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민음사, 2002.예전에 푸른역사 출판사에서 <속물교양의 탄생>이란 책이 출간되었었다. 교양서적이란 누구의 기준에 의해 선정되고 출간되는가라는 의문을 던져준 책이다. 결국 교양서적은 출판사에의해 임의적으로 선정되어 독서계에 던져져지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양서적은 하나의 지식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책을 집에 구비해두어야 지식인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속물교양은 탄생되었다.그런데 슬프게도 나 역시 그런 속물교양의 자발적 수요자이다. 그런 정도는 읽어야 중간은 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내적 강요에 의해 무작정 읽어댔다. 수준 높은 교양을 가진 지식인이 되고픈 게 나의 꿈이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위 의식인지 한참 뒤에서나 깨닳았다. 부끄럽지만.<설국>을 안 지는 30년도 넘었을 것이다. 제목도 대략적 줄거리도 도저히 내게 와닿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서야 책을 읽게 되었다. 마치 묵은 숙제를 해치운 느낌으로.˝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이 책을 소개하는 글이라면 어디에서나 나오는 대목이다. 책의 첫구절이기도 하다. 특히 일본근대문학 전 작품을 통틀어 보기 드문 명문장으로 손꼽힌다는 찬사가 이어진다. 또한 일본 최고의 서정소설이라는 안내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소개는 책읽기를 무척이나 방해한다. 개별적 경험을 가진 나의 독서이력은 무시되고 타인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양서적 읽기는 자주 실패하게 된다. 너무 뜸을 많이 들여 물러터진 밥이 되버리 것이다.<설국>에는 뚜렷한 줄거리가 없다. 일본식 여관 주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에 대한 주인공 내면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부모의 유산으로 무위도식하는 시마무라와 그를 사랑하는 게이샤 고마코, 그리고 시마무라가 잠시 눈길을 준 요코가 주된 등장인물이다. 시마무라는 나쁘게 말해 정말 할 일 없는 그리하여 인생의 허무에 빠진 듯한 인물이다. 그런 그의 주위를 맴도는 고마코는 불행한 듯하지만 씩씩한 여인이기도 하다. 나는 이 둘을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 아니 배웠다기보다 무엇을 느꼈을까? 사실 이 소설은 내게 그다지 큰 감흥이나 독서의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 그보다 일본, 그것도 소설의 주된 무대인 니가타에 대한 커다란 환상을 심어주었다. 소설에 묘사되는 설국의 정경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눈이 지붕까지 쌓이거나 오로라가 나타나는 풍경은 날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기차가 터널을 지나 눈의 고장에 들어섰고 밤의 밑이 하얘졌다는 저자의 묘사가 와닿았다. 갑자기 일본 니가타현에 가고픈 심정이 되었다. 이 소설은 내게 소설 자체가 주는 즐거움보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새로운 길라잡이가 되었다. 그 주제는 ‘눈‘이었다. 나는 추위를 그토록 싫어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