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과거의 것만 연구하는 데 그친다면 그 역사는 반쪽짜리 의미밖에 구하기 힘들다. 과거에 매몰되어 그 속에서 허우적 거린다면 내가 밟고 서 있는 이땅에서의 존재 의미가 사라진다. 비록 과거를 연구하만 역사 연구는 현재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어떤 연구자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할 때 역사학의 의미가 생겨나지 않을까?

그렇다고 모든 역사 연구에서 현재적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다. 나같은 일반 독자에겐 적잖이 부담스런 일이다. 그러니 그런 준비가 된 책을 골라 읽는 일이 독자들에게는 좋을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읽었다.

우선 한국 사학계에서 생소하기 짝이 없는 ‘생태주의‘ 역사학이란 용어가 등장했다. 여전히 한국 사학계는 대부분의 연구 주제는 대체로 한정되어 있다. 포스트모던의 영향으로 일부 다르게 보기를 시도하는 소장학자들도 있지만 주류는 여전히 정치사다. 여기에 저자 백승종은 반기를 든다. 물론 정치의 영역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는 현재의 관점에서 한국과 세계의 위기는 과잉 자본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하며 시야를 돌리기를 주문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생태주의 역사학이 등장하게 된다. 즉 녹색의 관점에서 역사학을 다시 쓰자는 것이다. 주류에 대한 반발이라기 보다 완전히 다른 흐름의 개척인 셈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동학농민운동과 박정희 시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왜 박정희 시대가 비판받아야 하는지, 동학농민운동은 다시 조명받아야 한는지 그는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생태적 시각은 이명박 정권 최악의 선택인 4대강사업과 일본의 후쿠시마 비극에 까지 이른다. 결국 자본주의의 과잉은 자연 생태계에 씻기 힘든 생채기를 남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 인류적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자연스레 탈핵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생태적 시각에서 봤을 때 인간의 넘치는 욕망이 불러온 참사는 수용하기 힘든 일이다.

독자인 내게 신선하게 다가온 부분은 책의 7, 8강이다. 저자는 한국사에게 뚜렷한 족적을 남긴 학자이지만 그의 시야는 한국을 넘어 있다. 그가 비록 독일에 유학한 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 역사가의 입장에서 그리고 생태주의자 입장에서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서구중심적 시각을 비판한다. 이것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 문제의 연장 선상이다. 저자의 시각이 지나치게 좌편향적이라 비판할 수 있겠으나 이는 옳지 못한 지적이다. 저자의 관점은 분명 인간 중심이요 환경 중심이다.

한국사학자가 한국인의 시각으로 세계사를 본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서구의 관점에서 서구를 바라보는 시각에 익숙해 있었다. 자세히 보면 언론 역시도 서구의 시각을 소개하는 데 그칠 뿐이다. 나아가 한국의 많은 서양사학자들도 이런 일에는 게으르지 않았나 생각된다. 물론 학문 연구에 치중하느라 이런 일에 소홀했을 수도 있겠으나 서구를 잘 아는 전문가로서 역사학에 바탕을 둔 그들의 특화된 시각을 독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소개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어쩌면 일반 독자들에게 이 책은 생경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에 물든 우리는 생태주의를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는 데다 어려운 역사학까지 붙여 놓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용은 그렇게 고리타분하거나 현학적이지 않다. 오히려 저자의 일관된 입장을 따라가다보면 새로운 세계관이나 역사관을 가지는 데 적잖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을 읽으면 이를 이해할 것이다.

