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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하지 않은 손님, 전염병의 진화 - 의학 이야기 지식전람회 19
최석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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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총,균,쇠>를 이은 2탄이었다. 이 책으로 인해 병원균 혹은 전염병에 대한 관심이 많던 차에 서점에서 우연히 눈에 띄어 충동 구매했다. 충동 구매한 책들은 대체로 실패작이었는데 이번에는 나름 전문적 소양을 기를 수 있어 의미 있는 독서 활동이 되었다. 너무 깊이 있는 부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설명에 좌절하기는 했지만 저자가 무엇을 전달하려 했는지 느낄 수 있어 만족했다.

 

  전염병은 대체로 인류의 출현, 더 구체적으로 말해 인간이 정주 생활을 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인간이 정착하면서 동시에 동물을 가축화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동물(특히 소나 돼지)의 병원균들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간에게 옮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아는 많은 전염병들이 나타나게 된다. 천연두, 홍역, 콜레라 등. 이들은 원래 동물의 질병이었으나 인간에게 전염된 이후로는 그 동물들은 이 병에 걸리지 않게 되었다.

 

  문제는 인간이 도시를 만들어 대규모 집단생활을 하면서부터다. 이로인해 병원균들의 서식환경은 매우 좋아지게 된다. 게다가 농경생활과 가축화까지 이어지면서 전염병은 더욱 심화된다. 콜레라, 티푸스, 천연두, 페스트 등이 갑자기 등장하기도 했고, 말라리아처럼 천천히 나타나 오랜 기간 사회를 위협에 빠트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 전염병들은 역사에 등장하여 큰 영향을 끼쳤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그 길을 인도했다. 로마의 멸망,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 실패, 서양 중세의 붕괴 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인류의 발전은 전염병들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즉 교통의 발달은 전염병의 전파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지난 2000년대 초 사스의 발병과 그 전파에서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중국 남부에서 출발한 사스는 홍콩을 경유해 전 세계에 퍼졌고 수 백 명의 피해자를 남겼다. 아시아 교통의 허브였던 홍콩이 전염병의 전파에 공헌을 했다.

 

  또한 인간의 탐욕도 새로운 전염병의 확대에 기여했다. 무분별한 산림 벌채, 식탐, 실종된 기업 윤리 등으로 동물들의 서식 환경이 줄어들고 인간들에게 의해 남획되면서 그들의 질병이 인간에게 전해진 것이다. 즉 사스, 광우병, 조류독감, 에이즈 등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이 질병들은 동물들이 인간에게 전해준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이 질병들을 초대한 것이다. 소를 빨리 키우기 위해, 사향 고양이를 먹기 위해, 가금류들을 집단 사육하면서, 유인원들을 함부로 대하면서...

 

  전염병들은 위에서 밝혔던이 인류와 출현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따라서 쉽게 그들을 물리치거나 박멸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과 우리는 함께 가야 할 동반자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과욕을 부려서는 안된다. 20세기에 초래된 질병은 결국 인간의 욕심이 부른 것이기에 말이다.

 

  책을 읽자니 주위 환경에 부쩍 신경이 쓰인다. 중국이나 아프리카 여행도 부담스럽다. ㅎㅎ 그런데 갈 수는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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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반양장)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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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구매한지 2년이 넘어서야 읽게 된 이 책은 쉽게 손이 가질 않았다.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다 다루는 내용과 범위가 일반 학술 서적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어서 책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웠다. 그리하여 오랜 시간 집에서 장식용으로만 쓰였다. 물론 중간중간 시도는 했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내려놓고야 말았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은 것만으로도 뿌듯해진다. ㅍㅎㅎ

 

<,,>는 거시적 입장에서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관조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저자가 딱 세 가지 주제, 즉 총, , 쇠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들을 중심으로 현재의 인류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각종 학문적 근거를 바탕으로 추론해내고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재레드의 추론 능력은 탁월함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언어학, 고고학, 역사학, 인류학, 생리학 등 그가 넘나드는 영역은 개인이 혼자하기에는 벅찬 것들이지만, 그는 마치 지구를 자기네 집 앞마당 다루듯 가볍게 한다. 개별 학문 영역에 매몰되어 타학문을 경원시하는 한국의 학문 풍토에서는 나오기 힘든 인물이다.

