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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아프리카 - 대자연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우정의 서사시
조세프 케셀 지음, 유정애 옮김 / 서교출판사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검은 대륙 아프리카. 그곳은 영혼이 숨 쉬는 곳으로 내겐 기억된다. 드넓은 초원을 무대삼아 대자연의 비밀이 간직한 태곳적 법칙을 오롯이 머금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신비의 땅이다. 이러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프리카를 무대로 그려지는 이야기에는 기묘한 흥분이 동참한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나약함이 액면가 그대로 까발려져서 인지 모르겠으나 분명 웅장하고 스펙터클한 세상이다.
이 책 <소울 아프리카>는 동물과 인간의 교감을 그린 이야기다. 읽어 내는 감성코드야 일파만파로 갈라지겠으나 사랑, 자연, 원형, 순리 정도가 아닐까. 인간이 자연의 법칙을 역행하고 통속적 과거와의 단절과 함께 촉발된 산업화의 명분과 진화의 일방적인 신뢰에 일종의 경고를 던진 셈이다. 인간은 편리함을 얻은 대신 자연을 잃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주어진 회귀본능을 인간은 스스로 불살라 버렸는지 모른다. 개발과 파괴의 의미는 결국은 같아지기 때문이다.
저자 조세프 케셀은 프랑스의 최고 문학상 ‘아카데미 프랑세스 상’을 수상한 작가란다. 작가의 경력이 화려해서 반드시 수려한 책을 뽑아내는 원천이 되지는 못하겠으나,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 드는 경외감이 든다. 작중 주인공 나를 통해 바라 본 세상은 미지의 세계다. 순수라는 단어를 시샘하듯 너무도 맑은 영혼을 가진 파트리샤의 이야기와 사자 킹의 사랑을 사실감 있게 처리한 것도 색다른 세계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책에는 아프리카의 생태계가 입체적으로 표현되며 전사의 이미지로 각인된 마사이 족의 태곳적 기억들이 활자로 명멸하듯 거나한 춤을 춘다. 마사이족 사람들이 자연을 섬기고 사물을 관조하는 특유의 관습이 이야기를 농익게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작가의 의도된 계산인지 모르겠다. 맹수와 인간의 대결은 남성다움이며 먹이사슬의 왕좌를 거머쥔다는 의미도 동시에 내포한다. 바로 생존을 의미한다.
마사이족에게는 진정한 사내가 되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간단한 창과 방패만을 이용해 금수의 왕 사자를 제압하는 것이 전통이자 표현이다. 이처럼 마사이족의 성인식에 깃든 암시는 파트리샤와 사자 킹의 관계를 비운으로 모는 짙은 복선을 예고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따라서 원시문화에 담긴 철학과 심미적 관습은 현재의 인간과 대비되기에 적합해 보인다. 문명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자연의 섭생의 진리쯤이라고 할까?
아울러 파트리샤를 순수에 근접한 때 묻지 않은 아이로 설정하였다는 것은 인간이 잃어버린 원형질의 갈망이다. 섬뜩하고 포악한 사자와의 교감을 통해 반려동물이 된다는 것은 세속의 눈으로 이해하기는 아이러니하다. 비록 양육을 통해 교감의 시간이 지속되어 애착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해도 본성을 초월하기에는 너무도 자연에 가깝다. 이렇게 맺어진 사랑의 끈으로 묶어진 파트리샤와 킹의 관계는 놀라움을 넘어선 자연과 인간의 줄기가 동일한 시선으로 흐를 수 있다는 작가의 바람의 의지이리라.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문명과 자연의 충돌은 극에 달한다. 불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극한순간은 인간의 존재의미를 반추하게 되고 잃어버린 자연의 한 조각을 떠올리게 되는 충만한 감상에 젖게 한다. 파괴와 보존, 구속과 자유의 감정에 담긴 시각은 인간의 시선이다. 순리대로 섭리대로 흘렀다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인간이 생산한 탐욕과 이기심으로 모든 것이 깨트려지고 균형을 잃게 된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만드는 작가의 철학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이야기의 방향은 제대로 흘러 곧은결을 만들어 낸다. 삶의 존재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결국은 조화로운 삶을 유지하는 관계에서 비롯됨을 우리는 안다. 사랑과 이해로 치유될 것도 헛된 욕망과 무자비함에 공존의 상생을 짓눌러 버렸다. 살아간다는 것은 또한 있는 그대로 존재함을 용인하고 그러하기에 내가 있음을 우리는 알면서 모른다. 이 책이 쓰인 지 30여년이 지났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고 지나도 인간의 마음에 따스하게 각인되는 휴먼스토리는 인간의 잣대로 재단한다는 것이 오히려 송구스러운 일이다. 간만에 만난 훈훈한 이야기의 감흥을 만끽해 보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