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꽃 1 - 2009년 제25회 펜문학상 수상작
유익서 지음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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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에서 노래를 뺀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삭막할까? 기쁠 때든 슬픈 때든 노랫가락에 녹아든 구성진 한 소절 흥얼거리면 즐거움도 슬픔도 있는 그대로 좋기만 하다. 그래서 노래는 길을 따라 흐르고 우리네 산천을 따라 모양새를 갖추어 피고 지기를 했는지 모른다. 핍박당하고 억눌린 민초들의 삶을 노래에 담고 희로애락과 오욕칠정을 오롯이 담았기에 울림이 공명통처럼 깊고 푸르다.




이 책 <소리꽃>은 우리네 삶에 스며든 진정한 소리를 글로 피어 냈다. 문자로 다듬어진 노래는 소리처럼 향이 솟아난다. 거칠고 투박한 한 많은 서민들의 애환과 풍광이 고스란히 파고들어 절로 감흥하고 애틋해 진다. 문자향처럼 알알이 번지는 심오한 음율은 독자들의 마음을 보듬는다. 장르도 소재도 근간에 보기 드문 전통적인 채색이 물씬 묻어올라 눈이 퍼뜩 뜨이게 하지만 무엇보다 저자가 엮어간 이 책의 전체적인 색깔은 결연한 느낌마저 강하게 든다.




책을 짓기 위해 10여년의 세월을 살을 대고 다듬고 고쳤기에 창작의 고통과 위대함은 말로 형용하기 힘들다 하겠다. 산업화와 근대화에 매몰된 우리네 소리를 찾고 자료를 조사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얼을 솎아 낸다는 것은 여간 해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전통의 파괴와 추락은 소리마저 변화시키고 고루함으로 돌려 세운 현실이 어제 오늘의 일이던가? 그래서 저자의 글과 소리는 어쭙잖은 국적불명의 노래에 열광하고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세태에 경종을 울릴 준엄한 소리처럼 들린다.




그런 맥락과 이유로 저자는 나를 통해 너를 내세운다. 너는 작중주인공 솔이로 분하기도 하며 목판을 읽어 내려가는 나의 의식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미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에서 맛을 보았던 2인칭시점은 흐름을 상당히 부드럽게 몰고 가는 역할을 한다. 독자의 시점이 자연스럽게 나로 변해 관찰하고 분석하는 위치에 서 이야기에 몰입해 나가는 상태를 편안하게 열어 주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목판에 펼쳐진 이야기의 정경이 35㎜ 실사 영상처럼 소리의 음을 타고 물결처럼 퍼져 나간다.




솔이는 여염집 처자로 노래의 천운을 타고 태어났다. 그녀가 받은 신기와 같은 기이한 운명은 불교적 색채와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녹색손님이 등장하고 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새의 현신인 가릉빈가와 가루다, 대나무 꽃의 분신 항아리가 출현하는 것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속세의 삶의 표출이며 험난한 미래를 암시하는 메타포로 작용한다. 이러한 기교적 장치와 신화적 요소만을 놓고 보더라도 상당히 공을 들인 작품임이 확고해 진다. 그렇지만 몽환적이고 심미적인 서두의 출발이 난해한 것은 사실이다. 작품을 풀어 가는 매개체로 항아리가 솟은 계기를 풀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구조이겠으나, 익히 듣지 못한 고어체와 잊혀진 말들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고 솔이의 세상을 향한 도전이 시작될 즈음부터 빠르게 펼쳐지는 이야기의 감칠맛은 시간의 의미를 무색하게 한다. 솔이를 돕고 세상에 불리지 않은 노래를 찾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상념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때로는 무채색으로 때로는 흙빛에 쌓인 잿빛으로 기쁨에 겨워 넘치는 옥빛으로 태양을 바꾸어 가며 물드는 우리네 삶의 대서사는 자연을 담은 질그릇처럼 투박스럽기도 하며 빛깔고운 색을 은은히 뿜어낸다.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 후기를 기반으로 한다. 붕당의 난립과 정쟁으로 얼룩진 시대적 암울함과 노론의 성리학이 지배적 이념으로 작용하던 시절이었다. 성리학은 명분과 대의를 존중하는 중화사상에 빠져 우리의 것을 천박하게 치부하고 엄격히 다루었다. 그래서 더욱 우리의 얼과 전통이 중화에 의해 짓밟히고 어스러졌던 때이기도 하다. 이처럼 소리에 담긴 서정성을 확보하고 시대적 필요를 드러낸 것은 저자의 의지의 반영이기도 하다.




