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세상을 홀로 살아가기에는 벅찬 모양이다. 오늘 새벽 회사동료가 삶을 비관하여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조직이라는 무생물의 기괴한 모습에 휘둘리고 마음마저 온전히 빼앗겨 무참히도 짓밟혀 왔던 게 사실이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권력을 향한 욕망은 피할 수 없는 조직의 생리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 동료가 평소 행실이 바르지 못했다거나 걱정거리가 많아 불안한 모습을 시종일관 보였다면 그 충격이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으리라. 비록 살벌한 약육강식의 노름판에 적응하려 몸부림을 쳤을지언정 그게 죽음으로 내몰 이유가 되지는 않을게다. 대체 무엇이 그를 죽음의 벼랑의 유혹에 홀리게 하여 실족하게 되었을까. 안타까움을 넘어 세상 모든 것에 비정함만 남는다.  


나는 운명론이나 숙명론은 그닥 신뢰하지 못한다. 인간의 유전자 DNA에 각인된 것처럼 운명이 예정되었다면 이런 일은 너무도 비극적이다. 아직 구체적인 이유가 밝혀 지지 않았으나 돈과 관련된 주식문제란다. 얼마의 규모로 손실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지 않은 금액임은 분명한 모양이다.  


치열하게 밟고 헐뜯고 시기하며 냉혹하기 짝이 없는 경쟁사회가 원인일까. 그의 남겨진 가족들의 비탄의 심경은 얼마나 크고 무거울까. 어떤 명분과 논리로 설명하려해도 그의 죽음을 합리화할 수 없다. 인간이란 게 무엇인가? 결국은 평화롭고 여유로운 삶이 우선이다. 물질에 사로잡히고 삶의 본질이 오도된다면 안타까운 비극은 전염병처럼 사람을 물들게 하는 것인가. 허무함만 무성하다.  


아침 내 청천 벽력같은 소식에 그의 마음이 떠올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무엇이 우선인지 돌볼 겨를이 없을 만큼 사정이 긴박했었을까. 의문투성이다. 이제 와서 무엇이 이유가 되었든 뭐가 중요하겠느냐마는 살갑게 대해주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도 일말의 책임을 물어야겠다. 명예든 권력이든 인간다움을 먼저 챙기고 알뜰히 살폈다면 이런 일은 최소한 일어나지 않았어야 한다.  


수많은 사건사고로 어느 누군가가 생을 마감하는 현실이지만 근접한 거리에서 느끼는 밀도나 질감은 천양지차다. 당최 자살이라니……. 인생은 자신이 걸어 온 삶의 무게만큼 나아간다면 이제 내려놓고 극락왕생하길 바란다. 그가 누구였든 무엇이었든 시간이 걷어 가버리겠지만 잘 살다간 삶이었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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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
나루케 마코토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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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동시에 책을 열권씩 읽어 본 경험이 있는가? 시간과 공간에 구애 받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어 낸다는 저자는 동시병렬독서를 논한다. 그가 주창하는 다독은 소위 초병렬 독서법이라고 한다. 한 권도 읽어 내기 힘든 마당에 열권의 각기 다른 주제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이야기다. 대개 한 권을 읽더라도 그 감동과 여운을 오롯이 만끽하고자 하는 것이 이유일터인데, 수험서를 보듯 독서를 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래서 저자는 기존의 독서법에 단단히 반기를 들고 나섰다.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양서인지 악서인지도 모를 책을 부여잡고 주구장창 파고든다는 것은 시간낭비며 폭 넓은 사고를 저해하는 요소라 주장한다. 일견 수긍이 가는 말은 맞다. 하지만 보편적인 시선과 기존의 관념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열권까지는 아닐지라도 두 세권을 한꺼번에 읽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집중력과 이해도가 현저하게 감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초병렬 독서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까? 저자는 말한다. 책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 범위를 어떻게 확장시켜 나가느냐가 관건이라고 말이다. 아울러 그는 철저하게 현실적인 시선을 견지한다. 인간의 본성에 호소하는 정서적 작용을 돕는 소설은 거의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철학에는 실용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에 집중하는 것이 올바른 독서법이며 독서를 통한 자아실현의 첩경이라고 역설한다.