 

재레드는 이론적 측면에서는 흔히 말하는 환경결정론적 판단을 내린다. 그렇다고 그의 업적 전부를 환경결정론이라고 하기에는 섣부른 느낌이 있지만, 아무튼 그는 환경이 인류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주장한다. 인류는 각자가 처한 환경에 적응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타 지역과는 다른 생활 습관과 사고를 가지게 되었고 이것이 유전에도 그 흔적을 남겼다. 이런 결과로 구세계(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와 신세계(아메리카, 사하라 이남, 오세아니아)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여기에 총과 균과 쇠가 결정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그의 주장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정말이지 한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근거와 이론들이 나오니 그의 재주는 당해낼 자가 없어 보인다. 어쩌면 반론을 펼칠 수 없는 독자의 한계에서 나오는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재래드는 지구가 동서축(유라시아)와 남북축(아메리카, 사라하 이남)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중 동서축에 있는 지역이 발전했으며 남북축은 발전에 장애가 많았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위도와 환경에 있던 국가와 민족들은 서로 경쟁하고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부단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남북축에 있던 국가와 민족은 그러지 못했다. 즉 남북축에 있는 지역은 위도와 환경이 서로 달라 문화의 전파에 어려움이 많았다. 아메리카를 예로 들자면 파나마 지역의 좁은 협곡, 멕시코의 사막 등에 가로막혀 잉카, 아즈텍, 마야 등의 문명은 서로 교류하지 않았다. 게다가 대형 동물마저 없어서 문물의 교류에는 장애가 많았다. 오죽했으면 말을 탄 백인(스페인의 침략자)을 신이라고 착각했겠는가. 이런 환경에서 신세계는 구세계와 접촉하면서 그들이 가지고 온 병균들에 의해 완전히 몰락하고 만다. 물론 여기에 총과 쇠의 역할도 있었지만. 신세계의 환경이 구세계와 같은 병원균들을 만들지 못한 탓이다. 문자와 철의 사용도 늦었고.

사하라 남부와 오세아니아 지역의 문화도 그들만의 독특한 환경에서 나왔다. 대형 동물이 없고, 갖혀 살아온 이 지역민들은 서구의 침략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많다. 이것은 서구 근대인들이 말하는 인종적 편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한 결과라고 재레드는 주장한다. 나는 그의 주장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이미 흘러간 주장인 듯 하지만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인종주의를 그를 단호히 거부하는 것이다.

 

독자로서 나는 고대한다. 한국에서도 재레드 다이아몬드와 같은 학자이자 저술가가 나오기를. 수많은 이론과 지식을 전해주지만 그의 책은 전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소설만큼이 술술 익힌다. 이 책은 호기심만 있으면 그 두께에 상관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왜 많은 곳에 이 책을 권장도서로 추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읽지 않은 이라면 도전해보시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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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장화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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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읽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다. 나는 그녀의 담백한 글쓰기를 좋아했다. 비록 그녀가 그린 일본의 일상 풍경이 우리와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람살이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그럭저럭 읽을만한 주제들을 잘 선정해 책을 쓴 것 같다. 그녀의 소설에 평범한 주인공들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어쩌면 그래서 내게 더 잘 읽혔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10년차 부부의 일상을 그린다. 그것도 아이가 없는 부부다. 언뜻 보기에도 아이 없는 10년의 부부 생활을 무료하고 심지어 지친듯한 기색까지 보인다. 시부모를 비롯해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한 여주인공 히와코. 무심하고 주위와 단절된 듯한 그녀의 남편 쇼조. 이들 부부는 언뜬 행복한 가족으로 보이지만(그렇다고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삶에 조금은 지친 히와코는 생각한다. "소죠가 곁에 없을 때 더 그립다"고. 이 말은 결국 곁에 있으면 그다지 그립지 않다는 뜻이 된다.

