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돼지꿈 - 오정희 우화소설
오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일상에 스며든 어느 곳에서나 일어 날 법한 주제로 가득한 이야기는 너무도 익숙하여 굳어져 버린 여성의 존재 이유에 대한 제법 관념적인 의문을 품게 한다. 책을 사랑하는 이라면 한번쯤은 회자되었을 법한 작가 오정희님의 공을 들여 만든 새 책 "돼지꿈"은 온전히 여성의 감정에 중점을 둔 여성 자신의 이야기다.

 


저자의 집필 특성상 장중하거나 딱딱한 기색 없이 가볍게 이끌어 주는 것은 상당한 매력이며 또한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영락없이 발견하게 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 한 켠 따사로이 감싸고 도는 사람 내음과 게을러서 혹은 미처 느끼지 못하여서 미뤄 두었던 생각거리를 함께 호흡하며 느끼게 만드는 주제로 가득한 책이다.

 


여자의 일생은 무엇일까? 남자인 나로서는 그저 동성이 아닌 이성으로, -굳이 물리적, 개념적인 정의를 따져 묻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의 어머니로, 나의 아내로, 나의 자식의 또 다른 어머니로 그렇게 받아들여졌을 뿐 그녀들 속에 감춘 여성으로서의 관념은 둔한 사고(思考)의 한쪽으로 치어 버린 지 오래인지도 모른다.

 


행복을 꿈꾸던 소녀가 결혼 후 남편과 아이로부터 차례로 환멸과 실망만을 겪고 내면에 감추어 둔 감정을 억제당하며 그 속에서 점차 자신의 존재감마저 잃게 된다는 저 유명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과 이 책은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이 책은 25개의 각기 다른 여성들을 등장시켜 조합한 옴니버스식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다시 4개의 큰 틀로 나눠 각기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구성하여 여자 자신의 시각으로, 이성인 남성의 시각으로, 같은 여성의 시각으로 여자를 조명한다. 이를 통하여 삶의 무게에 따라 변해 버린 여성의 존재감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잊혀 진 여성으로서의 가치를 새삼 다시금 일깨워 주는 효과를 이끌어 낸다. 작가의 세심한 배려가 여기 저기 묻어 나 읽는 내내 여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더 없이 고되고 우울하며 드세고 우악스럽게 바뀌어 여성으로서의 꿈을 접어 버린 힘든 나날들에 저절로 반추하게 한다. 이야기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면 갈수록 저자가 풀어 내는 여자이야기에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는 나를 발견하게 한다.

 


 이 책은 읽는 내내 페미니즘을 신봉하는 강경한 페미니스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살아가야 할 인생의 질곡이 남성이 걸어 갈 인생의 무게와 진배없음을 깨닫게 만들어 당장이라도 양성평등을 부르짖고 싶을 호기를 가져 다 주었다. 아내의 외출에 진정으로 속을 헤아려 줄 방법이 있음을 알고도 그리 하지 못하는 현실에 못내 성토하게 되고, 다 자라버린 아이와 남편이 마치 종으로 대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분개하면서도 다시금 변하지 않는 것에 안도하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에서 차마 필설로 형용할 수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음을 알아버렸다.

 

더구나 꽃다운 젊은 나이에 홀로 남겨진 미망인의 메마른 시각으로 너무도 쉽게 타올랐다 새로운 생명에 대하여 너무도 가벼이 여기는 세태를 비꼬는 듯한 이야기는 왜 굳이 작가가 이 책의 제목으로 돼지꿈을 꼽았는지 동조하게 한다. 분명 작가가 살아 온 세대의 여성과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과는 많은 부분에서 달라 그로부터 발생하는 이질감은 어찌 할 수 없으리라 본다. 그렇다고 그것이 읽는 내내 거슬린다거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시대적 괴리감으로 작용하지는 않으며 아마도 나처럼 나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한다.

 

새삼 하루의 노곤함으로 가는 코를 골며 잠에 취한 아내의 얼굴을 보며 불현듯 솟아 오르는 애잔함과 미안함에 이 책이 우리 시대 여성에게 바치는 것임에도 오히려 남자에게 바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각기 다른 모습과 환경으로 내 몰리는 삶이라곤 하지만 그 덧없음에 허망함을 느끼고 그 무기력함에 망망대해를 혼자서 헤쳐 나가도록 등떠민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고로 이미 자신의 삶을 너무도 많이 알아버린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권하고 싶고 좀 더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