책은 빠르게, 넓게, 영리하게 책 읽기를 시종일관 주문한다. 전체 5장으로 나누어 뛰어난 독서가의 독서생활, 책을 읽지 않는 미련함의 토로, 책을 사랑한다면 테러리스트가 되어라, 초병력 독서법 실천법, 저자의 독서 편력기로 구성되었다. 문고판으로 쉽고 간결한 문체로 대화를 나누듯이 씌어 있어 짧은 시간에 읽기에 용이하게 되어 있다. 또한 기술형태만큼 저자의 생각이나 주장이 단호하고 분명하게 드러나 있어 무엇을 말하는지도 쉽게 이해가 된다.




문제는 실천이며 공감이다. “독서라는 것은 비교적 긴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행위”라고 말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을 보더라도 집중을 통한 교감이 우선이겠다. 독서를 통해 우리가 창출해 낼 잉여가치는 관점에 따라 바뀐다. 간접경험을 통한 지식을 쌓고 논리 정연한 사고의 틀을 구성하고 창의적인 인간으로의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것이 거창한 이유겠다. 물론 정서적 감흥과 내면의 불안정한 상태를 독서를 통해 상호교류하고 치환하는 계기도 있음은 지당한 이치다.




따라서 저자의 각별한 독서편력을 수용할 것인가의 여부는 스스로의 판단이겠다. 다독이든 정독이든 본인의 스타일이나 능력에 따라야 할 것이기에 일방통행은 위험하다. 다양성을 확보하고 다채로운 관점을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연한 사고를 통한 인식 있는 통찰의 시각이 절실히 필요한 때임을 실감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식의 확장이 악서와 양서를 구별하는 날카로운 변별력을 키울 좋은 자양분이 되겠다. 지식의 경계를 허물겠다는 창조적 책읽기, 초병력 독서법. 기발한 시도인 만큼 한 번쯤 실천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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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넥션 - 생각의 연결이 혁신을 만든다, 세계를 바꾼 발명과 아이디어의 역사
제임스 버크 지음, 구자현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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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존재하기 위해 발명은 시작되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때로는 불편해서 때로는 탐욕으로 인해 이도저도 아니면 우연을 가장해 인간은 발견과 진화를 거듭해 왔다. 불을 다스리고 도구를 사용하였다는 지극히 원시적인 출발은 현재의 모든 발전의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도 과언이 아니겠다. 씨를 뿌리고 쟁기를 사용하고 관개수로를 개설하는 일련의 연속행위들은 불편함이라는 정신적 출발점의 모토를 공유하지 않았겠는가. 기실 우리를 둘러 싼 문명의 실리적 혜택의 풍요로움도 어느 누군가의 불편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명제라 하겠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 <커넥션>은 드러난 생각의 연결고리가 그물처럼 촘촘히 얽혀 있어 읽는 재미가 남다르다. 모 통신사의 광고 문구처럼 ‘~때문에’ 세상이 바뀌고 새로운 길이 열렸다는 진실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일까? 인간이 발명한 모든 것들에 대해 존경과 경의를 표하게 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하지만 저자가 훝고 통찰한 발명의 시금석은 인류사적으로 중대한 역사적 사실이자 기록임은 불변의 진리다.




수레로부터 출발하여 우주선에 이르기까지 이동수단의 발전은 인간을 물리적인 공간의 경계를 허물게 된 원인이다. 하나의 생각이 파생되어 여타 밀접한 관련분야의 발전과 혁신으로 이어졌다. 전혀 별개의 영역에까지 영향력을 끼치게 된 원인도 결국은 인간이 낳은 생각에서부터 일테다. 당시로서는 광기어린 미치광이로 보았거나 하릴없는 행위로 치부되었을지라도 변화는 무섭게 전이되었다. 이러한 혁신의 공통점은 인간의 태도와 수용의지로부터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일련의 사건들이 진행되는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주제이다. 각 사건이 언제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이유를 밝히다보면 거기에는 사고, 기후 변화, 천재, 손재주, 주의 깊은 관찰, 야심, 탐욕, 전쟁, 종교적 신념, 속임수, 그 밖에 수많은 요인들이 뒤섞여 있다.(P-37)




책은, 인간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과 매개한다. 그 범위 또한 필요하다면 헬레니즘문명부터 현재의 문명까지 광범위하게 아우르며 세세하게 나누고 쪼개어 연결고리를 찾았다. 도시가 생기고 사회를 이루고 그 속에 담긴 관계를 규정하고 구획하는 규범들을 통해 일정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 배경도 혁신을 위한 주춧돌이었다. 말을 타고 사냥을 하고 더 빨리 더 넓게 더 강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구의 필요는 현실적 욕망이 기폭제가 되었음은 당연한 이치다.




