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먼로의 죽음>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버니 먼로의 죽음
닉 케이브 지음, 임정재 옮김 / 시아출판사 / 2010년 7월
품절


한가지 일도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 세상에, 특별한 재능과 노력으로 두 가지 세가지 일까지 성공적으로 해내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두가지 직업을 가지기도 하고, 때로는 직업과 취미를 높은 수준으로 해내기도 하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눈에 띄고 관심을 받는 사람들은 아마도 연예인들이 아닐까?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더니 최근에는 단지 노래하고 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이들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꼭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버니먼로의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쓴, 닉 케이브 역시 그런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진 가수겸 영화배우, 또 작가이니 말이다. 가수이자 영화배우이고, 또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작가이기도 한 닉 케이브,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어떤 세상을 담고 있을까?


<버니먼로의 죽음>은 한 여인의 자살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화장품 외판원인 남편과 아직 어린 아들과 함께 가족을 꾸리고 살고 있었던 여인. 이 여인이 죽음을 맞이한 후 남겨진 아버지 버니먼로와 아들의 이후 이야기들을 담은 이야기이다. 별 볼 일 없는 화장품 외판원의 삶을 살고 있는 버니먼로에게 아내의 죽음은 아들과 단 둘이 남겨지는 거대한 충격과 책임감으로 다가오고, 폐암으로 삶을 마감해가는 아버지에게도, 사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는 무관하게 아버지를 세상 그 누구보다도 위대한 이라 말하는 아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은 부정이자 마지막 자존심. 버니먼로는 바로 그 마지막 하나의 자존심이자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아들과 함께 화장품을 판매하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정 반대로 점점 추하고 망가진 모습만을 아들에게 보여줄 수 밖에 없는 끝없는 절망에 내던져지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 여정. 아들은 아버지에게 길을 안내하고, 아버지는 창꼬치에게도 물건을 팔 수 있는 능력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렇게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상실감을 이겨내려 하는 의도와 전혀 다르게 엇나가는 그 길은, 버니먼로에게는 살고자 했으나 죽게 만드는 좌절을 안겨주고, 아들에게는 위대한 나의 아버지가 사실은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짓을 일삼는 난봉꾼에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게하는 과정으로 바뀌어 버린다. 어쩌면 조금은 희망적이고, 마지막 자존감을 지켜내기 위해 시작한 길이 돌이킬 수 없을만큼 어긋나버리는 과정, 그리고 결국에는 폭력과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버니먼로의 죽음>은 그래서 삶의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삶을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세상에 생존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이야기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버니먼로의 죽음>에서 버니먼로는 자신이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잘 나가는 세일즈맨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고분분투하고, 이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어긋나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낼수록 가장 원초적인 욕구에 몰두한다.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려 할 수록 절망에 빠지는 자신의 모습을, 유일하게 원초적인 욕망만이 잠시 잊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듯이 말이다. 때문에 여정이 끝나갈수록, 그리고 아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이 처참할수록 이성을 벗어던지고, 성적욕망에만 사로잡혀가는 것이다. 점점 이성을 상실하는 버니먼로의 모습은 또 다른 비극을 불러들이고, 이 비극이 다시 그를 성적 욕망만으로 채우는 악순환. 이야기는 그렇게 삶에 대한 책무와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한 남자가 끝없이 이어지는 좌절과 고통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잃어가는지, 그리고 어떻게 파멸하는지를 보여주는 잔혹함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어느 구절처럼, 착하게 사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인생은 착하게 살기보다는 살아간다는 바로 그 생존의 의미를 찾는 것 만으로도 때로는 힘겹고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착하게 산다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한 순간의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는 사치이고 무가치한 일인지도 모른다. 착하게 사는 것과 그 이상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요구하는 세상에서 버니먼로처럼 나약하고 별볼일 없는 인간은 어쩌면 난봉꾼이나 사기꾼이 되지 않는 이상,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세상에 자신을 남기기 위해 난봉꾼이 되고 사기꾼이 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버니먼로가 아내를 잃고 무능력한 화장품 외판원인 자기자신을 책망하며 세상의 무게와 고통을 두려워만 하는 대신, 아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무한한 신뢰의 눈빛을 한번쯤 믿었다면, 그 신뢰의 눈길마저 잊을까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신뢰의 눈빛을 보내는 아들의 믿음을 한번쯤 자신도 믿어보았다면, 그토록 대책없이 무너져 내리지만은 않지 않았을까? 착하게 살며 사회에 기여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생존이라는 인생의 숙제 앞에 아들과 함께 손을 잡고 서 있을 수는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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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 - 티베트에서 만난 가르침
현진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5월
절판


