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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퍼케이션 1 - 하이드라
이우혁 지음 / 해냄 / 2010년 8월
절판
퇴마록은 딱 내 시대의 소설이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학창시절에 한창 인기를 끌었었고, 영화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했으며, 퇴마록이라는 소설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전에는 인식조차 하지 않고 살았던 퇴마사라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만큼 많은 사람들의 지식 혹은 인식에 영향을 미쳤던 이야기였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퇴마록 자체가 엄청난 깊이의 학문적 지식을 품고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겠지만 어쨋든 사람들은 퇴마록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인식을 조금 넓혔고, 상상했으며, 이해나 인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제로 그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던 것만큼 사실이었다.
퇴마록은 소재만이 신선한 소설도 아니었다. 그 당시 막 시작되었던 PC통신이라는 매체를 통해, 일명 나우누리, 하이텔등의 통신에서 연재가 시작된 이야기였으니, 새로운 매체를 통해 글을 알리고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지금의 인터넷 소설의 시작이였기도 하다. 그래서 그 시대에 퇴마록을 좋아하고 즐겼던 사람들은 이우혁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잊지 못할것이다. 그리고 PC통신을 하진 않았기 때문에 직접 그 글들을 그 안에서 볼 수는 없었지만 퇴마록의 이야기들이 서점에 진열되기를 학수고대하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바이퍼케이션은 바로 그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이 1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준비를 해서 만들어내었다는 이야기이다. 퇴마록이라는 이야기만으로도 그 소재의 참신성을 인정받았던 그 작가가,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구상하고 준비했길래 1~2년도 아닌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준비해야만 했을 것일까? 바이퍼케이션은 그렇게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그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는 힘을 가진 책이었다.
바이퍼케이션, 부재 하이드라라는 제목을 가진 이 이야기는 장르를 말하자면 추리소설에 근접하다 할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벌어지기 시작하는 참혹하고 잔인한 살인의 연속. 그리고 그 모든 살인들이 모이는 하나의 점에 바로 하이드라라는 인물이 존재하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형사 가르시아와 프로파일러 에이들은 하이드라라는 인물에 근접해가는 동안, 뱀파이어와 헤라클레스라는 또 다른 잔인한 범죄자들과 마주치며 이들을 통해 하이드라라는 인물에 접근해가는 과정을 밟아가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줄기.
사이코패스라는 이제는 생소하지 않은 단어가 어울릴만한 연쇄살인범들을 추격하는 형사와 어린 시절 얻은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죄의식을 끌어안은채 살아가야만 하는 천재프로파일러라는 등장인물들만으로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 상식선에서 제공되는 범죄 수사물과 비슷한 느낌을 받게 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이우혁이라는 작가가 더해놓은 인간의 이성이나 감각이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 힘을 발휘하는 헤라클레스와 하이드라가 가세하고,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가 더해지면서 바이퍼케이션은 일반적인 범죄 수사물과는 다른 더욱 풍성한 이야기의 소재들을 끌어들이는 것.
그래서 이 책에는 범죄 수사물들에서 볼 수 있을법한 다양한 실제 연쇄살인범에 대한 이야기들 이외에도 이야기의 주요 줄기를 형성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인 그리스 신화를 곳곳에 배치한다. 헤라클레스라는 신화의 영웅과 그가 수행해야했던 과업의 목표물이었던 하이드라라는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이퍼케이션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심리학과 그리스 신화등의 누군가는 혹시 알았을지도 모를 다양한 지식들을 배치해 단순히 이야기만을 즐기는 수준이 아닌 어느 정도의 지식을 자연스레 전달하는 역할을 함은 물론, 소설이라는 글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재미도 갖추고 있는 셈. 또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범인맞추기" 미션 역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나의 경우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인물을 지목함으로서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놀라움도 제공한다. 퇴마록의 이우혁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리고 이우혁의 소설이 제공하는 흥미진진함과 재미를 기대한다면 바이퍼케이션은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