 

 아이 없는 결혼 10년 차의 모습은 무료하고 답답하기 조차하다. 책 내용도 그렇지만 독자로서도 어느 정도 상상이 되는 부분이었다. 이 책은 부부의 생활을 그린 것이지 불륜을 묘사한 것이 아니어서 에로스적 사랑이나 격정적 멜로같은 내용은 없다. 10년차 부부의 일상과 정신을 그리고 있어서인지 에쿠니 특유의 담백하고 깔끔한 글쓰기는 나타나지만 내용상으로는 그저 덤덤히 읽히는 수준이 되고 말았다. <냉정과 열정사이>, <도쿄타워>, <웨하스 의자> 등을 상상하면 낙담할 수도 있겠다.

 

 부부의 생활은 많은 부분에서 겉돈다. 히와코는 아내로서 충실하지만 쇼조는 무심한 성격 그대로 일관한다. 이 둘은 물과 기름처럼 잘 섞이진 않지만 서로에 대한 작은 관심이라는 끈은 놓지 않고 산다. 그래서일까? 히와코는 헤어지는 상상만하지 실천에 옮길 생각은 없다. 오히려 쇼조의 무심한 성격에 긍정적인 점을 찾고 늘 웃어준다. 쇼조 역시 그녀의 생활에 우호적이고 늘 배려한다. 이는 아이가 있는 부부일지라고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보다 못한 부부도 많으니 말이다.

 

  이 소설이 내게 무어라 말하는 바는 적었다. 내용상으로는 그간 읽었던 에쿠니의 소설 중 제일 밋밋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주제가 주제였던만큼 '부부란 무엇인가?'하는 자문을 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다. 서로 살을 맞대며 사는, 두 아이를 기르며 사는, 정신적.종교적으로 의지하며 사는, 첫사랑은 식었어도 서로의 존재 자체에 만족하며 사는 우리 부부는 잘 살고 있는지 되묻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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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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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6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 정독을 하며 읽자니 다루고픈 주제가 너무 많다. 저자 정민 교수는 정약용과 황상의 만남을 대주제로 하고 그 속에 두 인물을 비롯해 주변인들의 다양한 발걸음을 추적하였는데, 그들을 다루는 소재가 편지.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가 소통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실에서 구시대의 색채가 물씬 풍기는 소통의 수단이 나는 왜 그리 아름다워 보이는 걸까? <미쳐야 미친다>이래 정민 교수와 주인공들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상태에서 출발한 이 책. 감동의 물결 속에 나를 던져 본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의 삶. 그렇기에 그 속에는 채우고 가꿔나가야 할 내용들이 많다. 지식은 자신의 노력으로 필요한 만큼 채울 수 있지만, 타인과의 만남은 순간적 재치와 무조건적인 노력만으로 채우기 힘들다. 좋은 만남을 위해 나를 가꾸고 준비해야 함은 물론 상대의 장점을 배우기 위한 노력도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세상에는 많은 만남들이 있지만 그 속내를 자세히 살펴보면 만남이라기보다 마주침이 더 많은 것이다. 곁눈질하거나 흉금을 털어 놓지 않는 관계에서 좋은 만남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만남에는 이처럼 마음의 교류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여기 다산 정약용과 치원 황상의 만남을 살펴보자. 저자는 이들의 만남을 맛남 만남이라 평했다.