어느 책이나,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는 어쩔 수 없이 작가의 이야기와 분위기가 배경색으로 들어간다. 장르에 따라 때로는 진하게 때로는 옅게 들어가는 이 배경색들은 간혹 읽는 사람들에게는 직접적으로 전해지기도 하는데 그 이야기가 작가 개인의 일상의 이야기들을 담는 에세이인 경우 그 농도가 더욱 진하고 강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때로는 삶에 대한 그들의 마음이 때로는 그들이 마음의 위안을 얻는 종교적인 힘이 느껴지는 에세이는 그래서 그 배경색만으로 어떤 이에게는 무한한 관심을 어떤 이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그 이야기 안에 무언의 압박이랄까. 혹은 설득이랄까. 하는 다소 무겁고 버거운 이야기가 반복되는 경우에 말이다.


<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라는 제목의 책. 푸른 하늘 아래 어쩐지 조금은 고생을 해야만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사원이 보이는 표지와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지는 자연 그대로의 삶을 녹여낸 사진들은 어딘지 모르게 첫 인상만으로도 책의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 책의 배경은 현진이라는 작가의 이름처럼 너무도 분명하게 불교적 색깔을 띄고 있었다. 삶에 대한 희망과 장밋빛 인생을 약속하듯 꿈꾸는 제목을 가지고 독자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소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글귀로 사람들에게 손짓하는 책. 이 책은 그렇게 <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라고 말해 시선을 잡아두고 불편한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가득 끌어안고 있었다. 작가가 경험한 수 없이 많은 경험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버무려 티벳이라는 아직은 때가 묻지 않은, 그래서 아름답지만 아직 여전히 조금은 불편한 그곳의 풍경을 더해서 말이다

삶을 바라보는 눈은 개인에 따라 혹은 그 사람의 삶의 경험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게 되지만 그 누구이듯. 혹은 그 어떤 경험을 가진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삶은 만만하지 않은 다소 불편한 것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인생이 만만하고 뭐든 바라는 것을 가지고 원하는대로 할 수 있는 편안한 삶을 가진 이들은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세상을 받아들이는 마음과 그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에 따라 어차피 불편한 삶을 조금 더 즐겁게 조금 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행복을 가꾸는 일들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이 책의 제목처럼 <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 하지만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설때마다 드는 그 불편한 힘이 없다면 사람들은 삶에서 그들이 꿈꾸었던 푸르른 하늘에 좀 더 가까워질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삶이라는 계단의 불편함을 견디며 그 불편함을 불편함 자체가 아닌 푸르름으로 가는 여정이라 받아들인다면, 또 그 계단마다 볼 수 있는 풍경과 할 수 있는 생각들이 다르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어차피 불편한 삶을 살아간다 해도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많은 생각과 노력으로 그 계단의 불편함을 감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불편함이 가지는 가치를 더욱 깊이 깨닫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일테고 말이다. 아직도 자연을 간직한 티베트의 어느 마을에서, 그 불편함을 감내하고 살아가는 대신 자연만이 주는 또 다른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삶이 주는 불편함과 그 불편함이 함께 가지는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 우리 삶에도 남아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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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케빈 마이클 코널리 지음, 황경신 옮김 / 달 / 2010년 6월
절판


가난하거나 혹은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의 자수성가 이야기, 신체가 완전하지 못한 장애인들의 장애를 뛰어넘는 의지나 성공의 이야기들은 우리 주변에서 사람들을 고무시키고 커다란 감동과 함께 인상깊은 동기를 부여하는 주요테마가 되어주곤 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진 것들을 가지지 못한채 무엇인가를 박탈당한 삶을 부여받았으나 그보다 강한 자신의 의지로 다른 이들이 가지지 못한 그 이상의 것들을 이룩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이야기 자체만으로 때로는 현재에 안주하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지금의 자신을 동정하고 주저 앉은 사람들에게 채찍이 되어주고 강한 의지의 불씨를 지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다른 이들을 독려하고 감동을 선사하는 많은 완전하지 않은 이들의 그 이상의 성공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식상하고 더 이상 신선하지 못한 주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에겐, 때로는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 있다면 못할 것이 없다는 용기와 독려보다는, 당신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토닥거림이, 그리고 지금 당장 힘에 들어 주저 앉아있는 당신의 모습까지도 당신의 모습이라는 수긍의 마음이 필요한때도 있을테니 말이다