우리 것에 담긴 전통성과 진정성, 현장성이 살아 숨 쉬는 소리로 체화될 때 제대로 된 소리로 탄생한다는 의미다. 더불어 저자는 우리네 정서 중 한(恨)에 대한 정서를 해피엔딩으로 갈무리 짖고자 하는 바람도 드러냈다. 이야기 중 최개동의 억울한 사연과 남사당패에서 줄을 타는 어름사니 도일에게서 전기수(책 읽어 주는 사람) 대우에게서 얻은 각별함과 고강의 절개와 그림을 향한 열정이 겹겹이 쌓여 이 책을 이루어 냈다.




그런 만큼 구성지게 걷어 올리며 터져 나오는 소리는 작위적이고 인위적 것과 거리가 멀다. 소리에 담긴 정서와 감정은 인간 본성의 그것과 같다. 솔이가 오랜 고초와 역경을 이겨내고 얻은 득음의 순간을 통해 걷어 올린 소리는 우리를 투영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사는 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 이토록 구구절절하게 와 닿을 수 있을지 자문하게 된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기에 우리 속에 담긴 그릇의 깊이와 결을 온전히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대로 담아내기란 불가능이다. 길속에 노래가 있고 우리 속에 노래가 있다는 것도 현실을 반영한다는 의미다. 노작가가 신명을 다해 바친 이 글에서 우리는 무엇을 담을 지는 본인의 몫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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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9-10-17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시대 전기수들은 걸어다니는 책이었지요. 책을 통째로 외워야 했으니 암기력도 뛰어나야했고 소설 같은 경우는 변사처럼 대사까지 리얼하게 재현했으니 그 재주가 얼마나 뛰어날까 추측이 안됩니다. 소설의 맛이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인데 2권은 아직 안읽으셨나요?

穀雨(곡우) 2009-10-19 08:56   좋아요 0 | URL
2권도 읽었어요. 각권으로 나뉜 리뷰를 나누어 적긴 그래서....^^
전 이 책 보고 몰랐던 걸 많이 알았어요. 전기수도 그렇고 어름사니도 그렇고
 
소울 아프리카 - 대자연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우정의 서사시
조세프 케셀 지음, 유정애 옮김 / 서교출판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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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대륙 아프리카. 그곳은 영혼이 숨 쉬는 곳으로 내겐 기억된다. 드넓은 초원을 무대삼아 대자연의 비밀이 간직한 태곳적 법칙을 오롯이 머금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신비의 땅이다. 이러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프리카를 무대로 그려지는 이야기에는 기묘한 흥분이 동참한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나약함이 액면가 그대로 까발려져서 인지 모르겠으나 분명 웅장하고 스펙터클한 세상이다.




이 책 <소울 아프리카>는 동물과 인간의 교감을 그린 이야기다. 읽어 내는 감성코드야 일파만파로 갈라지겠으나 사랑, 자연, 원형, 순리 정도가 아닐까. 인간이 자연의 법칙을 역행하고 통속적 과거와의 단절과 함께 촉발된 산업화의 명분과 진화의 일방적인 신뢰에 일종의 경고를 던진 셈이다. 인간은 편리함을 얻은 대신 자연을 잃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주어진 회귀본능을 인간은 스스로 불살라 버렸는지 모른다. 개발과 파괴의 의미는 결국은 같아지기 때문이다.




저자 조세프 케셀은 프랑스의 최고 문학상 ‘아카데미 프랑세스 상’을 수상한 작가란다. 작가의 경력이 화려해서 반드시 수려한 책을 뽑아내는 원천이 되지는 못하겠으나,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 드는 경외감이 든다. 작중 주인공 나를 통해 바라 본 세상은 미지의 세계다. 순수라는 단어를 시샘하듯 너무도 맑은 영혼을 가진 파트리샤의 이야기와 사자 킹의 사랑을 사실감 있게 처리한 것도 색다른 세계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책에는 아프리카의 생태계가 입체적으로 표현되며 전사의 이미지로 각인된 마사이 족의 태곳적 기억들이 활자로 명멸하듯 거나한 춤을 춘다. 마사이족 사람들이 자연을 섬기고 사물을 관조하는 특유의 관습이 이야기를 농익게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작가의 의도된 계산인지 모르겠다. 맹수와 인간의 대결은 남성다움이며 먹이사슬의 왕좌를 거머쥔다는 의미도 동시에 내포한다. 바로 생존을 의미한다.