 

정약용은 신유박해(1801)로 인해 형들과 함께 유배의 길을 떠난다. 그가 당도한 곳은 땅 끝에 위치한 강진. 멀리 한성에서 이곳으로 누군가 유배를 온다고 하니 사람들이 다 피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마도 당시 강진 사람들은 무슨 괴물이라도 오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정약용은 이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학문에 전념하고 자신에게 집중한다. 물론 마음 한켠에는 두고 온 가족에 대한 미안함 가득했다(이는 그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잘 드러난다). 오랫동안 정약용을 지켜보던 아전들이 서서히 경계의 눈초리를 풀고 제 자식들을 가르쳐 주십사하고 나타났다. 강진이라는 궁벽한 시골 마을에 제대로 학문적 기초를 닦은 이가 얼마나 되었겠는가. 큰 기대를 않던 정약용에게 한 더벅머리 소년이 묻는다.

 

선생님! 제게 세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꼭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합니다. 저 같은 아이도 정말 공부할 수 있나요?”

그렇구나. 내 이야기를 좀 들어보렴. 배우는 사람은 보통 세 가지 큰 문제가 있다. 너는 그 세 가지 중 하나도 없구나.”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민첩하게 금세 외우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을 가르치면 한 번만 읽고 바로 외우지. 정작 문제는 제 머리를 믿고 대충 소홀히 넘어가는 데 있다.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하지. 둘째, 예리하게 글을 잘 짓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질문의 의도와 문제의 핵심을 금새 파악해낸다. 바로 알아듣고 글을 빨리 짓는 것은 좋은데, 다만 재주를 못 이겨 들떠 날리는 게 문제다. 자꾸 튀려고만 하고, 진중하고 듬직한 맛이 없다. 셋째, 깨달음이 재빠른 것이다. 대번에 깨닫지만 투철하지 않고 대충 하고 마니까 오래가지 못한다.

내 생각을 말해줄까? 공부는 꼭 너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 둔하다고 했지? 송곳은 구멍을 쉬 뚫어도 곧 다시 막히고 만다. 둔탁한 끝으로는 구멍을 뚫기가 쉽지 않지만, 계속 들이파면 구멍이 뚫리게 되지. 뚫기가 어려워 그렇지 한번 구멍이 뻥 뚫리면 절대로 막히는 법이 없다. 앞뒤가 꼭 막혔다고? 융통성이 없다고 했지? 여름 장마철의 봇물을 보렴. 막힌 물은 답답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를 빙빙 돈다. 그러다가 농부가 삽을 들어 막힌 봇물을 터뜨리면 그 성대한 흐름을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단다. 얼마나 통쾌하냐? 어근버근 답답하다고 했지? 처음에는 누구나 공부가 익지 않아 힘들고 버벅거리고, 들쭉날쭉하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꾸준히 연마하면 나중에는 튀어나와 울퉁불퉁하던 것이 반질반질 반반해졋 마침내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구멍을 어떻게 뚫어야 할까? 부지런히 하면 된다. 막힌 것을 틔우는 것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연마하는 것은 어찌해야 하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어찌해야 부지런히 할 수 있겠니?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으면 된다. 그렇게 할 수 있겠지? 어기지 않고 할 수 있겠지?” (본문 34~36쪽에서)

 

제법 긴 글을 인용해보았다. 질문을 한 소년이 바로 당시 15세의 황상이다. 그 소년에게 정약용은 삼근계(三勤戒), 즉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히 공부할 것은 당부한다. 황상은 이때부터 삶이 바뀌게 된다. 시골 아전의 아들이었던 그는 정약용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가업을 이어받아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 그는 스승의 지도아래 배우고 익힌 것을 무한히 반복하는 삶을 살아간다. 정약용 이런 제자를 가르치며 유배지에서의 곤난함을 극복해간다. 이후 두 사람은 마치 바늘과 실 같은 인연을 이어가며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로서 살아간다. 당시 강진에는 정약용 문하에 여러 제자들이 있었지만 다산의 해배(解配) 후까지 그 연을 이어가는 사람은 황상 뿐이었다. 대체 그는 왜 그랬을까?

