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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이성적인 판단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 모두가 가장 계산적이고 가장 냉정하기를 요구받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가끔 숨막힐정도의 답답함과, 온전히 생각할 수 없는 미치기 직전의 세상을 경험한다.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 세상은 인간에게 완벽에 가까운 계산서를 요구하고, 오류없는 이성을 갖추라 말한다. 모든것이 철저하게 계산되기를 바라는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완벽한 세상을 위해 인간이 미치기를 강요한다. 세상은 어쩌면 광기로 만들어지고, 광인들로 채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치지 않기 위해 미쳐야했던 여인과, 미치지 않았으나 이미 미친 이들의 이야기.
여기, 아름답고 매력적이나 가끔은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가끔은 미친여자가 되는 여인이 있다. 집은 정화해야 한다는 말을 하며 온 집을 물을 담은 그릇으로 발 딛을 틈없이 채워놓고 남편과 자신을 돌보아 주는 이모를 돼지라고 부르며, 한 없는 사랑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그 무엇보다 그녀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남편을 적대시하고 가끔은 잊어버리는 듯 한 여인. 그녀의 남편은 그녀보다 열여섯살 연상의 머리가 희끗해진 전직 교수, 그녀의 광기어린 행동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자애로움으로 그녀를 돌보며, 그녀를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고 지금은 단지 그녀를 돌볼 시간이 있다는 이유로 사료를 배달하는 남자 아길라르다. 그들의 집에는 그녀의 어린 시절을 혼란으로 만들어버린 이모 소피아가 함께 살고 있다. 일방통행에 가까운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내는 남자와, 그 사랑을 무시하듯 광기를 더해가는 여자, 그리고 그 광기의 시작이 된 여자의 이모가 살고 있는 현재의 그들의 집에 대한 이야기 이외에도 한때 그녀를 사랑했고 임신까지 시켰던 옛 연인 미다스와 그녀의 부모, 그리고 그녀의 외조부모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느것 하나 정상적이 없고, 어느 것 하나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없다.
미친사람들의 세상에 미쳐있는 여인 아구스티나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은자, 과연 누구인가?" 라고 책은 물으며 시작한다. 모두가 미치기를 강요당한 세상에서 미치지 않은자가 과연 있느냐며 반문하는 이 책의 제목은 <광기>이다. <광기>에는 때때로 찾아오는 예지력을 가진, 그래서 불안정한 미친여자 아구스티나를 중심으로 그녀를 둘러싼 많은 시간들과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꾸며지는 이야기. 그것이 바로 소설 <광기>의 주요 줄기가 된다. 그리고 여기에 헌신적으로 그녀를 돌보는 현재의 남편 아길레스와 과거의 연인 미다스, 그리고 그녀의 과거를 만들었던 가족의 비밀들이 어지럽게 펼쳐진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최종적으로 그녀의 과거가 만들어낸 현재, 다시 말해 그녀가 현재의 광기를 지닐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에 대해 조금은 혼란스러운채로 치밀하고도 조밀하게 설명해낸다. 아주 작은 그녀의 광기까지도 그녀의 과거에서 비롯 된 것임을, 광기는 그저 이유없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도 이유가 있는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펼쳐지는 혼란속의 이야기.
<광기>의 아구스티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과거를 이해해야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온통 뒤범벅이 되어진 그녀의 과거, 그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것이 바로 광기였음을 페이지가 넘어가면 갈수록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광기>에는 아구스티나를 제외하고도 수 없이 많은 미친 자들이 등장한다. 미치지 않고서는 그토록 맹목적일 수 없을 것 같은 사랑을 보여주는 아길라스부터 가난했던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에 집착하는 결과로 끝내는 인생을 나락으로 끌어내린 미다스와, 동생의 남편과 가정의 모든 것을 사랑했으나 그래서 모두를 혼란속에 떨어뜨린 이모 소피아의 불륜, 자신의 언니와 남편의 은밀한 관계보다 체면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가려버린 아구스티나의 어머니까지.. 표면상은 미치지 않은 정상인이지만 그 스스로는 이미 미칠대로 미쳐있는 미친자들의 이야기. 그것이 <광기>, 바로 그 이야기를 이루고 있다.
살아가기 위해 미친 자들을 위해.
<광기>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인물들은 우리 사회 어디에선가 정상인의 모습을 갖추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수 많은 보통사람의 모습을 닮아있다. 비록 그 모습이 극단의 것으로 비약되기는 하였으나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처럼 살아가기 위해 어딘가에 미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니 말이다. 권력을 위해, 부를 위해, 안정을 위해, 나만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 무엇인가에 미쳐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수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어쩌면 이미 미쳐버린 모습으로 스스로를 인정하며 살아가고 있는 아구스티나의 모습은 늘 손가락질 받는 대상이 아니라, 어느 한구석에는 '나도 차라리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읊조림을 담게 하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