마사이족에게는 진정한 사내가 되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간단한 창과 방패만을 이용해 금수의 왕 사자를 제압하는 것이 전통이자 표현이다. 이처럼 마사이족의 성인식에 깃든 암시는 파트리샤와 사자 킹의 관계를 비운으로 모는 짙은 복선을 예고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따라서 원시문화에 담긴 철학과 심미적 관습은 현재의 인간과 대비되기에 적합해 보인다. 문명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자연의 섭생의 진리쯤이라고 할까?




아울러 파트리샤를 순수에 근접한 때 묻지 않은 아이로 설정하였다는 것은 인간이 잃어버린 원형질의 갈망이다. 섬뜩하고 포악한 사자와의 교감을 통해 반려동물이 된다는 것은 세속의 눈으로 이해하기는 아이러니하다. 비록 양육을 통해 교감의 시간이 지속되어 애착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해도 본성을 초월하기에는 너무도 자연에 가깝다. 이렇게 맺어진 사랑의 끈으로 묶어진 파트리샤와 킹의 관계는 놀라움을 넘어선 자연과 인간의 줄기가 동일한 시선으로 흐를 수 있다는 작가의 바람의 의지이리라.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문명과 자연의 충돌은 극에 달한다. 불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극한순간은 인간의 존재의미를 반추하게 되고 잃어버린 자연의 한 조각을 떠올리게 되는 충만한 감상에 젖게 한다. 파괴와 보존, 구속과 자유의 감정에 담긴 시각은 인간의 시선이다. 순리대로 섭리대로 흘렀다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인간이 생산한 탐욕과 이기심으로 모든 것이 깨트려지고 균형을 잃게 된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만드는 작가의 철학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이야기의 방향은 제대로 흘러 곧은결을 만들어 낸다. 삶의 존재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결국은 조화로운 삶을 유지하는 관계에서 비롯됨을 우리는 안다. 사랑과 이해로 치유될 것도 헛된 욕망과 무자비함에 공존의 상생을 짓눌러 버렸다. 살아간다는 것은 또한 있는 그대로 존재함을 용인하고 그러하기에 내가 있음을 우리는 알면서 모른다. 이 책이 쓰인 지 30여년이 지났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고 지나도 인간의 마음에 따스하게 각인되는 휴먼스토리는 인간의 잣대로 재단한다는 것이 오히려 송구스러운 일이다. 간만에 만난 훈훈한 이야기의 감흥을 만끽해 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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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인간의 경제학 - 경제 행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 탐구
이준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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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이코노미쿠스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통제가 가능한 경제적 인간을 말한다. 전통 경제학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마땅히 예측 가능한 인간의 행위를 의미한다. 하지만 경제학 교과서에 수록된 대로 현실이 자로 재단하듯 맞추어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인간은 때로는 즉흥적이고 충동적이고 감성적인 다양한 인성을 다향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학이 짚어 내지 못하는 인간의 심리적인 요인들을 분석하고 경제적 변수를 가늠해 보고자 출현한 학문이 바로 행태경제학 또는 행동경제학이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이준구 교수는 경제학 제 분야의 권위 있는 석학이자 서울대학교 경제학 교수다. 또한 평소 경제학자로서의 날카로운 비평과 소신 있는 목소리로 올곧기로 유명한 사람으로 그의 저서 <쿠오바디스 한국경제>가 이를 잘 대변해 준다. 이처럼 경제학의 이념과 체계적인 시스템을 현실경제에 알맞게 적용하고자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는 보기 드문 이 시대가 요구하는 양심이다.




