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 <말의 품격>에서 인용했다. 오늘 무릎을 친 대목이다. 내가 말이 너무 많았다. 반성한다.

‘설교가 20분을 넘으면 죄인도 구원받기를 포기한다.‘ -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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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3-24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가끔은 20분이 넘어도 구원 받고 싶은 설교가
있기도 해요.^^

knulp 2018-03-24 20:4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가끔이요^^
 
어느 무교회주의자의 구약성서 읽기
박상익 지음 / 부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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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느 무교회주의자의 구약성서 읽기>는 서양사학자에 의한 구양성서 읽기다. 저자는 중동 지역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성경 이해에 깊은 식견을 가진 듯하다. 어쩌면 그 자신이 기독교 신자일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구약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깊고 넓어 보인다.

이 책은 모든 구약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출애굽기부터 마지막 말라기까지 다루면서도 예언자(혹은 선지자)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역사적 시각에서 성경을 탐구한다. 특히 구약의 후반부에 집중하고 있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멸망 이후 무너진 성전을 새로이 건설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다룬다. 그 사이 나타난 여러 예언자들의 예언과 당대 유대인들의 생활들이 잘 묘사되고 있다. 이 책은 성경을 더욱 풍성히 이해하게 해준다.

성경은 종교 서적이면서 동시에 역사 서적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조금만 다르게 보면 같은 사건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점에 주목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적 관점에서 해석하더라도 성경은 그 종교성을 더 풍성히 할 수 있음을 이 책은 제시한다. 그래서 성경은 역사적으로도 읽혀야 한다.

좋은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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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전쟁과 일본
박맹수 외 지음, 한혜인 옮김 / 모시는사람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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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894년은 한국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해이다. 먼저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 이후 한국사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둘째, 청일전쟁이 발발하여 동아시아의 주도권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갑오개혁이 시행되어 신분제 철폐적 근대적 개혁이 이루어졌다. 이런 의미에서 1894년은 의미가 깊다.

위 세 가지 이유의 중심에는 물론 동학농민운동이 자리한다. 학창 시절에 배운 주제를 이곳에서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는 대체로 한국측 자료와 증언들이다. 이에 비해 <동학농민전쟁과 일본>은 풍성한(?) 일본측 자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자료들이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일본군 참전 병사나 지역 신문 등의 자료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직시하면서 한 개인으로의 심경을 드러낸다. 반면 일본 군부가 작성한 자료들은 왜곡(내지 조작)을 통해 자신을 위대한(?) 입장을 대변한다.

이 책을 읽노라면 지나간 과거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일본군의 무고한 농민 학살(30만명 추정), 일본의 부인, 당시 정부와 집권자들의 무능력, 개인의 무기력함 등이 동시에 밀려와 후대의 독자로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런 개인적 감정을 느끼고자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실을 마주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때린 자는 잊으려하고 맞은 자는 분노에 치를 떤다. 비록 내가 100년도 더 지난 후대인일지라도.

책의 출발은 1995년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동학농민군 유골이 발견되면서부터다. 이 유골이 대학에 오게 된 경위를 조사하면서 잊혀진 과거의 사실이 드러나고, 이것을 다시 한국과 일본이 공유하며 출판으로까지 이어졌다. 고마운 것은 이 사실은 조사하고 인정한 일본의 학자들이다. 진실을 마주할 줄 아는 그분들의 용기에 그저 고개숙여질 뿐이다. 그렇기에 일본 자료를 중심으로 쓰여졌다해도 그렇게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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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속살 - 동시대인 총서 9
임지현 지음 / 삼인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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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내가 지금까지 읽은 역사책의 저자 가운데 가장 독특한 인물 중에 한 명이다. 최근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통해서도 저자의 이력을 보았지만 그는 평범치 않는 길을 걸어 온 듯하다. 본인 스스로. 하지만 그것이 타 역사가들과의 본질적인 차이를 만들어줬다. 이 책은 그런 그의 활동의 부산물이다.

<이념의 속살>은 학술논문, 잡지나 신문의 기고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제목이 의미하듯이 이념의 속살들을 다룬다. 한국적 상황을 중심에 놓고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의 파시즘, 민족주의, 마르크시즘(혹은 사회주의), 그리고 각종 담론들까지 다룬다. 그래서 이 책은 쉽지 않다. 나의 기본 소양이 부족한 탓이 가장 크지만 각종 전문용어와 서술 방식이 그렇게 평이하지 않았다. 작가의 높은 수준은 명확히 알았으나 이해를 위해 반복해서 읽어야만 했던 시간이 제법 길었다. 그렇게 어렵게 읽어야만 했다.

1. 파시즘
책의 첫주제는 파시즘, 명확히 말해 우리의 일상 속에 녹아 있는 파시즘에 대한 분석이다. 그가 일상적 파시즘에서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권력의 지배 코드와 그것에 맞추에 만들어진 가치와 태도가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의 사회화 과정을 통해 내면화된다는 점˝이다. 가령 그는 한국적 파시즘의 사례라 할 수 있는 ‘유신 체제‘를 비판한다. 박정희의 지배 담론인 조국 근대화론에 보낸 지식층의 광범위한 지지는 물론이고 산업 전사, 근대화의 기수라고 호명되어 국가 권력에 대대적으로 동원된 민중들이 보인 자발성을 비판한다. 한국 진보 진영의 보수성도 예외일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책이 나와 있다.