˝객관적이고 중립저긴 태도를 견지하며 인간의 역사를 순수 학문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을까? 이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굴절과 오욕으로 점철된 역사 앞에서 중립적이란 존재할 수 없다. 부족하나마 자신의 관점과 의지를 따라 역사를 서술하는 것, 이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실천이며 행동이다.˝(10쪽)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머리에 맴돈 것이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이란성 쌍생아 아닐까 하는 점이다. 서로 다른 듯하지만 닮은. 둘 다 경제중심적이고 물질만능을 추구하며 비환경적 이론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생태적 전환은 당면 과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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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땅콩문고
이원석 지음 / 유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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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소 취미가 글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이다. 읽고 난 느낌이나 감정을 글로 정리하고 나면 책 한 권을 제대로 소화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독후감 쓰기가 10년을 훌쩍 넘었다. 책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나의 읽은 뒷감정이 중요했다. 결국엔 읽을만한 책과 시간이 아까운 책으로 구분되었다. 혹은 추천할만한 책까지.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독후감을 제대로 잘 쓰고픈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 생각이 길어지니 절로 서평에 대한 욕심이 자랐다. 그러다 이제서야 이원석의 <서평 쓰는 법>이란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은 먼저 독후감과 서평의 차이를 설명해준다. 독후감은 위에 쓴 것처럼 독자가 책을 다 읽은 후 자신의 감정을 정리한 것이다. 반면 서평은 독자가 책을 꼼꼼히 분석하며 책을 읽고 평가한 것이다. 독후감이 주관적 기록이라면, 서평은 다른 독자들을 의식한 객관적 기록의 전형이다. 이 서평을 통해 다음의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지 말지 고민하게 된다.

이 서평의 토대는 요약과 평가다. 독자 나름의 방법으로 읽고 해석한 것을 요약하고 이것을 중심으로 서평자의 입장에서 책을 평가해야 한다. 책을 추천하는 서평이라면 냉철해야 한다. 서평자 자신만의 주관과 해석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읽은 이에게 불안감과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서평을 쓸 것인가? 생각하고, 쓰고, 고치라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첫 문장 및 문단 구성법, 말 고르기, 인용의 방법 등도 제안해주지만 일단 쓰고, 그것을 계속 반복해 읽으며 고치면 독창적 서평은 못되도 훌륭한 서평은 쓸 수 있다고 조언해 준다. 그렇다. 틀리고 고치고 하면 언젠가 나아진다. 문제는 나는 이를 알면서도 다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ㅎㅎ

저자의 맺음말이 와 닿았다. ˝서평 쓰기는 단순한 개인적 도락을 넘어서서 강력한 정치적 행위로 이어집니다. 여러분이 좋은 책을 읽고, 멋진 서평을 쓰는 것은 우리 사회를 변혁시키는 교양 혁명의 첫걸음입니다.˝ 이렇게 나는 독후감에서 서서히 서평 쪽으로 옮아가고자 한다. 물론 독후감식의 글쓰기를 단숨에 버리긴 힘들 것이나 서평문에 입각한 글쓰기를 향한 도전도 게을리할 수 없다. 특히나 이렇게 공개적으로 글을 쓰니 말이다.

이 책의 절반은 서평 예찬론이다.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서평의 내용과 구성에 대해서 말해준다. 즉 책의 2/3까지 서평을 어떻게 쓰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나는 그게 중요했는데! 다행히 두껍지 않은 책이라 쉬~ 책의 나머지로 넘어가면 쓰는 법에 대해 친절히 알려준다. 이때까지 인내할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도 내가 써야 할 글의 지향점을 알려주는 듯하여 기쁘다.

얇은 문고판이지만 한참을 끌다 이렇게 휘리릭 읽어버렸다. 제대로 서평을 쓰고자 하는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나를 성찰하고 사회를 비평할 수 있는 독서로 나아가고자 하는 독서인들에게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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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07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좋은 책이 늦게 나와서 아쉽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 전부터 글의 정체성(?)에 대해 많이 고민했거든요.. ^^;;

knulp 2017-05-07 16:44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저와 비슷한 고민을. 앞으로 제 독후감도 방향을 정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ㅎㅎ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 - 어쩌면 누구나 느끼고 경험하고 사랑했을 이야기
강세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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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평온을 주옵시고,
제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옵시고,
그 둘을 분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강세형,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 쌤앤파커스, 2013. 220쪽에서 재인용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내 머리에 세게 와박힌 기도문이다. 평온을 기도했지만 마음엔 늘 미련이 남아 있었고, 용기를 기도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분간하지 못해 늘 제자리를 맴돌았다. 이제 이 기도문처럼 기도해야겠다. 분별의 힘을 달라고.

