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가? - 고대 민음 지식의 정원 서양사편 2
정기문 지음 / 민음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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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문, <로마는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가?>, 민음인, 2010.

제목이 그리 와닿지 않았다. 특히 역사가가 강대국의 논리를 쫓는다는 생각에 사두고 한참을 묵혀 두었다. 그러다 얇고 빨리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책장을 펼쳤다.

로마는 과연 배울만한 나라였을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가까이 하고픈 주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당최 로마는 어떤 나라였는지 더 궁금해지고 말았다. 역대 최장수 국가였다고 할 수 있는 로마의 힘은 어디서 왔을까?

먼저 로마는 능력 있는 사람들을 중용했다. 로마는 출신과 신분을 따지지 않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고 직분을 주었다. 놀랍게도 그 중에는 노예 출신의 황제도 있다. 점령한 속주의 사람도 원로원에 들어가 국가 정치를 논할 수 있었다. 능력 앞에 차별은 없었던 셈이다. 한국은 어떤가? 금수저들이 판치는 이 사회는 능력이 우선일까 신분이 우선일까?

둘째, 로마는 배움의 천재였다. 군사 국가라 할 수 있는 로마였지만 처음부터 군사력이 강했던 것은 아니었다. 즉 싸우며 지며 적국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리스에게서 에트루리아에게서 카르타고에게서. 그 힘이 한니발의 가공할만한 침략 앞에서 버텨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이는 군사력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철학,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남의 것을 수용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 한국 학생은 공부만 잘 하는데...

셋째, 로마의 지도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물론 모든 지도층은 아니었겠지만 다수의 지도층이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였다. 명장 한니발의 침략에 북부와 남부 이탈리아가 유린되고 로마군이 참패하였다. 로마군에게 물자와 식량을 보급한 것은 바로 로마의 지도층이었다. 기꺼이 자신들의 재산을 내놓아 국가에 헌납하였다. 그 힘으로 수군을 키우고 카르타고를 칠 수 있었다. 지금의 한국은?

넷째, 로마는 비록 왕정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왕을 몰아내고 당시로서는 다소 특별한 정치체제를 이룩하였다. 왕이 없는 대신에 콘술을 세워 정치를 담당하게 하였다. 하지만 그는 독재를 하지 못했고 원로원의 견제를 당해야 했다. 원로원은 주로 귀족들로 구성되어 정치, 사회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했지만 민회의 동의를 구해야만 했다. 특히 호민관으로 대표되는 평민들은 민회를 중심으로 원로원을 제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민회 역시 콘술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 즉 로마는 콘술-원로원-민회가 한 축이 되어 국가를 유지했으며 그 연결고리는 강력했다. 지금 한국은 어떤가?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지 않나?

마지막으로 로마는 종교적으로 안정되어 있었다. 신을 믿고 따르는 자세는 주변국을 넘어섰다. 적국을 침략할 때 자신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물론, 상대의 신에게도 제사를 지내며 자신들에게 와줄 것을 당부였다. 그리하여 자신이 이기면 상대국의 신전을 로마에 세웠다. 그리하여 로마에는 판테온이라는 만국의 신을 모시는 신전을 세우게 된다. 결국 이 모든 신앙에 대한 유산은 기독교에게로 넘어가고 로마를 기독교 전파의 일등공신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의 힘은 어떨까?

짧은 문고본의 책이지만 현대 한국에 대한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특히 국가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는 지도층의 모습은 백성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한국 사회는 여기서 한참 멀어진 듯하다. 이미 병역 면제된 총리가 아무 거리낌 없이 자리에 앉아 있고, 부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온갖 불법도 서슴없이 자행하는 기업인들이 넘쳐난다. 청문회에서 봤듯이 그들에게 모범과 반성은 없다. 작금의 한국 현실이다. 지배층에게서 도덕은 이미 버려야 할 쓰레기인 셈이다. 우리는 고대 로마인에게서 배워야 한다. 이는 비단 지배층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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