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비평 117호 - 2016.겨울
역사문제연구소 엮음 / 역사비평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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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단군은 무엇일까? 유대인들에게 여호와의 위치쯤 될까? 하지만 종교적인 면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유대인들은 수 천년 전부터 자신들의 신앙을 만들어 왔지만 단군이 신격화된 것은 1909년 나철이 대종교를 만들면서부터이다.

하지만 종교적 색깔을 빼고 역사적으로만 본다면 단군과 여호와의 기능은 비슷한 면이 있다. 즉 해당 민족의 수난 시기에 극복의 수단이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여호와의 종교적 기능이 좀 더 부각될 수밖에 없지만, 단군 역시도 수 천년의 세월을 뚫고 지금까지 국난 극복의 상징으로 역할해 왔다. 고려 시대에도 일제 강점기에도. 그리하여 단군은 20세기 들어 ‘상상의 공동체‘인 민족을 구성하는 게 크게 이바지 하였다. 여기에 단군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 한다.

사이비 역사학자들이 고조선의 영역을 넓히고 우리 민족의 위대성을 강조하고 싶어하지만, 그것은 바람일 뿐 현실이 되기 어려워 보인다. 북한이 1990년대 단군릉을 내세워 ‘대동강 문화론‘을 강조한 것과 무엇이 다를까. 더 강력한 사료와 물증이 발견되지 않는 한 단군신화와 고조선은 여전히 다루기 힘든 분야다. 그것은 중앙박물관 전시실에 가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결국 고조선 건국 B.C2333년도 허구일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한국에서 단군 자손 의식이 등장하는 시기는 일제가 국권침탈에 박차를 가하던 20세기 초였다고 한다. ‘한민족은 단군의 자손‘이라는 인식이 처음 등장한 것도 1908년 1월 1일자 <<대한매일신보>> 논설 <신년송축>이다.(242쪽)

즉 한국 역사에서 사회적으로 그 필요성이 요구될 때마다 단군은 마스터키처럼 다양한 형태로 소환되었고, 그 나름의 역사적 기능을 수행해왔다.(246쪽)

단군의 역사는 한반도에 처음 출현한 국가 고조선의 건국신화로 시작되었다. 그렇다. 단군은 단일민족의 유일 시조도 아니었으며, 그로 인해 우리의 역사가 5000년 전에 시작된 것도 아니었다.(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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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가? - 고대 민음 지식의 정원 서양사편 2
정기문 지음 / 민음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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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문, <로마는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가?>, 민음인, 2010.

제목이 그리 와닿지 않았다. 특히 역사가가 강대국의 논리를 쫓는다는 생각에 사두고 한참을 묵혀 두었다. 그러다 얇고 빨리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책장을 펼쳤다.

로마는 과연 배울만한 나라였을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가까이 하고픈 주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당최 로마는 어떤 나라였는지 더 궁금해지고 말았다. 역대 최장수 국가였다고 할 수 있는 로마의 힘은 어디서 왔을까?

먼저 로마는 능력 있는 사람들을 중용했다. 로마는 출신과 신분을 따지지 않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고 직분을 주었다. 놀랍게도 그 중에는 노예 출신의 황제도 있다. 점령한 속주의 사람도 원로원에 들어가 국가 정치를 논할 수 있었다. 능력 앞에 차별은 없었던 셈이다. 한국은 어떤가? 금수저들이 판치는 이 사회는 능력이 우선일까 신분이 우선일까?

둘째, 로마는 배움의 천재였다. 군사 국가라 할 수 있는 로마였지만 처음부터 군사력이 강했던 것은 아니었다. 즉 싸우며 지며 적국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리스에게서 에트루리아에게서 카르타고에게서. 그 힘이 한니발의 가공할만한 침략 앞에서 버텨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이는 군사력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철학,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남의 것을 수용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 한국 학생은 공부만 잘 하는데...