이런 그가 행태경제학에 눈을 돌린 이유는 다름 아닌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위에 있다. 기존 경제학의 경계가 잡아 내지 못하는 실제의 경제 환경을 사례를 들어 에세이를 풀어 가듯 흥미진진하게 엮었기에 전혀 경제학 같지 않은 경제학 책이다. 이미 행태경학분야는 역량 있는 학자를 상당수 배출할 만큼 주류적 이념에 근접하며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로버트 쉴러와 조지 애커로프는 그들의 공저 <야성적 충동>에서 인간의 경제적 행위를 지배하는 심리적 요인으로 자신감, 공정성, 부패와 악의, 화폐 착각, 이야기를 꼽는다. 경제학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낯선 풍경들로 정성적(定性的) 변수들이다. 인간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방증이며 무시하지 못할 중요한 함수들이다. 그래서 소위 행동경제학자들은 이점에 주목하고 사례를 수집하며 왜 인간이 계획된 범위 내에서 행동하지 않고 전혀 뜻밖의 행위나 양태를 보이는지에 렌즈를 맞추었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하기에 이번 이준구 교수의 이 책은 사뭇 반갑다. 국내저자로서는 드물게 행태경제학을 갈무리해서 출간하였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인식 있는 경제학자가 선두주자에 섰다는 것도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 책의 내용이야 이미 출간된 행동경제학의 이론적 겹침은 당연한 일이겠다. 하지만 외국저자의 책과는 상당부분 다른 시각과 분석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읽는 이로서는 그들의 책과 비교하며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더불어 알아두면 도움이 될 지식의 보고이기에 알아가는 즐거움마저 있겠다.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이기적인 행동을 추동하는 인격체로 그린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을 지배하는 본성에는 다양한 변수가 작용한다.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함에도 그러지 않는 소위 말하는 주먹구구로 결정지어 버리는 경우를 휴리스틱이라고 부른다. 휴리스틱은 조건과 환경에 관계없이 경험, 직관에 의해 결정해 버리는 현상이다. 이러한 사례는 얼마든지 예를 들 수 있을 만큼 인간의 선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선택 틀이다.




이처럼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인간의 선택범위를 파악하는 행태에 있다. 확률이나 예측보다는 암묵적 요인, 자존감, 인식범위, 경험치 등을 고려하여 직관으로 풀이한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기존 경제학의 공을 깡그리 무시하고 곡해하자는 이론은 아니다. 전통 경제학의 시스템은 그 나름의 함수와 변수에 따라 이동 가능한 것이며 이에 보완하여 인간의 심리를 추동하는 요인을 찾는 것이 바로 행동경제학의 알맹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입체적인 사례를 통해 다채로운 현상들이 언제든지 되풀이 된다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 동일한 상황임에도 조건만 바꾸었을 뿐인데, 결과치가 달라진다는 틀짜기효과라는 것은 전통 경제학으로서는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이치다. 선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변수를 이용하여 닻을 내리고 측정의 함수로 인용하는 행위, 욕망에서 기인한 부존효과, 대가없이 얻은 소득의 심적 회계 등은 오류를 인식하면서도 범하는 대표적인 인간의 경제행태들이다.




이 책은 분명 쉽게 기술되어 있으나 단박에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심리적인 요인을 경제학을 측정하는 가늠좌로 사용키로 한 출발점이 이해불가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분명한 해답이 없는 학문이다. 인간의 외부적 행위를 바탕으로 내재적 감정을 분석하는 학문이기에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환경과 조건에 따라 상당부분 제약을 당하거나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은 뒤집을 수 없는 요인이기에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겠다. 경제의 주체는 바로 인간이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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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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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 권리와 의무에 대한 사회통념을 녹여 만든 최상위 법률의 총체다. 헌법은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평등의 산물인 셈이다. 그만큼 중요하고도 또 중요하다. 하지만 헌법에 대한 우리의 현실적인 태도나 이해는 어떠한가? 헌법 조문의 드러난 의미는 고사하고 딱딱하고 고루한 문체에 거리감마저 생기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의 반영은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본다. 교육의 부재는 물론이고 실재와 당위에서 현격한 차이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하루를 살기에도 벅찬 오늘날 헌법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기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하겠는가? 실재로서의 명분이나 규범적 가치를 떠나 현실을 살아내기에 힘겹고 숨찬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람답게 산다는 것도 국가적 시스템과 얼개가 제대로 맞물려 돌아갈 때야 가능한 일이다. 자유와 권리만을 앞세워 서로 충돌한다면 혼돈과 갈등이 난무하는 무법지대가 될 것임은 자명한 이치다. 그러하기에 권력의 남용과 권리충돌현상은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인 대한민국호의 항로이자 좌표이다. 