 

황상은 스승 정약용을 만남으로써 자신 안에 있던 능력의 싹 같은 것을 발견한다. 특히 그는 시 분야에 탁월함을 보이게 된다. 스승의 지독한(정약용은 상당히 깐깐하고 어려웠던 스승이었던 듯하다) 조련에도 게을리 행치 않고 수 십 년간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또한 스승이 꿈꾸던 유학자로서의 이상적 삶을 그대로 실천하며 산속(일속산방)에서 살아간다. 이런 그에게 다산은 오래 전부터 과거 응시를 권하지만 듣지 않는다. 그에게는 그런 꿈이 없었기 때문이다. 외진 곳에서 농사지으며 책 읽고 시를 짓는 삶에 그는 만족해한다. 이런 젲의 삶에 스승도 결국 만족해 한다. 오히려 다산이 과거를 치지 않았으면 하는 제자들은 결국 다산을 배신해가면서까지 응시하지만 줄줄이 낙방의 고배를 마신다.

 

황상에게 놀라운 점은 나이가 들어도 스승이 그에게 남긴 삼근계의 명령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려운 가정 사정에도 서책을 놓지 않고 시를 지으며 스승의 분부를 십계명처럼 지킨다. 이런 그의 정성은 황상의 말년에 그를 꽃 피게 한다. 정약용의 아들들과의 교류, 김정희 형제들과의 교류 등을 통해 강진 촌구석의 황상은 중앙 문단의 명사로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정약용과의 만남과 황상의 지독한 노력(삼근계 실천)의 결과물이다. 여기에 대비해 보잘 것 없이 쇠락해진 스승을 배신하며 다른 이들에게 붙은 제자들과 그 말년의 몰락은 좋은 비교를 이룬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세 차례 눈시울을 붉혔다. 위의 삼근계를 받는 장면에서, 정약용 해배 후 10년이 흘러 스승과 제자의 만남에서, 정약용 사후 노구(老軀)를 이끌고 강진에서 마재(현 남양주 소재)까지 걸어가 정약용의 아들들과 재회하는 모습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드라마다. 특히 그토록 그리던 제자와의 재회는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죽음을 목전에 둔 노스승마저 일어나게 한다. 스승께 울며 절하고 그의 손을 잡는 제자, 그 제자를 위해 자신의 일부를 기꺼이 내주는 스승. 눈물겹게 아름다운 만남이다. 나를 알아주고 나를 위해 애써주는 사람을 위한 헌신적인 자세는 인간사 최고의 장면이 아닐까 싶다.

 

정약용과 황상의 만남을 둘의 관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당대 유명 인사들에게까지 연쇄 파급효과를 낳는다. 혜장 스님, 초의 선사, 정양전, 권돈인, 허련, 추사 형제들 등 당대의 쟁쟁한 인사들이 만나고 헤어진다. 이는 인위적인 만남이라기보다 다산과 황사의 만남에서 출발해 그 아름다운 향기가 다른 이에게 파급된 결과다. 향기란 바로 . 시를 통해 이야기 하고 시를 통해 삶을 즐기는 그들은 결국 시를 통해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간다. 그리하여 강진과 경기의 먼 거리를 오가며 정을 나누고 의리를 쌓게 된다. 여기에 편지의 역할 또한 빼놓을 수 없겠다. 지금은 거의 폐기물 단계에 있는 손편지는 쓰는 이의 절절한 마음과 정이 녹아 있으니 받는 이 역시 그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덧붙여 그들이 시를 통해 교유함으로써 마음은 더 넉넉해지게 된다.

 

