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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소리 - 조선의 거상 신화 김만덕
이성길 지음 / 순 / 2010년 3월
절판
바보상자라고 불리우는 TV는 사실 그렇게 바보스러운 존재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때로는 무엇인가를 조명하는데, 때로는 누군가를 부각시키는데 가장 큰 일조를 하는 것이 바로 그 바보상자이고, 사람들은 그 바보상자를 바라보며 시대의 인물상을 만들어내고, 꿈을 그리며, 현실을 반영하는 무엇인가를 끝없이 보여주니까 말이다.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끝없이 말하기만 하고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게 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바보상자. 그 바보상자인 TV는 이제 시대의 현실이자 우리사회의 모습이고 당신과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바보상자 앞에서 가끔은 지혜를 얻고 희미했던 무엇인가의 윤곽을 그려내는 도움을 받기도 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꿈, 사람들이 원하는 인물들을 그 안에서 찾는 것은 그래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때 정조라는 우리 역사의 개혁군주가 그랬고 지금은 김만덕이라는 여인이 그렇다. 바보 상자에서 꺼내든 보물. 김만덕의 이야기가 이제는 바보 상자 바깥으로 나와 책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숨비소리>의 사전적 의미는 해녀들이 물질을 할때 간간히 물 밖으로 나와 몰아쉬는 호흡이라고 한다. 한껏 숨을 들이쉬고 물 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간 그녀들이, 숨을 참아가며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그것들을 손에 들고 물 위로 올라와 탄성과도 같이 내뱉는 그 한번의 호흡말이다. 생소한 단어였지만 살아있는 느낌을 전달하는 단어, 그리고 그 의미 안에 한권의 책이 담고 있는 누군가의 인생이 모두 담겨 있는 그런 단어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말. 그것이 바로 <숨비소리>라는 이 책의 제목이었다. 거상 김만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한 여성, 제주의 여성으로 태어난 그녀가 최하층의 관기라는 신분을 딛고 일어서 거상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걸었던 인생의 모습을 그토록 잘 표현한 제목이 있을까? 매일매일을 숨을 참고 물 속을 자맥질 하듯, 그리고 숨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는 물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건져올려서야 몰아쉴 수 있었던 단 한번의 탄성과도 같은 그 짧지만 값진 호흡처럼 그녀의 인생을 잘 표현한 단어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하기도 했다
화면을 통해 거상 김만덕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방영이 되고 난 후, 드라마 자체는 그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TV라는 바보 상자가 꺼내어든 김만덕이라는 인물은 보물과도 같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인물로서의 조명을 충분히 받고 있다. 자신의 힘으로 신분의 제약을 넘어서는 재주를 빛내고, 그 재주를 발판삼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누군가의 인내, 그리고 그 노력과 재주로 이룩한 것들을 아낌없이 나눌 줄 아는 넉넉한 마음과 아량이 그녀를 제약하려하고 가두어 두었던 신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진정한 힘이었음을 보여주며 진정한 가치와 인격에 대해 말하면서 말이다. 제주라는 지역적 제한 뿐 아니라 신분이라는 사회적 제약에도 묶여있었던 그녀, 그리고 관기라는 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후에는 백성을 돌볼 줄 알았던 진정한 거상으로서의 모습으로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덕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그저 천한 신분의 여성이 아니라 한명의 사람으로서 인격을 말할 수 있었던 그녀. 거상 김만덕은 현재에도 이겨내지 못한 여러 제약과 편견에 맞선 한명의 투사이자 지도자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숨비소리라는 제목의 한권의 책이 김만덕이라는 거상이라 불리워 아깝지 않은 한명의 인물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해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만을 말하는 사료가 아니라, 그녀의 인생을 따라가며 만들어낸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소설이니 말이다. 하지만 숨비소리라는 제목에서처럼 이 이야기는 그녀의 인생 전체를 끝없는 자맥질과 한번의 호흡으로 이어지는 부단한 노력으로 설명한다. 또 그녀가 내뱉었던 한마디 탄성의 숨비소리가 아니라 그 숨비소리를 내뱉을 수 있었던 자격, 끝없이 숨을 참아가며 물 속에 존재하는, 혹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가치있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자맥질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으로 그녀를 대변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숨비소리, 듣기에는 아름다우나, 그 이름만큼 곱지만은 않은 한번의 호흡. 그녀의 인생은 그 한번의 호흡을 얻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끝없는 자맥질 끝에 한번의 호흡을 얻었던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숨비소리의 진정한 가치는, 그래서 한번의 호흡을 얻기 위한 노력이 아닌, 노력 끝에 얻었던 단 한번의 호흡이리라. 그녀의 인생을 통해, 그녀가 거상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던 과정을 통해 우리는 또 한번 인생을 논할때 노력이라는 단어를 되새기게 된다. 너무도 흔하게 쓰여 가끔 잊어버리는 그 단어의 가치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숨비소리 역시 그 가치를 말하는 단 하나의 단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