난 유시민의 역량과 사람됨에 대해 중립적인 편이다. 그가 참여정부시절 숱한 갈등과 문제의 중심에 섰을 때에도 치우쳐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성숙하지 못한 생각의 알갱이를 현실의 살벌함에 맞서 무모하게 휘둘릴 때 안타까움마저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국민연금법개정 당시가 그랬고 그의 사적인 치부가 까발림 당할 때도 그랬다. 그나마 싸움닭처럼 달려들던 그의 강단한 용기와 베짱이 오히려 그를 밀어내지 않았던 요인이었으리라. 


그가 펴낸 이 책 <후불제 민주주의>는 지식소매상으로서의 그의 역량을 드러낸 글이다. 헌법을 배웠든 배우지 않았든 알기 쉽게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성공한 에세이가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학부시절 전공이 법학이다. 그 알량한 지식조각이 이 책에 대한 선입견으로 작용해 여태껏 피하다 이제야 손에 쥐었다. 아웃당한 정치인이 떠드는 지식전개가 곱게 비쳐 보일 리 만무했다. 책을 덮은 후 이러한 모든 생각은 속 좁은 나를 탓해야겠다. 이 책은 한마디로 유시민답다. 평소 그가 보여준 색깔 그대로 감정의 결이 곧고 정연하여 시종일관 물 흐르듯 흘러간다.  

 

 그렇다고 이 책이 헌법을 상세하게 풀어 이해할 수 있는 도구로서의 기능을 완벽하게 갖춘 교과서는 물론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헌법이 제정되고 공포된 이후로 민주화의 열망과 투쟁의 영혼이 선연히 살아 있는 정신을 되새기기에는 이만한 책도 없지 않을까 싶다. 독재와 탄압에 암흑의 세월을 보낸 선배들의 애환과 고초가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기에 당시의 열기와 몸부림의 뜨거웠던 온기 하나하나까지 묻어나기 때문이다. 법이 기록되고 활자화된 것만을 받아들인 세대인 나로서는 머리로는 이해하나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강학적(講學的)인 이유만을 내세운 건조함과 딱딱함이 생산한 직접적인 이미지일 수밖에 없다. 민주화의 열사들이 온몸을 던져 획득한 투쟁의 역사는 현실에 파묻히기 마련이다. 


유시민은 이러한 이론과 실제의 착각에 빠진 현재에 무지의 고통과 자유의 소중함을 고하고자 헌법을 그 매개체로 소통하고자 하였으며 화두로 던졌다. 그가 겪었든 겪지 않았든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이 분명하며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고 기회의 균등이 공평하게 돌아가는 나라임을 추종해야 하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선연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의 벽을 허물고 가진 자와 덜 가진 자를 끌어안는 대승적 해법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하였다.


지난 10년을 보수정권은 잃어버린 시절로 풀이한다. 그 이유는 한국사회가 더 좌로 좌표를 이동하여 계층 간 균형을 허물고 사회주의식 체제 전환으로 모두 가 못 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들의 속내다. 결집된 집권보수층의 권력 카르텔이 한 치의 틈도 없이 그들이 닦은 터전을 함께 공유할 수 없다는 아집으로 뭉쳐 우리 사회를 가르고 무엇이 진실인지 여론을 호도하며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천을 방해하였던 지난한 세월이었다.


유시민은 그 가운데 섰던 장본인이다. 그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소회를 밝히고 보수층에 대해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대해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 이도 있을게다. 물론 호불호에 따라 갈리기는 하겠으나 이제라도 바싹바싹 타들어갔을 그의 가슴에 쌓인 한 줌 재를 토해내었다 생각하면 여유와 관용으로 넘겨 볼 일이다. 그의 주장이 구구절절 옳을 수는 없다. 그의 말마따나 헌법 제 1조 2항에 아로새겨진 자유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결국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의 신파 섞인 참여정부시절의 못 다 한 소회의 감정이 아니라 바로 헌법이 가진 실재적 존재의미다. 행복, 자유, 평등의 인권의 보편적 진리가 아무런 대가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우리의 굳어 버린 영혼을 흔들어 깨우자는 의미겠다. 지난 역사를 통해 엄청난 독재와 압제를 극복하고 일궈낸 숭고한 가치를 더 이상 천박한 저들의 행위에 목 놓고 있지 말자는 동참의 목소리다. 이것이야말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민주주의의 구현이자 인간다운 삶의 참된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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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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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삶은 결국은 같은 말이다. 산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을 곧 의미하기도 하며 죽어간다는 것은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에 대한 깨달음은 살아 있음에 대한 존재감마저 허무하게 퇴색시키는지 모른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고 현재가 미래를 만든다면 미래는 불가해적인 요소라고 하기에는 뭣하다. 차라리 인간은 자신이 새긴 시간의 역사에 오롯이 운명의 방향 추를 힘겹게 부여잡고 끝없이 나아가는 예정된 숙명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 <국경을 넘어>는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전작인 <모두 다 예쁜 말들>의 후속 작으로 코맥 맥카시의 관념과 철학이 짙게 묻어 있다. 마치 파올료 코엘류의 <연금술사>에서 익히 보았던 삶의 실존적 해답과 그의 다른 작품 <포르토벨로의 마녀>의 영혼의 빛을 찾아 떠나던 신비주의를 교차해서 펼쳐지는 놀라움을 엿보게 한다. 또한 코맥 맥카시의 작품을 번역한 김시현의 탁월한 어휘 및 문장력이 이 책의 느낌과 감정을 더욱 돋보이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의 번역폐인생활의 수고가 아니었다면 다른 뉘앙스를 풍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미치니 그의 번뜩이는 작업이 고맙기 그지없다.