셋째, 로마의 지도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물론 모든 지도층은 아니었겠지만 다수의 지도층이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였다. 명장 한니발의 침략에 북부와 남부 이탈리아가 유린되고 로마군이 참패하였다. 로마군에게 물자와 식량을 보급한 것은 바로 로마의 지도층이었다. 기꺼이 자신들의 재산을 내놓아 국가에 헌납하였다. 그 힘으로 수군을 키우고 카르타고를 칠 수 있었다. 지금의 한국은?

넷째, 로마는 비록 왕정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왕을 몰아내고 당시로서는 다소 특별한 정치체제를 이룩하였다. 왕이 없는 대신에 콘술을 세워 정치를 담당하게 하였다. 하지만 그는 독재를 하지 못했고 원로원의 견제를 당해야 했다. 원로원은 주로 귀족들로 구성되어 정치, 사회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했지만 민회의 동의를 구해야만 했다. 특히 호민관으로 대표되는 평민들은 민회를 중심으로 원로원을 제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민회 역시 콘술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 즉 로마는 콘술-원로원-민회가 한 축이 되어 국가를 유지했으며 그 연결고리는 강력했다. 지금 한국은 어떤가?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지 않나?

마지막으로 로마는 종교적으로 안정되어 있었다. 신을 믿고 따르는 자세는 주변국을 넘어섰다. 적국을 침략할 때 자신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물론, 상대의 신에게도 제사를 지내며 자신들에게 와줄 것을 당부였다. 그리하여 자신이 이기면 상대국의 신전을 로마에 세웠다. 그리하여 로마에는 판테온이라는 만국의 신을 모시는 신전을 세우게 된다. 결국 이 모든 신앙에 대한 유산은 기독교에게로 넘어가고 로마를 기독교 전파의 일등공신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의 힘은 어떨까?

짧은 문고본의 책이지만 현대 한국에 대한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특히 국가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는 지도층의 모습은 백성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한국 사회는 여기서 한참 멀어진 듯하다. 이미 병역 면제된 총리가 아무 거리낌 없이 자리에 앉아 있고, 부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온갖 불법도 서슴없이 자행하는 기업인들이 넘쳐난다. 청문회에서 봤듯이 그들에게 모범과 반성은 없다. 작금의 한국 현실이다. 지배층에게서 도덕은 이미 버려야 할 쓰레기인 셈이다. 우리는 고대 로마인에게서 배워야 한다. 이는 비단 지배층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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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사 편력 1 - 고대에서 근대까지
박상익 지음 / 푸른역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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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역사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옛 것을 주로 다루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과 잘 맞다. 새 것보다 손때 묻은 물건에 애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것들이 현실의 나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력원이 된다. 옛것을 통해 현실을 보는 즐거움은 이루다 말하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박상익 교수의 위 책은 의미가 깊다. 많은 일반인들이 역사는 옛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역사가 비록 옛것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기는 하지만 현실이라는 기반이 없으면 존재의 의미가 없다. 위 책은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쉬운 문체와 내용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우리는 흔히 문화재 파괴와 관련된 용어로 ‘반달리즘‘이라는 표현을 쓴다. 무지에 의해서든 의도적이든 인류의 유산을 해할 경우 로마를 파괴한 반달족을 예로 그런 표현을 쓴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은 오해이며 그보다 후대 로마인들에 의한 파괴가 더 크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로마를 건설하기 위해 옛 로마를 무너뜨린 것이다. 이는 한국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90년대까지 서울 서민들의 사랑을 받던 음식골목 ‘피맛골‘은 조선시대부터 형성된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근대화의 바람을 타고 이곳에 수차례의 개발 시도가 있었지만 뜻있는 사람들의 저지로 번번히 무산되었다. 하지만 저 유명한 쥐박이 서울 시장이 2003년에 밀어버리고 현대식으로 탈바꿈 시켜버렸다. 결국 겉모습도 사라지도 음식맛도 퇴락해버렸다. 사람들의 발길과 오래된 가게들도 하나둘 떠나버렸다. 저자는 이 역시도 반달리즘의 한 형태라고 본다.

