가치와 삶에 대한 열망을 간직한 이들. 그들을 희망의 매게로 하여 <싱커>는 미래의 어느때를 빌려 현재의 우리들에게, 혹은 지금의 젊은 그들에게 새롭지 않은, 그래서 구태의연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욱 진리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가 되어 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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