두 다리가 없는 채로 태어난 케빈 마이클 코널리의 이야기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는 누군가가 장애를 딛고 일어나 남들보다 뛰어난 지력과 재능을 발휘하고 남들보다 멀리 날아가 남들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 남들의 존경을 받았다는 식의 인생역전감동스토리가 아니다. 그저 어린 시절 다리가 없는채로 태어나 단 한번도 다리를 가져보지 못한 이 청년이 어떻게 그런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며 적응해나갔는지, 다리가 없는 자신의 몸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 노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는 끝이 없다. 단지 그러한 과정을 끝없이 겪어왔고 앞으로도 겪게 될 케빈의 인생중 한 토막을 담고 있을 뿐인 남들과 다른 몸을 가진 청년의 짧은 에세이일뿐이다. 그래서일까? 이 이야기에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포인트나 그를 한없이 가련하게 여겨야 하는 동정의 지점들 보다는 그런 그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의 모습들을 통해 누구나 한가지 이상을 가지고 있을 장애들(신체뿐 아니라 마음의 장애나 상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보여준다


케빈은 수 없이 많은 순간을 시행착오를 거치며 도전하고 수정하며 삶을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다리 없이 태어난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미관상 좋은 의족을 달고 생활하기도 하고, 이 의족이 실용성이 없다는 판단아래 휠체어에 앉기도 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활용도를 위해 자신만의 스케이트 보드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또 이 스케이트 보드가 어떤 위험을 안고 있는지 어떤 불편함을 가져다 주는지 역시도 스스로 체험하며 체득해나가고, 끝없이 자신을 바꾸어 나가는 과정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다리없는 사람이지만 레슬링을 하고, 다리 없는 사람이지만 스키를 타며, 다리 없는 사람이지만 여러 나라는 돌아보는 여행을 계획하기도 하는 케빈. 여자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그녀와 헤어지기도 하는 케빈의 모습은 그래서 그가 다리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역시 인생을 살아가는 한명의 사람이기에 겪는 자연스러운 오류와 착오의 연속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그렇게 다리가 없이 태어난, 그리고 그렇게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닥치는대로 모든 것들을 해보는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의 이야기들은 그 책의 경고문처럼 박힌 제목과는 다르게 분명 나를 놀라게 했다. 다리 없는 소년의 여행기라는 점이 아니라 바로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모든 것들을 도전하는 그의 담대함에 말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단점과 약점, 그리고 결코 극복하지 못할 것 같은 상처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케빈에게 다리가 없듯, 팔 다리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그런 부분들이 그들의 장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가 모두 자신의 그러한 장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부정하고 외면하며 맞딱드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인 일이리라.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가 놀라운 이유는, 케빈이라는 다리 없는 청년이 한 눈에 보아도 알아볼 수 있는 장애를 자신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그 자연스러움과 담담함이 아니었을까 한다. 하물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단점과 장애들마저도 자신의 것을 인정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우리들이니 말이다. 흔하디 흔한 말처럼, 어쩌면 컴플렉스는 인정하는 순간 이미 컴플렉스가 아닐진데, 말로는 이토록 멋지고 쉬운 일이 실제로는 쉽지 않음을, 그리고 다리 없이 태어난 이 젊은 청년은 그 쉽지 않은 일을 스스럼없이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음을 통해 나의 미련함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 바로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가 놀라운 이유가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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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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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어느 학년즈음의 윤리시간에, 우리를 담당하시던 윤리 선생님이 자신이 꿈꾸는 스스로의 인생을 그려보자고 한 적이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창시절 한번쯤은 이런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고작 13~4살의 교실 안 아이들은 서로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조용히 앉아 그렇게 자신에게 닥쳐올 인생이라는 시간을 꿈처럼 그려보았었다. 마치 앞으로 다가올 나의 인생은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확신과 힘이 나에게는 있다는 듯 말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하는 어린 나이였기에 가능했을지 모르는 그 꿈같은 인생의 그래프는 늘 위로만 올라가고 있었던 것 같다. 나에게 준비된 행운들이 차례로 나를 환영하며 나에게만은 축복을 아낌없이 내려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그리고 이제 시간은 흘러, 나의 나이도 30대중반에 가까워져 있다. 여전히 나는 10대의 어느 시절처럼 나의 인생이 아름답고 평탄하며 행복이라는 축복을 남김없이 받기를 바람하고 있지만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인생이란 시간은 내가 원하는 만큼, 그리고 내가 그 시절 바람했던 것 만큼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인생은 가끔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을 나에게 던져주기도 하고,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을 만들기도 하며,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고통을 준비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이고 있다. 아름답고 화려한 인생을 꿈꾸지만, 그렇게 우리는 때로는 시시한, 그리고 때로는 내 맘과 같지 않은 시간들을 맞딱드리기도 한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시간이니까..