이 책의 모티브는 늑대를 따라 운명의 우듬지로 빠르게 흘러가는 카우보이 소년 빌리 파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전작 <모두 다 예쁜 말들>과 후속작 <평원의 도시들>과의 유기적인 알고리즘을 통해 작가가 담고자 한 인간에 대한 질문을 버무렸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지대에 카우보이로 척박한 소년시절을 보내던 빌리에게 늑대의 습격은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단초를 제공한다. 늑대는 인디언적인 요소다. 또한 토테미즘적인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문명과 비문명이 공존하던 당시의 시대상황을 감안한다면 늑대에 담긴 언어는 자연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책에의 시선은 미국식 영웅주의가 아닌 인간이 가진 본성에 빗댄 프리즘을 통해 고찰했다고 볼 수 있다.




기실 작가는 늑대를 통해 공존의 삶을 통찰했는지 모른다. 문명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소통을 차단한 인간의 파괴적인 행위를 분연히 수면위로 끌어 올렸다. 의례 작가는 인간의 언어를 회피하고 자연의 가르침을 깨닫고자 하였다. 코맥 맥카시는 자연의 시계는 영원한 것은 없다는 현재의 명제는 관점의 차이로 이해한다. 빌리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그가 걸어 간 길에서 만난 모든 것들에게서 의미를 부여하며 깨달음으로 가는 의미를 재촉했다.




분명 난데없고 진지한 구원의 반영은 혼란스러운 대목이다. 길에서 사는 집시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은둔자를 통해, 점쟁이를 통해, 전쟁 중 처참하게 눈을 잃은 늙은 군인을 통해, 어느 촌로들의 친절함을 통해 빌리는 자신의 삶을 걸어간다. 빌리는 고뇌, 번민, 방황, 슬픔의 감정을 통해 삶의 진실을 찾고자 하였다. 빌리를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동화되어 내가 걷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받는다. 황량함의 뜨거운 광야에서 전해 오는 대기의 기운과 온도를 고스란히 전달받는 느낌이다. 바람이 달려가듯 시냇물이 나릿나릿 흘러가듯 삶을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계속된다는 불변의 진리를 어느새 전율처럼 촉촉이 적셔오니 말이다.




이처럼 작가는 빌리를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모순과 편견을 걷어내고자 하였다.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삶의 보편적 믿음과 인간의 역사에 기록된 삶의 일방성에 대한 일종의 비틀기인 셈이다. 더불어 보이드를 통해 바람처럼 머물다 간 삶의 부질없음을 그에 따른 고통 또한 인간의 기억 속으로 사라짐을 되새겼다. 광분의 악취를 뿜어대는 탐욕에 사로잡힌 무법자임을 알면서도 기계적으로 복종하는 감독관의 삶을 통해 인간의 보잘 것 없음을 보여주고 하였다.




코맥 맥카시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포괄적으로 통찰하였다. 상당한 노력과 고뇌의 시간 없이는 불가능한 해석이다.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해 인생의 대장정을 걸어 간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의 잉태다. 어떤 변수가 기다리고 있는 지 알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존재론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한층 사고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생각의 경계와 영혼을 흔드는 그의 문체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다. 은밀하게 창백히 쏟아지는 달빛처럼 삶의 의미를 반추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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