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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가족...
단 두 글자일 뿐이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
그 안에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애절함, 감동과 상처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 세상 단 하나뿐인 은신처. 가족은 그렇게 누구에게나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단어이지만 그렇기에 한 없이 깊고 한없이 넓은 망망대대의 바다처럼 끝도 알 수 없고 깊이도 알 수 없는 무한의 존재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쁜 일이 생겼을때에도, 슬픈일이 생겼을때에도, 즐겁고 유쾌할 때에도, 아프고 상처받았을때에도, 성공해서 잘 나갈때에도, 실패해 세상에서 소외당할때에도 늘 가족을 떠올린다.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나쁜 것들을 모두 내보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가족이기 때문에.. 나의 행복을 가장 기뻐해주고, 상처받고 아파하는 나를 가장 가엾어 해줄 존재도 바로 가족이기 때문에 말이다. 가족은 그렇게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보호막이자 은신처이며 끝없이 나에게 살아갈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곳이다. 세상이 끝나 피붙이 하나 없이 외로이 홀로 떨어져 죽어가는 존재가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순간에도 가슴속에 남아 마지막까지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존재가 가족이다.
<고령화 가족>은 바로 그 절대적이다시피한 의미의 가족에 대한 새로운 질문들을 퍼붓는 이야기이다. <고령화 가족>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평균나이 49세의 이 평범하지 못한 가족들을 통해서 말이다. <고령화 가족>의 구성원들은 모두 사회에서는 패배자라 불리울만한 이들을 모아놓다시피했다. 나이 50이 넘어서도 아직 일흔넘은 어머니에게 빌붙어 살며 120kg의 거구를 겨우 놀리는 일정도도 하지 않는 한량, 게다가 이미 교도소를 제 집 드나들듯 했던 전과가 무려 5범이나 되는 형 한모와 한 때는 잘 나가는 영화감독을 꿈꾸었으나 단 한편의 영화로 이제는 영화판에서 축출되다시피하여 바람난 아내와 이혼하고 술로 하루하루를 살던 반폐인의 전직영화감독 오인모, 그리고 두번째 결혼에서 남편몰래 바람피우다 이혼당하고 어린 딸 민경과 함께 들어와 살게 된 여동생 미경. 여기에 일흔이 넘는 나이에 집 밖으로 나갔다가 인생의 실패자라는 낙오가 찍혀 돌아온 자식들을 다시 거두어 먹이게 된 어머니까지 총 5명으로 구성된 <고령화 가족>은 누가 보아도 콩가루 집안이요. 어딜 봐도 답 안나오는 답답한 집안인 것이다. 게다가 가족들끼리의 유대감도 제로, 서로 못잡아먹어 칼 부림 안나는게 다행인 형제에, 어린 시절부터 어디서 뭘 하는지 관심조차 가지지 않고 방치했던 여동생, 삼촌들 보기를 옆집 개보다 못하게 보는 조카까지.. 아무리 뜯어보아도 가족관계라고 하기엔 불협화음이 너무도 심하기만한 <고령화 가족>은 그래서 시작부터 콩가루 집안임을 천명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인생의 실패자들로 다시 돌아온 자식들, 그리고 이제 노년기에 접어든지도 한참이 지나 황혼녁의 노을이나 보며 남은 인생을 편안하게 살아도 시간이 짧을 어머니는 그렇게 한 집에서 <고령화 가족>으로서의 한집 살림을 시작한다. 다들 제각각의 인생을 살아왔고, 그 인생에서 제각각 실패하여 돌아온 이들이 만들어낸 평균 나이 49세의 <고령화 가족>이 제대로 굴러가길 바라는 것은 당연히 무리.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정서적 유대감이 상실된 가족이자 가족보다 못한 이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서로를 감싸주고 무한한 애정으로 보듬어주는 가족이 아니라 자신의 밥 한그듯을 빼앗아 먹고 내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짐덩이로서만 존재하는 가족들. <고령화 가족>의 가족들은 어찌보면 가끔 우리가 뉴스를 통해 보듯, 혹은 푸념하듯 말하는 의미가 상실된 현대의 가족이 가지는 상실된 그 무엇에 대한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듯도 하다.