이처럼 인간이 가진 단순하게만 보였던 생각의 우듬지가 공간, 시간의 물리적 거리를 단축시키고 때로는 확장하는 중요한 변수였다. 물론 인간을 유익하게만 하는 것으로 발명이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우연히 우라늄이 분열되는 과정에서 발견된 핵분열로부터 원자폭탄이 뒤따른 것도 인간의 탐욕과 야심이 주된 이유다. 어느 시점과 장소에서 어떤 의도로 생각의 설계도가 그려졌는지에 따라 인간의 행태를 뒤바꿀 무시무시한 결론에 도달한다는 인과율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저자 제임스 버크는 다양한 시각으로 변화를 투시하였다. 필요나 불필요가 아닌 경계해야 할 진실은 다름 아닌 인간의 광기쯤이 아니겠는가.




반면 이 책 전반을 지배하는 무궁무진한 진화를 통한 사회과학을 둘러 싼 이야기의 실체는 흥미롭다. 항해술이 발달하고 종이를 사용하고 불을 대체하여 전기를 사용한 것은 신기원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항해로부터 지구가 둥글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고 선박조제, 놋쇠를 이용한 제철가공, 도제술 등 무한진화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더 나아가 양피지에 기록된 파피루스로 출발한 종이의 사용은 인간을 위대한 종으로 업그레이드 시킨 일대사건이었다. 이것은 신조차 시샘할 정도로 놀라운 역량을 보이는 변화의 촉발이자 시작이었다. 누군가가 남긴 생각이나 이론, 지식의 한 줄기가 후대로 이어지고 교육되고 발전된다는 것은 인류가 태동한 이후로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렇듯 이 책을 넘나드는 사건의 진실은 인간의 생각이 모티브다. 창의적인 생각 한 톨도 사소한 행위로부터 비롯되어 무수히 많은 잔가지를 낳아 현재에 이른 것이기에 우리가 눈여겨 볼 함의도 여기에 있겠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진귀한 과학이야기와 아울러 소박한 편견들에 대한 생각도 현상을 이해하는 훌륭한 재료로 사용될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이 책에 펼쳐진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발견적 탐색이 주는 열매의 진실에 조금 더 밀접하게 접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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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안단테 칸타빌레
김호기 지음 / 민트북(좋은인상)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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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들고 지칠 때 우린 필연적으로 어디엔가 의탁하게 된다. 내가 보듬지 못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무엇이 고난으로 내모는지 멈추어 생각하기 마련이다. 현실에 부닥친 불행의 씨앗은 크고 무겁게만 느껴진다. 마치 세상 모든 불행의 화살이 나를 겨누고 있는 느낌마저 드니 말이다. 하지만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이 극복할 만큼의 고난과 역경을 나누어 주는지 모른다. 고난과 성공은 실과 바늘처럼 따라 붙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담은 언제 들어도 그윽한 향이 난다. 이 책 <내 인생 안단테 칸타빌레<의 저자 김호기 씨는 바이올린주자로서 전도유망한 이였다. 그녀에게 닥친 시련 또한 예고 없이 찾아 온 불청객처럼 그녀의 삶을 불안의 나락으로 밀어 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멋지게 성공했으며 새로운 삶의 희망을 쐈다. 운명에 굴하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켜 제대로 인생을 바꾼 성공한 바이올린 제작자로 탈바꿈하였다.




그녀의 성공인생이 값진 이유는 평범한 우리네 일상에 부는 바람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주어진 인생을 통찰하는 키워드 역시 지극히 평범했다.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원인 불명의 손가락 마비는 일순간에 그녀의 인생을 위기의 순간으로 내몰았다. 더 이상 아름다운 선율을 뿜어 내지 못하는 끔찍한 상황은 인생을 얼어붙게 만든다. 오로지 암흑만이 지배한 세상과도 같다. 이처럼 위기는 준비 없이 찾아든다. 그러므로 위기를 이겨낸 성공스토리는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위대하다.