~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만남인가. 스승은 제자를 사랑하고 제자는 평생 스승의 가르침을 놓지 않고 실천하며, 이 만남은 대를 이어 지속되니. 서로를 아끼지 못해 안달이 나는 모습은 주위가 초라한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사대부 양반들과 중인 아전의 신분을 초월한 교류 역시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강고한 신분제가 유지되던 당시에 를 통한 이 만남이 정말 r자신에게 매몰되어 주위를 돌아보지 못한지 오래다. 벗들이 떠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않은 게다. 새로운 만남도 많지만 계속 이어지지 않는 것은 나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다산과 황상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짧은 지면에 다산의 새로운 모습과 황상의 일생을 보여줄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이 독후감을 통해 스승의 제자의 훌륭한 만남이 이후 인생에 얼마나 큰 파급을 미치는 말하고 싶을 뿐이다. 아마도 교학상장(敎學相長)이 최고로 구현된 모습이 아닐까 싶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으며 나도 그처럼 가슴이 따뜻한 스승이 되어보자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정민 교수의 <삶을 바꾼 만남>을 읽고서는 그런 스승을 넘어 제자들과 인생의 교류를 해야 한다는 느낌이 든다. 다시 말하지만 나만 바라본 삶에 대한 본질적 전환이 요구되는 것이다.

 

두꺼운 책이지만 손에서 떼지 못하고 조금조금이라도 읽으며 일주일을 보냈다. 마음에 찡한 감동을 넘어 깊은 울림은 주는 이 책은 근래 읽은 책 가운데 최고가 아닐까 싶다. 사제의 정을 넘어 인간적 만남과 교류를 원하는 이들은 반드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봄에 감동을 느끼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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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식의 문화 읽기 두란노 목회와신학 총서 8
이문식 지음 / 두란노아카데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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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식은 광교산울교회의 담임목사다. 그의 설교를 여러번 듣기도 했지만 그와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다. 그저 제법 거리가 있는 목사와 성도의 사이랄까? 그렇기에 그의 책을 객관적으로 읽고 공부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를 달변가로 칭하면 실례가 될지 모르겠으나 그는 일반인의 수준을 뛰어넘는 언변과 지식의 소유자로 보인다. 그것도 한 교회의 목사지만 자신의 전공 분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한 관심(특히 통일 문제), 역사, 전통, 문화의 영역에도 광범위한 독서와 연구를 하는 목사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책장을 넘기면 우선 '영화 읽기'가 나온다. 아바다, 밀양, 벰파이어,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기독교식으로 읽고 이해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이런 영화를 사탄이라거나 반기독교 영화라고 매도하지 않는다. 그 속에 숨겨진 감독의 의도와 사회 의식을 읽고 이를 이떻게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여햐 할지 제안해준다. 특히 사랑과 치유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밀양'에 대한 평가는 압권이라 생각된다. 이는 당연히 일반인의 영화관과는 다르다.

 

  이문식 목사의 이 책에는 '성 문제'도 다룬다. 내 눈길을 끈 대목은 코엘류의 <11분>을 평가하는 대목이다. 이 소설 속에서 고대 중동의 이단적 속성을 찾아내 비판하는 대목은 그의 높은 안목을 알게끔 해준다. 심지어 대체 '이 사람은 어디까지 공부해서 알고 있는거야?'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여기에 성전환자들을 악마라고 비난만하지 말고 먼저 인권의 차원에서 그들에게 접근해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고까지 한다. 대표적 보수파라 할 수 있는 기독교계에서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여기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기독교식으로 이해하는 법과 21세기 사회에 교회의 역할 등에 대해 이 책은 상세히 설명해준다. 즉 이 책은 원래 일반 대중을 위해 쓴 책이 아니라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국 기독교가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긴밀하고 날카로운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일반 기독교인들이 읽어서 안될 책도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식 사회 이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기독교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나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문제점도 있다. 워낙 방대한 주제를 다루다보디 역사 고증에 어느 정도의 문제가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지중해 문명의 평민이 문자를 자유롭게 해독한 것이 기원후 1세기라고 하는데, 인류 역사에서 평민들이 문자를 해독하고 책을 자유로이 보게 된 것이 인쇄술 발달 이후라고 본다면 이는 정정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글쓰는 내가 기독교인이라 기독교의 입장에서 사회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늘 갈급했다. 하지만 이땅의 많은 목사들은 지나치게 협소한 주장만을 내세우기에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런 점에서 이문식 목사의 <이문식의 문화읽기>라는 책은 내게 적잖은 방향점과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좋은 책을 읽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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