하지만 <고령화 가족>은 한 집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들은 그들이 풀지 못한채 잊어버렸거나 잊어버렸다고 믿었던 자신들의 가족에 대해 부딪히게 된다. 각자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때에는 애써 무시했거나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가족으로서의 문제에 대해 평균 나이 49세의 <고령화 가족>이 되어서야 비로소 문제를 직면해야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새삼스레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가족을 사랑하자는 다짐을 하기도 궁색하기 짝이 없는 나이의 콩가루 가족. 모두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고 단지 엄마가 있는 집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갈 곳이 없어 돌아온 그 빌라의 좁디좁은 공간안에서 이미 아주 오래전에 되새기고 품었어야 할 가족이라는 단어를 맞딱드리게 된 것이다.
정서적 유대감만이 결핍된 가족이 아니었던 <고령화 가족>, 알고 보니 매일 자신을 무식하게 패대기만 했던 형은 이복형제였고, 두번째 결혼을 실패해 아이를 데리고 들어온 미연은 인모와 아버지가 다른 남매였다. 미연과 한모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었고, 동시에 가장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엄마와도 남일 뿐이다. 오로지 자신만이 정상적인 부부관계안에서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알게된 인모와 결국 모두 한다리 걸친 이음매로 위태롭게 이어져왔을 뿐인 <고령화 가족>, <고령화 가족>은 말 그대로 정서적 유대감과 동시에 물리적 유대감에도 결함투성이인 극단적인 콩가루 집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족의 혈연관계에 대한 비밀들이 수면위로 드러나면서 <고령화 가족>은 공중분해될 위기에 놓인다. 동시에 그 때까지의 가족이라는 이름뿐인 껍데기를 버리고 새로운 가족으로서 태어날 기회도 맞이한다. 가족의 가장 큰 골치거리인 오함마가 나서주는 덕에 말이다.
처음부터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고령화 가족>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위기를 넘기고 조금씩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간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어느날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사회에 나가 대박을 터트렸다는 비현실적인 성공스토리를 풀어놓지는 못하지만 그 역시도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조금씩 세상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어라 이야기하든, 이제 그들에게는 위태롭기 짝이 없었던 <고령화 가족>이 아닌 딸을 구해준 삼촌과 삼촌과의 의리를 지킨 조카,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젊은 날을 써야했던 여동생과 평생을 자식들 밥해주느라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없었던 엄마가 있으니 말이다.
<고령화 가족>에는 분명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정서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하나가 아니었던 가족, 하지만 그럼에도 오랜 시간을 가족이라는 이름안에 묶여 있었으며, 평균나이 49세가 되어 실패한 인생이 되어서도 한 지붕 아래 살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 가족말이다. <고령화 가족> 사랑이 넘치는 가족도 아니고, 언제나 즐거운 나의 집도 아니지만 더욱 가족이라는 단어를 되새기게 한다. 단지 희미한 끈처럼 이어져 있을 단 하나의 이름뿐이라도, 가족이기에 언제고 돌아갈 수 있음을, 그리고 그곳이기에 다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엄마의 밥을 먹을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노인도, 그 물고기를 빼앗기 위해 몰려드는 상어도 될 수 없었던 인생의 낙오자, 그저 낚시바늘에 입이 꿰어 물 밖으로 끌려나오고, 고통스럽게 몸을 뒤틀다 끝내는 죽어가야 했던 물고기만이 자신의 모습이라 스스로 자괴하며 포기해야했던 단 한명의 실패한 인생도 가족안에서는 아들이요, 오빠요, 동생이요, 삼촌이 될 수 있는... 그래서 결국 그에게 다시 바다로 나가 낚시줄을 던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가족임을 <고령화 가족>은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족의 의미를 논하기에는 어쩌면 한 명의 사람은 너무도 부족하고 어리석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한명의 사람의 인생을 완성해주는 단 하나의 영양분이 바로 가족이라는 사실이다. 한때는 허울뿐이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던, 너덜너덜 찢어지고 거적대기마냥 나풀거렸던 힘없는 <고령화 가족>이라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