그녀를 지탱한 성공요인은 긍정, 믿음, 열정이었다. 긍정의 힘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마법의 힘이다. 마법의 힘을 믿고 열정을 쏟아 붓는다면 어떠한 일도 해냄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목도한다. 이처럼 성공의 삼위일체가 짜임새 있게 돌아 갈 때 가능한 일이다. 또한 두려운 현실도 극복하고 자신을 더욱 단련시키고 무두질하여 반짝반짝 빛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은 성공을 노래하는 우리네 이웃의 이야기다. 식상할 법도 한 성공스토리겠으나 저자의 이야기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밝음이 주는 상큼함이 매력이다. 낯선 타지에서 혈혈단신 아는 이 하나 없이 새로운 인생을 개척한 그녀의 강단함도 매력이겠거니와 그 속에 깃든 친화력과 긍정마인드가 더욱 눈길을 잡아맨다. 그러하기에 맛깔나고 경쾌한 그녀만의 노래와 음악이야기에 시나브로 흠뻑 젖게 만든다.




이처럼 성공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열망이 오늘날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의 무한도전과 성공을 향한 집념이 그녀를 둘러 싼 모든 기운을 유리하게 바꾼 시발점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따지고 보면 성공을 추동하는 요인은 바로 나 부터라는 불변의 진리를 그녀에게서 보았는지 모른다. 내가 변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얻거나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악화될 뿐이다. 변하기를 원한다면 행동하라는 덴젤 워싱턴의 말을 인용한 그녀의 생각도 이와 같다.




이렇듯 그녀의 성공신화는 진정성이 보석처럼 빛난다. 힘들고 지칠 때 우연히 그녀의 마음을 녹여주고 감싸 준 것은 노라 존슨의 음악이었다. 짧은 순간이 인연이 되어 그녀가 심혈을 다해 만든 바이올린을 타국의 거물급 스타에게 전해 준 에피소드는 엉뚱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순수한 열정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재료다. 생각을 실천에 옮기고 거듭 나아가는 그녀의 진정성은 인생을 아끼고 즐기는 자의 특권이다.




‘안단테 칸타빌레’는 ‘느리게 노래하듯이’라는 악상기호란다. 호랑이 눈처럼 두 눈 부릅뜨고 날카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소처럼 우직하게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라는 호시우행(虎視牛行)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꿈을 품을 줄 안다면 조금 늦더라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이라는 넉넉한 믿음 한 선율을 그녀로부터 얻는다. 인생은 맘마미아(어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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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꽃 1 - 2009년 제25회 펜문학상 수상작
유익서 지음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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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에서 노래를 뺀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삭막할까? 기쁠 때든 슬픈 때든 노랫가락에 녹아든 구성진 한 소절 흥얼거리면 즐거움도 슬픔도 있는 그대로 좋기만 하다. 그래서 노래는 길을 따라 흐르고 우리네 산천을 따라 모양새를 갖추어 피고 지기를 했는지 모른다. 핍박당하고 억눌린 민초들의 삶을 노래에 담고 희로애락과 오욕칠정을 오롯이 담았기에 울림이 공명통처럼 깊고 푸르다.




이 책 <소리꽃>은 우리네 삶에 스며든 진정한 소리를 글로 피어 냈다. 문자로 다듬어진 노래는 소리처럼 향이 솟아난다. 거칠고 투박한 한 많은 서민들의 애환과 풍광이 고스란히 파고들어 절로 감흥하고 애틋해 진다. 문자향처럼 알알이 번지는 심오한 음율은 독자들의 마음을 보듬는다. 장르도 소재도 근간에 보기 드문 전통적인 채색이 물씬 묻어올라 눈이 퍼뜩 뜨이게 하지만 무엇보다 저자가 엮어간 이 책의 전체적인 색깔은 결연한 느낌마저 강하게 든다.




책을 짓기 위해 10여년의 세월을 살을 대고 다듬고 고쳤기에 창작의 고통과 위대함은 말로 형용하기 힘들다 하겠다. 산업화와 근대화에 매몰된 우리네 소리를 찾고 자료를 조사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얼을 솎아 낸다는 것은 여간 해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전통의 파괴와 추락은 소리마저 변화시키고 고루함으로 돌려 세운 현실이 어제 오늘의 일이던가? 그래서 저자의 글과 소리는 어쭙잖은 국적불명의 노래에 열광하고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세태에 경종을 울릴 준엄한 소리처럼 들린다.