<올리브 키터리지>는 바로 그런 인생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크로스비라는 이름의 마을에 살고 있는 올리브 키터리지 내외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이들 주변에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수 없이 많은, 각자 다른 사연을 담고 있는 13가지의 이야기는 때로는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이고, 때로는 내가 마음에 담고 있던 상상의 이야기이며, 때로는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할만큼 일상의 아주 작은 변화와 갈등, 그리고 그 갈등이라는 이름의 틈새로 스며드는 인생의 힘겨움을 담고 있다. 스스로를 통제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망인 식욕을 억누르다 그마저도 통제의 바깥으로 밀려나며 죽음을 향하는 십대부터, 병상의 남편과 자신의 마음과는 다르게 자신의 사랑을 부정하는 아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호소하는 노년의 올리브 키터리지까지, 세대와 각자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부여된 이들의 고통은 어쩌면 누군가의 인생이기도 하기에, 결코 멀게 느껴지지 않고, 때로는 사소하기까지 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크로스비의 그 사람들도, 인생의 어느 때에는 자신의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만 꿈꾸었으리라. 학교를 마치고, 평범하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자신을 닮은 아이들을 키워내며, 노년에는 주름진 손과 하얗게 센 머리까지 아껴주며 장성한 자녀들과 손자들을 바라보는 행복한 삶이 자신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말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렇듯 인생이라는 시간은 그들에게 평탄한 삶보다는 굴곡져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를 흩뿌리기도, 돌뿌리에 걸려 넘어져 생채기가 생기게도 했다. 의도하지 않은 사건으로 부부관계가 소원해지고, 자신은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느 순간으로 인해 그토록 사랑했던 자녀들에게 외면을 받기도 하고, 평생을 함께 하리라 믿었던 연인과 헤어지고, 남몰래 배우자가 아닌 이성을 가슴에 품게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며 경험할 수 있는 수 없이 많은 사소한 사건들과 그 사건들로 생겨나는 사람들의 변화, 그들의 인생의 변화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올리브 키터리지>에 담긴 내용이 모두 다른 이야기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올리브 키터리지>의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각자 다른 사연으로 모두가 한가지를 원하는 사람들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들이 그토록 많은 인생의 시간들을 투자해 갈등하고 실수하며 찾아 헤메였던 것. 그것은 아주 간단하지만 누구에게나 어려운 단 하나의 가치였다. 바로 자신을 향한 누군가의 사랑 말이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자신이 아닌 약국의 직원인 데니즈를 바라보는 남편 헨리를 보며 자신을 사랑해줄 짐 오케이시라는 남자를 간직했고, 헨리는 자신을 보며 따스히 말을 건네지 않는 아내 올리브를 보며 그녀와는 다르게 포근한 눈빛을 가진 데니즈를 꿈꾸었다. 하먼은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아내 보니를 보며 자신의 보살핌을 필요로 했던 거식증 환자 니나와 데이지를 향했고, 올리브의 아들 크리스토퍼는 어머니에게서 느꼈던 압박을 피하기 위해 결국엔 어머니와 전혀 다른 여자와 자신이 자란 환경과는 전혀 다른 가정을 꾸려 애정을 가지려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연을 간직하고 있지만 실상은 모두가 자신을 사랑해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인생을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그렇게 꼭 아름답기만 한 것도, 꼭 행복하기만 한 것도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단 한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아름답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한때는 행복을 꿈꾸었으며, 아름답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인생 한가운데에서 방황하고 있는 지금도 그 행복을 향해 끊임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 행복의 한 가운데에는 누군가가 나를 아끼고 사랑해준다는 믿음. 그 간단하고도 중요한 사실이 놓여 있다. 행복이라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의 사랑 속에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사랑으로 남은 인생을 채워나갈 노력을 할 수 있다는 확신속에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때론 시시하고, 때론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누군가의 삶. <올리브 키터리지>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듯, 우리 모두는 그렇게 때론 시시하고, 때론 의도하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조금 시시하다 할지라도, 조금 내가 꿈꾸었던 화려하고 환상적인 삶과 동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누군가 나를 사랑해준다는 믿음이 그 삶에 존재한다면, 그 삶은 행복한 삶이 아닐까? <올리브 키터리지>가 아들과의 소원한 관계에도, 병석에서 숨을 거둔 남편을 두었음에도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하며 인생을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바로 그 사랑의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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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나나>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새벽의 나나 - 2010 제1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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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의 낯선 땅, 어딘가로 떠나기 위한 잠시의 경유지. 한숨을 몰아쉬고 정말 원했던 것들을 향해 내딛는 걸음 중간 잠시 들른 휴식의 장소는 때로는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인 그곳보다 더욱 편안하고 안락한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어딘가를 향한다는 목적이 남아있고, 어디에선가 떠나왔다는 일탈의 자유가 느껴지는 곳이 바로 그곳이니 말이다. 가장 자유로운 곳이기에 예기치 못한 일이 시간을 파고 들기도 한다는 것을 잊어버린채 아주 잠시 그곳에 멈춰선 사람의 이야기. 아니 정확하게는 그곳에서 만난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 <새벽의 나나>. 잠시 쉬어가는 곳이라 생각했던 그곳을 인생의 가장 많은 기억으로 채워넣게 된 그곳에서의 이야기가 <새벽의 나나>에 채워져 있다