모처럼 기쁜 맘으로 책 한 권을 읽었다. 잠을 줄여가며 힘겹게 읽은 책이지만, 많은 공감과 생각거리를 얻어서인지 기분은 참 좋다. 좋은 책은 좋은 친구와 같아서 함께 있으면 시간 가는줄 모른다. 오히려 내게서 떠나보내야 할 때가 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마지막 장은 넘기기 힘들다. 지금까지의 마음을 거두어 책장에 꽂아두어야 하니까 말이다. ㅎㅎ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나면 통째로 기억하고 싶은데, 부족한 내 머리 용량은 그걸 허락치 않는다. 그래서일까? 책을 덮으면 아무 생각도 안나는 것이??? ㅎㅎㅎ

난 소설보다 수필이 더 잘 읽히는 모양이다. 물론 이는 개인적 취향의 문제지만... 오늘도 한 권을 마음에 뭍었다.
2014.01에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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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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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준에 좋은 책이란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다. 고민만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게 유도한다.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는 바로 여기에 부합되는 책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읽었다. 비록 그가 정치적으로 팬과 안티가 극명하는 갈리는 사람이었지만 작가로서는 공감이 가는 글을 쓰고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일, 놀이, 사랑, 연대가 가능해야 한다. 여기서 하나만 빠져도 주체적인 삶을 살기 힘들어진다. 그런데 슬프게도 나는 네 가지 모두에서 어설프다. 그나마 가족 사랑 정도에만 점수를 줄 수 있고 나머지는 어영부영 살아왔다. 유 작가의 주장에 공감하며 나를 채근하며 이 반성문을 쓰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책 제목처럼 내 가슴에 들어와 박힌 주제다. 작가는 주체적인 선택으로 일하고, 놀고, 사랑하고, 연대하라고 주장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게 되는 일인가. 누구는 일하지 싶지 않은가. 누구는 놀고 싶지 않은가. 누구는 사랑하고 싶지 않는가. 누구는 연대하고 싶지 않는가. 현실이 이럼에도 주장하는 것은 이것들이 당장에 손에 쥘 수는 없지만 내가 투쟁하며 쟁취해야 할 대상들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손에 쥐고 있는 것도 행복할 수 있겠으나 그것을 얻으려 노력할 때 더 가치 있지 않을까 싶다. 여행지에서의 기쁨도 크지만 그 여행을 준비하며 얻게 되는 기쁨도 적지 않은 것처럼.

이 책을 두 번 읽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독서인의 마음에서, 두 번 째는 일종의 정신적 노후 대비용으로. 남은 내 생을 어떻게 살면 좋을지 인생 선배의 글로 배우고 싶어서. 가볍게 읽고 깊이 고민해서 좋았다.

조물주가 유 작가에 음악적 재능을 주시지는 않았지만 말과 글에 대해서는 넘치는 재능을 주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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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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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일반적으로 나이들면서 덜 진보적이고 보수적으로 변해가기 마련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나이 들었다고 해서 젊은 날 그렇게 투쟁하며 씨름하던 상대를 편들어서야 되겠는가. 이런 변절은 부끄러운 짓이다. 그러니 내가 나이 들면 여전히 아픔을 가지고 있는 세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소망을 존중하며 투표하리라 유 작가처럼 다짐해 본다.

"나도 더 나이를 먹으면 정치와 역사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지 모른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딸 아들과 손녀 손자들이 좋아하는 정당과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다. 언제나 정치적으로 청년들의 편에 설 것이다. 그것이 유권자로서 품격 있게 나이를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대들로 오늘의 아픔을 잊지 말고 50대가 되면 자식들의 소망을 존중하면서 투표하겠다고 결심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오늘 그대들이 겪는 아픔을 딸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아포리아, 2013, 232쪽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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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9 0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합리적 선택을 위해서라면 생각의 변화는 불가피합니다. 그런데 변화를 ‘변절‘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주변 사람들의 시선 탓에 변화를 두려워하고, 시도조차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knulp 2017-05-06 19:53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이네요. 자연스런 변화를 변절로 이해해서는 안되겠죠. 그런데 저는 구분이 잘 안되요.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