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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평점 :
헌법은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 권리와 의무에 대한 사회통념을 녹여 만든 최상위 법률의 총체다. 헌법은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평등의 산물인 셈이다. 그만큼 중요하고도 또 중요하다. 하지만 헌법에 대한 우리의 현실적인 태도나 이해는 어떠한가? 헌법 조문의 드러난 의미는 고사하고 딱딱하고 고루한 문체에 거리감마저 생기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의 반영은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본다. 교육의 부재는 물론이고 실재와 당위에서 현격한 차이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하루를 살기에도 벅찬 오늘날 헌법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기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하겠는가? 실재로서의 명분이나 규범적 가치를 떠나 현실을 살아내기에 힘겹고 숨찬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람답게 산다는 것도 국가적 시스템과 얼개가 제대로 맞물려 돌아갈 때야 가능한 일이다. 자유와 권리만을 앞세워 서로 충돌한다면 혼돈과 갈등이 난무하는 무법지대가 될 것임은 자명한 이치다. 그러하기에 권력의 남용과 권리충돌현상은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인 대한민국호의 항로이자 좌표이다.
난 유시민의 역량과 사람됨에 대해 중립적인 편이다. 그가 참여정부시절 숱한 갈등과 문제의 중심에 섰을 때에도 치우쳐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성숙하지 못한 생각의 알갱이를 현실의 살벌함에 맞서 무모하게 휘둘릴 때 안타까움마저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국민연금법개정 당시가 그랬고 그의 사적인 치부가 까발림 당할 때도 그랬다. 그나마 싸움닭처럼 달려들던 그의 강단한 용기와 베짱이 오히려 그를 밀어내지 않았던 요인이었으리라.
그가 펴낸 이 책 <후불제 민주주의>는 지식소매상으로서의 그의 역량을 드러낸 글이다. 헌법을 배웠든 배우지 않았든 알기 쉽게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성공한 에세이가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학부시절 전공이 법학이다. 그 알량한 지식조각이 이 책에 대한 선입견으로 작용해 여태껏 피하다 이제야 손에 쥐었다. 아웃당한 정치인이 떠드는 지식전개가 곱게 비쳐 보일 리 만무했다. 책을 덮은 후 이러한 모든 생각은 속 좁은 나를 탓해야겠다. 이 책은 한마디로 유시민답다. 평소 그가 보여준 색깔 그대로 감정의 결이 곧고 정연하여 시종일관 물 흐르듯 흘러간다.
그렇다고 이 책이 헌법을 상세하게 풀어 이해할 수 있는 도구로서의 기능을 완벽하게 갖춘 교과서는 물론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헌법이 제정되고 공포된 이후로 민주화의 열망과 투쟁의 영혼이 선연히 살아 있는 정신을 되새기기에는 이만한 책도 없지 않을까 싶다. 독재와 탄압에 암흑의 세월을 보낸 선배들의 애환과 고초가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기에 당시의 열기와 몸부림의 뜨거웠던 온기 하나하나까지 묻어나기 때문이다. 법이 기록되고 활자화된 것만을 받아들인 세대인 나로서는 머리로는 이해하나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강학적(講學的)인 이유만을 내세운 건조함과 딱딱함이 생산한 직접적인 이미지일 수밖에 없다. 민주화의 열사들이 온몸을 던져 획득한 투쟁의 역사는 현실에 파묻히기 마련이다.
유시민은 이러한 이론과 실제의 착각에 빠진 현재에 무지의 고통과 자유의 소중함을 고하고자 헌법을 그 매개체로 소통하고자 하였으며 화두로 던졌다. 그가 겪었든 겪지 않았든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이 분명하며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고 기회의 균등이 공평하게 돌아가는 나라임을 추종해야 하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선연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의 벽을 허물고 가진 자와 덜 가진 자를 끌어안는 대승적 해법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하였다.
지난 10년을 보수정권은 잃어버린 시절로 풀이한다. 그 이유는 한국사회가 더 좌로 좌표를 이동하여 계층 간 균형을 허물고 사회주의식 체제 전환으로 모두 가 못 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들의 속내다. 결집된 집권보수층의 권력 카르텔이 한 치의 틈도 없이 그들이 닦은 터전을 함께 공유할 수 없다는 아집으로 뭉쳐 우리 사회를 가르고 무엇이 진실인지 여론을 호도하며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천을 방해하였던 지난한 세월이었다.
유시민은 그 가운데 섰던 장본인이다. 그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소회를 밝히고 보수층에 대해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대해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 이도 있을게다. 물론 호불호에 따라 갈리기는 하겠으나 이제라도 바싹바싹 타들어갔을 그의 가슴에 쌓인 한 줌 재를 토해내었다 생각하면 여유와 관용으로 넘겨 볼 일이다. 그의 주장이 구구절절 옳을 수는 없다. 그의 말마따나 헌법 제 1조 2항에 아로새겨진 자유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결국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의 신파 섞인 참여정부시절의 못 다 한 소회의 감정이 아니라 바로 헌법이 가진 실재적 존재의미다. 행복, 자유, 평등의 인권의 보편적 진리가 아무런 대가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우리의 굳어 버린 영혼을 흔들어 깨우자는 의미겠다. 지난 역사를 통해 엄청난 독재와 압제를 극복하고 일궈낸 숭고한 가치를 더 이상 천박한 저들의 행위에 목 놓고 있지 말자는 동참의 목소리다. 이것이야말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민주주의의 구현이자 인간다운 삶의 참된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