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꽃 1 - 2009년 제25회 펜문학상 수상작
유익서 지음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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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에서 노래를 뺀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삭막할까? 기쁠 때든 슬픈 때든 노랫가락에 녹아든 구성진 한 소절 흥얼거리면 즐거움도 슬픔도 있는 그대로 좋기만 하다. 그래서 노래는 길을 따라 흐르고 우리네 산천을 따라 모양새를 갖추어 피고 지기를 했는지 모른다. 핍박당하고 억눌린 민초들의 삶을 노래에 담고 희로애락과 오욕칠정을 오롯이 담았기에 울림이 공명통처럼 깊고 푸르다.




이 책 <소리꽃>은 우리네 삶에 스며든 진정한 소리를 글로 피어 냈다. 문자로 다듬어진 노래는 소리처럼 향이 솟아난다. 거칠고 투박한 한 많은 서민들의 애환과 풍광이 고스란히 파고들어 절로 감흥하고 애틋해 진다. 문자향처럼 알알이 번지는 심오한 음율은 독자들의 마음을 보듬는다. 장르도 소재도 근간에 보기 드문 전통적인 채색이 물씬 묻어올라 눈이 퍼뜩 뜨이게 하지만 무엇보다 저자가 엮어간 이 책의 전체적인 색깔은 결연한 느낌마저 강하게 든다.




책을 짓기 위해 10여년의 세월을 살을 대고 다듬고 고쳤기에 창작의 고통과 위대함은 말로 형용하기 힘들다 하겠다. 산업화와 근대화에 매몰된 우리네 소리를 찾고 자료를 조사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얼을 솎아 낸다는 것은 여간 해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전통의 파괴와 추락은 소리마저 변화시키고 고루함으로 돌려 세운 현실이 어제 오늘의 일이던가? 그래서 저자의 글과 소리는 어쭙잖은 국적불명의 노래에 열광하고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세태에 경종을 울릴 준엄한 소리처럼 들린다.




그런 맥락과 이유로 저자는 나를 통해 너를 내세운다. 너는 작중주인공 솔이로 분하기도 하며 목판을 읽어 내려가는 나의 의식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미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에서 맛을 보았던 2인칭시점은 흐름을 상당히 부드럽게 몰고 가는 역할을 한다. 독자의 시점이 자연스럽게 나로 변해 관찰하고 분석하는 위치에 서 이야기에 몰입해 나가는 상태를 편안하게 열어 주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목판에 펼쳐진 이야기의 정경이 35㎜ 실사 영상처럼 소리의 음을 타고 물결처럼 퍼져 나간다.




솔이는 여염집 처자로 노래의 천운을 타고 태어났다. 그녀가 받은 신기와 같은 기이한 운명은 불교적 색채와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녹색손님이 등장하고 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새의 현신인 가릉빈가와 가루다, 대나무 꽃의 분신 항아리가 출현하는 것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속세의 삶의 표출이며 험난한 미래를 암시하는 메타포로 작용한다. 이러한 기교적 장치와 신화적 요소만을 놓고 보더라도 상당히 공을 들인 작품임이 확고해 진다. 그렇지만 몽환적이고 심미적인 서두의 출발이 난해한 것은 사실이다. 작품을 풀어 가는 매개체로 항아리가 솟은 계기를 풀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구조이겠으나, 익히 듣지 못한 고어체와 잊혀진 말들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고 솔이의 세상을 향한 도전이 시작될 즈음부터 빠르게 펼쳐지는 이야기의 감칠맛은 시간의 의미를 무색하게 한다. 솔이를 돕고 세상에 불리지 않은 노래를 찾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상념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때로는 무채색으로 때로는 흙빛에 쌓인 잿빛으로 기쁨에 겨워 넘치는 옥빛으로 태양을 바꾸어 가며 물드는 우리네 삶의 대서사는 자연을 담은 질그릇처럼 투박스럽기도 하며 빛깔고운 색을 은은히 뿜어낸다.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 후기를 기반으로 한다. 붕당의 난립과 정쟁으로 얼룩진 시대적 암울함과 노론의 성리학이 지배적 이념으로 작용하던 시절이었다. 성리학은 명분과 대의를 존중하는 중화사상에 빠져 우리의 것을 천박하게 치부하고 엄격히 다루었다. 그래서 더욱 우리의 얼과 전통이 중화에 의해 짓밟히고 어스러졌던 때이기도 하다. 이처럼 소리에 담긴 서정성을 확보하고 시대적 필요를 드러낸 것은 저자의 의지의 반영이기도 하다.




우리 것에 담긴 전통성과 진정성, 현장성이 살아 숨 쉬는 소리로 체화될 때 제대로 된 소리로 탄생한다는 의미다. 더불어 저자는 우리네 정서 중 한(恨)에 대한 정서를 해피엔딩으로 갈무리 짖고자 하는 바람도 드러냈다. 이야기 중 최개동의 억울한 사연과 남사당패에서 줄을 타는 어름사니 도일에게서 전기수(책 읽어 주는 사람) 대우에게서 얻은 각별함과 고강의 절개와 그림을 향한 열정이 겹겹이 쌓여 이 책을 이루어 냈다.




그런 만큼 구성지게 걷어 올리며 터져 나오는 소리는 작위적이고 인위적 것과 거리가 멀다. 소리에 담긴 정서와 감정은 인간 본성의 그것과 같다. 솔이가 오랜 고초와 역경을 이겨내고 얻은 득음의 순간을 통해 걷어 올린 소리는 우리를 투영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사는 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 이토록 구구절절하게 와 닿을 수 있을지 자문하게 된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기에 우리 속에 담긴 그릇의 깊이와 결을 온전히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대로 담아내기란 불가능이다. 길속에 노래가 있고 우리 속에 노래가 있다는 것도 현실을 반영한다는 의미다. 노작가가 신명을 다해 바친 이 글에서 우리는 무엇을 담을 지는 본인의 몫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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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9-10-17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시대 전기수들은 걸어다니는 책이었지요. 책을 통째로 외워야 했으니 암기력도 뛰어나야했고 소설 같은 경우는 변사처럼 대사까지 리얼하게 재현했으니 그 재주가 얼마나 뛰어날까 추측이 안됩니다. 소설의 맛이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인데 2권은 아직 안읽으셨나요?

穀雨(곡우) 2009-10-19 08:56   좋아요 0 | URL
2권도 읽었어요. 각권으로 나뉜 리뷰를 나누어 적긴 그래서....^^
전 이 책 보고 몰랐던 걸 많이 알았어요. 전기수도 그렇고 어름사니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