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반대로만 살면 적어도 밉게 늙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제 나도 경제적인 것 외에 정신적인 노년도 준비해야 한다. 그럴 나이가 되었다. 몽니부리는 못난 어른이 되어서는 안된다.
밉게 늙는 사람들의 특징1. 평소 잘난 체, 있는 체, 아는 체를 하면서 거드름 부리기를 잘한다.2. 없는 체 한다.3. 우는 소리, 넋두리를 한다.4. 마음이 옹졸하여 너그럽지 못하고 쉽게 화를 낸다.5. 다른 사람은 안중에 없는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한다.6.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다.홍사중, <늙는다는 것 죽는다는 것>, 로그인, 2008;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아포리아, 2014, 224쪽에서 재인용.
아랫글을 읽다 무릎을 쳤다. ‘진실로 적을 막아 낼 수 있는 방법은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며, 적이 될 수 있는 자들과도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를 읽고. 나는 이 문장에 공감한다. 이것이 ‘친북좌파‘라는 오명을 쓰더라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믿는다. 군비경쟁과 적대정책은 국가 경제를 망치고 국민의 정신적 스트레스만 가중시킨다. 그것은 해방 후 한국 정부가 추진해온 대북정책들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나 역시도 북한 정권은 상종하기 싫은 말종의 집단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을 적대시하는 정책만으로는 한반도 평화를 영구화하기 힘들다. 지금의 우리는 공존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은 쉽지 않은 길이겠으나 대화를 모색해야 한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통해 늘 배운다. 비교해서는 안되는 대상들이지만. 다음 대통령으로는 그런 분들이 되었으면 한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불안하다. 책을 읽자니 별 생각이 다 든다. 또 누군가 이 글에 태클을 걸 사람이 있으려나? ㅎㅎ
‘아기 돼지 삼형제‘에 대한 어떤 견해어떤 견고함도 적을 막아 내기에는 충분치 않다. 이번에는 셋째 돼지의 집이 늑대를 막아냈지만, 다음에는 더 강한 적이 들이닥친다면? 진실로 적을 막아 낼 수 있는 방법은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며, 적이 될 수 있는 자들과도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지구별의 다양한 사람 살이를 보여 주는 ‘공정한 세계 명작‘은 우리 아이들이 공전의 길을 찾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박현희,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줄까>, 뜨인돌, 2011, 60쪽.
한국사를 논할 때 한반도 최초의 국가이자 후대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나라로 고조선을 꼽는다. 틀린 주장은 아니다. 신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도 고조선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민족 형성의 원류이기 때문이다.반면 실제 역사 현장에서는 고조선보다 오히려 부여가 강한 파급력을 보였다. 고구려는 건국신화는 물론 정치의 많은 부분을 부여에서 배웠다. 고구려에서 파생된 백제 역시도 자신의 뿌리를 부여에 두고 있다. 오죽했으면 사비 천도 후 백제는 국명을 남부라고 했을까. 또한 신라와 가야 역시도 부여 주민과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이러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부여사는 한국대사의 곁가지 정도로 취급되어 왔다. 700년이 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서는 한 페이지도 취급되지 않는다. 그만큼 연구가 적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저자는 자신의 학위 논문 주제가 원래 부여사였지만 지도교수의 권유로 고조선사로 바꾸었다고 고백했을까. 예나 지금이나 부여사는 관심 밖에 있는 주제인 셈이다.그런 부여가 조금이나마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중국 덕분 아닐까 싶다. 그들이 21세기 초반 동북공정을 진행하며 열심히 역사왜곡을 해준 결과 그에 대한 우리 정부의 역사 반격으로 부여사를 재탐색하게 된 것이다. 물론 고구려사나 고조선사에 비하면 부족하지만.이 책은 대중서인 듯하지만 차라리 교과서적인 학술서에 가까워 보인다. 학술적인 요소, 즉 어려운 전문 용어나 딱딱한 논문적 요소를 가급적 배제하려 했지만 일반인들이 내용을 소화하기엔 어려워 보인다. 일단 저자의 글쓰기가 조금은 딱딱하다. 그것은 전작인 <단군, 만들어진 신화>와 비슷하다. 그래서 쉽게 풀어 쓰려고 노력한 학술서같다고 느껴진다. 재미적 측면에서는 좀 떨어진다는 얘기다. 아쉬운 대목이다. 다만 부여의 건국 신화가 고구려의 그것과 거의 흡사하다는 점에 놀랐다. 정확히 말해 고구려가 베꼈다해야 옳을 듯하다. 주인공의 이름과 내용까지. 그렇게 나는 부여를 몰랐다.
단군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고대 우리 민족의 화려한 영화를 대변하는 상징일까? 이 책은 단연코 아니라 말한다. 단군신화는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건국신화며, 그는 개인으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지배자를 뜻하는 용어일 뿐이라고 저자는 강하게 말한다. 결국 단군은 1000년을 넘게 산 비과학적 존재가 아니라 여러 소국들의 지배자들을 일컫는 용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를 낮추어보는 식민사관이 아니라 유물이 증명하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다. 왜 이것이 부끄러운 역사가 되는가.한편 이 책을 읽노라면 저자인 송호정 교수가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고 발품을 팔았는지 짐작이 간다. 그가 인용한 글과 사진 등에서 책상에 앉아 남의 글을 훔치는 그런 글쓰기를 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조선과 단군에 대한 사회의 비상식적, 비역사적 대응에 그가 역사학자로서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음에 공감이 간다. 작금의 이덕일을 비롯한 사이비 역사학자들의 파상적 공세에 전문 역사학자들의 대응이 절실히 요구되는 현실이다. 우리 고대사에 대해 학술서적이 아닌 대중서로써 차분히 익히고자 하는 이들에게 권한다. 역사에 대한 상식과 공부에 충분히 도움이 되는 책이다.
누군가에게 공감을 얻는 좋은 글을 쓰고픈 욕망이 있는 내게 큰 도움이 되는 글이다.인류가 아닌 한 개인에 대한 글쓰기.이 책 은근히 잘 읽히고 내용 속으로 나를 끌어들인다.좋은 책이 틀림없다.
"영작문을 가르칠 때 나는 미국의 유명한 수필가인 E. B. 화이트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글을 잘 쓰는 비결에 대해 ‘인류나 인간(Man)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man)에 대해 쓰는 것‘이라고 했다. 즉 거창하고 추상적인 이론이나 일반론은 설득력이 없고, 각 개인이 삶에서 겪는 드라마나 애환에 대해 쓸 때에만 독자들의 동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샘터, 2009, 156쪽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