2. 민족주의
한반도에서 민족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숙제이다. 서구 근대 역사의 산물이랄 수 있는 민족(민족주의)는 19세기 말 이땅에 들어와 저항적, 폭력적 성향을 띠며 뿌리 내렸다. 문제는 민족을 그 자체로서 이미 존재하는 실체적 본질이며, 영속하여 흐르는 생명으로 본다는 점이다. 이것은 개인의 존재가 민족의 특성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민족의 특성이 개인의 존재를 규정하도록 한다. 해방 후 한국 사회는 민족주의가 국가 권력과 결탁하여 개인을 억압하는 도구로서 사용되었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으며, 세계 주변부 약소국들 역시 이와 같은 길을 걸어왔음을 저자는 증명한다. 이런 그의 주장을 집약하여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이 출간되었다.

3. 마르크스주의
러시아에서 현실화되어 주변부에서 수용된 마르크시즘은 인간 해방의 계몽적 프로젝트가 이니었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개발 독재와 대중 동원으로 타락한 마르크스주의였다. 그러나 이것은 주변부 사회주의 국가에 전파되어 민족 해방과 근대화의 전망을 동시에 제시함으로써 ‘비서구적 서구화‘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딜레마를 간단히 해결해 주었다. 주변부 민족주의는 이 과정에서 사회 해방을 민족 해방으로 대체하였으며, 마르크스주의는 인간 해방으로서의 근대성이라는 보편적 자산을 잃게 되었다. 이때 주변부 마르크스주의는 민족의 영속성을 강조하고 민족적 특수성을 절대화하여 자율적 개인을 민족이라는 유기체적 전체에 종속시켰다. 결국 마르크스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함으로써 민족 사회주의 건설은 전체적 국가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4. 기타 담론들
21세기 한국의 역사는 인문학의 위기, 대학의 위기와 맞물려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다르게 보면 역사가 더 이상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권력에 의한 역사학 퇴출은 근대 민족 국가를 정당화는 표상으로서의 역사학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신호이다.‘ 이를 위해 역사학의 대중화 시도는 필요하다. 그것은 역사학을 에워싸고 있는 국가 권력을 그물망을 벗어나 시민 사회에서 역사학의 입지를 구척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하며 결국 저자는 지금은 역사학의 위기가 아니라 전환기일 따름이라고 주장한다.

20세기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과 민족주의 역사학은 각각 계급 해방과 민족 해방을 담당하는 해방의 역사학이었다. 그러나 소수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들은 억압의 내포한 해방의 역사학이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프롤레타리아 유일주의는 역사의 지배/피지배 관계가 갖는 다양한 국면들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 그것은 보편의 이름으로 여성, 농민, 소수민족 등을 타자화시키고 노동 운동의 이해에 종속시켰다. 대신 중심부의 백인 남성 노동자들을 해방시켰다. 민족주의 역사학 또한 민족 해방의 이름 아래 계급, 젠더, 신분 등의 다양한 정체성을 민족적 정체성에 종속시켰다. 특히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억압이 민족 전통의 이름으로 은폐되고, 기층 민중을 지배하려는 민족주의 엘리트들의 헤게모니가 민족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마르크스주의 역사학과 민족주의 역사학은 닮아 있었다.

저자 임지현은 한국사학자가 아니라 서양사학자다. 그것도 마르크시즘을 연구한. 그런 그는 활발히 시민 사회와 한국사학계에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것도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점을 파고들면서. 이런 그의 노력이 계속 시도되길 바란다. 사회의 전복이 아니라 부조리의 전복을 위해..

이 책은 위에 밝힌 바대로 논문과 기고문들을 주제별로 엮은 것이다. 그래서 4가지의 주제로 나뉘어져 있다. 문제는 각 장의 글들이 체계적 계획을 가지고 일목요연하게 쓰여진 것이 아니라 저자가 상황에 따라 쓴 글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중복되는 부분이 많고 분량도 제각각이다. 또한 이 책은 내용이 제법 어렵다. 사상사나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밑줄을 치며 공부하는 심정으로 읽은 책이다. 차마 일독을 권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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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론 살림지식총서 384
유해무 지음 / 살림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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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의 깊이를 더하고자 펼친 책이지만 나의 무지함을 넘어 책 자체에 대하 실망감마저 느낀 책이다. 문고본이자 일반 출판사에서 낸 책이라면 분명 독서 대중을 목표로 낸 책일 터지만 실제 내용은 일정 수준 이상의 신학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그리하여 이제는 단일한 하나님만이 아니라 로고스론을 이용하여 하나님 안에 있는 다원성을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런 식의 다원론은 다시 단원성을 강조하는 단원론의 반격을 촉발했다. 단원론은 성부의 단원성, 곧 성부를 신성의 단일한 원인으로 고수하기 위하여 성자의 신성을 성부의 신성에서 파생되었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성부의 외현 방식이라고 보았다. 전자는 2세기에 강했다. 즉, 인간 예수의 세례나 부활 시에는 신적 능력(동력)이 역사하여 그를 성자로 입양시켰다는 입장인데 이는 예수를 반신반인‘으로 만들었다(동력적 단원론). 후자는 서기 200년경부터 유행했으며, 대표적 주장자인 사벨리우스는 ‘성자-성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양태론적 단원론).˝

삼위일체론 자체가 성경에 명확히 기록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분석이 필요하다. 또한 삼위일체론을 주장한 이들과 여기에 반대한 이단들의 논쟁을 수용할 신학적 수준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내게는 이런 기본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어 소화해 내기가 힘든 것이다.

여기에 저자 역시 쉬운 문장으로 풀어내지 못했다. 그것은 위의 인용문을 읽으면 알 것이다. 전문가들을 상대로 한 논문에 사용된 개념을 일반 독자들을 위한 서적에도 그대로 차용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국 책읽기는 뛰어넘기를 넘어 중단에 이르렀다. 물론 포기가 아니라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겠지만. 내공을 더 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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