그런 맥락과 이유로 저자는 나를 통해 너를 내세운다. 너는 작중주인공 솔이로 분하기도 하며 목판을 읽어 내려가는 나의 의식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미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에서 맛을 보았던 2인칭시점은 흐름을 상당히 부드럽게 몰고 가는 역할을 한다. 독자의 시점이 자연스럽게 나로 변해 관찰하고 분석하는 위치에 서 이야기에 몰입해 나가는 상태를 편안하게 열어 주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목판에 펼쳐진 이야기의 정경이 35㎜ 실사 영상처럼 소리의 음을 타고 물결처럼 퍼져 나간다.




솔이는 여염집 처자로 노래의 천운을 타고 태어났다. 그녀가 받은 신기와 같은 기이한 운명은 불교적 색채와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녹색손님이 등장하고 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새의 현신인 가릉빈가와 가루다, 대나무 꽃의 분신 항아리가 출현하는 것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속세의 삶의 표출이며 험난한 미래를 암시하는 메타포로 작용한다. 이러한 기교적 장치와 신화적 요소만을 놓고 보더라도 상당히 공을 들인 작품임이 확고해 진다. 그렇지만 몽환적이고 심미적인 서두의 출발이 난해한 것은 사실이다. 작품을 풀어 가는 매개체로 항아리가 솟은 계기를 풀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구조이겠으나, 익히 듣지 못한 고어체와 잊혀진 말들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고 솔이의 세상을 향한 도전이 시작될 즈음부터 빠르게 펼쳐지는 이야기의 감칠맛은 시간의 의미를 무색하게 한다. 솔이를 돕고 세상에 불리지 않은 노래를 찾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상념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때로는 무채색으로 때로는 흙빛에 쌓인 잿빛으로 기쁨에 겨워 넘치는 옥빛으로 태양을 바꾸어 가며 물드는 우리네 삶의 대서사는 자연을 담은 질그릇처럼 투박스럽기도 하며 빛깔고운 색을 은은히 뿜어낸다.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 후기를 기반으로 한다. 붕당의 난립과 정쟁으로 얼룩진 시대적 암울함과 노론의 성리학이 지배적 이념으로 작용하던 시절이었다. 성리학은 명분과 대의를 존중하는 중화사상에 빠져 우리의 것을 천박하게 치부하고 엄격히 다루었다. 그래서 더욱 우리의 얼과 전통이 중화에 의해 짓밟히고 어스러졌던 때이기도 하다. 이처럼 소리에 담긴 서정성을 확보하고 시대적 필요를 드러낸 것은 저자의 의지의 반영이기도 하다.




우리 것에 담긴 전통성과 진정성, 현장성이 살아 숨 쉬는 소리로 체화될 때 제대로 된 소리로 탄생한다는 의미다. 더불어 저자는 우리네 정서 중 한(恨)에 대한 정서를 해피엔딩으로 갈무리 짖고자 하는 바람도 드러냈다. 이야기 중 최개동의 억울한 사연과 남사당패에서 줄을 타는 어름사니 도일에게서 전기수(책 읽어 주는 사람) 대우에게서 얻은 각별함과 고강의 절개와 그림을 향한 열정이 겹겹이 쌓여 이 책을 이루어 냈다.




그런 만큼 구성지게 걷어 올리며 터져 나오는 소리는 작위적이고 인위적 것과 거리가 멀다. 소리에 담긴 정서와 감정은 인간 본성의 그것과 같다. 솔이가 오랜 고초와 역경을 이겨내고 얻은 득음의 순간을 통해 걷어 올린 소리는 우리를 투영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사는 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 이토록 구구절절하게 와 닿을 수 있을지 자문하게 된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기에 우리 속에 담긴 그릇의 깊이와 결을 온전히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대로 담아내기란 불가능이다. 길속에 노래가 있고 우리 속에 노래가 있다는 것도 현실을 반영한다는 의미다. 노작가가 신명을 다해 바친 이 글에서 우리는 무엇을 담을 지는 본인의 몫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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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9-10-17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시대 전기수들은 걸어다니는 책이었지요. 책을 통째로 외워야 했으니 암기력도 뛰어나야했고 소설 같은 경우는 변사처럼 대사까지 리얼하게 재현했으니 그 재주가 얼마나 뛰어날까 추측이 안됩니다. 소설의 맛이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인데 2권은 아직 안읽으셨나요?

穀雨(곡우) 2009-10-19 08:56   좋아요 0 | URL
2권도 읽었어요. 각권으로 나뉜 리뷰를 나누어 적긴 그래서....^^
전 이 책 보고 몰랐던 걸 많이 알았어요. 전기수도 그렇고 어름사니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