여기에 영화, 음악, 인접 학문까지 저자는 다양한 분야와 역사를 접목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설득력이 있고 무언가 내면의 변화를 추구하게 만든다. 역사를 지적 즐거움이 아니 실천의 학문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의 글이 참 좋다. 저자의 2006년 작인 <번역은 반역인가> 역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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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11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덕분에 밀턴이 위대한 지성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knulp 2016-12-11 13:01   좋아요 1 | URL
그러셨군요. 저 역시도 이 책 덕분에 서양사의 이면을 경험하게 되어 참 좋았습니다.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준 책^^

서니데이 2016-12-23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nulp님, 2016 서재의달인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knulp 2016-12-23 22:24   좋아요 1 | URL
감하합니다만, 서재의 달인이 뭔가요? 저는 잘 몰랐네요. ㅎㅎ

서니데이 2016-12-23 22:26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 매년 연말에 서재의 달인을 선정해요. knulp님의 서재 오른쪽 메뉴가 있는 하단에 앰블럼이 있어요. 자세한 내용은 알라딘 서재지기님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을 거예요.^^

knulp 2016-12-23 22:51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정보 감사합니다. 함 구경 가볼게요.
 
조선의 아버지들 -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진정한 아버지다움
백승종 지음 / 사우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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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를 해결하겠다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개인적 욕심만 넘치는 나에게 당연한 의무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조선의 아버지들은 좀 다를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그들은 어떻게 자녀들을 양육했을지 궁금증이 컸다.

이 책에는 12명의 아버지가 나온다. 거칠게 말해 11명은 나름 자녀 교육에 성공적(?)이었고 단 한 명만 실패한 사람으로 나온다. 성공적이라는 말은 상대적일 수 있겠으나 대체로 자녀들과 교감하고 그들에게 정상적인 애정을 쏟은 아버지들이다. 그리하여 자녀들이 시대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도록 이끈 모델들이다(정약용, 이황, 박세당, 김숙자, 이익, 유계린, 김장생, 김정희, 이순신, 김인후, 이항복). 나머지 한 명은 그 유명한 영조다. 자신의 의지로 자식을 뒤주에 넣어 죽인 인물.

그런데 재밌는 것은 앞의 11명은 대체로 자녀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지 않고 살갑기까지 하다. 하지만 영조는 그 관심이 지나치다 못해 병적이다. 이러한 영조의 불안한 심리가 사도세자에게 이어져 그는 정신병적인 행동까지 한다. 좋은 아빠의 모범들을 읽은 뒤라 영조의 행동은 공감은 커녕 비난받기 쉬워 보였다. 그렇기에 더욱 좋은 아버지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다. 그러면 좋은 아버지란 무얼까? 책을 읽으며 혼자 한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첫째, 자녀에게 공감을 해줄 수 있는 아버지다. 억지로 시키거나 채근되지 않는다.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부드럽게 하되 기다리는 미덕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미 자신이 인격적으로 갖추어진 인물이기에 가능했으리라.

둘째,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좋은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편지를 자주 보냈다. 말로는 힘든 내용을 그 속에 담아 전했다. 물론 전통시대의 성격상 원격지의 자녀와 교류가 원활치 않아서 편지를 자주 했겠으나 아버지의 마음을 담은 편지는 자녀를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다산 정약용의 경우 그 편지를 엮어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셋째, 좋은 아버지는 자녀의 모범이었다. 위에 밝힌대로 11명의 아버지들은 인격적, 학문적으로 인정받는 실천적 지식인들이었다. 결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이 아니었다. 오늘날의 아버지들이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도 자녀들에게 말은 하지만 자신이 모델이 되지 못하고 강요자만 되고 있기 때문 아닌가. 혹은 자녀들과의 교류의 끈이 끊어졌거나.