어린시절부터 막연히 아프리카를 꿈꾸어왔던 레오는 꿈에 그리던 아프리카로 향하던 도중 태국에 잠시 들른다. 단지 아프리카로 가기 위한 경유지에 지나지 않았던 태국의 어느 국수집. 그 국수집 테이블에서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여성. 그녀에게 매혹되어 그녀를 찾아 헤매고, 끝내는 그녀를 찾아 그녀와 함께 6개월의 시간을 태국에 머물게 된 한 한국인 남자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그녀의 도도함에, 그리고 지금의 삶과는 너무도 다른 전생을 가진 그녀의 가련함에 발을 떼지 못하고, 속고 있음을 알면서, 그녀가 자신을 곁에 두는 진짜 목적을 이미 알면서, 그녀를 떠나지 못한다. 자신에게 절대 마음을 주지 않을 여인을 돈으로 곁에 두고, 돈으로 자신을 파는 여인을 절대 돈으로 사지 않는 남자. 그녀의 전생을 보며 당신은 더욱 고귀한 존재였노라고, 나와 부부의 연을 맺은 여인이었노라고 말하며 언제나 그녀의 곁만 지키는 남자의 모습은 <새벽의 나나>의 화자인 레오가 가지는 유일한 모습이자, 단 하나의 마음이기도 했다


가진 돈을 모두 쏟아붇고, 마약에 중독되 스스로를 망치고, 끝내는 돈을 노린 치한(그마저도 안면이 있는 자였지만..)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서야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레오. 그곳을 떠난 것이 아니라, 이제 그곳에 있을 수 없었기에 떠난 레오는 한국에 돌아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한국의 생활에 다시 익숙해져감에도 태국의 매춘굴 소이식스티를 잊지 못하고 문득문득 그곳과 그곳의 한 여자 플로이를 떠올린다. 어느날 교통사고에서 살아난 유일한 생존자가 된 레오는 다시 얻은 생을 그녀를 찾아가라는 계시로 믿고 그간 모은 돈을 가지고 다시 태국을 찾는다. 스스로는 성장했다 믿지만 그 언젠가 여행의 경유지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홀려 가진 돈을 모두 쏟아붇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난 그 때와 달라진 것 없이 말이다. 단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 아니라 스스로 그곳으로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녀에게 모든 것을 내어줄 것을 알고도 찾아갔다는 것 뿐

<새벽의 나나>에는 이국의 낯선 곳에서 한 여자에게 반해 인생의 어느 한토막을 고스란히 그녀에게 쏟아부은 남자의 1년이 넘는 시간이 담겨 있다. 남자들에게 몸을 파는 것으로 생활을 연명하는 고급 매춘부 플로이. 그런 그녀였기에 언뜻 이야기는 절대 마음을 주지 않는, 그리고 남자를 이용만 하는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매춘부와 그런 매춘부에 홀려 자신의 시간과 돈과 몸을 모두 허비한 순수한 한 남자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새벽의 나나>에는 사람에게 묻혀 살지만 사람을 믿을 수 없었던 상처받고 힘겨운 인생을 가진 한 여인과, 그 여인의 진실을 두려워하는, 그래서 영원히 그녀에게 진실로 다가설 수 없었던 조금은 비겁하고 조금은 안타까운 남자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아름다운 외모로 고귀한 전생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은 그저 매춘굴 소이식스티의 고급 매춘부일 뿐인 플로이와 그녀에게 한눈에 반했으나 그녀의 전생과 그녀의 현재를 나누지 못하고 현실에 있는 플로이를 부정하려 하는 레오의 모습은 그래서 자신이 알고 싶은 것만을 인정하고, 상대를 규정하여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새벽의 나나>는 그런 의미에서 단 한번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그 모습을 깨달을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을 그린 이야기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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