마지막으로 좋은 아버지들은 시대와 타협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엄격하지만 남에게는 너그러웠던 사람들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 중에는 비주류의 남인들과 초기 사림들이 대부분이다. 타협하면 좋은 위치에까지 올라갈 수 있었지만 그들은 지조를 지키고 불의를 멀리했다. 이러한 행동을 자녀들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좋은 책은 읽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이 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책 역시도 그렇다. 전형적이고 틀에 박힌 아버지상이 아니라 11명의 따르면 좋은 아버지 모델과 1명의 따르면 나쁠 아버지 모델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어떤 아버지일지.

오늘도 나는 딸을 눈물 흘리게 했다. 좋은 책을 읽은만큼 최대한 목소릴 낮추고 자기 스스로 잘못을 알고 뉘우치도록 다독였다. 엄마에게 큰 잘못을 한 딸은 야단치는 아빠를 멀리하고 다시 엄마와 손 잡았다. 나는 바로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 좋은 아빠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인격수양부터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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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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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민음사, 2002.

예전에 푸른역사 출판사에서 <속물교양의 탄생>이란 책이 출간되었었다. 교양서적이란 누구의 기준에 의해 선정되고 출간되는가라는 의문을 던져준 책이다. 결국 교양서적은 출판사에의해 임의적으로 선정되어 독서계에 던져져지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양서적은 하나의 지식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책을 집에 구비해두어야 지식인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속물교양은 탄생되었다.

그런데 슬프게도 나 역시 그런 속물교양의 자발적 수요자이다. 그런 정도는 읽어야 중간은 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내적 강요에 의해 무작정 읽어댔다. 수준 높은 교양을 가진 지식인이 되고픈 게 나의 꿈이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위 의식인지 한참 뒤에서나 깨닳았다. 부끄럽지만.

<설국>을 안 지는 30년도 넘었을 것이다. 제목도 대략적 줄거리도 도저히 내게 와닿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서야 책을 읽게 되었다. 마치 묵은 숙제를 해치운 느낌으로.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이라면 어디에서나 나오는 대목이다. 책의 첫구절이기도 하다. 특히 일본근대문학 전 작품을 통틀어 보기 드문 명문장으로 손꼽힌다는 찬사가 이어진다. 또한 일본 최고의 서정소설이라는 안내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소개는 책읽기를 무척이나 방해한다. 개별적 경험을 가진 나의 독서이력은 무시되고 타인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양서적 읽기는 자주 실패하게 된다. 너무 뜸을 많이 들여 물러터진 밥이 되버리 것이다.

<설국>에는 뚜렷한 줄거리가 없다. 일본식 여관 주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에 대한 주인공 내면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부모의 유산으로 무위도식하는 시마무라와 그를 사랑하는 게이샤 고마코, 그리고 시마무라가 잠시 눈길을 준 요코가 주된 등장인물이다. 시마무라는 나쁘게 말해 정말 할 일 없는 그리하여 인생의 허무에 빠진 듯한 인물이다. 그런 그의 주위를 맴도는 고마코는 불행한 듯하지만 씩씩한 여인이기도 하다. 나는 이 둘을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 아니 배웠다기보다 무엇을 느꼈을까?

사실 이 소설은 내게 그다지 큰 감흥이나 독서의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 그보다 일본, 그것도 소설의 주된 무대인 니가타에 대한 커다란 환상을 심어주었다. 소설에 묘사되는 설국의 정경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눈이 지붕까지 쌓이거나 오로라가 나타나는 풍경은 날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기차가 터널을 지나 눈의 고장에 들어섰고 밤의 밑이 하얘졌다는 저자의 묘사가 와닿았다. 갑자기 일본 니가타현에 가고픈 심정이 되었다. 이 소설은 내게 소설 자체가 주는 즐거움보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새로운 길라잡이가 되었다. 그 주제는 ‘눈‘이었다. 나는 추위를 그토록 싫어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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